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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 프랑스 여행가에게 인식된 한국의 시와 노래 - 조르주 뒤크로(Georges Ducrocq)의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Pauvre et douce Corée)』[1904]에서 논의된 한국시가의 면면 -

        김승우 한국시가학회 2021 韓國 詩歌硏究 Vol.54 No.-

        본고에서는, 1901년에 한국을 방문하고 당시의 견문을 수년 후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Pauvre et douce Corée)』이라는 제목의 여행기로 출간했던 프랑스 시인 조르주 뒤크로(Georges Ducrocq)의 한국시가에 대한 인식과 논평을 검토하였다. 뒤크로는 자신이 관찰한 사항만을 다루려는 지향과 상상력을 발휘하여 한국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재구하려는 지향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전자는 ‘관찰자’적 지향이라 칭할 수 있다. 한국을 분석이나 교화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한 발치 물러선 위치에서 한국인의 일상 풍경을 글로 옮기려 하였기 때문이다. 후자의 지향은 ‘직관’에 해당한다. 뒤크로는 자신이 접할 수 없는 한국인의 삶의 심층에도 관심을 두고서 나름의 직관으로 그 내막을 채워 나갔던 것이다. 양자를 종합하면 뒤크로는 ‘직관적 관찰자’의 입장에서, 또는 ‘관찰자적 직관’을 발휘하여 자신의 한국 체험을 서술하였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한국의 시와 노래에 대한 뒤크로의 인식을 살필 때에도 깊이 있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한국시가에 대해 당시까지 가장 학술적인 접근을 시도했던 인물은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이다. 그러나 같은 프랑스인이지만, 쿠랑과 뒤크로가 한국시가를 다루는 방식과 목적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쿠랑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한국시가의 존재 양상을 기술하려 한 반면, 뒤크로는 한국시가 자체의 존재상보다는 작품에 담긴 한국인의 정서와 일상 등 내용적 측면을 중시하였고 그 이면의 사정을 직관적으로 포착하는 데 유념하였다. 쿠랑과 뒤크로 사이의 이 같은 편차는 한국시가를 논의했던 영미권 인사들 가운데 제임스 게일(James Gale)과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가 노정했던 편차와도 유사하다. 뒤크로는 자세한 시적 상황을 번역시에 개재하였던 헐버트의 영역 작업에 공감하였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헐버트의 의역 방식에 따르면서도 뒤크로는 작품 본연의 맥락을 가급적 되살리려는 중용을 택하기도 하였다. 원작에 비교적 충실한 게일의 영역을 취하되, 유사한 주제를 지닌 서너 편의 시조를 하나의 맥락으로 재편함으로써 원작의 의미를 보존하면서도 서구 독자들이 한국시가의 느낌을 한결 용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종의 ‘엮음’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뒤크로는 일부 시구 또는 시행을 누락하거나 원작에는 없는 표현을 삽입하여 시상을 자연스럽게 연결 짓는가 하면, 시조가 지닌 세 단계의 전개 방식을 번역시에 어떻게든 드러내고자 조처하였다. 아울러 뒤크로는 한국의 속담에서 발견되는 응축적이고 생기발랄한 표현력이 한국문학의 저변을 이룬다고 서술하였는데, 이는 속담과 한국시가의 표현 양상이 매우 유사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한편, 한국시가에는 고달픈 현실의 문제보다는 시간을 초월한 보편적 정서가 많이 나타난다는 뒤크로의 총평도 주목된다. 그의 언급은 질곡으로 점철된 한국인의 삶에 한국시가가 최적의 가치를 지닌다는 적극적인 평가와 잇닿아 있다. 어느 시대나 사회에서든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정서를 환기함으로써 고난에서 한 발 비껴 설 수 있는 계기를 한국인들은 문학, 특히 시가를 통해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한국시가 작품을 여러 편 번역하여 프랑스 독자들에게 선보였던 이유도 한국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가를 살펴야만 한다고 판단하였기 ... A French poet Georges Ducrocq visited Korea in 1901 and published a travelogue titled Pauvre et douse Corée(Poor and Douce Korea) several years later. This study examined his perception of Korean poetry found in this book. Ducrocq intended to describe only the things he observed and the intention to depict the lives of Koreans in detail by activating his imagination. The former can be called the orientation as an ‘observer’ because he did not consider Korea as an object of analysis or edification but tried to write down the daily lives of Koreans from a distance. The latter orientation corresponds to ‘intuition’. Ducrocq was interested in the vivid life of Koreans that he could not see and imagined it with his intuition. So, it can be summarized that Ducrocq described his experiences in Korea from the standpoint of an ‘intuitive observer’ or by demonstrating his ‘intuition as an observer’. This point should be considered in depth when examining his perception of Korean poetry. The person who attempted the most academic approach to Korean poetry up to that time was Maurice Courant. However, although they are both French, there is a clear difference in the way and purpose of discussing Korean poetry between Courant and Ducrocq. While Courant tried to describe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poetry as objectively as possible, Ducrocq emphasized the contents of Korean poetry, such as Korean emotions and daily life, rather than its literary form, and he was careful to intuitively capture the situations behind the text. Such a difference between Courant and Ducrocq is ​​similar to that of James Gale and Homer Hulbert, the Anglo-American missionaries who discussed Korean poetry. Ducrocq sympathized with Hulbert’s translation, which contained detailed poetic situations not found in the original text. However, while following Hulbert’s paraphrase method, Ducrocq chose the middle way to revive the work's original context as much as possible. He used Gale’s translation of sijo poems, which reflects the meaning and form of the original work relatively well, but reorganized three or four sijo poems with similar themes into one context. In this way, while utilizing the original work's meaning, Western readers were able to accept the feeling of Korean poetry more easily. Such a method can be called ‘weaving’. In the process of translating, he tried to smooth the poem's flow by omitting some phrases and lines or inserting expressions that were not in the original work and to reveal the three stages of development of sijo poetry in his translation. In addition, Ducrocq described that the condensed and lively expressions found in Korean proverbs form the basis of Korean literature, which means that the expression patterns of Korean proverbs and poetry are very similar. Meanwhile, attention is also paid to his general opinion that universal emotions that transcend time appear more frequently in Korean poetry than the problems of painful reality. His comments are linked to a positive evaluation that Korean poetry has the best value in the lives of struggling Koreans. It is said that Koreans provided an opportunity to step aside from hardship by evoking emotions that can be universally felt in any era or society through literature, especially poetry. Ducrocq translated several works of Korean poetry and presented them to French readers because he decided that to understand the life of Koreans, one had to know their poetry. In this regard, Ducrocq can be evaluated as having carried out a very advanced and full-scale search compared to any other Westerners of this period who discussed Korean literature.

