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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申維翰의 통섭적 사유방법과 문학세계

        심경호 근역한문학회 2009 漢文學論集 Vol.28 No.-

        Sin Yuhan was born of a poor family. Though his ability was acknowledged through the state examination, he remained to be a minor official during his lifetime. But he accepted various theories from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and expressed his thinking through literal works. He lived during the period when there existed lots of distinctions between Seoul and local places, and when party dispute was driven to extremes. He wrote Mokmyeoksangi(木覓山記) to criticize the social abuse caused by distinctions between Seoul and local places and disputation of parties. Before anything else he himself was a victim of that social abuse. But he did not only deplored the situation. He developed his own literary theory and expressed his liberal mind through literal works. (1) Sin Yuhan tried to synthesize classified sects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with the way of thinking, geyi(格義). That is the reason why his thought can be recognized to be confucianistic, buddhistic, and at the same time taoistic. (2) Sin Yuhan’s writings are for the most part hard to be understood because he imitated the style of pre-Qin dynasty period. While he rejected the literature as the representation of morality or the literature of eight great masters of Tang and Song dynasties, he asserted his own viewpoint of literature and acknowledged the variegated nature of literature. In this treatise I examined Mokmyeoksangi(木覓山記) and Sihanjeonggi(是閑亭記). (3) Sin Yuhan did not valued rules of versification but valued tianji(天機) which means the operation of natural human mind. He emphasised that every scene and feeling can be an object of poem. It means that his poetic intention had a extensive tendency. It was only possible for those who pursued a extensive research. 신유한은 한미한 가정에서 태어나 과거를 거쳐 재주를 인정받아 말단의 관직을 전전했다. 하지만 그는 유교, 불교, 도교를 고르게 수용하면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고를 다양한 시문으로 표출했다. 신유한이 처하였던 시기는 서울과 지방의 차별이 크고 또 당파간의 이해가 엇갈려 서로를 배척하는 등 인재등용이 올바르지 않았던 때였다. 그렇기에 신유한은 남산에 올라 서울의 전모를 바라보다가 인재를 등용함에 서울과 지방의 차별을 두고 또 당파로 나뉘어 배척하는 폐해를 비판하면서 「木覓山記」를 적었다. 그 자신은 바로 시대의 희생자였다. 정약용이 그의「해유록」에 대해 부당한 비판을 한 것도 실은 신유한이 한미한 출신이었다는 점을 의식하여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신유한은 시대를 한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사유와 문학의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고 활달자재한 정신세계를 열어보였다. (1) 신유한은 이를테면 불교이론가들이 구사한 格義와도 같은 사유방법으로 제 종파를 통섭하려 했다. 그렇기에 그의 사유세계는 유교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불교적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또 노장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신유한이 불교를 승인한 점은 두 가지 관점에서였다. 하나는 불교가 만인에게 성불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 유교에서 만인이 성인으로 되고자 하는 참 공부를 소홀히 하는 점을 암암리에 비판했다. 한편 신유한은 「장자」에서 有意에서 벗어난 幻의 가치를 중시했다. 그는 특히 「莊子盜跖篇後題」에서, 장자의 蝴蝶夢을 끌어와서 有意를 벗어난 幻의 가치를 중시하여, 『장자』를 읽는 제3의 독법을 제시했다. (2) 신유한은 산문의 行文에서 선진시대의 문체를 모방하여 擬古文의 난삽함을 자주 드러내었다. 그런데 그는 문장에서 義理之文과 唐宋八家文을 배격하고 독특한 문체관을 피력하는 한편, 작문의 자율성을 인정했다. 실제 산문에서는 紀事․紀言․紀物을 균형 있게 포치했으며, ‘儒家誨人語’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세속을 우려하고 정신의 자유를 추구하려는 깊은 뜻을 산문에 가탁했다. 본고에서는 「木覓山記」와 「是閑亭記」를 살펴보았다. (3) 신유한은 시의 規矩와 格律, 聲容과 色澤을 중시하지 않고 天機를 높이 쳤다. 그는 「杜機詩選敍」에서 作詩를 정의하여 ‘진실한 정경을 채집하는 놀이(采眞之游)’라고 했다. 신유한은 특히 장편을 지어, 산문에서처럼 紀事․紀言․紀物의 법을 얻은 史體를 응용했다. 신유한은 인간세상의 무한한 臭氣와 무한한 光景이 모두 시적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그의 시의식이 ‘확산형’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러한 확산은 관념이나 이념에 사로잡혀 ‘탐구의 학’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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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程門 중용 주석의 신비화 경향에 대한 주자의 비판

