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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멕시코 여성운동의 변화 : 네트워크화된 운동 전략을 중심으로

        김온유 국립부경대학교 대학원 202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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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의 여성운동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속적인 노력으로 인해 정치적으로는 여성 대표성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사회문화적 문제는 여전히 산재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멕시코 여성이 가지는 특징과 관련된다. 멕시코 여성운동은 멕시코 여성의 특성인 가톨릭 문화 종속과 여성 위계화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왔다. 그 과정에서 과거에는 전통적 매체를 통해 일부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계몽이 목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소셜 미디어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여러 조직의 연대를 목적으로 한다. 2016년 이후 폭발적인 해시태그 운동들을 통해 네트워크화된 전략이 국제 연대를 형성했고, 멕시코에서도 내에서도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을 활용하여 여성들이 성적 폭력 등을 언급하고 공유하며 초위계적 연대를 이루었다. 이를 통해 멕시코 여성운동은 정동 소외자들 간의 감정적 응집과 실제 세계에서의 직접 행동의 동원을 성취했다.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는 네트워크화된 운동 전략은 신속한 정보의 전달성과 초지역, 초시간성을 가지고 여성 논의에 있어 새로운 정치적 공간을 제공한다. 그러나 네트워크화된 운동 방식은 목표 설정이 어려워 충돌과 감정의 폭발을 야기할 수 있으며, 잘못된 정보와 반발 의견의 확산이 발생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다른 운동에서도 지적되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운동 전략과 그 성취로 인해 멕시코는 낙태 비범죄화와 여성혐오 폭력에 대한 법률적 개선으로 다가가고 있다. 본 논문은 멕시코 여성운동의 역사와 멕시코 여성의 처지를 톺아보고 이를 통해 사회운동의 전략 변화가 사회에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았다. 멕시코 여성운동이 전략의 변화로 얻어낸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 인식의 개선, 법률적 재정비 등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개선 과정이 남아있다. 그러나 사회적 소통 매체의 변화에 따른 사회운동 전략의 변화가 사회 변화에 효과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e women's movement in Mexico has a long history. Despite increased political representation through sustained efforts, socio-cultural issues persist. These challenges are closely tied to the distinctive characteristics of Mexican women. The movement has evolved under the influence of Mexico's Catholic cultural dependence and the hierarchical structure of women. Initially, enlightenment targeted certain social strata through traditional media, but in recent times, it aims to disseminate information to a broader audience and foster solidarity among various organizations through online platforms such as social media. Since 2016, explosive hashtag movements have formed a networked strategy, fostering international solidarity and, domestically, enabling women to share experiences of sexual violence and establish subversive solidarity using social networking platforms. Through this, the women's movement in Mexico has achieved emotional cohesion among marginalized groups and mobilized direct action in the real world. Networked movement strategies utilizing online platforms provide a new political space in women's discourse with the rapid dissemination of information and offering a hyperlocal, hypertemporal dimension. However, despite the achievements of this new strategy, it poses challenges such as difficulty in goal setting, potential conflicts, emotional outbursts, and the spread of misinformation and dissenting opinions. Despite the acknowledged issues common to such movements, Mexico is progressing towards decriminalizing abortion and legal improvements addressing violence against women due to the success of new movement strategies. This thesis examines the history of the women's movement in Mexico, scrutinizes the status of Mexican women, and explores how changes in social movement strategies have tangible impacts on society. While acknowledging the achievements brought about by the evolution in strategies, the paper emphasizes the ongoing need for societal awareness improvement and continuous efforts such as legal reevaluation. Nonetheless, the confirmation of the potential effectiveness of social movement strategy changes due to shifts in communication media offers hope for societal change.

      • 한국여성운동의 전략변화에 대한 영향요인분석 : 입법운동에서 대표성 확대운동으로의 변화요인을 중심으로

        윤이화 경북대학교 대학원 2011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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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주제의 시작은 ‘한국의 여성운동은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운동의 전략이 입법운동에서 대표성 확대운동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전략변화의 영향요인, 변화의 과정과 성과, 운동의 전략과 영향요인의 상관관계, 한국의 여성운동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 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첫째는 한국여성운동의 제도화과정으로서 전략의 변화인데, 한국의 여성운동은 김영삼 정부시기까지는 성폭력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의 전화를 중심으로 입법운동의 형태가 주를 이루었으나, 김대중 정부시기부터는 비례대표 여성후보 공천할당제, 여성부, 국회 여성위원회를 중심으로 대표성 확대운동으로 전략이 변화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여성운동이 제도화되어가는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대표성 확대운동을 더욱 활성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둘째는 한국여성운동의 전략변화에 대한 영향요인을 분석하였는데, 영향요인은 크게 외부환경요인과 운동주체요인으로 나눌 수 있었다. 외부환경요인은 북경 세계여성회의에 의한 한국여성정책의 변화와 여성정책과 관련된 영부인의 역할변화, 운동주체요인은 여성운동의 성격변화와 여성들의 정치적 참여의 확대로 설명할 수 있었다. 외부환경요인으로서 북경 세계여성회의는 한국의 여성문제에 대한 정책방향을 변화시켰고, 이것은 여성운동의 전략변화로 이어졌다. 북경 세계여성회의에서 여성문제에 대한 진보적인 행동전략들을 채택하고 한국정부에 강제 또는 권고함으로써 한국의 여성정책기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여성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정책기조의 변화는 한국여성운동의 전략이 입법운동에서 대표성 확대운동으로 전환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성정책과 관련된 영부인의 역할변화는 김영삼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는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여성의 역할변화와 지위향상이 활발해지던 1990년대 초중반의 시대상황에도 불구하고 영부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지 않고 전통적 내조로 일관하였다. 이에 반해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여성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아온 만큼 여성정책의 활성화를 위해 대통령에게 여성정책을 건의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운동주체요인으로서 여성운동의 성격변화는 여성운동의 대상이 ‘피해자 여성’ 중심의 활동에서 여성들 간의 연대활동으로, 여성운동의 슬로건이 ‘영향의 정치’에서 ‘참여의 정치’로, 여성운동 수혜자의 정치적 태도가 ‘소극적 대상’에서 ‘적극적 주체’ 로 전환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여성들의 정치적 참여의 확대는 여성후보자와 당선자의 증가(공무담임권의 측면)와 여성유권자의 정치의식의 성장(공무원 선출권의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여성후보자와 당선자의 증가(공무담임권의 측면)는 김영삼 정부시기에서 김대중 정부시기로 정권이 넘어가면서 지방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서 여성후보자와 당선자가 전체적으로 소폭 상승하게 된다. 비록 소폭이긴 하지만 여성의 대표성에 있어서 ‘수적 증가’ 는 무엇보다 큰 의미를 가지므로 그 의미를 제대로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여성유권자의 정치의식의 성장(공무원 선출권의 측면)은 투표율과 투표행태로 설명할 수 있다. 남녀유권자의 투표율과 투표행태 및 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한 태도를 살펴본 결과 남녀유권자의 투표율은 민주화 이후 각종 선거에서 점차 투표율이 낮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각급 선거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남녀유권자의 투표율 하락에 있어서 여성유권자의 투표율 하락세가 남성유권자의 투표율 하락세보다 소폭이라는 점에 있어서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이렇게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민주화 이후 투표율이 지속적이고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원인에 대하여 동원투표의 감소와 정치적 안정성의 증가라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선거에서 투표참여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정통성의 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더 이상의 투표율 하락은 막을 수 있게끔 투표율 제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투표행태는 각종 연구와 조사결과를 통하여 남녀유권자들은 아직까지 여성의 역할을 가정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이중적인 성적 고정관념이 남아있지만 여성의 정계진출과 관련하여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치의식이 많이 전환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셋째는 여성의 대표성 확대의 딜레마로서, 차이와 다양성의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동안 대표성 확대운동의 전개과정에서 수적 대표성에 치중한 나머지 놓치고 가는 부분이 미래지향적인 의미에서의 차이와 다양성의 정치실현이다. 