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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과학의 정체성과 한국정치사상사 연구

            이택휘(LEE TAIKWHI)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4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Vol.3 No.1

            오늘날 한국 학계의 상황은 “기초학문의 위기”에 처해있다. 대학이 “실용성”위주의 상업주의적 실용주의 노선에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을 대상으로 한 기초여구는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적 인식의 존재구소성은 역사인식이라는 한계를 전제로 하지 않을 수 없다. 1950년대까지 한국 정치학의 중심은 주로 정치제도, 정치사상사, 정치사였으나, 1960년대 이후에는 “정치학의 과학화”를 표방하고 실증적ㆍ분석적 방법을 통한 과학적 이론체계의 구성에 노력해 왔다. 그러나 그 긍정적인 목적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가치관계적 연구대상들을 제외시킴으로써 정치학의 연구영역을 심각하게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정치사상사 연구는 정치학에 기본적인 개념과 사색적 능력을 제고시켜 주는 것이다. 특히 한국정치사상사 연구는 한국 사회과학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KCI등재

            한국정치사상사 시대구분에서 근대국가

            나정원(Nah, Jeong Won)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19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Vol.18 No.2

            본 논문은 한국정치사상사 시대구분에서 최초의 ‘근대국가'가 무엇인가를 찾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조선조 이후 한국사에서 선포된 두 개의 국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가운데 대한제국의 근대국가 여부를 검토하였다. 이러한 검토를 위해서 한국에서 근대가 무엇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시대구분 작업을 먼저 진행하였다. ‘근대국가'는 ‘근대'에 만들어진 국가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근대국가'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근대'의 시작 문제를 먼저 다루어야 한다. 서양사의 삼분법을 바탕으로 한국사에 적용될 수 있는 시대구분 틀을 만들어, 이를 바탕으로 한국정치사상사에서 ‘근대국가'가 무엇인가의 문제에 접근하였다. 검토 결과, 조선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한국정치사상사에서 대한제국은 ‘근대국가'가 아니라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인 절대주의 국가로 평가되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최초의 ‘근대국가'로 가정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는 대한 민국임시정부가 있었지만 한반도에 영토와 국민은 있었어도 주권이 일제에 박탈당한 상황에서 주권 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시기, 즉 국민국가나 민족국가인 ‘근대국가'를 이루려고 노력했던 시기이므로 ‘근대'라고 할 수 없다. 일본의 식민지근대화는 민족국가 · 근대국가와 관계가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식민지근대화 과정 이후에 형성된 한국 역사상 최초의 ‘근대국가'라고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통일된 민족국가를 ‘근대국가'라고 하면 대한민국은 아직도 ‘근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헌법은 ‘근대성'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북한은 절대주의 국가, 절대군주권 , 군주의 지배에 가깝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이념과 체계를 초월하는 통일헌법의 구상조차도 이론적으로도 거의 불가능하다. ‘인민국가'와 ‘국민국가'의 근본적인 차이는 ‘민족국가'의 형성을 지연시키고 있다. 한반도의 ‘근대화'는 1876년 이후 미완의 ‘근대화'로서 2019년 지금도 진행 중이다. 대한민국은 ‘근대' ‘국민국가'이지만 ‘근대' ‘민족국가'는 아니다. This treatise investigates the first Modern State in the periodization of Korean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Accordingly, it examines which among the two States the DaeHan Empire and Republic of Korea, following the reign of the Joseon dynasty, is the first Modern State in Korean political thought history. For this purpose, periodization was performed to evaluate what is modern in Korea, since identifying the Modern State is the preliminary step to estimating the start of the modern era; the Modern State was built during the modern era. To realize a periodization that could be applied to Korean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the tripartite periodization method based on European history was revised to suit the Modern State. The paper concludes that the DaeHan Empire was an absolute state and not a modern one in the history of Korea. The DaeHan Empire was situated between medieval Joseon and the Republic of Korea, which could be supposed merely as modern before being examined. Although the Republic of Korea had a provisory government at the time,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cannot be considered modern since Korea was deprived of its national sovereignty during this period; hence, the colonial period is not related to the Modern State. Therefore, the Republic of Korea, following its liberation from the Japanese colonial rule, can be considered the first Modern State in Korean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However, if the unified national One Korea is the Modern State, two Koreas are still in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and Republic of Korea should undergo unification to become a Modern Nation State by connecting the citizen's state and people's state. Hence, the two Koreas must work together to build the Modern Nation State.

