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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특집논문 : 대중가요의 상징성 획득 과정 비교 연구-한국의 아리랑과 아프리카의 말라이카

        박정경 ( Jeong Kyung Park ) 국제비교한국학회 2012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0 No.2

        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의 아리랑과 아프리카의 말라이카가 한 집단을 표상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비교하는 데 있다. 아리랑과 말라이카가 가지는 사회·문화적 의미는 한국과 아프리카의 근대화시기 사회 변화에 대한 고찰 없이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본 연구에서는 먼저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한 요인을 기존 연구를 통해 살펴보고, 독립을 전후한 시기 아프리카 사회 변화의 맥락에서 대중가요 말라이카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노래로 알려지게 된 경위를 밝히고자 한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들이 말라이카를 서구 세계에 유행시켜, 이 노래가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배경 역시 본 연구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한국의 아리랑과 아프리카의 말라이카가 각각 한국인과 아프리카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하게 된 배경에는 두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 나타난 대중문화의 부상이 있었다. 두 노래 모두 전통적 삶을 대체로 유지하던 향촌사회라기보다는 근대 도시 공간에서 대중문화의 형태로 일반대중 사이에 유행하면서 각각 한국과 동아프리카 사회에서 인지도를 높였다. 아리랑과 말라이카가 도시 대중문화의 토양에서 유행했다는 점은 유사하지만, 아프리카의 근대 도시는 한국의 도시와는 달리, "탈민족화"(de-ethnicization)가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했다. 파딜리의 <말라이카>가 동아프리카 도시의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이면에는 당시 도시 취향의 리듬과 멜로디에 교통어 역할을 하는 스와힐리어로 가사를 붙여 창작된 이 대중가요의 탈민족적 특성이 작용했다. 한국과 아프리카의 근대화는 제국주의 강점기라는 두 사회 공통의 역사와 겹쳐지며 진행되었다. 아리랑과 말라이카는 피지배 집단의 경험과 정서를 가사에 담아냄으로써 당시 한국인과 동아프리카인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1920년대 후반 영화 <아리랑>의 성공에 힘입어 당시 한국인의 고통을 대변하는 노래로 널리 인식된 아리랑은 이후 식민지 기간 내내 민족의 표상으로서의 지위를 한국 내에서 확고히 다졌다. 그러나 말라이카가 아프리카인의 집단 정체성과 밀착되는 현상은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가 아니라 디아스포라 아프리카인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전 세계적인, 특히 미국과 남아공의 인종차별 철폐 운동의 역사적 흐름에서 말라이카는 아프리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노래로 서구 세계에서 재유행되었다. 이렇게 이 대륙 밖에서 아프리카의 노래로서의 지위를 획득한 말라이카는 다시 이 대륙 내로 역수입되면서 아프리카의 일반대중에게도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노래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의 아리랑과 아프리카의 말라이카의 사례를 통해 한 노래가 집단의 표상물로서의 상징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비교해 보았다. 한국의 아리랑이 민족국가의 틀 안에서 오랜 기간 유지해 온 공동체의식의 고취를 바탕으로 민족의 노래가 된 반면, 아프리카의 말라이카는 이질적인 집단들이 비교적 최근에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면서 형성된 유대의식을 기반으로 아프리카의 노래가 되었다. For Koreans and Africans, Arirang and Malaika are considered as songs that symbolize their respective identities.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compare the process of how they became symbolic songs. The meaning of Arirang and Malaika in Korean and African societies cannot be understood without looking into social changes during modernization period. This study attempts to describe the contributing factors of how the two songs became icons of Korea and Africa respectively. During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the rise of popular culture in urban areas is observed in the both Korean and African societies. Arirang and Malaika became well known to the Korean and African general public as popular songs. Modern cities in the colonial era in Africa were the places where different ethnic groups gathered around and new national identities were emerged. Popular songs in African cities were composed to be accepted to the general public regardless of their ethnic backgrounds. The de-ethnicized characteristic of Malaika contributed to its popularity among the East African people in the early 1960s. Arirang and Malaika were regarded as songs that carried oppressed people`s experiences and sentiments. While Arirang became the symbolic song of Korean nationality mainly in colonial Korea, Malaika began to be considered as a representative song for Africa outside the continent in the late 1960s. In the context of the movement for resisting racial discrimination in the United States and South Africa, Malaika was revived by famous popular artists who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movement. After acquiring the emblematic status, Malaika was reimported to the African continent and became widely known to its people. This study discusses the processes to be symbolic songs, comparing Arirang of Korea and Malaika of Africa. Arirang became ``the song of nation`` on the base of the heightening sense of unity among Koreans, but Malaika acquired its symbolic status through a bond formed by sharing the common historical experiences among Africans.

