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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서 읽는 한국인의 정체성

          황병기(黃昞起) 한국국학진흥원 2014 국학연구 Vol.0 No.24

          한국인의 문화유전자 연구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후원하고 한국국학진흥원이 주관하며 2012년도부터 시작되어 연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12년도에는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2012년에 주목할 한국인의 문화유전자’ 10가지를 선정하였다. 그 연구성과는 『한국인의 문화유전자』라는 책자로 발간되었다. 2013년도에는 20대부터 60대까지 10년 단위로 각 세대의 일상생활문화와 그 문화를 향유하는 한국인의 대표정서, 그리고 1970년 대부터 200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각 시대의 일상생활문화와 그 문화를 향유하는 한국인의 대표정서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그 결과에 근거해 분야별 전문가들이 세대별 특징과 각 세대의 청년기인 20대 시절의 특징을 연구하였다. 2013년도의 설문조사에서 각 세대별 설문결과와 시대별 설문결과가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 연령층의 대표적인 일상문화에서 느껴지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로 조화와 어울림이 15.4%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2위로 응답된 것이 공동체 문화로 8.9%니까 이것까지 합친다면 25% 가량으로 어울림/조화/공동체문화가 대표적인 문화유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 개인의 일상문화는 각각 다양한 모습을 띤다. 그리고 동일한 일상문화라도 그것을 누리는 사람마다 다른 목적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게임을 자신의 일상문화로 꼽은 젊은 20대의 한국인들 가운데는 의외로 그러한 문명의 이기를 통해 어울려 사는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설문에서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에 몰두하는 젊은 학생들을 바라보는 성인들이 젊은 세대의 폐쇄적 인성을 탓하고 개인주의와 상업주의에 빠져 있다고 그들을 비평하는 사이에 그들은 오히려 현 사회의 팽배한 개인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그러한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인의 일상문화는 그 방식과 수단의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청바지와 통키타에서 스마트폰으로 수단의 변화가 있었고, 저항과 시위에서 조화와 여유의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정의정서와 어울림과 상생의 정서는 면면히 한국인의 정서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 한류가 전세계인의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은 한국인에게 만민공통의 정서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 밖의 시청자가 대장금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정으로 가득한 가족애와 한 인물의 부단한 도전정신과 열정 등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류공통의 정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특히 한국인에게 어울림, 상생, 정, 열정과 같은 정서가 마치 생물학적 유전자처럼 세대에서 세대로 유전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This is an essay on Korean identity analyzed from mediocre life and culture, according to the 2013’s survey hosted by Advanced Center for Korean Studies. According to that, Korean youth life and culture have been changed, but National emotion(Culture DNA) does not. The unique emotion of Korean which is gained from typical mediocre culture of all ages is harmonized. That response rate is respectively 15.4%. The response rate of community is 8.9%. Because two emotions are similar to each other, we can judge harmony/community is Korean overwhelming cultural DNA. Korean mediocre culture over the last half century has changed in the way of life and the means. Changes have been made from jeans and guitar to smart phone, from resistance and protest to harmony and freedom in various ways. However the emotion of Jeong(情: sympathetic heart) and harmony ceaselessly is maintained. According to the survey, we can not be overlooked that, in Korean, the emotions of harmony, mutuality, positivity and passion were like a biological DNA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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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한국학의 동향