          • KCI등재

            한국정치사상 연구를 위한 틀

            김한식(KIM HAN-SHIK)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4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Vol.3 No.1

            거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정치사상 연구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선 연구의 틀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그동안 일부 연구의 대상과 방법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이러한 성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서양 근대적 학문방법론에만 매달리지 말고 우리의 상황에 맞는 접근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선 관련되는 인문분야의 업적을 계속 쌓고, 자료의 정리보완에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연구의 대상은, 인간관, 신관, 자연관에 함축된 정치적 상관관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고학, 역사, 언어, 민속 그리고 종교 등 여러 분야에 깊은 관심이 필요하면, 토템이나 신화 등에 관한 연구는 고대의 정치사상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한국정치학 연구방법론을 설정할 수 있는 기준으로 시간의 문제, 주체의 문제 그리고 상황과 사상의 관련성 문제를 들 수 있으며, 이러한 기준에 따라 여러 가지 연구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사상가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방법과 시대사 중심의 연구방법 그리고 주된 사상 중심의 연구방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들 연구방법은 각각 장단점이 있으므로 연구대상의 성격에 따라 적절히 혼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대 서구중심의 사상의 흐름과 대비시켜 한국인의 자기 확인, 창의성의 제고, 자기발전의 동력제공이라는 정치사상의 바탕을 마련하는 지혜를 찾아야 할 것이다. 다양한 사고를 통해 자료의 부족에 따른 공백을 메우며 폭넓은 안목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은 「한국 정치사상」 통권을 시도하는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KCI등재

            한국정치사상 연구의 현황과 과제

            부남철(Pu Nam Chul)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2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Vol.1 No.1

            한국정치사상은 있는가? 그간 정치학계에서는 정치학의 현황과 과제를 논의할 때마다 한국정치사상 연구와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1970년대 이후 학자들의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 한국정치사상 분야가 개척되었고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 이후에는 한국정치사상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급증했다. 이들에 의해 다수의 연구 논문이 각종 학술지에 게재되었고 전문 연구서도 활발하게 출판되었다. 현재 전문 학회가 설립되었을 정도로 한국정치사상 분야는 양적으로 성장했다. 그렇지만 그 연구대상이 주로 전통사상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한국정치사상 분야가 학문적으로 철학이나 역사학과 어떻게 다른지 그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심지어는 이런 연구가 정치학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문제는 결국 한국정치사상 분야의 학문적 정체성에 관한 것인데, 학계에서는 지금까지 개별적으로는 한국정치사상 연구가 심도 있게 진행되었지만 그런 성과를 학문적으로 의미 있게 통합하는 공동의 노력은 부족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정치사상사 전공학자들 사이에서 공유하는 연구 대상, 범위, 방법 등에 대한 인식 형성이 미약했다. 한국정치사상의 연구 본령과 방법이 고정된 것은 아니지만, 현단계에서 한국정치사상의 연구현황과 방법에 관해 논의했던 글에서 제기되었던 쟁점을 살펴보면서 한국정치사상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활발한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해본다.

          • KCI등재

            1910-40년대 식민지 한국에 관한 외부 국가들의 시각과 권력의 작동

            이택선(Lee, Taek Sun)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16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Vol.15 No.2

