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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리터러시 교육(VIE)의 문학적 효과 연구: '퍼스 기호학'의 관점으로
정경열 영상예술학회 2015 영상예술연구 Vol.26 No.-
본 논문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VIE 프로그램의 교육성과를 바탕으로 텍스트와 이미지와의 언어와 문학적 관계를 연구한 결과다. 디지털 영상 시대를 맞아 올바른 이미지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한 시점에서 텍스트와 이미지를 활용한 VIE 프로그램의 결과는 양자간의 기호학과 문학적인 관계와 기능을 보여준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통합으로 메시지가 창출되는데 이 때 퍼스(Peirce)의 텍스트와 이미지의 상호 관계를 정의한 세 분류인 도상, 지표, 상징이 등장한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상호간의 우선권에 따라 결정되는 이 3가지 종류의 분류는 학생들의 작품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학생들의 영상 이미지와 연결된 시를 보면 이미지에 직설적으로 연결된 도상과 같은 작품에서부터 이미지와 시어가 전혀 동 떨어져 보이지만 1차 의미작용을 넘어 은유적 연결 접점을 찾아 상징으로 발전한 작품까지 볼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제시할 수 있는 영상활용교육(VIE)의 발전적 지향점은 영상 이미지의 도상성 속에 내재된 지표적 특성을 활성화시키고, 시어는 이미지와의 연결성을 위해 상징적 특성을 지표적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교육적 전략이다. 여기서 핵심 사항은 사진의 도상성과 시의 상징성을 어떻게 적절히 유지하면서 은유적 긴장미를 지속시켜 나가느냐에 있다. 이점이 VIE 교육에서 이미지 리터러시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이유다. 본 연구는 학생들의 작품을 기호학적으로 고찰함으로써 텍스트와 이미지를 활용한 청소년들의 언어적 창의성에 대해 알아보고 이를 이미지 리터러시 측면에서 의미를 전환시키려 한다. 결과적으로 이미지는 일상의 실제 대상물을 담아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기호학적으로 구체적 내용과 함축된 의미를 가진 표현물이며 문자와 언어가 가지는 차이를 초월해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해준다. VIE 리터러시 교육은 이미지의 상상력과 문학적 텍스트의 건강한 언어적 기능까지 포괄하는 통합적 영상 미디어 교육이다.
From Caligari to Cinephile: 1990년대 예술영화 담론과 B(급) 영화 감성 가로지르기
박아나 영상예술학회 2014 영상예술연구 Vol.25 No.-
이 연구는 시네필리아가 지향하는 문화운동과 문화소비의 두 축에 주목했다. 1990년대와 이전 세대가 겹쳐지고 갈라지는 지점이라는 점에서 두 축을 설정해보았고 이는 시네필리아가 역사적 맥락에 따라 공존하고 경쟁하는 영역들일 수 있다. 그리고 1990년대 특기할 만한 시네필리아 현상을 광장시네필리아와 밀실시네필리아로 규정하고 이 둘이 공존하고 서로 경쟁하던 상황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각각 예술영화담론과 B영화 감성으로 두 시네필리아의 키워드로 삼아 이것들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인터뷰, 잡지, 논문 등의 자료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이전 세대의 광장시네필리아 문화가 제도권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며 예술영화담론을 선도하고 예술영화 관객들을 시네마떼크, 예술영화전용관, 각종 영화제로 몰려들게 했다. 그 결과 예술영화 시장과 담론을 일정정도 확장해 갔고 엘새서가 말한 시네필리아의 집행연기는 <희생>의 개봉으로 상징되는 역사상 유례없는 사건을 낳았다. 반면 밀실시네필리아는 세계적인 시네필리아의 흐름을 집행연기 없이 즐길 수 있었고 2000년대까지 그 영향력을 발휘해 갈 수 있었다. 밀실시네필리아의 특징을 B감성으로 잡고 주변성에서 중심을 향해가는 전략들이 영화문화에 어떤 효과를 주었는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이후에는 B감성의 미학과 쾌락을 그로테스크의 개념과 연관지어 보고자 했다. 그리고 이 논의들을 B감성의 기원으로서의 1930년대 영화사조인 표현주의영화와 관계설정을 통해 역사적인 연속성과 균열의 지점을 찾아내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는 역사적이기도 하고 비역사적인 시네필리아의 특성을 밝혀보기 위함이었다. 두 가지 시네필리아를 체화하기에 버거웠던 1990년대 시네필리아의 이상 열기는 강박적이며 맹목적이기도 했지만 21세기 한국 영화의 문화적 스펙트럼을 확장시키며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어 온 힘으로도 볼 수 있다. 그 당시 많았던 시네필들이 영화 현장과 산업, 저널, 아카데미 등 영화제도권 곳곳으로 진출하며 한국영화 전반을 이전보다 밀도 있게 구성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디지털 영화, 멀티플렉스, 각종 국제 영화제로 영화 관람의 공간과 조건이 이전보다 풍족해졌지만 1990년대 시네필리아가 확보했던 영토는 이전에 비해 축소되었다. 이는 한편으로 영화의 존재론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하지만 시네필리아 문화에서 이전의 맹목적인 사랑으로서의 시네필리아 문화에서 각성된 사랑으로 시네필리아의 전환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하룬 파로키의 <딥 플레이>와 영화적 장치의 새로운 정치학
서현석 영상예술학회 2011 영상예술연구 Vol.19 No.-
