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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箴銘類 산문의 전통과 『古鏡重磨方』

        김윤조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2019 大東漢文學 Vol.59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This is a study on the genre called Jammyung-ryu which is classified as one of the Korean Classic Literature in Prose. The author examined specific aspect of Jammyung-ryu accumulated in ‘th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focusing on ‘the series of Korean literature works’ published by ‘the Institute for the Traditional Classics of Korea’. In particular, the author investigated what was adopted as the material of the work. If you search ‘the series of Korean literature Works’, there are little Jam and Myung or Jammyung in contents. Most writers and scholars left their work. With regard to the development of Jammyung-ryu in Sino-Korean Literature, the 『Gogyeng jungma bang』 of Tuegae Leewhuang is remarkable. It is based on the achievements of the creation of Jammyung-ryu accumulated before Tuegae, and it is the work that followed the creation of Jammyung-ryu. After Tuegae, sequels were produced by Jichon Lee Heejo in the early 18th, Gyeongam Jo Yeongui in the late 18th, and Park Jaehyeong in the late 19th century. Tuegae's 『Gogyeng jungma bang』 was used as an important teaching material in the study group where the king and his servants joined together during the Yeongjo and Jeongjo periods. This paper has two concerns. One is that what changs Jammyung-ryu prose has over the long period of time from Koryô to the end of Joseon, in terms of material, theme, passage of works or operation of the work, and the other is what role did 『Gogyeng jungma bang』 play in the development of Jammyung-ryu. 본고는 한문 산문의 하나로 분류되는 잠명류에 대한 연구다. 잠명류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흔히 접할 수 있지만, 한국 한문학사에 축적된 작품의 양상을 살펴서 그 실상을 파악하기는 아직 해명되지 못한 과제로 남아 있다. 필자는 한국고전번역원이 간행한 한국문집총간을 중심으로, 한국 한문학사에 축적된 箴銘類 작품의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을 검색해보면 편차에 箴이나 銘 또는 箴銘이 없는 문집은 드물다. 문인 학자 대부분이 작품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잠명류의 속성상 그 소재가 중요하므로, 필자는 작품의 소재로 무엇이 많이 채택되었는지를 우선 조사하고, 시대별 추이를 도출하고자 하였다. 한국 한문학에서 잠명류의 발전과 관련하여, 최초의 잠명류 작품 選集인 퇴계 이황의 『古鏡重磨方』은 주목할 만하다. 중국 작품을 수록하고 있지만, 이후 잠명류 창작을 추동한 저작이다. 퇴계 이후 18세기 초반에 芝村 李喜朝, 18세기 후반에 敬菴 趙衍龜, 19세기 후반에 朴在馨은 각각 속편을 편찬하였다. 퇴계의 『고경중마방』은 영조와 정조조에는 경연에서도 요긴한 교재로 쓰였다. 본고의 관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잠명이 고려부터 조선 말기까지 긴 시간에 걸쳐 소재와 주제, 작품의 구절이나 운자의 운용에서 어떤 특징과 변화를 보이느냐, 다른 하나는 잠명류 작품의 전개에서 『고경중마방』이 어떤 역할을 했느냐이다.

      • KCI등재후보

        泰東古典硏究所와 民族文化推進會國譯硏修院의 漢文敎育과 그 意義泰東古典硏究所와 民族文化推進會 國譯硏修院의 漢文敎育과 그 意義 (김인철)大東漢文學 (第二十二輯)

        김인철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2005 大東漢文學 Vol.22 No.-

        The TAEDONG Center for Eastern Classics HALLYM University(泰東古典硏究所) and Korean Classics Research Institute(民族文化推進會 國譯硏修院) are professional Chinese composition education institutions that focus on helping trainees to have accurate interpreting ability in reading Eastern classics written in Chinese characters. It is possible to estimate these two institutions’importance in Chinese composition education field just for the fact that they have been teaching Chinese composition for more than 30 years constantly. Contrary to the importance of them, there has been no formal study reported to academic world on actual curriculum or transfiguration of those institutions. Considering the situation, the author tried to provide the history of curriculum and actual state of the two institutions through this paper as simply as possible. Also, this paper defined that the two institutions have significance in Chinese composition education for their fundamental driving force in creative succession and modernization of native culture through systematic education on Confucianism and the main Eastern scriptures. 泰東古典硏究所와 民族文化推進會 國譯硏修院은 모두 연수원들에게 漢字로 된 東洋 古典의 정확한 解讀能力을 保有케 하기 위해 중점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전문적인 한문 교육기관이다. 30여년 이상 변함없이 한문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일단 두 기관이 한문교육과 관련해 갖는 사회적 중요성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지금까지 두 기관이 행하고 있는 교육과정의 실제나 변모양상 등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한 점에서 필자는 본고를 통해 양 기관이 지금까지 수행해왔던 교육과정의 역사와 실상을 가능한 한 간명하게 제시하고자하였다. 그리고 두 기관이 한문교육에 대해 갖는 의의를 儒學 및 東洋의 주요 경전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민족문화의 창조적 계승과 현재화를 위한 根源的인 推動力으로서의 역할에 있다고 규정하였다.