아직까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차이와 다양성의 정치실현을 강조하고, 앞으로의 대안을 고민해 보았다.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다름에서 시작된 차이는 여성들간의 ‘차이’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개인이 처한 위치와 환경에 따른 차이는 남녀간의 차이에서 시작하여 여러 여성 집단들, 즉 세대, 계층, 노동, 인종, 성, 민족, 종교, 문화, 빈부, 지역, 교육수준, 성적취향 등에 따른 차이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에 대해 주변인이지만 주변인인 여성들 사이에도 중심과 주변인으로서의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여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과 이해의 실질적인 차이를 점차 인식해가며 이를 풀어가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따라서 남성과 대항해야 하기 때문에 여성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되며, 성적으로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문제를 바로잡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이다. 차이는 페미니즘을 분열시키고 정치적 실천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에, 페미니즘 이론은 딜레마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차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페미니즘 정치학에서 중요한 과제이다. 따라서 ‘차이와 다양성의 정치실현’은 과거의 사상을 완전히 대치하는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기존사상의 기반 하에서 ‘차이와 다양성의 정치’를 결합하고 접목시켜내는 방식으로 소화할 때 현실사회에서 유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원칙적으로 여성의 정치세력화 방식은 정계진출보다는 사회전체를 성평등한 사회로 바꾸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여성의 대표성은 확대될 것이고,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논의 또한 논의의 필요성과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여성이 진정으로 희망하는 미래이며, 이상향일 것이다. 여성정치는 여성이 새로운 정치와 정치제도 개선의 주체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때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운동 전반에서 여성운동의 위치가 어디이고 국가와 제도정치권에 대한 여성운동의 영향력이 얼마만큼 증가해왔는지 돌아보면, 정치세력화가 단지 수(數)의 개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수(數)라는 소유의 권력 개념에서 벗어나게 되면 여성운동단체가 단체대표의 정치권 진출을 비롯하여 더 많은 여성들을 국회에 보내기 위해 무리한 정치적 행보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정치는 의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적인 삶 속에도 존재한다.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고 정치세력화를 이루는 것이 여성계의 바람이라면, 이제 이런 근원적 문제로 돌아가 깊은 성찰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요컨대, 여성의 대표성이 여성들간의 다양한 차이를 모두 담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여성의 대표성은 ‘수(數)적’ 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것이 세계적인 대세이고, 한국도 그 흐름에 편승할 것임을 자연스럽게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여성의 대표성 확대에 대한 자연스러운 예측처럼, 가까운 미래에는 여성들간의 다양한 차이들 또한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여성의 대표성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조금 더 시야를 넓혀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도록 더 이상 여성들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전체사회 차원에서 대안을 내놓고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강하지만 경직되지는 않은 유연하지만 약하지는 않은 다양한 실천방안들을 모색해내고, 밝은 대안사회 건설을 위해 철저하지만 인간다운 따뜻함이 배어나오는 여성운동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This study examines that strategies of the Korean women's movement have changed from legislation to promotion of women's representation when the regime changedfrom Kim Young Sam to Kim Dae Jung, analyzing influential factors to the strategic changes, process and outcome of the changes, and interrelations between them, and suggesting desirable directions for the future women's movement in Korea. The Korean women's movement has focused on legislation by which women tried to exert their influence to enacting and revising laws until the Kim Young Sam administration. In this phase, the Korean women's Association United and the Korean Women's Hot Line contributed to legislation of 'the Special Act of the Sexual Violence' and 'the Domestic Violence Law' those were monuments in terms of physical violence. From the Kim Dae Jung administration, however, the movement came to put emphasis on promotion of women's representation, which encourages women to win high positions in the parliament and the government. The fruits of this phase include adopting the Gender Quota System in Proportional Representation and establishing both the Presidential Commission on Women's Affairs and the Ministry of Gender Equality. This means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Korean women's movement and become impetus for the movement. The influential factors of Strategic Changes in the Korean Women's Movement are divided into two categories, the external environment and the subject. The former consists of changes of the female policy in Korea after the Fourth World Conference on Women, Beijing 1995 and evolution of the first lady's role, and the latter includes activation of the women's movement and female political participation. In terms of the external environment, the Fourth World Conference on Women, Beijing 1995 affected the female policy in Korea, forcing and recommending the Korea government to adopt radical action plans about women's problem. Secondly, the first lady, Son Myung Sun's role was rather conservative in the Kim Young Sam administration though women's role and position was advancing in the late 1990s. On the contrary, the first lady, Lee Hui Ho, in the Kim Dae Jung administration, strived for the expansion of women's rights. Not only she alone, but various figures in women's movement proposed to establish the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to invigorate female policies through the first lady. In the subject, moreover, the aim of the women's movement became concentrated on female solidarity rather than dispersed victim, the slogan of it changed into participation in politics rather than a lobby for politiciansand the attitude of women develop into active subjects rather than passive objects. Secondly, female political participation has advanced in two ways, increasing number of female candidates and top officials and improving political consciousness of female. The first appears in the change of government from Kim Young Sam to Kim Dae Jung. The number of female candidates and top officials grew, even though it was within narrow limits, the rise per se carried an important meaning regarding female representation. The second appears in voting rate and voting behavior. Although the whole voting rate came to decrease, female voting rate was higher than male voting rate. In addition, voting behavior turned out that some voters still confine women's role in domestic territory, but political consciousness about entering politics of women seems to be improved. In conclusion, a desirable aim which the Korean women's movement should take up is to realize the politics of difference and diversity. Until now, the Korean women's movement has put value on numerical increase and overlooked enhancing the politics of difference and diversity. Individual differences result from sex, generation, class, work, race, people, religion, culture, region, education state and sexuality. In a male-dominated society, females are marginal, but there still exists the power relation of core-periphery between women. When these differences are dealt with and surmounted, the qualitative improvement of women's representation can be expected. As feminism embraces the power relation and virtual differences, it should ultimately pursue a resolution of discriminatory and contradictory social structure, not a confrontation against men. Feminism is said to be in dilemma because difference and diversity can split feminism and diminish female political movement. Therefore, how to approach to the difference and diversity is a significant issue for feminism. The politics of difference and diversity needs to be accomplished on the ground of reality rather than against it.