하룬 파로키의 다채널 영상설치 작품 <딥 플레이(Deep Play)>(2007)는 영화학에서의 매체에 대한 성찰을 확장하여 영화 이미지가 작동하는 공간적, 사회담론적, 정치적 맥락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2006 FIFA 월드컵 결승전 경기에 관한 12개의 화면이 갤러리 공간에서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전체적인 조형적 구성이나 작가적 시그니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영상 이미지가 어떻게 하나의 미디어 이벤트를 구성하고 이미지 소비를 위한 다층적인 공간의 설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재고를 유도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영화를 ‘매체(medium)’로 접근하고 다루는 모더니즘적 성찰로부터 벗어나 넓은 범위에서의 ‘장치(apparatus)’로 인식하는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며, 영화를 사회적 ‘장치’로 인식할 때 작품은 평면적 이미지로 머물지 않고 제작과 유통, 소비 과정에 대한 비평적 사유를 촉진하게 된다. 파로키의 이러한 태도는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ére)가 구체화하는 예술의 정치적 기능에 상응하는 것으로, 사회적 관계와 이미지 소비의 정치적 차원들을 가시화시키고 이에 대한 성찰을 관객이 능동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한다. 이로써 파로키는 정치적 행동을 구현하기 위한 선동적 도구로서 예술을 활용하는 기존의 정치 예술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나, 관객 나름대로 자신만의 비평적 태도를 추진하도록 하는 유기적이고 개방적인 소통을 취한다. 메타-시네마로서의 <딥 플레이>는 오늘날 감각적 체험에 개입되는 사회 정치적 장치에 대해 첨예한 정치적 태도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제안할 뿐 아니라, ‘예술 행위’와 ‘예술 체험’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사유가 곧 예술 행위 및 체험의 일부가 되어야 함을 수행적으로 피력한다. 조형적 완성도나 구성적 견고함을 최선의 미학적 경지로 설정하지 않고 여러 장치들을 감지하는 인지력과 해석력의 창출을 관객에게 이양하는 파로키의 태도는 정치와 예술의 기능을 서로에 대한 유기적 관계를 통해 재조직하는 진취적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담론이 매개하는 영화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라이프 인 어 데이>(2011)와 <지구에서의 하루>(2012)에 나타난 참여 메커니즘의 비교를 중심으로
김지현 영상예술학회 2012 영상예술연구 Vol.20 No.-
It is being said that anybody can make a movie today. The rhetoric of media democratization often goes along with the rapid growth of market share by digital media devices around the world. And we have this image of ‘people’ where they have become much more powerful and smarter than yesterday‘s audiences of the mass communication system. But is it true that the expanded access to digital production and distribution channels of audiovisual media enhance the democratic potential of these media? This paper takes a critical look at the claims of the dominant narrative of digital technology regarding the filmmaking environment for the so-called “lay people.”Looking back the history of cinema, we find that the arrival of every new filmmaking machinery brought with it an endlessly renewed promises of enhanced access and user empowerment that seldom really does follow. This means that its history has also been a history of these failed promises, showing how the radical potentials of these devices that could have (according to the rhetoric of media democracy attached to them) revolutionized the filmmaking opportunities for everybody’s sake, were sutured into the rules of dominant media formations. The historical perspective provides that digital technologies’ rhetoric of media democratization is not new but has a deep root, asking us to realize its repetition of unfulfilled dreaming. Thus, what is important is the context in which these discourses arise against the background of ever- increasing phenomenon of media concentration. Why are there so many digital devices that encourage us not only to consume but also to produce?In spite of the general technological determinism found in both utopian and dystopian discourses of the digital, the desire for equal participation in media that they foreground has a positive implication for driving new filmmaking practice. Life in a Day(2011) and One Day on Earth(2012) are two among the many that experiment themselves with participatory filmmaking practice based on digital network. (Media) Participation has become one of the most abused terms in the digital age. However, when its meaning refers not to an autonomous contribution or commitment of the self, but the presence of equal power relation in decision-making process, it becomes a critical site to reflect on the way participation is organized and/or limited in the filmmaking process. This paper compares the participation mechanisms of these two global media projects in order to think about their different cultural imaginations concerning the relationship between cinema and democracy.