        주광호 근역한문학회 2022 漢文學論集 Vol.61 No.-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track and analyze Zhuxi’s criticism of The tendency to mystify of Cheng School’s Zhongyong Comments and to investigate its historical meaning. In his book, Zhuxi extensively cites the perspective of the Cheng school. For this reason, the continuity of the Cheng-Zhu series is generally recognized. However, tracking the formation process of Zhuxi's Study of Four Books, it can be easily confirmed that he actively criticizes the commentary of the Cheng school. And the content of the criticism is mainly about ‘heresy’ or ‘Buddhism’. In the commentary on Zhongyong of the Cheng School, what Zhuxi criticizes is mainly about the tendency to mystify, internalize, and indifference to norms. Zhuxi’s criticism of the trend of mystification means that the commentator of the Cheng school conceptualizes the everyday and common sense contents of Zhongyong as too difficult. This is particularly linked to the trend of internalization of Daonan School(道南學) and Hushang School(湖湘學) to find and secure inner morality. All attempts to find transcendent morality regardless of everyday reality are not consistent with the essential character of Confucianism. 이 글은 程門의 중용 주석에서 보이는 신비화 경향에 대한 주자의 비판을 추적 분석하고, 그 사상사적 의미를 구명하는데 목적이 있다. 주자는 자신의 사서장구집주 에서 정문의 관점을 대대적으로 인용한다. 이 때문에 程朱 계열의 연속성이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주자 사서학의 형성과정을 추적해보면, 그가 오히려 정문 주석을 적극 비판한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비판의 내용은 주로 ‘이단’ 혹은 ‘불교’라는 것이다. 정문의 중용 주석에서 주자가 비판하는 내용은 주로 신비화 경향과 내면화 경향이다. 여기서 신비화 경향에 대한 비판이란 정문 주석이 중용 의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내용을 지나치게 어려운 것으로 관념화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특히 내면의 도덕성을 찾아서 확보할 것을 주장하는 도남학과 호상학의 내면화 경향과 연결된다. 주자는 정문의 이러한 경향을 불교와 비슷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이단’이라고 비판한다. 일상의 구체적인 현실을 떠나 초월적인 도덕성을 찾으려는 시도가 모두 유학의 본질적인 성격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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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재(盅齋) 최숙생(崔淑生)의 삶과 시세계(詩世界)

        권혁명 ( Kwon Hyok Myong ) 근역한문학회 2021 漢文學論集 Vol.58 No.-

        본고는 충재 최숙생의 삶과 시세계를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장에서는 최숙생의 생애를 살펴보았다. 최숙생의 생애에서 주목되는 것은 뛰어난 文才와 ‘直道而行’의 삶의 태도이다. 최숙생의 관직이 삼사에 집중되어 있고, 사은표 작성의 일인자였으며, 能文人으로 주청사에 의망되었던 것, 당대나 후대의 문인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문학 등은 최숙생이 뛰어난 문재의 소유자였음을 의미한다. 최숙생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서 군주 앞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直道而行’의 삶의 태도를 견지하였다. 이는 정치현실에서 강직하고 과감한 公道 수행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예컨대 기묘사림들의 개혁정치의 일환인 현량과 실시를 강력히 주장한 것, 대사헌 때 무녀와 승려들을 도성 밖으로 퇴출시키고 제도를 어긴 사대부의 집을 색출하여 간가를 철거한 것, 충청도 관찰사 때 청탁을 뿌리치고 청양부사 이세정을 파직시킨 것 등이 이에 해당된다. 3장에서는 최숙생의 시세계를 살펴보았는데 다음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첫째, 節操를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의식이다. 최숙생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서 군주 앞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절조를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의식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둘째, 聖代에의 기대감 표출이다. 최숙생은 갑자사화로 유배살이를 하던 중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홍문관 응교로 중앙관직에 복귀하게 된다. 이후부터 기묘사화 이전까지 삼사 중심의 관직을 역임하며 우찬성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종에 대한 기대감은 聖代에의 기대감으로 표출하게 된다. 셋째, 관직생활의 어려움 토로와 은거지향이다. 관직생활의 어려움은 주로 충청도 관찰사 시절에 지은 시들에서 보이는데 자료의 부족으로 구체적인 이유는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당대가 남곤, 심정, 홍경주 등 훈구세력들이 주도하는 세상이었고 최숙생이 병으로 고생한 정황이 보인다. 이러한 복합적인 원인으로 최숙생은 관직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정치현실을 떠나 은거하고자 하는 지향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This paper aims to reveal the life and Poetry of Chungjae Choi Sook-saeng. To sum this up, it is as follows: Chapter 2 examines the life of Choi Sook-saeng. What draws attention in the life of Choi Sook-saeng is the outstanding literary talent and the attitude of life in 直道而行. Choi Sook-saeng’s outstanding literary talent is evidenced by his well-received literary achievements by critics. 直道而行 is to practice what you think is right. Based on this, Choi Sook-saeng fulfilled his duties as a public official by keeping his beliefs. Chapter 3 examines the Poetry world of Choi Sook-saeng. There are three main themes. First, I want to live by keeping my Integrity. This comes from the attitude of Choi Sook-saeng’s life to live up to his conviction. Second, he expressed his expectation that Taepyeongseongdae would come. This is because expectations for King Jungjong were turned on. Third, I tried to live in hiding after expressing the difficulties of living in government office. This was because it was a time when the Hun-gu faction took power, and Choi Sook-saeng also had a disease. These things worked in a combination, so Choi Sook-saeng expressed the difficulties of living in government offices and tried to live in hi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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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둔헌(遯軒) 임병찬(林炳瓚)의 불굴(不屈)의 의기(義氣)와 낙관(樂觀)의 시세계(詩世界)

