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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공(反共)의 국민화, 반반공(反反共)의 회로 -반반공 내셔널리즘을 묻는다.

            남원진 ( Nam Won-jin ) 국제어문학회 ( 구 국제어문학연구회 ) 2007 국제어문 Vol.40 No.-

            6·25 전쟁 이후 반공 내셔널리즘의 민족 정화 또는 민족 분단의 논리는 반공 국민의 생활 논리로 체득되기 시작한다. `반공으로 뭉치면 살고 헤치면 죽는다`는 반공 내셔널리즘의 명제는 국민의 생존 욕망을 자극하고 통합하려는 권력 의지가 발현된 한 양상이다. 그래서 반공 내셔널리즘의 명제는 위험하다. 이 글에서는 이런 반공 내셔널리즘의 허구성을 묘파한 남정현, 이강백, 황석영의 반동일화 전략을 주목했다. 특히 80년대 정치·사회학적 실천이 60~70년대 남정현, 이강백, 황석영의 작품에서 선취된다는 점에서 이들의 문학적 실천은 대단히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광기와 살육의 기억으로 각인된 반공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는 반동일화의 문학적 전략이 이들이 거부하려던 내셔널리즘의 사고 체계 내에 갇히는 결과, 즉 대립하면서 닮아가기의 한 양상을 초래한 것이 문제였다. 너희의 칼로 너희를 칠 수 없듯이, 내셔널리즘의 전략으로 내셔널리즘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 After the Korean war the nationalism of anti-communist and the logic of national separation is internalized into the logic of anti-communist living. The proposition of anti-communist nationalism circulated by the nation that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 is one aspect of the power will which stimulates the desire for existence of the nation and mobilizes and integrates the nation. In the way the logic of the anti-communist nationalism is a very dangerous discourse in politics. In this paper I noticed Nam Jeong-heon, Lee Kang-baek and Hwang Seok-yeong`s strategy who penetrates the fabrication of anti-communist nationalism. Specially these literary practice is very noticeable in view that the political and social practice in 1980s is preoccupied in Nam Jeong-hyeon, Lee Kang-baek and Hwang Seokyeong`s works between 1960 and 1970. By the way the literary strategy of anti-identification criticizing anti-communist nationalism carved into the memory of madness and massacre is confined within thinking system of nationalism which they refuse, that is, it causes one aspect of being alike being confro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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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에 나타난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형상

            김상진 ( Kim Sang-jean ) 국제어문학회 ( 구 국제어문학연구회 ) 2014 국제어문 Vol.62 No.-

            이 논문은 문학의 심리학적 접근으로, 시조를 대상으로 삼아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형상을 고찰함을 목적으로 한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란 인간의 내적인격 가운데 하나를 지칭하는 용어로써 아니마는 남성 속에 있는 여성성, 아니무스는 여성 속에 있는 남성성을 일컫는다. 따라서 사대부가 주 작가층이 되는 남성시조와 기녀를 작가로 하는 여성시조로 구분하여 각각의 양상을 살폈다. 또 남성시조의 경우는 조선 전기와 후기의 양상이 달라 전기시조와 후기시조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그 결과 시조에 나타난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형상은 다음과 같다. 먼저 남성시조의 경우, 전기시조에서는 연군의 아니마가, 후기시조에서는 애욕의 아니마가 등장하게 된다. 즉 전기시조에서의 여성성은 군신의 관계에서 신하의 忠心을 노래할 때 주로 나타나게 되는 반면, 후기시조에서는 인간의 성적 욕망을 표현할 때 여성성이 표현되었다. 남성시조가 조선 전기와 후기의 양상을 달리하는 것과는 달리, 기녀집단을 작가층으로 삼는 여성시조에 등장하는 아니무스는 전기와 후기의 구분 없이 동일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인간의 심리는 다양한 층위로 이루어졌다. 외적인격에 해당하는 페르소나와 내적인격인 아니마와 아니무스 또한 인간의 심리 가운데 하나이며 이들은 총체적으로 `자기`라는 한 개인을 지향한다. 따라서 시조에 나타난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표현은 자기를 형상화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에 관심을 둔 본고의 논의는 궁극적으로 문학 작품의 본질에 좀 더 근접하려는 노력이다. This paper is approaching the psychological literature, there for, the study of anima and animus appeared in literature. Anima and animus is one of the human`s internal personality. Anima is femininity in men, animus is masculinity is women. So, separated by men`s Sijo and women`s Sijo are discussed. Men`s Sijo writers is Scholar-official(士大夫), and women`s Sijo writers is Ginye(妓女). Men`s Sijo subdivide into the former Joseon(朝鮮) and the latter Joseon.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is men`s Sijo. The former Sijo is anima of Yeongun(戀君), the latter sijo is anima of Love and lust(愛慾). This means that, the former Sijo`s femininity appeared into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king and servants. That is to say, it`s loyalty. On the other hand, the former Sijo`s femininity appears when the human sexual desires. Women Sijo`s animus is not the distinction between the former Sijo and the latter Sijo. Human psychology is made by a variety of factors and layers. That is, external character of persona, internal character of anima and animus, etcs. These are collectively constitutes `self`. `Self` refers to a single individual. Also, Anima and animus that appeared in the Sijo, Among these is one way to visualize `self`. Therefore,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intended to approach the essence of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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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라와 문학의 공통감각 - 한국전쟁기 북한 삐라를 중심으로 -

