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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식·강성현 저,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미군 사진부대의 활동을 중심으로』에 대하여 한국전쟁 연구의 국제비교학적·학제적 연구의 필요성과 관련하여

          정의진 ( Jung Euijin ) 국제비교한국학회 2016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4 No.2

          정근식·강성현의 저서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미군 사진부대의 활동을 중심으로』는 `서울대학교통일학연구총서`의 30번 째 단행본으로 2016년 5월에 출간되었다. 저자들이 미군 사진부대 사진병들이 찍은 한국전쟁 사진들을 별도의 연구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한국전쟁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억을 점하고 있는 다수의 사진들이 이들에 의해 촬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들은 사진의 수용과 분석이전에 사진촬영 주체의 성격을 규명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전쟁 상황에서 사진을 통한 심리전을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조직된 군 사진부대의 특수성을 염두에 둘 때, 미군 사진병들의 시각과 사각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입장이다. 동시에 사진이라는 외부 피사체 기술복제 기기의 과학적 사실성이 내포하는 매체적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저자들은 미군 사진병들의 사진을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군 사진병들이 생산한 사진들의 사각지점들을 해명하면서, 저자들은 적 진영에서 생산한 사진들이나 민간 사진가들이 생산한 사진들과의 교차연구를 통해 한국전쟁에 대한 보다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을 확보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새로운 냉전구도가 형성될 위험성이 부각되고 있는 현재의 동북아 정세 속에서, 이러한 냉전구도의 역사적 기원인 한국전쟁에 대한 평화지향적인 관점확립이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저자들은 한국전쟁에 대한 국제비교학적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연구방법론의 차원에서 볼 때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미군 사진부대의 활동을 중심으로』는 역사학의 실증주의적 자료조사 분석방법, 미학과 미디어 연구와 매스커뮤니케이션학이 결합된 사진 매체론 및 포토저널리즘에 대한 연구, 사회적 기억에 대한 역사철학적·사회학적 연구 등을 아우르는 학제적 연구방법론을 통해 진행되었다. 한국전쟁의 복합적인 성격, 냉전적 사고의 여파가 낳은 은폐된 사실들 등을 고려할 때 이러한 학제적 연구는 필수적이다. 연구가 사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사진이라는 기술복제 미디어에 관련된 포괄적인 사회문화론적 지식 또한 필수적이다. 나아가 치열한 미디어 전쟁, 복잡한 국제적 여론전을 동반한 한국전쟁의 성격을 고려할 때,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는 국제비교학적 연구에 학제적 연구가 결합될 때 최적의 연구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다.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미군 사진부대의 활동을 중심으로』는 이를 위한 중요한 기초를 놓았다. This paper reviews the book, Historical Sociology of Korean War Photography: Focusing on the Activities of US Army Signal Corps Photo Unit, written by Jung Keun Sik and Kang Sung Hyun. This book suggests several points about our memories on Korean War, which are framed by the photograph of US Army signal corps photo unit. According to the authors, though Korean War is a sixty five year old past, it is still the source of memory reproducing the power to construct the present, and at the center are situated war photographs taken by American soldiers. This book intends not only to examine the photographs on Korean War, but also the activities of the photography units at the US Army during Korean War. Through grasping the scene the photographs are showing, this book tries to understand the scene they are not showing accordingly. To reach the object of the studies, this book make full use of the concepts and method of several fields : history, sociology, media, communica-tion, political philosophy, etc. This book can be a model case of international comparative and interdisciplinary studies on Korean War.

        • KCI등재

          특집논문 : 대중가요의 상징성 획득 과정 비교 연구-한국의 아리랑과 아프리카의 말라이카

          박정경 ( Jeong Kyung Park ) 국제비교한국학회 2012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0 No.2

