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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남지역 퇴계학맥과 그 문화

        김광순 慶北大學敎 退溪硏究所 2005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37 No.-

        오늘 본교 퇴계연구소와 국제퇴계학회대구경북지부가 공동 주최하는 춘계학술발표대회에서 "영남지역 퇴계학맥과 그 문화"라는 큰 주제로 학술발표대회를 개최함에 있어 기조강연을 맡은 김광순입니다. "영남지역 퇴계학맥과 그 문화"의 본래 과제 명제는 "영남지역 퇴계학맥과 그 문화의 데이터 베이스 구축"임을 양지 하시고 연구진은 본인이 연구책임교수이고, 박영호, 이문기, 강민구 교수가 공동연구원, 5명의 전임연구원, 박사과정 7명, 석사과정8명으로 구성되었다. "영남지역 퇴계학맥과 그 문화의 데이터 베이스 구축"이라는 원래의 과제 명칭에서 오늘 논문발표대회는 "데이터 베이스 구축"의 전 단계이므로 "영남지역 퇴계학맥과 그 문화"라고 편의상 붙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 개최하는 학술 발표대회의 내용을 말하기 전에, 2002년도 8월 1일에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인문사회분야 기초학문 육성사업단으로 선정된 "영남지역 퇴계학맥과 그 문화의 데이터 베이스 구축"이라는 과제 수행의 연구계획과 목적, 그리고 연구 방법과 내용, 현재까지 진행된 연구내용 및 실적 등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한 후에, 오늘 학술발표대회에서 발표한 5편의 주제에 대한 기본 연구 방향을 언급함으로써 기조강연을 대신하고자 한다. 이와 같이 기조강연을 마치면 임종진교수의 사회로서 발표자는 이군선박사의 <매헌 금보의 도산기 고증과 정존재 잠고증에 대하여>, 김인철박사의 <퇴계학맥 문집소재잠명류에 대한고찰>, 이정화박사의 <퇴계문인의 학퇴계정신이 누정제영에 반영된 계승양상>: 서신혜박사의 <선산지방 서원의 훼철과 오유거사전>, 유영옥박사의 <학봉 김성일의 제례의식과 행례>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하게 될 것이다. 오늘 다섯 분의 주제발표를 마치면 곧 이어서 이문기 교수를 좌장으로 하여 김종철 교수, 오용원 교수, 우인수 교수, 이수환 교수, 정우락 교수의 종합토론이 진행되고, 또한 방청석의 질문을 함께 받아 논문완성에 참고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늘 발표를 맡아 주실 다섯 분의 전임 연구원과 종합토론에 참가해 주실 교수님의 노고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It's my honor to make a keynote speech in Spring Conference of The Toegyehak(退溪學) in Yongnam(嶺南) area and its specific culture held by Toegye Studies Institute in Kyungbuk National University and Daegu and Kyungbuk branch of the Society of International Toegye Studies. The conference included in prior step on The construction of data base for the Toegyehak in Yongnam are and its specific culture was named as such for convenience. The research team is composed of 3 professors as coworkers-Park Youngho. Lee Moongi. Kang Mingu and 5 full-time researchers. 7 Ph.D course students. 8 master's course students, and me as principal researcher. The subject of The construction of data base for the Toegyehak in Yongnam area and its specific culture was elected as one of the national policy subject by Korea Research Foundation in term of basis learning supporting program in August 1. 2002. Prior to the presentation of papers, it will be announced that the purpose and plan of the subject. research way and results up to now. And the basic research directions of today's papers being announced are as bellows. At first, professor Lee Kunsun will announce the results of the investigation of Dasangi of Maeheon Geumbo. And next we will have the presentation about Self-cultivation Characteristics displayed in Exhortation and Inscription Works in Anthology of Toegye School Scholars by professor Kim Incheol. Professor Lee Jeonghwa will announce The aspects of succession of Nujeong Jeyoung in respect for the spirit of Toegye of Toegye's scholastic lineage then. And the next presentation by professor Seo Shinhye will be A Study on the removal of lecture-hall in Seonsan and Oyugeosajeon. With the presentation by professor Yu Youngog in the name of Hakbong Kim, Sung-il's thoughts and performance of the memorial services for the ancestors the presentation session will be ended. After presentation by 5 people, open debate will be held with professor Lee Mungi as chairperson, professor Oh Yongwon, professor U Insu and professor Jung Ulak. And also there will be session of receiving hearer's question. I think it will be great helpful to accomplish this project's purpose. Lastly. I'd like to show my special thank you for their great efforts to prepare presentation and discussion session. Thank you again.

