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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하생(洛下生) 이학규(李學逵)의 『영남악부(嶺南樂府)』 재론(再論)

          손혜리 ( Hye Ri Son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3 嶺南學 Vol.0 No.24

          본고는 洛下生 李學逵(1770~1835)의 『嶺南樂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지금까지 논의된 바 없지만 주제 의식과 형상화 측면에서 뛰어난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영남악부』 68편 중 한 번도 검토되지 않은 작품은 23편으로 이 중 「眞正言」·「龍齒湯」·「勿稽子」 등은 주제 의식과 형상화가 뛰어 나다. 또 「無信塔」·「鐵文魚」·「仇衡王」·「장夫人」·「孝不孝」·「兩釜屍」 등 6편은 이학규가 처음 발굴한 소재로 주제 의식을 주목할 만하다. 이학규는 순조 8(1808)년 유배지 김해에서 신라에서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 영남 지역의 인물과 사적, 민풍과 토속 및 전설 등을 적극적으로 취재하여 『영남악부』를 저술하였다. 그는 ‘사실의 전달'을 악부 저술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이를 위해 유배지라는 제한된 공간과 한정된 서적에서나마 역사서와 지리지 등 다양한 문헌을 인용하고 충실한 고증을 통해 사실적 기록을 지향하였다. 『영남악부』의 기록적 특징을 크게 주제와 제재, 서술 등으로 나누었다. 주제 의식으로는 ① 부패한 관리 비판, 현실주의적 의식 ② 불교에 대한 비판, 합리주의적 의식, 제재의 특징으로는 ① 영남 지역의 역사적 인물 포폄 ② 영남 지역의 문풍과 토속, 전설, 서술의 특징으로는 ① 충실한 문헌 고증을 통한 사실적 기록 ② 대화체를 활용한 주제 강조를 제시 하였다. 『영남악부』는 영남 지역에만 국한된 ‘지역의 악부'가 아니다. 신라부터 고려 때까지를 악부의 대상으로 정했던 만큼, 당시 경주는 국가의 수도였고 고려 때까지 遺風이 남아 있었다. 따라서 『영남악부』는 유배지 김해를 중심으로 한 영남 지역의 인물과 사적, 민풍 토속뿐만이 아닌 一國의 악부라고 해도 충분하다. This paper aimed to take an overall review on 『Yeongnamakbu』 of Nakhasaeng. Hakkyu Lee based on existing research performance and limitation. We can grasp the general picture of 『Yeongnamakbu』 by existing research, but among 68 pieces of work there are still 23 pieces which have never been reviewed and the work like 「Jinjungeun (眞正言)」·「Yongchitang(龍齒湯)」·「Mulgyeja(勿稽子)」·「Jangmiyeo(薔薇女)」 are outstanding regarding to the topic and imagery. The topic of other 6 pieces of work, like 「Muhsintop(無信塔)」·「Chulmuneo(鐵文魚」·「Guhyeongwang(仇衡王)」·「Jangbuin(장夫人)」·「Hyobulhyo(孝不孝)」·「Yangbusi(兩釜屍)」 are also quite remarkable which were first discovered by Hakkyu Lee. This paper tries to discuss 『Yeongnamakbu』 again by reviewing these works thoroughly. Since the year of Sunjo 8(1808), Hakkyu Lee started collecting figure, historical site, local custom from Silla to Late Koryo Dynasty in Gimhae where he was exile, and then wrote 『Yeongnamakbu』. He thought ‘fact delivering' was most important in akbu`s writing, that`s why he aimed at realistic description by quoting from various historical or geographic text as well as thorough historical research even in the limited exiling space and using limited books. Next we will examine the feature of 『Yeongnamakbu』 by looking at subject, topic and narration. As a result, we captured several features as follows. ① criticism on corrupt government officials, recognition of realism; ② criticism on Buddhism, recognition of rationalism; ③ criticism on historical figure in Yeongnam area; ④ literary spirit and legend in Yeongnam area; ⑤ realistic description by historical research of text; ⑥ topic emphasis through dialogic style. 『Yeongnamakbu』 is not a ‘local akbu' only limited in Yeongnam area. As akbu covered from Silla to Late Koryo Dynasty, capital Gyeongju preserved the tradition untill Koryo. So 『Yeongnamakbu』 more than an akbu covered the figure, historical site and local custom with Gyeongju as center, it can be also regarded as akbu in one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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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해응(成海應)의 서북지역에 대한 인식과 비판 : 「속죄언(續罪言)」을 중심으로