      • KCI등재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한문교과 변화의 필요성과 과제

        허철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2022 大東漢文學 Vol.71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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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is intended to examine the new normal education triggered by COVID-19 in connection with the direction and future skills of education during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and to discuss the form of HanMun(漢文) subject and textbooks. The education required by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has a completely different goal from the education formed after modern times. If pre-modern education was education to foster a few elites, or vocational education based on ones demand, modern education had the goal of “cultivating quality labor” or “normal ability to acquire above-average knowledge and to perform production and consumption at the same time.” On the other hand, the human beings required by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are “human beings who can lead to changes in society through individual roles with the capabilities necessary for self-directed recognition, identification, and resolution of various problems in reality.” HanMun(漢文) education is liberal arts education, and it refers to an act that seeks and inherits the educational values and ideals necessary for the society and becomes the driving force for future development along with the identity of society. And society has changed again and is demanding a new form of education, centered on and tailored to learners. To respond to these demands, this paper discussed future HanMun(漢文) subject research from three perspectives: fierce debate on the direction of future human resources education aimed at HanMun(漢文) subject, transition to consumer-centered customized education, and choice and concentration in the composition and content of HanMun(漢文) subject. 본고는 코로나19로 인해 촉발되고 있는 뉴노멀 교육을 4차 산업혁명기 교육의 지향과 인재상과 연결하여 살펴보고, 한문 교과가 지향해야 할 태도에 대해 논의하였다.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교육은 근대 이후 형성된 교육과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근대 이전의 교육이 소수의 엘리트 양성을 위한 교육, 혹은 자발적 수요에 의한 직업 교육이었다면, 근대기 형성된 교육은 “질 좋은 노동력” 혹은 “평균 이상의 지식을 습득하고 사회에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보통 능력과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구성원을 양성”하는 목표를 지니고 있었다. 반면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인간은 “자기주도적으로 현실의 다양한 문제를 인식하고 파악하며 해결하는 과정에 필요한 역량을 지녀, 개인의 역할을 통해 사회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인간형”이다. 곧 우리 사회는 보통교육이면서도 학습자를 중심과 맞춤이라는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한문 교과가 지향할 미래 인재 교육의 방향에 대한 치열한 논쟁, 수요자 중심 맞춤형 교육으로의 전환, 한문 교과의 과목 구성과 내용 구성에 있어 선택과 집중의 세 가지 관점에서 미래 한문 교과의 변화 지향을 논하였다.