            김은정 ( Kim Eun-jeong ) 국제어문학회 ( 구 국제어문학연구회 ) 2013 국제어문 Vol.59 No.-

            삐라는 선전선동적 문구를 통해 감정을 조직한다는 점에서 심리전술의 일환으로 사용되어 왔다. 북한은 미국의 삐라에 의한 감정선동에 문학작품으로 대응함으로써 인민들의 감정적 이탈을 막고 적에 대한 증오심을 바탕으로 응전을 하고 있다. 즉 문학이 적의 삐라에 대한 응전의 방법으로 선택되고 있어 이를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문학과 삐라의 영향관계와 호응의 정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글은 앞으로의 연구 과제인 미군삐라와 북한삐라의 대조를 통해 그 종류와 특성 및 미군삐라에 대한 북한의 대응 방식을 살피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따라서 한국전쟁 당시 살포된 감정선동물인 삐라의 효과와 북한 문학과 삐라의 영향관계 그리고 삐라가 전유, 사유, 왜곡되는 과정을 문학작품 및 기타 문건을 토대로 검토할 것이다. 북한은 미국에 비해 삐라 제작에 있어 비전문성이 강했다. 이글에서는 북한의 삐라 제작자들이 비전문적인 취약성을 극복하기위해 문학작품을 참고하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 살펴보았다. 당시 북한의 문학은 현장성을 종군작가로 참가한 작가들의 르포르타주나 취재를 통해 전달받아 작품으로 재생산되었고 다시 도시나 전선에 보급되는 구조였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생산된 담론이 유통되면서 문학과 삐라는 공통감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Propaganda leaflet has used as one of the tactical psychological operations to provoke certain emotions by spreading seditious phrases. North Korea uses the literature works containing hatred against the enemy to stop the public from emotionally deviating by the inflaming leaflet from United States, and to fight back against the enemy. As we can see from this case, the literature is used to counterattack against the enemy`s propaganda leaflet. For this reason, it is necessary to investigate the influence relationship between the propaganda leaflet and literature. This study is the groundwork for the further study of the various types and characteristic between North Korea`s and Unites States` propaganda leaflet, and North Korea`s reaction against the United States`s propaganda leaflet. Thus, the study is going to examine the effects of propaganda leaflet as demagoguery means, the influence relationship between North Korean literature and propaganda leaflet, and the leaflet undergoes the process of exclusively possession, private possession, and distortion based on the literature works and other documents. North Korea was less professional in producing propaganda leaflet than United States. This study examined how the North Korean leaflet makers refer to the leterature works to cover their non-professional leaflet making. In the past, North Korean literatures were produced by using reportage from the writers who experienced war correspondent or interviewing their experiences. Then the works were supplied to the cities or front lines. Because the discourse which was created thgough the circumstance above was distributed all around, the literature and propaganda were able to share the common s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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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여항문인 조희룡의 유배와 신안 임자도