      • 여성농민운동의 프레임 전환에 관한 연구 : 90년대 이후 전여농의 운동을 중심으로

        김현진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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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전여농을 중심으로 1990년대 이후의 한국 여성농민운동의 변화를 사회운동론적 시각과 에코페미니즘, 대안농업논의를 통해 살펴보았다. 전여농 설립 이후 진행된 한국 여성농민운동은 크게 1990년대, 2000년대의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는 한국의 농업구조가 UR, WTO 체제로 본격적으로 흡수된 외적 상황 아래, 농산물 수입개방이 전면화된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성농민운동은 농민 공통의 문제였던 정부의 농산물 수입개방을 비판하고, 농민운동조직과 함께 투쟁을 전개했다. 또한 여성농민을 억압의 상태에 있다 판단하고, 가부장적인 농촌사회에서 여성 문제를 조금씩 제기하였다. 하지만 이때의 여성농민운동은 농업전반의 위기로 독자적 영역구축에는 한계가 있었다. 2000년대가 되면서, 여성농민운동은 농업이 처한 위기 상황과 함께 변화하기 시작한다. 2000년대에는 외부적으로는 농업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심화되었고, 이것이 세계적인 반세계화운동을 발생시켰다. 국내적으로는 농업의 신자유주의화로 인해 계속해서 먹거리 위기가 발생하자 대안먹거리 체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2000년대 급속히 신자유주의화되는 농업환경과 농민운동의 쇠퇴는 기존 여성농민운동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진다. 이후 전여농은 다양한 조직들과의 국제연대와 국내연대를 통해 기존의 농업투쟁방식을 점차적으로 전환하기 시작한다. 2000년대 여성농민운동은 신자유주의와 가부장제를 여성농민운동의 문제라고 진단하고, 생태적이고 대안적인 농업까지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농민운동의 영역으로 포함시킨다. 특히 토종씨앗지키기 운동, 언니네 텃밭은 여성, 농민문제를 모두 포괄하는 운동으로써, 에코 페미니즘적이고 대안농업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런 여성농민운동의 변화는 그동안 농민운동이 국가에게 대책을 요구하는 ‘국가주의적 농업투쟁’에서 스스로의 대안을 모색해 가는 ‘대안적 농업투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전여농은 토종씨앗지키기 운동, 언니네 텃밭과 같은 독자적인 운동을 통해 이런 농민운동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이끌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 일제강점기 경북지역 근우회 운동

        김은아 계명대학교 대학원 201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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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우회는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까지 민족운동의 일익을 담당하기 위해 조선여성의 운동역량을 총 결집했던 최초의 여성통일조직이었다. 근우회는 지회의 성격 여하에 따라 다르게 파악될 수 있기에 최근 지회에 대한 사례연구가 요청되어 왔다. 이에 일제강점기 경북지역 근우회 지회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앞으로 근우회 운동에 대한 이해를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일제강점기에도 봉건적 구습이 온존됨에 따라 조선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열악했다. 그런데 1919년 종교인, 지식인, 학생 등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일어났던 3ㆍ1운동에서 보여준 여성들의 적극적인 투쟁은 여성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또한 일제가 지배방식을 ‘문화정치’로 전환함에 따라 대중의 합법적인 투쟁 공간이 확보되어 경북지방에서도 사회운동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여성운동은 기독교와 천도교 같은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초기 여성교육계몽의 일익을 담당했던 민족주의여성운동과 사회주의여성해방론을 이념으로 한 사회주의여성운동으로 전개되었다. 1920년대 중반에 이르면 사회주의여성운동단체들이 성장하면서 이들의 주도로 초기의 활력을 잃고 침체상태에 빠져있던 민족주의여성운동단체들과 협동노선을 채택하여 1927년 여성통일조직인 근우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경북에서는 지역 여성들의 자체적인 노력과 근우회 본부의 지원 및 지역 타 단체의 협조로 1927년부터 1929년까지 김천, 대구, 군위, 하양, 영천, 영주 등 6개 지역에 근우회 지회가 설립되었다. 이들 지역은 철도의 통과지이거나 그 인접 지역으로 새로운 학문과 사상이 보다 신속히 유입될 수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지회 활동은 대구, 김천, 영천, 영주 등의 경우와 같이 사회주의적 경향을 띠고 근우회 본부와 연계되는 여성지도자가 있거나, 기존의 여자청년단체의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에서 비교적 활발했다. 반면 하양, 군위 등의 경우와 같이 민족주의적 경향을 띠면서 주변 지역 지회설립의 여파로 지회가 설립된 경우에는 활동이 미약했다. 1930년을 지나면서 근우회의 운동의 방향과 전망에 대한 운동자들 간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해 근우회 해소 논쟁이 일어났다. 또한 근우회 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어 지회는 결국 해소되었다. 경북지역 근우회 지회는 운동이 단기간에 종료됨에 따라 미처 여성대중이 운동의 주체가 되어 활동하는 단계에까지 발전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근우회 지회의 설립은 경북지역의 여성 대중을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각성케 하는 첫 시도였다. 경북지역 근우회 운동은 봉건적 구습에 익숙해 있던 여성과 여성을 보는 지역사회의 의식변화에 영향을 미쳐, 경북지역 여성대중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The Geunuhoe in which women's great capabilities in the Chosun Dynasty was concentrated was the first women's united organization for the anti-Japanese movement, and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racial movement from the late 1920 to early 1930. Recently the case studies on local branches of Geunuhoe are required because each branch had different features and principle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search the branches of Geunuhoe in Gyeong-buk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o understand the anti-Japanese movement of Geunuhoe in depth.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women's status in the Chosun Dynasty was poor because of the feudalistic convention of regarding men as superior to women. As women joined actively in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in which religious people, intellectuals and students participated, it became an opportunity to change public perception of the women. Because Japan had changed a ruling system into cultural politics system, the legal space for struggle was secured and the social movement became active in Gyeong-buk. The women's movement based on religious groups like Christianity and Cheondoism was developed into the socialist women's liberation movement and nationalist women's movement which had a key part in early women's enlightenment campaign. The groups which had led the socialist women's liberation movement and groups of socialist women's liberation movement which had been stagnant established the Geunuhoe in 1927. In Gyeong-buk, 6 branches of Geunuhoe wrer established in Gimcheon, Daegu, Gunwi, Hayang, Yeongcheon, and Yeongju from 1927 to 1929. These branches located in areas which was adjacent to railroad route had advantage to embrace new thoughts. The branches in Gimcheon, Daegu, Yeongcheon and Yeongju were organizations with communist leanings and had leaders related with the headquarters of Geunuhoe. The branches in Gunwi and Hayang were organizations with nationalist leanings and were not active in movement. The members of branches had showed different opinions on directions and features of movement of Geunuhoe and was dissolved in 1930s because of Japanese oppression. The branches of Geunuhoe in Gyeong-buk did not played an important role in women's movement because it was dissolved in a short period of time after establishment. It was, however, the first attempt to make women acclimatized in the feudalistic convention awaken socially and politically in Gyeong-buk.