      • KCI등재

        북한의 한문교과서 연구-김정은 시대의 현행 교과서를 중심으로-

        진재교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2018 大東漢文學 Vol.55 No.-

        This paper studies Classical Chinese textbook in Kim Jong Un era. The current Classical Chinese textbook was reissued after Kim Jong Un regime of North Korea. The current education system of Classical Chinese in North Korea reduced to three-year course from six-year course, and Classical Chinese textbook was also reduced compared to the same time last year. Composition and content of Classical Chinese textbook changed, and the whole quantity was also diminished in quantity than before. Learning content and Classical Chinese began to lessen. However, textbook’s system and method of organization is systematic and unificative, and it also aims at textbooks of self-directed learning. Also to make up for the lost time and contents, text books were placed learning elements and new words. It is one of the biggest benefits of Classical Chinese textbook in North Korea, and it is also a great step forward in method of organization. It is a unique feature to arouse learner interest utilizing various medias. 이 논문은 김정은 시대의 한문교과서를 분석한 것이다. 현행 북한의 한문교과서는 김정은 정권 등장 이후 새로 간행된 것이다. 현재 북한의 한문교육은 중등학교에서 배우는 年限을 반으로 줄여 6년에서 3년으로 축소하고, 한문교과서 역시 전 시기에 비해 대폭 축소시켰다. 한문교과서의 구성과 내용 역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전체 분량 역시 전에 비해 줄어들었다. 과수는 물론 학습할 내용과 학습 한자도 줄었다. 하지만 교과서의 체제와 구성 방식은 체계적이고 통일성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주도형 교과서를 지향하고 있다. 또한 교과서에 다양한 학습 요소를 배치하여 새로 배울 한자를 배치함으로써 줄어든 시간과 내용을 보완하고 있다. 이는 현행 북한 한문교과서의 최대 장점이자, 전 시기의 교과서와 비교하면 진일보한 구성 방식인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학습자의 흥미를 유도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은 예전에 볼 수 없던 특색이자 장점이다. 하지만 한자교육을 위주로 단원을 구성한 것이나, 단원의 내용 또한 북한 체제 선전을 제시한 것에서는 전 시기와 동일하다. 이는 북한이 추구하는 한문교육의 방향과도 무관한 글감이거니와, 주로 사회주의 체제선전과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우상화와 체제를 선전하는 내용을 강조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북한이 추구하는 한문교육의 방향과도 엇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 KCI등재

        신발굴 秋史 金正喜 燕行資料 三種의 의미

        박철상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2020 大東漢文學 Vol.62 No.-

        김정희는 燕行을 통해 北學의 기반을 닦았지만, 그의 연행에 관한 자료는 많지 않다. 자신이 연행록을 남기지 않은 탓도 있지만, 당시 만난 청나라 문사들의 기록 속에서도 김정희 관련 정보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김정희가 귀국 당시에 남긴 시를 통해 그의 연경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전 연구에서는 시 속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못했다. 필자는 이중에서 阮元과 朱寉年에 대해 언급한 김정희의 詩句에 주목하였다. 이 시구의 이미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김정희의 筆談 자료를 통해 김정희가 연행 당시에 완원의 초상화에 제지를 남겼다는 사실과 그 내용을 처음 소개하였다. 김정희가 題識를 쓴 완원 초상화의 실체는 확인 할 수 없지만, 김정희 연경 활동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주학년이 그린 <祭硯圖>에 남긴 김정희의 拜觀記를 처음으로 소개하였다. 이를 통해 김정희가 연행 이전에 이미 서울에서 결성한 勾竹會 모임에서 주학년의 <勾竹圖>를 감상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김정희는 이와 관련하여 ‘勾菴’이란 호를 사용하기도 하였고, 그의 서재를 ‘勾竹室’이라 부르기도 한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 Kim Jeonghui(金正喜) has laid the foundation for Qing Dynasty Studies and Art through his travel to Yanjing(燕京), but there is not much data on his travel. It is partly because he did not leave a travel record, but there is little information about Kim Jeonghui in the records of the Qing(淸) Dynasty writers he met at the time. Fortunately, the poem Kim Jeonghui left on his way back to Joseon gave a clue to his life in Yanjing. I noted the phrase that Kim Jeonghui mentioned in the poem about Ruan Yuan(阮元) and Zhu Henian(朱寉年).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this poem, I first reviewed the written conversation left by Kim Jeonghui and the writers of the Qing Dynasty. As a result, I found out for the first time that Kim Jeonghui left a record in Ruan Yuan's portrait during the travel, and I introduced the contents as well. Although it is not possible to see the actual images of the Ruan Yuan portrait that Kim Jeonghui left a record, we were able to see some of Kim Jeonghui's Yanjing activities. Next, I introduced appreciation record(拜觀記) left by Kim Jeonghui on <Jiyantu(祭硯圖)>, which was painted by Zhu Henian. It was confirmed that Kim Jeonghui appreciated the “Gouzhutu(勾竹圖)” of Zhu Henian at an association meeting already formed in Seoul before his travel to Yanjing. I also newly discovered that Kim Jeonghui used the nickname ‘GuAm(勾菴)’ and called his study ‘GuJukSil(勾竹室)’ in this conn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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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사회변동과 한국 한문학 연구의 방향