      • 退溪의『大學』解釋과 그 意味

        최석기 慶北大學校 退溪硏究所 2005 退溪學과 韓國文化 Vol.- No.36

        이 논문은 퇴계 이황의 『대학』 해석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 내용과 특징을 살핀 글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퇴계의 釋義類 經書解釋과 『대학』에 대한 인식을 먼저 살펴보고, 그의 『대학』 해석을 『대학석의』의 해석과 기타 자료에 산견되는 문인들과 문답한 해석으로 크게 나누어 고찰하였다. 퇴계의 석의류 경서해석은, 15-6세기 학자들이 大全本을 텍스트로 사서삼경을 정밀히 해석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종류의 釋義를 모아 정리하고 비평한 것으로, 후대 校正廳本 諺解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런 점에서 퇴계의 석의류 경서해석은 우리나라 경학사상 釋義時代에 생산된 釋義類의 集大成이라 하겠다. 퇴계는 『대학』을 大廈에 비유하고, 여타 경서는 그 대하를 수식하거나 장식하는 부속물로 보았다. 이것이 바로 『대학』을 경학의 根幹으로 보는 그의 經學觀이다. 또한 그는 『대학』을 修己治人之道를 담은 政治書로 보지 않고, 存心出治之本에 해당 하는 修身書로 보았다. 『대학석의』의 내용과 해석성향을 분석해 본 결과, 가장 큰 특징은 총 101항목 중 98항목이 字句의 諺解을 정리한 것이므로 註보다 本文 字句의 정확한 언해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퇴계는 이를 위해, 첫째 語助辭 하나에도 신중을 기하였으며, 둘째 언해로 판가름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한문으로 그 의미를 정밀히 논변했으며, 셋째 字義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虛辭 등을 분변하였다. 이 가운데 한문 해석이 곁들여진 대목이 그의 『대학』 해석에 있어 주요한 설들이다. 기타 편지글 등에 수록된 『대학』 해석에 관한 자료를 살펴본 결과, 퇴계 『대학』 해석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퇴계는 '知止而后有定' 이하를 格物致知傳으로 보는 설에 대해 반대하였다. 둘째, 格物·物格의 해석에 있어 一身의 주재자인 마음이 대상에 있는 이치를 認知하는 것에 대해 정밀하게 논하였다. 셋째, 知止·定·靜·安·慮·得의 해석에 있어, 예컨대 誠意의 경우 誠意가 그칠 바를 알아 意誠을 얻는데 定·靜·安은 그 중간에 있는 것이라고 하여, 주자의 설보다 진전된 해석을 하였다. 넷째, 팔조목 중 誠意·正心·修身에 대한 해석에 있어 성의는 靜時의 存養工夫로 정심과 수신은 動時의 省察工夫로 보아, 意誠한 뒤에도 四有의 偏私處를 없애는 正心을 해야 하고 五僻의 偏私處를 없애는 修身을 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다섯째, 正心章의 兼體用說에 대해서는 주자의 설에 따라 心之用만을 말한 것으로 보고, '心不在焉'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는 心在軀殼說·心在視聽說 등을 모두 부정하고 主內應外說을 주장하였다. This paper is a detailed research on the contents and features of the Toi-gye(退溪), Yi Hwang(李滉)'s interpretation of [Dae-hak]. In this paper, I inquired into the Toi-gye's classics interpretation of Seok-eui-ryu(釋義類) and his cognition about it at first, and I studied classifying into the interpretation of [Dae-hak-seok-eui(大學釋義)] and several scattered datum like Q&A exchange letters with his pupils. The Toi-gye's classics interpretation of Seok-eui-ryu(釋義類) is a study way of arranging and commenting several kinds of Seok-eui(釋義) while minutely interpret the books of '四書三經' in 15~16th century, and he influenced very greatly in the Korean interpretation of '校正廳本' of next generation. In this point of view, the Toi-gye's classics interpretation of Seok-eui-ryu(釋義類) is a compilation of Seok-eui-ryu which produced in Seok-eui-rye period of Korea. Toi-gye regarded that many other classics are decorations or ornaments if [Dae-hak] is a mansion. This is his very viewpoint of the classics that of [Dae-hak] is the root and the trunk of the study of Confucian classics. And he thought that [Dae-hak] is the moral culture textbook of '存心出治之本' not to the political theory of '修己治人之道'. In view of the results so far achievements, the most outstanding feature is that he concentrated to the accurate Korean literal text interpretation of [Dae-hak] judging from that the 98 items of his book is consisted of Korean interpretation arrangements. Regard for this, Toi-gye paid attention to the choice of each character, and detailed commented with Chinese character on the difficult point of Korean interpretation, and classified the expletive concerning about the exact meaning of each character. The additional Chinese interpretation among this are his major theories of [Dae-hak] interpretation. The result of several datum inspection like other private letters, the major features of the Toi-gye's interpretation of [Dae-hak] is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oi-gye opposed the theory that regard [格物致知傳] below the text of '知止而后有定'. Second, he discussed minutely the principle that the mentality is aware of its object while interpreting of '格物' and '物格' Third, while interpreting '知止·定·靜·安·慮·得'. he suggested a progressed theory than Chu-tzu(朱熹)'s one, for example. '定·靜·安' exist in the middle place when achieve '意誠' in case of '誠意'. Forth, in interpretation of '誠意·正心·修身' among '八條目', he regarded '誠意' as '靜時 存養工夫', and '正心' and '修身' as '動時 省察工夫', more over he insisted that it needs not only '正心' which exclude '四有 偏私處' but also after achieve ‘修身’ which exclude '五僻 偏私處' after achieve '意誠'. Fifth, he followed the Chu-tzu's theory that mentioned about '心之用' for '兼體用說' of the chapter of '正心', however, he insisted '主內應外說' denying '心在軀殼說' and '心在視聽說' for the interpretation of '心不在焉'.