      • 지역여성운동의 세력화와 제도화 : 동북여성민우회 사례분석

        김현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0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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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민주화 이행기에서 한국의 제도정치권은 절차적 차원의 개혁을 넘어선 실질적 차원의 개혁은 지연시키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 시기에 제한적으로 확장된 정치참여의 기회속에서 시민운동은 형식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실천활동을 통해 성장해 왔다. 이 과정에서 시민운동의 세력화는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세력화는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닌 보다 심화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것으로 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권력구조의 변화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실질적 차원의 개혁을 이뤄내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시민운동 세력화의 의의를 민주주의 발전에서 생각해 본다면 지난 10여년간 분화, 발전해온 한국의 시민운동은 충분히 세력화 되었는가의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본 연구는 한국사회의 시민운동으로서 지역여성운동의 세력화 정도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세력화의 조건으로는 정치적 기회구조, 시민운동 단체의 역량, 대중적 기반의 확대를 들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세력화의 조건은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충분한 세력화 조건이 성립되지 않은 현실에서 시민운동의 세력화를 분석할 때 분석의 구분은 개인, 조직, 사회적 수준의 다층적 분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다층적 수준의 세력화는 상호작용을 통해서 정합적인 세력화로 갈 수 있다. 한편 불충분한 정치기회와 시민의 대중적 기반이 약하고 시민운동 자체의 역량이 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민운동이 세력화를 위해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전략중 하나는 제도화이다. 안정적으로 자원을 동원하고 정부의 정책을 감시하고 제안할 수 있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절차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시민운동 단체들이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사회운동의 모든 제도화가 곧 세력화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화 과정이 사회운동의 가치를 확산시키기도 하지만 기존 정당질서에 완전히 편입되어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되는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제도화가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모두 가지고 있으므로 세력화의 필수적 전제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제도화가 세력화를 촉진시킬 수는 있지만 역으로 세력화가 제도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한국사회에서도 시민운동의 제도화가 진행됨에 따라 시민사회와 국가 권력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시켰지만 기존 제도정치권에 흡수되어 시민운동의 영향력을 상실하는 부정적인 효과를 발생하기도 했다. 시민운동의 성숙한 세력화에의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시민운동이 지난 10여년간 보여준 압축적 성장과 시민운동 단체들의 역동적 모습은 한국 시민운동의 세력화가 대체적으로 낙관적이라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릴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시민운동이 어떠한 노력을 통해 저변확대와 역량강화의 한계를 보완하여 세력화를 달성하는가는 구체적인 개별 시민운동단체의 운동과정 분석을 통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지역여성운동의 분석을 택한 이유는 대안적 이념을 통한 세력화의 고민으로서 시민의 정치인 '생활정치'를 실천하는 운동이라는 점이다. 생활정치는 자발적인 시민 주체의 참여가 기반되는 개념이며 미시적인 차원에서 정치에 대한 대안적 개념을 창출하려는 노력이다. 생활정치의 이념은 시민운동이 '지역'에 관심을 갖고 지역운동이 활성화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여성운동이 세력화를 달성하려는 전략의 지점이기도 하다. 지역운동의 발전과정 속에서 독자적인 문제를 결부시키며 성장한 지역여성운동은 지역과 여성 이슈를 연결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운동의 사회적 의미를 확보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와 관련된 해답을 충분히 제공하기에는 기존의 지역여성운동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실정이다. 지역여성운동의 구체적인 성격과 운동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지역여성운동에 관한 연구가 보다 체계적이고 다양하게 진행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지역여성운동의 사회운동적 의미를 확보하는 일은 민주주의 이행기에 정치권의 개혁이 갖는 한계에 문제의식을 느끼며 정치사회와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과정을 통해 지체된 민주주의 공고화를 실행하려는 전체 시민운동단체의 세력화 과정의 흐름안에 존재한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여성운동의 세력화 과정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이것이 '지역'이슈와 '여성'이슈를 교차, 분리시키는 사회운동적 의미 구성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분석해 봐야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연구문제를 가지고 본 연구는 지역여성운동의 대표적인 단체인 동북민우회의 참여자들을 심층면접하고 운동의 과정을 참여관찰하는 방법으로 동북민우회의 역량강화 측면에서 세력화 과정과 지역정치에 참여하는 전략적 방법으로 선택된 제도화 과정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로 나타난 동북민우회의 세력화 과정은 조직의 근간인 생협운동의 활성화와 더불어 성장하였다. 생협운동은 지역여성운동으로서 추구하는 공동체적 이념과 여성주의적 이념 및 생활정치의 이념을 실천하는 구체적 활동으로서 운동 지향점을 확산하는 기능을 했으며 조직 구성원과 재정을 확보하는 자원동원의 도구로서 활용되었다. 이를 통해서 조직의 리더를 발굴하고 새로운 운동 이슈를 모색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조직의 구성원인 개인들은 운동에 참여함으로서 운동이 지향하는 이념을 통해 사회적 비판의식이 고양되었다. 비록 전체 구성원의 숫자에 비해서 한정적인 구성원이 조직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서 제한적인 의식고양의 이루어졌지만 생협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대중 회원들도 보다 적극적인 조직의 활동에 접근하게 될 기회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잠재적인 의식고양의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 역량이 강화된 구성원들은 운동조직의 수준에서 책임성과 지도력을 공유하는 리더로서 영향력과 통제력을 갖는 방식으로 성장하며 이러한 구성원들이 리더로 충원되는 과정은 동북민우회의 조직적 구조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조직 구조는 동북민우회의 공동체적인 지향과도 연결되며 다원화된 지도력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조직문화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조직 자체의 역량강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동북민우회의 활동가 충원구조는 동북민우회가 갖는 세력화 과정의 큰 특성이다. 한편 동북민우회는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타 조직과의 연계에 이슈별 연대활동의 형태로 활발하게 참여해왔다. 