      • KCI등재

        韓國古詩歌文學會의 硏究活動과 그 成果 - 학회 창립 20주년을 즈음하여

        박준규 한국시가문화학회 2011 한국시가문화연구 Vol.0 No.27

        한국고시가문학회에서는 그 동안 매년에 걸쳐 학술연구 발표대회를 가졌고, 학회지로서 『古詩歌硏究』를 발간하는 등 고시가 연구의 활발한 연구를 꾸준히 계속하여 왔다. 학술 발표대회는 금년까지 23회를 개최하였는데, 그 동안 수행되었던 연구발표의 안건은 총 102건이요, 대회에 임한 학술연구 발표자 수는 56명에 이른다. 또한 회원들의 꾸준한 학문연구로서 추진한 학회지 『고시가연구』는 제27집의 발간을 예정하고 있다. 제25집까지 게재된 논문의 수는 총 316편이요, 그 집필자 수를 헤아리면 112명에 이른다. 이는 학계 절대 다수의 연구진이 참여한 방대한 논문집의 출간이라 하겠다. 한편 학술발표에는 주요 과제를 공동연구의 특별 주제로 내세워 전국대회를 8차에 걸쳐 개최하기도 했다. 특히 송강 정철의 생애와 문학, 사대부가사의 전통과 미학, 고시가의 정체성과 미학, 고시가 연구 방법론의 검토와 모색 등 흥미 있는 주제 논의는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학회지에 발표된 316편의 논문은 고전시가 전반에 걸쳐 심층적으로 연구된 결과이다. 이를 시가 유형별 비중으로 보면 가사와 시조 그리고 한시 등에 대한 논총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가사문학 연구의 업적이 대단하였음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송강문학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작가론 또는 문학론의 탐색이 다양하게 모색되었다고 하겠는데, 본 학회지에 발표된 정철관계의 다양한 연구들은 ‘송강문학 재인식’의 한국고시가문학회에서는 그 동안 매년에 걸쳐 학술연구 발표대회를 가졌고, 학회지로서 『古詩歌硏究』를 발간하는 등 고시가 연구의 활발한 연구를 꾸준히 계속하여 왔다. 학술 발표대회는 금년까지 23회를 개최하였는데, 그 동안 수행되었던 연구발표의 안건은 총 102건이요, 대회에 임한 학술연구 발표자 수는 56명에 이른다. 또한 회원들의 꾸준한 학문연구로서 추진한 학회지 『고시가연구』는 제27집의 발간을 예정하고 있다. 제25집까지 게재된 논문의 수는 총 316편이요, 그 집필자 수를 헤아리면 112명에 이른다. 이는 학계 절대 다수의 연구진이 참여한 방대한 논문집의 출간이라 하겠다. 한편 학술발표에는 주요 과제를 공동연구의 특별 주제로 내세워 전국대회를 8차에 걸쳐 개최하기도 했다. 특히 송강 정철의 생애와 문학, 사대부가사의 전통과 미학, 고시가의 정체성과 미학, 고시가 연구 방법론의 검토와 모색 등 흥미 있는 주제 논의는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학회지에 발표된 316편의 논문은 고전시가 전반에 걸쳐 심층적으로 연구된 결과이다. 이를 시가 유형별 비중으로 보면 가사와 시조 그리고 한시 등에 대한 논총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가사문학 연구의 업적이 대단하였음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송강문학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작가론 또는 문학론의 탐색이 다양하게 모색되었다고 하겠는데, 본 학회지에 발표된 정철관계의 다양한 연구들은 ‘송강문학 재인식’의 괄목할 성과로 평가된다. 괄목할 성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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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한말 선교사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의 한국시가 인식

