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특집논문 : 번역연구라는 시좌(視座)의 보람

        구인모 ( In Mo Ku ) 한국문학연구학회 2016 현대문학의 연구 Vol.0 No.58

        이 글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근대문학연구의 모험들과 문제의 식들 가운데 번역연구가 아직도 고유한 범주로서는 온전히 정위되지 못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비롯한다. 그리고 번역연구라는 시좌를 통해 한국근대문학연구가 미루어 온, 혹은 아직 다다르지 못한 과제들을 다시 환기하기 위한 질문을 제시하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 이 글에서는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번역연구가 숱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근대기 한국의 번역과 문학에 대한 총론의 부재, 문헌학적연구 풍토의 불비에 따른 연구의 곤란, 비교문학론에 대한 뿌리 깊은 의구심, 번역을 둘러싼 인식론적 사유의 빈곤 속에서 난관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번역연구가 이러한 난관들을 극복하고 한국근대문학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과제를 제시한다. 그것은 근대기 한국에서 이루어진 번역을 둘러싼 에피스테메이자, ‘언어-문화’의 지평을 탐색하고 조망하는 일이다. 한편 이 글은 한국근대문학 또한 자신의 타자(들)와의 대화 속에서 한국, 근대, 문학을 사유하고 논변할 것을, 그 가운데에 세계문학은 물론 자국문학마저도 타자로 치환하는 상대주의적 사유와 윤리적 자세에 철저히 기반할 것을 요청한다. 특히 이러한 사유와 자세가 바로 새로운 비교문학론의 과제임을 설명한다. 그리하여 이 글은 바로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번역연구의 소명이자 보람임을 제시한다. This study was conceived by a question about why translation research, one of the adventures and problematic perceptions in the field of literature study in modern Korea since the 1990s, had not been established fully as a unique category. The study focused on arousing once again the attention to the tasks that had been postponed or not fulfilled in the literature study of modern Korea from the perspective of translation research. In the 1990s, the translation research of Korea faced complex difficulties that were as various as its achievements. They included the absence of general theories about translation and literature in modern Korea, difficulties with conducting research due to no climate for bibliographical research, deep-rooted doubt about the comparative literature theory, and lack of epistemological thinking about translation. The present study proposed tasks for translation research to overcome those obstacles and make a contribution to the literature study of modern Korea, exploring and shedding light on what was episteme around translations in modern Korea and the horizon of "language-literature." It also proposed the tasks forgotten in the literature study of modern Korea since the 1990s on the thorough basis of relativistic thinking and ethical attitude for modern Korean literature to replace both world literature and its own literature with others. It thus explained that such thinking and attitude were new tasks for the comparative literature theory and proposed that implementing the tasks should be a calling and reward of translation research.

      • KCI등재

        번역의 가능성 혹은 불가능성

        구인모(Ku, In-Mo)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5 코기토 Vol.- No.78