        김창호 ( Kim Chang-ho ) 근역한문학회 2020 漢文學論集 Vol.55 No.-

        이 글은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에 활동한 관료이자 의병장인 遯軒 林炳瓚의 시세계를 고찰한 것이다. 임병찬은 1906년 勉菴 崔益鉉과 함께 泰仁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일제의 한국강제병합 이후에는 대한독립의군부 활동을 한 인물이다. 일찍부터 사학계에서 그의 구국활동에 주목해 왔으나 한시 작품은 연구의 사각 지대에 있었다. 현재 그의 문집 『돈헌유고』에 남아있는 시는 모두 149제 175수로 태인창의 이후 수감되었을 때부터 대한독립의 군부 활동 이후 거문도에 유배되어 생을 마칠 때까지 쓴 것들이다. 임병찬의 시에는 음풍농월류의 작품이 거의 없다. 憂國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眞情이 작품을 일관하고 있다. 진정은 유약한 감정이나 체념적 정서와는 다르다. 절망의 상황에서도 반등하는 힘을 가지고 있고 긍정적인 미래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시는 태인의병 시기~대마도 유배기, 환국 이후~독립의군부 활동기, 거문도 유배기 세 시기로 나누어 볼수 있다. 첫째 시기의 작품에는 태인의병의 목표인 大義의 선양이 강조되며, 일제에 압박에 굴하지 않는 義氣가 작품의 저변에 흐른다. 이러한 의기는 면암의 殉國에 대한 슬픔을 밝은 미래상으로 대치하기도 한다. 둘째 시기는 일제의 한국강제병합이 이루어진 무렵이다. 병합에 대한 다양한 감정적 반응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러한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항일 운동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以文制武’와 관련한 여러 형상이 등장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셋째 시기에는 거문도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다. 접하는 물상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확인하고 정신 자세를 가다듬기도 하지만, 사적인 감정을 극복하고 公的인 차원에서 국가와 백성을 염려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임병찬의 삶은 우국과 애민으로 요약되며, 의기로 무장된 到底한 신념의 실현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항일의 방법에 있어서는 상황을 고려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알았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復卦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 어느 날엔가는 다시 광명이 찾아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병찬의 시를 일관하는 핵심은 불굴의 의기와 세계에 대한 낙관적 태도라 할 수 있다. This article aims to examine the poetic world of Dunheon Yim Byeong-chan, a bureaucrat and head of Uibyeong (civil army) who worked i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ies. Yim Byeong-chan(林炳瓚) started Uibyeong with Choi Ik-hyeon(崔益鉉) in Taein(泰仁) in 1906, and he worked at the Headquarter of Korean Independence Righteous Civil Army after Imperial Japan’s forced merger of Korea. The poems of Yim Byeong-chan rarely include works of Eumpungnongwolryu (category of poetry enjoying leisurely nature/吟風弄月類). The sincerity coming from the life of patriotism is consistent with his works. Sincerity is different from weak feelings and somatic feelings. It has the power to rebound even in times of despair and never gives up on a positive future. His poems can be divided into three periods such as Taein Uibyeong period ~ sushima(對馬島) exile period; after returning home ~ Headquarter of Korean Independence Righteous Civil Army period; and Geomundo(巨文島) exile period. The works of the first period emphasize the enhancement of good cause, which is Taein Uibyeong’s goal, and the righteousness not yielding to the pressure of Imperial Japan flows to the bottom of his works. In the second period, there are various emotional reactions to Imperial Japan’s forced merge of Korea appearing in his works, but it can be seen that he was not buried by such feelings and worried about the direction of the new anti-Japan movement. The characteristic is the appearance of various forms related to “Yimunjemu (forestalling a sword with a pen/以文制武).” In the third period, although Geomundo’s natural objects confirm his values and refine his mental attitude, he overcame private feelings and in a public dimension his concerns are seen in the state and people. The life of Yim Byeong-chan is summarized in patriotism and love of the people, and it is a process of realizing his beliefs armed with righteousness. However, he knew how to handle the situation and coped flexibly in terms of anti-Japan methods. As seen in the name of Bugwae(復卦) that often appears in his works, he had a conviction that light would come again there one day. The core of Yim Byeong-chan’s poems can be the indomitable righteousness and the optimistic attitude toward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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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호(松湖) 백진남(白振南)의 시세계(詩世界) 연구(硏究)

