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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주제 : 고전여성문학의 연구사적 전환을 위하여 ; 근대계몽기 가정학의 번역과 수용 -한문 번역 신선가정학(新選家政學) 의 유통 사례-

        임상석 ( Sang Seok Lim )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13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Vol.0 No.27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논문은 조양보 에서 가정학 교과서를 번역하여 연재했음을 학계에 최초로 보고했으며, 번역의 저본이 된 한문 번역본의 역자가 중국인 일본유학생 단체인 작신사(作新社)임도 밝혔다. 이 한문 번역본의 다양한 유통 과정을 조명하여 저본 대비를 통해 근대의 새로운 지식이 번역되어 다양하게 수용된 경로를 조명했다. 시모다 우타코의 신선가정학 을 한문으로 번안한 작신사의 가정학교과서는 계몽기의 한국에서 다양하게 수용되었으며 이는 시대적 전환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리고 그 번안의 과정에서 드러난 가정(家政)에 대한 한중일의 인식 차이는 재고할 여지가 많다. 또한 조양보 , 호남학보 연재본 및 현공렴 발행본 등, 다양한 판본 사이에 드러나는 번역 양상의 차이는 근대 지식을 번역하고 수용하던 계몽기 당대의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충분하다. This paper is the first report in Korean academic world informs the translation of home economics textbook in Joyangbo, magazine in modern enlightenment era and also determines co-working translaters, the Society of New Rise, Chinese abroad students academy as Joyangbo translation`s original script, Chinese translate edition of Newly Edited Home Economics by Shimoda Utako. The Chinese translated edition of Shimoda`s textbook is widely circulated in Korean modern enlightenment era. The process of translation and circulation reveals cognitive differences about home economics among Korea, Japan and China. In addition, diverse publishing texts, textbooks and serials in magazine, Joyangbo and Honamhakbo present the live Korean adoptional scenery of modern sciences in enlightenment era.

      • KCI등재

        근대 지식과 전통 가치의 공존, 가정학의 번역과 야담의 번안 및 개작

        임상석(Lim, Sang-Seok)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6 코기토 Vol.- No.79

        이 글은 현재까지 학계에 소개되지 못한 『가뎡잡지』2년차 발행분을 발굴하여, 1호에서 7호까지의 전반적인 상을 제시했다. 이 잡지의 전반적 편집 방향은 근대 지식과 전통 가치의 공존이라 할 수 있다. 4호 이후부터 편집인 신채호보다 총무 변일(卞一)의 영향이 강화되면서 전통 가치와 관계된 기사가 강화된 현상도 밝혔다. 가정학, 국어학 등 분과학문의 체계적 전달과 함께 전통적 야담이 번안내지 개작되어 같이 실리면서 근대 지식, 이념과 봉건적 가치가 공존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가뎡잡지』는 근대국가의 장에 본의 아니게 끼어든 한국에서 벌어진 가치의 충돌을 생생하게 중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근대적 가정학의 번역과 전통야담의 개작이 큰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여성교육을 강조하면서도 남녀유별을 지켜야 하는 훈령을 게재하고, 같은 지면에서 개가와 수절이라는 상충하는 두 가지를 동시에 현창하는 등 대한제국이라는 과도기를 현장감 있게 보여주는 자료이다. 그리고 『단재신채호전집』에 수록되지 못한 신채호의 기사를 발굴하여 소개하였다. I discover the missing issues of Home Journal’s 2nd year’s publication and represent its overall aspects. Its editorial direction can be defined as the comprise of modern learning and traditional moral. Also I argue that its eclecticism is strengthen due to the widening influence of Byeon Il, its manager, over its editor, Sin Chae-Ho after the 4th issue. Along with the systemic delivery of modern sciences such as home economics and Korean linguistics, the adaptation of traditional yadam(野談) is appeared in series so, modern learning and feudal moral are combined in it. For the coexistence of modern learning and traditional morals in Home Journal, the adaptation of Japanese home economics textbooks and traditional yadam. Therefore, it lively transmit the transitional period of Daehan Empire, being the member of modern world against own will. For example, the official instruction, publicizing the practice of women education have to preserve the traditional moral, the distinction between sexes.