          김중순(Kim Tschung-sun) 한국국학진흥원 2003 국학연구 Vol.3 No.-

          해외 한국학을 국학의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 둘이 다 함께 한국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출발과 접근법이 다르다. 이 글에서는 동남아와 러시아를 제외한 영미와 구라파의 연구 성과를 살핀다. 이런 성과물들은 주로 50년대 한국전쟁 이후에, 그리고 70년대 한국의 경제가 급속히 성장했을 때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한국관은 직접적인 연구나 경험에 의하지 않고 식민지 시대에 간접적으로 전해진 인상을 바탕으로 한다. 그것이 오늘날 어떤 형태로 극복이 되고 있는지 각 분야별로 살펴본다. 특히 최근에는 해외 한국학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을 띄고 국학의 전통에 대해 과감한 대립구도를 형성해 가고 있다. 학제간의 연구도 활발하고, 국내와 해외 학자들간의 교류도 활발하다. 몇몇 선도 그룹을 형성하는 학자들과, 그들의 저술을 소개함으로써 해외 한국학의 이러한 경향을 밝혔다. 그러나, 해외한국학의 걸림돌은 오히려 국내학자들의 고정관념에 있다. 그들의 “우리 것”에 대한 고집과, 한국학이 “우리의 소유물”이므로 해외한국학의 “잘못된 경향”을 방지하기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것이다. Korean Studies Abroad should not be understood from the view point of Kukhak(국학; 國學; National Studies) nor can they be compared in retrospect. Both of them deal with the same subject but differ in starting point and method of approach. In this paper, only the outcome of studies from United States and Europe will be discussed, while excluding that of South East Asia and Russia. Most of these results were made during the 50's after the Korean War, and in the 70's when the Korean economy began to develop rapidly. However, these studies had been conducted based on information indirectly gained from the Japanese rule. It is necessary to review, in every area, how these fallacies are being and should be overcome. Recent trends of Korea Studies Abroad, however, shows postmodernism in their academe methodology which contradicts the traditional and rigid method of Kukhak. As interdisciplinary approach is becoming more and more common, communication among scholars in Korea and abroad is forcing Kukhak to broaden their scope. These new trends are being introduced through the research of some leading young scholar groups. It should be noted that the obstacle is the tenacity of Korean scholars in their self-absorbed cultural identity. Their 'we-ness' consciousness and excessive sense of duty of 'our' Korean Study lead to overreaction in correcting the 'wrong' trends ab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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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유교목판의 특징과 기록유산적 가치

          김종석(金鍾錫) 한국국학진흥원 2010 국학연구 Vol.17 No.-

          본 논문은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목판이 갖는 기록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유교문화와 목판인쇄의 관련성, 한국 유교문화에서 차지하는 영남지역의 비중,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목판의 구성상의 특징을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이다. 가치지향적 삶을 추구하는 유교문화의 특성상 기록유산은 가장 중요한 유교문화유산이며, 그 가운데서 목판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유교문화유산이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목판은 한국에서 목판 제작이 가장 왕성했던 영남지역에서 수집된 결과라는 점에서 대표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그 저자들이 퇴계이황을 중심으로 역사적ㆍ학문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컬렉션이다. 지금까지는 기록유산이라고 하면 으레고서와 고문서만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본 논문을 통해서 목판이야말로 과거 전통시대에 있어서 문화산업의 동향과 관련된 모든 정보가 집약되어 있는 일차적인 서지자료임을 밝혔다. This paper deals with the value of wood printing blocks of KSAC in the aspect of the relation of the Confucian culture and the Wood printing, the significance of Yeungnam district in the Korean cofucian culture, the compositional characteristics of KSAC's wood blocks. The documentary heritages are the most important heritages of the confucian culture in the aspect of characteristic of confucian culture seeking the ethically valuable life. The KSAC's wood blocks have the representativeness in the fact that they have been collected from the Yeungnam district where the most large number of wood blocks had been made in Chosun dynasty. And they have also the uniqueness in the fact that the authors of the wood blocks including Toegey LeeHwang (1501~1570) were related each other historically and academically. Speaking of the documentary heritages, People have tended to put emphasis on the old books or old papers as per normal. But this thesis revealed that wood block is the primary material having the trends and informations of culture industry in the moder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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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조 1 : 현실과 소통하는 한국학의 정립을 위한 예비적 시론

