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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남지역 퇴계학맥과 그 문화

          김광순 慶北大學敎 退溪硏究所 2005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37 No.-

          오늘 본교 퇴계연구소와 국제퇴계학회대구경북지부가 공동 주최하는 춘계학술발표대회에서 "영남지역 퇴계학맥과 그 문화"라는 큰 주제로 학술발표대회를 개최함에 있어 기조강연을 맡은 김광순입니다. "영남지역 퇴계학맥과 그 문화"의 본래 과제 명제는 "영남지역 퇴계학맥과 그 문화의 데이터 베이스 구축"임을 양지 하시고 연구진은 본인이 연구책임교수이고, 박영호, 이문기, 강민구 교수가 공동연구원, 5명의 전임연구원, 박사과정 7명, 석사과정8명으로 구성되었다. "영남지역 퇴계학맥과 그 문화의 데이터 베이스 구축"이라는 원래의 과제 명칭에서 오늘 논문발표대회는 "데이터 베이스 구축"의 전 단계이므로 "영남지역 퇴계학맥과 그 문화"라고 편의상 붙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 개최하는 학술 발표대회의 내용을 말하기 전에, 2002년도 8월 1일에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인문사회분야 기초학문 육성사업단으로 선정된 "영남지역 퇴계학맥과 그 문화의 데이터 베이스 구축"이라는 과제 수행의 연구계획과 목적, 그리고 연구 방법과 내용, 현재까지 진행된 연구내용 및 실적 등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한 후에, 오늘 학술발표대회에서 발표한 5편의 주제에 대한 기본 연구 방향을 언급함으로써 기조강연을 대신하고자 한다. 이와 같이 기조강연을 마치면 임종진교수의 사회로서 발표자는 이군선박사의 <매헌 금보의 도산기 고증과 정존재 잠고증에 대하여>, 김인철박사의 <퇴계학맥 문집소재잠명류에 대한고찰>, 이정화박사의 <퇴계문인의 학퇴계정신이 누정제영에 반영된 계승양상>: 서신혜박사의 <선산지방 서원의 훼철과 오유거사전>, 유영옥박사의 <학봉 김성일의 제례의식과 행례>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하게 될 것이다. 오늘 다섯 분의 주제발표를 마치면 곧 이어서 이문기 교수를 좌장으로 하여 김종철 교수, 오용원 교수, 우인수 교수, 이수환 교수, 정우락 교수의 종합토론이 진행되고, 또한 방청석의 질문을 함께 받아 논문완성에 참고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늘 발표를 맡아 주실 다섯 분의 전임 연구원과 종합토론에 참가해 주실 교수님의 노고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It's my honor to make a keynote speech in Spring Conference of The Toegyehak(退溪學) in Yongnam(嶺南) area and its specific culture held by Toegye Studies Institute in Kyungbuk National University and Daegu and Kyungbuk branch of the Society of International Toegye Studies. The conference included in prior step on The construction of data base for the Toegyehak in Yongnam are and its specific culture was named as such for convenience. The research team is composed of 3 professors as coworkers-Park Youngho. Lee Moongi. Kang Mingu and 5 full-time researchers. 7 Ph.D course students. 8 master's course students, and me as principal researcher. The subject of The construction of data base for the Toegyehak in Yongnam area and its specific culture was elected as one of the national policy subject by Korea Research Foundation in term of basis learning supporting program in August 1. 2002. Prior to the presentation of papers, it will be announced that the purpose and plan of the subject. research way and results up to now. And the basic research directions of today's papers being announced are as bellows. At first, professor Lee Kunsun will announce the results of the investigation of Dasangi of Maeheon Geumbo. And next we will have the presentation about Self-cultivation Characteristics displayed in Exhortation and Inscription Works in Anthology of Toegye School Scholars by professor Kim Incheol. Professor Lee Jeonghwa will announce The aspects of succession of Nujeong Jeyoung in respect for the spirit of Toegye of Toegye's scholastic lineage then. And the next presentation by professor Seo Shinhye will be A Study on the removal of lecture-hall in Seonsan and Oyugeosajeon. With the presentation by professor Yu Youngog in the name of Hakbong Kim, Sung-il's thoughts and performance of the memorial services for the ancestors the presentation session will be ended. After presentation by 5 people, open debate will be held with professor Lee Mungi as chairperson, professor Oh Yongwon, professor U Insu and professor Jung Ulak. And also there will be session of receiving hearer's question. I think it will be great helpful to accomplish this project's purpose. Lastly. I'd like to show my special thank you for their great efforts to prepare presentation and discussion session. Thank you again.