      • KCI등재

        통감부(統監府) 치하(治下) 문명담론(文明談論)의 한 사례 - 한치유(韓致愈)의 「태극학회총설(太極學會總說)」과 「고학회설(告學會說)」 -

        임상석 ( Lim Sang-seok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2018 어문연구(語文硏究) Vol.46 No.3

        이 글은 1905년 보호국 체제의 성립과 함께 일본공관 참서관을 하다가 일본유학생 감독으로 임명되어 활동한 한치유가 태극학회의 기관지 <태극학보>의 1호에서 8호(1906.08-1907.03)까지 연재한 「태극학회총설」과 「고학회설」을 개관하고 분석하였다. 이 두 글은 漢文 古文 형태이고 四端과 五倫을 불변의 이치로 강조하나 결론은 지방자치와 의무교육, 의회정치 강화이고 기독교와 조상 제사의 조화를 주장하는 등, 동서의 절충을 내세운다. 여성의 등용과 예법의 교체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논해 문화사적으로도 주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문명담론은 국문인 한글로 이루어져야 하는 의무교육과 지방자치를 최우선의 과제로 설정하면서도 한문 문어체의 외피에 갇혀 그동안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글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漢學 지식인들이 국문의 필요성을 먼저 인지하고 한문으로 국문의 이념을 주장하던 보호국-통감부체제라는 과도기를 파악하기 위해 꼭 검토되어야 하는 논설이다. This paper is the review of Han Chi-yu's Introduction of Taegeuk Society and Treatises for Taegeuk Society published serially in Taegeuk Society Monthly from 1st to 8th. Han is transferred from the councilor of Korean legation in Japan to the supervisor for aborad students in Japan, just after the establishment of protectorate system in Korean Empire, and formerly a Songgyunkwan professor, the member of Independence Club and the councilor of Korean legation in U.S. Because he actively studied English and the western academics on politics and history during his stay in U.S, he was one of few intellect who can consider between classics in literary Sinitic tradition and the western sciences at that time. As the result of his own understanding for the negotiation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two articles in literary Sinitic, are traditional style, having lots of references from Confucian cannons, history classics and Daoist cannons such as Zhuangzi, but conclusions and solution for contemporary Korean crises are mainly imported methods such as mandatory education, provincial self-government and the enhancement of parliament. Despite his firm belief for traditional fundamental value, Five Relationships[五倫] and Four Clues[四端], he debates the promotion for women and seeks the consent between Christianism and Confucian ancestral rites. Therefore, Han’s articles are one of the representative example of civilization discourses in Residency General era and clearly present the transitory linguistic aspects of the era, in that, notwithstanding his lack of Hangeul writing ability, he strongly asserts mandatory education which is had to be based on Hangeul, the national Korean language, as primary task with his literary Sinitic traditional genre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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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와라 마고이치(俵孫一)의 『한국교육의 현상』과 대한제국기 논설

        임상석(Sang-Seok Lim)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22 동양한문학연구 Vol.62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글은 통감부 학부 차관 다와라 마고이치가 총독부 설립 직전에 발간한 『한국교육의 현상』과 『한국교육의 기왕 및 현재』를 대한제국기 한국인의 논설과 비교하여 한국 계몽운동에 대한 일제 교육정책의 대응양상을 파악해 보았다. 다와라는 일제 교육정책을 입안했으며 총독부 설립 이후 토지조사 정책까지 담당해 일제강점의 근간을 구축했다. 그가 가장 불온한 것으로 간주한 상무교육 강조, 의무교육 청원 및 정치 활동과 교육의 결합은 당대의 한국 언론과 학교에서 두루 나타나는 현상이었으며 그 대표적 사례로 「20세기 신국민」을 비교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다음의 다섯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다와라의 주장에 따르면 1909년과 1910년의 짧은 기간 동안 통감부의 제도권 교육의 성과가 비약적으로 증대했고 이는 총독부 설립에 한 배경이 된다. 둘째, 일제 교육정책은 조직적 통계 조사를 광범위하게 실시하고 이를 설득의 논거로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기왕 및 현재』가 일인 교원과 관료의 내부단속 성격이라면 『현상』은 한국인 고위 관료 및 일제 부역인사들에 대한 홍보의 성격도 가진다. 셋째, 학교와 언론에서 적극적으로 진행된 한국의 계몽운동을 면밀하게 조사하였으며, 권위주의적인 외면 아래 피보호국의 계몽운동에 대해 관료조직을 동원해 능동적이고 치밀하게 대응하고 있다. 넷째, 학부 차관 다와라가 토지조사원 과정을 학교에 위탁 과정으로 설치하고 총독부 설치의 직후 직접 토지조사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점은 통감부 교육의 식민적 성격을 집약한 사례이다. 다섯째, 통감부 시대 일제 교육정책은 국민교육을 내세우면서도 국가와 애국을 회피할 수밖에 없는 이율배반의 성격이다. 『현상』은 한국 계몽운동이 극복하거나 적응해야 하는 가장 큰 현실적 조건이 집약적으로 나타난다는 점과 자본주의의 생리와 현실을 전파한다는 점에서 한국 계몽을 파악하기 위한 주요한 자료이다. In this paper, I compare 『the Condition of Korean Education』 and 『the Past and the Present of Korean Education』 by a vice-minister of education ministry, Dawara Magoichi in the Residency General Era with Korean Empire texts about education to grasp Japanese colonial policy response upon Korean Enlightenment movement. Two books are published on the eve of the establishment of Government General Korea and their author, Dawara, the designer of colonial education policy and land investigation is the one of fundamental officials in Japanese colonial ruling. In them, he calls the most seditious three issues, the first is the education provoking military spirit; the second is the demand for obligatory education; the third is the political activity in schools and students, all three are frequently highlighted in Korean media and educators. I compare Dawara's books with New Nations in 20th Century, the representative editorial in Korean Empire Enlighten movement and I can present five issues. The first: according to Dawara, from 1909 to 1910, the outcome of the Residency General's official education is enlarged swiftly and it can be background factor for the establishment of Government General Korea. The Second: Japanese Colonial officials adopt statistical research by bureaucratic organization to publicize their righteousness and regulate colonized Koreans. The third: they closely inspect Korean enlightenment movement in media and schools so, amid in the authoritarian surface of Dawara's rhetoric, active bureaucratic maneuvers can be exposed. The fourth: Japanese education policy in Korean Empire era is thoroughly for the sake of colonial ruling in that Dawara, the official of Education Ministry founded commissioned education courses for colonial land investigation in official schools and is transferred to vice-president of land investigation department in Government General Korea afterward. The fifth: it is the kind of antinomy in that its national education is avoiding the mention of state and patriotism. Dawara's books are essential references to understand Korean enlightenment movement in that they are the combination of its conditions to overcome and their propaganda is based on capitalistic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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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대 초, 한일 “실용작문”의 경계