          유초하(柳初夏) 한국국학진흥원 2009 국학연구 Vol.14 No.-

          한국 유교-유학 연구가 지금까지의 발전을 넘어 더욱 높은 수준으로 고양된 학문이 되기 위해 어떤 변화가 요구되는지를 살폈다. 그 중심논점 몇 가지를 예시한다. ① 사상-이론의 의미분석에 머물지 않고 연구대상 시대현실과 연관된 사회정치적 의의를 밝히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② 유학연구는 불교와 선도 등을 포괄하는 한국사상사 일반의 연구로 통합되는 것이어야 한다. ③ 유학이 지닌 원천적 한계를 성찰하는 동시에, 거시적 안목과 반성적 태도에 기초하여 유학사상에 담긴 긍정적 요소들을 재구성해내야 한다. ④ 유학연구는 인문학과 지역학의 성격을 아우르는 한국학의 정립으로 나아가야 한다. ⑤ 학문의 영역에서 개방-종합-비판-실천을 모범적으로 구현해온 문화연구-문화학과 서사연구-내러톨로지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한국유학 연구가 현실과 소통하는 한국학의 정립으로 나아가기 위한 예비작업으로, 문화연구-문화학이 지닌 이론적-실천적 특징들을 검토했다. 개방과 종합, 비판의식과 진보지향, 기존비판이론에 대한 조절과 대안 제시, 객관적 사실에 개입하는 서사주관의 중요성 등에 관해 해명했다. 유학연구가 문화학을 지향할 때 요구되는 이론적-실천적 과제들을 밝히는 한편, 문화학적 방법과 태도에 여전히 남아있는 한계를 지적했다. 본고의 연구는 민족사 정통성 및 민족문화 정체성의 재확립을 추구하는 학문적 노력에 해당한다. 이 글의 논점들에 유의할 때 향후 한국유학 연구는 전통문화유산 계승과 현실 정치문화 발전 사이의 긴장을 밝히고 양자를 절충을 모색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문화학적 지평을 확보하고 복합학문으로서의 한국학의 정립으로 나아가는 한국유학 연구는 한국에서 출발하고 한국이 매개하는 동북아 문화공동체 건설의 모색, 그리고 글로컬시대에 걸맞는 범인류 수준 미래지향 화합-상생 문화의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 Research of Korean Confucianism is confronted with some new demands of self-transformation. Not to drop behind remaining old-fashioned, our academic society should, first of all, adapt to the new academic trend of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Hitherto, most treatises on traditional Confucian Philosophy tended to give weight to or put focus on logical analysis of its theories, apart from socio-economic interest and political orientation of the pertaining philosophers of past historical periods. In the traditional era, however, Confucianism had rather been sort of Unified Science, and a Confucian Scholar had been regarded as the Whole Men or a well-rounded person. Now we should succeed such spirit for restoration of our academic works into Praxis Learning. In order to restore the vigor and critical power of traditional thinkers and their ideas, we should give attention to Cultural Studies. Reseachers of traditional Confucianism, especially of Neo-confucianism in Chosun Dynasty, are required to introduce the methodology and rationale of Cultural Studies. Getting out from semantic analysis and syntactical meta-analysis, our study of traditional thoughts needs to come forward to multi-directional and integrative ways of approach. We have to cross over the present compartmental system of closed specialties. Multilateral communications are needed among wide realms of learning, as well as mutual understanding is demanded on the level of branch fields of some particular academic discipline. Confucianism is a constituent part of the Korean History of Ideas. In other words, the Korean tradition of culture encompass still wider range of theories and practices than Confucianism. Buddhism has also exerted a strong influence in the Korean traditional culture from ancient times; Spirit Worship or Spiritism(神明思想, 神仙思想), the unique stream of Korean religious thinking, had had a great deal of influence on life and death of Korean people, with a wider range and longer time-span. Here arises the demand of reassessing the main streams of traditional schools of thought. In short, research of Korean Confucianism is to be integrated, as a sub-unit, into Korean Studies that makes the whole body of investigating and expounding various issues. My point here is that Confucianism definitely comes under the major schools of traditional thought, yet nevertheless it may not be the most powerful branch of thinking in Korean History of Culture. Fusion of researches of Korean Confucianism with Cultural Studies will contribute to bring forth a firmly founded academic discipline of Korea Studies. To expound the complicated body of society and history both on the levels of comprehensiveness and concreteness, I suggest that we make up a common foundation of various fields of academic investigation. What part of learning you may belong as a scholar, you had better have some basic understanding of the whole academic arena, especially in respect of methodological principle and macro history of paradigmatic theories. Humanities and aesthetics, social and natural sciences ─ in short, all parts of knowledge production, should meet and communicate to make up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Today we live in an age of collective intellect that makes traditional classification of science hardly valid, and that is building up (within some sphere) a sterical body of knowledge concrete and comprehens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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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학”의 형성과정 고찰 - 20세기 화쟁담론을 중심으로