        • 退溪『論語』解釋의 經學的 特徵과 그 繼承樣相

          이영호 慶北大學校 退溪硏究所 2005 退溪學과 韓國文化 Vol.- No.36

          『논어』는 유가의 비조인 공자의 언설이 기록되어 있는 경전이기에 동아시아 각국의 수많은 경학자들이 주석을 내곤 하였다. 이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논어』 주석서는 朱子의 『論語集注』인데, 주자는 이 책에서 경전해석학의 중요 방법인 義理와 훈고를 반영해내었다. 그런데 주자 이후 중국의 주자학파는, 양명학과의 사상 투쟁 과정에서 그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에 자연히 주자의 경전해석방법 중 의리에만 치중하고 훈고는 소홀히 하였으며, 이러한 학문적 태도는 그들의 『논어』 해석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한편 조선의 退溪는 『論語釋義』를 저술하면서 주자의 『논어』 주석을 준거로 삼았다. 때문에 그는 『논어』를 해석할 때 기본적으로 주자학적 의리에 충실하였지만, 때로는 經典의 本旨를 찾고자 노력했으며, 또한 경문의 자구를 조선어로 풀이하는 훈고에도 매진하였다. 퇴계 이후 영남 퇴계학파와 근기 퇴계학파는 주자와 퇴계의 영항 아래 각기 다른 경학적 특징들을 내포하는 『논어』 주석서들을 집필하였다. 영남 퇴계학파의 李德弘은 『論語質疑』를 통해 스승의 『논어』설을 준수하는 방향에서 『논어』를 해석했으며, 柳長源은 『論語纂註增補』에서 중국 주자학파의 『논어』설을 집성하였고, 柳健休는 『東儒論語集解評』에서 조선 주자학파의 『논어』설을 집대성하였는데 그 공통적 특징으로 주자학적 의리에 대한 정치한 분석을 들 수 있다. 한편 근기 퇴계학파의 종장인 李翼은 『論語疾書』에서, 주자의 의리정신을 높이 평가하였지만, 주자학적 의리와는 다른 새로운 의리-예컨대 현실과 이익의 중시-를 그의 『논어』해석에 투영시켰다. 또한 동아시아 『논어』 주석사에서 특기할 만한 『논어』주석서인 『論語古今註』를 남긴 丁若鏞도, 훈고만을 고집하는 한학을 배척하고 의리를 중시하는 주자학을 존숭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이기심성론이 중심에 놓여있는 주자의 『논어집주』와는 달리, 『논어고금주』에서 경세치용을 지향하는 해석체계를 수립하였다. 주자가 『논어집주』에서 이룩한 훈고와 의리의 종합이라는 경학적 성과는 중국주자학파에서는 계승이 되지 않고, 조선의 퇴계에 와서야 계승이 되었다. 이후 퇴계학파는 의리를 중시하였다는 점에서는 중국의 주자학파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영남 퇴계학파의 경우는 주자학적 의리를 정치하게 파고들었고, 근기 퇴계학파의 경우는 조선후기 역사적 상황에 부합하는 새로운 의리를 그들의 『논어』 주석에 투영시켜 놓았다는 점을 차이점 내지 특색으로 들 수 있다. Many scholars in East Asian countries have written numerous annotations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since <the Analects of Confucius> is the scripture that wrote down the remarks of Confucius who is a founder of Confucianism. Among all those annotations, the most influential annotation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is the <NoneoJipJu> written by Chu Hsi. Chu Hsi reflected the scholia and trend of focusing on contents in the context which are important methods for the studies of scripture interpretation. The Chu Hsi school in China after Chu Hsi, however, had tried to establish its identity during the philosophical dispute with the Wang Yangming school. The philosophical dispute with the Wang Yangming school made the Chu Hsi school to focus on not scholia but trend of focusing on contents in the context. The Chu Hsi school's attitude towards trend of focusing on contents in the context had been reflected on their interpretation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Meanwhile, ToeGye in Choson used the Chu Hsi's annotation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when he wrote <NoneoSukEui>. He was basically loyal to the way of focusing on the contents in the context. But sometimes he tried to make an effort to find out the original meaning of the scripture. He also made an effort to scholia that translated the sentences of the scripture in Choson language After ToeGye, YoungNam ToeGye school and KeunKi ToeGye school had written several annotations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that included different characteristics based on the study of Confucian Classics under the influence of Chu Hsi and ToeGye. Lee, DukHong in YoungNam ToeGye school interpreted <the Analects of Confucius> with the accordance of his master's theory in his book, <NoneoJilEui>. In his book, <NoneoChanJuJeongBo>, Yoo, JangWon compiled the theories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of Chinese Chu Hsi school. Yoo, KeonHyu collected the theories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of Korean Chu Hsi school in his book, <DongYuNoneoJipHaePyung>. Their common characteristics were based on finding out the contents in the context of the scripture. Meanwhile, the master of KeunKi ToeGye school. Lee, Ik had a different view of the trend of finding out the contents in the context of the scripture from that of Chu Hsi although he highly evaluated Chu Hsi's spirit for finding out the contents in the context of the scripture. He developed a new way of finding out the contents in the context of the scripture - for instance, putting on the importance of reality and profit - in his annotation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Chong, Yagyong who wrote <NoneoKoKeumJu>, that was a special annotation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in the history of annotation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in East Asian countries, excluded exegetical studies and showed his respect to the studies of Chu Hsi classics. Having Difference from Chu Hsi's <NoneoJipJu> that focused on less practical issues, he, however, built on the interpretational system that pointed to practical usage of running the state in his <NoneoKoKeumJu>. Chu Hsi's scholaristic outcome that combined scholia and the way of focusing on the contents in the context had been succeeded not in Chinese Chu Hsi school but in Choson Chu Hsi school. The ToeGye school made little difference with the Chinese Chu Hsi school in terms of putting on the importance on the way of focusing on contents in the context of the scriptures. YoungNam ToeGye school, however, was different from the Chinese Chu Hsi school in terms of studying the way of focusing on contents in the context of the scriptures in detail. KeunKi ToeGye school was different from Chinese Chu Hsi school in terms of developing new theory of seeing the way of finding out the contents in the contexts of the scriptures. That new theory corresponded to the historical situation in the late era of Choson dynasty.

