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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사상과 조선후기 사상사

        하영휘 수선사학회 2017 史林 Vol.0 No.59

        受用中華文化的韓國歷代王朝,逐漸形成了一種獨特的文化,而積極受用中華文化是從麗末鮮初開始的。以鄭夢周爲代表的文人們都將中華文化看作是理想中的文化,他們選明棄元,甚至連朝鮮的建國都大體上模倣了明的體制。丙子胡亂(1636)時期,朝鮮投降淸朝,淸朝代替明朝掌控中原以后,朝鮮士大夫漸具中華思想。可以從兩個方面來理解中華思想。卽,在夷狄掌握中原之后,其一,中華文化不復存在;其二,復興消失的中華文化。春秋大義、衛正斥邪、小中華等等都是要保衛中華的中華思想之一。 確立中華思想的人是宋時烈(1607~1689)。他認爲崇周退夷狄的春秋大義是万代不變之法則。宋時烈的春秋大義思想受到宋朱熹的影響,他稱贊“朱子孔子后一”,這就意味着他信奉的是朱熹的春秋大義思想。宋時烈的中華思想一直持續到十九世紀末,其代表人物是柳重敎(1832~1893)。他講到“宋子朱子后一人”,稱贊宋時烈,幷以宋時烈的春秋大義思想來對抗帝國主義的侵犯。從宋時烈到柳重敎所展開的中華思想是朝鮮后期的代表性思想之一,對朝鮮后期的政治、社會、文化産生深遠影響。

      • KCI등재

        계시, 관습, 이성

        유종선(Ryu Jong-Sun) 한국정치사상학회 2009 정치사상연구 Vol.15 No.1

        본 연구의 목적은 17세기 영국혁명의 주요 사건중 하나인 퍼트니 논쟁의 정치언어와 이의 정치사상사적 의미를 고찰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 퍼트니 논쟁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은 이것이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사상적 도전에서 근대정치사상의 태동에 이르는 담론의 구조와 역사를 상징한다고 하는 것이다. 퍼트니 논쟁에서 ‘수평주의자’들의 주장은 직접적 계시의 프로테스탄티즘 교리에 바탕을 둔 급진적 정치사상의 전형이며, 비판자들은 이의 무정부적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관습과 절제된 이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적어도 영미정치사상의 전통에서 볼 때 이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으로부터 근대정치사상의 등장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의 상징이고 축약이다. 본 연구에서는 퍼트니 논쟁의 구체적 언어들 속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정치사상적 도전의 성격과 한계, 이에 대한 비판과 대안적 담론의 모습들을 살펴 보고, 서구 근대정치사상 태동의 맥락에서 퍼트니 논쟁의 정치사상사적 의미를 규명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가 비서구의 입장에서 서구 근대정치사상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있어 우리의 지평을 넓히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investigate the political languages and their historical meanings of the Putney Debates, 1647, one of the most significant events of the English Revolution. I will argue that the Putney Debates in many respects represents the whole history leading to the emergence of modern political thought in the West. The Levellers here advance a radical democracy typical of the Protestant political thought, based upon the concept of sola scriptura and revelation, while the criticism of the Grandees represents a modern challenge to the allegedly anarchistic tendencies of such Protestant radicalism. The Putney Debates clearly shows the nature and limitations of the Protestant poltical challenge, on the one hand, and a modern response to the challenge, on the other, thus anticipating the emergence of modern political thought of Thomas Hobbes and John Locke. It is expected that this kind of histocal study will help us understand the nature and relevance of the modern political thought of the West in the non-Western world.

      • KCI등재

        西歐의 衝擊과 外壓에 대한 發想의 諸形態

        윤순갑(YOUN, SOON-GAB)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3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Vol.2 No.2