        김승우 ( Seung U Kim ) 한국시가학회 2011 韓國 詩歌硏究 Vol.31 No.-

        본고는, 구한말 국내에서 교육과 선교 사업을 펼쳤던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訖法, 轄甫, 1863~1949)의 한국문학 관련 논의, 특히 詩歌관련 논의들을 발굴·검토하는 데 목적을 둔다. 헐버트는 제임스 게일(James Scarth Gale, 奇一, 1863~1937)과 더불어 한국문학에 대한 고찰과 논의를 주도했던 구한말의 서양인으로서, 그가 한국문학에 관해 본격적으로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 시점은 1896년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는 한국의 歌樂과 詩가서구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언급하였으나, 게일과는 달리 양자 사이의 차이를 인정할 뿐 발달과 미발달의 이분법적 잣대를 적용하지는 않았다. 서양인이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인도 서양의 것에 취미를 두지 않는다는 상호적인시각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는 한국의 가악에 대해서는 물론 문학, 더 나아가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그의 기본적인 관점을 대변하는 것으로 분석되는데, 그처럼 헐버트는 한국의 문화적 요소들을 긍정하는 한편, 가급적 한국문화의 독자적 성격도 도출해보고자 시도하게 된다. 한국의 시가에 대한 관심에서 촉발된 헐버트의 연구는 소설에 대한관찰로 이어지고, 극에 대한 논평으로 귀결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로써 그는 서구문학의 삼분 장르 구도, 즉 시·소설·극이라는 서구문학의 장르가 한국문학에 빠짐없이 존재한다는 논의의 발판을 모두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시가와 문학에 대한 헐버트의 이 같은 견해는 게일의 한국문학관과는 판연하게 대립되는 것이었다. 게일은 한국문학이 중국문학의 전범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처럼 중국적 요소들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부면에서 오히려 한국문학의 특장이 발견될 수 있다는 의견을 표명한 반면, 헐버트는 한국문학이 영문학을 비롯한 서구의 문학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을 뿐 아니라, 그 수준 또한 서구의 것에 필적하거나 때로 그것을 넘어서기도 한다는 인상을 전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시각차가 노정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수차례 誌上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편, 한국문학에 대한 헐버트의 우호적 태도가 당시 서구인들에게 한국문학의 면면을 소개하는 데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만을 산출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헐버트의 논리 속에서 한국의 時調는 소재만 한국의 것으로 바뀐 영시의 등가물이었으며, 그에 의해 서사적 스토리를 지닌 형식으로 ``영시화``된 채 소개된 시조 역시 비록 서구인들에게 그 존재가 알려진다 해도 관심권에 들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20세기 초반 서구 문인들이 漢詩와 하이쿠(俳句)에 그토록 관심을 보였던 이유가 이들 단형의 동아시아 시가에 내재된비약, 함축, 집중화된 이미지 때문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한국의 문학을 서구에 소개하고자 했던 헐버트의 활동은 그 방법론적 측면에서 공과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This paper is aimed at looking into the western missionary, Homer B. Hulbert`s writings on Korean literature-specifically, Korean poetry in the Greater Korean Empire. Hulbert, one of two leading westerners with James S. Gale in the study of Korean history and culture in the 1890s and 1900s, started to present his viewpoints of Korean music and poetry in the Korean Repository in 1896. Although he mentioned that both Korean music and poetry were thoroughly different from those of the western world, he merely displayed and explained the differences while Gale often applied a dichotomy between development and lack of development to the Korean culture. Instead, Hulbert frankly admitted that Koreans liked the western culture as little as the westerners liked the Korean. Hulbert researched various Korean cultural elements on the basis of such a mutual understanding, with which he not only took an affirmative view of Korean culture, but also tried to reveal its unique characteristics as much as possible. Especially, in the studies of Korean literature, his concern firstly stirred by his interest in Korean vernacular poetry spread to novels or fiction and finally, drama. As a result, Hulbert arrived to the conclusion that Koreans, like the westerners also had three major literary genres (poetry, novel, and theatre). Hulbert`s such amicable views of Korean literature often conflicted with Gale`s negative comprehension. Gale frequently emphasized that Korean literature had followed the Chinese classical models for thousands years and that its literary merit also could be derived from its active obedience to the Chinese ideals. On the contrary, Hulbert stressed the high standard of Korean vernacular literature and its fundamental resemblance to the western one. Consequently, they sometimes argued with each other in regards to determining the reasonable view for Korean literature. However, Hulbert`s friendly attitude to Korea didn`t always have positive effects on introducing Korean literature to the western world. For example, he dealt with and presented Korean Sijo(時調) as if it were equivalent to English poetry; furthermore, he translated Sijo in English filling up certain narrative contents which were not included in the original texts. Western poets and writers in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were particularly interested in East Asian short poetry, such as Chinese poetry(漢詩) and Japanese Haiku(俳句), mostly because of their literary leap, implication, and condensed imagery. Consequently, Hulbert`s attempt to make Korean Sijo appear similar to narrative poetry actually led westerners to think Korean vernacular poetry was not as special, or as interesting as the Chinese or Japanese.