          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의 아리랑과 아프리카의 말라이카가 한 집단을 표상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비교하는 데 있다. 아리랑과 말라이카가 가지는 사회·문화적 의미는 한국과 아프리카의 근대화시기 사회 변화에 대한 고찰 없이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본 연구에서는 먼저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한 요인을 기존 연구를 통해 살펴보고, 독립을 전후한 시기 아프리카 사회 변화의 맥락에서 대중가요 말라이카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노래로 알려지게 된 경위를 밝히고자 한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들이 말라이카를 서구 세계에 유행시켜, 이 노래가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배경 역시 본 연구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한국의 아리랑과 아프리카의 말라이카가 각각 한국인과 아프리카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하게 된 배경에는 두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 나타난 대중문화의 부상이 있었다. 두 노래 모두 전통적 삶을 대체로 유지하던 향촌사회라기보다는 근대 도시 공간에서 대중문화의 형태로 일반대중 사이에 유행하면서 각각 한국과 동아프리카 사회에서 인지도를 높였다. 아리랑과 말라이카가 도시 대중문화의 토양에서 유행했다는 점은 유사하지만, 아프리카의 근대 도시는 한국의 도시와는 달리, "탈민족화"(de-ethnicization)가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했다. 파딜리의 <말라이카>가 동아프리카 도시의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이면에는 당시 도시 취향의 리듬과 멜로디에 교통어 역할을 하는 스와힐리어로 가사를 붙여 창작된 이 대중가요의 탈민족적 특성이 작용했다. 한국과 아프리카의 근대화는 제국주의 강점기라는 두 사회 공통의 역사와 겹쳐지며 진행되었다. 아리랑과 말라이카는 피지배 집단의 경험과 정서를 가사에 담아냄으로써 당시 한국인과 동아프리카인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1920년대 후반 영화 <아리랑>의 성공에 힘입어 당시 한국인의 고통을 대변하는 노래로 널리 인식된 아리랑은 이후 식민지 기간 내내 민족의 표상으로서의 지위를 한국 내에서 확고히 다졌다. 그러나 말라이카가 아프리카인의 집단 정체성과 밀착되는 현상은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가 아니라 디아스포라 아프리카인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전 세계적인, 특히 미국과 남아공의 인종차별 철폐 운동의 역사적 흐름에서 말라이카는 아프리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노래로 서구 세계에서 재유행되었다. 이렇게 이 대륙 밖에서 아프리카의 노래로서의 지위를 획득한 말라이카는 다시 이 대륙 내로 역수입되면서 아프리카의 일반대중에게도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노래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의 아리랑과 아프리카의 말라이카의 사례를 통해 한 노래가 집단의 표상물로서의 상징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비교해 보았다. 한국의 아리랑이 민족국가의 틀 안에서 오랜 기간 유지해 온 공동체의식의 고취를 바탕으로 민족의 노래가 된 반면, 아프리카의 말라이카는 이질적인 집단들이 비교적 최근에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면서 형성된 유대의식을 기반으로 아프리카의 노래가 되었다. For Koreans and Africans, Arirang and Malaika are considered as songs that symbolize their respective identities.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compare the process of how they became symbolic songs. The meaning of Arirang and Malaika in Korean and African societies cannot be understood without looking into social changes during modernization period. This study attempts to describe the contributing factors of how the two songs became icons of Korea and Africa respectively. During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the rise of popular culture in urban areas is observed in the both Korean and African societies. Arirang and Malaika became well known to the Korean and African general public as popular songs. Modern cities in the colonial era in Africa were the places where different ethnic groups gathered around and new national identities were emerged. Popular songs in African cities were composed to be accepted to the general public regardless of their ethnic backgrounds. The de-ethnicized characteristic of Malaika contributed to its popularity among the East African people in the early 1960s. Arirang and Malaika were regarded as songs that carried oppressed people`s experiences and sentiments. While Arirang became the symbolic song of Korean nationality mainly in colonial Korea, Malaika began to be considered as a representative song for Africa outside the continent in the late 1960s. In the context of the movement for resisting racial discrimination in the United States and South Africa, Malaika was revived by famous popular artists who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movement. After acquiring the emblematic status, Malaika was reimported to the African continent and became widely known to its people. This study discusses the processes to be symbolic songs, comparing Arirang of Korea and Malaika of Africa. Arirang became ``the song of nation`` on the base of the heightening sense of unity among Koreans, but Malaika acquired its symbolic status through a bond formed by sharing the common historical experiences among Africans.

        • KCI등재

          디아스포라적 귀향: 『흑나비』와『안나의 유서』가 재현하는 해외입양아와 한국적 디아스포라

          우미성 ( Mi Seong Woo ) 국제비교한국학회 2015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3 No.2

          이 논문은 1970년대에 제작된 두 편의 한국영화 『흑나비』(1974)와 『안나의 유서』(1975)를 통해 한국인들의 디아스포라적 정서를 유추해보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 변장호감독의 미스터리 액션영화인 『흑나비』와 최현민 감독의 멜로드라마 『안나의 유서』는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한국영 사 최초로 성인이 되어 모국을 방문한 해외입양여성을 등장시킴으로써 당시 한국영화가 전쟁고아나 해외입양아를 통해 전쟁에 대한 기억과 달라진 한국의 현실을 어떠한 방식으로 재현하고 소비했는지를 보여준다. 1970년대는 유신시대의 개막과 함께 한국의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시기로 영화산업은 쇠퇴하고 있었지만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과 급속도로 추진되던 근대화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양가적 감정이 포착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일제식민, 한국전쟁, 고도의 근대화시 기를 겪으며 정서적 이산과 이탈을 경험한 한국인들의 ‘사후기억’은 계층적 소외와 이탈을 두려워하는 출신지 지향적, 계층 지향적, 젠더 분리적 정서를 형성한다. 한국인들의 디아스포라적 경험은 영화에 재현된 사회적 소수 자인 해외입양아와 사회주변인으로 전락한 호스테스 여성의 멜로 드라마적 스펙터클에 투영되었고 70년대 한국영화는 한국인들의 집단적 사후기억을 반영하는 기제였음을 알 수 있다. 한민족 중심적이었던 전통적 가치에서 탈피해 글로벌 시민사회로 급격히 변모하는 21세기에 한국이 성숙한 다문화사회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그동안 학술적 연구분야가 아니었던 한 국인들의 디아스포라적 경험과 이산의 정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This paper explores the diasporic experience and sensibility of Koreans represented through international Korean adoptees in two Korean films, namely Black Butterfly (Heungnabi, 1974) by Byeon Jang-ho and Anna’s Will (Anna-ui Yuseo, 1975) by Choe Hyeon-min. These are films that represented international Korean female adult adoptees for the first time in the history of Korean cinema. The issue of international adoption in Korea parallels the compressed modernity of Korea and Koreans’ changing social and cultural awareness of kinship and ethnic identity. The paper analyzes the representational mode of adult female adoptees returning from their Western adoptive countries to find out about their roots, which began to emerge in South Korean cinema in the 1970s, and discusses the unique features of diasporic sensibility developed in a Korean context. In both films, the international adoptee returnee serves as a cultural marker and political device for the military regime’s rigid censorship and propaganda to present the nation’s fast recovery from the traumatic war and unprecedentedly rapid economic development on silver screen. The diasporic sensibility of displacement represented through international Korean adoptees functioned as a consolation for the collective postmemory of the South Korean spectators as the diasporic subject, thus, prevented the audience from seeing the material and ontological condition of international Korean adopt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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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의 시공간 혹은 시와 소설의 불분명한 경계 : 세계문학 시대의 한국문학 읽기