          김미영(金美榮) 한국국학진흥원 2019 국학연구 Vol.0 No.38

          원효의 불교철학사상은 한국고대불교철학사상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일 뿐 아니라, 한국불교학 더 나아가 한국불교철학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본고는 20세기에 원효철학사상이 한국불교철학의 중심에 서게 되는 과정에 주목하여 원효사상을 다루어보고자 한다. 이 과정을 강조하기 위하여 본고에서는 이를 ‘원효학’이라고 하였다. 본고는 한국철학사에서 원효학이 차지하는 위상을 세 측면에 주목하여 밝혔다. 첫 번째는 1920~1930년대 최남선이 조선학을 제창하는 과정과 원효학이 한국불교사 연구의 중심에 자리잡는 과정에 주목하여 현대 원효학 연구의 출발점을 검토하였다. 두 번째는 현존하는 원효저술발굴과정에 반영된 이념으로서 화쟁사상과 그의 저작 특히 『십문화쟁론』의 부상을 그의 전기를 게재한 비문들을 통해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20세기 원효사상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화쟁개념이 원효사상을 논하는데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화쟁개념은 원효에게 있어서는 불경에 깃들인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한 실존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제시된 경전연구방법론이었으나, 원효 사후 고려시대 의천으로부터 한국불교사에서 원효의 화쟁이 주목받게 된 것은 종파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론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후자의 입장은 20세기에 한국불교사 더 나아가 한국철학사를 구성해가며 종파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론으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에 원효의 화쟁사상은 중요한 이념을 제시해주었다는 점을 밝혔다. Wonhyo’s Buddhist philosophical thought is not only an aspect of Korean ancient Buddhist philosophical thought, but also the center of Korean Buddhism and furthermore of Korean Buddhist philosophy. This paper focuses on the process of Wonhyo philosophical thought in the 20th century as the center of Korean Buddhist philosophy and deals with Wonhyo thought. To emphasize this process, this paper called it ‘Wonhyohak’(元曉學). This article examines the status of Won Hyo Hak(元曉學) in the history of Korean philosophy. First, I has paid attention to Won Hyo Hak’s position in the ‘Chosunhak’(朝鮮學) studied by Choi Namseon from the 1920’s to 1930’s and the process of Won Hyo hak’s being positioned at the center of Korean Buddhist studies. The second, I examined “Hwajaeng”(和諍) as an ideology reflected in the process of discovering the existing Wonhyo’s writings and the rise of his writing, especially Shipmunhwajaeinglun”(『十門和諍論』) through inscriptions bearing his biographies. Finally, I examined the role of “Hwajaeng” in Wonhyo’s thought. Through this, I made sure that the concept of the Hwajaeng in the case of Wonhyo was the methodology of the scripture study presented in the process of exploring the existential problem of practicing the Buddha’s teachings, but through Yicheon’s effort in Koryeo era, the Hwajaeng got attention in Korean Buddhist history in the course of searching for a methodology to resolve conflicts among the sects. And the latter pointed out that Wonhyo’s thoughts suggested an important idea as a methodology to solve the conflict among the sects by constructing Korean Buddhist history and that of Korean philosophy in the 20<SUP>th</SUP>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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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조 : 한국유학사상 서술의 과제와 의의