        임상석 ( Sang Seok Lim ) 민족어문학회 2010 어문논집 Vol.- No.61

        1910년대의 한국은 아직 근대적 글쓰기가 확립되지 못한 상황이다. 계몽기의 국한문체와 마찬가지로 한문의 역할이 중요했는데, 한문은 식민지 교육 정책에 있어서 동화를 호소할 수 있는 강력한 이념적 매개체인 반면 구체적인 글쓰기 습관에서는 오히려 일본과의 언어적?문화적 동화를 방해하는 효과도 있었다. 한문은 이처럼 한일의 언어, 문화적 상관관계에서 이율배반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다. 이 양상을 탐구하는 주요한 자료로서 『실용작문법(實用作文法)』이라는 같은 이름을 달고 한국과 일본에서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두 작문교재를 비교분석한다. 이 두 책에서 드러나는 한일 실용작문의 거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재고할 가치가 있다.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어문교육은 일본식의 혼용문을 이식하려 했으며, 한국의 한문전통은 이에 대한 장애가 되었다. 한편, 한문에서 벗어난 글쓰기는 식민지 정책뿐 아니라, 민족주의적 지향을 가진 한국 지식인들도 시도하고 있었다. 일종의 언문일치를 위한 노력인데, 그 전범으로는 일본의 글쓰기와 문체가 강력한 참고사항이었다. 민족을 명분으로 삼은 언문일치의 지향이 결국 식민지적 동화의 예비 단계로 전환할 여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던 셈이다. 조선총독부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한국의 지식인인 이각종의 『실용작문법』은 1910년대 식민지적 교육/언어정책에 대한 하나의 주요한 자료이면서, 한편으로 한일 언어 관습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일본 메이지 시대 말기의 지식인인 쿠보 토쿠지의 『실용작문법』이 언어통합을 어느 정도 이룩한 언문일치 성향의 혼용문을 바탕으로 서구의 어학과 수사학을 한문전통 및 일본의 어문전통과 절충하는 성격이었다면, 이각종의 『실용작문법』에 제시된 당시 한국의 글쓰기는 국한문체의 비중이 높지만 한문과 국문으로 계층화된 전근대적 언어질서가 유지된다. 실용작문의 기치 아래, 일본의 작문교재에서는 한문의 위상이 하락했지만, 한국의 작문교재에서는 한문은 그 위상과 비중이 아직 컸던 것이다. 그러므로 후자에서, 수사학이나 어학 등의 서구적 학지는 실제 작문의 원리에 구체적으로 응용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실용작문법』은 총독부 발간 교과서가 추구한 일본의 혼용문체에 기반을 둔 “조선어” 글쓰기가 아직 당시의 한국에는 시기상조였던 것도 보여준다. Since Korean composition and rhetoric were in transitional stage in 1910s, Classical-Chinese was, still, the core of styles. Meanwhile, in the advance of educational policy and language planning from Joseon Government General, the role of Classical-Chinese in Korean writing was fortified in 1910s. Classical-Chinese was the significant medium for assimilating propaganda but in practical composition and language education, due to the differences of traditional writing systems between Korea and Japan, it was the obstacle for the adoption of Japanese styles to the colonial education in 1910s` Korea. To represent the argumental feature of Classical-Chinese concerning 1910s` linguistic transition in Korea and the interference of colonial language planning from Joseon Government General, Practical Composition, having exact same title and published almost at same time with 5 years interval, are stimulating rhetoric manuals. In addition, they reveal the cultural differences between Korean and Japan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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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중등교육용 조선어급한문독본의 조선어 인식