          이영준 ( Lee Young-jun ) 국제비교한국학회 2017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5 No.3

          소설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물의 변화를 보여주는 문학 장르이다.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동원되는 시간의 흐름은 과거시제에 의해 객관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 근대 소설에서 나타나는 특징적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 소설에서 과거시제를 일관하여 사용하는 경우보다 현재시제를 사용하는 장면이 자주 나타난다는 관찰이 있다. 이러한 현재시제의 존재는 한국문학을 설명하는 하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한국 현대문학에서 시간 혹은 시제에 대한 문제는 20세기 초기부터 의식의 대상이 되어왔다. 가령, 소설에서 삼인칭 대명사나 과거시제의 문장이 김동인에 의해 도입된 이래, 한국의 소설은 과거 시제를 사용하는 연습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구 문학에 의해 훈련된 연구자들은 서구 소설에 비교하여 한국 소설에서 사라지지 않는 현재 시제의 존재를 적시하고 비판해왔다. 본 논문은 한국 소설에서 현재 시제가 왜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비판의 표적이 되는지를 검토하고, 서구 소설에서와 같은 과제 시제 채택이 이토록 지연되는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다. 본 논문은 한국 소설에서 시적 감성이 공감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적시하고 이러한 시적 감성의 공간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화자의 목소리가 현재시제로 나타나는 동시에, 감정의 공유는 자유간접화법으로 드러나는 데 주목하고자 한다. 불분명한 화자의 복합성을 야기하는 자유간접화법은 사건의 객관적 묘사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화자와 독자 혹은 청자 사이에 공감을 얻어내는 데 목적이 있으며 여기에서 시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본 논문은 독자의 공감을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시적 감성이 한국소설의 하나의 특징이며 그것으로 현재시제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Fiction is a genre of literature that displays changes in characters according to the flow of time. The way in which the flow of time displays these changes is by taking on objectivity through the use of the past tense, and this is one of the unique aspects of modern fiction. However, it has been observed that more often than not, that present tense is consistently preferred in Korean fiction over the use of the past tense. Such as preference of the present tense is one of the main characteristics that characterizes Korean literature. Moreover, the question of time or tense has been the subject of awareness in modern Korean literature since the early 20th century. For example, since Kim Dong-in first introduced the third person pronoun of tense sentences in short stories, it can be said that Korean fiction has practiced how to use the past tense. Nevertheless, researchers studying Western literature have indicated and criticized the preference for the present tense, which has persisted in Korean fiction compared to Western fiction. This paper reviews why contrary to trends in modern literature the present tense has not disappeared from Korean fiction but is still prevalent which has led to a backlash of criticism, and serious questions being asked concerning the continual delay in adopting the past tense as has occurred in Western fiction. Additionally, this paper intends to specify the particular phenomenon, in which poetic emotion creates space for empathy in Korea fiction, and thus, focus is placed on the narrator’s voice to create this concept of poetic emotion that is described in the present tense and at the same time the sharing of emotion appears through free indirect discourse. Free indirect discourse, which explains the complexity of the indistinct narrator, dose not intend to describe events in a subjective manner, but instead aims to earn empathy among the narrator and readers or listeners; so in that sense, the tense is not important. This paper proposes that poetic emotion that makes em pathy among readers more effective is one of the main aspects of Korea fiction, which clearly explains the reason for the existence of the present t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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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arative Constructions in Korean

          Jhang, Sea-Eun 국제비교한국학회 2001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9 No.-