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take a critical look at the framework of cinematic democracy in the context of abundant digital devices that are surrounding us today. Digital technology is not a neutral means by which we can enhance or jeopardies democracy depending on how we use it, but a set of cultural frameworks to think about and illuminate a new relationship between cinema and democracy. The paper is also an attempt to find an appropriate way to approach amateur filmmaking, which has been marginalized for so long, but suddenly finding itself being foregrounded by the digital discourse. 누구나 의지만 있으면 영화를 만들고 보여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들 한다. 이러한 수사학은 종종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과 같은 전자제품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속도의 전 세계적 시장 점유율과 함께 제시되곤 한다. 그리고 일방향적 소통구조로 특징지어지는 아날로그 대중매체 시대의 영화 관객이나 TV 시청자와는 달리, 훨씬 더 강력하고 현명해진 대중이라는 이미지로 이어진다. 그러나 영상 제작 수단의 대중화와, 디지털 네트워크란 새로운 의사소통 공간의 등장이 정말로 영상 매체의 민주적 가능성을 실현시켜주고 있는가? 본고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일반인들의 영화 제작 및 배포에 관한 진입 장벽을 제거하고 따라서 영화 매체를 민주화시킨다는 오늘날의 지배적 담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영상 문화를 둘러싼 다양한 조건들의 변화 속에서 특히 ‘일반인’들의 영상/영화 제작 문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적 담론들의 작동 방식과 그 한계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영화사(史)를 돌아보면 새로운 영상 매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제작 수단의 민주화와 수용자들의 권한 강화에 대한 유토피아적 기대들이 반복하여 등장한다. 이 과정은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저렴하면서도 혁신적인 방법으로서, 가장 민주적인 미디어 제작 실천이 될 수도 있었던 새로운 영상 매체의 해방적 잠재력이 지배적 미디어 구조 속으로 계속해서 봉합돼온 역사이기도 하다. 지배적 미디어 구성체는 다양한 사회, 경제, 미학, 이데올로기적 규범화(normalization)를 통해 경쟁자들의 미디어를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시각은 오늘날의 디지털 기기들이 구사하는 민주주의의 수사학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되풀이되어 온 것이며, 이미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했으나 무산된 꿈꾸기의 반복임을 깨닫게 해준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디지털 기술 도입 이후 미디어의 상업화와 소유 집중화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추세 속에서, 일반인들에 의한 영상 제작 문화가 전경화 되는 맥락에 대한 분석이다. 왜 이토록 많은 디지털 기기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미지를 단순히 ‘소비’할 뿐 아니라 직접 ‘생산’도 하도록 장려되고 있는가?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론이든 비관론이든 디지털 담론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기술 결정주의적 시각들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경화 하는 평등한 미디어 참여에 대한 열망은 새로운 영화 제작 방식에 대한 실험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함의를 지닌다. 디지털 네트워크에 기반 한 참여적 제작 방식을 영화의 주요 컨셉으로 내거는 두 가지 글로벌 미디어 프로젝트, <라이프 인 어 데이>(2011)와 <지구에서의 하루>(2012) 등은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들이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오면서 ‘(미디어) 참여’라는 단어는 가장 널리 남용되는 단어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참여’가 단순히 자발적 기여나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 결정 과정에서 관련 주체들의 평등한 권력 관계의 위치에 관한 문제라고 할 때, 영화 제작 과정에서 참여가 조직되고 제약되는 방식은 영화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살펴보는 중요한 지점이 된다. 본고에서는 이 두 프로젝트의 제작 과정에 나타나는 참여의 메커니즘을 비교하면서 이들이 각각 영화를 통한 민주 ...