            본 연구는 외국문서들을 중심으로 일본이 1910-40년대 식민지 한국에 대해 행사했던 권력의 작동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식민지 상황 고찰에 대한 객관성을 높이는 한편, 미국과 소련, 중국 등 주요 외부 행위자들이 식민지 한국과 해방 직후 한국의 분단에 대해 미친 영향을 재구성하였다. 1910년대에 일본은 강제권력과 구조권력을 작동시키는데 집중했으며, 미국은 교육계를 중심으로 생산권력을 구축해 1919년 3.1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영향력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조건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압력행사와 1940년대 일본의 탄압으로 인해 크게 약화되었지만 라디오를 통하여 다시 응집되었으며, 이는 1945년 8월 해방과 함께 미군정이 진주한 이후 지금까지도 한국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1920년대에 일본은 식민지 한국에 장기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제도권력과 생산권력을 이식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소련은 한국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외부 행위자 중 하나로 부상하기 시작해 1945년 8월 해방 무렵에는 한국에 생산권력과 제도권력을 투사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1930년대에는 일본이 중국 진출을 위한 기반으로 한국을 활용하기 위해 제도권력과 생산권력을 작동시키려고 노력하였고 중국 역시 구조권력을 중심으로 한국인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여 장기적인 차원에서의 제도권력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일본이 모든 직·간접적인 권력을 작동시킨 시기였던 1940년대에는 한국인들에게 적극적으로 강제권력을 지원하기 시작한 중국과 미국, 소련이 일본 패망 이후 한국에서의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게 되었다. 1945년 6-7월경 한국의 임시정부는 중국과 소련 그리고 미국을 지지하는 입장들로 나뉘어져 있었고 해방 이후 한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미국과 소련은 동아시아에서의 세력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한국의 신탁통치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This study increases the objectivity of considering the colonial experience by examining, by using international sources, Japan's use of force on colonial Korea from the 1910s to the 1940s. It also reconfigures the effect of outside influence by the US, USSR, China, and other key powers on colonial Korea and the division of post-independence Korea. During the 1910s, Japan focused on operating “compulsory power” and “structural power.” At the same time, the US greatly influenced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s by establishing “productive power” that centered on education. American influence greatly weakened due to pressure from Japan after its participation in the First World War and after Japanese oppression in the 1940s. However, these influences again gained cohesion through the medium of radio. Such factors acted as the driving force for the overwhelmingly large American influence on Korea during and after US military rule after Korea's liberation in August 1945, an influence that still exists even today. Meanwhile, in the 1920s, Japan tried to transplant “institutional power” and productive power in order to gain long-term returns from colonial Korea. Moreover, the Soviet Union rose to become one of the most influential external powers on Korea. Around the time of independence in August of 1945, the Soviet Union was able to provide foundations with which to project on Korea productive and institutional powers. In the 1930s, Japan started to apply institutional and productive powers in order to gain a foothold in China. China, too, strived to build influence over Koreans using structural power, thus establishing institutional power in the long term. After the collapse of the Japanese Empire, China, which started supporting compulsory power for Koreans in the 1940s at a time when Japan was applying all implicit and explicit powers, as well as the US and the USSR, competed for influence over Korea. Korea's provisional government was divided into factions that supported China, the Soviet Union, and the United States in June and July of 1945. Fearing an expansion of China's influence on Korea after independence, the US and the Soviet Union were reaching consensus regarding a joint trusteeship of Korea in order to achieve balance of power in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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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전통적 여성관과『한국여성해방이론』

            김혜승(Kim Heaseung)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11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Vol.10 No.2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존재로 공존하는 사회를 목표로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이론으로서 태동한 후, 그리고 운동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래 계속해서 제기되는 관심은 어떻게 한국여성의 역사적 특징을 살린 운동과 사상이 될 수 있을 것 인가였다. 이 점에서, 한국여성학에 한 획을 긋는 이론서『한국여성해방이론-유토피아에서 헤테로토피아로-』가 한국정치사상 분야에서 출판된 것은 큰 수확이다. 이 책은 1.정치적 경제적 영역에서 법적 권리 뿐 아니라 2. 공적사적 부문에도 관심을 확대하여 3. 역사적 추적을 통한 한국의 특수성에 초점 맞추며 한국여성해방이론이 담아야 할 문제의식을 모두 보이며, 그에 답하려는 광범한 내용의 이론서이다. 저자는 한국여성의 본성을 해명하고 여성운동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이념과 여성해방의 대안 제시가 한국페미니즘의 학문적 과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한국여성해방이론-유토피아에서 헤테로토피아로-』은 첫째, 한국여성의 본성을 규명하며 둘째, 서양여성해방론을 검토해서 한국여성의 경험과 맞는 여성해방사상을 부분 수용하고 셋째, 이를 한국의 남녀평등사상과 통합, 재구성하여 한국여성운동 이념이 포괄하는「새공동체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려는 것이다. This book has the intentions of inspiring the Korean feminist movement and reconstructing existing theories through a critical examination and evaluation of the modern western feminist theory. This study will present new communitarianism as the theory for the present Korean Feminist movement, based on the sexual egalitarianism contained in Korean thought. This inquiry is possible by abstracting valid thoughts from the western feminist theories, in correspondence with west. Whit this kind of critical work, the study of the nature of women is also our concern. 1. Although there are differences between men and woman-strongness and warmness-, their value is equal. And “warmness” as an essence of Korean women can contribute to the identity of the feminist movement. 2. For college-graduate women who want to participate in public economic activities, equal opportunity and the freedom of choice must be guaranteed. 3. The labour condition and environment of women workers should be improved, in the same manner, the quality-life of part-time women workers should be advanced. The term of public education should be extended to 12 years. 4. The value of housework should be reasonably evaluated, according to which a pension plan for housewives would be established. 5. Men who respect human dignity, consider women as humans, and pursue non-violence will be together in the New Communitarian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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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사에서 중화주의의 형성과 맥락

