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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朝鮮) 후기(後期) 『독예통고(讀禮通考)』의 수용과 영향
박종천 한국실학학회 2010 한국실학연구 Vol.0 No.20
청(淸)나라 서건학(徐乾學, 1631~1694)의 『독례통고(讀禮通考)』는 청초 고증학의 박학(博學)적 경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규모의 방대함과 내용의 상세함이 돋보인다. 이러한 장점은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중심으로 실용성을 추구하고 고례(古禮)의 이상을 탐구했던 조선 예학(禮學)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면서, 조선 후기 예학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독례통고』는 예경(禮經)과 역대 예제(禮制) 및 고금(古今) 제유(諸儒)의 예설(禮說)을 비교·검토하고 고증하는 참고자료집으로서 주목을 받았다. 『독례통고』는 조선 후기 연행(燕行)을 통해 북학파(北學派) 경화세족(京華世族)을 중심으로 수용되었으며, 그 수용 양상은 크게 2가지로 구별된다. 1) 적극적 수용 유형: 『독례통고』는 박학적 장점으로 인해 조선 후기 국가 전례(典禮)의 결정의 참고자료로서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특히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에 산송(山訟)으로 불거졌던 풍수지리의 폐해를 극복하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으로서 수용되었다. 2) 비판적 활용 유형: 성리학자 윤봉구(尹鳳九, 1681~1767)와 실학자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독례통고』의 기본 관점을 비판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정약용은 『독례통고』를 깊이 연구하여 그 기본 관점 뿐만 아니라 방법론까지 계승함으로써 『독례통고』의 박학 정신을 흡수했다. 요컨대, 『독례통고』는 조선 예학의 ``실용(實用)``적 기조에 청초 예학의 ``박학(博學)``적 경향을 접목시키는 가교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淸徐乾學(1631~1694)的《讀禮通考》, 在朝鮮后期禮學發展上, 其影嚮有多大. 在朝鮮后期上, 他書的貢獻, 是提供了考證經典的典據與古今諸儒禮說. 朝鮮后期《讀禮通考》的受容樣汰, 包括兩種類型. 1)積極收容類型: 《讀禮通考》極大地影嚮了朝鮮后期禮學發展. 在批判了風水地理的弊害上,《讀禮通考》供給上合理的根據和現實的代案. 2)批判活用類型: 朝鮮後期性理學者尹鳳九(1681~1767)與實學者丁若鏞(1762~1836)批判地活用了《讀禮通考》的基本觀点. 特別丁若鏞不僅把《讀禮通考》的基本觀点與方法繼承下來了, 而且把他進一步發揚光大. 總之, 朝鮮后期禮學吸取了《讀禮通考》的博學精神, 縱而裨褓了循褓朝鮮后期禮學的闕漏. 于是淸初禮學的``博學``與朝鮮禮學的``實用``相輔相成.
박종천 한국실학학회 2010 한국실학연구 Vol.0 No.20
청(淸)나라 서건학(徐乾學, 1631~1694)의 독례통고(讀禮通考)는 청초 고증학의 박학(博學)적 경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규모의 방대함과 내용의 상세함이 돋보인다. 이러한 장점은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중심으로 실용성을 추구하고 고례(古禮)의 이상을 탐구했던 조선 예학(禮學)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면서, 조선 후기 예학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독례통고는 예경(禮經)과 역대 예제(禮制) 및 고금(古今) 제유(諸儒)의 예설(禮說)을 비교․검토하고 고증하는 참고자료집으로서 주목을 받았다. 독례통고는 조선 후기 연행(燕行)을 통해 북학파(北學派) 경화세족(京華世族)을 중심으로 수용되었으며, 그 수용 양상은 크게 2가지로 구별된다. 1) 적극적 수용 유형: 독례통고는 박학적 장점으로 인해 조선 후기 국가 전례(典禮)의 결정의 참고자료로서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특히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에 산송(山訟)으로 불거졌던 풍수지리의 폐해를 극복하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으로서 수용되었다. 2) 비판적 활용 유형: 성리학자 윤봉구(尹鳳九, 1681~1767)와 실학자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독례통고의 기본 관점을 비판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정약용은 독례통고를 깊이 연구하여 그 기본 관점 뿐만 아니라 방법론까지 계승함으로써 독례통고의 박학 정신을 흡수했다. 요컨대, 독례통고는 조선 예학의 ‘실용(實用)’적 기조에 청초 예학의 ‘박학(博學)’적 경향을 접목시키는 가교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박종천 재단법인다산학술문화재단 2013 다산학 Vol.- No.23