이것은 지역내 시민운동단체들의 역량을 자원으로 상호간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자원동원의 접근 기회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동북민우회와 연대활동을 벌이는 시민운동단체들은 지역내에서 동북민우회만큼의 대중적 지지기반과 동원구조의 역량을 갖추고 있지 않다. 따라서 연대활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다른 시민단체들의 신뢰를 받는 연대활동의 리더로서 영향력이 강화되는 동시에 지역내 시민단체에게 자원을 제공하는 정합적인 세력화가 일어나는 점에서 연대활동의 특이성을 찾을 수 있다. 동북여성민우회의 지역운동의 전개과정은 중앙차원의 대응 활동에 집중된 전문가 중심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여성운동의 대중화 기반마련이라는 목적아래 시작되었다. 초기의 활동은 중앙본부와 외부적 지원을 통해 내부역량 강화를 마련하기 위한 교육과 조직사업에 중심을 두었지만 어느정도 역량이 생긴후로부터는 지역인지성에 기반한 독립적 실천과 의제설정의 주체로서 중앙과의 관계도 상호 협력적인 관계속에서 지역운동의 실천 활동을 벌여왔다. 동북민우회 지역활동의 근간이 되는 운동은 생협운동과 지역자치운동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운동은 이념적 지향성을 가지는 신사회운동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생협활동의 의의는 여성과 환경의 접합에서 지역운동, 소비자운동, 공동체 운동 등의 종합적인 새로운 사회운동의 영역으로 넓혀갔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운동조직의 측면에서도 새로운 회원을 확충하고 활동가를 배출하는 동원자원 확보의 장으로 역할을 담당해왔다. 지역자치운동은 종합적인 사회운동의 영역에서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삶에 기초한 활동이 곧 정치라는 인식의 확산과 지역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운동으로서 생활정치의 실천이라는 측면을 강조하는 운동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전체 회원수에 비해 한정적인 회원의 지역자치 활동의 참여는 보다 성숙된 생활정치 실천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일반 대중회원에서 활동가로의 진입이 더디고 한정적이라는 점은 동북민우회의 운동조직적 특성을 이분화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비록 다른 시민운동 단체들에 비해서 대중적 동원구조가 활발하게 작용한다는 점은 의미있는 점이지만 시민사회의 활성화에는 못미치는 실정으로 이러한 구조는 대중적 기반에서 성장한 활동가들의 소진과 운동에서의 후퇴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보다 적극적인 대중회원의 의식고양과 참여를 실현하는 방법 모색이 필요하다. 한편 동북민우회 지역여성운동의 정치세력화 노력은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된 정치기회구조 속에서 제도적 자원과 절차를 사용하여 정책적 과정에 개입하는 행위방식을 통해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활동은 운동의 제도화과정이라는 결과를 낳았지만 운동단체의 모든 제도화 과정이 정치세력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지역여성운동의 제도화과정이 어떠한 영향을 반영하는 결과를 가져왔는가에 대한 분석은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정치세력화의 노력은 기본적으로 운동 조직의 내부역량이 대안적 전망하에서 정치세력화를 추진했는가의 문제이며 그러한 점에서 민우회가 지향하는 생활정치와 제도정치에서의 동시적 세력화의 전략은 대안적 이념하에서 정치세력화를 구축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동북민우회는 의회방청, 청원, 간담회 등의 제도화된 절차와 자원을 사용하는 행위방식과 비제도화된 행위방식을 동시에 사용하는 행위방식을 보여왔으나 전반적으로는 지역정치구조내에서 제도화된 자원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지방정부와의 협력적 활동을 해왔다. 운동 이슈가 제도화되는 과정이 제도정치권의 수용여부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정치세력화의 수준이 낮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며 직접적 정치권 진출을 통한 제도화 과정도 제도정치권 흡수와 운동단체의 자체역량 훼손이라는 점에서 제도화의 부정적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권 진출을 통한 의원과 운동단체의 연계활동을 통해서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국면을 모색하고 자체 역량개발의 기회로 삼으려는 노력은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동북민우회 지역운동의 결과가 일단락 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후의 분석 필요성을 제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제도적 자원과 절차를 사용하는 운동방식은 지방정부와의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영향을 가져왔다. 그러한 영향은 동북민우회의 지역운동 사업이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업으로 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의 전문성을 키우면서 지역정치구조내 참여자들에게 동북민우회의 역량을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민관협력의 파트너십 구축이 동북민우회의 특정사업과 관련된 행정부서에 제한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한계가 드러나기도 했다. 전반적인 운동의 전개과정에서 일어난 역량강화와 제도화의 과정은 동북민우회의 정합적인 세력화에 대체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직 구성원을 동원하는 독특한 방식과 리더쉽을 키워내는 조직 구조와 대중적 기반위에서 제도적 자원을 활용하여 지역정치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과정의 세력화를 보여주고 있다. 운동의 대중적 기반과 조직역량 그리고 제도권에 진입한 정치인과의 협력을 통하여 유기적으로 운동을 진행해 간점은 동북민우회가 참여민주주의와 생활정치를 실현하는 높은 수준의 세력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화 과정에서 운동가의 외부유출의 문제와 제도정치에 진입한 개인과 연계하는 구조가 미비한 문제, 제한된 이슈와 운동방식에 익숙해지는 문제의 부정적인 영향도 존재했다. 운동조직 외적 측면에선 지역운동단체의 외부적 환경인 제도정치권의 의지와 인식 없이 운동단체의 노력으로만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오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더 많은 운동참여자가 수평적 연대의 조직구조를 통해 이슈별로 대응할 수 있는 소모임이 그때그때 구성되는 구조를 통하여하며 더욱 다양한 이슈를 개발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자원을 동원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운동을 개발하고 지역정부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영향력을 키우는 일이 앞으로 동북민우회가 보완해야할 과제들이다. Since the 1990's social movements in Korea have developed in many ways. They have been specialized in organizing systems and mobilizing resources. Also they have developed many kinds of issues that are concerned with concrete democracy. The aim of social movements to evaluate democracy needs to increase power to the State and political society. So the social movements in Korea have tried to get power to influence the decisions of State and political through their development. These efforts of social movements can be called the progress of empowerment This study focuses upon the empowerment of Korean social movements since the transition to democracy. The empowerment of social movement pursue the concrete democracy through the development of power to decisions of the State and the political society. Empowerment can be accelerated through the process of institutionalization of social movement. However, institutionalization is not