        • 退溪『論語』解釋의 經學的 特徵과 그 繼承樣相

          이영호 慶北大學校 退溪硏究所 2005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36 No.-

          『논어』는 유가의 비조인 공자의 언설이 기록되어 있는 경전이기에 동아시아 각국의 수많은 경학자들이 주석을 내곤 하였다. 이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논어』주석서는 朱子의 『論語集注』인데, 주자는 이 책에서 경전해석학의 중요 방법인 義理와 訓?를 반영해내었다. 그런데 주자 이후 중국의 주자학파는, 양명학과의 사상투쟁 과정에서 그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에 자연히 주자의 경전해석방법 중 의리에만 치중하고 훈고는 소홀히 하였으며, 이러한 학문적 태도는 그들의 『논어』해석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한편 조선의 退溪는『論語釋義』를 저술하면서 주자의『논어』주석을 준거로 삼았다. 때문에 그는『논어』를 해석할 때 기본적으로 주자학적 의리에 충실하였지만, 때로는 經典의 本旨를 찾고자 노력했으며, 또한 경문의 자구를 조선어로 풀이하는 훈고에도 매진하였다. 퇴계 이후 영남 퇴계학파와 근기 퇴계학파는 주자와 퇴계의 영향 아래 각기 다른 경학적 특징들을 내포하는『논어』주석서들을 집필하였다. 영남 퇴계학파의 李德弘은『論語質疑』를 통해 스승의『논어』설을 준수하는 방향에서『논어』를 해석했으며, 柳長源은『論語?增補』에서 중국 주자학파의『논어』설을 집성하였고, 柳健休는『東儒論語集解評』에서 조성 주자학파의『논어』설을 집대성하였는데, 그 공통적 특징으로 주자학적 의리에 대한 정치학 분석을 들 수 있다. 한편 근기 퇴계학파의 종장인 李瀷은 『論語疾書』에서, 주자의 의리정신을 높이 평가하였지만, 주자학적 의리와는 다른 새로운 의리-예컨대 현실과 이익의 중시-를 그의『논어』해석에 투영시켰다. 또한 동아시아『논어』주석사에서 특기할 만한 『논어』주석서인『論語古今註』를 남긴 丁若鏞도, 훈고만을 고집하는 한학을 배척하고 의리를 중시하는 주자학을 존숭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이기심성론이 중심에 놓여있는 주자의『논어집주』와는 달리,『논어고금주』에서 경세치용을 지향하는 해석체계를 수립하였다. 주자가『논어집주』에서 이룩한 훈고와 의리의 종합이라는 경학적 성과는 중국주자학파에서는 계승이 되지 않고, 조선의 퇴계에 와서야 계승이 되었다. 이후 퇴계학파는 의리를 중시하였다는 점에서는 중국의 주자학파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영남 퇴계학파의 경우는 주자학적 의리를 정치하게 파고들었고, 근기 퇴계학파의 경우는 조선후기 역사적 상황에 부합하는 새로운 의리를 그들의『논어』주석에 투영시켜 놓았다는 점을 차이점 내지 특색으로 들 수 있다. Many scholars in East Asian countries have written numerous annotations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since <the Analects of Confucius> is the scripture that wrote down the remarks of Confucius who is a founder of Confucianism. Among all those annotations, the most influential annotation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is the <NoneoJipJu> written by Chu Hsi. Chu Hsi reflected the scholar and trend of focusing on contests in the context which are important methods for the studies of scripture interpretation. The Chu Hsi school in China after Chu Hsi, however, had tried to establish its identity during the philosophical dispute with the Wang Yangming school. The philosophical dispute with the Wang Yangming school made the Chu Hsi school to focus on not scholia but trend of focusing on contents in the context. The Chr Hsi school's attitude towards trend of focusing on contents in the context had been reflected on their interpretation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Meanwhile, ToeGye in Choson used the Chu Hsi's annotation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when he wrote <NoneoSukEui>. He was basically loyal to the way of focusing on the contents in the context. But sometimes he tried to make an effort to find out the original the sentences of the scripture in Choson language. After ToeGye, YoungNam ToeGye school and KeunKi ToeGye school had written several annotations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that included different characteristics based on the study of Confucian Classics under the influence of Chu Hsi and ToeGye. Lee, DukHong in YoungNam ToeGye school interpreted <the Analects of Confucius> with the accordance of his master's theory in his book. <NoneoJilEui>. In his book, <NoneoChanJuJeongBo>, Yoo. JangWon compiled the theories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of Chinese Chu Hsi school. Yoo, KeonJHyu collected the theories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of Korean Chu Hsi school in his book, <DongYuNoneoJipHaePyung>.Their common characteristics were based on finding out the contents in the context of the scripture. Meanwhile, the master of KeunKi ToeGye school. Lee, Ik had a different view of the trend of finding out the contents in the context of the scripture from that of Chu Hsi although he highly evaluated Chu Hsi's spirit for finding out the contents in the context of the scripture. He developed a new way of finding out the contents in the context of the scripture - for instance, putting on the importance of reality and profit - in his annotation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Chong, Yagyong who wrote <NoneoKoKeumJu>, that was a special annotation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in the history of annotation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in East Asian countries. excluded exegetical studies and showed his respect to the studies of Chu Hsi classics. Having Difference from Chu Hsi's <NoneoJipJu> that focused on less Practical issues, he, however, built on the interpretational system that pointed to practical usage of running the state in his <NoneoKoKeumJu>. Chu Hsi's scholaristic outcome that combined scholia and the way of focusing on the contents in the context had been succeeded not in Chinese Chu Hsi school but in Chosen Chu Hsi school. The ToeGye school made little difference with the Chinese Chu Hsi school in terms of putting on the importance on the way of focusing on contents in the context of the scriptures. YoungNam ToeGye school, however, was different from the Chinese Chu Hsi school in terms of studying the way of focusing on contents in the context of the scriptures in detail. KeunKi ToeGye school was different from Chinese Chu Hsi school in terms of developing new theory of seeing the way of finding out the contents in the contexts of the scriptures. That new theory corresponded to the historical situation in the late era of Chosen dynasty.