In this Article, I have made an attempt to investigate the history of transmission of Tasan Cheong Yagyong(丁若鏞, 1762~1836)’s commen-taries of Confucian canons and his commentaries of the Analects. My conclusions through some critical textual analyses are as follow:1. Youngho Kim’s collection of Tasan’s commentaries of Confucian canons and his commentaries of the Analects and Tankook Unverisity’s collection of them are author’s own organized drafts. They showed the format of Yeoyudangjip(與猶堂集) written by Cheong founded on “Au-tobiographical epitaph”(Jachan myohimyeong)2. Kyujanggak’s colletcion of Yeoyudangjip(與猶堂集)represented the latter stage of reproduction copies of his works. 3. In case of Noneokokeumju(論語古今注, Old and New Commentar-ies of the Analects), all copies of Tasan’s manuscripts go through the fol-lowing steps and developed accordingly: author’s own organized draft stage(Youngho Kim’s collection and Tankook Unverisity’s collection)→revised reproduction version(Kyujanggak’s colletcion of Yeoyudangjip and Osaka Prefectural Nakanoshima Library’s collection)→Complete Writings of Yeoyudang(與猶堂全書) 다산 정약용은 경집經集을 문집文集보다 앞에 배치하는 「자찬묘지명」 체재의 여유당집을 구상했다. 그는 각각 별도로 저술된 단행본들을 여유당집 체재로 묶으면서 여유당집 권차와 책차를 부여했다. 그런데 규장각본 여유당집은 「자찬묘지명」과는 달리 문집을 앞에 두고 경집을 뒤로 돌리는 구성을 취하는 새로운 여유당집 체재를 선보였다. 규장각본 여유당집은 초기 정고본 계열의 필사본들로 구성된 「자찬묘지명」 체재의 여유당집에서 파생된 후기 전사본 계열의 필사본들을 새롭게 묶는 과정에서 「자찬묘지명」 체재에서 비롯된 권차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새로운 권차를 부여하기 위해 권차를 비워둠으로써 여유당집 책차와 맞지 않는 문제점을 드러내었다. 필자는 이런 점에 착안하여 여유당집의 책차와 권차를 종합함으로써, 다산이 「자찬묘지명」을 썼을 때 구상했던 체재의 여유당집이 경집을 중심으로 실제로 존재했음을 증명했다. 이를 통해 경집-시문집순으로 책차와 권차가 일정하게 체계화된 「자찬묘지명」체재의 여유당집이 초기 정고본 계열의 필사본인 데 비해, 조선시대 문집의 일반적인규례에 따라 여유당집을 시문집-경집 순으로 변화시키면서 책차와 권차가 어긋나게 된 규장각본 여유당집은 후기 전사본 계열의 필사본임을 증명했다. 또한 필사본의 수정과 보완이 여러 차례 이루어진 경우에는 후기 전사본은 물론, 초기 정고본 계열의 필사본도 두 가지 이상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새롭게 확인했다. 아울러 상례사전을 중심으로 단국대본과 김영호 소장본 등으로 이루어진 초기 정고본 계열의 필사본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여유당집 혹은 사암경집의 책차와 권차에 대한 분석과 함께 내지의 권수제가 나타나는 방식 등을 비교 검토했다. 이를통해 여유당집 체재에 편입되기 전인 초기 필사본과 여유당집체재에 편입되어 가는 초기 수정본 및 편입이 확정된 정고본 등 정고본 계열의 필사본들이 전승되는 몇 가지 양상을 추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논어고금주에 대한 분석과정에서 단국대 소장본 1책과 김영호 소장본 12책이 한 세트를 이루는 초기 가장본이자 정고본임을 밝혔고, 규장각본 여유당집과 오사카본 논어고금주 등이 정고본에서 파생된 후기 전사본 계열의 필사본임을 증명했으며, 여유당전서는 후기 전사본 계열의 필사본을 저본으로 작성되었음을 해명했다.