            한영규 ( Han Young-gyu ) 국제어문학회 ( 구 국제어문학연구회 ) 2013 국제어문 Vol.59 No.-

            중인서리층의 전기 작품집 『壺山外記』를 편찬한 又峰 趙熙龍(1789~1866)은 19세기의 대표적 여항문인이다. 이 논문은 새 자료를 동원하여, 1851년부터 약 2년간의 임자도유배 생활이 조희룡의 문학 예술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았다. 또한 전남 신안군이 2004년부터 추진 중인 조희룡 유배지 현양 사업의 현황을 학술적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조희룡이 임자도에서 경험한 가장 큰 사건은 먼저 유배와 있던 전임 통제사 金鍵(1798~1869)과 긴밀하게 교유한 일이었다. 그동안 김통제사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일성록』을 통해 김건이 헌종 사후인 1849년 7월에 유배되어 1852년 4월에 임자도를 떠났음이 확인되었다. 조희룡은 10개월 동안 전임 통제사 김건과 어울리며 깊은 교분을 나눴다. 그런데 이 두 인물은 모두 추사 김정희의 문인으로 분류되며, 정치적으로 안동김씨 외척 세도를 반대하다 유배형에 처해졌다는 공통성을 지녔다. 임자도는 이들에게 遠惡地이기도 했으나, 정치적 동지를 만나 교유하는 새로운 문화적공간으로도 작용하였다. 조희룡이 임자도에서 『화구암난묵』 등의 여러 시문 서화를 창작한 것은 그에게 유배 경험이 문화적 활력소로 기능했다는 점을 반증한다. 19세기 임자도의 경제적 문화적 풍요도 조희룡에게 새로운 경험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임자도 유배를 계기로 조희룡의 시문 서화가 `번화미` `격동미`의 방향으로 질적 비약을 이룩했다는 최근의 연구결과와 상통된다. 조희룡은 임자도에서 최태문 등 여러 식자와 교유했으며 또 홍재욱 같은 제자를 배출하는 등 문인서화가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확장시키는 생활을 지속하였다. 조희룡과 임자도의 인연은 해배 이후에도 이어졌다. 1862년 임자도에 유배된 金?은 섬에 남아있던 조희룡의 시문을 접하고 그에게 경도된 심정을 「艱貞日錄」에 남기고, 서울로 글씨를 부탁하는 편지를 조희룡에게 부치기도 했다. 전남 신안군은 조희룡의 유배지로서 임자도를 관광자원화 하는 방안에 착목하여, 2004년 `조희룡 기념비`를 세운 이래 최근에는 `조희룡길`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임자도가 조희룡의 문예적 흔적을 매개로 다시 환기된다는 점은 조선후기 여항문예와 관련지어 매우 주목할 만한 사안이다. 다만 신안 임자도의 장소성이 보다 항구적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조선문인화의 聖所`와 같은 표현이 학술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Cho Hee Ryong (1789-1866) who edited `Hosanoeki(壺山外記)`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19th Century Middle-class Literati. This study explored what meaning the exile life of about two years from year 1851 in Imjadohad for his literature and art based on several materials newly found. Also, this study tried to interpret the fame project of Cho Hee Ryong`s exile place that has been promoted by Shinan-gun, Jeonnam province since year 2004 in an aspect of academic viewpoints. One of the biggest events for Cho Hee Ryong`s experience in Imjado was the social keen intercourse with an ex admiral, Kim Geon (金鍵 1798-1869) who had been exiled, precedent to Cho Hee Ryong`s exile. It is found that Kim Geon used to be known as only admiral Kim which had no specific indication for a specific person, but that according to "Ilseongrok," he had been exiled there in July 1849 after the death of King Heonjong and left Imjado April 1852. Cho Hee Ryong associated keenly with the ex ex admiral, Kim Geon for 10 months. In the mean time, the two people are classified into a group of Chusa Kim Jeong Hee`s literati, and they were in common with conviction of exile due to their opposition to maternal relatives, Andong Kim`s political influence. Imjado for them was a Wonakji (a remote evil place) and functioned as a new cultural space to meet a political and cultural companion to share social intercourse as well at the same time. The fact that Cho Hee Ryong created various poetry and literary works and paintings including "Hwaguamnanmuk" etc., offers the evidence that his exile place experience played a role of cultural vital energy. The 19th century Imjado`s economic and cultural abundance was also a new experience to Cho Hee Ryong. It is related to the recent study results from which his exile in Imjado eventually contributed to qualitatively rapid progress of his poetry and literary works and paintings toward `rapid beauty` and `dynamic beauty.` Shinan-gun, Jeonnam province directed their attention to a plan of turning Imjado to a tourism source as Cho Hee Ryong exile place, and followed by putting up `a memorial of Cho Hee Ryong` in year 2004, they recently developed `Cho Hee Ryong Road` as well. Above all, in a point that the place Imjado gets awakened as a mediator of Cho Hee Ryong`s literary and artistic `traces,` it could be a very remarkable issue with regard to the middle-class literati in late Joseon dynasty. However, it is believed that if the placeness of Imjado is permanently to be meaningful, stimulative terms such as `holy place of Joseon literati paintings` etc. should be abstained and ref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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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과 월트 휘트먼 비교연구