        권혁명 ( Kwon Hyok Myong ) 근역한문학회 2020 漢文學論集 Vol.55 No.-

        본고는 송호 백진남의 생애와 시세계를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 먼저 2장에서 백진남의 생애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백진남의 생애에서 주목되는 것은 백진남이 부친 백광훈의 영향으로 글씨와 문장이 뛰어났다는 것이다. 즉, 글씨는 王羲之와 鍾繇의 바로 뒤에 위치할 만하고 시는 당풍을 띤다는 평가를 받았다. 백진남은 이러한 筆法과 文才를 바탕으로 이순신의 막하에서 명나라 장수 季金, 皮承德에게 글씨와 문장으로 인정 받았으며, 1606년 황태손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 조선에 사신으로 온 正使 朱之蕃의 찬사를 받았다. 3장에서는 백진남의 시세계를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주제는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강호에서의 평온한 삶을 읊은 것이다. 이 시들은 백진남이 젊은 시절과 만년에 서울과 영암에 은거할 때 지은 것으로 唐詩的 경향을 보여준다. 둘째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드러내는 주제들이다. 백진남은 임진왜란을 직접 겪었고 成天祗, 李舜臣의 막하에서 종사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전란으로 인한 괴로움, 중국 장수에 대한 칭송, 문재의 자부 등 다양한 의식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셋째, 사행길의 어려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시화한 것이다. 백진남은 관직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柳根의 추천으로 원접사 일행으로 참여하게 되는데, 이 때 사행길의 어려움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This paper was aimed at taking a brief look at the life and poem of Song Ho Baek jinnam. In summary, this is as follows: One of the most prominent things in Baek Jin-nam’s life is that he has gained fame for calligraphy and poem since childhood under the influence of his father, Baek Kwanghoon. Baek Jinnam’s writing was right behind Wang Huiji and Jongyo, and the poem was praised for its strong tendency to Tang Dynasty poetry. Chapter 3 gives an overview of Baek jinnam’s poems. Theme of the poem by Baek Jin-nam suggests that it is a common theme in the poems of literati during the Joseon Dynasty. However, in Baek Jin-nam’s poem, there are three main topics that should be noted: First, it looks like living a peaceful life in Gangho. The poem is shown in Seoul and Yeongam when Baek Jin-nam was young and old. Second, they are poems that reveal consciousness in relation to the Imjin War. Baek Jinnam went through the Imjin War in person and worked in Sung cheonji and Yi Sunshin’s military. Therefore, it reveals various rituals related to the Imjin War, such as the suffering caused by the war, praise for the longevity of China, and pride of literature. Third, these poems reveal the difficulties of the road to the envoy and the longing for his hometown. Although Baek Jinnam did not serve as a government official, he was encouraged by Yoo Geun to join the envoy’s group. At this time, he describes difficulties on his way to an envoy his longing for his hometown in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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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문헌의 유통과 지식의 전파 - 일본 교토대학 소재 한국고문헌을 중심으로 -