지역의 영상정책 사례 - 한국과 프랑스의 지역협력형 사업을 중심으로
김미현 영상예술학회 2013 영상예술연구 Vol.22 No.-
본 논문은 지역협력형 영상정책 사례를 통해 지역의 영상산업이 중앙과 긴밀하게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지역협력형 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중앙 부처의 국고 및 영화발전기금과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매칭으로 추진된다는 점이다. 프랑스 국립영화센터(이하 CNC)는 “2유로를 위한 1유로 정책(1 euro pour 2 euro)”을 중심으로 지자체와 중앙 지원기구 간의 협력모델을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 영화분야의 지원은 중앙 지원기구와 지자체 중심의 영상위원회 및 관련 단체가 각기 운영되는 분산된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일부 사업에 있어서만 국비 및 영화발전기금과 지자체의 시비 및 도비가 매칭으로 협력한 사례가 있다. 전북도의 HD영화 제작지원 사업, 글로벌 국제영화제 육성지원 사업, 지역미디어센터사업, 부산영상도시 육성사업 등이다. 최근 지역의 영상위원회의 활동은 촬영유치나 서비스에서 나아가 직접적인 창작지원과 투자, 제작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의 영상산업발전에 있어 중요한 중앙과 지역의 연계성확보와 전체의 균형발전을 위한 정책은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지역의 영상제작 활성화라는 정책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조망하되 지역과의 협력을 통해 예산을 마련하고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몸을 쓰는 영상-증언으로서의 다큐-매체성:<쓰나미 후에 오는 것들>과 '겨울의 눈빛': 장 뤽 낭시 '영화의 증거'의 관점에서
최수임 영상예술학회 2015 영상예술연구 Vol.26 No.-
This paper examines the mediality of documentary film from the perspective of Jean-Luc Nancy’s The Evidence of Film, focusing on Kyoko Miyake’s documentary Beyond the Wave (2013) with Bak Solmay’s novel Snowlight of the Winter (2013). Jean-Luc Nancy suggests that film medium functions as the evidence of the world, more precisely, as the exposure on to the bodily world. The cinematic image as the evidence is the aesthetic presence, that enables the viewer to look at and touch ‘the real’ of existence, especially the remote lives. Beyond the Wave (Surviving the Tsunami:My Atomic Aunt/ Meine Tante aus Fukushima), the documentary which carries away the life of people in Fukushima area, after the nuclear plant catastrophe, and Snowlight of the Winter, the novel which talks about the virtual documentary on the (unhappened) nuclear plant catastrophe in Korea, are from this perspective co-analyzed and compared, in order to consider the process of action of documentary medium, in light of Nancy’s thought of film. In Nancy’s thought of film, the