        19세기 중엽 조선조 한국사회에 밀어닥친 서구의 충격은 유입의 통로가 전방위적이었으며 유입의 방식 또한 강압적이었다는 점에서, 17세기 초부터 그 유입이 본격화되었던 중국 서학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충격과 외압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서구의 충격과 외압에 대한 조선조 한국사회 모든 구성원의 발상이 동일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외래문화의 수용에 대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인식과 고유문화와의 유대관계가 상이했기 때문이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 문화접변의 개념을 원용해서 네 개의 이념형을 추출해낼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유형은 서구의 충격과 외압이 자신들의 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을 위협’할 것이라는 인식과 고유 문화에 대한 ‘강한 주체와 자주의 관성’을 조합한 발상으로서, 척사사상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 유형은 그것이 ‘존속과 발전을 보장’할 것이라는 인식과 ‘강한 주체와 자주의 관성’이 조합된 발상으로서, 개화사상의 경우이다. 세 번째 유형에는 그것이 ’존속과 발전을 위협’한다는 인식과 ‘약한 주체와 자주의 관성’이 조합된 발상으로서, 동학사상이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유형에는 그것이 ‘존속과 발전을 보장’한다는 인식과 ‘약한 주체와 자주의 관성’ 이 조합된 발상으로서, 역사적으로 발현되지는 못했지만 당시 ‘천주교 신자들의 발상’을 위치시킬 수 있다. 19세기 중엽 서구의 충격과 외압에 직면했던 조선조 한국사회가 실로 다양한 사상적 대응을 치열하게 전개하였으며, 또 이처럼 다양한 사상적 대응은 역사적 위기를 바라보는 관찰자들의 시좌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분석 결과에 근거하여 당시 외세에 대한 대응에 실패한 이유를 사상에서 찾는다면, 당시 한국 사회에 현실적으로 존재했던 사상체계에서 대안적 사상의 주체들을 아우르는 프로그램의 취약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들 사상체계들의 상이한 계층적 기반에서 분출된 원심력으로 인해 서구열강의 충격과 외압 앞에 당시 한국사회는 쉽게 각개격파되었던 것이다.

      • 주체사상의 견지에서 본 유교사상의 평가 문제

        김화종 ( Hwa Jong Kim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04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35 No.-

        유교사상은 과거 동양의 특유한 봉건통치 리념으로서 종교적 성격을 띤 정치윤리사상이다. 유교사상은 중국에서 2500여 년 전에 공자에 의해 발생하여 한 때 아시아나라들에 널리 전파되어 사회정치생활과 세태풍속에 깊은 흔적을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현실생활의 여러 분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교는 매우 이른 시기에 들어와 봉건지배계급의 통치사상으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였다. 이에 우리는 새 사회건설에 착수하여 반제반봉건 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던 초기부터 그 결과를 가시기 위한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려왔으며, 유교의 봉건적 굴종사상을 극복하고 인민들 속에 나라의 주인 된 자각을 높이는데서 커다란 성과를 이룩하였다. 또 유교사상을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대하기 위하여 우리는 주체사상을 방법론적 지침으로 하여 이 사상의 본질을 분석평가 하였는데 대략은 아래와 같다.. 첫째, 유교는 인간의 가장 숭고하고 고상한 품성인 효성, 인, 의, 예, 지, 충 등 일련의 도덕관념을 이용하여 인민대중 속에 봉건군주에 대한 복종의식을 주입하였다는 폐해가 있다.둘째, 유교는 정명사상으로써 봉건위계적 신분제도를 합리화하고 예덕통치로써 봉건사회의 영원성을 추구하였다. 셋째, 유교는 인민대중을 억압하는 봉건적 신분제도와 반인민적 통치질서를 ‘천명’에 기원을 둔 것으로 신비화하는 종교적 색채를 띤 봉건통치사상이다. 우리는 유교사상의 본질에 대한 인민대중중심의 주체적 평가에 기초하여 그 사상의 잔재를 없애기 위한 교양사업을 계속 줄기차게 벌여나감으로써 인민들을 자기 운명의 주인 된 자각을 가진 강성대국건설의 어엿한 역군으로 튼튼히 준비시켜 갈 것이다. 부연하자면, 유교사상 그 자체는 봉건통치사상이지만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이 사상을 만드는 데서 인간 본연의 도덕관념이 적지 않게 이용되었고 이러한 전통적인 도덕관념은 오랜 역사를 두고 민족정신에 깊이 뿌리박은 것으로서 강한 생활력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제국주의 사상문화 침투 책동을 파탄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Confucian ideas is thoughts of political ethics which has political character as particular feudalistic ideology of past orient. Confucian ideas originated from China about 2500 years ago by Gong Ja. Also it propagated widely in the continent of Asia in those days, so left deep vestige in social political life and public morals and has a big influence on real life despite differences of each nation. Korea accepted Confucianism very early as well, and occupied a first position as a ruling system of the feudal ruling class. Therefore we analyzed essense of Confucian ideas in order to have a right viewpoint about it.