      • KCI등재

        기획 : 한국고시가문학회(韓國古詩歌文學會)의 연구활동(硏究活動)과 그 성과(成果) -학회 창립 20주년을 즈음하여

        박준규 한국고시가문학회 2011 한국시가문화연구 Vol.0 No.27

        한국고시가문학회에서는 그 동안 매년에 걸쳐 학술연구 발표대회를 가졌고, 학회지로서 『古詩歌硏究』를 발간하는 등 고시가 연구의 활발한 연구를 꾸준히 계속하여 왔다. 학술 발표대회는 금년까지 23회를 개최하였는데, 그동안 수행되었던 연구발표의 안건은 총 102건이요, 대회에 임한 학술연구 발표자 수는 56명에 이른다. 또한 회원들의 꾸준한 학문연구로서 추진한 학회지 『고시가연구』는 제27집의 발간을 예정하고 있다. 제25집까지 게재된 논문의 수는 총 316편이요, 그 집필자 수를 헤아리면 112명에 이른다. 이는 학계 절대 다수의 연구진이 참여한 방대한 논문집의 출간이라 하겠다. 한편 학술발표에는 주요 과제를 공동연구의 특별 주제로 내세워 전국대회를 8차에 걸쳐 개최하기도 했다. 특히 송강 정철의 생애와 문학, 사대부가사의 전통과 미학, 고시가의 정체성과 미학, 고시가 연구 방법론의 검토와 모색 등 흥미 있는 주제 논의는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학회지에 발표된 316편의 논문은 고전시가 전반에 걸쳐 심층적으로 연구된 결과이다. 이를 시가 유형별 비중으로 보면 가사와 시조 그리고 한시 등에 대한 논총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가사문학 연구의 업적이 대단하였음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송강문학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작가론 또는 문학론의 탐색이 다양하게 모색되었다고 하겠는데, 본 학회지에 발표된 정철관계의 다양한 연구들은 ``송강문학 재인식``의 괄목할 성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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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시가사 시대구분 시안(試案)

        성호경 ( Ho Gyong Seong ) 한국시가학회 2015 韓國 詩歌硏究 Vol.38 No.-

        이 글은 체계적이고 충실한 한국시가사 서술의 바탕이 될 수 있을 시대구분의 시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한국시가사의 적절한 시대구분은 역사 시대구분의 의의를 구현하면서 시가사의 실상과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 필자는 한국시가사의 범위를 한민족이 이루어낸 시가들의 총체로정하고, 시대구분의 원리와 방법에 대해 살펴본 뒤, 기존 시대구분들을 검토하여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그리하여 시가 장르들의 발달과 정치적·문화적 환경 그리고 주요 변화의 시기들을 고려해서, 시가 장르의 사적 발달에서의 진행과 변화 위주로 시대구분의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였다. This paper presents a draft plan of periodization, which can be used as a foundation for systematic and fruitful description of history of Korean poetry. Proper periodization should realize the significance of periodization, while coinciding with facts in the history of poetry. Therefore, I began by setting the scope of history of Korean poetry to cover the whole poetry―including poetry in archaic Chinese and modern free verse―produced by Korean people, and then looked into principles and methods of periodization. After that, I examined the major problems in existing periodizations. Finally, I sought a concrete plan of periodization that could encompass overall progress and changes in historical development of Korean poetry, taking the followings into consideration: development of poetic genres, its political- cultural environment, and time of important changes.

      • KCI등재

        일반논문 : 영호남사림(嶺湖南士林)과 금남최부(錦南崔溥)