          한국어의 비교구문은 다른 언어에 비해 그렇게 관심을 갖지 못한 구문중의 하나였다. 비교사인'보다' 앞에 놓이는 구성성분의 속성에 따라 두 가지 유형의 비교구문으로 구분된다. 즉, 구성성분이 명사구이면 plain NP-비교구문, 보문소'것'으로 형성된 명사절이면 clausal NP- 비교구문이라 부른다. 이들 두 구문에 대한 구분을 위하여 본 논문은 다중비교, 격, 어순효과등의 세 가지 증거를 제시하고 특히 비교표적이 되는 요소의 경이 생략되는 plain NP-비교구문에서 어순효과에 따라 나타나는 중의성의 문제도 다룬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plain NP-비교 구문에서는 허용되지 않으나 clausal NP-비교구문은 다중비교를 허용한다. 둘째, plain NP-비교구문에서는 허용되지 않으나 clausal NP-비교구문은 S-격을 허용한다. 한편으로 plain NP-비교구문에서는 I-격이 필요하지 않으나 clausal NP-비교구문에서는 필요하다. 끝으로 어순과 관련하여 clausal NP-비교구문에서는 비교표적의 격표지가 일반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중의성을 갖지 않으나 비교표적의 격이 생략되는 plain NP-비교구문에서는 중의성을 갖는다. 또한 이러한 어순효과에 따른 중의성은 선호되는 의미해석을 지니고 있는 이러한 어순효과는 비교표적간의 거리, 방향, 문법적인 관련성의 세 가지 요소에 의하여 일반화된다. 즉, plain NP-비교구문에서의 비교요소의 선택은 첫째, 비교표적의 오른쪽에 가장 가까운 명사구의 선호성와 둘째, 비교표적에 인접한 비주어의 선호성의 두 가지 원리에 의하여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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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고고학과 귀납적 보편 : 김현 초기 시 비평 연구

          조강석 ( Cho¸ Kang-sok ) 국제비교한국학회 2020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8 No.3

          이 글의 목적은 김현 초기 시 비평의 위상과 면모를 당대적 맥락 속에서 살펴보고 그 의미가 무엇일지를 상고하여 현재에 비추는 것이다. 초기 김현 비평의 중요한 문제의식들은 “경험적인 것을 선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어떻게?”라는 질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선험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에 대한 사유로부터 촉발된 귀납적 보편에의 요청, 그리고 이에 대한 답변으로서의 문학의 고고학을 논의의 초점에 놓고 보자면, 1967년에 발표된 「시와 암시-언어파의 시학에 관해서」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은 말라르메의 암시의 시학을 통해 1967년 당시 한국의 시단을 조망하되, 암시의 시학이 한국적 조건에서 성립되기 어려운 이유를 천착하는 글이다. 김현이 보기에 언어파의 도래는 1967년 현재 이미 한국 시단에 발생한 사건이다. 이들의 시적 특징은 암시의 시학에 의해 가장 잘 설명되는데 암시의 시학이 한국적 상황에서 타당한 존재 이유를 가지고 이해를 구하려면 그 구성적 조건인 수직적 이원론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다만, 이때의 수직적 이원론은 플라톤으로부터 기독교적 전통에 이르기까지의 서구에서와 같은 방식이 아니라 한국적 상황 속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현은 이를 “수직적 이원론의 토착화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결국 이미 도래한 언어파의 시는, 한국의 제반 문화적 근저가 수직적 이원론의 토착화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가장 설득력 있고 절실한 호소력을 얻으며 한국시의 한 이념형에 가닿게 될 것이요, 그렇지 못한다면, 구조로부터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만을 ‘선험적으로’ 차용한 것에 지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이 이 대목에서의 김현의 진의로 읽힌다. 김현이 이런 맥락에서 궁구한 문학(문화)의 고고학은 얼마간 바로 이찢긴 위치의 좌표들로 구성되어갈 성질의 것이었다. 김현의 시 비평 초기에 엿보이는 흥미로운 양상 중 하나인 ‘이미지 계보학’은 바로 그런 좌표들을 그러모으는 예비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입에 이르는 동안 우리 시단은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실험을 거듭하며 활로를 새롭게 모색하고 있었다. 바로 이 시점에 김현은 한국시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도 연역적 재단을 피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본문에서 살펴본 김현의 여러논의들은 결국 귀납적으로 구체적 실천들에 주목하고 이를 통해 실천들로부터 추상되는 보편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문학활동 초기의 자신의 태도에 대한 반성에 기초해 한국적 상황에서의 정신사적 맥락과 결락을 토대로 당대에 다방면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한국시의 이념형들의 성과와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결국 한국시의 이념형을 추상하기 위해 고고학적 태도와 귀납적 방법에 기초한 작업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의 의미를 반추하게 한다. 2020년대의 오늘을 위해서도 바로 그런 귀납적 감각에 기초한 한국시사의 사후 재구성 작업은 새삼 절실해 보인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status and aspects of Kim Hyun’s early criticisms on poems and to reflect on the present by pondering what the meaning would be. The important agenda of early Kim Hyun’s criticism was derived from the question, “How can we accept the universality of Korean literature without accepting empirical things as a priori?” In “On Poetry and Allusion-Poetics of the Poets Who Put Special Emphasis on the Usage of Language in Poetry” published in 1967, Kim Hyun suggested the archeology of literature as a response to the request for inductive universality triggered by thoughts of a priori and empirical things. This article looks at the Korean poems in 1960s through Stephane Mallarme’s poetics of allusion, but explores the reason why poetics of allusion is difficult to establish under Korean conditions. In Kim Hyun’s view, the advent of the ‘linguistic group’ has already occurred in Korea as of 1967. Their poetic characteristics are best explained by the poetics of allusion. However, in a Korean situation, vertical dualism, which is a constitutive condition of the poetics of allusion, was missing until the mid 1960s. Kim Hyun argued the vertical dualism would inevitably arise in the Korean context, not in the same way as in the West from Plato to Christian tradition. Kim Hyun defines this as “the matter of indigenization of vertical dualism”. Eventually, the poetry of ‘linguistic group’ that had already arrived would gain the most persuasive and desperate appeal if the cultural foundation of Korea was progressed in the direction of vertical dualism, and it would reach an ideological form of Korean poetry. If not, it is read as Kim Hyun’s sincerity in this passage, it would be nothing more than borrowing only the form ‘a priori’. From the 1960s to the beginning of the 1970s, Korean literary world not only grew rapidly in terms of quantity, but was also searching for new ways by repeating new experiments. At this point, Kim Hyun looked for a way to avoid deductive explanation of Korean poetry. In that sense, Kim Hyun’s early criticisms on poems can be seen as a part of an attempt to inductively focus on concrete practices and to explain a universality of Korean poetry abstracted from them. And this was to explain the achievements and possibilities of Korean poetry, which began to unfold in many different ways in that time. Eventually, Kim Hyun’s early endeavor reflects the meaning that a work based on archaeological attitudes and inductive methods must be premised to abstract the ideological pattern of Korean poetry. Even for today in the 2020s, the post-reconstruction work of the history of modern Korean poetry based on such an inductive sense seems to be most demanded.