      • KCI등재후보

        한국사상의 정체성의 정립방안에 관한 연구

        정경환 한국민족사상학회 2015 민족사상 Vol.9 No.1

        This study is on founding measure of Korean thought’s identity. Since the beginning of history, Korean thought is the original basis of our people’s nature and history. Nevertheless, toady following Chinese thought and western thought blindly disparages Korean thought. These actions are nothing besides complete toady contradicting heir own root. Korean thought has definitely a uniqueness. Korean thought become indices regulating Korean history, the basis of nationality of Korea peoples. On this point, the problem of Korean thought’s identity is mightly important. The measure of Korean thought’s identity is as follows; First, researchers publish many thesis, essay and books trough concrete system belief on the Korean thought and philosophy. Second, government and related organization must try hard to spread and extend Korean thought. Finally, we must understand the superiority of our soul, thought and philosophy. And for understanding the current address of ours, we must regulate the thought and philosophy other nation(specially China and Japan). 본 논문은 한국사상의 정체성 정립 방안에 관한 것이다. 한국사상은 유사 이래 우리 민족의 성품과 역사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던 본원적인 토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사상과 서양사상에 맹종된 사대주의자들은 한국사상이 지니고 있는 사상적 합리성과 보편성을 외면하고 한국사상을 업신여기고 폄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이러한 행동은 스스로의 뿌리를 부정하는 완전 사대노예주의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한국사상은 분명한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사상은 한국의 역사의 전반을 규율하는 하나의 지표가 되었고 한국민족의 민족성의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한국사상은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어떻게 하면 정립할 수 있겠는가? 한국사상의 정립방안에는 첫째, 한국사상과 철학에 대한 확고한 신념체계를 통해 많은 글과 논문 그리고 저술을 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의 정신과 사상을 전국민 대중 속으로 전파하고 확장하기 위해 정부와 유관기관들은 보다 배전의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정신, 사상 및 철학의 우수성을 정확히 알고 우리 것의 현주소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다른 나라 특히 중국과 일본의 사상과 철학과 비교 연구하여 그 면모를 규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KCI등재

        일본 정토사상에 나타난 수행과 깨달음의 세계 -호넨(法然)과 신란(親鸞)을 중심으로-

        원영상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013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Vol.57 No.-

        본 논문은 일본의 정토사상가이자 실천가인 호넨(法然)과 신란(親鸞)의 수행과 깨달음의 세계를 다룬 것이다. 각각 정토종과 정토진종의 조사들인 이들은 대승불법의 한 축을 계승하여일본에 정토사상과 신앙을 토착화시킨 인물들이다. 이들 정토사상의 첫 번째 특징은 말법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선택⋅전수⋅이행에 입각하여 민중 속에 깊이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정토사상은 양 조사를 통해 칭명염불에서 본원신심이라고 하는 신앙의 심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호넨은 정토사상을 제외한 기존의 모든 불교사상을 성도문과 난행도로 보고, 선도(善導)의 사상에 의거, 법장비구의 48원중 18원을 내세워 염불만을 정행(正行)으로 삼았다. 신란 또한이를 계승하여 오직 아미타불의 본원에 의해 이미 구제되었다고 하는 신심의 염불을 주장했다. 그리고 48원 중 제17원, 18원,11원을 중심으로 교행신증(敎行信証)의 사상을 확립하였다. 이들 양 조사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불성과 깨달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생에서의 깨달음은 말법시대 하근기의중생에게는 어렵다고 보고, 호넨의 경우 왕생 후의 보살행을 통한 깨달음을 주장하였다. 신란 또한 성불은 사후 내세에서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불퇴전의 위를 극락정토에서 얻는것으로 당연시하고는 있지만, 호넨은 현생에서 삼매발득을 통해 확립한다고 하는 현생의 증과를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 신란은 이를 심화시켜 신심을 얻으면 왕생한다고 보고, 이 왕생이야말로 불퇴전에 주하는 것으로 보고 이를 즉득왕생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정토사상은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이르러 이들 조사들에 의해 심화됨과 동시에 대중화의 열매를 맺게 됨을 알 수 있다.