      • 기획논문 : 상주지역 퇴계학파(退溪學派)의 학문과 사상 ;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의 철학과 경세론

        장승구 ( Seung Koo Jang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12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50 No.-

        우복 정경세(1563-1633)는 서애 류성룡의 수제자로서 퇴계의 再傳 제자에 속한다. 그는 상주 출신의 남인으로서 서애의 뒤를 이어 중앙정계에서 활발한 관직생활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높은 권위를 유지하며 17세기 초반 영남 학계를 대변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등으로 국난이 지속되던 가장 어려운 시기에 관직생활을 하였다. 우복은 서애로부터 퇴계의 『주자서절요』를 물려받아서 간행함으로써 퇴계학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주자대전』 가운데 중요한 글을 선택하고 모아서 『주문작해』를 편저함으로써 『주자서절요』의 한계를 보완하고 주자학의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우복은 학통상 퇴계학파에 속하는데 일부에서 그의 리가설은 율곡설을 지지하는 것처럼 언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존 『우복집』을 분석해보면 그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퇴계학파의 입장을 지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리기설에 있어서 리와 기의 일물설을 비판하고, 리와 기의 차이점을 구분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격물과 물격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도 퇴계의 理到學을 계승하여, 格物을 손님을 청하는 것으로 物格을 손님이 오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사단칠정론에 있어서는 사단을 칠정의 일부로 보지 않고, 양자를 구분해서 보려는 입장이다. 칠정도 형기가 아니라 성명에서 나오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성인의 경우에 가능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어렵다고 인식한다. 공부론에 있어서는 存養은 靜時의 공부만이 아니라, 靜時와 動時를 겸한 統體 공부라고 인식한다. 공부는 성인의 경서에 대한 세밀한 학문적 탐구의 과정을 거쳐서 높은 단계의 정신 경지를 지향해야지, 그러한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안 된다고 여겼다. 우복은 선조대부터 시작하여 광해군을 거쳐 인조대까지 벼슬을 하였다. 그 중 광해군 때에는 시련이 많았고 낙향하여 은거하기도 하였으나 인조대에는 중용되어 대제학·대사헌·이조판서 등의 고위직을 역임하였다. 특히 우복은 선조대부터 경연관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인조대에는 8년에 걸쳐 장기간 경연에서 경서를 강의하면서 국정을 논하는 기회를 가졌다. 우복의 경세론은 그가 올린 상소문과 경연강의를 통해서 살펴볼 수가 있다. 광해군에게 올린 상소를 보면 우복은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 왕실이) 절검을 해야 하고, 인재의 선발과 등용이 공정해야 하며, 군주의 일심을 바르게 하기 위한 수양과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인조가 반정에 성공하고 나서 올린 『弘文館 八條箚」에서는 ``큰 뜻을 세울 것``, ``성학에 힘쓸 것``, ``종통을 중시할 것``, ``효와 경을 다할 것``, ``간쟁을 받아들일 것``, ``보고 듣는 것을 올바른 계통을 통해서 할 것``, ``궁궐의 법도를 지킬 것``, ``백성들의 인심을 안정시킬 것`` 등을 건의하였다. 정묘호란을 겪고 나서 올린 『玉堂論時務箚』에서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는 총포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총포 사수 1만 명을 양성하고, 조총 1만 정을 구입할 것을 제안하였다. 우복은 예론에서는 명분과 실제를 조화시키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아동교육에 필요한 예절과 관련하여 『養正篇』을 편저하였으며, 고금의 상례를 모아서 『喪禮參考』를 지으려 했으나 완성하지 못했고, 禮記에 대한 연구가 포함된 『思問錄』을 저술하였다. 요컨대 우복은 17세기 초반 예학 및 성리학 발전에 기여한 학자이면서, 동시에 생리학적 철학과 경세론을 실천으로 옮긴 모법적 관료이자, 민본주의적인 경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서인 학자와의 교류를 통해서 퇴계학을 서인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등 학문적 교류와 소통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Ubok(愚伏) Chung Kyung-se(鄭經世, 1563-1633) was a prominent official and scholar in the middle Chosun Dynasty. He was a leading disciple of Ryu Sung-ryong, whose mentor was Toegye Lee Hwang. Ubok represented the scholarly and political position of Nam-in(南人, Southern faction)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17th century.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the philosophy and Politics of Ubok Chung Kyung-se. In Li(理)-Qi(氣) philosophy, Ubok basically follows the philosophical theory of Toegye. According to Ubok, Li can not be one thing with Qi. The metaphysical characteristic of Li is to be distinguished from the material nature of Qi. In regard to the meaning of Gyeokmul(格物) and Mulgyeok(物格), he explains it as follows. If one investigates the principles of things, the principles of things arrive at one`s mind. This can be compared to inviting a guest. If one invites a guest, then the guest comes. Ubok recognizes the active aspect of Li. Regarding the way of self cultivation, the specific course of classical study is an essential step to attain the noble spirituality of the sage. With regard to politics, Ubok thinks the self-cultivation of ruler is most basic and important for good government. Preserving ruler`s mind and scholarly learning are two essential ways to self cultivation. Besides self cultivation, he emphasizes the financial retrenchment and just personnel administration. In addition to Li-Qi philosophy, Ubok had much interest in the ritual. In line with Kim Jang-saeng, he had led the era of ritual study in the early 17th century. In the practice of ritual, Ubok pursued the harmony between ritual norms and current customs. Ubok communicated with scholars from opposite school. Through academic exchange with Seo-in (西人, Western faction) scholars. Ubok made an effort to understand the scholarly position of other school and to explain his school`s theory of New-Confucianism toward Seo-in. Ubok not only have developed Korean Neo-Confucianism, but also have played the exemplar role of Neo-Confucian official.