        김억은 서구 근대시, 상징주의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영국 시인 아서 시먼스(Arthur Symons, 1865~1945)의 『Poems』(1901?1906)를 번역하여 『잃어진 진주』(1924)를 발간했다. 이것은 김억의 ‘상징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저작이라는 점, 근대기 한국에서 전무후무한 아서 시먼스의 번역 시집이라는 점, 이 번역시집의 서문이 김억의 근대시와 번역에 대한 입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김억이 서문에서 역설한 ‘창작적 번역’은 그가 서구 근대시, 상징주의와 직접 대면하여 조선의 근대시를 창안안 방법으로서 평가 받아 왔다. 하지만 김억이 영국의 아서 시먼스를 번역한 이유와 동기에 대해서는 지금껏 온전히 규명되지 못했다. 사실 김억은 구리야가와 하쿠손(?川白村)의 문학론, 이와노 호메이(岩野泡鳴)의 문학론과 번역을 통해 상징주의를 이해했고 아서 시먼스를 발견했다. 그리고 야노 호진(矢野峰人)의 아서 시먼스 시 번역에 의존하여 『잃어진 진주』를 발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노 호진을 통한 아서 시먼스 시의 번역 경험은 김억의 시 창작 과정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이것은 비서구 식민지인 조선의 번역가, 시인으로서 김억이 일본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아서 시먼스 번역뿐만 아니라 서구 근대시, 상징주의와도 직접 대면할 수 없었던 사정을 드러낸다. 김억의 『잃어버린 진주』를 둘러싼 이러한 사정들은 그에게 김억에게 아서 시먼스의 시와 그 번역이, 자국 문학을 구성하고 고안하는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아울러 이것은 김억의 ‘창작적 번역’의 의의는 물론 비서구 식민지의 번(중)역을 통한 근대(성)의 경험 혹은 근대시의 체현과 관련하여 새롭게 논변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In an attempt to make a full-blown introduction of modern Western poetry and symbolism, Kim Eok translated Poems(1901, 1906) by Arthur Symons(1865-1945), a British poet, and published The Lost Pearl. The book holds important significance in that it represents his ‘era of symbolism’, that it was the only translation of Symons’ works in modern Korea, and that its preface contained his positions about modern poetry and translation. Highlighted in the preface by him, ‘Creative translation’ has especially evaluated as a method to create the modern poetry of Joseon in his direct encounter with modern Western poetry and symbolism. There has been, however, no clear explanation about the reasons and motives behind his translation of Symons, the British poet. As a matter of fact, it was only after he understood symbolism through the literary theories of Kuriyagawa Hakuson and the literary theories and translations of Iwano H?mei that he discovered Symons. He resorted to the translation of Symons’ works by Yano H?jin when publishing The Lost Pearl. The experiences with translating Symons’ poems through Yano H?jin left profound traces in his process of poetic creation, which reveals the circumstances those days that he, who was a translator and poet of Joseon, a non-Western colony, could not face modern Western poetry and symbolism first-hand as well as the translations of Symons unless they were via Japan. Those circumstances around his The Lost Pearl indicate Symons’ poetry and its translation contained both the possibility and impossibility of composing and devising Joseon literature to Kim. It also offers an opportunity to engage in new discussions in relation to the experience or practice of modern times(modernity) through the translation(retranslation) of non-Western colonies as well as the significance of his ‘creative translation’.

      • KCI등재

        사실의 낭만화, 욕망의 팰럼시스트(palimpsest)

        구인모 ( Ku In-mo ) 국제어문학회 ( 구 국제어문학연구회 ) 2013 국제어문 Vol.59 No.-

        이 논문은 1932년 김갑순과 노병운의 자살 사건이 신문의 기사, 유성기음반(SP record)의 대중서사 등으로 파생되었던 현상과 그 의미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당시 이 사건은 사실과 무관하게 픽션의 서사들로 재구성되고, 대중적인 문화상품으로 소비되었다. 실제의 사건을 다양한 서사들로 만들어낸 동력은 당시 여급에 대한 엘리트 남성글쓰기 주체의 관음증적 시선, 낭만적 연애에 대한 대중적 욕망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의 형성 과정에서 근대의 번역어로서 연애의 개념은 확장되고 변용된다. 김갑순과 노병운의 자살 사건 관련 서사들은 근대기 한국의 공론장 혹은 문화장에서 사실이 다양한 발화주체의 서사적 실천에 의해 의미가 규정되고, 그것이 문화상품으로 소비되는 독특한 의사소통의 구조를 드러낸다. 특히 이 사건과 관련 서사들은 1930년대 이후 카페 여급과 지식인의 연애를 모티프로 한 서사들의 원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과 관련 서사들은 인간의 행동을 전체로 조직하는 의미 구조로서 서사의 본질적 국면을 훌륭히 드러내는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phenomenon and its significance that the suicide issue of Gim, Gap-sun and Noh, Byeong-un in 1932 had been derived to the newspaper article and the popular narrative in SP record. In those days, this issue was reconstructed with narratives in fiction regardless of a fact and was consumed as popular cultural product. The driving power, which made actual case as diverse narratives, include a voyeurism-based sight in the main agent of elite man`s writing on waitress at that time and a popular desire for romantic love. Added to this a concept of love as the modernly translated language in the process of being formed this narrative is expanded and modified. Narratives related to the suicide issue of Gim, Gap-sun and Noh, Byeong-un reveal unique communication structure that a fact is prescribed a meaning by narrative practice in various utterance subjects in the public sphere or cultural sphere of Korea in the modern period and that it is consumed as cultural product. Especially, the narratives related to this case are also the prototype of narratives of having a motive as love between cafe waitress and intellect following the 1930s. In particular, the narratives related to this case have important significance in a sense of being a case, which excellently reveals the essential aspect of narrative as semantic structure of giving totality to a human being`s behavior.