        최한선 한국고시가문학회 2011 한국시가문화연구 Vol.0 No.27

        崔溥(1454-1504)는 耽津人으로 자는 淵淵호는 錦南인데 進士澤의 아들이다. 나면서부터 異質하여 剛毅精敏했다고 한다. 금남은 점필재의 문하로서 戊午士禍(1498) 시 그의 집안에 점필재집이 있다는 이유로 訊問을 받고 杖刑을 받은 뒤 端川에 유배되었다가 甲子士禍(1504) 때 處刑되었다. 금남은 호남인으로서 占畢齋의 학문을 직접 받아들여 이 고장 士林의 발흥에 크게 기여한 첫 번째 세대로 평가받고 있다. 그 당시 점필재와 어깨를 나란히 한 호남 선비로는 竹林曺秀文인데 그는 담양 竹林書院에서 배향되고 있거니와 그의 아들 雲穀曺浩는 점필재의 문하로서 汝忠, 汝諶등 문학으로 훌륭한 후손을 많이 배출했다. 安裕-權溥-李穀-鄭夢周-吉再-金淑滋-金宗直-崔溥로 이어지는 학맥은 安裕-權溥-李穀-鄭夢周-吉再-金淑滋-金宗直-金宏弼로 이어지는 학맥과 함께 호남 사림의 깊이와 폭을 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최부는 후생의 敎導에 미미不倦하였는데 해남의 邑을 밑아 있을 때 그 곳은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어 文學이란 게 없고 禮儀또한 荒陋했는데 금남은 正論으로써 陋俗을 변화시켰다고 한다. 이때 漁樵隱尹孝貞과 林遇利그리고 柳桂隣등을 부지런히 가르쳤는바 이들을 보고 온 고을 사람들이 翕然하여 마침내 文獻之邦이 되게 했다고 한다. 호남의 사림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 말 할 수 있겠다. 먼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王朝交替期(1392)와 世祖의 王位簒奪事件(1455) 때 입향 또는 낙향해 온 세력과 다음으로는 安裕-權溥-李穀-鄭夢周-吉再-金淑滋-金宗直-崔溥로 이어지는 이른바 영남을 통하여 호남에 뿌리를 내린 계열을 들 수 있겠다. 호남 사림은 대체로 金宏弼, 崔溥, 宋欽, 樸祥, 李恒, 金安國계열 등으로 나누는데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樸祥을 제외한 모두가 金宗直淵源임을 알 수 있다. 宋欽도 김굉필을 私淑했으니 송흠을 연원한 박상도 어떤 면에서는 같은 뿌리라고 말해도 무방하겠다. 최부 계열은 주로 海南과 羅州에서 활약한 인물들이다. 금남 학맥은 尹孝貞, 林遇利, 柳桂隣, 羅질, 尹衢, 尹巷, 尹行, 尹復, 柳成春, 柳希春, 李仲虎, 鄭介淸, 羅士침(錦南의 外孫子), 羅德明등 6 兄弟, 羅緯素(羅德埈의 子) 등으로 이어진다. 최부의 호남학맥은 安裕-權溥-李穀-鄭夢周-吉再-金淑滋-金宗直-崔溥(1454-1504)로 이어지는 사림의 正脈이었다.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사림들은 韓國儒學史上 또는 韓國文學史上과 韓國義兵史등에서 뚜렷한 足跡을 남긴 인물들이 다수 배출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문하들이 이룬 호남학에서의 문학적 성과는 浪漫的情緖라는 風流性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열어보였다는 데서, 곧 溪山風流를 표방한 부류와는 시 세계를 달리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부여할 수 있겠다. 그의 史學, 文學, 經學등 학문적 영향은 해남과 나주를 중심으로 湖南學의 정립에 큰 기여를 하였는데 특히 文學에서는 17세기 중반까지(羅緯素: 1582-1666) 약 2세기 동안 그 전통이 활발히 이어져 나왔고, 그 이후에도 羅景煥(性菴家藏), 鄭錫珍(蘭坡遺稿), 羅允煦(錦坡集), 羅燾圭등으로 20세기까지 계승되면서 근현대 문학으로 移行되었다. 崔溥(1454-1504) 字淵淵,號錦南,明朝朝鮮全羅道耽津(卽今韓國康津郡),進士澤的兒子。崔溥是占畢齋(金宗直)門下,不幸戊午士禍(1498)時因家裏被發現占畢齋文集,他受杖刑後流放到偏僻端川,然後甲子士禍(1504)時被處刑。錦南崔溥被評爲韓國湖南士林人脈的第一個世代。連接安裕-權溥-李穀-鄭夢周-吉再-金淑滋-金宗直-崔溥的一些人的學脈근連接安裕-權溥-李穀-鄭夢周-吉再-金淑滋-金宗直-金宏弼的學脈對韓國湖南士林的形成和發展起了흔大的影響。韓國湖南士林分爲兩大類。朝鮮王朝交替期(1392)和世祖的簒奪王位事件(1455)時入鄕或被露鄕的勢力。前者是光州出身錦城範氏範世東、羅州出身河東鄭氏鄭地、天安全氏全新民、在鄕下隱居的沃川趙氏趙瑜、光山金氏金子進、金麟厚祖先蔚山金氏金穩、光州卓氏卓光武等。後者世祖的찬奪王位事件時在鄕下隱居的是順天金氏的金宗瑞、流放到長興的晉州鄭氏鄭분、在靈巖隱居的南平文氏文孟和、在光山隱居的樸祥的父親忠州樸氏樸智興、在務安隱居的務安樸氏樸益卿、在長興隱居的忠州金氏金麟、在高興隱居的礪山宋氏宋侃、在淳昌隱居的高靈申氏申末舟、在羅州隱居的慶州李氏李碩、在海南隱居的原州李氏、在潭陽隱居的洪州宋氏、在鹹平隱居的陽城李氏、在靈巖隱居的鹹平魯氏魯宗周等。其次是嶺南系的安裕-權溥-李穀-鄭夢周-吉再-金淑滋-金宗直-崔溥學脈。湖南士林分爲金宏弼、崔溥、宋欽、樸祥、李恒、金安國系, 細看湖南士林的分類分析, 除了樸祥以外都是其淵源在金宗直。崔溥系主要是在海南和羅州活動的人物。崔溥學脈是尹孝貞、林遇利、柳桂隣、羅질、尹衢、尹巷、尹行、尹復、柳成春、柳希春、李仲虎、鄭介淸、羅士침(錦南的外孫子)、羅德明等6兄弟、羅緯素(羅德埈的兒子)等人。住在海南蓮洞的尹孝貞是孤山尹善道的高祖父, 以근海南鄭氏家婚姻爲跳板復興名門貴族。尹孝貞的三個兒子橘亭尹衢、尹行、杏堂尹復是公認的詩書門弟。尹衢的兒子曆任左參贊, 他的兒子尹惟幾曆任江原道觀察使。他抱養了尹善道繼承下來了海南尹氏家的榮譽。孤山尹善道寫瞭『孤山遺稿』『漁父四時詞』40首等75首詩歌。孤山尹善道與長歌松江一同稱爲韓國文學界的皇帝。此外尹氏家在壬辰倭亂和丁酉再亂中培養出了許多的義兵將,在救國運動中立了大功。尹衢的女서履素齋李仲虎是在光州初次實行鄕約, 以鄕校爲中心振作了儒學。他曆任全羅監査和大提學,有四子汲、潑、潔、직。杏堂尹復曆任全羅道使、忠淸道觀察使,寫出了『杏堂先生遺稿』及許多漢詩。杏堂的甥姪楓菴文緯世在退溪門下學了「八陳圖」,硏究了性理學。壬辰倭亂和丁酉再亂中근5個兒子、奴僕、弟子一起擧行了義軍蜂起,特別是在自籌軍糧米中做出了흔大貢獻。.柳桂隣有兩個出衆的兒子懶齋柳成春和眉巖柳希春。柳成春同尹衢、崔山斗被稱誦爲湖南三傑,又曆任了吏曹銓郞,但因己卯士禍時被流放到邊疆幷夭折的緣故沒留下特別的業績。柳希春寫出了有名的『眉巖日記』。『眉巖日記』是從宣祖卽位年(1567)起十年時間裏的公私內容的日記,在當時曆史硏究上흔有硏究價値。他校訂『朱子大典』,編纂『國朝儒先錄』,寫出『眉巖集』,還刊行外祖父崔溥的『漂海錄』。流放到鏡城的羅德明在流配地遇到壬辰倭亂,在戰亂中討伐鞠景仁等的叛亂留以功績。也有文學方面的知識流傳『嘯浦遺稿』。他兒子羅緯素是短歌『江湖九歌』的作者。他的詩歌作品和孤山尹善道的『漁父四時詞』相提幷論,又被評爲江湖詩歌潮流的繼承。羅德憲從流配地被釋放後壬辰倭亂和李適之亂(1624)時立下了功勳,而且善於外交的他訪問了三次瀋陽,被國王稱爲忠烈諡號。林遇利是善山人,其父秀的四個兒子元、亨、利、貞中排老三。林亨有五個兒子千齡、萬齡、億齡、百齡、九齡都是賢達。林千齡被追贈領議政,寫出了『遯庵先生文集』。林九齡曆任光州牧使以善政被稱爲淸官的稱誦。林百齡被追贈右議政,乙巳士禍時受禍了。林億齡(號石川)是韓國湖南歌詞的詞宗,被退溪、栗穀、聽松、玉峰、高峰、河西、龜峰等盛贊叫大詩人。同霽峰高敬命、松江鄭澈、棲霞堂金成遠等一起有時以朋友交流,有時以師弟關系交遊,開展了不拘一格,又不失氣稟和格調的講學與詩的創作活動。從上述來看崔溥的湖南學脈是連接安裕-權溥-李穀-鄭夢周-吉再-金淑滋-金宗直-崔溥(1454-1504)的韓國士林正脈。從崔溥門下輩出的人在韓國儒學史上、韓國文學史上、韓國義兵史上都有흔多影響。他門下一些人的文學方面的成就因근以前浪漫情緖的不一樣,근標榜溪山風流的當時詩歌派的不一樣,有著更深的意義,他們創作了新詩歌世界。他的史學、文學、經學等學問的影響對以海南和羅州爲中心成立的湖南學有흔大貢獻。特別是在文學方面直到17世紀中期(羅緯素1582-1666)還活潑地流傳了下去。此後以羅景煥(性菴家藏)、鄭錫珍(蘭坡遺稿)、羅允煦(錦坡集)、羅燾圭等形式繼承到20世紀的文學,現在移行到了近現代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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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과 가사문학