      • KCI등재

        한(韓)민족의 군사사상과 흥망성쇠의 교훈

        김재철 ( Jae Chul Kim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구 통일문제연구소) 2007 동북아연구 Vol.22 No.2

        군사사상은 군사력 건설과 운용의 사상적 기조를 제공하는 구심점으로서 군사발전의 근원이 되며, 그 구성요소는 ①전쟁관 및 전쟁수행 신념, ②군사력건설(양병사상) ③군사력운용(용병사상)등이다. 한민족의 군사사상을 시대별로 고찰해 본 결과, 수많은 외침을 극복해온 것은 상무정신, 화랑도정신, 호국불교정신, 충효사상을 바탕으로 한 의병정신 등 시대별 ‘전쟁수행의지 및 신념’을 바탕으로 범국민적 총력전 수행체제를 구축하여 성을 중심으로 한 ‘청야입보이일대로’에의해 적을 최대한 피로하게 한 후 결정적 약점을 포착하여 공격하는 공세적 성격의 선수후공 전략이라는 전통적 군사사상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를 천시하고 당파싸움 등 군사사상 부재로 국방을 소흘히 함으로써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일합방 등 수난의 역사가 30~50 년 간격으로 계속되기도 했다. 향후 한국 군사사상의 발전은 우리의 전통적 민족정신을 계승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전통적 민족정신은 평시에는 안보의식으로, 전시에는 ‘전쟁수행의지 및 신념’으로 무형 전투력을 창출하게 된다. 또한 ‘군사력건설과 운용’은 군의 과학화·정보화 추세에 부응하여 발전시키되 「자주적 전쟁억제 」에 목표를 두고 우리민족의 전통적 사상인「자주적 총력방위사상」과 「즉응공세사상」을 사상적 구심점으로 하여 추진해야 할 것이다. Military thought is basic tenets of the national defense policy. The factors of military thought are ①warfare aspects and war-fighting spirit and belief. ②thoughts of buildup of an military force and ③military strategy, The typical military thoughts are the national spirits as "Militaristic spirit". "Hwaran-do spirit" and aggressive defense strategy by using many castles, Sometimes. However, korean race neglected military affairs and met with sufferings as "Imginweran(Japanese invasion of Chosun dynasty)". "Byeongjahoran (Chinese invasion of Chosun dynasty)" and "Hanilhapbang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Henceforth. the direction of setting up the korean military thoughts can be presented in the sphere of warfare aspects, thoughts of buildup of an military force and military strategy. First, we must inherit and develop the cultural tradition(spirits of korean race). Second, the thoughts of military force buildup are construction of deterrence by independent all round military power and national total warfare system. Third, the military strategy must be aggressive all round defense based upon independent combined strategy by the total warfare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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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사상을 통한 원불교의 신앙성 제고(提高) 모색

        원영상(元永常)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014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Vol.59 No.-