      • KCI등재

        정근식·강성현 저,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미군 사진부대의 활동을 중심으로』에 대하여 한국전쟁 연구의 국제비교학적·학제적 연구의 필요성과 관련하여

        정의진 ( Jung Euijin ) 국제비교한국학회 2016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4 No.2

        정근식·강성현의 저서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미군 사진부대의 활동을 중심으로』는 `서울대학교통일학연구총서`의 30번 째 단행본으로 2016년 5월에 출간되었다. 저자들이 미군 사진부대 사진병들이 찍은 한국전쟁 사진들을 별도의 연구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한국전쟁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억을 점하고 있는 다수의 사진들이 이들에 의해 촬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들은 사진의 수용과 분석이전에 사진촬영 주체의 성격을 규명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전쟁 상황에서 사진을 통한 심리전을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조직된 군 사진부대의 특수성을 염두에 둘 때, 미군 사진병들의 시각과 사각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입장이다. 동시에 사진이라는 외부 피사체 기술복제 기기의 과학적 사실성이 내포하는 매체적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저자들은 미군 사진병들의 사진을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군 사진병들이 생산한 사진들의 사각지점들을 해명하면서, 저자들은 적 진영에서 생산한 사진들이나 민간 사진가들이 생산한 사진들과의 교차연구를 통해 한국전쟁에 대한 보다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을 확보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새로운 냉전구도가 형성될 위험성이 부각되고 있는 현재의 동북아 정세 속에서, 이러한 냉전구도의 역사적 기원인 한국전쟁에 대한 평화지향적인 관점확립이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저자들은 한국전쟁에 대한 국제비교학적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연구방법론의 차원에서 볼 때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미군 사진부대의 활동을 중심으로』는 역사학의 실증주의적 자료조사 분석방법, 미학과 미디어 연구와 매스커뮤니케이션학이 결합된 사진 매체론 및 포토저널리즘에 대한 연구, 사회적 기억에 대한 역사철학적·사회학적 연구 등을 아우르는 학제적 연구방법론을 통해 진행되었다. 한국전쟁의 복합적인 성격, 냉전적 사고의 여파가 낳은 은폐된 사실들 등을 고려할 때 이러한 학제적 연구는 필수적이다. 연구가 사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사진이라는 기술복제 미디어에 관련된 포괄적인 사회문화론적 지식 또한 필수적이다. 나아가 치열한 미디어 전쟁, 복잡한 국제적 여론전을 동반한 한국전쟁의 성격을 고려할 때,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는 국제비교학적 연구에 학제적 연구가 결합될 때 최적의 연구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다.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미군 사진부대의 활동을 중심으로』는 이를 위한 중요한 기초를 놓았다. This paper reviews the book, Historical Sociology of Korean War Photography: Focusing on the Activities of US Army Signal Corps Photo Unit, written by Jung Keun Sik and Kang Sung Hyun. This book suggests several points about our memories on Korean War, which are framed by the photograph of US Army signal corps photo unit. According to the authors, though Korean War is a sixty five year old past, it is still the source of memory reproducing the power to construct the present, and at the center are situated war photographs taken by American soldiers. This book intends not only to examine the photographs on Korean War, but also the activities of the photography units at the US Army during Korean War. Through grasping the scene the photographs are showing, this book tries to understand the scene they are not showing accordingly. To reach the object of the studies, this book make full use of the concepts and method of several fields : history, sociology, media, communica-tion, political philosophy, etc. This book can be a model case of international comparative and interdisciplinary studies on Korean War.