박종천 한국국학진흥원 2014 국학연구 Vol.0 No.24
Gyeam Illok(Daily Records of Gyeam Ryung Kim) is one of the most representative diaries from the 17th century, written over nearly 40 years. This diary is important as it shows not only the daily life of classical scholars in Yean Region at a micro level, but also shows changes in the social structure caused by changes in family rituals at a macro level. Considering the characteristics of a diary, this paper examines the ritual life of the aristocrats in the 17th century in Yean Region described in Gyeam Illok to clarify the procedures and methods of forming subjectivity in ritual property as well as to reveal the composite structure and dynamic change in the order of the ritual property. In particular, this paper examines various aspects such as practicing family rituals with enhanced recognition on clan rules, ritual effects of the piety and particularity of Confucian ritualization, and public and private ritual orders as well as the social conflicts of the time. Firstly, Gyeam Illok thoroughly practiced the family rituals in accordance with the four generation rules and clan rules focusing on the agnatic eldest legitimate son. In particular, regular rituals such as the seasonal rites and Sangmangje(朔望禮, a ritual performed on the 1st and 15th day of every lunar month), establishing ritual orders focusing on shrines and ancestral rites, and practicing the wedding ceremony focusing on Namgyiyeoga(男歸女家, a son-in-law’s living with his wife’s family) accommodating a part of the idea of Chingyeong(親迎, an act of inducting the bride to the groom’s home) as well as the funeral ceremony focusing on Banhon(返魂, finding a new place for the soul of the deceased) were strictly respected. Accordingly, the aspects and the direction of changes in the ritual life of the aristocrats in the early 17th century effectively set the timing, spatial sanctum and human network of ritual culture, and advanced Confucianism overall. Secondly, the author dreamed of his deceased father before and after the ancestral rite or Government Service Examination, which shows the internalization of the patriarchal order in his mind through pious purification, as this was immersed not only into the body and mind of the author, but even into his unconsciousness. It proves the ritual effect of the piety emphasized by Toegye in the unconsciousness. Thirdly, Gyeam Illok dramatically shows Confucian ritualization, a differentiated practice of materializing the ritual ideal. Ritual practices performed every year periodically renewed the concentric network of relatives in a retroactive manner, which laid the foundation for the expansion of a patriarchal extended family system in society called a clan. Finally, Gyeam Illok clearly shows the mutual influence and tension between the nation and the family (or the public and the private), the two axis of social hierarchy of traditional Confucian society, using the ritual as a medium. The aristocrats in the Yean Region distinguished public and the private matters by the concept of value, not by that of influence, and they showed an attitude of weighing filial piety or blood ties more than loyalty or social rank. 『계암일록』은 근40년에 걸쳐 작성된 17세기 전반의 대표적인 일기로서, 예안지역 선비들의 일상생활을 미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일 뿐만 아니라, 가례家禮의 변화에 따르는 거시적인 사회구조의 변동을 드러내는 자료로서도 주목할 만한 내용을 보여준다. 이러한 일기자료의 특성을 고려하여 본 연구에서는 예교질서의 복합적 구조와 역동적 변화, 예교적 주체의 형성 과정과 방식에 대한 해명을 위한 시론으로서, 『계암일록』에 나타난 17세기 예안현 사족의 의례생활을 검토했다. 특히 종법적 인식의 진전에 따른 가례 실천의 양상, 경敬의 의례적 효과와 유교적 의례화의 특징적 양상, 공사公私의 의례적 질서와 사회적 갈등 양상 등을 살펴보았다. 첫째, 『계암일록』은 4대봉사와 부계 적장자 중심의 종법적 인식의 진전에 따른 가례의 실천, 특히 사시제와 삭망제의 정기적 제사 봉행, 사당과 재사를 중심으로 한 의례적 공간 질서 정착, 남귀여가혼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친영親迎을 일부 수용하는 혼례의 변화와 더불어 반혼返魂을 중심으로 하는 상례 등을 상당히 철저하게 실천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계암일록』에 보이는 17세기 전반 사족들의 의례생활이 변화하는 방향과 양상은 의례문화의 시간적 중심, 공간적 성소, 인간적 네트워크를 효과적으로 설정함으로써 유교화를 전면적으로 진전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둘째, 『계암일록』은 과거시험과 제사 기간 전후로 부친에 대한 꿈을 집중적으로 꾸는 사례를 통해 가부장적 질서가 경건한 재계를 통해 내면화하여 몸은 물론 마음과 무의식에까지 침투하여 꿈에 투사되는 양상을 잘 보여준다. 