      • 기획논문 : 한(韓) 중(中) 유학(儒學)의 전통(傳統)과 변화(變化) ; 퇴계철학에 있어서 理의 능동성 이론과 그 연원

        장윤수 ( Yun Su Jang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12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51 No.-

        이 논문은 퇴계철학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理의 능동성 이론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우선 理의 字典的의미와 주자철학에 있어서 ``理``論을 살펴보고, 그러고 나 서 퇴계의 ``理``論과 대단히 흡사한 모습을 지닌 明代초기 주자학자들의 ``理``論을 고 찰하였다. 퇴계철학에 있어서 理의 능동성 이론을 직접 언급한 부분에서는, 우선 氣에 대한 理의 우월성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理動과 理發의 개념을 한 묶음으로 하 여 그 이론적 구조를 천착해 보았고, 理到는 인식주체와 객체의 대립이라는 관점 에서 생성된 개념으로 논의를 풀어나갔다. 그리고 퇴계가 주자의 理無爲說을 충분 히 인식하면서도 어떻게 理活物說을 주장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理의 體用論을 고찰하였으며, 마지막 부분에서는 퇴계철학에 있어서 理의 능동성 이론이 지향하는 바와 그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필자는 이 논문을 통해 퇴계가 주자학 을 계승하면서도 어떻게 ``창의적``으로 발전시켜나갔는지를 확인하고, 그가 궁극적 으로 무엇을 지향하였는지에 대해 음미해보았다. This paper investigates theory about active of RI(理) that became controversy most in Toegye(退溪) philosophy. I examined dictionary meaning of RI and theory of Juja(朱子)`s in this paper. Then, investigated theory of RI in the early Ming dynasty Juja-scholars that become origin of theory about Toegye`s. Contents that refer active of RI in Toegye philosophy concerned greatly four subject. First, studied theory of RIDONG (理動) and RIBAL(理發) that assert superiority of RI than GI(氣). Second, studied theory of RIDO that emphasize RI of object in subject and object of cognition. Third, handled CHE(體)-YONG(用) of RI. Studied how Toegye was coexisted that doctrine of RI acts and RI does not act. Fourth, studied about aim and significance of activity theory of RI in Toegye philosophy. I tried to clear through this paper how Toegye prospered out of box Juja`s philosophy.

      • 퇴계(退溪)의 서원향사례정초(書院享祀禮定礎)에 대한 고찰(考察) - 백운동서원향사례(白雲洞書院享祀禮)수정을 중심으로 -

        한재훈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13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53 No.-

        書院의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은 講道(作人)와 尊賢(崇道)이다. 즉, 敎學공간으로서의 기능과 享祀공간으로서의 기능이 書院의 대표적인 기능이다. 하지만 그동안書院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敎學공간으로서의 書院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해 왔다. 이는 書院의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인 講道(作人)와 尊賢(崇道) 중에서 전자에 편중된 것으로, 書院의 전모를 온전히 구명하기 위해서는 후자에 대한 연구 또한 활발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음을 말해준다. 1549년 12월 退溪는 豊基郡守로 재직하면서 白雲洞書院을 賜額해달라는 주청을方伯을 통해 나라에 올렸고, 이를 계기로 이듬해 白雲洞書院이 우리나라 최초의 賜額書院인 紹修書院이 되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賜額을 주청하기직전인 1549년 가을 退溪가 白雲洞書院에서 준행되어 온 기존의 享祀禮에 대하여몇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고 이를 개정함으로써 書院享祀禮와 관련한 중요한 표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에 본 논문은 書院享祀禮의 定礎라는 관점에서 退溪의 업적을 고찰하고자한다. 이를 위해 논문은 먼저 白雲洞書院에서 행해지던 享祀禮에 대하여 退溪가 제기한 문제를 검토하고, 다음으로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退溪가 제정한 春秋享圖와 廟祭笏記를 분석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退溪가 書院享祀禮를 완벽한 수준에서 정립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이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해나갈수 있는 든든한 초석을 놓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 KCI등재

        退溪와 星湖의 易學思想에 대한 參量

        김인철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11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49 No.-