      • ICT 인프라 이상탐지를 위한 조건부 멀티모달 오토인코더에 관한 연구

        신병진,이종훈,한상진,박충식 한국지능정보시스템학회 2021 한국지능정보시스템학회 학술대회논문집 Vol.2021 No.6

        ICT 인프라의 이상탐지를 통한 유지보수와 장애예방이 중요해지고 있다. 장애예방을 위해서 이상탐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다양한 이상탐지 기법 중 최근 연구들에서는 딥러닝을 활용하고 있으며 오토인코더라를 활용한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오토인코더가 다차원 다변량에 대해서도 효과적으로 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 학습 시에는 많은 컴퓨터 자원이 소모되지만 추론과정에서는 연산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어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하다. 본 연구에서는 기존 연구들과 달리 오토인코더에 2가지 요소를 가미하여 이상탐지의 성능을 높이고자 하였다. 먼저 다차원 데이터가 가지고 있는 속성별 특징을 최대한 부각하여 활용하기 위해 멀티모달 개념을 적용한 멀티모달 오토인코더를 적용하였다. CPU, Memory, network 등 서로 연관이 있는 지표들을 묶어 5개의 모달로 구성하여 학습 성능을 높이고자 하였다. 또한, 시계열 데이터의 특징을 데이터의 차원을 늘리지 않고 효과적으로 학습하기 위하여 조건부 오토인코더(conditional autoencoder) 구조를 활용하는 조건부 멀티모달 오토인코더(Conditional Multimodal Autoencoder, CMAE)를 제안하였다. 제안한 CAME 모델은 비교 실험을 통해 검증했으며, 기존 연구들에서 많이 활용된 오토인코더와 비교하여 AUC, Accuracy, Precision, Recall, F1-score의 성능 평가를 진행한 결과 유니모달 오토인코더(AE)와 멀티모달 오토인코더(Multimodal Autoencoder, MAE)의 성능을 상회하는 결과를 얻어 이상탐지에 있어 효과적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 KCI등재

        한국어와 일본어의 명사절 대조 연구

        기무라나오코 ( Kimura Naoko ) 국제비교한국학회 2015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3 No.3

        본고의 목적은 한국어와 일본어의 명사절을 대조하며 한국어와 일본어에서 동일한 의미를 갖는 보문동사가 각 언어에서 취하는 명사절의 목록을 구축하여 유사점과 차이점을 기술하는 것이다. 일본어에는 ‘こと[koto]’명사절과 ‘の[no]’명사절, 한국어에는 ‘것’명사절과 ‘-기’명사절 그리고 ‘-(으)ㅁ’명사절이 존재한다. 일본인 한국어 학습자는 일본어 ‘こと’명사절과 ‘の’ 명사절이 한국어 ‘것’명사절과 유사하기 때문에 한국어 ‘것’명사절을 큰 어려움 없이 만들 수 있는 데 반해 ‘-기’명사절과 ‘-(으)ㅁ’명사절을 만드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명사절의 선택은 보문동사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한국어와 일본어에서 의미적으로 동일한 보문동사가 각 언어에서 어떠한 명사절을 취하는지 조사하여 목록화하는 것은 일본인 한국어 학습자와 한국인 일본어 학습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기에 한국어와 일본어의 보문동사가 각 언어에서 어떠한 명사절을 취하는지 목록화하여 한국어와 일본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기술하는 본 연구는 일본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차원에서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aims to contrast the noun clause of Korean and Japanese. In order to describe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Japanese and Korean noun clause, the list of complementizers according to the verbs which have the same meaning of the Korean and Japanese is constructed. There are two Japanese complementizers of ‘koto’ and ‘no’ and three Korean complementizers of ‘kes’, ‘-ki’ and ‘-eum’. Since it is generally considered that the Japanese ‘koto’ and ‘no’ are similar to the Korean ‘kes’ by Japanese Korean leaners, they have difficulty in making a noun clause with Korean complementizers ‘-ki’ and ‘-eum’. Making a selection of complementizers depends on the predicate of the matrix sentences. Therefore, the list of complementizers according to the verbs which have the same meaning of the Korean and Japanese will be helpful to both Japanese Korean learners and Korean Japanese learners. This study will make a contribution to the Korean language education for Japanese learners.