        안대회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2009 大東漢文學 Vol.31 No.-

        This paper aims to search for the orientation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Research according to the social change in the Twenty- first Century. First of all, I analyze the function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as an independent academic department, though its status is flexible in changing environments. Secondly, I suggest that Korean Chinese Literature should satisfy the various demands for the texts in Chinese from the other areas of humanities as well as carry out its own research in Chinese literature, while participating in diverse interpretations of traditional culture. Thirdly, Korean Chinese Literature needs to promote the international research activities by using the ability of understanding materials in Chinese as one of international written language. Based on these arguments, I present the orientation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research in three parts. The first is that the research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as an academic system and learning should be more strengthened. The second is that the researchers who have a sufficient base for leading Korean Chinese Literature should be constantly produced. The third is that the research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should pay attentions to a variety of spheres over the narrow boundary of department learning and procure a global perspective. 본고는 21세기 사회변동에 따른 한국 한문학 연구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목적이다. 먼저 21세기 사회변동에 따른 한국 한문학의 위상이 가변적이기는 하나 여전히 독립된 학문으로서 기능을 할 것인지 분석했다. 다음으로 인문학의 한 분야로서 한문학이 한문학 고유의 연구를 진행함과 동시에 다양한 인문학의 한문 텍스트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고, 전통문화의 다양한 해석에도 동참하는 일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로 한국 한문학이 국제적으로 널리 연구되고 한문학자가 국제적 문어인 한문에 대한 장악력을 이용하여 국제적 연구활동을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21세기 한국 한문학의 연구방향을 세 가지로 모색했다. 먼저 제도와 학문으로서 한문학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밝혔다. 신생 학문으로서 한국 한문학이 기초에 충실하고 필요한 연구자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다음으로 분과학문의 좁은 한계를 넘어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촉발할 것과 국제적 시야를 확보해야 함을 강조했다.

      • KCI등재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교육과정의 분석-1974~2017, 44년간 개설과목을 중심으로-

        남지만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2018 大東漢文學 Vol.55 No.-

        In this paper, we classify the curriculum of the educational course of the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as follows. (1)The first period 1974~1985: Education that had the function of reeducation for the Hanhak students(Classical Chinese generation students) and the translation-oriented education (2)The second period From 1986 to 2007: Replay of the Sodang-style (old Korean tradional school) education through the operation of the classical Chinese sentence parsing course (3)The third period 2008 ~ present: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the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the reflection on the education based on the classical Chinese sentence parsing course and the interest in the translation education increased In the first period, there was an emphasis on encouraging existing Hanhak students(Classical Chinese generation students) to advance their research skills and translating into Korean. In the second period, as the number of Hanhak students decreased, Quantity of the classical Chinese sentence parsing courses encreased. In the thirdperiod, the point of education was to strengthen the translation education. The overall trend seems to be that the contents of education have changed passively according to the characteristics of the students, rather than preemptively responding to changes. In terms of human resources, it was aimed at talented people with research ability and translation ability at the beginning of the institute. However, since the 1990s, the curriculum has been rather regressive in terms of training functional translation workers. In order to improve this, besides the traditional ‘Munri’ (interpreting ability of Chinese sentence) education, it is necessary to supplement the education of knowledge and research capability. The current curriculum of the institute is divided into a short term intensive learning course and a maximum of 2 years. The research course is operated by a 2 year deepening course, The process of training classical translators should be shortened to four years. It is advisable that further proficiency is obtained through a separate graduate course. 본고에서는 고전번역교육원의 교육과정을 개설과목을 중심으로 분석하여 다음과 같이 시기를 구분하였다. (1)제 1기 1974년~1985년:한학세대 재교육 및 연구・번역 중심의 교육(2)제 2기 1986년~2007년:한문 구문해석과목 중심의 서당식 교육 재연(3)제 3기 2008년~현재:한국고전번역원 설립 이후 구문해석 위주 교육에 대한 반성과 번역 실무교육에 대한 관심 증가 제 1기에는 교육의 목표가 기존 한학출신자들에게 한글 번역 원고 작성을 교육하고 연구능력을 함양하여 역자로 양성하는 데 있었다. 2기에는 한학출신자들이 감소하여 입학생들의 한문능력이 저하되자 한문 문리를 교육하기 위해 한문 구문해석 과목이 증가하여 한문 어학교육의 특성이 강화되었다. 3기에는 한국고전번역원의 설립과 더불어 정책적인 관점에서 교과목의 조정이 이루어졌다. 한문 구문해석과목과 역사과목, 법제, 사상 등 전체 교과목의 균형을 중시하고, 번역실무교육을 강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44년간의 개설과목에서 나타나는 흐름을 보면 환경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입학생의 특성에 따라 교육내용이 수동적으로 변화한 측면이 있다. 인재상의 측면에서 보면 교육원 설립 초기에는 연구능력과 번역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이후 교육과정은 한문 구문해석능력 습득에 치중하여 연구측면에서는 오히려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기존의 ‘문리’(한문구문해석력) 교육 이외에도, 문장력과 지식 및 연구역량 측면의 교육이 보충되어야 할 것이다.