        The study aims to figure out differences in interpretation regarding ‘Saints accept Ho Tu(河圖) as a rule’ mentioned by Chu Hsi(朱熹)centering around responses and opinions expressed by Toegye Lee Hwang(退溪李滉) and Seongho Lee Ik(星湖李瀷). Chu Hsi’s interpretation on ‘Saints accept Ho Tu as a rule’ is based on Xian Tian Lun(先天論) by Shao Yung (邵雍), and saints represented by Fu Xi Shi(伏羲氏) analogized Ba Gua(八卦) based on the concepts of numbers and bearings of Four Symbols(四象) and defined directions with regard to Ho Tu Shu(河圖數)of four directions represented by Four Symbols. Toegye proactively accommodated Chu Hsi’s view, and it was materialized through disclosure of interpretational characteristics of Chu Hsi. In comparison, Seongho adopted a different standard from Chu Hsi by dividing Ho Tu Shu into odd numbers and even numbers while rationally analogizing Ba Gua Fang Wei(八卦方位) from Ho Tu based on larger or smaller numbers and bearings designated in accordance with characteristics of yin and yang of numbers. Different responses from Toegye and Seongho with regard to Chu Hsi’s interpretation unveil Toegye’s consistent respect for Chu Hsi and Seongho’s critical acceptance of different views based on efforts to figure out new reasonable alternatives, and it stems from their differences in attitudes toward studying. According to Confucian Analects(論語), it can be summarized as ‘Passing down old ideas without creating new ones(述而不作)’ and ‘Gaining new insights through restudying old material.(溫故知新)’ Such differences led to advancement of Chu Hsi’s philosophy during the early days of the Joseon Dynasty while paving the way for interpretation of scriptures based on Silhak(實學). 본고는 朱熹의 ‘聖人則河圖’에 대한 해석을 두고 그에 대한 退溪李滉과 星湖李瀷의 반응과 견해를 중심으로 양인이 노정하고 있는 해석학적 입장의 차이점과 그 의의를 검토한 것이다. 朱熹의 ‘聖人則河圖’에 대한 해석은 邵雍의 先天論을전제로 하여 聖人즉 伏羲씨가 四象으로 상정되는 四方의 河圖數를 四象의 數와位의 개념을 통해 八卦를 유추해 내고 그 방향을 규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퇴계의 반응은 주희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수용하는 입장을 견지하였는데, 그것은 주희 해석의 특징을 闡揚하는 것으로써 구체화 되었다. 이에비해 성호는 주희와는 다른 기준, 즉 河圖數를 홀수, 짝수로 구분하고 數의 많고적음 그리고 數의 陰陽的性格에 따른 방위 설정 등을 근거로 하여 河圖로부터八卦方位를 합리적으로 유추해 내고 있다. 주희 해석에 대한 퇴계와 성호의 상이한 반응은 퇴계가 주희에 대해 尊信, 私淑하는 자세로 일관하였다고 한다면,성호는 아무리 주희라 하더라도 의심스러운 점은 의심하며 새로운 합리적 대안본고는 朱熹의 ‘聖人則河圖’에 대한 해석을 두고 그에 대한 退溪李滉과 星湖李瀷의 반응과 견해를 중심으로 양인이 노정하고 있는 해석학적 입장의 차이점과 그 의의를 검토한 것이다. 朱熹의 ‘聖人則河圖’에 대한 해석은 邵雍의 先天論을전제로 하여 聖人즉 伏羲씨가 四象으로 상정되는 四方의 河圖數를 四象의 數와位의 개념을 통해 八卦를 유추해 내고 그 방향을 규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퇴계의 반응은 주희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수용하는 입장을 견지하였는데, 그것은 주희 해석의 특징을 闡揚하는 것으로써 구체화 되었다. 이에비해 성호는 주희와는 다른 기준, 즉 河圖數를 홀수, 짝수로 구분하고 數의 많고적음 그리고 數의 陰陽的性格에 따른 방위 설정 등을 근거로 하여 河圖로부터八卦方位를 합리적으로 유추해 내고 있다. 주희 해석에 대한 퇴계와 성호의 상이한 반응은 퇴계가 주희에 대해 尊信, 私淑하는 자세로 일관하였다고 한다면,성호는 아무리 주희라 하더라도 의심스러운 점은 의심하며 새로운 합리적 대안본고는 朱熹의 ‘聖人則河圖’에 대한 해석을 두고 그에 대한 退溪李滉과 星湖李瀷의 반응과 견해를 중심으로 양인이 노정하고 있는 해석학적 입장의 차이점과 그 의의를 검토한 것이다. 朱熹의 ‘聖人則河圖’에 대한 해석은 邵雍의 先天論을전제로 하여 聖人즉 伏羲씨가 四象으로 상정되는 四方의 河圖數를 四象의 數와位의 개념을 통해 八卦를 유추해 내고 그 방향을 규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퇴계의 반응은 주희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수용하는 입장을 견지하였는데, 그것은 주희 해석의 특징을 闡揚하는 것으로써 구체화 되었다. 이에비해 성호는 주희와는 다른 기준, 즉 河圖數를 홀수, 짝수로 구분하고 數의 많고적음 그리고 數의 陰陽的性格에 따른 방위 설정 등을 근거로 하여 河圖로부터八卦方位를 합리적으로 유추해 내고 있다. 주희 해석에 대한 퇴계와 성호의 상이한 반응은 퇴계가 주희에 대해 尊信, 私淑하는 자세로 일관하였다고 한다면,성호는 아무리 주희라 하더라도 의심스러운 점은 의심하며 새로운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였던 학문의 기본적인 태도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것은論語의 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述而不作’과 ‘溫故知新’...