        고순희 ( Soon Hee Ko ) 한국고시가문화학회(구 한국고시가문학회) 2014 한국시가문화연구 Vol.0 No.34

        이 연구는 한국전쟁 당시의 경험을 서술한 가사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사는 총 7편으로, <회심□> <원한가> <고향 □난 회심곡> <피란사> <나라의 비극> <추월감> <셋태비감> 등이다. <추월감>을 제외한 모든 자료는 학계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먼저 각 가사 자료의 확인된 소재지를 정확하게 밝혔다. 그리고 작품 내용의 분석을 통해 각 가사가 한국전쟁과 관련한다는 점, 가사의 창작연대, 작가의 성별, 창작 당시 작가의 나이 등을 고증했다. 다음으로 한국전쟁을 직면한 작가의 입장을 분석했다. 국군과 인민군 중어느 한 편의 입장을 벗어나 전쟁 자체에 대한 반감에 초점을 두고 서술한 가사는 <회심□>, <나라의 비극>, <피란사> 등이다. 국군의 입장에서 서술한 가사는 <원한가>와 <고향 □난 회심곡>이다. 그리고 좌우갈등의 문제를 서술한 가사는 <추월감>과 <셋태비감>이다. 마지막으로 이들 가사 작품의 문학사적 의미를 규명했다. 가사문학이 한국전쟁 당시까지도 장르적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는 점, 한국전쟁 당시 한국인의 경험과 입장들을 다양하게 반영하는 다큐멘터리로 기능한다는 점, 한국전쟁 당시 동족상쟁의 비극성을 한탄하고 전쟁 자체를 강하게 거부하는 한국인의 일반적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이들 가사 작품의 문학사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This article researched the texts of Gasa which describe the experience of the writer in the period of Korean War. To obtain the texts of Gasa which describe the experience of the writer in the period of Korean War, I have extensively investigated the collections of manuscrips and printing books. As a result, seven pieces of Gasa were corrected until now. These are <hoesimsa>, <Wonhanga>, <Gowhyang-dduhnan-hoesimgok>, <Peeransa>, <narayi-beeguk>, <Chuwolgam>, <Setebigam>. Until now the academia did not pay attention to these texts of Gasa except <Chuwolgam>. First of all, I presented the texts of Gasa which describe the experience of the writer in the period of Korean War. And through the analysis on the contents of work I proved the writer, writing age, the fact that each work was related to The Korean War, and whether the writer is a woman or a man. Next, I analyzed the position of each writer facing the Korean War. Gasa which describe the antipathy to the war itself are <hoesimsa>, <narayi-beeguk>, <Peeransa>. Gasa which describe in the position of Southern soldiers are <Wonhanga>, <Gowhyang-dduhnan-hoesimgok>. Gasa which describe the ideological conflict of one woman are <Chuwolgam>, <Setebigam>. Finally, I probed the literary significance of these Gasa works. These Gasa works has the significance as a documentary literature which typically reflect the tragedy of war and the life of our ordinary people in the period of Korean War. And these Gasa works shows us that traditional features of poetry existence was maintained until recen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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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신문』에 수록된 철도 소재 시가 연구