이는 퇴계가 강조했던 경의 의례적 효과가 무의식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 『계암일록』은 예교적 이상을 구현하는 몸짓의 차별적 실천인 유교적 의례화 양상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매년 신년마다 이루어진 의례적 실천은 동심원적 친족관계망을 시간적 소급의 방식으로 주기적으로 갱신함으로써 문중이라는 가부장적 대가족구조의 사회적 확산의 토대가 되었다. 넷째,『계암일록』은 유교적 전통사회의 사회적 위계질서를 구성하는 두 축인 국國과 가家가 의례를 매개로 하여 공公과 사私의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양상을 잘 보여주었다. 예안현의 사족들은 영역적 개념이 아니라 가치적 개념으로 공사구분을 하면서 충 이전에 효를, 존존尊尊 이전에 친친親親을 실현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박종천,김진,이우범,이성우,주현수,Park, Jong-Chun,Kim, Jin,Lee, Woo-Bum,Lee, Sung-Woo,Joo, Hyun-Soo 한국하천호수학회 2000 생태와 환경 Vol.33 No.1
본 연구는 광양만 퇴적물의 이화학적 조성과 중금속 함량을 알아보기 위해 함수율, COD, $H_{2}S$, 입도 및 10가지의 중금속을 17개 조사지점에 대해 분석${\cdot}$조사하였다. 조사기간동안 나타난 결과로서 퇴적물의 함수율 변화는 35.5${\sim}$53.8%를 나타내었다. COD와 $H_{2}S$는 각각 3.8${\sim}$12.9 mg/g, 0.1${\sim}$11.4 ${\mu}g/g$를 나타내었다. 퇴적물 입도의 구성은 입경 $74{\mu}m$ 이하가 40.5${\sim}$86.7% 74${\mu}m$ 이상이 11.5${\sim}$43.0%로 나타났다. 등농도 분포도를 이용한 중금속의 공간분포로부터 광양만 퇴적물에 영향을 미치는 몇 곳의 배출원을 추정할 수 있었다. 중금속 배출원 중 여천공단 내의 신풍천, 쌍봉천 그리고 하수처리장의 방류수역이 주요 배출원으로 판정되었다. 중금속의 분석 결과를 US, EPA 비오염해역의 guideline에 비교할 때 납과 수은은 guideline에 모두 적합한 것으로 평가되었으나 망간, 아연, 구리, 철, 비소, 크롬 등은 guideline을 모두 상회하고 있었다. For the purpose of surveying the physicochemical composition of sediment collected from Kwangyang Bay, the percentage of water loss, COD, $H_2S$, grain size and 10 heavy metals were studied at 17 sites. During the surveying period, the changes of the percentage of water loss were appeared $35.5\;{\sim}\;53.8%$. COD and $H_2S$ were showed $3.8\l{\sim}\;12.9\;mg/g$, and $0.1\;{\sim}11.4\;{\mu}g/g$, respectively, In composition of grain size on the sediment, percentages of grain sizes under $74\;{\mu}m$ were varied from 40.5% to 86.7% and above $74\;{\mu}m$ were varied from 11.5% to 43.0%. From the spatial distribution of heavy metal using contour map, we can suppose some heavy metal discharges which affect sediment of Kwangyang Bay, It was estimated that Shinpung creek, Ssang-bong creek, and draining area of sewange treatment plant were the main discharge among the heavy metal output sources. By comparison between present study and heavy metal guideline of nonpolluted sea sediment that is provided by EPA, US, it was showed that the contents of Pb and Hg were acceptable but contents of Mn, Zn, Cu, Fe, As, and Cr were higher than those of EPA guideline.
박종천,이우범,주현수 ( Jong Chun Park,Woo Bum Lee,Hyun Soo Joo ) 한국환경생물학회 1998 환경생물 : 환경생물학회지 Vol.16 No.2
In Kwangyang bay, the biological and ecological surveys were carried out at seventeen sites both in surface and bottom water from July 1996 to May 1997. Fifteen abiotic and biotic parameters were determined on each sample. These data were subjected to simple regression, multiple stepwise regression and the principal factor analysis-to scrutinize the effect of environmental conditions on water quality and ecosystem. By the results of these analyses in Kwangyang bay, ecosystem were regulated by five factors for four seasons. The results showed that distribution of the microbial population was mainly influenced by inflow of fresh water, nitrogenous nutrients, suspended solids and water temperature. The overall size of microbial population was greater ten and five times than those obtained in 1982 and 1992, respectively.
박종천,황선구,김종만,김진곤,서준혁,최덕균,이희수,조현 대한금속·재료학회 2010 ELECTRONIC MATERIALS LETTERS Vol.6 No.3
The etch characteristics of high-k dielectric HfO₂ films and the etch selectivity for HfO₂ over Si in fluorineand chlorine-based inductively coupled plasmas have been studied. Fluorine-based ICP discharges produced practical and controllable etch rates and the etched HfO₂ surfaces sustained similar or better RMS roughness values than that of the unetched control sample under most of the conditions examined. Anisotropic pattern transfer with a vertical sidewall profile (θ = 97°) was performed in CF4/Ar ICP discharges and no significant change in the dielectric property of HfO₂ films was detected. 5Cl₂/10O₂ ICP discharges produced high etch selectivities > 6.3 (max. ~7.6) for HfO₂ over 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