        • KCI등재

          1990년대 한국영화와 2차 대전 종전 후 프랑스영화의 재정비 비교 - 국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수원 국제비교한국학회 2020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8 No.2

          Cette étude porte sur l’essor de la scène cinématographique en Corée dans les années 1990 et en France au lendemain de la Seconde Guerre Mondiale. Nous avons pris comme hypothèse que les principaux moteurs de cet essor en Corée étaient sous influence française. En effet, les institutions et la politique cinématographique coréennes se sont inspirées de la France, mais en Corée ce sont les cinéphiles qui ont pris l’initiative de cette renaissance; en France l’initiative de l’Etat se révélait significative. En témoignent la comparaison de quelques moteurs principaux, soit la création d’un établissement public et d’un 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 et le mouvement cinéphilique(critique et cinémathèque). L’écart entre les deux pays provient de la différence du statut du cinema et des contextes historico-politiques. Si le cinema a fait l’objet du soutien constant en France indépendemment de l’alternance du pouvoir, il n’a jamais été une priorité étatique en Corée; les milieux du cinéma coréen ont plutôt entretenu des rapports de tension avec le pouvoir. Avec le temps, les cinéphiles ont adapté le savoir faire acquis à la situation sur place, en s’orientant vers d’autres références que la France. D’autre part, les rapports distants avec l’Etat les a conduits à demander le soutien des collectivités régionales. Il en faudrait une meilleure conscience de l’intérêt public et de la non-intervention par les collectivités régionales ainsi que l’esprit d’ouverture de la cinéphilie coréenne, ceci pour maintenir l’équilibre entre la localité et l’internationalité. 1990년대 한국영화와 2차 대전 종전 후 프랑스영화의 재정비기는 근 50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유사성을 보인다. 본고에서는 19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룬 토대들이 프랑스영화와 영화정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가정하에 정책 기관과 국제 영화제의 출범, 시네필문화의 본격화에서 나타나는 양국 간 연결고리들을고찰하였다. 그 결과 한국 시네필문화와 영화정책이 프랑스가 선구적으로 닦아놓은길을 참조했으나, 토착화 및 시대 변화에 따라 고유의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국가 주도의 재정지원이나 시스템 구축이 돋보이는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서는 시네필들이 영화의 장을 주도했다는 것도 두드러지는 변별점이다. 이는 프랑스에서 영화가 국가적 사안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며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지속적지원의 대상이었던 반면 한국 시네필문화는 정권과 긴장관계 속에 존속해 왔다는 영화적 전통과 정치․역사적 상황의 차이에 기인한다. 양국 영화 중흥기의 비교에서드러난 국가와의 관계 맺기의 차이는 오늘날 한국의 경우 지자체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현실임을 확인시켜준다. 지자체의 불간섭 원칙과 공공성에 대한 인식 제고는 물론, 시네필문화의 대중화로써 영화문화가 지역성과 세계성 사이에서 균형을 꾀해야 할 이유이다.

        • KCI등재

          일반논문 : 한국고전영웅서사원형의 재생산과 코리안 슈퍼 히어로물의 탄생, 그리고 헐리우드 슈퍼히어로물과의 서사코드적 차이

          권도경 ( Do Kyung Kwon ) 국제비교한국학회 2014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2 No.1