only precondition to empowerment and interactions between empowerment and institutionalization can be increase positive sum power. Meanwhile the local movements have been developed and underwent institutionalization at every level since 1991. The institutionalization of local movement can have different effects on democratic evaluation. Obtaining the institutional resources and chance to participate in politics have positive effect to increase empowerment. But there are also negative effects to shrink movements. From these perspectives, some questions are asked that the social movement has been fully empowered for concrete democracy in Korea; the institutionalization of social movement really helps the empowerment and development of democracy in empirical way. So the major concern of this study is what conditions for empowerment and institutionalization make democratic evaluation. This questions were pursued in a case study of Dongbuk Womenlink. The reason for selecting "DW" is as the site. It is well known as womens' social organization for local movement to strengthen life-politics and has good cases of cooperation between local movement organization, local citizen and local government that have served as a nation-wide model for democratic participation. So It is considered that DW have some preconditions for empowerment and institutionalization. The data used for the analysis include internal documents of DW organization, internet hompages and data collected through the in-depth interviews with members of DW, Analysis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The institutionalization of DW has both side of effect. Institutionalization gives chance to mobilize resources. The participation of individual activists in local institutional politics made local society to consider DW as important member of political society . Also cooperation with local government made partnership between local government and DW. Because the lack of government understanding about partnership the cooperation was restricted to empowerment. The DW's empowerments precondition at individual and organization level has unique and important meaning. Characteristic member mobililization made DW has democratic organizational system , popular support and many active participants. In this point DW has fully developed conditions of empowerment at organizational level.

      • 淸末民初女性解放運動硏究 : YUN,miyoung

        YUN,miyoung 北京師範大學 1997 해외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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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술변법시기의 여성해방운동>근대 의의상의 여성해방사상과 운동은 무술변법시기 사상계몽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여성해방사상과 운동은 근대자산계급의 계몽사상 중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강유위(康有爲), 양계초(梁啓超), 담사동(譚嗣同)등은 여성해방을 주장한 최초의 인물들이었다. 무술변법시기의 여성해방사상은 주로 부전족운동과 여학진흥 등에 집중되었는데 이것은 근대여성해방운동의 출발점이었다. 무술변법운동은 바로 '보국보종(保國保種)'을 목표로 한 애국주의 운동이었다. 유신파들은 중국여성의 신체와 사상해방 실현을 주장하면서 부전족운동, 여학설립과 <<여보(女報)>>출판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는데, 그 목적은 바로 부국강병을 위한 것이었다. 유신파들은 천부인권설과 진화론의 사상을 받아들여 여성문제를 국가·민족적 위기와 연결해서 일어났는데, 이는 선명한 애국주의 색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유신파들은 부전족운동과 여학진흥을 여성해방운동의 주요내용으로 삼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여성자신의 해방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2천년이란 봉건사회에서 속박과 억압을 당해온 여성자신들의 자립을 호소한 것은 무술변법시기의 중요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술변법시기의 여성해방운동은 민족을 구하려는 역사흐름 속에서 유신파들의 여성해방운동은 이후 여성해방의 흐름을 밝혀 주었던 것이다. <신해혁명시기의 여성해방운동>20세기 초는 근대중국사회에 커다란 변화의 시대였다. 이 시기는 민주혁명의 흐름 속에, 중국 2천여년의 군주전제체제의 막을 내리고, 중화민국 성립을 목표로 한 민족사상이 인민들의 가슴에 깊이 파고 들었다. 근대중국은 제국주의 쟁탈전의 대상이었으며 제국주의 침략군이 도처에서 잔인한 행동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의식이 점차 가중되어 국토 분할의 형세하에 중국여성들은 각성하기 시작했으며, "조국이 흥하고 망하는 것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에게더 책임이 있다" 또 "조국이 없으면 가정도 없고 자신의 해방도 없다."라는 의식하에 먼저 각성한 선진 여성지사들은 나라를 구하고자 전쟁등에 참여했다. 신해혁명시기의 여성애국 활동을 보면, 여성들은 자신들의 해방을 위해서는 먼저 국가를 구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해방은 국가의 운명과 같이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신해혁명 시기의 여성 혁명활동은 애국구민,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 만청왕조의 전복을 목적으로 한 '여자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신해혁명시기의 여성해방운동은 중국근대 반제애국운동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五四운동시기의 여성해방운동> 5·4운동시기의 여성해방운동은 무술변법과 신해혁명시기의 여성해방운동보다 더 발전되고 총결된 운동이었다. 5·4시기 여성해방운동은 2가지 방면에서 동시에 전개되었다. 각성한 여성들은 반제애국운동과 반봉건으로부터 자신의 자유를 구하고자 했다. 즉 애국운동 및 기타 정치투쟁에 참가함으로써 여성해방운동의 의의를 포함하려 했다. 여성은 반제국애국운동에 참가해서 당시 사회에서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변화시키고자 했는데, 이것은 여성들의 사회지위의 변화를 위한 필요조건 중의 하나였다. 반제애국투쟁의 참가와 여성해방 쟁취의 양자로 비록 동등하진 않았지만,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남녀청년들은 어깨를 나란히하여 전투에 참가하면서 사교의 기회를 가져 남녀평등을 위한 실천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 것이었다. 5·4운동시기의 여성해방운동은 무술변법에 시작된 여성해방운동에 있어 최고절정에 도달한 운동이었다. 총체적으로 볼 때 중국근대는 중요한 사건과 변혁이 많았던 시기였는데 여성들은 그때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이다. 혁명이 고조될 때, 여성운동 또한 고조의 열기를 띄었고, 당시 혁명이 좌절될 때에는 여성운동 또한 저조했다. 그러므로 중국근대여성해방운동은 독단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중국여성은 민족민주혁명에 참여하면서 사회변혁 가운데 자신의 해방을 획득하고자 했던 것이다.