            오영진 ( Oh Young-jin ) 국제어문학회 ( 구 국제어문학연구회 ) 2013 국제어문 Vol.58 No.-

            본 연구는 지금까지 가설로만 제기되었던 김수영 문학과 월트 휘트먼 문학의 관계를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몇 가지 신빙성 있는 단서들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주제에 대해 구체적인 접근시도가 없었던 이유는 양 시인의 작품 세계가 선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휘트먼은 풍요로운 미국의 자연풍경을 찬미하고, 시민들을 향해 사랑과 자유를 노래한 외향적인 시인인 반면, 김수영은 설움과 고독을 주된 정조로 주로 자신의 일상을 정직하게 반성하는 시를 주로 쓴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김수영이 초기부터 일관되게 주장하며 실천해온 `자유`나 `육체성`에 대한 강조, 보편세계를 지향하는 `사랑`이라는 주제의식에서는 휘트먼의 영향이 분명히 감지된다. 증언에 의하면 김수영은 그가 읽은 독서목록의 작가들을 최대한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하려고 노력한 작가이다. 때문에 김수영은 휘트먼적 주제를 자신의 시대와 상황에 맞게 변용하여 소화했다고 볼 수가 있다. 본고는 김수영 문학에 휘트먼 문학을 겹쳐 읽어봄으로써 김수영 문학에 휘트먼이 끼친 영향과 그 변용양상을 살펴본다. 이를 위해 본고는 통상 휘트먼 문학의 특징이라고 정리된 몇 가지 주제를 통해 김수영 문학을 읽어본다. 첫째, 1인칭 화자강조-성인페르소나의 설정문제와 육체성의 강조문제를 통해 김수영 문학에 끼쳤을 월트 휘트먼의 영향력을 추리해보았다. 물론 각각의 쟁점들은 `너무 헐렁한 양복`이어서 누구나 맞춰 입을 수 있다는 단점을 보였다고 본다. 하지만 1인칭 화자강조-성인페르소나와 육체성의 강조문제는 월트 휘트먼 고유의 개성으로 이 두 요소가 김수영 문학에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둘째, 분명한 차이점과 유사점을 발견하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주로 자연찬미나 이웃에 대한 사랑을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월트 휘트먼에 비해 김수영은 고독이나 설움 같은 현대적인 주제에 열중한 면이 있었다. 반면, `사랑`이라는 주제가 수평적인 이미 저리로 펼쳐지는 양상에서는 양자 간 유사성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카탈로그 식 열거는 월트 휘트먼 고유의 양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단순히 리듬이나 수사적 효과를 위해 도입된 것이 아닌 `사랑`이라는 내용이 형식적으로 구현된 것으로 평가된다. 김수영의 경우도 「사랑의 변주곡」이나 「풀의 영상」, 「거대한 뿌리」 등의 비교적 후기의 걸작들이 이와 비슷한 수법과 주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본 연구는 양자 간 관계를 실증적으로 추적하지 못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결론을 통해 김수영이 월트 휘트먼적이라고 평가하는 데에는 모자람이 없다고 주장한다. This paper aims to find out the relationship between Kim Su-young and Walt Whitman on literature, which has been strongly hypothesized. Despite of some reliable clues, there have been no specific attempts to make this clear because their works seem to be different distinctly each other. As Whitman was an extroverted poet who glorified rich scenery of nature in America and sang love and freedom, Kim Su-young wrote poems which reflected everyday honestly, filled with sorrow and solitude. Kim Su-young, however, had constantly empathized and practiced `freedom` and `corporeity` from earlier works and an inquiry into the universality of `love`, which exactly showed an influence of Whitman to him. Some evidences show that Kim Su-young sought to absorb the authors he read. And Whitman was also possibly absorbed into Kim Su-young`s works, modified with the times and conditions in his unique way. This paper plans to examine influence of Whitman and modified aspect to Kim Su-young`s works as read works of Kim Su-young and Walt Whitman together. For that, this paper reads Kim Su-young through Whitman`s thought. Firstly, I payed attention to emphasis on establishment of the first person narrative-that is a saint persona and on corporeity. Each point seems like "loose clothing" so it looks like every answers possible though, it is worth underlying both first person narrative(a saint persona) and corporeity which were the unique aspect of Whitman present in Kim Su-young`s work at the same