      • KCI등재

        유성기음반과 변사의 구연(口演)

        구인모(Ku, In-mo)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3 한국학연구 Vol.46 No.-

        이 논문은 근대기 한국에서 변사가 영화설명과 영화극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종 서사를 음반에 취입했던 사정을 통해 문화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영화의 서사보다도 변사의 구연자체가 관객 혹은 청취자로부터 더 큰 환영을 받았던 현상, 조선에서 상영되지 못한 영화가 영화설명 혹은 영화극 장르 음반으로 취입되었던 사례, 영화가 아닌 서사가 영화설명이라는 장르로 음반에 취입되었던 과정등을 다면적으로 검토한다. 그리하여 근대기 한국에서 영화와 그 서사의 독특한 존재 양상은 물론, 풍설과 신빙성 낮은 회고로만 전하는 변사의 위상과 역할을 재구할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와 그 서사가 변사에 의해 영화관 안팎에서 구연되고 청취되었던 가운데 형성된 새로운 차원의 문자성 혹은 구술성의 복잡한 양상들을 통해 근대문화 혹은 근대성의 특징적인 국면을 규명할 것이다. 나아가 영화라는 근대적인 대중매체 혹은 대중서사의 (재)생산·소비·유통을 둘러싼 근대기 한국의 문화장의 독특한 의사소통의 구조 또한 조망하고자 한다. This investigation aimed at finding a new possibility in modern Korean culture research by examining the sales of records in the genres of film narration and kino dramas that demonstrated the vivid voice of silent-film narrators in the modern period of Korea and how they made records of not only film narration and kino dramas but also various heterodiegetic. It especially tried to explore from various aspects the phenomenon where the narrations of Byeonsa(or Benshi, silent film narrators) had more influence on audience or listeners than the narratives of films, cases in which films that had not been released were made in records in the genres of film narration and kino dramas, and the process that narratives, not films, were made in records in the genre of film narration. The study, therefore, restructured not only films and their narratives but also the status and roles of Byeonsa which had been known only through unfounded reports and not very convincing remembrance. Through this, it looked into the characteristics of modern Korean culture by examining the complicated aspects of non-conventional literary and oral culture which had been formed through the performance of Byeonsa inside and outside of cinemas. Furthermore, it also explored the unique structure of communications in the cultural site of the modern Korea regarding the (re)production, consumption and distribution of films, one of the modern mass media forms or popular narratives.