        김아연 ( Kim A-yun ) 한국시가문화학회(구 한국고시가문화학회) 2017 한국시가문화연구 Vol.0 No.40

        『제국신문』에는 철도 소재 시가 7편이 게재되어 있다. 1903년에 발표된 2편, 1906년에 게시된 5편이 그것이다. 이 글은 『제국신문』 철도 소재 시가의 내용을 발표 시기별로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먼저, 1903년 『제국신문』 철도 소재 시가는 러일 전쟁(1904 1905) 이전에 열강들이 대한제국 철도부설권을 경쟁적으로 침탈하려던 정황을 형상화하고, 경의철도부설권을 수호 하려는 대한제국 정부와 민간의 의지를 담고 있다. 다음으로, 1906년 『제국신문』 철도 소재 시가는 한일의정서(1904), 을사늑약(1905) 이후 일본이 대한제국의 철도부설권을 독점 했고, 철도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을 철저하게 배제했으며, 역세권의 이점에 주목하여 용산에 일본인 거주지를 구축한 상황을 재현한 한편, 기적 소리를 청각적 심상으로 활용하여 독자에게 계몽의식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이 글은 『제국신문』 철도 소재 시가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조명했다. 첫째, 『제국신문』 철도 소재 시가는 시대의 흐름과 요구에 맞춰 시가가 변모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둘째, 『제국신문』 철도 소재 시가는 신문 매체를 통해 대한제국의 철도부설권 및 국가의 자주성 되찾기 여론을 형성하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이다. 셋째, 한국 철도문학의 계보학적 측면에서 『제국신문』 철도 소재 시가는 『대한매일신보』 철도 소재 시평가사에 선행하며 1907년부터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이전에 발표된 『대한매일신보』 철도 소재 시평가사와 상호보완 관계를 맺고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한 결과, 이 글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결론을 도출했다. 첫째, 『제국신문』 철도 소재 시가는 러일 전쟁 발발 전후 대한제국의 정세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이에 따라 외세의 철도부설권 침탈이 국제적·정치적·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였음을 말해 준다. 둘째, 『제국신문』철도 소재 시가는 전통 시가의 형식 위에 철도 담론을 공적 영역으로 이끌어냈고 이 계보를 『대한매일신보』철도 소재 시평가사가 계승함으로써, 근대에 전통 시가의 형식이 철도 담론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유효함을 보여준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comment poetry on current topics of railway in Jekuk Sinmun(founded in 1898). The two of them were composed in 1903, and the five were published in 1906. The contents of poetries are as follows. Firstly, the former represented events in Korea railway history which the powers competed over the railway concession of Korea Empire before the Russo-Japanese War. Secondary, the latter were a realistic depiction of events happened after signing the Japan-Korea Treaty of 1904 and 1905. At that time, Japanese Imperialism monopolized the railway concession of Korea Empire. Meanwhile, 1 poetry of them needed the awakening enlightened consciousness to readers. Based on that, this paper has analyzed the significances of Jekuk Sinmun`s railway poetries. These poetries have shown the changing aspects along with the flow of time, are a new writing to regain railway concession and national independence of Korean Empire through the newspaper, and complement Daehan Maeil Sinbo`s railway gasa composed in 1907, 1908, 1909 and 1910 on genre of Railway Literature in Korea. This paper, therefore, has drawn conclusions from the discussion described above. These poetries have shown a few things: Affairs of Korea Empire was changed at the Russo-Japanese War and the powers competed over the railway concession of Korea Empire was a internationally, politically and socially sensitive issue. In addition, the form of poetry was a medium through which to transfer discussion of railway the mod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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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英譯) 한국고전시선집(韓國古典詩選集) 『The Orchid Door 난규(蘭閨)』의 특성 고찰