      • KCI등재

        윤훤의 <萊州雜詠>에 묘사된 17세기 초의 부산 동래

        이상봉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2022 大東漢文學 Vol.71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글은 동래부사 尹暄(1573~1627)이 남긴 <萊州雜詠> 17수를 통해 17세기 초 부산 동래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정포는 <동래잡시>에서 부산 동래 지역의 순박한 풍속과 경관을 비롯해서 최치원으로 대표되는 神仙鄕의 모습, 홍간(?~1304)・周令 등 이 지역의 앞선 관료들에 대해 언급했다. 또 당시 유명했던 정자와 온천에 대해서 묘사하기도 했다. 20여년 뒤 정추는 일반적인 동래의 풍경보다는 신선향의 모습에 더욱 주목했고 古人들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윤훤은 앞선 두 작품과는 달리 각각의 소제목에 따라 17수의 7언 절구를 지었다. 해운대와 소하정 등 앞선 작품들과 공통되는 제재를 선택하기도 했지만 장산국・효자옥종손・정문도묘 등 새로운 제재를 발굴하기도 했다. 그 밖에 자신이 별관을 지은 후 그것을 제재로 시를 짓기도 했고 송공사를 지어 송상현을 추모하면서 그에 관한 시를 짓기도 했다. 필자는 윤훤의 작품을 앞선 두 작품과 비교하면서 세 가지에 주목할 수 있었다. 첫째는 <대마도>와 <송공사>에 나타난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전몰 선현들에 대한 추모의 마음이고, 둘째는 효의 중요성이 높아진 것이며, 셋째는 입신양명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다. 임진왜란은 신선의 고장인 동래에 까지도 전쟁의 상흔을 남겼고, 백성들이 충신・열녀・효자가 되길 바랐던 조선왕조의 의도는 윤훤의 시대에 와서 궁벽한 동래지역에까지 침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쉽게도 15세기와 16세기 동래의 전반적인 모습을 묘사한 작품은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도 단편적인 작품들은 남아있으므로 그런 작품들을 시기별로 모아서 살펴본다면 15세기와 16세기 뿐 만 아니라 18세기와 19세기 동래의 모습을 재구성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연구가 계속 진행된다면 14세기 이후 한시에 묘사된 부산 동래의 변화양상을 통시적으로 조망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examine the appearance of Dongnae in Busan in the early 17th century through the 17 works of <Naejujab-yeong(萊州雜詠)> left by Dongnae Magistrate Yun Hwon(1573~1627). In <Dongnaejabsi(東萊雜詩)>, Jeongpo described the simple customs and scenery of the Dongnae region of Busan and the appearance of Sinseonhyang(神仙鄕-Taoist village) represented by Choi Chi-won. He also mentioned Honggan(?~1304) and Ju-lyeong(周令), the leading bureaucrats in this region. He also described the famous pavilions(亭子) and hot springs at the time. About 20 years later, Jeong Chu(鄭樞) paid more attention to the appearance of Sinseonhyang(神仙鄕) rather than the general landscape of Dongnae, and was ashamed of himself for not reaching the ancient sages. Unlike the previous two works, Yun Hwon(尹暄) created 17 works of 7words poems according to each sub-title. Although he chose the same sanctions as his previous works such as Haeundae and Sohajeong, he also discovered new sanctions such as Jang San-guk(萇山國), Ok Jong-son(玉從孫), the filial son and the tombstone of Jeong Mun-do(鄭文道). Other than that, after he built the annex(別館), he wrote a poem using it as a material, and he built Songgongsa(宋公祠) to commemorate Song Sang-hyeon(宋象賢) and write a poem about him. Comparing Yun Hwon(尹暄)'s works with the previous two works, I was able to note three things. The first is the heart of remembrance of the war dead and the hostility toward Japan shown in <Tamashima> and <Songgongsa>. The second is an emphasis on filial piety, and the third is a social atmosphere that pursues achieve fame and prestig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left the scars of war even in Dongnae, the hometown of Sinseon(神仙) and we can see that the intention of the Joseon Dynasty, which wanted the people to become loyal servants, filial daughters, and filial sons, penetrated into the remote Dongrae area in the era of Yun Hwon(尹暄). Unfortunately, I could not find any works depicting the overall appearance of Dongnae in the 15th and 16th centuries. However, fragmentary works remain even in that period, so if you collect and examine such works by period, you can reconstruct the appearance of Dongrae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as well as in the 15th and 16th centuries. If this study continues, it is expected that it will be possible to view the changes in Busan Dongnae described in Korean poetry written in Chinese characters since the 14th century in a diachronic manner.