        • 退溪先生의 學統과 竹川先生의 位相

          李完栽 慶北大學校 退溪硏究所 2003 退溪學과 韓國文化 Vol.- No.32

          退溪先生의 학통에 대해서는 간단히 언급을 하면, 첫째 퇴계의 학문 연원은 宋代의 유교를 철학화하여 性理學을 집대성한 朱子이고, 둘째 학문 내용은 1. 종래 유학의 철학적 이해, 2. 윤리의 근거 확립, 3. 윤리 도덕의 주체 확립으로 요약하고, 셋째 그 流派에 있어서 鶴峰 金誠一, 西厓 柳成龍, 寒岡 鄭逑 계통의 학맥을 소개했다. 그리고 竹川 선생의 位相에 대해서는 先儒의 규정에 따라 1. 연원의 올바름, 2. 학문의 순수함과 독실함, 3. 節義의 뚜렷함을 검증했다. 그리고 竹川先生 그러한 학문과 인격이 퇴계 선생의 교화에 크게 힘입었다는 점을 밝혔다. 요컨대, 퇴계 선생의 학문은 성리학적 학문 원리에 입각하여 유학적 인생과 즉 도덕적 인간의 확립을 도모하려 하였고, 竹川 선생의 삶이 또한 퇴계 선생이 추구했던 그 삶을 충실하게 실천한 것이었다. 여기서 두 선생의 사상과 삶은 首尾가 一貫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竹川 선생의 독실한 踐履는 퇴계 선생의 삶의 모습에서 더욱 철저하게 배운 것이라고 할 것이다. 끝으로 퇴계 선생의 학맥을 일반적으로 앞에 든 3학파로 분류하나, 湖南地方의 제자로서 竹川 朴光前 선생, 高峰 奇大升 선생, 山天齊 李咸亨 선생 등이 계셨으니 필연코 湖南지역에도 퇴계 선생의 한 학맥이 면면히 흐르고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This thesis clarifies academical relations between ToeGye and his pupil JookChun, Park-Guang Zhen. The summary of content is as following. I classified Toe Gye's scholastic mantle into 3 parts. That is--- first, academic origin, second, academic details, third, academic school. 1. ToeGye's academic origin, he declared, it came from JuJa. 2. His academic details can be summarized into 3 points. First, he accepted the theory of JuJa and made traditional confucianism philosophized. Second, he emphasized the 'li'(理) and made firm ground of ethics. Third, he asserted 'Gyung'(敬) and made it clear that he established an ethical subject. 3. In the various school of ToeGye's study, there are mainly three schools;(HakBong Kim-Sung-il's) school, (SueAe Liu Sung Ryong's) school, (HanGang Hung-gu's) school. but I commented (Go-Bong Gi Dae Sueng, JookChun Park-Guang Zheun)-oriented (Ho-Nam) school can also be called one of ToeGye's study. About (JookChun Park-Guang Zheun)'s status, 1. He learned under ToeGye's instruction, his study can be called to be originated from ToeGye's. 2. By analyzing his written materials, his study is sincere and faithful to ToeGye's. 3. From the fact that he raised an army in the cause of justice loyalty when Japanese troops invaded Korea over the two times, we can notice that he definately adhered to his principle. In the conclusion, I think JookChun's status as commented above, came from the result that he tried to follow ToeGye's example and learn his scholarship and personality.