      • KCI등재

        근대기 한국의 대중서사 기호(嗜好)와 향유방식의 한 단면

        구인모(Ku, In-mo) 한국학중앙연구원 2013 한국학 Vol.36 No.3

        이 글은 미국 할리우드 영화 〈명금〉이 일본과 조선에서〈명금(名金)〉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 조선에서 소설로도 간행되었으며, 특히 조선에서는 유성기음반으로도 발매되었던 사정에 주목했다. 그리고 영화 〈명금〉의 서사의 어떤 요소가 당시 조선인들의 심정을 사로잡았는지, 그들은 그 서사에 어떠한 욕구·욕망을 투사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비서구·식민지 조선인들이 낯선 나라에서 온 서사를 반복해서 향유한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그 가운데 영화 〈명금〉의 서사가 영화·도서·음반 등 매체는 물론 미국·일본·조선등 국경을 넘나들며 제작·유통·소비되는 대중문화의 전 지구적 의사소통 체계 속에 가로놓인 특별한 발화들의 양상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조선에서 상영·출판·발매되었던 〈명금〉이 조선인 관객·독자·청취자의 근대적 대중 서사에 대한 취향은 물론 근대문화, 근대성 경험을 반영한다는 것을 규명했다. 아울러 이 〈명금〉을 계기로 근대기 한국에서 국경과 언어는 물론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중 서사의 다층적이고도 다면적인 양상을 조망했다. This article paid attention to the situations around The Broken Coin, an American Hollywood film, that it was played under the title of Myeong?geum (名金) in Japan and Joseon, published in the form of novel in both the countries, and released as gramophone album in Joseon. The study set out to investigate which narrative elements of the film fascinated the hearts of Joseon people those days, what kind of needs and desires they projected onto the narrative, and what meanings were inherent in the fact that non?Western colonial Joseon people repeatedly enjoyed the narrative that came from a strange country. In the process, the study found that its narrative represented the patterns of special speech located in the global communication system of popular culture produced, distributed, and consumed across borders such as the U. S. A., Japan and Joseon as well as across media such as film, book, and album. It was also found that the movie played, published and released in Joseon reflected the modern culture and experiences with modernity as well as the taste of Joseon moviegoers, readers, and audiences for modern popular narrative. In addition, the study delved into the multi?layered and multi?faceted aspects of popular narrative across media as well as borders and languages through the movie in modern Korea.

      • KCI등재

        근대기 문학어의 고안과 중역(重譯) : 베를렌 시 번역을 둘러싼 논란과 함의에 대하여

        구인모 ( Ku In-mo ) 한국문학연구학회 2018 현대문학의 연구 Vol.0 No.64

        이글의 목적은 근대기 한국에서 운문 양식의 글쓰기가 형성되던 과정에 번역, 특히 일본어로부터의 중역이 중요한 동력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이 글은 김억이 번역한 베를렌(Paul-Marie Verlaine)의 시 < 검고 □업는 잠(Un grand sommeil noir) >이 노자영 등 동시대 문학청년들에 의해 모방되고 표절되기도 했던 사정, 그리고 김억의 창작을 추동했던 사정에 주목했다. 특히 글쓰기 주체로서 이들이 자신의 특별한 정서, 정조를 운문 양식으로 재현할 수 없는 곤경에서 번역시의 어휘, 수사에 자기 다름의 해석, 언어적 감각의 투사를 거쳐 그것을 전유했던 양식들을 규명했다. 한편 김억의 베를렌 시 번역이 사실은 프랑스어 원전이 아닌 영역시집, 일본어 번역시집으로부터의 중역이었던 사실에 주목했다. 특히 김억과 노자영 등에게 창작의 전범이었던 번역시의 텍스트가 이질적인 언어들의 적층물이었던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러한 적층물을 토대로 근대기 한국의 운문 양식의 글쓰기가 비롯했음을 규명했다. 아울러 김억과 노자영 등이 자신의 중역, 모방을 일관되게 직접번역이라고 역설했던 배경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특히 김억의 경우, 그것이 서구의 근대문학, 근대(성)에 대한 강렬한 욕망, 강박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demonstrate that translation, especially relay translation from Japanese, was important driving force in the establishment process of writings in the verse form during the modern times in Korea. For this purpose, This article focused on the circumstances in which “Un grand sommeil noir” by Paul-Marie Verlaine translated into Korean by Kim Eok was imitated and plagiarized by his contemporary literary youths including Noh Ja-yeong and facilitated his creative efforts. They had a difficult time reproducing their special emotions and feelings in the verse form as the writing subjects. This article shed light on the styles in which they projected their own interpretations and linguistic senses onto the vocabulary and rhetoric of the translated poems and had them to themselves. This article also focused on the fact that Kim Eok translated poems by Paul-Marie Verlaine not based on their original French texts but on their relay translations from English and Japanese poetry books. The special focus was on the fact that the texts of the translated poems that were creative classics to Kim Eok and Noh Ja-yeong were indeed the laminated products of heterogeneous languages. This article demonstrated that the writing in the verse form during the modern times in Korea derived from these laminated products. It also focused on the background in which Kim Eok and Noh Ja-yeong consistently highlighted that their relay translations and imitations were direct translations. Kim Eok made the argument out of his intense desire and obsession for the modern literature and modernity of the West.