time. Secondly, I attempt to reveal apparent similarity and distinction. Comparing with Walt Whitman`s work which mainly expressed admiration to the nature and love-thy-neighbour actively, Kim Su-young`s works focused on the modern problems like solitude and sorrow. However, the way of expressing `love`, which is the main theme and is presented horizontal imagery, is apparently similar to each other. Catalog technic is a unique style of Whitman, and it is not simply for a rhythm or rhetorical effect but for an embodiment of `love`. In case of Kim Su-young`s late works, `Sarang-eh Byen-ju-gok`(Love Variation), `Pul-eh Young-sang` (Image of Grass), `Geo-dae-han Puri`(Great root), also show an identical technic and theme. This paper has limitations to look deeper the influential relationship between Kim Su-young and Walt Whitman empirically. But the influential relationship from Whitman to Kim Su-young would come up in the conc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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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년필독』의 출간 배경과 논리 -국가주의 역사관의 성립과정을 중심으로

            이정찬 ( Lee Jung-chan ) 국제어문학회 ( 구 국제어문학연구회 ) 2013 국제어문 Vol.58 No.-

            본 연구는 『유년필독』의 사상적 기저를 이루고 있는 국가주의의 교육관의 기원을 살피고 그것의 의의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미 알려졌듯이 이 당시의 국가주의는 `존왕애국(尊王愛國)`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교육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이런 영향으로 인해 초기 근대지(近代知)의 보급과 확산을 목적으로 한 계몽적 교육관은 점차 역사(國史)와 윤리(倫理)를 바탕으로 한 국가주의 교육관으로 변모해갔고 이런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유년필독』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초기 보편적 시민 의식의 함양을 목적으로 한 교육 이념이 보수적 국가주의로 대체되고, 헤르바르트 교육학을 통해 `존왕애국`이 근대적 교육철학으로 분장(扮裝)되면서 교육 전반에서 최상위 목표로 부상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교육의 근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일제에 저항하는 교육의 내적 논리를 일부분 일본을 통해 수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이러한 모습은 최초의 근대적 교육학 저서라고 할 수 있는 『신찬교육학』을 통해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본 연구는 근대 초기 국가주의 교육이 성립되는 과정을 현채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이 역시 일부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 이면에는 여전히 복잡다단한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본 연구가 지향하는 것은 `외세에 대한 저항, 역사를 통한 민족의식의 고취` 등의 비교적 제한적인 요인에만 의존해왔던 기존 학계의 해석에 대해 사회 · 역사적인 측면에서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considering of the origin of nationalism and developing of its meaning. In this period, the nationalism had spreaded across the education`s society so the education of enlightenment was changed into the education of nationalism that grounded a national history and ethics. Yu Nyeon Pil Dok(1907) was shown this tendency. The loyalty of king and nation had changed into modern pedagogy and it`s value had occupied the most important one by the pedagogy of Herbart. This trend was imported into the our country and it was definitely proved by Sin Chan Pedagogy(1896). Through this process, this study wants to consider Hyeon Chae, The writer of Yu Nyeon Pil Dok(1907). Of cause this study was limited and there are manycomplex elements in the background of Yu Nyeon Pil Dok. But this study aims to arise new interpretation against prior academic circles` one.