            신복룡(Shin, Bok-ryong)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16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Vol.15 No.1

            [1] 이 글은 선악의 문제를 떠나서 한국사상사의 중요한 인자를 이루고 있는 중화사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고 이어져내려 왔는가를 살펴보고자 쓴 것이다. [2] 역사적으로 보면 중화사상은 중국의 유구한 역사와 정치(精緻)한 문명, 그리고 주변 국가를 압도하는 국력에 대한 한국인의 경도에서 비롯되었다. 신라시대의 중화인식은 국제관계의 측면이 강하고, 고려시대의 그것은 화하문명에 대한 숭모의 뜻이 있고, 조선 개국에 담긴 중화는 이성계의 주변부 인식과 관련이 있으며, 조선중기의 그것에는 임진왜란 이후의 재조지은(再造之恩)의 의미가 강하다. [3] 한국사상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중화사상은 부끄럽지만 덮어둘 수만은 없는 백내장(白內障)이었으며 계층이나 시대를 초월하는 한국의 적층(積層)문화였다. 한국사상사에서의 중화주의나 사대의 문제는 김부식(金富軾)이나 화서(華西)학파에 한정된 일이 아니었다. 중화는 사대의 중핵(core)이었고 사대는 중화의 과육(果肉)이었다. 한국사에서 개명 문화의 시기 이전에 중화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정치인이나 지식인은 많지 않았다. [4] 중화사상이 한국사상사를 관통하고 있는 한 줄기였음에는 틀림이 없지만 마치 그것이 한국 사상이 주류였다든가 기본 가치였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는 도전과 응전이 있었듯이 중화주의가 있었고 그에 도전하는 반중화나 탈중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한국사에서의 중화의 뿌리를 찾는 노력에 못지않게 탈중화의 맥락에 대한 천착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 글은 균형 잡힌 작업이 아니다. 그러므로 탈중화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1] This article was written to depict the origins and context of the Sino-centric tradition in the Korean political thoughts, regardless it was stain or not. [2] Historically speaking, Sino-centrism in Korea have originated from the respect for and devotion to the long history, graceful civilization, and dominant power over neighboring states. In Silla age, inclination to China(Tang) was forced by international dynamics, in Goryu age, her intelligentsias were envious to Chinese literary culture, and at the foundation of Chosun Dynasty was based on the inferiority complex of Lee Sung-gye(Taejo) as a marginal man and borderland garrison. In the middle age of Chosun Dynasty Confucian scholars were thankful and felt heavy burden to China(Myung) for their military assistance to rebuild the state during the war with Japan(1592-1598). [2] Sino-centrism in Korea, even though shameful, was an important requisite in traditional society. It was, as to say, a kind of cataract, which can not be hidden, and an accumulated heritage regardless of class and age. It was not only misconception of Kim Boo-shik or Hwa-suh(Lee Hang-ro) School. The Sino-centrism was core of vassal state and vassal state was fruit of Sino-centrism. In the Korean history before the 19th Enlightenment age, there were few politicians and scholars free from Sino-centric bondage. [3] But even if it is true that the Sino-centrism was a stem that constituted the Korean political thought, it does not mean that it was main stream or basic value of Korean thought. As there were challenge and response, there were persistent resistance against Sino-centrism. Therefore there were no following deep and considerate research on anti/ or De-sino-centrism, this article is not relevant one. So I frankly confess that this article is neither perfect nor complete one but a half of it, until I finish my counter part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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