      • KCI등재

        한국 근대문학과 중국, 그리고 문학 연구의 동아시아적 지평

        조강석 ( Cho Kangsok ) 국제비교한국학회 2016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4 No.3

        이 논문은 한국 근대문학과 중국의 관계에 대한 논문을 엮은 연구서인 『한국 근대문학과 중국』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논문이다. 한국 근대문학 연구가 보다 깊이 있게 진행되기 위해 일국적 단위의 근대화와 문학 발전에 대한 관심을 넘어설 필요성이 있음은 이미 폭넓게 공유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이런 관심 속에서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과 일본의 근대문학의 관계 양상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져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 근대문학의 전개 양상을 동아시아 단위의 근대화 진행과 근대문학 발전 양상과의 관계 속에서 보다 폭넓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일본 근대문학과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일본의 근대화와 근대문학 발전이 우리의 근대문학 전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지만 사태가 일방향적 전파나 영향력 행사의 차원이 아니라 권역적(regional) 차원에서의 다각적·다중적 상호참조와 영향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면 일본 이외의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한국 근대문학 형성의 맥락은 보다 폭 넓게 설명될 충분한 이유를 지닌다 하겠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동아시아 권역의 근대화 진행과 근대문학 형성의 자장 속에서 상호참조와 영향관계의 맥락 하에 중요한 한 축을 이루게 되는 중국과의 물적·정신적 상호관계에 대한 연구의 의의는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근대문학과 중국』 은 양국의 근대문학 형성 과정을 상호영향 관계 속에서, 그리고 나아가 동아시아적 지평에서 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연구서이다. 이를 위해 이 책의 논자들은 그 출발점에서 연구의 갈래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통일된 입장으로 정리되기 어려운 것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이후 구체적인 방법론이 마련되어야 함을 촉구하는 측면이 있다. 또한 작가의 개인적 체험과 관련된 사실관계 확인이나 수일성의 위계를 전제로 한 영향관계 분석을 넘어서 상호침투, 간섭, 혼종의 양상을 결과가 아니라 조건으로 삼는 방식의 심층적 연구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도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후, 간과되어 온 한 축으로의 관심 확장을 통해 동아시아 근대문학 연구가 새로운 지평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다. This study reviews the book, Modern Korean Literature and China which deals with the corelation between modern korean literature and China. This book suggests the way of viewing modern korean literature through the inter-influences with China. What matters most in East Asian studies is to adapt cross-boundary view. We often regard various cultures as independent substances. Rather, we need to revise the vision of culture and literature in terms of hibridity. The book, Modern Korean Literature and China reflects the outcomes of comparative literature studies viewing each national literatures in East Asia through the terms of East Asian point of view.

      • KCI등재

        디아스포라적 귀향: 『흑나비』와『안나의 유서』가 재현하는 해외입양아와 한국적 디아스포라

        우미성 ( Mi Seong Woo ) 국제비교한국학회 2015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3 No.2

        이 논문은 1970년대에 제작된 두 편의 한국영화 『흑나비』(1974)와 『안나의 유서』(1975)를 통해 한국인들의 디아스포라적 정서를 유추해보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 변장호감독의 미스터리 액션영화인 『흑나비』와 최현민 감독의 멜로드라마 『안나의 유서』는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한국영 사 최초로 성인이 되어 모국을 방문한 해외입양여성을 등장시킴으로써 당시 한국영화가 전쟁고아나 해외입양아를 통해 전쟁에 대한 기억과 달라진 한국의 현실을 어떠한 방식으로 재현하고 소비했는지를 보여준다. 1970년대는 유신시대의 개막과 함께 한국의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시기로 영화산업은 쇠퇴하고 있었지만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과 급속도로 추진되던 근대화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양가적 감정이 포착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일제식민, 한국전쟁, 고도의 근대화시 기를 겪으며 정서적 이산과 이탈을 경험한 한국인들의 ‘사후기억’은 계층적 소외와 이탈을 두려워하는 출신지 지향적, 계층 지향적, 젠더 분리적 정서를 형성한다. 한국인들의 디아스포라적 경험은 영화에 재현된 사회적 소수 자인 해외입양아와 사회주변인으로 전락한 호스테스 여성의 멜로 드라마적 스펙터클에 투영되었고 70년대 한국영화는 한국인들의 집단적 사후기억을 반영하는 기제였음을 알 수 있다. 한민족 중심적이었던 전통적 가치에서 탈피해 글로벌 시민사회로 급격히 변모하는 21세기에 한국이 성숙한 다문화사회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그동안 학술적 연구분야가 아니었던 한 국인들의 디아스포라적 경험과 이산의 정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This paper explores the diasporic experience and sensibility of Koreans represented through international Korean adoptees in two Korean films, namely Black Butterfly (Heungnabi, 1974) by Byeon Jang-ho and Anna’s Will (Anna-ui Yuseo, 1975) by Choe Hyeon-min. These are films that represented international Korean female adult adoptees for the first time in the history of Korean cinema. The issue of international adoption in Korea parallels the compressed modernity of Korea and Koreans’ changing social and cultural awareness of kinship and ethnic identity. The paper analyzes the representational mode of adult female adoptees returning from their Western adoptive countries to find out about their roots, which began to emerge in South Korean cinema in the 1970s, and discusses the unique features of diasporic sensibility developed in a Korean context. In both films, the international adoptee returnee serves as a cultural marker and political device for the military regime’s rigid censorship and propaganda to present the nation’s fast recovery from the traumatic war and unprecedentedly rapid economic development on silver screen. The diasporic sensibility of displacement represented through international Korean adoptees functioned as a consolation for the collective postmemory of the South Korean spectators as the diasporic subject, thus, prevented the audience from seeing the material and ontological condition of international Korean adoptees.