real in the film is understood as the access to the real itself. Documentary is, in this sense, the active medium, which opens up the truth of the world. The documentary images carry away the real to the viewers and let them feel the others close to themselves. This process is also to explain in the consideration to Nancy's thoughts of corpus and community, for the evidence of film enacts the being-with and touching, which compose the docu-mediality. 이 논문은 다큐멘터리의 매체성을 장-뤽 낭시의 ‘영화의 증거’론의 관점에서 고찰하면서, 영상 이미지가 세계와 맺는 관계에 대한 이해로부터 다큐-미디올로지를 사유한다. 낭시가 논하는 영상 이미지의 ‘증거’로서의 작용은 어떻게 일어나며, ‘보기의 윤리학’이 다큐-미디올로지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이 논문은 낭시의 영화 이미지론이 다큐멘터리 매체를 어떻게 비추어주는지 살펴보며,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관한 다큐멘터리 및 그와 연관된 문학 텍스트를 매체학적/비교문학적으로 분석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외딴 격리의 삶을 살고 있는 사고지역 사람들을 영상으로 증언하는 미야케 교코의 <쓰나미 후에 오는 것들>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관한 만들어지지 못한 어느 다큐멘터리에 관한 생각으로부터 고리 원전사고라는 가상의 사태를 상상해 쓰인 박솔뫼의 소설 『겨울의 눈빛』이 고찰 대상이 된다. 장-뤽 낭시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보며 ‘영화의 증거’를 논했을 때, 다큐적 영상매체의 이미지가 지닌 ‘증거’로서의 역할은 영화미학의 사실주의 이론 너머로 새롭게 떠올랐다. 영화 이미지는 삶과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는 매체라는 것이다. 그 이미지를 봄으로써 타자성 속에 머물렀던 먼 삶은 우리에게 와서 지금 여기의 세계에 ‘접촉’한다. 접촉 속에서 함께 대화하며, 그를 통해 영상은 ‘눈빛’과 접촉하는 ‘눈빛’이 된다. 미야케 교코가 자신의 고향인 나미에 마을을 멀리 런던에서부터 찾아가 자신의 이모를 만나 함께 살피며 영상으로 담아 보여준다면, 박솔뫼는 미처 볼 수 없었던, 만들어지지 않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관한 다큐멘터리에 관한 생각에서 시작해, 그러한 사고가 바로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어떤 ‘접촉’ 속에서 가상의 고리 원전 사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소설 속에서 묘사하고, 그것을 자신의 일처럼 가까이 그려본다. 우리가 직접 찾아갈 수 없는 어떤 곳들에서, 다큐멘터리 영화의 영상이 우리에게 온다. 그것은 우리와 만나고 접촉하며, 우리에게 세계의 증거로서 작용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먼 곳의 외딴 삶들을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닌, 우리와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우리의 삶으로 인지할 수 있다. 영화는 그렇게 세계에 참여하며, 우리를 세계에 참여시킨다는 것이 장-뤽 낭시의 ‘영화의 증거’론이다. 다큐멘터리는 오늘 그렇게 세계의 몸을 영상으로 쓰며 증언하는 주체적이고 매개적인 매체로 인식될 수 있다. 잠겨 있는 먼 곳을 열어 친밀하게 느끼게 하고 그럼으로써 타자성 너머 ‘함께-있음’으로 우리를 열어내는 다큐-매체성은 영화가 우리에게 무엇을 증언하는지 일깨운다.