          윤사순(Yoon Sa-soon) 한국국학진흥원 2003 국학연구 Vol.3 No.-

          한국국학진흥원에서 『한국유학시장대계』 저술에 착수하려는 계획은 기존의 한국유학사상 관계 서적들보다 더 만족할 수 있는 ‘참신한 저술’을 내려는 의욕에서 나왔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참신성을 충족시키려면, 기존의 저술에서 오류를 발견하여 시정하고, 결여된 것을 찾아 보충하고, 각 부문의 사상이 전체 사상 속에서 지니고 있는 의의가 밝혀져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새로운 한국유학사상 서술의 과제로 집약된다. 하지만 이런 과제의 수행은 시각에 따라 다시 원론적인 것과 각론적인 것으로 분별하여 상론할 수 있다. 먼저 원론적인 측면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다. 첫째 ‘유학은 무엇인가’, 둘째 ‘우리에게 유학은 어떤 것인가’, 셋째 ‘한국유학은 어떻게 흘러왔나’ 하는 등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서술하여야 한다. 이런 원론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국유학이 철학ㆍ종교ㆍ문학ㆍ사학ㆍ과학ㆍ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예술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낸 내용과 성격 및 영향이 명확히 서술되어야 한다. 각론적인 측면에서는 기존의 『한국유학사』 같은 서적들에서 구체적인 서술과제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① 장지연의 『조선유교연윈』, ② 현상윤의 『조선유학사』,③ 이병도의 『한국유학사』, ④ 배종호의『한국유학사』,⑤ 최영성의 『한국유학사상사』 같은 데서 참신성을 갖출 요소를 찾을 수 있다. 이 저서들에 있는 오류와 빈약함과 결함 등이 바로 새로 시정 강화 보충할 과제라는 의의를 지닌다. It can be assumed that Korea Studies Advancement Center's plan to write The Series of Korean Confucian Thoughts is motivated by the will to publish a 'novel literary work' which is of more satisfactory than those existing works. To fulfill such novelty, errors in the existing works should be discovered and corrected, lacks should be found and supplemented, meaning of partial thoughts constituting the whole should be revealed. These are the principal points of the task. The accomplishment of this task can be classified into the principles and particulars. In the principle point of view, following subjects should be considered; firstly, 'What is the Confucianism?', secondly, 'What does the Confucianism mean to us?', thirdly, 'How has the Confucianism been changed along the time?'. These points should be the underlying questions of description. Based on these principle considerations, the substances, characteristics, and consequences that has been caused by the Korean Confucianism to philosophy, history, science, politics, economics, society, culture, and art, should be described explicitly. In the particular points of view, we shall be able to deduct some concrete objects from existing writings, for example The History of Philosophy in Korean Confucianism. To be more specific, The Origin of The Lee Dynasty's Confucianism by Ji-yeun Chang, The History of Philosophy in The Lee Dynasty's Confucianism by Sang-yun Hyun, The History of Philosophy in Korean Confucianism by Byung-do Lee, The History of Philosophy in Korean Confucianism by Chong-ho Bae, and The History of Korean Confucian Thoughts by Yeung-seung Choi would be able to provide some novel and essential substances. It is the errors, deficiencies, and faults in these writings that shall be the objects to be corrected, consolidated, and supplemented for the novelty of this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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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별급別給 분재의 사유와 변화 양상