          • KCI등재

            궁색한 시대, 김수영과 하이데거 - 「모리배」전후를 중심으로 -

            임동확 ( Lim Dong-hwak ) 국제어문학회 ( 구 국제어문학연구회 ) 2014 국제어문 Vol.63 No.-

            김수영 시인이 남긴 산문이나 일기, 시론과 증언 등에 따르면, 그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작가나 사상가들은 적지 않다. 특히 김수영의 경우 번역을 새로운 지식의 습득과 동시에 생계의 수단으로 삼은 바 있어 당대의 다른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국의 문학이나 사상과의 접촉이 활발한 시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폭넓고 다양한 독서행위를 통한 그의 지적 열정과 쉼 없는 번역활동이 자신의 시와 시론에 미친 영향을 따져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며, 그에 대한 성실한 연구물과 더불어 괄목할 만한 단행본들도 나와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그 연구나 논문들이 막연히 추측돼온 김수영과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명확히 밝히는데 한계가 있다. 바로 그것들이 정작 시 텍스트보다는 곁 텍스트에 주루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논문에서 하이데거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그의 시 「모리배」(1959)를 전후로 주로 김수영의 시 텍스트 상에 나타난 하이데거 사상 또는 예술론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그럼으로써 막연히 추측돼온 김수영과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전체적으로 김수영 시세계를 제대로 이해해 보고자 했다. 따라서, 연구자는 이 문제를 일상적 생활방식과 존재의 언어, 죽음에로 존재와 무의 출현, 인간거주의 척도로서 시 짓기와 시인의 사명 등을 주제별로 분류해 접근해 보았다. 그 결과, 김수영의 시 「토끼」가 보여주듯이 하이데거의 영향력이 최소한 1949년도까지 소급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존에 알려진 바와 달리, 그가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초반까지 주로 하이데거의 철학에 그 뿌리를 두고 많은 시를 창작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이유로든 4.19 혁명 직후 잠시 하이데거의 철학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가 죽었던 해인 1968년 무렵, 그의 시론詩論 「반시론」과 「시여, 침을 뱉어라」를 통해 하이데거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거론하거나 하이데거의 예술론을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변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그의 시 「미인」(1967), 「먼지」(1968), 「성」(1968) 등에서 하이데거의 예술이론을 반영하고 적용했다. 특히 그의 최후 작품으로 알려진 「풀」의 경우, 그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피지스`의 운동과 변화를 역동적으로 해석하고 성공적으로 승화함으로써 김수영 문학과 하이데거의 예술사상 사이의 지속적인 영향관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김수영과 하이데거는 일방적으로 그 영향을 주고받은 관계였는가? 우선 그것은 김수영의 문학이 단지 하이데거로 한정될 수 없는 다양한 지적 자양과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하고 점에서 그렇게 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오히려 그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마주하는 관계였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비록 시인으로 김수영과 사유가로서 하이데거 사이 서로 지울 수 없는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열려 있는 창조적대화의 관계였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리라 여겨진다. According to Poet Kim sooyoung`s prose, diary, poetics, and testimonies, he was influenced by many writers and thinkers. Particularly, because he constantly did translation out a living, relatively he was very active in the contact with foreign literacy and thoughts. Hence it is very natural to discuss for his intellectual passion and acts of translation in poems and literature world` impact. And the results are presented in sincere attitude` research and books. But these of research and theses have its limits to clarify relation about Kim and Heidegger. Because its relies on peripheral para-text rather than original poem-text. Hence in this these I tried to examine how Heidegger` thought and art theory were reflected, pivoting around his poem 「racketeer」 (1959) that had been known as first poem directly referring to Heidegger name. Thereby I intended to clarify what ambiguously had been believed to be between Kim and Heidegger`s relation. Only Because it is unsuitable and meaningless to search through time series study or arrange type. Thus here I tried to approach thematically classifying this thing into `ordinary living way and `being`s word`, `being to death[Sein zum Tode]` and appearance of nothingness,` `writing poem as criterion of human being residence and mission of poet` etc. As a result, I could confirm Heidegger`s influence to be retroactive to his poem 「rabbit」(1949) at least. And contrary to existing informations, I identified that he intensively had composed poems based on the Heidegger`s philosophy from the mid-1950s to early 1960`s. But after 4.19 Revolution he for awhile did not show poetic interest by dint of Heidegger`s philosophy for any reason. Then the year 1968 when he passed away, he also mentioned Heidegger`s name again directly, or simultaneously he interpreted and changed Heidegger`s art theory creatively in his poetics 「anti-poetics」 (1968), 「Poem, spit」(1968). In addition he reflected and applied Heidegger`s art theory to his poem 「beauty」(1967), 「dust」(1968), 「sex」 (1968) etc. Particularly, in his last poem 「grass」, he had understood dynamically and sublimated successfully in relation with Heidegger`s philosophy terminology `Physis`s motion and change. Therefore, it was revealed that between Kim and Heidegger there was lasting influencing relationship. If so, was he influenced by Heidegger unilaterally? It is improper to speak so, because his literary world have diverse intellectual sources and extensive knowledges beyond Heidegger`s influences. Rather than speaking so, It is suitable to say facing relation[das Gegen-einander-uber] mutually. Although poet Kim and philosopher Heidegger had impassable differences, it is exact to see them as an open creative conversation`s relationship.