      • KCI등재

        退溪九曲과 退溪九曲詩 연구

        김문기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08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42 No.-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discuss an academic investigation into Toegyegugok(退溪九曲) conducted last summer in an attempt to ascertain historical evidence for each spot of it and its natural characteristics, and it’s also meant to look into Toegyegugok poems and the lives and learning of the poets. An academic investigation was implemented into Toegyegugok in August 2007 to confirm its existence, and that made it possible to find out the exact location of it. In general, that remained intact, though it was partly damaged to some extent. That was 5.5㎞ long and along Togye River, a branch stream of Nakdong(洛東) River where Toegye’s remains were rampant. It is not sure whether this spot was designated while he was alive. There were two poets who wrote poems about Toegyegugok:Lee Ga-sun(李家淳) and Lee Jong-hyu(李宗休). In Lee Ga-sun’s poem, each valley’s scenary and scenic beauty were portrayed in the first two lines, and he described his affection for Toegye(退溪) and the uprightness of man allegorically by using things in the second two lines. So his poem could be said to depict how he was elated by things. Lee Jong-hyu composed poems about Toegyegugok(退溪九曲), Oksangugk(玉山九曲) and Dosangugok(陶山九曲) as well. In the poem about Toegyegugok, he allegorized human nature. Overall, however, his Toegyegugok poem described more principles of moral philosophy than that of Lee Ga-sun. 본고는 퇴계구곡 원림에 대한 지난해 여름의 학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퇴계구곡 원림의 각 지점을 고증하고 그 원림적 특징과 퇴계구곡시 작자의 생애와 학문, 퇴계구곡시의 작품세계를 고찰하였다. 퇴계구곡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하계 이가순의 퇴계구곡시를 통하여 밝혀지게 되었다. 그 후, 퇴계구곡 원림에 대한 조사와 퇴계구곡 관련시를 두루 찾는 과정에서 하암 이종휴의 퇴계구곡시도 창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2007년 8월에 퇴계구곡 원림에 대한 학술조사를 실시하여 퇴계구곡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고 퇴계구곡의 정확한 지점을 고증할 수 있었다. 퇴계구곡 원림의 제1곡은 사련진, 제2곡은 양진암, 제3곡은 죽동, 제4곡은 장명뢰, 제5곡은 고등암, 제 6곡은 임부동, 제 7곡은 양평, 제8곡은 청음석, 제9곡은 쌍계인데 이들 퇴계구곡은 부분적으로 훼손된 바가 있으나 전반적으로 볼 때 잘 보존되어 있었다. 도산구곡이 낙동강의 큰 물줄기에 설정된 것과는 달리 퇴계구곡은 퇴계선생의 유적이 산재하는, 낙동강의 지류인 퇴계, 즉 토계천을 따라 5.5km에 걸쳐 설정되어 있다. 퇴계구곡 원림이 퇴계선생 생존 시에 지정되고 경영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퇴계구곡시는 하계 이가순과 하암 이종휴, 두 사람이 남겼다. 이가순은 전국의 명산과 대찰, 명현의 유적지를 두루 편답하고 수많은 기행시를 창작했을 뿐만 아니라 무이구곡도가의 차운시와 퇴계구곡시를 비롯한 도산구곡시, 옥산구곡시, 원명구곡시, 소백구곡시 등 5편의 원림 구곡시를 지었다. 이가순의 퇴계구곡시는 전 2구에서는 주로 각 곡의 주위 경관과 풍치를 묘사하고 후 2구에서는 퇴계선생에 대한 회고의 정이나 성정지정을 탁물우의하여 읊고 있어서 그의 이 구곡시는 인물기흥적인 시라 할 수 있다. 이종휴도 무이구곡도가 차운시를 남긴 것을 비롯하여 퇴계곡시와 옥산구곡시, 도산구곡시를 창작하였는데 이종휴의 퇴계구곡시도 서경과 서정을 통해 탁물우의의 수법으로 음영성정하였으나 전반적으로 볼 때 이가순의 퇴계구곡시에 비하여 도학의 묘리를 담은 작품이 많다.