          손계영 한국국학진흥원 2019 국학연구 Vol.0 No.39

          This paper examined the meaning, concept and reason of the special bestowal through 126 special gift writs stored in The Korean Studies Institute, and analyzed the changes and characteristics of the donor, donee and witness of the special bestowals by period. It reads as follows: ⑴The concept of “byeol-geub (別給)” implies ‘to bestow specially’ rather than ‘to bestow separately’. Thus this enabled special bestowals to be made to two or more donees at the same time, and it could also be possible to use the expression ‘pyeonggyun byeol-geub (平均別給, equal bestowal) in the special gift writs. ⑵The reasons of the special bestowal were largely divided into four such as ①ritual succession and serving parents, ②celebration, ③concern and consolation, and ④others. Among them, the largest number of the reason were passing the state examinations and the appointment of government official. And then it was appeared in the order expressing donor’s affection and favor for donee; ritual succession and patrilineal succession; being the eldest son or grand son; celebrating the birth of child especially a son and marriage, and so on. ⑶According to the characteristics of donors, there were more cases of women than men. Women donors accounted for 50 to 80 percent of the 16th and 17th centuries, but by the 18th century, they had significantly decreased to 10 to 20 percent. In the case of donees, there were various cases of sons, daughters-in-law, daughters, sons-in-law, grandchildren, great-grandchildren, nephew, younger brother, children of secondary consorts, and consorts. However half of the cases were bestowal for sons and grandsons. ⑷Looking at the changes in witnesses involved in writing special gift writ, the average witness count in the first half of the 16th century was 3.85; by the end of the 18th century, there was less than one witness on average and even more than half of the cases donor wrote the writ without witnesses or clerks. By the 18th century, the principle of inheritance by equal distribution changed to the preferential inheritance for the eldest son and discriminatory inheritance for daughter, which appeared to have increased the authority of donors in special bestowal. This resulted in a sharp decrease in the number of witnesses and legal effect on the document itself, even if the donors, without witnesses or clerks, produced the inheritance documents by their own hands. 이 논문은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별급문기別給文記 126건을 대상으로 별급의 의미와 개념, 별급사유 등을 살펴보았으며, 시기별 별급의 재주 수취인 증인의 변화와 특징을 분석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별급別給’의 용어는 재주財主가 수취인에게 ‘따로 별도로 준다’는 의미보다는 ‘각별히 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때문에 2명 이상의 수취인을 대상으로 동시에 별급이 이루어지는것이 가능했으며, 별급문기에서 ‘평균별급平均別給’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가능할 수 있었다. (2)별급의 사유는 크게 봉사奉祀와 시봉侍奉, 경사에 대한 축하, 우환에 대한 위로, 기타 등으로 구분하였다. 그 가운데 과거급제 관직제수로 별급한 사례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은애하는 마음을 나타내기 위한 표정表情, 장자 장손의 봉사奉祀승중承重, 자녀 손자녀의 경사에 대한 축하와 우환에 대한위로로 별급한 사례가 그 뒤를 이었다. 이밖에도 재주를 극진히 시봉侍奉한 것에 대한 보상, 서얼과 첩에 대한 배려 등 다양한 사유로 별급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다. (3)재주의 특징을 살펴보면 재주가 여성인 사례가 남성인 사례보다 많았다. 시기별로는 여성 재주가 16~17세기에 50~80%를 차지한 반면, 18세기에는 10~20%로 현저히 줄어들었다. 수취인의 경우에는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손자녀, 증손자, 조카, 동생, 서얼자, 첩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났으나, 아들과 손자에게 별급하는 사례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였다. 수취인의 변화는 17세기 후반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며느리와 손자며느리에게 별급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4)별급문기에서 증인의 변화를 살펴보면, 16세기 전반의 평균증인수는 4명에 가까웠으나, 18세기 후반이 되면 평균 증인수가 1명도 되지 않으며 심지어 증인證人필집筆執 없이 재주가 자필自筆로 작성한 사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는 18세기가 되면 균분상속의 원칙이 장남 우대와 딸에 대한 차등분재로 변화해 갔던 사회적 인식과 분위기가 재주의 별급에 대한 권한을 더욱 높였던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증인수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증인 필집 없이 재주가 직접 자필하여 분재기를 작성하더라도 문서 자체로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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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독립선언서 영역본의 국외 전파 연구

          김도형(金度亨) 한국국학진흥원 2019 국학연구 Vol.0 No.40

          3·1독립선언서는 서울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국과 자주민임을 선포하고, 동양의 평화와 인류의 공영을 위해 반드시 독립이 되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밝힌 문서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면서 역사적인 3·1운동의 막이 열렸고, 전국적으로 만세시위에 돌입하게 되었다. 독립선언서는 3·1운동의 시발점이 되어 세 달 동안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나게 하였고, 중국·러시아·미주 등 국외 한인사회에도 전달되어 그곳에서도 민족 독립을 외쳤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선언서는 3‧1운동을 알리는 신호탄이며, 3·1운동의 사상과 정신이 오롯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립선언서는 한국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일한 문서이기 때문에 이 선언서는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독립을 증명하는 유일한 문서인 독립선언서가 국외로 전달되어, 중국어‧영어‧프랑스‧스페인어 등 각국어로 번역되어 언론에 게재되었다. 외국어로 번역된 독립선언서를 통해 국제사회에서는 일제의 부당한 식민지배로부터 한국민이 독립을 선언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민의 독립의지와 정신이 담겨있는 독립선언서가 어떠한 경로를 통해 국외에 반출되어 국제사회에 전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국외로 반출된 필사본 독립선언서가 중국 상하이에서 중국어와 영어로 번역되어 중국신문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후 중국어 번역본이 여러 신문에 게재되었다. 국내에서 인쇄된 독립선언서는 한국내의 각국 외교기관과 외국인 선교사 등이 영어로 번역하여 국외로 전달하였다. 특히, 영어로 번역된 독립선언서는 AP통신을 통해 미주의 각 신문에 실리게 되었고, 팸플릿 등으로 인쇄되어 보급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국 독립운동을 선전하는 책자에는 반드시 영문 독립선언서 전문이 그대로 실려, 국제사회에 한국민의 독립의지를 표방하고 확산시키는데 크게 일조를 하였던 것이다. 독립선언서는 정의와 인도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독립 선언의 당위성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어로 번역된 선언서를 읽는 세계인들이 한국민족이 반드시 독립이 되어야만 한다는 데에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독립선언서가 대내적으로 3·1운동의 대의를 표방하고 대중화에 기여하였다고 한다면, 영역된 독립선언서는 대외적으로 한국민의 독립 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리는 데에 상당한 공헌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 KCI등재