        본 논문은 대승불교의 핵심사상 중의 하나인 정토신앙을 통해 원불교의 신앙성을 고양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정토신앙을 선택한 것은 동아시아에서는 민중의 신앙으로써 활발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의 전편에서는 이러한 정토사상의 발원으로부터 중국, 한국, 일본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기술하였다. 그리고 원불교와 정토사상과의 관련성을 기존의 선행연구를 통해 정리하였다. 이어 원불교의 신앙성을 제고(提高)하기 위한 논의로는 정토사상의 시기상응(時機相應)의 정신, 교의 해석의 심층성, 신앙성의 강화 세 측면에서 제시하였다. 시기상응의 정신은 정토사상을 관통하는 방편설은 물론 말법사상에 기반한 인간의 기근(機根)과 시대적 상황에 대응하는 정토 조사들의 의식이 원불교의 교법에서도 계승되고 있음을 밝혔다. 즉, 원불교의 정토사상이 비록 선정쌍수(禪淨雙修)로 귀착된다고 하더라도 시대에 맞는 교법의 창안과 불법의 시대정신은 정토사상의 전통과 상통함을 알 수 있다. 이어 교의 해석의 심층성은 내세정토신앙과 깊은 연관을 갖는 향하문의 보신(報身) 사상을 원불교의 교의가 포용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를 통해 원불교의 교의는 대승불교의 법성사상 및 보살도의 실천에 기반, 정불국의 현실성을 지향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신앙성의 강화에서는 원불교의 신앙의 대상에 대한 호칭의 문제를 비롯하여 「일원상서원문」의 신앙성의 문제, 사대불이신심(四大不二信心)에 있어 진리중심의 해석 등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성불제중이라고 하는 서원을 자력의 수행만이 아니라 믿음의 체계 안에서도 확립할 필요가 있음을 밝혔다. 이 외에도 실제 교화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왕생극락의 발원과 임종 시 염불과의 조화를 어떻게 수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점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This paper is about how to revive and enhance the practice of faith in Won-Buddhism through Pure Land Philosophy, one of ideas of Mah?y?na Buddhism. Because the Pure Land faith believed by the people spread actively across East Asia from ancient times to modern time. The first half of this paper is treated with historical development process of Pure Land Philosophy in China, Korea, and Japan from India where it was originated. And An interrelationship between Won-Buddhist Thought and Pure Land Philosophy is reviewed through preceding research analysis. It is suggested in the latter half that the ways to revive and enhance the practice of faith in Won-Buddhism need efforts to keep up with the times, proper hermeneutics of doctrines, and deepening believers’ faith. Many efforts to keep up with the times in the teachings of Mah?y?na Buddhism are continued in Won-Buddhism. We can see that many Buddhists have used Upaya, which is Sanskrit for skilful means or method to advocate salvation for all people. Although Won-Buddhists always practice Zen with chanting Buddha in Pure Land Philosophy, what the doctrines of Won-Buddhism put emphasis on reflecting the spirit of the age are based on the tradition of it. Proper hermeneutics of doctrines is to include religious belief. The researchers are analyzing the structure of doctrines in Won-Buddhism which contains the thought of Sa?bhoga-k?ya who relieves mankind in Buddhist Pure Lands after death. And the doctrines of Won-Buddhism have teachings that believers can change the mundane world into Pure Lands through the thought of Dharmat?, Tath?t? or the origin of all thing, and the way of Bodhisattvas in Mah?y?na Buddhism. Lastly, Several alternatives to the proposal of deepening believers’ faith are suggested. These are a problem of a word to call the subject of belief, a problem to believe in Dharma-k?ya Buddha of the Il-Won-Sang Vow, and a problem to put the stress on the truth in 4 articles of belief. It is necessary to take a vow to achieve buddhahood and deliver all sentient being not only in practicing system but also in believing system.

      • KCI등재

        사상‘운동’과 사상의 생활윤리화

        공임순(Kong Imsoon)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2 서강인문논총 Vol.0 No.35

        이 글은 대한민국의 국가이념이 사상전의 맥락을 띠고 출발했음을 전제로 했다. 종전 이후 남북한에 각기 수립된 한반도의 지역정체들은 상호간의 체제 경쟁과 대립 속에서 이 사상전의 성격을 노골화했고, 이것이 대한민국의 수립과 더불어 국가이념으로 천명된 일민주의로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발발을 계기로 일민주의의 정치 논리에서 탈피한 이른바 생활 논리로서의 사상‘운동’의 필요성은 국민사상지도원(연구원)과 그 기관지인 월간 『사상』을 낳게 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월간 『사상』은 지금까지 『사상계』의 전신으로서만 논의되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사상』이 그려내는 특정한 ‘사상’적 담론 지형은 사상을 세계‘관’ 내지 인생‘관’의 문제와 등치시키는 특유의 담론 전략을 선보이게 된다. 『사상계』의 초기 담론은 『사상』이 지닌 사상‘운동’과 사상의 생활윤리화를 자유와 교육의 문제로 대체시켜 접근하게 되는데, 이는 『사상계』의 창간호에서부터 두드러지는 면모였다. 이 글은 자유와 빵이라고 하는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내재된 이율배반 못지않게 자유와 교육, 자유와 도의의 문제적 관계가 대한민국의 주체생산의 메커니즘과 관련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했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범람된 자유와 민주주의의 담론은 자유와 교육, 자유와 도의라고 하는 사상전이 매개된 사상의 생활윤리화 속에서, 일정한 자기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 글의 최종 결론이다. This article was written with the thesis that South Korea’s national ideology began in the context of war of thought. South and North Korean regimes, established after the Korean War, aggressively staged wars of thoughts amidst mutual ideological competition and confrontation. This led South Korea to declare one nation-ism as a national ideology along with its establishment. However, through the occasion of the outbreak of Korean War, the need for thought movement as the so-called life logic, deviated from the one nation-ism, led to the creation of the national thought guidance institute (research institute) and its monthly magazine Sasang. The monthly magazine was indicated as the precedent of the Sasanggye magazine, but Sasang’s distinctive discourse type implemented a strategy to juxtapose itself with world view or life view. The initial discourse of Sasanggye replaced Sasang’s thought movement and the daily practice of ethics of thought with freedom and education problems, approaching them, and this was categorically expressed in the inaugural issue of Sasanggye. This article sought to indicate that the problematic relationship between freedom and education and between freedom and morality, not less than the antinomy of freedom and bread inherent in South Korea’s modernization, is important for the country’s mechanism of Juche ideology production. This article concluded that the overrun discourse on freedom and democracy, through the occasion of Korean War, had to pose its limitations in the daily practice of ethics of thought by the mediation of thought war of freedom and education and freedom and morality.