      • KCI등재

        일반논문 : 박인환 시에 나타난 언어적 불안과 부끄러움-한국전쟁을 중심으로

        여태천 ( Tae Chon Yeo ) 국제비교한국학회 2014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2 No.2

        이 논문은 한국전쟁 동안 박인환이 겪었던 정신적 고통의 양상이 언어적차원에서 어떻게 드러났는가를 시적 주체의 불안과 부끄러움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현실참여적인 시에서 센티멘털에 가까운 시로의 변화 계기에 대하여 많은 연구자들이 한국전쟁의 비극적 체험을 중요한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을 만큼, 한국전쟁이라는 사건은 박인환의 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한국전쟁 전후에 박인환이 사용한 언어는 환멸과 우울의정서를 담고 있으며, 다른 시인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그만의 특별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에는 멜랑콜리를 환기하면서 감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언어들을 더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는 한국전쟁 동안 박인환이 언어를 그 이전과 어떻게 다르게 운용하고, 그 언어에 의해 어떤 이미지가 돌발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는가를 세밀하게 고찰하고 있지 않다. 박인환은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 속에서 시와 산문을 통해 전쟁이라는 특별한 사건을 어떤 식으로든 증언했다. 이 논문에서는 한국전쟁 동안 발표된 시와 산문을 중심으로 그 이후의 시가 보여주는 변화의 원인을 시적 주체가 느끼는 부끄러움에서 찾고자 했다. 한국전쟁동안 박인환 시에 나타난 언어적 변화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분석함으로써, 그의 시에 대한 합당한 평가를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In this paper take a look through how the emotional distress that Park In-hwanhas suffered, visualized level of the linguistic aspects, focused on the anxietyand shame of the poetic subject during The Korean War. His poems is changedfrom a participatory one thing to be sentimental. Many researchers think TheKorean War is a significant cause of the tragic experience. Therefore The KoreanWar is the key to understanding Park In-hwan’ poetry. The Korean War andafter, Park In-hwan used the language to contain the emotion of disillusionmentand depression. He has his own unique voice could not be seen from anotherpoet. Especially after The Korean War, Park In-hwan used a lot of languagewhich showing the melancholy and sentimental images. However, previousstudies have not closely investigated how Park In-hwan operated the languagedifferently from the past and why the image was accidentally been shaped bythat language. Any way, Park In-hwan testified The Korean War was a specialcase through poems and prose in the context of war. In this paper was lookingat the reason for the change of poetry after that is to feel shame poetic subjectthrough poems and prose published in The Korean War. In this paper haveanalyzed and confirmed the linguistic variation of Park In-hwan’ poems whileThe Korean War. This study will help make a reasonable assessment of ParkIn-hwan’ poetry.