        임상석(Lim, Sang Seok) 동악어문학회 2011 동악어문학 Vol.57 No.-

        조선총독부의 조선어 및 한문 과목의 교과서는 보통학교, 중등학교용 - 고등보 통학교와 여자고등보통학교용으로 종류가 다시 구분됨 - 으로 나누어 출판되었으며, 한국과 동아시아의 급박한 정세를 반영하듯 여러 차례 전면적으로 수정되었다. 조선총독부의 제1차 교육령을 따른 1913년판 『고등조선어급한문독본』, 제3차 교육령을 따른 1924년판 『신편고등조선어급한문독본』, 제4차 교육령을 따른 1932년판 『중등교육조선어급한문독본』이 비교적 짜임새 있는 구성을 갖추고 있어 연구 대상으로 적절하다. 『신편독본』의 번역은 주로 일본어 저술을 저본으로 하였는데, 한국의 한문 전적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그 번역의 양상을 통해 당대 일본어 문체를 기준으로 식민지 조선어를 정책적으로 구성하려 했던 것이 드러난다. 또한 교과서의 개정에 따른 조선어에 대한 인식 변화가 나타난다. 1910년대의 『고등독본』에서 조선어는 일본어와 한문을 보조하는 위상으로 당대의 언어적 수요를 거의 반영하지 않은 위상이었다면, 1920년대의 『신편독본』에서 조선어는 주로 일본어에 대한 번역의 수단이기는 하지만,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제한적으로나마 담을 수 있는 위치로 위상이 달라진다. 그리고 1930년대의 『중등독본』에서는 제한적이나마 창작과 저술의 매체로 한 단계 더 올라선 셈이다. 조선어 인식의 변화는 결국 총독부 교육/언어 정책의 지향이 수정되었음을 보여주는데, 이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정치, 사회, 문화적 배경에 대한 역사적 분석과 연구가 더 필요할 것이다. Joso?n Government General's textbooks are frequently edited according to the transformational political and cultural contexts of colonial Korea. Among them, I focused on the translation and styles of 1920's New Edited Reader of Classical Chinese and Korean. Through its translational processes and diverse styles, the aspects of Joso?n Government General's language planning for colonial Korean are revealed. Unlike 1910's reader, positioning Korean as ancillary administrative medium or translational utility for documents in Classical Chinese and Japanese, 1920's new edited reader's Korean contains cultural and historic contents. However, Korean of 1920's reader is mainly guided by translation of Japanese texts. At 1930's reader, its Korean includes Korean writing by contemporary Korean writer at that time. Therefore, the transform of Joso?n Government General's textbooks reveals its transitional language pla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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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고전번역의 경계와 시대사 구분에 대한 시론

        임상석(Lim, Sang-seok)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9 코기토 Vol.- No.87