      • 退溪學派의 『禮記』해석에 대한 고찰

        유권종 慶北大學校 退溪硏究所 2005 退溪學과 韓國文化 Vol.- No.36

        본 연구는 퇴계로부터 재전 제자까지의 학맥에서 이루어진 『禮記』에 관한 해석의 사실을 밝히고, 그 해석의 내용 및 특징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퇴계의 학맥에서 『예기』에 대한 학문적 접근의 방식은 고증적 방식과 해석적 방식으로 크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고증적 방식은 이미 퇴계에게서 단편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예기』를 대상으로 삼아 본격적인 고증의 방식을 취한 것은 학봉과 서애의 『상례고증』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미수의 『경례유찬』, 「십이월령고정」도 그러한 전통을 잇는 저술로 인정될 수 있다. 또 해석적 방식은 지산의 「곡례수장도」와 우복의 『사문록』을 들 수 있는데, 특히 『사문록』은 재전제자까지의 퇴계학맥으로 볼 때에 『예기』 해석의 치밀함과 아울러 고증에 입각한 변석이 매우 돋보이는 저술이다. 퇴계의 학맥에서 이루어진 『예기』 해석의 특징은 우선 퇴계로부터 재전 제자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 저술의 전문화가 이루어지는 점, 즉 퇴계에게서는 단편적인 경문의 인용을 통해서 예설을 확정하던 방식이었던 것이 서애와 학봉 그리고 미수에 이르는 과정에서 상례와 제례를 전문적으로 고증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면서 전문화가 이루어진 점을 하나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아울러 우복의 『사문록』과 같이 고증은 물론 치밀한 이기론적 철학적 분석에 입각한 『예기』 해석이 성취되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또 미수의 『경례유찬』과 같이 왕과 제후 대부 사 등의 신분에 따라 차등을 엄격히 강조하는 예를 『예기』 등의 경전으로부터 구성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다. 그리고 「곡례수장도」처럼 예학과 성학을 결합시킨 저작이 이루어진 점도 중요한 특징이다. 이렇게 보면 퇴계의 학맥에서 이루어진 『예기』 연구는 궁극적으로는 성학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그 중요성을 지녔던 것이라고 판단된다. This study has a purpose to explain the context of interpretations and commentaries of Yeki, one of old Chinese classics, on the Toegye School from 16th century to 17th centry, and to discuss the features and historical value of their works. In the Toegye School, confucians works to approach to Yeki show two different ways. The one is a bibiographical study, the other is a hermeneutic study. The bibiographical study was started by Toegye and has been regularized by Hakbong(Kim Sung-il) and Soae(Yu Sung-ryong) in their each works. Their each works had the same name, that was Sang-rye-go-jeung which meant a bibiographical study of funeral ceremony. Misu(Hu Mok) had also made bibiographical studies, which were Gyung-rye-yu-chan and Si-bi-wol-lyung-go-jung. The hermeneutic studies were made by Jisan(Jo Ho-ik) and Ubok(Jung Gyung-se). Jisan's work is Gok-rye-su-jang-do and Ubok's work is Sa-mun-lok. Specially the latter is a very important one because its hermeneutic study as well as the bibiographical method are very correct and fine. The features of Yeki stdies in the Toegye School can be explained as follow: the first is from Toegye to Misu their bibiographical studies had developed and speciallized more and more. The second is that the school had achieved a work which was the finest one of hermeneutical studies in the 17th century of Chosun Dynasty with its philosophical debates as like Ubok's Sa-mun-lok. The third is to emphasized the rites different in grades of social status in Misu's Gyung-rye-yu-chan. The last is to combine and harmonize rite studies and sage learning in Jisan's Gok-rye-su-jang-do.

      • 退溪의『詩經』해석과 그 특징

        심경호 慶北大學校 退溪硏究所 2005 退溪學과 韓國文化 Vol.- No.36

        퇴계는 『사서』와 『역경』의 연찬에 주력하되, 번쇄한 훈고를 第一義로 삼지 않았다. 하지만 퇴계는 경학 연구에서 기초학으로서의 小學(philology)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퇴계가 경학 연구에서 소학을 중시한 사실은 『四書三經釋義』 곧 『經書釋義』에 잘 나타나 있다. 퇴계는 『시집전』과 『시전대전』의 小註를 참고로 하여 시편의 義理를 해석하였다. 대전본 小註가 『시집전』과 모순되는 경우나 小註 사이에 취지가 상이한 경우에는 정설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퇴계는 시편의 본지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경문이나 新註 및 대전본 小註의 난독자[僻字]나 破讀字에 대하여 그 음과 훈을 살폈다. 구 석의본의 음주나 속음을 정정하기 위해서 주희의 음이나 대전본의 음을 환기시키고, 여러 운서와 자서 (『옥편』)의 음과 훈을 참고로 하였다. 특히 퇴계는 『광운』과 『예부운략』을 활용하였다. 간혹 『광운』의 간략한 훈석에 의거하여 한자음을 추정하다가 성조의 차이와 의미 분화를 바르게 파악하지 못한 예도 있다. 또한 新註나 대전본 음주의 破讀을 분석할 때 오류를 범한 예도 있다. 그러나 자음과 자훈을 고려하여 經文과 傳文을 해석한 것은 장구 해석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임에 틀림없다. Since Toegye pursued meanings to promote moral character, his primary focus was not to prove literary analysis; rather his philology questions whether contemporary philology should pursue proof of words and phrases or higher humanistic meanings. But Toegye more than others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basic research which means philology in the period of literature in understanding and practicing what he studied. He introduced the method of commentaries to comprehend true meanings of writings, applied bibliographical methods to comment on literature, and was involved in publishing books. His commentaries were not limited to technical analysis, but extended to reflect his inner thoughts and proceed to sincerity.