          • KCI등재

            국어사 시대 구분과 20세기 초의 문법 변화

            허재영 ( Heo Jaeyoung ) 국제어문학회 ( 구 국제어문학연구회 ) 2017 국제어문 Vol.0 No.73

            이 논문은 국어사 시대 구분에서 20세기 전반기의 국어를 현대 국어로 설정하는 문제의 적절성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선행 연구에서 국어사의 시대 구분이 일치하지 않고, 학자마다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른 학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국어사학에서도 모든 연구성과가 획일적이어서는 안 된다. 또한 학문의 분화와 전문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른바 `통설`이나 `일반설`이 형성되고, 그것이 마치 상식처럼 해당 분야의 학문 세계에 전수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현재 국어사학계에서 국어사의 시대 구분과 관련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 문제는 이미 김종택(1985), 김상돈(1984) 등과 같이 비교적 오래 전부터 제시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특히 국어사 설정에서 가장 논란이 심한 `근대 국어`와 관련해서는 홍윤표(1994, 1995), 정광(1992) 등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 가운데 홍윤표(1994, 1995)의 문제의식은 기존의 국어사 시대구분이 `음운`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문법사`나 `어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이 점은 19세기∼20세기의 문헌을 연구하는 국어사학자들이라면, 그 시기의 국어 현상이 1920년대 이후의 국어와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쉽게 공감할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국어사 시대 구분과 관련한 쟁점 세 가지를 살펴보고, 이 시기의 문법 변화를 고려할 때, 이 시기의 국어를 현대 국어와 구분하여 근대 국어로 설정하는 것이 적절함을 주장하고자 하였다. 이 시기 국어 변화에서 주목할 사실은 1900년대와 1920년대 국어의 모습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문체상의 변화와 국어의 단문화 경향이다. 이 점에서 이 시기를 현대 국어 시기에 포함하는 것은 다른 학문 분야의 시대 구분과도 일치하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This paper aims at exploring the appropriateness of the Korean language history about the early 20<sup>th</sup> century. To be Precise, I think that the Korean language had a lot of change from 1895 to 1910. These change were not only sound changes but also grammar and lexical items. According to the common view, the Korean language history divided into Ancient Times(Prior to the Unified Silla), Middle Age(From Koryeo to the closing of the 16<sup>th</sup> Century), Early Modern Language(From the 17<sup>th</sup> Century to the Gabo Reform of 1894), and Modern Language(After the Gabo Reform). These division were not suitable because of the rapid change in the modern Korean language. The appearance of proposition YO(요), increase of vocabularies, shortened sentences and unity of speech and writing were representative language change in modern Korean language. These change began in the 1880`s and became established in the 1920`s. I think that these changes should be included in the early modern time in Korean language history.