연극과 영상 이미지의 융합 양상에 관한 연구❙연극 <나는 너다>를 중심으로
장선희,박상천 영상예술학회 2012 영상예술연구 Vol.20 No.-
21세기의 다양한 융합은 학문, 산업, 예술 분야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는 이원론적 경계가 무너지고 분야 간 연계성과 상호작용성이 점차 확장되는 탈근대사회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본고는 특히 문화예술분야에서도 나타나는 장르 간 소통과 융합을 연구하기 위하여 연극 <나는 너다>에 나타난 연극과 영상의 융합 양상을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연극과 영상의 결합이 지닌 예술적 의미를 살펴본 후, 연극 <나는 너다>의 작품 분석에서는 뷔릴리오의 광학, 시각, 객관적인 이미지와 잠재적, 상상적, 심적인 이미지로의 분류 방식을 원용하여 이 작품이 기존 연극의 영상 활용과 어떻게 차별화되고 창작 방법과 예술적 경험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분석과 논의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연극 <나는 너다>는 영상과의 융합을 통해 작가, 연출가와 같은 예술가의 창작 방법을 확장하는 효과와 함께 디지털 시대의 관객들에게 훨씬 넓은 상상의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예술 향유의 새로운 감각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기존의 제한된 무대로부터 자유로운 가상의 시공간을 통해 관객의 이해를 돕고, 관객의 감성적 수위를 증강시킴으로서 마치 관객 자신이 연기자가 된 것 같은 몰입의 극대화를 통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었다는 점은 연극 <나는 너다>가 지니는 중요한 의의라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입체영상에서 거리감 표현을 위한 패럴렉스(Parallax) 간격 산출에 관한 연구
김탁훈,이형기 영상예술학회 2010 영상예술연구 Vol.17 No.-
3D 입체 영상을 집에서도 즐길 수 있는 TV와 모니터 등의 하드웨어들이 시중에나오고 케이블 채널에서도 3D 입체 콘텐츠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3D 입체 영상으로 제작된 영화들이 대중적 인기를 끄는 등 3D 입체 영상의 대중화가 가속되고 있다. 이에 힘입어 많은 3D 입체 콘텐츠들을 제작하려고 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는추세이다. 3D 입체 영상을 제작하는 데 있어 가장 자연스러운 입체감을 형성하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본 연구는 3D 입체 영상을 제작하는 여러 방법들 중 2D 영상을 3D 입체 영상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눈에 의존하기보다는 정확한 데이터에 의해 전방 입체와 후방 입체를 표현하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실험을 하였다. 인간의 눈과 가장 비슷한 표준렌즈를 사용하고 일정한 양안시차를 두어 촬영한 이미지들을 애너그리프 방식으로 3D 입체 이미지를 합성하였다. 합성 기준점인 0점을 중심으로 촬영거리에 따른 전방입체와 후방입체의 패럴렉스 간격을 측정하여평균 백분율을 산출하였다. 이 실험에서 촬영 거리에 따라 후방 입체의 패럴렉스간격은 일정하게 비례하고, 전방 입체의 패럴렉스 간격은 일정하게 반비례함을 알수 있었다. 또한, 패럴렉스 간격 평균 백분율을 적용하여 2D 이미지를 3D 입체 이미지로 합성한 결과 공간감, 입체감이 제대로 표현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본 연구의 결과를 토대로 3D 입체 변환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정확하고 다양한 데이터의 확보 및 소프트웨어로의 적용, 더 나아가 많은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들과 합성 아티스트들이 좀 더 쉽게 양질의 3D 입체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4.19’ 역사재현에 대한 연구: 뉴스영화를 중심으로
문재철,홍민지 영상예술학회 2016 영상예술연구 Vol.28 No.-
본고에서는 1960년 4.19 혁명기부터 1963년 박정희 군정기까지의 3년간의 ‘4.19’ 담론에 대해 다룬 뉴스영상들을 살펴보고, 정권변화에 따른 담론의 변화 지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에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났던 해에 제작 된 영상들과 그 이후 ‘4.19’혁명을 재현하며 기억하는 과정에서 제작된 영상들을 비교하여 살펴보며, 당시 정권의 정치적 영향에 따라 어떻게 ‘4.19’가 대중들에게 기억되고 재해석되는지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1960년 당시 ‘4.19’혁명의 영향은 뉴스영화에서 가장 먼저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대한뉴스>는 ‘4.19’혁명이 일어나자 262호를 시작으로 하여 국내매체 로서는 최초로 ‘4.19’ 관한 소식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제작된 <대 한뉴스>는 4.19 혁명 당시의 정확한 상황에 대해 다루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반 면 <대한뉴스>와는 반대로 동일하게 공보실에서 제작되었던 <Korea in Review>에 서는 이와 상반된 성향의 뉴스영상이 제작되었는데, 이 영상의 경우 <대한뉴스> 와 동일한 푸티지를 사용하여 제작되었지만, <대한뉴스>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던 현장 사운드와 몇 개의 컷들이 더 추가적으로 구성되어, 좀 더 객관화된 느낌으로 4.19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대한뉴스> 262호가 ‘4.19’에 대해 겉핥기식의 사건 나열에만 급급했다면, <Korea in Review>에서 보여주는 영상은 ‘4.19’ 