          본 연구에서는 한국슈퍼히어로물의 서사원형을 한국고전서사에서 찾고 이를 헐리우드 슈퍼히어로물과 비교하여 서사코드적 차이를 규명함으로써 한국슈퍼히어로물의 고유한 서사적 정체성의 일단을 규명하고자 했다. 한국고전영웅서사원형에서 세계의 문제는 가족관계에서 비롯되는 부모·형제 트라우마(trauma) 문제로 치환되어 있다. 세계의 일부인 적대자는 내 가족의 일부인 부모이거나 형제이며, 나의 개인적·집단적 가치의 실현은 부모·형제 트라우마에 의해 촉발된다. 부모 트라우마는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부모에 의한 트라우마다. 자식인 영웅의 일생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파생된 트라우마에 대응하여 그것을 치유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나간다는 것이다. 어떤 식이든 부모가 세계의 질서에 대응하는 방식은 자식의 영웅적 과업 성취 과정 내내 일종의 카운터 파트(counter part)로 작용한다. 부모 트라우마는 현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는 형제와 대결하는 과정에서 치유된다. 형제 트라우마는 영웅인 자식의 이념이 형제의 그것과 충돌하는 데서 발생하는 트라우마다. 형제와 나는 부모의 자식들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현 세계의 질서에 대한 이념이 서로 상반된다. 나는 부모가 만들거나 주도하는 세계의 법칙을 전복시키고자 하고, 형제는 그것을 수호하고자 한다. 내가 히어로인 자식이 되고 나의 형제는 안티히어로인 자식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고전영웅서사원형에서 영웅인 내가 부모·형제의 이념에 대립각을 세우며 구축하고자 하는 새로운 이념은 민중적인 지점에 입각해 있다. 여기서 민중은 내 부모·형제와 남의 부모·형제를 포함한 집합체로, 우리의 부모·형제들이다. 일종의 부모·형제 트라우마 치유 과정의 민중 지향적 확산이자, 집단 트라우마 치유 과정의 일부로서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헐리우드 슈퍼히어로와 코리안 슈퍼히어로의 차이점은 내 부모의 트라우마를 야기하고 나와 대결하는 악당이 세계질서의 이념만 달리할 뿐인 반대의(opposite) 영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각자 구축하거나 따르고자 하는 이념의 질서를 달리하는 영웅이 아니라 순수한 악(pure evil)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헐리우드 슈퍼히어로물의 악당들은 내 부모와 이념을 달리하며 세계의 주도권을 먼저 쥐는데 성공한 남의 부모가 아니다. 의사가족관계(擬似家族關係)로 치환되지 않는 것이다. 같은 차원에서 헐리우드 슈퍼히어로물의 악당들은 주인공인 영웅의 유사형제들이 아니다. 나의 트라우마로 전이된 부모 트라우마의 극복 과정이 형제 트라우마의 극복 문제로 연계되는 코리안 슈퍼히어로물과는 달리, 절대 악으로 존재하는 빌런들은 이념을 달리하는 의사(擬似) 영웅형제들로 치환되지 않는다. 악당들과의 대결을 통해 구원하는 대상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헐리우드 슈퍼히어로들이 악당들로부터 구출해 내는 대상은 물리적·정신적 측면의 약자인 시민이지 계층적·사회적·정치적 측면의 약자인 민중이 아니다. 상층출신의 귀족영웅들도 계급적 약자인 민중을 구원하는 위민(爲民)의 이념 지향성을 보여주는 코리안 슈퍼히어로들과는 다르다. 부모·형제 트라우마가 집단의 문제로 확산된 계급적 차원의 민중성은 코리안 슈퍼히어로물의 서사코드적 전유물인 것이다. 게다가 코리안 슈퍼히어로는 민중을 넘어서 민족적인 차원의 총체적인 집단 트라우마 극복의 문제까지 껴안는다. 당연히 헐리우드 슈퍼히어로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지점이다. This study attempted to investigate narrative code’s distinctives between korean superhero’s works and hollywood superhero’s works and original narrative identity of korean superhero’s works, finding narrative archetype of Korean superhero’s works in korean classical narrative archetype and comparing this with hollywood superhero works. A problem of world in korean classical hero’s narrative archetype is replaced with the problem of parents’s and brother’s trauma. A antagonist being as my world’s part is parents or brothers being as realization of my family’s part and my personal·collective value is waked by parents’s and brother’s trauma. My birth as hero is achieved in the course curing parents’s and brother’s trauma. A narrative code’s distinctives between korean superhero’s works and hollywood superhero’s works is that villain that causes my parents’s trauma and fights with me isn’t a hero opposing me merely ideologically in world order. It’s because hollywood superhero’s antagonist is pure evil. So, antagonist of hollywood superhero’s works antagonist isn’t replaced as similar family’s relationship. Besides, objects that hollywood superheroes rescue from antagonist citizens, not public. The character of masses that parents’s and brother’s trauma is expanded to collective problem is narrative code’s preserve of korean superhero’s works and is sublimated problem of national trauma’s overcome.