      • KCI등재

        특집논문 :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의 아리랑 논의에 대한 분석적 고찰

        김승우 ( Seung U Kim ) 국제비교한국학회 2012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0 No.2

        본고는, 19세기 말-20세기 초에 국내에서 활동했던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訖法, 轄甫)[1863-1949]가 아리랑에 관해 남긴 기록을 정교하게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주요 논의 내용을 항목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헐버트는 한국문학의 전반적인 특징을 고유성과 보편성이라는 두 지표로 파악하였고, 특히 한국시가는 순수한 표현과 격정적인 서정이 주조를 이룬다고 보았다. 한국시가의 이러한 특질을 헐버트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였지만, 개별 작품을 거론할 때에는 본래의 단형 시가를 일정 정도 장형화 또는 서사화된 형태로 변형하여 번역하거나 소개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그 같은 방식은 아리랑을 다루는 문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헐버트는 한국의 민요 텍스트에 내재된 시적 의미가 항상 복합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아리랑과 같은 작품에 접근할 때에는 예사 이상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제하였다. 그의 설명을 바탕으로 19세기 말 아리랑의 향유 양상을 추적하면, 적어도 1883년 이전의 어느 시점부터 아리랑이 사람들 사이에 점차 확산되던 추세에 있었고 그것이 1883년을 기점으로 대중들의 애호를 받기 시작하였으며, 1896년 무렵 이후부터는 시정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정리된다. 한편, 헐버트가 한국에 체류했던 1880-90년대에 들어서면 ``아리랑``의 본래 어의가 이미 희석되었던 사정도 드러난다. 헐버트는 아리랑의 후창 부분 가운데 ``□ □어라``라는 관습구에 집중하여 후창 전체의 의미를 풀이하였다. 즉, 한국의 노래는 고전적 양식과 대중적 양식을 막론하고 유흥이 중요한 축으로 작용하며, 술은 물론 뱃놀이와 같은 다소 이색적 놀이문화조차 유흥의 상징으로서 아리랑의 관습구에 개재된 것이라 분석하였다. 관습화된 후창과는 달리 선창에 해당하는 부분은 그 변이가 매우 다양해서 어떠한 내용이든 담아낼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헐버트는 무한정 확장되는 아리랑의 수많은 연들이 의미상 일정 정도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들을 엮어서 따로 일관된 서사를 추출해 내기는 어렵다고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헐버트는 아리랑이 한편으로는 세계인의 정서와 상상력을 모두 감싸 안는 보편적 성격을 지니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인의 삶과 감수성을 깊이 있게 체현해 내기도 한다고 결론지었다. 더 나아가 인간의 보편적 감성이란 어느 곳에서나 일치된다는 긍정적 세계인식을 아리랑에 대한 분석을 통해 도출해 내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가 한국문학 전반의 성격을 고유성과 보편성의 양대 자질로 파악하는 구도를 정립하는 데에도 아리랑이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This paper aims to look at the American missionary, Homer B. Hulbert`s writing on Arirang in the Korean Repository in 1896. Hulbert concluded that Korean literature had two main characteristics: uniqueness and generality. Korean poetry is not only much shorter and simpler compared to Western poetry but it is also dominated by passion. In spite of his affirmative view of such features, he refused to translate Korean short poems or songs literally into English language. Instead, Hulbert usually attempted to present them as if they originally had certain narrations and plots; consequently, song of Arirang was also introduced to the Western world partly by such way through his writing. Hulbert thought that the text of Korean folksongs always had compound meanings of which foreign observers had to take notice. According to him, Arirang, which could represent the whole Korean folksongs at that time, started to capture the public fancy in about 1883 and won popularity until 1896. However, he finally could not reveal the significance of the word ``Arirang`` because it had already been forgot by 1880s and 1890s when he stayed in Korea. Hulbert interpreted the whole meaning of the chorus of Arirang focusing on its habitual verse "Launch the Boat." He presumed that pleasure and amusement were the main interests of Korean songs, regardless of classical and popular, so the boating excursion as well as drinking composed the notable part of the chorus as the symbol of recreation. While the chorus was fixed, the leading dictions could include almost any contents in them and also were relatively independent from one another. Hulbert concluded that Arirang was universal enough to cover every human feeling or imagination and that the song was so unique that it could fully express Korean life and emotion at the same time. Moreover, from his review of Arirang, Hulbert derived a positive conviction that human nature`s thinking is fundamentally the same all around the world. Accordingly, we can assume the following: Arirang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sources to make him believe that uniqueness and generality were the two main characteristics of Korean literature.