          예술 : 한국유학사상대계에서 음악사상분야 서술의 문제점과 대안

          송지원(Song Ji-won) 한국국학진흥원 2003 국학연구 Vol.3 No.-

          본 연구는 한국유학사상韓國儒學思想 가운데 드러나는 음악사상音樂思想을 어떻게 서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탐색하는 일종의 제안서이다. 먼저 기존 연구 가운데 부분적이나마 음악사상과 관련하여 이루어진 연구업적에 대해 살핀 후 그 문제점을 검토해 보고, 기존 연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는 새로운 서술 범위와 방향, 대안을 모색한다. 이를 위해 유학이 도입된 이후의 한국음악사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면서 유학사상의 관점에서 이룩된 여러 음악서술과 문헌사료들을 검토한다. 또 그 가운데 반드시 연구되어야 할 내용들을 찾아내어 한국유학사상 가운데 음악사상 분야 서술을 위한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해 볼 것이다. 본 연구는 몇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우리나라에 유학儒學이 유입된 이후 한국음악의 사상적 기반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학사상儒學思想이 유학사상 안에서 음악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 모색할 수 있는 기회이다. 둘째, 여러 종교적, 사상적 배경에서 복합적으로 이룩된 한국음악의 여러 특징 가운데 특별히 유학적 기반이 무엇인지 밝힐 수 있는 기회이다. 셋째 한국유학사상 가운데 음악사상을 추려냄으로써 통시적으로 큰 맥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This paper can be considered as a suggestion searching for the proper way of describing the musical thoughts in the Korean Confucian Thoughts. First, investigating relevant works already made and review its issues, then search for the new scope, direction, and alternatives where no study has ever been carried out yet. The history of Korean music since the introduction of the Confucianism in general shall be outlined, by studying musical writings and references drawn up on the basis of the Confucian Thoughts. Also subjects which need to be examined shall be deduced for the description of the issues and alternatives of musical thoughts within the Korean Confucian Thoughts. This research has a few significant meanings. Since the introduction of Confucian Thoughts to Korea, it had comprised a meaningful portion in the basis of Korean musical thoughts. Firstly, this research shall provide us an opportunity to study how the Confucian Thoughts had realized itself in music. Secondly, it shall also provide us an opportunity to find out the specific Confucian character among the various religious and ideological background of Korean music. Finally, this will also be an opportunity of groping the basic veins of Koran music by sorting musical thoughts out from the Korean Confucian Thoughts.