        • KCI등재

          특집논문 -문화의 맥락을 번역하기 : 게일의 한국고소설 번역과 그 통국가적 맥락 -<게일 유고>(Gale, James Scarth Papers) 소재 고소설관련 자료의 존재양상과 그 의미에 관하여-

          이상현 ( Sang Hhyun Lee ) 국제비교한국학회 2014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2 No.1

          본고의 목적은 게일(James Scarth Gale, 1863-1937, 한국체류 1888~1927)의 고소설 번역과 그의 번역을 둘러싼 ‘통국가적인 문맥’에 관해서 살펴보는 것이다. 게일은 40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한 개신교선교사이며, 또한 <춘향전>, <구운몽>을 번역하여 서구권에 소개한 한국의 고전번역가이기도 하다. 캐나다 토론토대 토마스피셔 희귀본 장서실에 남겨진 <게일 유고>(Gale, James Scarth Papers)에는 출판되지 않은 다수의 고소설 영역본이 존재한다. <게일 유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료이자 핵심은 각 권이 대략 200쪽 분량의 책자형 자료, 총19권의 친필 <일지>(Diary)이다. 특히『일지』18~20권에는 게일이 19세기 말 수집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경판 본 국문고소설에 대한 번역물이 보인다. 본고는 이 자료들을 통해, 게일의 선교와 고소설 번역이란 두 실천이 지닌 상관성을 살피고자 했다. 첫째, <일지> 소재 고소설 번역본이 지닌 특성을 고찰했다. <일지>(Diary)에 수록된 <운영전>, <춘향전>, <심청전>, <토생전> 영역본에는 게일의 치열한 교정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게일 유고>속에는 4편의 번역물과 관련된 타자기로 작성된 또 다른 교정원고가 존재한다. 이는『일지』의 친필원고를 근간으로 게일이 활자화[재번역]한 자료였다. 즉, 이 일련의 번역물은 단순히 게일의 초역물을 집적해 놓은 것이 아니라, 교정 및 재번역 과정을 거쳐 활자화 혹은 출간을 지향한 게일의 흔적이 새겨져 있는 자료였던 것이다. 그 속에는 1917년 이후 고소설을 번역 출간하고, 1910년대 이전 근대화되기 ‘옛 조선’의 문명을 보존하려 게일의 지향점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둘째, 게일의 출간물 및 유고 속에 보이는 1917년 이후 게일의 고소설 번역 실천이 지닌 의미를 살펴보았다. 게일의 번역적 실천은 고소설이 근대의 고전으로 정립되는 역사와 고소설의 언어가 고전어로 변모되는 흐름에 부응한 것이었다. 그의 고소설 번역은 한편의 문학작품 번역이라는 지평 속에서 원본의 감각을 충실히 직역하려는 번역적 지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 주재한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이처럼 변모되는 고소설의 위상에 조응할 수 있었고,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번역수준을 보인 셈이다. 그 근간은 19세기 말부터 한국에서 고소설을 수집하고 읽고 번역했던 그의 한국 체험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또한 한국의 개신교선교사라는 그의 정체성이 있었다. 게일은 이 정체성으로 말미암아 근대문학을 내면화한 서구인 독자란 입장을 고수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19세기말 ~20세기 초 한국의 언어-문화 속에서 성서, 찬송가 등을 한국인 독자에게 한국어로 번역해야 했던 개신교 선교사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고소설은 한국인을 이해하고 한국어 학습을 위한 교과서이자, 동시에 한국인에게 복음을 전할 중요한 문학적 형식이었던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James Scarth Gale’s (1863-1937, who stayed in Korea 1888-1927)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al Novels and ‘trans-national context’ surrounding his translation. Gale, a protestant missionary who did mission work in Korea for 40 years, translated Korean classics, such as <Choonhyang-jeon> and <Goowoonmong>, and introduced them to Western cultures. Gale, James Scarth Papers left in Thomas Fischer rare book library, Toronto University, Canada, comprise a number of unpublished English versions of Korean Classical novels. The most important material and essence of Gale, James Scarth’s Papers is his autographic <Diary>, totally 19 volumes of book-type material about 200 pages for each. Especially, Vol. 18~20 of the <Diary> show his translation of a number of Korean Classical Novels in wood-block commercial edition, which is assumed for Gale to have collected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hrough these materials, this study was aimed to look into the interrelationship between Gale’s two practices - missionary work and translation of old Korean fictions. First, the researcher investigated the characteristics of his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al Novels featured in Gale’s Diary. Gale’s English version of <Woonyeong-jeon>, <Choonhyang-jeon>, <Shimchung-jeon> and <Tosaeing-jeon> gathered in <the Diary> leaves the trace of his intensive proofreading. Gale, James Scarth’s Papers also include another proofread manuscript related to the four pieces of translation, which he prepared with a typewriter. This is the material Gale prepared in printing type (re-translated) based on his handwritten manuscript Diary. That is, this series of translations is not just an accumulation of his first translation work but the material produced by Gale’s trouble for its print or publication through proofreading and re-translation. In his efforts lies Gale’s attempt after 1919 to preserve the civilization of ‘the old Korea’ prior to the modernization in 1910’s by translating and publishing Korean Classical Novels. Second, what meaning can we find in Gale’s engagement in translating Korean Classical Novels after 1917 from his publications and literary remains? Gale’s translation work answered the history for Korean Classical Novels to be established into the classics of the modern age and the trend for the language in Korean Classical Novels to be changed into a classical language. It is because his translation job is characterized by an effort to translate the original literally and faithfully to its sensibility on the horizon of literary work translation. Unlike other foreigners stationed then in Korea, he could correspond to the changing status of Korean Classical Novels like this, revealing a high level of translation hard to be seen for those days. It owed to his experience of Korea in collecting and translating Korean Classical Novels in Korea from the end of the 19th century. It was impossible for him to adhere to the position as a Western reader who internalized the modern literature because he was a protestant missionary who had to translate the Bible, hymns, etc. into Korean in the shoes of Korean readers in the midst of Korean language and culture from the end of the 19th to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For him, Korean Classical Novels were not only the textbook for understanding Koreans and learning the Korean language but also an important literary form through which he could deliver the gospel to Koreans.