      • 여성인권운동과 항쟁가의 관계에 관한 연구 : 제주도 <해녀의 노래>를 중심으로

        문효진 상명대학교 일반대학원 2023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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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해녀항일운동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거듭된 일제의 수탈에 대항한 제주 해녀의 생존권 투쟁이다. 강관순 선생은 야학을 통해 해녀들을 교육시켰을 뿐 아니라 부당한 처우를 위로하기 위해 <해녀의 노래>를 작사하였고, 이 노래는 90여 년이 지나도록 해녀들의 아픔을 공감하며 시대를 기록하는 노래가 되었다. 대한민국 최남단 섬인 제주도에서 해녀항일운동이 일어난 것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이다. 여성 1천 명이 넘는 대규모 항일운동은 역사적으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역사기록의 주체는 남성이었고, 항일운동의 주체는 하층계급으로 취급받던 ‘해녀’라는 ‘여성’이었다. 이율배반적으로 <해녀의 노래>는 일본 유행가의 곡을 차용한 점과 작사를 한 강관순 선생의 사회주의 운동의 행보로 인해 광복 이후 반갑지 않은 현대기록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도 1932년 제주도 해녀들의 항일투쟁이 있었다는 사실은 여성인권의 관점에서 연구가 필요하다.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운동이 결국 여성인권운동으로 확장된 점은 유래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의 객관적 지표를 위해 동시대 세계 여성인권운동의 배경과 항쟁가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지금까지도 전 세계 공식적인 자리에서 불리고 있는 영국의 <여성행진곡>(March of Women), 미국의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그리고 현재 불리지 않지만 <해녀의 노래>처럼 비밀리에 생존과 저항을 위해 불렀던 폴란드 트레블링카 수용소의 <트레블링카의 거짓말>(There Lies Treblinka)이 있었다. 일본의 <동경행진곡>을 차용한 <해녀의 노래>의 역할을 살펴보기 위해 동시대 대한민국의 문화적 배경과 항쟁가의 유입 흐름, 특별히 일본노래를 차용한 항쟁가를 살펴보았다. 유행가나 명곡 등을 개사해서 부르는 것은 당시 일반적인 사례였다. 항일목적을 가졌던 독립군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노래까지 차용해 독립군 군가로 불렀다. 4장에서는 제주해녀항일운동의 전반적인 배경과 강관순 선생 및 여성 항일운동가를, 5장에서는 <해녀의 노래>의 역할을 서술하였다. 항일운동 현장의 해녀들과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해녀의 노래>가 항쟁을 준비하며 미리 불렸고, 옥중에서 전달된 것은 추가된 4절임을 알 수 있었다. 끝으로 노래의 존재 목적과 가사의 중요성을 통해 항쟁가의 시대적 역할을 발견했다. 성공적인 인권운동 배경에는 ‘항쟁의 노래’, ‘저항의 노래’가 있었다. 본 연구를 통해 제주해녀항일운동과 성공적인 항쟁에 활용된 <해녀의 노래>를 폭넓게 재조명하여, 제주해녀항일운동에서 드러난 ‘여성’, ‘인권’, ‘노래’의 가치가 세계 여성인권운동의 대열에 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A Study on the Women’s Rights Movement and the Protest Song - Focusing on the <Song of Haenyeo> of Jeju Island - Moon, Hyojin Dept. of New Media Music The Graduate School Sangmyung University The Jeju Haenyeo Anti-Japanese Movement was a struggle for the right to live against repeated exploitation from Japan even before the Japanese colonial era. Kang Kwan-Soon wrote the <Song of Haenyeo> to comfort the unfair treatment as well as the education of Haenyeo through night school, which became a song of resistance that records the pain of Haenyeo for more than 90 years. It is a surprising historical fact that the contemporary anti-Japanese movement took place on Jeju Island, the southernmost island of Korea, and a large-scale movement of more than 1,000 women is unprecedented. At that time, the subject of the historical record was male, and the target was a "female” called "Haenyeo”, which was treated as a lower class. The <Song of Haenyeo>, which borrowed Japanese military songs which was a contradiction of interest, and the socialist movement and ideas of Kang Kwan-soon, who wrote the lyrics, are unwelcome facts in modern records after liberation. Nevertheless, since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in 1919, activists have been scattered across the country, and the anti-Japanese struggle for the rights of Haenyeo in Jeju Island in 1932 is a result of expanding to women's human rights movements. For an objective indicator of the Haenyeo Anti-Japanese Movement in Jeju Island, the background of the contemporary global women's rights movement and the role of protest songs were examined. I studied <There Lies Treblinka> of the Polish Treblinka camp, a song of resistance that has been secretly sung, <March of Women> in the UK, and <Bread and Roses> in the U.S.The cultural background of contemporary Korea, the flow of protest songs, and especially protest songs borrowed from Japanese songs were examined in order to understand the role of <Song of Haenyeo> which borrowed Japanese songs. It was a common example at that time to change and sing popular songs and masterpieces. Independent soldiers, who had a clear purpose of anti-Japanese, even borrowed Japanese songs familiar to us and sang them as our songs. Chapter 4 describes the background of the Jeju Haenyeo Anti-Japanese Movement, Kang Kwan-soon and female anti-Japanese activists, and Chapter 5 describes the role of <Song of Haenyeo>. Through the testimonies of Haenyeo and witnesses at the site of the anti-Japanese movement, it was found that <Song of Haenyeo> was sung in advance in preparation for the uprising, and what was delivered in prison was an additional four verses. Finally, through the purpose of the existence of the song and the importance of the lyrics, the role of the protest songs of the times was discovered. Behind the successful human rights movement were ‘Song of Uprising’ and ‘Song of Resistance.’ Through this study, I hope that the values of ‘women’, ‘human rights’, and ‘songs’ in the Jeju Haenyeo Anti-Japanese Movement will be included in the women's human rights movement in the world by extensively re-examining the Jeju Haenyeo Anti-Japanese Movement. Keyword: Jeju Haenyeo, Jeju Haenyeo Anti-Japanese Movement, Song of Haenyeo, Protest Song, Women's Human Rights Movement

      • 여성운동과 국가의 관계에 관한 연구 : 성폭력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운동을 중심으로

        김현정 이화여자대학교 199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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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여성운동이 국가와의 협상을 통해 전개되는 특성을 보인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여성운동이 매개될 때 국가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여성해방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이 한국 여성운동에 있어서 어떠한 합의를 가질 수 있는가를 검토하고자 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여성운동이 1990년대 이후 활발하게 전개한 법 제정운동인 국가를 대상으로 여성문제를 협상하는 주요한 방식이었다고 판단하여, 성폭력특별법과가정폭력방지법 제정운동을 중심으로 여성운동과 국가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하였다. 성폭력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운동은 1990년대 여성운동이 여성문제를 사회적으로 가시화시키는 데 있어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여성운동이 국가를 대상으로 여성문제를 어떻게 정치화하고자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여성운동은 어떠한 지형을 그리게 되는가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국가를 여성해방의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여성운동의 전략을 경험적 차원에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법 제정운동과 관련한 문헌자료 분석과 여성운동가와의 심층면접을 병행하였다. 심층면접은 법 제정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여성운동가를 대상으로 하였다. 