        • KCI등재

          현실과 소통하는 한국학의 정립을 위한 예비적 시론 ― 한국유학을 중심으로

          유초하 한국국학진흥원 2009 국학연구 Vol.14 No.-

          Research of Korean Confucianism is confronted with some new demands of self-transformation. Not to drop behind remaining old-fashioned, our academic society should, first of all, adapt to the new academic trend of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Hitherto, most treatises on traditional Confucian Philosophy tended to give weight to or put focus on logical analysis of its theories, apart from socio-economic interest and political orientation of the pertaining philosophers of past historical periods. In the traditional era, however, Confucianism had rather been sort of Unified Science, and a Confucian Scholar had been regarded as the Whole Men or a well-rounded person. Now we should succeed such spirit for restoration of our academic works into Praxis Learning. In order to restore the vigor and critical power of traditional thinkers and their ideas, we should give attention to Cultural Studies. Reseachers of traditional Confucianism, especially of Neo-confucianism in Chosun Dynasty, are required to introduce the methodology and rationale of Cultural Studies. Getting out from semantic analysis and syntactical meta-analysis, our study of traditional thoughts needs to come forward to multi-directional and integrative ways of approach. We have to cross over the present compartmental system of closed specialties. Multilateral communications are needed among wide realms of learning, as well as mutual understanding is demanded on the level of branch fields of some particular academic discipline. Confucianism is a constituent part of the Korean History of Ideas. In other words, the Korean tradition of culture encompass still wider range of theories and practices than Confucianism. Buddhism has also exerted a strong influence in the Korean traditional culture from ancient times; Spirit Worship or Spiritism(神明思想, 神仙思想), the unique stream of Korean religious thinking, had had a great deal of influence on life and death of Korean people, with a wider range and longer time-span. Here arises the demand of reassessing the main streams of traditional schools of thought. In short, research of Korean Confucianism is to be integrated, as a sub-unit, into Korean Studies that makes the whole body of investigating and expounding various issues. My point here is that Confucianism definitely comes under the major schools of traditional thought, yet nevertheless it may not be the most powerful branch of thinking in Korean History of Culture. Fusion of researches of Korean Confucianism with Cultural Studies will contribute to bring forth a firmly founded academic discipline of Korea Studies. To expound the complicated body of society and history both on the levels of comprehensiveness and concreteness, I suggest that we make up a common foundation of various fields of academic investigation. What part of learning you may belong as a scholar, you had better have some basic understanding of the whole academic arena, especially in respect of methodological principle and macro history of paradigmatic theories. Humanities and aesthetics, social and natural sciences ─ in short, all parts of knowledge production, should meet and communicate to make up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Today we live in an age of collective intellect that makes traditional classification of science hardly valid, and that is building up (within some sphere) a sterical body of knowledge concrete and comprehensive. 한국 유교-유학 연구가 지금까지의 발전을 넘어 더욱 높은 수준으로 고양된 학문이 되기 위해 어떤 변화가 요구되는지를 살폈다. 그 중심논점 몇 가지를 예시한다. ① 사상-이론의 의미분석에 머물지 않고 연구대상 시대현실과 연관된 사회정치적 의의를 밝히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② 유학연구는 불교와 선도 등을 포괄하는 한국사상사 일반의 연구로 통합되는 것이어야 한다. ③ 유학이 지닌 원천적 한계를 성찰하는 동시에, 거시적 안목과 반성적 태도에 기초하여 유학사상에 담긴 긍정적 요소들을 재구성해내야 한다. ④ 유학연구는 인문학과 지역학의 성격을 아우르는 한국학의 정립으로 나아가야 한다. ⑤ 학문의 영역에서 개방-종합-비판-실천을 모범적으로 구현해온 문화연구-문화학과 서사연구-내러톨로지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한국유학 연구가 현실과 소통하는 한국학의 정립으로 나아가기 위한 예비작업으로, 문화연구-문화학이 지닌 이론적-실천적 특징들을 검토했다. 개방과 종합, 비판의식과 진보지향, 기존비판이론에 대한 조절과 대안 제시, 객관적 사실에 개입하는 서사주관의 중요성 등에 관해 해명했다. 유학연구가 문화학을 지향할 때 요구되는 이론적-실천적 과제들을 밝히는 한편, 문화학적 방법과 태도에 여전히 남아있는 한계를 지적했다. 본고의 연구는 민족사 정통성 및 민족문화 정체성의 재확립을 추구하는 학문적 노력에 해당한다. 이 글의 논점들에 유의할 때 향후 한국유학 연구는 전통문화유산 계승과 현실 정치문화 발전 사이의 긴장을 밝히고 양자를 절충을 모색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문화학적 지평을 확보하고 복합학문으로서의 한국학의 정립으로 나아가는 한국유학 연구는 한국에서 출발하고 한국이 매개하는 동북아 문화공동체 건설의 모색, 그리고 글로컬시대에 걸맞는 범인류 수준 미래지향 화합-상생 문화의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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