        박영민 ( Park Young-min ) 근역한문학회 2021 漢文學論集 Vol.58 No.-

        본 연구는 일본 교토대학 소재 한국고문헌이 일본에서 어떠한 경로를 거쳐 교토대학 내각 도서관으로 이동하게 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한국고문헌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유출된 경로는 일본인 한국고문헌 수집가들의 활동에 대한 조사를 통해 상당 부분 밝혀졌다. 그러나 아직도 누구에 의해 어떤 경로로 한국에서 일본으로 유출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한국고문헌도 상당히 많다. 이에 본고에서는 먼저 일본으로 유출된 한국고문헌의 일본 내에서의 이동 양상을 살펴보았다. 그 과정을 통해 한국고문헌을 교토대학에 기증한 학자들, 한국고문헌을 간행하거나 필사하여 유통시킨 사람들과 출판사, 일본에서의 주목할 만한 한국고문헌 경유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고문헌의 일본에서의 이동 경로는 한국고문헌에 찍힌 일본인 혹은 일본 기관의 장서인 그리고 일본인의 필사기, 독서기, 소장기 등을 분석하여 밝힐 수 있었다. 한국고문헌의 일본 내에서의 이동을 조사하는 것은 단순히 서적의 이동 경로 확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의 지식의 생성, 문화의 전파 등과 한국고문헌의 영향관계를 확인하는 일의 기반이 된다. 본고는 한국고문헌의 일본 내에서의 이동 경로와 다양한 양상을 추적하여 향후 일본에서의 한국고문헌의 유통과 전파가 일본의 지식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밝히는 데에 기여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교토대학 내에서도 부속도서관, 문학부도서관, 인문과학연구소도서관 등 가장 많은 한국고문헌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을 대상으로 하였다. This study aimed to find out how the Korean Ancient writings based at Kyoto University in Japan was moved to each library in Kyoto University. And through the activities of Japanese collectors, the route of the Korean writings being leaked to Japan was largely revealed. However, there are still quite a few Korean advisors who are still hard to specify who and how they were leaked to Japan. In response, This study first researched the movement of Korean Ancient writings in Japan. The process confirmed the existence of scholars who donated Korean Ancient writings to Kyoto University, people who published or translated Korean Ancient writings and distributed it, and publishers. Investigating the movement of Korean Ancient writings in Japan is not just about identifying the Korean Ancient writings , but also the basis for identifying the influence of Korean Ancient writings on the creation of knowledge and the spread of culture in Japan. This study aimed to track the path of Korean Ancient writings in Japan and various aspects of it and contribute to revealing how the distribution and dissemination of Korean Ancient writings in Japan affect Japanese knowledge and culture in the future. This study was conducted on the libraries with the largest number of Korean ancient texts, including the affiliated libraries, the Ministry of Literature, and the Institute of Humanities and Sciences, within Kyoto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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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치유적 글쓰기의 관점에서 본 金浩然齋의 『自警編』

        성민경 근역한문학회 2019 漢文學論集 Vol.53 No.-

        본고는 金浩然齋(1681~1722)의 『自警編』에 발현된 글쓰기 치료의 기제에 대한 고찰을 통해, 저자가 내면의 고통을 극복하고 치유로 나아가는 과정에 주목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글쓰기 치료의 효능에 대한 검증은 주로 임상적으로 이루어져 왔지만, 『자경편』은 글쓰기의 치유적 작용 기제인 ‘직면(Confrontation)’, ‘감정정화(Catharsis)’, ‘거리두기(Distancing)’, ‘인지적인 이해(Understanding)’를 모두 보여줌으로써 작자가 경험했을 치유적 효능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자경편』의 글쓰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과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적극적인 성찰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글쓰기를 통해 삶의 고통을 극복하고 치유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분투기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자경편』은 일차적으로는 호연재 자신의 치유를 위한 것이지만, 당대에 질곡을 함께 했던 여성들에게 읽힐 것을 염두에 두고 기술되었다는 점에서 문학이 갖는 시대적 공감과 치유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is through an examination of the mechanism of writing therapy expressed in the book of self-admonition(白警篇), Kim Hoyeonjae attempts to focus on the process of overcoming internal pain and moving to healing. Although the validity of the writing therapy has been mainly clinical, the book of self-admonition(白警篇) has been found that the self-confident reading is the 'healing function' of the writing such as 'Confrontation', 'Catharsis', 'Distancing' By showing all the 'Understanding', we were able to deduce the healing efficacy that the author had experienced. The writing of the book of self-admonition(白警篇) is a struggle to overcome the pain of life through writing and to find a way to go to healing by showing the conditions of life given to him and the process of introspection intending to protect his identity in it Can be given a new meaning. In the first place, the book of self-admonition(白警篇) is for the healing of the self, but since it is described with the idea that it should be read by the women who have accompanied the vagaries in the present time, it is actively practicing the function of the empathy and healing of the period can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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