        • KCI등재후보

          전기자료에 나타난 서명을 중심으로 본 퇴계 학맥의 전개

          이군선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04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34 No.-

          Through this thesis, a phase of the development of Toegye's scholastic lineage is looked around mainly the titles of books represented on biographic material of Toegye's disciples. Examining biographic material of Toegye's disciples, Toegye used textbooks named Simkyung(心經), Jujaseojeolyo(朱子書節要), Geunsarok(近思錄), etc. when he taught his disciples, and they regarded the books as the secret of studies, too. The contents of this thesis was argued, above all, that Toegye consideredSimkyung, Geunsarok as the most important books while he communicated with his disciples. Studying those books was scholastic propensity of those days, but intensive course of lectures as Toegye's family was not accomplished under other instruction. That might show that his scholastic propensity made Simhak(心學)-it is very similar to psychology- the prime object. Second, the title whose books Toegye's disciples thought to be cardinal was also mainly Simkyung. Moreover, a lot of disciples were fond of reading Geunsarok, Jujaseojeolyo as well. Jujaseojeolyo was especially organized by Toegye, and his disciples learned it enthusiastically because it fused his scholastic system. This propensity was closely connected with the thing which his scholastic lineage was Simhak-centered development like Simkyung and Jujaseojeolyo. Toegye's scholastic lineage that I previously organized mainly the titles of books stood on just biographic material. Therefore, it needs minute researches through collections of individual works from now on. 본고는 퇴계 문인들의 전기자료에 나오는 서명을 중심으로 퇴계 학맥 전개의 한 단면을 살펴본 것이다. 퇴계 문인의 전기자료를 살펴보면 퇴계가 문인들을 가르칠 적에 사용한 교재는 주로 심경 근사록 주자서절요 등의 책이었으며, 퇴계의 문인들이 학문의 요체로 생각했던 책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본고에서 논의한 내용은 첫째, 퇴계가 문인들에게 교학하며 가장 중요시한 서적이 심경과 근사록이라는 것이다. 심경과 근사록을 공부하는 것이 당시 학문적 성향이기는 하지만 여타의 문하에서는 퇴계 일문에서처럼 집중적인 강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퇴계의 학문성향이 心學(理學)을 위주로 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퇴계의 문인들이 중시한 서명 역시 심경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근사록과 주자서절요 역시 많은 문인들이 애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자서절요는 퇴계에 의해 정리되어 퇴계의 학문체계가 녹아 있는 것으로 퇴계의 문인들은 독실하게 공부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향은 퇴계의 학맥이 심경과 주자서절요를 중심으로 心學(理學) 위주로 전개되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위에서 정리한 퇴계 문인의 전기 자료에 나오는 서명을 토대로 살펴본 퇴계 학맥은 어디까지나 전기자료에 나오는 것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향후 개별 문집을 통한 정밀한 연구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 KCI등재

          기획논문 : 퇴계사상(退溪思想)의 유학사적(儒學史的) 좌표(座標) ; 퇴계와 율곡에 대한 재해석 -율곡의 퇴계 비판을 중심으로-

          김경호 ( Kyung Ho Kim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07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41 No.-