        이글은 한국 고전번역의 현황과 한국어사의 준거가 될 수 있는 고전·번역의 가능성을 논하면서 한국 고전번역 연구의 시대 구분을 시론으로 제시하였다. 그 제도적 현황을 고전번역 연구와 교육의 중심 국가기관인 한국고전번역원을 중심으로 검토하여, 고전번역이 한국어의 지평을 확장하는 성과라는 점을 논했다. 한국어의 역사에 고전과 번역이 경계를 가르는 준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구어보다 문어, 곧 서기 체제를 중심으로 삼아 한국어의 현대화 과정 및 한국어사의 하위 시대 구분을 구상한 연구가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한국어 현대화의 핵심은 고전어 한문의 해체 과정으로 이는 번역과 유사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표기 체제와 문자의 변천과 국가 체제의 근거가 된 고전의 성격이 전환된 과정을 연동한 한국 고전번역의 시대 구분을 시론으로 제시하고, 이를 음운론, 국어사 등 어학의 방법론을 적용한 한국 번역사와 비교해 논했다. 고전번역 연구는 번역의 역사적 조건과 배경을 고찰하여 실용에 치우칠 수 있는 번역학을 보완하고, 고전의 현실적 수용에 착목하여 고전 원전을 근본으로 하는 고전학의 차원을 넓힐 수 있다. I debate the current state of Korean Classics translation and its academic potentiality as criteria for history of Korean language in this paper. Moreover I attempt to provide periodization Korean Classics translation history. About institutional aspects of Korean Classics translation, I review the national institution,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and I argue its translation achievements should be the enhancement for the prospect of Korean language. Hence, historical aspects about classics and translation can be criteria for Korean linguistic history. From Korean Empire era to Japanese colonial era, linguistic dissolution of Classical Chinese phrases in Korean-Chinese mixed styles, which is similar to translational phases, is the main indicator for the modernization of Korean language. Therefore, linguistic sub-divisional periodization in Korean language mainly based on written language and ecriture system instead spoken language, can be possible in this eras. In that I attempt to suggest the periodization of Korean classics translation, based on the transition of ecriture system and classics provided the fundament for national culture and compare it with a Korean history of translation which is composed of linguistic branches such as phonemics and linguistic history. Since classics translation studies is the research of historical condition of translation, it can complements the translation studies of current university’s department in Korea. Also, as the methodology for the practical application of classics, it can enlarge the dimension of the 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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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李光洙)가 이보경(李寶鏡)이나 ‘외배’이던 시절 - 한국어(韓國語) 글쓰기의 한 기원에 대하여-

        임상석(林相錫) ( Lim Sang-seok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2019 어문연구(語文硏究) Vol.47 No.3

        이 글은 이광수의 1908년부터 1910년대에 이르는 글들-이보경(李寶鏡)이나 외배의 이름으로 게재했던 문장들을 중심으로 한국 소설 및 한국어 글쓰기의 한 기원이 형성된 과정을 再構하려 했다. 10대 후반의 이광수는 한문전통을 수사법의 일부로 포함한 계몽기 국한문체를 연마하였으며 이 결과는 <태극학보>, <대한흥학보> 등의 일본유학생 잡지에 수록되었다. 이보경의 이름으로 게재된 이 국한문체 논설들은 계몽기 국한문체의 대표적 작가인 신채호의 그것과 유사한 양상을 나타내어 그의 多重的 작문 수련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최남선의 新文館 창립으로 인해 한문전통에서 더 자유로운<少年>과 <靑春> 등의 지면이 제공되었으며, 이광수는 여기서 비로소 국문 위주로 자기 내면과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새로운 한국어 글쓰기를 선보이게 된다. 그리고 <소년>과 <청춘>의 작품들이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 『無情』으로 종합되었다. 그리고 『무정』의 성과가 「民族改造論」이라는 대안의 부재로 이어진 과정을 애국주의자를 자처한 이광수가 한국의 대표적 고전인 「許生傳」을 재창작한 양상을 통해 논해 보았다. This paper is the review of transitional Korean Writing from 1908 to 1910s, focusing on Yi Kwang-su’s works, published under Yi Bo-kyeong or the pen name, a Sole Boat. From his late teens, as a result of practicing Korean-Chinese writing skills including Classical Chinese rhetorics, he can publish some articles in journals of Korean abroad students association in Japan such as Taegeukhakbo and Daehanheunghakbo, that have editing directions limited by Classical Chinese tradition. In these articles under his real name, Yi Bo-kyeong, he demonstrates rhetorics similar to Sin Chae-ho, the representative writer of Korean-Chinese mixed scripts in Enlightenment era. With the inauguration of Choe Nam-seon’s Sinmungwan, the media, liberated from Classical-Chinese rhetorics, such as Sonyeon and Cheongchun are provided to Yi and he can exhibit new Korean writing showing vivid inner-self and trivial every day lives. His practice of new Korean writing in Sonyeon and Cheongchun is synthesized in Mujeong, the milestone of Korean literary history. However, the outcome of Mujeong instantly transforms into Minjokgaejoron’s absence of alternatives and this paper attempts to offer the clue to this transformation through the review of re-writing Heosaengjeon, the significant Korean classic, which Yi should treasure as the self-proclaimed patri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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