      • KCI등재

        김억의 알베르 사맹(Albert Samain) 시 번역을 다시 읽는다

        구인모(Ku, In mo) 동악어문학회 2018 동악어문학 Vol.75 No.-

        이 글의 목적은 근대기 한국에서 운문 양식의 글쓰기가 형성되던 과정에 번역, 특히 일본어로부터의 중역이 중요한 동력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이 글은 김억의 『오뇌의 무도』(1921/1923) 소재 「싸멘의 詩」장에 주목했다. 그리고 신문학 초기 근대적 문학어, 시성·시정(poésie)의 고안 과정에 서구시의 일본어 번역으로부터의 중역이 중요한 원동력이었음을 입증했다. 이를 위해 이글은 우선 김억의 알베르 사맹 시 중역의 저본이 호리구치 다이가쿠(堀口大學)의 『어제의 꽃(昨日の花)』(1918)과 고바야시 아이유(小林愛雄)의 『현대만엽집(現代萬葉集)』(1916)이었음을 밝혀냈다. 또한 김억의 중역이 일본어 번역시에 자신의 해석과 언어감각을 투영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혀냈다. 그리고 김억의 중역이란 프랑스어, 영어, 일본어 등 이질적인 타자의 언어들의 적층과 혼종의 결과이며, 김억의 『오뇌의 무도』가 신문학 초창기 운문양식의 글쓰기의 전범이었다면, 그러한 근대기 한국의 문학어, 시성·시정의 고안 또한 그러한 적층과 혼종의 결과임을 밝혀냈다. 아울러 김억이 자신의 중역, 모방을 일관되게 직접번역이라고 역설했던 배경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그리고 그러한 김억의 입장이란 사실 서구의 근대문학, 근대(성)에 대한 강렬한 욕망, 강박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This Article presents the results of rereading Kim Eok"s translations of poems by Albert Samain (France, 1858~1900) in his The Dance of Agony (1921/1923).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demonstrate that translation, especially relay translation from Japanese, was important driving force in the establishment process of writings in the verse form during the modern times in Korea. For this purpose, This article first examined the backgrounds of Kim Eok"s translations of Albert Samain"s poems and shed light on the mechanism of his translations and its significance. It especially found that Kim Eok"s translations of Albert Samain"s poems were based on the relay translation of two anthologies, Horiguchi Daigaku (Japan, 1892~1981)"s The Yesterday’s flower (1918) and Kobayshi Aiyou (Japan, 1881~1945)"s The Modern collection of ten thousand leaves (1916). As well as this article shed light on the styles in which Kim Eok projected his own interpretations and linguistic senses onto the vocabulary and rhetoric of the translated poems. It then showed the circumstances in which that relay translations from Japanese texts were not only a means of accepting the world literature, but also an opportunity to discover and devise the Joseon language as a literary language, modern literariness to Kim Eok. The special focus was on the fact that the texts of the translated poems that were creative classics to Kim Eok were indeed the laminated products of heterogeneous languages. This article demonstrated that the writing in the verse form during the modern times in Korea derived from these laminated products. It also focused on the background in which Kim Eok consistently highlighted that his relay translations and imitations were direct translations. Kim Eok made the argument out of his intense desire and obsession for the modern literature and modernity of the West.