      • KCI등재후보

        김정희 예술론-그 지적 기원과 체계에 관하여

        정혜린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2006 大東漢文學 Vol.25 No.-

        20세기 이전 중국과 조선의 문인들에게는 자연으로부터 학문과 윤리, 예술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세계관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들의 예술론은 시, 서, 화가 공유하는 미 이념과 창작론 그리고 이 공유 영역과 학문, 자연의 관계 속에서 성립된다. 물론 그들 모두가 문예론, 서예론, 화론 각 분야에서 우주의 총체성을 이론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조선 19세기에서 활동한 金正喜의 예술론은 적어도 20세기 이전 중국과 조선의 최신의 학문 방법과 이론을 절충하여 문예와 회화, 서예 각 장르의 이론에 동일한 이념과 체계를 부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희는 예술과 도는 상호 필수적인 관계(文道相須)에 있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 그가 말하는 도는 송대 성리학의 관념성을 극복한 선진의 도를 내용으로 한다. 그는 당시 청대 고증학 중 揚州學派와 常州學派를 중심으로 한 漢宋折衷論에 관심을 집중하고 先秦 사상에 내재한 義를 예학, 역사학, 지리학, 역학 등의 분야에서 최신의 고증학적 방법론을 통해 탐색하고자 했다. 송대 성리학적 사유방식을 한송절충론을 통해 극복하는 방법론은 예술론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문장론에서 그는 청대 동성파의 방포와 요내가 작가의 인격수양과 학문이라는 창작의 전제조건, 유가적 문풍(風雅)과 교화의 기능 그리고 이러한 도를 중심으로 한 언표가능한 영역과 그 너머 도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언표불가능한 영역 간의 조화를 제시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김정희의 시론은 신운설과 성령설을 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운은 언표가능한 지적 감각적 영역 너머에(言外之意, 味外之味) 있는 시의 중요한 요소로서 명대 王士禎에 의해 부각되었다. 김정희는 신운은 언표가능한 理와 實의 영역과 조화되어야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學詩의 측면에서 명대 왕사정의 신운시와 언표가능한 영역이 명료한 주이존의 시를 보완하여 학습할 것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이들 양자를 포함해 왕유와 두보 이하 송, 원, 명의 모범적인 시인들로 구성된 정통시인의 계보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학습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상의 특징은 청대 시론 중 그가 높이 평가한 翁方剛의 肌理說만이 공유한다. 그런데 실제 시인들에 대한 평가에서 명료히 드러나듯이 김정희는 옹방강보다 언표불가능한 영역을 강력히 옹호했다. 그는 옹방강과 왕사정의 견해를 절충하여 언표불가능한 영역을 지나치게 주목하는 조선의 신운시풍을 보완하고자 한 것이다. 한편 신운설이 작품의 미에 관한 논의라면 성령설은 예술 고유의 영역과 윤리를 아우르는 작가의 창조력에 관한 논의이다. 김정희는 청대 袁枚의 性靈 개념을 수용하지만 그 윤리적 방만함을 비판하면서 격조로써 성령을 규제할 것을 주장했다. 방만하게 돌출된 개성(鬼怪)은 격조를 통해 미적으로도 세련되고(工) 윤리적으로도 올바르게(正) 순화되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희는 원매의 예술적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그 도덕적 방만함 때문에 그를 정통시인의 계보에서 제외했다. 이는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되 禮로써 규제하는 것을 도의 실현으로 파악하는 그의 경학관을 염두에 둘 때 당연한 평가라고 보인다. 화론에서 김정희는 명대 후기 董其昌의 화론에 기반하여 역시 정통 유가 사대부 예술의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양자는 자신의 시대의 회화가 통속화되는 경향을 저지하고 士人 문화의 정 ... This essay deals with Gim Jeong-hui’s art theory, whose influence was overwhelming on both the practice and theory of art in the first half of the 19th-century Joseon. He gave a common idea and theoretical system to the literary, painting and calligraphy theories on the traditional thinking that all the natural and cultural phenomena including art are from the One, Dao 道. So I investigated all the three genres of his art theory instead of choosing a certain one as previous studies did. Gim insists the art and Dao are interdependent on each other. Here ‘Dao’ means that of pre-Qin 先秦, not of Song’s idealism. He investigated pre- Qin’s yi 義 following the latest trend in Qing’s academy, i.e. so-called eclecticism between Han and