      • KCI등재

        1990년대 한국영화와 2차 대전 종전 후 프랑스영화의 재정비 비교 - 국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수원 국제비교한국학회 2020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8 No.2

        Cette étude porte sur l’essor de la scène cinématographique en Corée dans les années 1990 et en France au lendemain de la Seconde Guerre Mondiale. Nous avons pris comme hypothèse que les principaux moteurs de cet essor en Corée étaient sous influence française. En effet, les institutions et la politique cinématographique coréennes se sont inspirées de la France, mais en Corée ce sont les cinéphiles qui ont pris l’initiative de cette renaissance; en France l’initiative de l’Etat se révélait significative. En témoignent la comparaison de quelques moteurs principaux, soit la création d’un établissement public et d’un 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 et le mouvement cinéphilique(critique et cinémathèque). L’écart entre les deux pays provient de la différence du statut du cinema et des contextes historico-politiques. Si le cinema a fait l’objet du soutien constant en France indépendemment de l’alternance du pouvoir, il n’a jamais été une priorité étatique en Corée; les milieux du cinéma coréen ont plutôt entretenu des rapports de tension avec le pouvoir. Avec le temps, les cinéphiles ont adapté le savoir faire acquis à la situation sur place, en s’orientant vers d’autres références que la France. D’autre part, les rapports distants avec l’Etat les a conduits à demander le soutien des collectivités régionales. Il en faudrait une meilleure conscience de l’intérêt public et de la non-intervention par les collectivités régionales ainsi que l’esprit d’ouverture de la cinéphilie coréenne, ceci pour maintenir l’équilibre entre la localité et l’internationalité. 1990년대 한국영화와 2차 대전 종전 후 프랑스영화의 재정비기는 근 50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유사성을 보인다. 본고에서는 19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룬 토대들이 프랑스영화와 영화정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가정하에 정책 기관과 국제 영화제의 출범, 시네필문화의 본격화에서 나타나는 양국 간 연결고리들을고찰하였다. 그 결과 한국 시네필문화와 영화정책이 프랑스가 선구적으로 닦아놓은길을 참조했으나, 토착화 및 시대 변화에 따라 고유의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국가 주도의 재정지원이나 시스템 구축이 돋보이는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서는 시네필들이 영화의 장을 주도했다는 것도 두드러지는 변별점이다. 이는 프랑스에서 영화가 국가적 사안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며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지속적지원의 대상이었던 반면 한국 시네필문화는 정권과 긴장관계 속에 존속해 왔다는 영화적 전통과 정치․역사적 상황의 차이에 기인한다. 양국 영화 중흥기의 비교에서드러난 국가와의 관계 맺기의 차이는 오늘날 한국의 경우 지자체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현실임을 확인시켜준다. 지자체의 불간섭 원칙과 공공성에 대한 인식 제고는 물론, 시네필문화의 대중화로써 영화문화가 지역성과 세계성 사이에서 균형을 꾀해야 할 이유이다.

      • KCI등재

        디지털 정보기술을 활용한 근대한국학 연구의 성과와 한계 ― 디지털 인문학과 근대한국학-디지털의 눈으로 한국학을 읽다에 대한 서평

        선민서 국제비교한국학회 2022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30 No.1

        본고에서는 한국학 분야에서 디지털 인문학 연구 방법론을 통해 괄목할 만한 성취 를 거두어온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의 디지털 인문학과 근대한국학을 통해 최 근의 디지털 인문학의 성과와 한계를 가늠해보고자 했다. 본서에 구현된 디지털 정보 기술을 통한 근대한국학 연구의 성과로 첫째, 근대한국학 하위 개념의 해체와 재구 축, 둘째, 근대한국학 연구 영역의 확장 가능성 시사, 셋째, 디지털 정보기술의 적용 가능성 확대를 찾을 수 있었다. 반면에 디지털 정보기술을 통한 근대한국학 연구의 한계로 디지털 정보기술의 미발달에 따른 이른바 ‘분석 불가능한 데이터의 문제’가 나타났다. 또한 인문학적 해석의 불충분에 따른 한계로 즉 ‘과잉 해석되거나 방치된 데이터’의 문제를 찾을 수 있었다. 향후 디지털 정보기술을 발달시키고 단기간에 연 구 성과를 제출해야만 하는 강압적인 연구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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