      • KCI등재

        중역(重譯)과 근대시 문체 형성의 한 단면 - 김억의 사례를 중심으로 -

        구인모 ( Ku In-mo ) 한국문학연구학회 2021 현대문학의 연구 Vol.- No.74

        이 논문은 김억의 번역시, 창작시의 어조, 문체가 형성되는 과정과 배경 그리고 그 함의를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김억의 독특한 어조, 문체는 박종화, 이광수 등의 문학인들로부터 시상과 무관한 상투적인 표현이라는 점, 시대착오적인 의고체라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문학청년들의 모방의 대상이라는 점으로 인해 비판받았다. 사실 김억 특유의 의고적인 어조와 문체는 1910년대의 번역시, 창작시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그 후 『오뇌의 무도』(1921)를 전후로 그가 일본어 번역시들을 저본으로 하여 프랑스와 영국의 시를 중역하는 가운데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김억이 저본으로 삼은 일본어 번역시들이 주로 메이지[明治]기 일본의 문(고)어체 혹은 문어정형시였던 사정과 관련이 있다. 김억은 메이지기 문(고)어와 문어체를 시적인 것으로 여겼거니와, 특히 다이쇼[大正]기 일본 근대시의 언문일치 문체의 한 전범으로 평가받는 호리구치 다이가쿠(堀九大學)의 번역시 문체를 의식하여 그에 대응하는 조선의 문학어, 문체를 발굴하고 고안해 냈다. 이것은 김억과 1920년대 한국에서 시적인 글쓰기가 근대기 일본문학의 언문일치의 도정과 긴밀히 연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이것은 중역이 근대기 한국의 시적인 문체, 글쓰기 형성의 중요한 계기였음을, 근대기 한국의 시적인 문체란 중역을 통해 이질적인 타자들의 언어의 적층과 혼종을 토대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김억 특유의 어조와 문체는 그 자체로 근대기 한국의 시적 언어, 문체 형성의 특징을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한 사건이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investigate the processes, backgrounds, and implications of tone and style creation in Kim Eok’s translated and creative poems. His unique tone and style were criticized by other literary figures including Park Jong-hwa and Lee Gwang-su for being cliches irrelevant to poetic concepts, anachronic archaisms, and still objects of mimicry among his contemporary literary youths. As a matter of fact, his unique archaistic tone and style were not found in his translated and creative poems in the 1910s. They made their full-blown appearances in his double-translations of French and British poems with translated poems in Japanese as his original scripts around the publication of The Dance of Agony(1921). They had something to do with the fact that translated poems in Japanese used by him as his original scripts were mainly in Japan’s literary style during the Meiji period. Kim Eok considered the literary and classic language and style of Meiji period as poetic and particularly identified and devised Joseon’s literary language and style corresponding to the style of Horiguchi Daigaku, which is regarded as a canon of the Genbunitchi(unification of the written and spoken language) style in modern Japanese poems during the Taisho period. This suggests that Kim Eok and Korea’s poetic writing during the 1920s were closely connected to the process of the Genbunitchi in modern Japan. It also indicates that poetic writing in Korea was based on the accumulated hybrid languages of heterogeneous others as the effects of translation, especially double translation. These findings imply that Kim Eok’s unique tone and style themselves make a very important event to show the characteristics of poetic language and style creation in modern Korea.

      • KCI등재

        김장호의 비교문학연구에 대하여

        구인모(Ku, In Mo) 동악어문학회 2019 동악어문학 Vol.78 No.-

        김장호는 비교문학연구의 제1세대 연구자로서 한국문학과 관련해서 매우 이채로운 성과를 남겼는데, 그것은 동서양 시학의 비교연구, 동아시아 근대시 형성의 비교연구로 요약된다. 특히 김장호는 서구의 충격(western impact) 이후 동아시아문학의 일반적인 원리를 전통적 양식의 저항, 그 지속적인 생명력을 조망하는데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리고 그 원리를 근대와 반근대의 순환 구도로 파악하고 있었다. 아울러 김장호는 동아시아문학을 중심으로 국제문학사의 정비를 제안했고, 이를 통해 세계문학의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런가하면 김장호는 김억의 『오뇌의 무도』(1921)와 중역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를 통해 한국근대시 연구의 서구중심주의와 발전론적 역사관을 극복하고자 했다. 김장호의 비교문학연구는 그 이채로움은 물론 특히 1990년대 한국문학연구 방법론의 전회, 연구분야의 다변화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온전히 조명되거나 평가받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김장호가 평생 고투한 한국의 근대(성), 근대문학을 동아시아의 역사 경험이나, 동아시아 문학의 도정들과의 대조․비교를 통해 그 일반성과 개별성을 이해하는 일이나, 특히 오뇌의 무도를 통해 세계문학, 근대(성)의 복수성을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김장호의 비교문학연구는 오늘날 한국문학연구에 중요한 과제와 이정표를 제시한다. As the first generation researcher in comparative literature research, KIM, Jang-ho has made a very interesting achievement in Korean literature research. It is summarized as a comparative research of East and West poetics, and a comparative research of the formation of the modern East Asia poetry. KIM, Jang-ho, in particular, focused on the general principles of East Asian literature after the Western impact to investigating the resistance of traditional styles and its continued vitality. And KIM, Jang-ho, defined the principle as the circulation of modern and anti-modern. In addition, KIM, Jang-ho, proposed the rewriting of the history of international literature, focusing on East Asian literature, and sought to overcome the Eurocentrism of world literature. At the same time, KIM, Jang-ho sought to overcome the Western centralism and developmental historical view of Korea"s modern research through literature research on Kim"s The Dance of Agony(1921) and relay translation. KIM, Jang-ho"s research of comparative literature is not fully illuminated or evaluated to this day. That"s because since the 1990s, the methodology of Korean literature research has changed and the field of research has diversified. However, it is still important to understand the generality and individuality of modern Korean literature through the historical experience of East Asia, and the contrasting comparison of East Asian literature to understand the plurality of world literature and modernity, especially through The Dance of Agony(1921). Therefore, KIM, Jang-ho"s research of comparative literature presents important tasks and milestones for the study of Korean literature today.