        • KCI등재

          ‘조선전쟁’의 기억과 마이너리티 연대의 (불)가능성 : 사키 류조의 「기적의 시」(1967)를 중심으로

          김려실 ( Kim¸ Ryeosil ) 국제비교한국학회 2021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9 No.1

          베트남전쟁 중인 1967년에 씐 사키 류조의 소설 「기적의 시」는 한국전쟁 특수로 번영했던 일본 최대의 제철소 야하타제철소를 배경으로, 일본 사회가 이웃의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일본어에서 市는 문맥에 따라 시가(市街)나 시장(市場)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적의 시(市)’란 한국전쟁 특수로 기적의 도시가 된 야하타시와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동시에 가리키는 이중적인 제목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났으며 일본공산당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는 이 작가는 한국전쟁을 배경화한 일본 작가들에 비해 ‘조선의 식민화-대동아전쟁-패전과 점령-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쟁기억의 연쇄와 오버랩 속에서 한국전쟁을 바라 보았다. 중학생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식민 지배의 과거를 잊어버리고 한국전쟁 특수를 환영했던 일본 사회의 속물주의가 풍자되며 그와 같은 ‘망각의 경제’ 가장 밑바닥에서 생존을 도모했던 귀환자-프리케리아트와 재일조선인이 겪은 한국전쟁이 그려진다. 그러나 작가가 취한 미숙한 소년의 시점은 냉전과 분단의 심화에 따라 재구축되고 재분절화되었던 재일조선인의 복잡한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내지는 못했다. 한편, 이 소설은 이차대전 때 미국과의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소년의 반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통해 점령의 문제를 다룬다. 사춘기 소년의 과장된 남근적 욕망에는 명백히 불안이 내포되어 있는데 그의 좌절된 욕망은 페티시로 전치되며 복수의 환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점령군을 향한 복수는 결국 덜 위험한 대상으로 전치되며 아들은 보상을 받고 냉전 질서에 타협하는 길을 택한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한국전쟁 특수를 베트남전쟁으로 다시 열린 ‘기적의 시장’을 비추어보는 거울로 삼았다. 한국전쟁 특수로 전후 부흥을 이루어낸 일본은 과거의 침략전쟁에 대한 정당한 배상 대신 미국과 공동으로 진행한 냉전 근대화 프로젝트를 통해 개도국이 된 아시아태평양의 과거 식민지들을 원조한 것으로 배상을 끝냈다고 간주했다. 그러나 정당한 배상이야 말로 탈식민화의 지난한 과정을 오래도록 겪어야 했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냉전을 종식시킬 평화의 기초가 될 것이다. Ryujo Saki’s novella the Miracle City(奇跡の市), written in 1967, during the Vietnam War, sheds light on how Japanese society viewed neighbors’ war, the Korean War, in the backdrop of the Yahata Steel Mill, which flourished with Korean War special procurement by U.S. In Japanese 市 means city or market. Therefore, the title refers to Yahata City, which became a miracle city due to the Korean War, and also the Cold War capitalist market economy led by the U.S. at the same time. Born in colonized Chosen and having a history of joining the Communist Party of Japan, the author looked at the war in the chain of war memories and overlaps leading to the colonialization of Chosen, the Great East Asian War, the defeat and occupation of Japan and Korean War, compared to other Japanese writers who set the Korean War only in the background. From the first person point of view of a middle school student, the story satires the snobbery of Japanese society, which forgot the past of colonial rule and welcomed the Korean War special procurement and depicts the Korean War experienced by the repatriate-precariat and Zainichi Koreans in Japan, who sought survival at the bottom of such an "Economy of Forgetting." However, the immature boy’s point of view does not properly reveal the complex identity of Zainichi Koreans in Japan, which had been reconstructed and re-divided following the deepening Cold War and the division of Korea. Meanwhile, the story deals with the issue of U.S. occupation over Japan through the anti-American Oedipus complex of the boy who lost his father in the war against the United States during World War II. His exaggerated phallic desire clearly contains anxiety, and his frustrated desire is transferred to fetish and translated into revenge fantasies. However, revenge toward the occupation forces is eventually transferred to less dangerous targets, and the son takes the path of compensation and compromising the Cold War order. As such, the Miracle City used the Korean War special procurement as a mirror to reflect the “Miracle Market” reopened through the Vietnam War. Japan achieved post-war revival with the Korean War special procurement and regarded its war reparation was over by providing aid to its former colonies in the Asia-Pacific region which have become developing countries through a joint Cold War modernization project with Japan and the U.S. instead of right reparations for its past colonial wars. But legitimate reparations will be the basis for peace that will end the unfinished Cold War in the Asia-Pacific region, which has undergone a long and arduous process of decolo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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