          본 논문은 퇴계철학의 영향 하에서 성립한 율곡철학의 차이점을 조명한 것이다. 율곡철학은 퇴계철학에 관한 근본적인 성찰을 전제하기 때문에 명확히 이해하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른다. 퇴계와 율곡의 철학은 리기심성에 대한 이론적 논거를 바탕으로 성립되었다. 리기심성에 대한 논의는 그것이 이미 인간의 행위를 포함하는 한에 있어서 사변적인 이론의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도덕과 윤리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행위실천을 지시하는 마음의 수양공부까지 함축한다. 그러므로 퇴계와 율곡과 같은 성리학자들에게 있어서 리기심성과 같은 사변적 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선한 본성을 일상적 삶의 세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보존하면서 확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론의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성리학에서 리기심성론을 지속적으로 거론하는 이유도 이것이 인간의 도덕법칙과 윤리적 행위를 담보하는 심성의 문제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퇴계와 율곡의 철학체계에서 리기심성론은 경험적인 우주 자연의 변화?운동을 규명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제기되었을 뿐만 아니라,더욱 중요한 점은 인간의 심리현상에 대하여 보다 논리적이고 정합적인 설명을 위한 준거틀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성립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율곡은 우주와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는 리기에 대하여 적확한 식견을 갖지 못한다면 다양한 인간의 심리현상을 다루는 심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율곡철학에서 존재에 대한 근본적 이해라고 할 수 있는 리기심성론은 퇴계철학의 연장선에 있다. 즉 퇴계의 리기심성론에 대한 수용과 비판이라는 재해석을 통하여 율곡 리기심성론의 체계가 마련된다. 이러한 점에서 논자는 리기호발?주리주기의 문제를 포함한 퇴계철학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재해석을 통해서 율곡의 철학적 입장을 구명하고자 한다. 이는 결국 퇴계의 철학에 대한 해명을 통해서 율곡철학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This paper is to explicate the modes of differentiation of Yulgok's philosophy based on the differential process of Toegye's philosophy. It is difficult to understand Yulgok's philosophy for it presupposes the radical reflection on the essence of Toegye's philosophy. Toegye and Yulgok's philosophies was constituted on the theoretical basis of argument on the theory of Liqixinxing. As far as the discourse of the Liqixinxing, it is not limited to the part of the speculative theory. It implies propriety practice that refers the concrete practice for realization of moral and ethics and mind study. Therefore, As for Neo-Confucians such as Toegye and Yulgok, all speculative remarks are like methodological search that how can human beings realize it in the real world without destroying the nature of morality endowed from the heaven. In Neo-Confucianism, theory of Liqixinxing is mentioned repeatedly for it is the methodology for explaining the human nature and mind. In Toegye and Yulgok's philosophical system, the theory of Liqixinxing was raised as a methodological theory for the elucidation of the change and movement of the experiential universe and nature. More importantly, the theory was also organized in the course of groping the criterion for a better theoretical and appropriate explanation about human psychological phenomenon. Especially, Yulgok points out that if human beings do not possess an accurate view on the theory of Liqi that search for the source of the universe and existence, they can not gain right comprehension on the matter of human nature(Xinxing) that deals with various psychological phenomenon of human beings as well. The theory of Liqixinxing, fundamental understanding on existence from the point of Yulgok's philosophy, lies on the extensional line about Toegye. In other words, such reinterpretation as acceptance and criticism on Toegye's theory of Liqixinxing provides Yulgok's theory of Liqixinxing system. Accordingly I endeavors to manifest Yulgok's philosophical standpoint by means of critical analysis and reinterpretation on Toegye's theory(including Liqihufa, Zhulizhuqi). In its effect, this effort can be viewed as an attempt to understand Yulgok from the Toegye's philosophy.