      • KCI등재

        다카하시 도루(高橋亨)와 조선민요의 발견

        구인모(Ku, In-mo)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8 동방학지 Vol.183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The lecture notes of Prof. Takahashi Tōru, who taught in the Department of Joseon Language and Literature of Keijō Imperial University, offer some clues about the content of his lectures. What is unusual about the 41 books of Takahashi Tōru’s lecture notes is that 14 of them covered Joseon folk songs. As it is known, Takahashi Tōru regarded Joseon literature as a copy of Chinese literature, and accordingly based his lectures on Joseon literature on the Chinese classics. Despite this, however, he consistently collected folk songs related to Joseon, published a good number of papers on Joseon folk songs. The reason behind this was that he believed that folk songs were the most typical genre of Joseon literature, and that research on Joseon literature was to explore the universal nature of Joseon people as projected into their folk songs. Takahashi Tōru was convinced that the introduction and study of Joseon folk songs would make a contribution to the literature of the Japanese Empire and would further comparative studies of Joseon with the rest of East Asia. However, Takahashi Tōru failed to move to the stage of describing the history of Joseon’s poetry literature diachronically through his study of Joseon’s folk songs. As a result, his research continued in Japan after the end of the Pacific War, had to be suspended in an unfinished state. 경성제국대학 조선어학조선문학 전공 교수였던 다카하시 도루(高橋亨)의 강의 내용은 최근에 공개된 그의 강의록을 통해 윤곽이 드러났다. 다카하시 도루의 총 41책의 강의노트 중 이채로운 것은 그의 총 14책에 달하는 조선민요 관련 강의록이다. 다카하시 도루는 조선민요와 관련한 강좌는 1931년 단 한 차례만 개설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적지 않은 분량의 강의록을 남겼던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다카하시 도루는 조선의 문학이란 대체로 지나의 모방이라고 간주했으며, 그래서 그의 조선문학 강좌의 내용은 한문학 위주로 구성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카하시 도루는 부단히 조선의 민요를 수집하여 강의록을 통해서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조선민요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그것은 다카하시 도루에게 조선문학 중 가장 조선적인 것은 바로 조선의 민요였으며, 조선문학의 연구란 조선민요에 투영된 조선인의 보편적 심성을 탐색하는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도루는 이러한 조선민요의 소개와 연구야말로 일차적으로는 제국 일본의 국문학에 기여하는 일이며, 나아가 동아시아 제지역과의 비교연구에 기여한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민요 연구는 근본적으로 제주도, 함경도 등 오지의 여성 민요를 주된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그러한 지방성과 타자성이 도리어 조선인의 보편적 심성을 보존하고 있다는 모순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다카하시 도루는 그러한 조선민요의 연구를 통해 조선의 시가문학사를 통시적으로 서술하는 단계로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 결과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일본에서 계속된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민요의 연구는 미완의 상태로 수습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카하시 도루가 미처 이루지 못한 조선 시가문학의 통시적 연구를 비롯하여, 그가 비조선적인 것이라고 간주했던 언문 문학의 유산에 대한 학문적 탐색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