          • 조선 아동문화의 태동기 일본인 활동에 관한 연구 - 쇼쿄쿠사이 덴카쓰 이치자의 조선 아동연극공연을 중심으로 -

            김성연 국제어문학회 ( 구 국제어문학연구회 ) 2018 국제어문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Vol.2018 No.1

            한국에서 최초로 한글로 활자화 된 아동극의 대본은 『어린이』 창간호(1923년 3월20일)에 소개된 「동화국 노래주머니」이다. 한국의 아동문학, 아동문화의 본격적인 출발은 천도교 소년회를 주도하던 방정환이 중심이 되어 1923년에 설립된 색동회의 활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어린이』가 창간되기 무려 10여 년 전부터 경성일보사가 주최한 구연동화회가 빈번하게 열리고 있었으며, 일본에서 이와야 사자나미(巖谷小波)나 구루시마 다케히코(久留島武?)와 같은 아동문학가들이 초빙되어 조선 각지를 순회하며 구연동화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또한 1916년부터 경성일보에는 어린이를 위한 칼럼이 만들어져서 동화가 연재되었다. 한국 아동문학, 아동문화의 성립 배경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일본인들의 활동에 관한 연구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에서 행해진 일본인들에 의한 아동문학이나 아동문화에 관한 선행연구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오타케 기요미(大竹聖美, 2002)에 의해 몇몇 아동문학가들의 조선 방문이 소개된 후, 김성연(金成?, 2008)에 의해 일본인들의 조선 구연동화 활동 연표가 작성되는 등 구연동화 활동의 전체적인 흐름은 밝혀 졌지만, 구연동화 이외의 아동문화 활동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찾아 불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구연동화에 초점을 맞춰서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행해진 일본인 문학가들의 활동에 대해 연구해 왔지만, 최근 경성일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본 최초의 여자맘술사인 쇼쿄쿠사이 덴카쓰(松旭?天勝)가 경성에서 아동연극공연을 한 자료를 발견하였다. 1901년부터 5년간 미국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일본에 돌아와 최초로 미국식마술 쇼를 상연하여 큰 인기를 끈 덴카쓰는 메이지 시대의 국민적인 마돈나였다. 1915년 9월부터 51일간 경복궁에서는 일본의 조선 통치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조선 물산 공진회가 개최되었는데 같은 기간 경성일보사는 가정박람회를 열어 관객몰이에 주력했다. 덴카쓰의 공연도, 가정박람회에 보다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해 경성일보사가 기획한 것이었다. 연일 무대 공연뿐만 아니라 유니크한 이벤트에 덴카쓰를 등장시켜 끊임없이 화제몰이를 하였다. 10월 10일부터 19일까지 예정됐던 덴카쓰의 공연은 매일 관객들로 가득 찼고 인기에 힘업어 매번 연장되더니 결국 11월 6일까지 공연을 했다. 순종의 만찬회에도 불려가 공연을 하고 많은 하사품을 받기까지 했다. 명실상부 당대 최고의 마술사 덴카쓰가 경성에서의 마지막 공연에 올린 작품이 이와야 사자나미 원작의 아동연극이었다. 본고에서는 구연동화와 아동연극으로 대표되는 근대 일본 아동문화의 흐름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만나지는 덴카쓰의 조선 공연의 전체 내용을 소개하는 동시에 이 자료를 앞으로의 연구의 초석으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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