Song, combining bibliographical method of Han’s academy and idealistic moralism of Song’s one. Especially he was much concerned about two schools, Yangzhou (揚州) and Changzhou (常州), which were representative of the 19th-century Chinese scholarship. Of course, he also overcame Song’s idealism in art theory. Gim Jeong-hui’s poetics can be divided into shenyun and xingling theories. The former means the unmentionable beauty. He thought that xingling should keep harmony with the mentionable such as morality or scholarship, and appraised the Ming poet Wang Shi-zhen 王士禎 to achieve the harmony of the two kinds or areas of beauty above. Gim suggested orthodox lineage of poets consisting of those who distinguished themselves in at least one of the two areas of beauty. Kinds of theses composing Gim’s poetics also exist only in poetics of Weng Fang-kang 翁方剛. However, Gim thought more of the unmentionable area of beauty than Weng did. The end of Gim’s poetics seems to combine Wang and Weng’s theories. Xingling, the other important concept of Kim’s poetics, suggested by Yuan Mei 袁枚 of Qing, means the poet’s innate ability which can be acquired thorough the artistic and scholastic training. Gim accepted the significances of xingling, rectifying its moral recklessness through restricting it by gediao 格調, i.e. the style. In painting theory, Gim is much influenced by Dong Qi-chang 董其昌 of late Ming. Dong as well as Gim pursued to reinsure the identity of literary painting against the mundane painting. Dong suggested that gaining unmentionable shen 神 (or, chiyun 氣韻) be the purpose of painting, and describing mentionable forms be the method to acquire shen or chiyun, applying the principles of calligraphic techniques to painting techniques, learning the tradition of painting and creating a new one, and reaching enlightenment though efforts. While accepting Dong’s theory, Gim more emphasized the learning tradition than Dong did, and assumed an indifferent attitude on creation which was of great importance to Dong. This difference can be explained by that of the situations of the two: Gim spoke to the painting’s world without a firm literary painting tradition, while Dong did to the one with a firm tradition. Gim applied more theories of Dong to Qing painting world, and enforced bibliographical research on works for painters to learn. Gim Jeong-hui also presented the theory of calligraphy, which was more developed than ever in Joseon, His was one of the most systematic theories on principles of calligraphy techniques written on silk or paper. He trusted in the traditional rules of writing in silk or paper, and studied Peiwenzai shuhuapu 佩文齋書畵譜 as well as Ruan Yuan’s 阮元 achievements. Wang Xi-zhi was regarded as Sage of calligraphy by him, regardless of Ruan’s doubt on status of Wang as overestimated. In short, he pursued eclecticism of both tradition unlike Ruan. In actuality, the aesthetic idea he tried to realize is one by artists with refined personality and scholarship who are liberal as in the history of calligraphy on silk or paper, has power existing in the history of epigraph, and enables enlightenment through traini...