      • 退溪의『中庸』解釋과 그 특징

        엄연석 慶北大學校 退溪硏究所 2005 退溪學과 韓國文化 Vol.- No.36

        본 논문은 주희의 『中庸章句』의 관점을 계승한 퇴계의 『中庸』 해석이 어떠한 특징을 가지는가 하는 점을 규명하고자 한다. 퇴계의 『중용』 해석의 내용과 특징은 『中庸釋疑』를 통하여 그리고 문인들과 문답한 내용 등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다. 퇴계는 대체로 주희의 『중용장구』의 성리학적 해석 관점을 계승하면서도, 자신의 理氣心性論의 시각을 관철하는 입장에서 『중용』을 해석하고 있다. 퇴계는 박세당이나 이익이 道를 구체적 현실에서의 주체적 실천이나 오륜을 실천하는 덕목으로 보는 것과 달리, 性·道·敎가 형이상학적 실체 또는 규범, 그리고 이들 도리를 닦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또한 그는 『중용』에서의 費隱 개념을 형이상의 원리의 세계의 중층적 구조와 실재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또 한편으로 퇴계에서 存養 省察, 戒懼, 謹獨 등을 일관하는 개념으로서 敬은 마음의 본체로서 性과 작용으로서 情을 전제하고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감정을 다스림으로써 理를 마음에 확립하고자 하는 데 의미가 있다. 이러한 퇴계의 수양론적 관점은 誠과 愼獨을 상제에 대한 종교적 경외심과 복종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정약용의 시각과 크게 대조되는 것이다. 나아가 퇴계는 中和와 中庸을 안과 밖으로 구분하여, 중화가 性情에 유래하여 안으로, 중용은 덕행에서 유래하여 밖이 된다고 보았다. 퇴계가 중화와 중용을 내외로 구분하는 것은 이 두 가지를 형이상과 형이하로 구별하고자 한 것으로, 그의 理氣論 철학과 일관된다. 이렇게 볼 때, 퇴계의 『중용』 해석에는 무엇보다도 일상적 현실에서의 실천성 보다도 形而上과 形而下, 마음의 未發과 已發, 性과 情, 動과 靜, 善과 惡을 구별하는 二元論的 관점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퇴계의 사변적 형이상학적 관점은 실천을 중시하는 박세당, 이익, 정약용 등과 같은 후대의 학자들에 의하여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물질적 욕구와 도덕원칙의 혼돈에 따른 현대적 위기를 해결하고자 할 때, 理를 도덕적 실체로 마음에 확립하고자 한 퇴계의 철학적 입장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This essay intends to illuminate what characteristic of Toegye's interpretation of Chung-yung中庸 succeeded to Chu-hsi's view of Chung-yung Chang-chu 中庸章句. The content and characteristis of Toegye's commentary of Chung-yung can look through the Chung yung seok yi中庸釋疑 and the question and answer between he and his students. Mostly Toegye not only accepted the neo-confucian viewpoint which Chu hsi朱熹 offered in the Chung yung chang chu¨中庸章句, but also interpreted Chung yung according to his own standpoint of Li chi hsin cheng lun理氣心性論. Toegye understood the nature性·the ways道·the instruction敎 to mean the metaphysical or moral substance, norm, and principle of teaching respectively. However, Park se-dang朴世堂 and Lee ik李翼 regarded the path as a method of man's moral practice or practical virtues of five moral items.五倫. Moreover, Toegye considered the concept of the expansive and secret 費隱 to express the duplicative structure and reality of the metaphysical principle. On the other hand, in Toegye the reverence敬 is a method of culture which is penetrated into the preservation and cultivation存養, reflection省察, caution and apprehension戒懼, and watchfullness over himself謹獨 etc. And it is the methodological principle by which man tries to establish the principle in the mind by governing the feelings which arise from the nature on the basis of the nature as the substance of mind and the feelings as the operation of it. And then while in Toegye's theory of cultivation the reverence means to govern the mind and feelings and cultivate the nature as the principle being immanent in human mind, Cheng yak-yong丁若鏞 interpreted sincerity誠 and watchfulness over the alone愼獨 in connection with the religious reverence or awfulness and obedience of the Lord-on-High. Further in response to the Yulgok's question to suspect that equilibrium and harmony中和 and the mean中庸 can not be divided into the internal and the external, Toegye viewed equilibrium and harmony as the internal by being derived from nature and feelings, the mean as the external by being originated from virtuous conduct. That is to say, Toegye divided equilibrium and harmony and the mean respectively into the internal and the external. This means that he tried to distinguish these two into that which belongs to the realm 'above shapes'形而上 and which belongs to the realm 'within shapes'形而下. And Toegye's view as this is consistent with his theory of principle and material forces理氣論. Viewed as this, the dualistic sight in which one discriminates that which belongs to the realm 'above shapes'形而上, from that which belongs to the realm 'within shapes '形而下, mi-fa未發 of the mind from yi-fa己發 of it, nature from feeling, movement from calmness, good from evil in preference to practice in ordinary life is reflected in Toegye's commentary of Chung-yung as such. The criticism against Toegye's view by such scholars as Park se-dang, Lee ik, and Cheng yak-gong, who made the moral practice or virtuous conduct be important, mostly arises from Toegye's contemplative and metaphysical point of view. However in respect that we try to resolve the contemporary crisis being caused by the confusion between material desires and the moral principle, Toegye's philosophy which tried to stand the principle as the moral substance firm in the mind has a very important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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