문헌연구만으로는 여성운동이 국가와의 관계에서 안게 되는 긴장과 갈등, 모순들을 살펴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여성운동가와의 심층면접을 주요한 연구방법으로 설정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폭력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운동은 성폭력과 아내구타에 대한 여성주의적 시각을 확산시킴으로써 그 동안 남성중심적 시각에 의해 왜곡되거나 은폐되었던 여성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이는 여성들의 경험의 공통성에 근거하여 남성과 대비되는 '여성'이라는 범주와 정체성의 형성을 가시화시켰다. 둘째, 여성운동은 남성중심적인 공사분리의 원리가 여성문제를 사적인 것, 사소한 것으로 치부함으로써 성폭력과 아내구타를 방치하거나 조장한다고 비판하였다. 이에 여성운동은 강간, 성회롱, 아내구타 등의 남성 폭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고 확대시키면서 여성에 대한 남성 폭력의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전환시키고자 하였다. 셋째, 여성운동은 법 제정운동 과정에서 운동의 정당성과 대중성을 확보하고자 여성운동의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유보하거나 변형하는 상황에 처하였다. 그 결과 아내구타는 가정폭력이라는 중립적인 용어로 표현되었다. 이것은 법 제정에는 긍정적인 작용을 하였으나 아내구타 문제가 갖는 구조적 속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구성하지 못한 한계를 남겨두었다. 넷째, 여성운동은 법 제정운동 기간에 '남녀를 분리'시키는 여성운동, 가족과 사회의 안정을 파괴'하는 여성운동이라는 사회적인 비난과 저항에 부딪혔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로부터 여성과 자녀를 보호할 수 있다는 일반인들의 이해가 작용하여 성폭력특별법 1차 개정은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가정폭력방지법 역시 가정폭력방지법의 목적을 '가정해체 억제와 건강한 가정의 육성'에 초점을 둔 여성운동의 전략에 의해 법 제정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다섯째, 여성운동은 성폭력, 아내구타의 해결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법에 규정하고, 그것에 기초해 여성단체활동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합법화시켰다. 이로써 여성단체는 운동에 필요한 물적 자원을 확보하게 되었는데, 여성단체의 취약한 재정과 대중적 기반을 고려할 때 여성단체의 활동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국가의 지원이 합법화되면서 여성운동이 국가에 대한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그에 따라 여성운동의 자율성과 급진성이 퇴색할 가능성이 발견되고 있다. 이에 여성운동진영에서는 여성운동의 제도화와 자율성의관계에 관한 문제의식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국가를 여성해방의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여성운동의 전략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요청한다. 즉 국가를 활용하려는 여성운동의 실천이 오히려 여성운동의 발전을 제약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운동의 성공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논쟁적인 과제가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성운동이 자기방향성에 대한 확고한 토대 하에 가부장적 질서에 저항하고 도전하는 여성운동으로 전개될 때 비로소 국가를 활용하려는 여성운동의 실천이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A distinguishing characteristic of the Korean women's movement in the 1990s is that it developed through negotiations with the state. Therefore, this study examines some feminists' views that action of the women's movement has the power to change the nature of the state and utilize the state for solving women's issues. This study also discusses that what their views mean to the Korean women's movement. Seeing that the movement for the legislation was the main method for negotiating with the state since 1990, I explore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women's movement and the state through the legislation movement of the 「Act on the Punishment of the Sexual Crimes and Protection of Victims thereof」and 「Prevention of Domestic Violence and Victim Protection Act」. I also felt that the women's movement in the 1990s made the women's issues more visible through the legislation movement of these two Acts. This study examines how the women's movement made women's issues a political agenda for the state, and how this effected the women's movement and women's organizations. I also examined the strategy of the women's movement to utilize the state as a place to free women. In doing so, I used literature analysis and in-depth interviews with women activists who had been related directly or indirectly to the legislation movement. Because there are limits with literature analysis in exploring which contradictions, troubles, and tensions that the women s movement was faced during the legislation movement, I employed in-depth interviews as a main method. The outcome of this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rough these two Acts the women's movement raised social consciousness of the feminists' view of the experiences of women who were sexually violated or battered by men. These experiences had previously been distorted or concealed due to a male-centered viewpoint. As a result, women's experiences became 'things that exist socially' and the women's identity became visible socially based on the commonness of women's experiences. Second, the women's movement criticized that the patriarchal distinction of what is public and private degraded women's issues as a 'private' and 'trivial', thereby neglecting or fostering sexual violence and wife battering. The women's movement call for and increased the state intervention on male violence such as rape, sexual harassment, and wife battering. In doing so, women's movement attempted to change violence against women into a social problem. Third, the women's movement reserved and modified the ideology of the movement in order to gain popularity and legitimacy. As a result, wife battering was given the neutral term 'domestic violence'. This had a positive influence on the legislation of the bill, but resulted in an inability of asking the patriarchal nature of wife battering. Fourth, the women's movement was confronted with a backlash of patriarchal discourses, such as 'the women's movement separates woman and man' and 'the women's movement destroys the stability of the family and the society'. But the women's movement got legislation by conforming to the interest of the patriarchal society. Finally, the women's movement legitimized the financial support by the state by making into law the state's duty and role in the prevention of sexual violence and wife battering. As a result, women's movement was able to obtain the financial resources needed by the movement. When the meager budget and popularity of women's movement are considered, it is clearly a positive contribution to the stabilization of the movement. But after financial support by the state was legitimized, the degree of reliance on the state by the women's movement was increased. As a result, the possibility of losing their autonomy and radical ideology was discovered. And so the problems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institutionalization and autonomy is becoming a major issue inside the women's movement. These results show that there need to be a close examination of the strategy of the women's movement, which intends to utilize the state. It is necessary to examine if the women's movement's practice of utilizing the state may restrict the development of the movement, and how we are able to estimate the success of the movement. What is sure is that only when the women's movement develops based on a firm foundation in line with the direction of the movement, does the strategy of utilizing the state become meaning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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