        • 退溪學派의 『禮記』해석에 대한 고찰

          유권종 慶北大學校 退溪硏究所 2005 退溪學과 韓國文化 Vol.- No.36

          본 연구는 퇴계로부터 재전 제자까지의 학맥에서 이루어진 『禮記』에 관한 해석의 사실을 밝히고, 그 해석의 내용 및 특징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퇴계의 학맥에서 『예기』에 대한 학문적 접근의 방식은 고증적 방식과 해석적 방식으로 크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고증적 방식은 이미 퇴계에게서 단편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예기』를 대상으로 삼아 본격적인 고증의 방식을 취한 것은 학봉과 서애의 『상례고증』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미수의 『경례유찬』, 「십이월령고정」도 그러한 전통을 잇는 저술로 인정될 수 있다. 또 해석적 방식은 지산의 「곡례수장도」와 우복의 『사문록』을 들 수 있는데, 특히 『사문록』은 재전제자까지의 퇴계학맥으로 볼 때에 『예기』 해석의 치밀함과 아울러 고증에 입각한 변석이 매우 돋보이는 저술이다. 퇴계의 학맥에서 이루어진 『예기』 해석의 특징은 우선 퇴계로부터 재전 제자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 저술의 전문화가 이루어지는 점, 즉 퇴계에게서는 단편적인 경문의 인용을 통해서 예설을 확정하던 방식이었던 것이 서애와 학봉 그리고 미수에 이르는 과정에서 상례와 제례를 전문적으로 고증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면서 전문화가 이루어진 점을 하나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아울러 우복의 『사문록』과 같이 고증은 물론 치밀한 이기론적 철학적 분석에 입각한 『예기』 해석이 성취되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또 미수의 『경례유찬』과 같이 왕과 제후 대부 사 등의 신분에 따라 차등을 엄격히 강조하는 예를 『예기』 등의 경전으로부터 구성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다. 그리고 「곡례수장도」처럼 예학과 성학을 결합시킨 저작이 이루어진 점도 중요한 특징이다. 이렇게 보면 퇴계의 학맥에서 이루어진 『예기』 연구는 궁극적으로는 성학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그 중요성을 지녔던 것이라고 판단된다. This study has a purpose to explain the context of interpretations and commentaries of Yeki, one of old Chinese classics, on the Toegye School from 16th century to 17th centry, and to discuss the features and historical value of their works. In the Toegye School, confucians works to approach to Yeki show two different ways. The one is a bibiographical study, the other is a hermeneutic study. The bibiographical study was started by Toegye and has been regularized by Hakbong(Kim Sung-il) and Soae(Yu Sung-ryong) in their each works. Their each works had the same name, that was Sang-rye-go-jeung which meant a bibiographical study of funeral ceremony. Misu(Hu Mok) had also made bibiographical studies, which were Gyung-rye-yu-chan and Si-bi-wol-lyung-go-jung. The hermeneutic studies were made by Jisan(Jo Ho-ik) and Ubok(Jung Gyung-se). Jisan's work is Gok-rye-su-jang-do and Ubok's work is Sa-mun-lok. Specially the latter is a very important one because its hermeneutic study as well as the bibiographical method are very correct and fine. The features of Yeki stdies in the Toegye School can be explained as follow: the first is from Toegye to Misu their bibiographical studies had developed and speciallized more and more. The second is that the school had achieved a work which was the finest one of hermeneutical studies in the 17th century of Chosun Dynasty with its philosophical debates as like Ubok's Sa-mun-lok. The third is to emphasized the rites different in grades of social status in Misu's Gyung-rye-yu-chan. The last is to combine and harmonize rite studies and sage learning in Jisan's Gok-rye-su-jang-do.

        • KCI등재

          退溪九曲과 退溪九曲詩 연구

          김문기 慶北大學校 退溪硏究所 2008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42 No.-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discuss an academic investigation into Toegyegugok(退溪九曲) conducted last summer in an attempt to ascertain historical evidence for each spot of it and its natural characteristics, and it's also meant to look into Toegyegugok poems and the lives and learning of the poets. An academic investigation was implemented into Toegyegugok in August 2007 to confirm its existence, and that made it possible to find out the exact location of it. In general, that remained intact, though it was partly damaged to some extent. That was 5.5km long and along Togye River, a branch stream of Nakdong(落東) River where Toegye's remains were rampant. It is not sure whether this spot was designated while he was alive. There were two poets who wrote poems about Toegyegugok : Lee Ga-sun (李家淳) and Lee Jong-hyu(李宗休). In Lee Ga-sun's poem, each valley's scenary and scenic beauty were portrayed in the first two lines, and he described his affection for Toegye(退溪) and the uprightness of man allegorically by using things in the second two lines. So his poem could be said to depict how he was elated by things. Lee Jong-hyu composed poems about Toegyegugok (退溪九曲), Oksangugk (玉山九曲) and Dosangugok (陶山九曲) as well. In the poem about Toegyegugok, he allegorized human nature. Overall, however, his Toegyegugok poem described more principles of moral philosophy than that of Lee Ga-sun. 본고는 퇴계구곡 원림에 대한 지난해 여름의 학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퇴계구곡 원림의 각 지점을 고증하고 그 원림적 특징과 퇴계구곡시 작자의 생애와 학문, 퇴계구곡시의 작품세계를 고찰하였다. 퇴계구곡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하계 이가순의 퇴계구곡시를 통하여 밝혀지게 되었다. 그 후, 퇴계구곡 원림에 대한 조사와 퇴계구곡 관련시를 두루 찾는 과정에서 하암 이종휴의 퇴계구곡시도 창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2007년 8월에 퇴계구곡 원림에 대한 학술조사를 실시하여 퇴계구곡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고 퇴계구곡의 정확한 지점을 고증할 수 있었다. 퇴계구곡 원림의 제1곡은 사련진, 제2곡은 양진암, 제3곡은 죽동, 제4곡은 장명뢰, 제5곡은 고등암, 제6곡은 임부동, 제7곡은 양평, 제8곡은 청음석, 제9곡은 쌍계인데 이들 퇴계구곡은 부분적으로 훼손된 바가 있으나 전반적으로 볼 때 잘 보존되어 있었다. 도산구곡이 낙동강의 큰 물줄기에 설정된 것과는 달리 퇴계구곡은 퇴계선생의 유적이 산재하는, 낙동강의 지류인 퇴계, 즉 토계천을 따라 5.5km에 걸쳐 설정되어 있다. 퇴계구곡 원림이 퇴계선생 생존 시에 지정되고 경영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퇴계구곡시는 하계 이가순과 하암 이종휴, 두 사람이 남겼다. 이가순은 전국의 명산과 대찰, 명현의 유적지를 두루 편답하고 수많은 기행시를 창작했을 뿐만 아니라 무이구곡도가의 차운시와 퇴계구곡시를 비롯한 도산구곡시, 옥산구곡시, 원명구곡시, 소백구곡시 등 5편의 원림 구곡시를 지었다. 이가순의 퇴계구곡시는 전 2구에서는 주로 각 곡의 주위 경관과 풍치를 묘사하고 후 2구에서는 퇴계선생에 대한 회고의 정이나 성정지정을 탁물우의하여 읊고 있어서 그의 이 구곡시는 인물기흥적인 시라 할 수 있다. 이종휴도 무이구곡도가 차운시를 남긴 것을 비롯하여 퇴계구곡시와 옥산구곡시, 도산 구곡시를 창작하였는데 이종휴의 퇴계구곡시도 서경과 서정을 통해 탁물우의의 수법으로 음영성정하였으나 전반적으로 볼 때 이가순의 퇴계구곡시에 비하여 도학의 묘리를 담은 작품이 많다.