사건 이후 의 과정까지 세세하게 보여줌으로써 뉴스영상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사건의 판단 의 여지를 주고 있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차이점에서 뉴스영화라는 매체 가 사실만을 전달한다기 보다, 굉장히 정치적, 사회적 현실의 일부를 반영하여 프 로파간다로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반면 박정희 정권에서는 ‘4.19’담론에 대하여 5.16 쿠데타와 연계시켜 기억하 고, 재현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4.19’혁명 3주년이었던 1963년 즈음 이 되면 더욱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정황들을 살펴볼 때 박정희 정권 은 ‘4.19’정신을 계승한다는 것 아래에서, 실제로는 이승만정권의 부패와 무능함 을 당시의 혼란과 무질서로 뒤섞어 이미지화 시켜, ‘5.16’군사정변 이후의 ‘정돈되 고 안정된’ 사회의 모습과 대비시킴으로써 시각적 대비를 통하여 정권의 정당성 을 설파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당시 제작되었던 영화들을 영상사료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아마 뉴스 영화는 사실확인과 그 사실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사료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러한 뉴스영화들은 정권이 추구하는 국가의 정체 성과 자신들의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좀 더 쉽게 설득하며, 이를 위해 사용된 뉴스70 영화라는 재현방식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출시키는 선전 전략의 일부로서 존재했 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예영화와 검열 : 유현목 영화의 정체성 구성과정에 대한 일고찰
박유희 영상예술학회 2010 영상예술연구 Vol.17 No.-
Yu Hyeon-mok was one of the utmost directors in literary film. To him,literary film was the symbol of art film and the representation of a writer's consciousness. However hard he tried to stick to his consciousness as a writer,however, he was not able to express it in his movies because the times did not allow it. His heyday coincided with the Park Jung-hee regime, when the censorship system was systemized after the Liberation. Yu himself said that he was a victim of the censorship system over several times. At the same time,however, he was one of the beneficiaries of the government's film policies,receiving many different film awards and grants through literary film. Thus this study set out to investigate the process of artistic identity being created in his literary films and understand its nature on the assumption that the artistic identity his literary films tried to express and embody was the result of compromise or tuning between the censorship system and his consciousness as a writer. 이 글에서는 ‘영화의 예술성이 독자적인 작가의식의 산물이 아니라 제도 및 산업과의 관계 속에서 타협 내지 조율되는 과정의 산물’이라는 관점에서 유현목의 문예영화와 검열제도의 관계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매개로 제도와의 관계 속에서 작가의식이 구성되고 그것을 통해 문예영화의 정체성이 구성되는 과정을 고찰하였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유현목 감독이 전성기를 누렸던 시대는 검열의 시대였지만, 한편으로 유현목에게는 ‘예술’을 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했다. 그의 존재를 형성했던 실향, 반공, 개신교, 그리고 거기에서 근원하는 자유주의와 근대화 지향은 현실 비판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면서 한편으로는 체제의 이념과도 부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때 검열제도가 현실 비판과 영상 실험을 거세하고 검열의 도식성이 텍스트 내부의 자율적 원리를 침해하면서 작가의식 내부에서 허용 가능한 요소들이 배치를 바꾸며 조율되었다. 현실 비판은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 공산주의에 저항하는 양심으로 치환되고, 부조리는 인간의 원죄와 구원이라는 종교적인고민으로 추상된 것이다. 그러면서 유현목 문예영화는 체제가 원하는 예술로 구성되어갔지만, 그 구성요소는 작가의 내면에서 발아한 것이기에 그는 예술영화 감독으로의 자부심을 견지할 수 있었다. ‘자유’의 이름으로 고뇌하는 지식인, 서구의 세련미를 투영하는 기독교적 표상들,직설적인 현실비판이 거세된 추상적 질문으로 구성된 영화가 1960년대 이후 한국예술영화의 표상을 구성하며 1980년대까지 관습화되었던 것은 유현목 영화의 정체성이 개인적 고유함의 영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증언한다. 영화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던 검열제도는 오랫동안 한국 예술영화의 생산자이기도 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