      • 제4장 유학사상의 전래와 변천

        김강녕 한국민족사상학회 2009 민족사상 Vol.3 No.2

        This paper is to analyse the introduction and development of Confucianism or Confucian thought in Korea. Confucianism is an ancient Chinese ethical and philosophical system originally developed from the teachings of the early Chinese philosopher Confucius. It focuses on human morality and good deeds. Confucianism is a complex system of moral, social, political, philosophical, and quasi-religious thought that has had tremendous influence on the culture and history of East Asia including China, Korea, and Japan two thousand five hundred years. Confucianism came from China to Korea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alongside of Buddhist teaching. During the Goryeo Dynasty Confucianism is King Gwangjong creating the national civil service examinations and King Seongjong was a key figure in establishing Confucianism. The Joseon Dynasty, which was established in 1392, accepted Confucianism as the official ideology and developed a confucian system of education, ceremony and civil adminstration. Confucianism in Joseon Korea flourished most notably in the 16th century, under the guidance of the country's two most prominent Confucian scholars Yi Hwang(1501-1570) and Yi I(1536-1584). Efforts were also made to reform Confucianism and adapt it to the changing conditions of times. Also, during Japan’s colonial rule of Korea, Confusion reformists joined many independence movement to fight against imperial Japan. Korean Confucianism is the form of Confucianism developed in Korea. One of the most substantial influences in Korean intellectual history was the introduction of Confucian thought as part of the cultural exchange from China. Today the legacy of Confucianism remains a fundamental part of Korean society, shaping the moral system, the way of life, social relations between old and young, high culture, and is the basis for much of the legal system. 본 연구는 유학사상의 전래와 변천을 분석한 것이다. 이를 위해 유학의 개념과 기본사상의 형성, 유학사상의 전래와 한국에서의 발전, 유학사상의 공과 등의 순서로 살펴본 후 결론을 도출해 보았다. 유학사상은 불교와 도교 사상과 함께 수천 년 동안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도 영향을 미쳐온 동양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사조(思潮)라 할 수 있다. 공자가 창시하여 맹자․순자로 계승되어온 유교는 한(漢) 무제(武帝)와 동중서(董仲舒)에 의해 국가적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기 시작하여 남북조시대에 새로운 도교가 융성하고 불교가 전파되면서 유교는 크게 쇠퇴하다가 당․송대에 본격적으로 부활되었고, 명대의 유학자 주희 등을 거쳐 청대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가 19세기 이후 서양사상이 유입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유교는 쇠퇴했지만 유교 전통은 동양 주요 삼국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과 자연적으로 인접한 한국은 중국을 통해 유․불․선 사상적 요소를 모두 흡수․구비하여 발전시켜왔으며 이러한 사상은 민족정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유교의 경우 불교와 함께 고대 삼국시대에 유교사상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전래되었고 일본에도 전해주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교였지만 유교는 정치이념으로 채택․적용되었으며, 고려후기에는 성리학(주자학)이 도입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국교로 정해졌으며, 특히 이황․이이 등에 의해 이기이원론(주리설)과 이기일원론(주기설)로 집대성되는 등 이론적으로 꽃을 피울 뿐만 아니라 특히 이황의 학설은 일본의 유학발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이이의 학설은 우리의 실학사상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한국의 유학사상은 한국에서 새롭게 발전된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유교 또는 유학사상의 유산은, 새롭게 받아들인 서양사상의 유산과 함께, 한국사회의 근저에 남아 윤리도덕, 생활방식, 사회관계 등의 형성․발전에 적지 않는 영향을 미치고 있고, 다수의 법률적 제도의 기초로 작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과(功過)도 함께 있는바, 우리의 취장보단(取長補短)을 위한 자세와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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