        강혜정 ( Hye Jung Kang ) 한국시가학회 2016 韓國 詩歌硏究 Vol.40 No.-

        본고는 1935년 일본에서 간행된, Joan S. Grigsby(그릭스비)의 The Orchid Door(『蘭閨』)를 소개하고 이 번역서의 의의와 한계를 통해 20세기 초 서구사회에 소개된 영역한국고전시선집의 특성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본고는 먼저 이 번역서의 서지사항 및 출간 배경을 밝히고, 서문에 드러난 편찬 취지와 한국 시문학사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 후, 그릭스비의 번역관을 소개하고 이러한 번역관에 수반된 번역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였다. 그릭스비의 번역은 오늘날 서구사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시로 통용되고 있지만,정작 국문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蘭閨』는 1935년 일본에서 출간되었으며, ‘Ancient Korean Poems 한국고전시’라는 부제를 달고 < 공무도하가 >부터 조선후기 문인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고전시 73편을 번역 수록하고 있다. 당시 번역자로서 그녀는 한국어나 한국 고전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지만, 게일의 『한국민족사』를 비롯한 영문판 한국학 자료가 상당한 정도로 축적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1929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그릭스비는 외부에 알려진 것과 전혀다른 한국의 현실을 목도하고 한국이 장구한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자 한국 고전시를 번역하였다. 그녀는 한국이 중국, 일본과 구별되는 정체성을 갖고 독특한 문화를 이룩해 왔지만, 서구화가 진행되면서 과거와 단절되었다고 인식하고, 기품있는 인물들이 이루어낸 과거의 아름다움이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이를 서구 사회에 알리기 위해 본서를 편찬한다고 하였다. 그릭스비는 작품을 직역하면 서양의 독자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유려한 영시로 읽힐 수 있도록 그 형식과 내용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이러한 번역관은 20세기 초 그 존재조차 거의 알려진 바 없었던 한국의 시를 소개하기 위해 그녀가 취했던 방식이었고, 이로 인해 『난규』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까지도 아름다운 시로 읽히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서구인의 취향에 맞도록 변형되었기에 『蘭閨』의 번역시는 한국시가 가진 미감을 구현하지 못하였고, 부기된 기록이 없이는 그 원전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게 되었다. This paper focuses on introduc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Orchid Door: Ancient Korean Poems which was collected and translated into English verse by Joan S. Grigsby, and was published in 1935, Japan. Although The Orchid Door has been recognized as one of the representatives of the Korean classical poetry in the Western Society, it has not even been introduced in the academic world in Korea. Therefore in this paper, I clarified the bibliography of it and the purpose of publication through the introduction of this anthology. This book contains 73 pieces of classical Korean poems from Ancient Joseon Dynasty (BC 3C) to the late Joseon Dynasty (19C). There were lots of writings about Korean history and literature written by Western missionaries such as James S. Gale, so Joan S. Grigsby could translate Korean classical poetry into English even though Joan S. Grigsby couldn’t understand Korean language nor Korean classical poetry. Especially she was inspired deeply when she read The History of the Korean People by Gale. In 1929, Grigsby visited Korea for the first time reluctantly. However after she realized that Korea has a long history of over 5000 years and glorious civilization, she decided to translate Korean classical verses. She intended to present this anthology to the west the beauty of the little known corner of the orient. It is significant that her anthology has stimulated the interest of the western reader about Korean classical poetry. However, we can``t find the original texts without her additional record because she transformed Korean poems into English verses which don``t have characteristics as the Korean poems any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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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國古代文人對屈原“美人”意象的接受

        정해령 ( Ding Hai Ling ) 한국시가문화학회(구 한국고시가문화학회) 2016 한국시가문화연구 Vol.0 No.38

        원의 부(賦)에서 여러 여성 인물을 형상화하였는데, 그 중 “미인”의 형상은 가장 대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미인”의 형상은《시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현실주의를 지니고 있는《시경》에서 “미인”에 대한 묘사는 현실 생활 속에 진실한 사람과 관련된 것이다. 굴원은 중국 시가(詩歌) 역사상 최초로 “미인”을 의식적으로 아름다운 정치와 밝은 군주의 상징으로 비유하였다. 아름다운 정치와 밝은 군주라는 이상을 추구했던 굴원이 비록 현실 속에서는 여러 번 좌절당하지만, 아름다운 정치를 추구하는 그의 숭고한 정신은 세인들의 경앙을 받아 왔다. 이에 굴원의 “미인” 형상은 후세 및 국내외의 문학에 깊은 영향을 끼쳐 역대 문인들이 본보기로 삼아 학습하는 문학전범이 되었다. 특히 굴원과 그의 작품이《문선(文選)》을 통해 한국 문학계에 들어왔을 때, 한국과 초나라의 정치 환경이 서로 비슷하였는데, 한국의 문인명사들은 불안정하고 부패한 사회 환경 속에서 정신적으로 위로해줄 약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초사》에 나타난 굴원의 충정한 애국심은 특별히 추앙을 받았고, 생사의 선택에서 굴원이 보여준 굴절된 인격의 가치 및 그의 작품에서 향초 미인으로 비유한 군신과 이상에 대한 추구 등에서 드러난 인격적인 매력은 역대 한국의 문인묵객을 감화시켜 그들이 잇따라《초사》와 관련된 내용을 소재로 의소(擬騷), 조소(吊騷) 등 문학 작품들을 저술했다. 고려 시기와 조선 시기에 “미인”의 형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이 나타났으며, 이러한 작품들의 출현은 한국 한문학과 시가 문학의 발전을 크게 촉진시켰다. There are many types of women images created in the Fu of Qu Yuan ,in which the image of ‘the beauty’ is the most representative one.This image can be traced back to the ‘the book of songs’,in which it referred to person in real life.Qu Yuan was the first one who consciously compared‘the beauty’ to the good politics and capable and moral monarch in the Chinese poetry history, for which he suffered many setbacks,however,his spirit was highly admired by people.The image of ‘the beauty’ has a profound impact on the literature in later times and at home and abroad, and become the literature model imitated and learned by writers in all ages. When the works of Qu Yuan entered into the Korean literary circles with ‘the selection of literary works’, the political environment in Korea was similar to the Chu country. The writers and celebrities in Korea had to look for some mental consolation under this unrest and corrupt social environment.Qu Yuan’s loyalty and patriotic to his country in his works was highly respected. His personality reflected in his choice of death and his pursuit of good relationship between the monarch and his ministers deeply influenced the Korean writers in all ages. They wrote lots of poems which imitated or paid respect to the works of Qu Yuan. Lots of works used ‘the beauty’ image as their content during the Korea and North Korea periods, which greatly promoted the development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and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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