      • KCI등재

        樗庵 申宅權 ‘十老詩’ 연구

        김종하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2019 大東漢文學 Vol.60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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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樗庵 申宅權(1722~1801)의 ‘十老詩’를 고찰하여 이를 관류하는 작자의 의식과 작품의 특성을 구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십로시’ 창작은 宋나라 劉克莊(1187~1269)에서 시작되었다. 元나라 方回(1227~ 1306)가 편찬한 『瀛奎律髓』에 유극장의 ‘십로시’ 10수가 실려 있는데, 『영규율수』는 조선 초기부터 송시와 율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꾸준히 읽혔다. 방회는 유극장의 ‘십로시’를 詠物詩로 분류한 다음 ‘상스럽다[褻]’, ‘속되다[俗]’라는 비평을 가하여, 온유돈후의 詩敎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사물을 읊는 과정에서 정밀한 뜻을 담아내었다면 거기에서 가치와 의의를 찾았다. 이후 우리나라 문인들은 유극장의 ‘십로시’를 본받은 작품을 다수 남겼다. 신택권은 小北 인물로, 42세가 되어서야 사마시에 입격하였을 뿐 평생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채 말직을 전전하였다. 그는 시를 창작할 때 투박하더라도 자신의 정과 뜻을 진솔하고 자연스럽게 표출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莊子』의 일화를 바탕으로 쓸모없음에서 쓸모를 찾아 기존의 한시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여 쓸모없던 것으로 치부되었던 인물과 사건에 주목해 작품의 소재로 끌어들였다. 신택권의 ‘십로시’는 7언 율시 총 10제 55수로, 일정한 계획과 의도하에 그의 나이 63세이던 1784년 연말과 64세를 맞이한 1785년 연초에 지어졌다. 신분이 천하고 지위가 낮은 서민이나 시정인, 늙고 추한 동식물과 자신의 신체 일부를 소재로 삼았다. 양반 사회에서 배제되었던 신택권의 처지는 소외된 인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신택권은 그들을 이용해 비애의 감상에 빠지거나 처량한 신세 한탄만을 하지 않았다. 신택권이 그들에게 보인 것은 동질감과 애정이었으며, 더 나아가 긍정적인 시선으로 그들에게 응원과 독려를 보내었다. 신택권은 늙음을 외면하거나 부정하려 들지 않았다. 관조적인 자세로 소외된 이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자신의 깨달음을 차분히 설파하였으며, 해학적인 표현으로 늙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쉽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지만, 그 기저에는 철학적 달관을 내포하고 있다. 신택권은 어느 작가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어느 누구보다도 늙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수행하였다.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깨달음을 얻고자 한 신택권의 자세는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This study aims to consider the ten poems about old age(十老詩) written by Jeoam(樗庵) Shin TaekKwon(申宅權, 1722~1801) out of his works and to consciousness the ideas and characteristics which reside in his literary territory. The ten poems about old age started at Song(宋) Dynasty Liu Kezhuang(劉克莊, 1187~1269). 『Yingkuilusui(瀛奎律髓)』 compiled by Yuan(元) dynasty Fang Hui(方回, 1227~1306) contains Liu's the ten poems about old age, 『Yingkuilusui』 has been steadily read by people studying octonary since the early Joseon(朝鮮) Dynasty. Fang classified Liu's the ten poems about old age as poems based on objects. And evaluated as ‘crude’ or ‘be vulgar’. So even if it doesn't match enlightenment through the poem of be gentle and elegant, when describing objects, if they contain precise meaning, they find value and significance. Since then, Joseon poets have written many works that imitate Liu's the ten poems about old age. Shin is a member of the Sobuk(小北), he did not pass the test until he was 42 years old, he only passed the classics licentiate examination(生員試). Failing to pass the higher civil service examination(文科) of his life and worked at a lowest government post. When he created poetry, he thought, even if the sentence is rough, you have to express your true feelings and intentions in a natural way. Also, based on 『ChuanaTzu(莊子)』's anecdote, we found a use for uselessness. And he drew attention to the characters and events that had been dismissed as useless by not receiving attention from the existing poems and attracted him to the subject matter of his works. His ten poems about old age is a series of poems, that is an octonary of seven words. His poems were built at the end of 1784, when he was 63 years old, and at the beginning of the year of 1785, when he was 64 years old, according to a certain plan and intention. He used low-profile, low- ranking commoners or city officials, old, ugly animals and parts of his body as the subject of the poem. Shin's situation, which had been excluded from the aristocratic society, led to his interest in the underprivileged. Shin, however, used them to not indulge in sad feelings or lament about their miserable lives. What the Shin showed them was homogeneity and affection, and furthermore, he sent them cheers and encouragement with a positive view. Shin would not turn a blind eye to old age or deny it. He calmly preached his enlightenment by taking an contemplative stance and sympathizing with the situation of the alienated. And he did not hesitate to make a ridiculous portrayal of himself aging through humorous expressions. His poems ostensibly portrayed what is common around him as easy and realistic. But at the base of his poem, there is a philosophical duct. Shin wrote many poems, which were incomparable to any writer and carried out a deeper reflection on old age than anyone else. Shin wanted to accept old age naturally and gain enlightenment. That attitude has much implications for us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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