        • KCI등재

          退溪의 '敬의 心學'과 陽明의 '良知 心學' : 『退溪先生言行錄』과 『傳習錄』의 '言行' 비교를 겸해서

          최재목 慶北大學校 退溪硏究所 2007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41 No.-

          이 논문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하 퇴계)과 양명(陽明) 왕수인(王守仁)(이하 양명)의 사상을,특히 『퇴계선생언행록(退溪先生言行錄)』과 『전습록(傳習錄)』 비교를 통해 살펴보려는 데 목적이 있다. 내용은〈퇴계의 '敬의 '心學'과 양명의 '良知 心學'〉을 정리하고 나서, 이어서 <『퇴계 선생언행록』과 『전습록』의 비교를 통해서 본 사상적 차이의 예>를 살펴볼 것이다. 아울러 이 논문에 사용할 기본 자료는 퇴계의 언행을 그 제자들이 기록한 『퇴계선생언행록』과 양명의 언행을 그의 제자들이 기록한 내용 등을 담고 있는 『전습록』의 주요 부분이 될 것이다. 퇴계는 경(敬)을 중시했다. 그러나 양명은 「성의(誠意)를 주로 하면 경(敬)이라는 글자를 덧붙일 필요가 없으며, 만약 덧붙인다면 그것은 사족(蛇足)과 같은 것」이라고 하며 양지(良知)를 중시하였다. 퇴계의 '경의 심학'과 양명의 '양지 심학'에서 전자는 심성의 수양을 통한 경건한 마음을 확립하는 것을, 후자는 자아의 완전한 발견을 통한 충분한 자유로운 실현을 꿈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퇴계의 마음은 '거울을 단 고요한 마음'이었으며, 양명의 마음은 '태양 같은 활발한 마음'이었다. 그것은 '경'과 '양지'제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을 외부 지식의 양적 축적이 아니라, 사물과 인간을 진지하게 관찰하고 신중하게 응대하는 태도(=敬)를 견지함(持, 居)에서 찾던 퇴계, 그리고 자기 마음(=내면)의 온전함(=良知)을 신뢰하고 그것을 적극 실현함(=致)에서 찾던 양명은, 어느 쪽이나 동양의 사유에서 돋보이는 '마음'의 발견자였고 경영자였다. 그들은 지역을 달리 했지만, 인간의 삶에서 어쩔래야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트라우마를 치유하고자 했던 '삶의 유능한 멘토'였다. 나아가서 그들의 마음에 대한 오래된 사상적 아젠다는, 그 방식이 좀 다르다고는 할지라도, 지금의 우리에게서도 여전히 '첨단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하겠다. This is a comparative study on Toegye Ihwang(1501~1570) and Yang ming Wang shuren(l472~1528)'s mind philosophy through the two analects Toegyesonsengonhenglok and Chuanxilu. Toegyesonsengonhenglok is written by Toegye's excellent disciples, and Chuanxilu is written by Yangming' excellent disciples too. And we can find out a many point of differences through the examples of the two analects, such as instructional method, a point of view on human being, a woman, nature and death and so on. Particularly, Toegye lay weight on awe and respect (Jing, Gyong, 敬) against human and nature such as Chuzhi schools did in generally. Yangming, the other side, lay weight on the nature of human mind(Liangzhi, Yangji, 良知) and sincerity(Cheng, Seong, 誠), so he lay emphasis on Liangzhi only, and denied Jing. But, I think basically, Toegye and Yangming has hardly same point of view on humanity and nature. The two thinkers, although some scholar who have studied on two are against the idea, did not want to accumulate a store of knowledge quantitatively. They, In short, has same uptodately agenda for human and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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