          손혜리 ( Son Hye-ri ) 민족문학사학회·민족문학사연구소 2018 민족문학사연구 Vol.0 No.66

          본고는 정조 대에 규장각 검서관을 역임한 서족 출신의 지식인인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의 「속죄언(續罪言)」을 중심으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진단하고 19세기 전반 서북지역의 민심을 수습하며 제도적 모순을 개혁하기 위해 학적 대응을 한 사실을 주목하였다. 「속죄언」은 글을 쓸 만한 처지가 아닌데 외람되이 쓴다는 의미심장한 뜻을 지니고 있으며, 「장인재(?人才)」·「택수령(擇守令)」·「통이서(通吏胥)」·「금행민(禁倖民)」·「파기악(罷妓樂)」·「정전제(正田制)」·「정군제(正軍制)」·「축화재(畜貨財)」 등 8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종의 서북지역 개혁안이다. 이러한 인식과 비판은 이후 서북지역에 부임하는 수령을 전송하면서 쓴 글에서 반복되어 강조되는 만큼 지속적이고 체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소수의 세도가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민(民)에 대한 수탈이 가중되던 19세기 전반의 세도정치를 비판하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성해응은 서북지역을 개혁하기 위한 비전과 대책을 지니고 있었지만 실행할 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를 정책화하여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지위에 있던 이들에게 자신의 개혁안을 제시하고 강조함으로써 어지러운 세상과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하고자 한 것이다. 경세의식의 소산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선 후기 한 서족 지식인의 학적 대응을 통해 시대적 사명에 부응한 면모를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s cause of the Hong Kyongnae rebellion and academic response to reform institutional contradiction settling the public sentiment of the Northern region in the early 19th century focused on Sokchoeon(「續罪言」) of Song Haeung(成海應) who was an intellectual of descendants from a concubine and inspector of the archive in King Jeongjo period. Sokchoeon contains unmerited meaning, and is made up of eight books such as Changinjae(「?人才」), T'aeksuryong(「擇守令」), T'ongiso(「通吏胥」), Kumhaengmin(「禁倖民」), P'agirak(「罷妓樂」), Chongjonje(「正田制」), Chonggunje(「正軍制」), Ch'uk'wajae(「畜貨財」). It is a kind of a reform plan of the Northern region. These perceptions and criticisms are general and systematic through writing of saying farewell to a provincial governor who goes the Northern region. And it implies criticism of power politics in the early 19th century. Song Haeung had a vision to reform the Northern region, but he was not in a position to practice. So, he wanted to relieve the poor who had fallen into a state of distress through his reform. It is philosophy of governance(經世意識). It's from this point that this paper can be confirmed aspects of meeting the demands of the times for academic re-sponse to an intellectual of descendants from a concubine in the late Chos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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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대 관찬(官撰)과 사찬(私撰)의 이중주 - 이덕무와 성해응의 어정명찬서 편찬과 사적 저술 활동 -

          손혜리 ( Son Hye-ri ) 우리한문학회 2020 漢文學報 Vol.43 No.-

          본고는 조선 후기 정조대 규장각 검서관으로 활동했던 서얼 출신 문사들의 御定命撰書 편찬 활동과 이를 바탕으로 한 개인 저술과의 상관성을 탐색한 글이다. 이를 위해 정조대 검서관으로 활동했던 15명에 대한 인적사항과 재임기간, 관력, 저술 등을 조사하고, 朴齊家·柳得恭·李德懋·成海應·朴宗善·柳本學 등 6명의 문집이 현재 전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중 이덕무와 성해응은 각각 『靑莊館全書』와 『硏經齋全集』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던 바, 이들이 검서관으로 재임하면서 참여한 어정명찬서 편찬 사업이 개인 저술 활동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음을 포착하였다. 따라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이덕무가 편찬한 『宋史筌』「遺民列傳」과 「磊磊落落書」, 그리고 성해응이 편찬한 『尊周彙編』과 「皇明遺民傳」의 상관성을 집중적으로 규명하였다. 이를 통해 그동안 어정명찬서의 편찬과 간행을 주로 담당했던 규장각 검서관의 직무와 역할에서 나아가 관찬활동이 개인 저술에 끼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여 정조대 규장각 검서관의 직무와 역할의 외연이 심화 확장되었음을 확인하였다. This paper is a research of correlationship between official publication and private publication of seo-eol(庶孼) literati in Kyujanggak(奎章閣) gumseogwan (檢書官) at King Jeongjo period of Late Choson. For the research, this paper searched informations as biographic data, record of official service, and publication list of 15 gumseogwans, and it is found that 6 of them, Park Je-ga(朴齊家)·Yu Deuk-gong(柳得恭)·Lee Duk-moo(李德懋)·Sung Hae-ung(成海應)·Park Jong-seon(朴宗善)·Yu Bon-hak(柳本學), left personal collection(文集). Especially, Lee and Sung left a publication of large volume, each Cheongjanggwan-jeonseo(靑莊館全書) and Yeongyeongjae-jeonseo(硏經齋全書). It tells us that their experience of participating in ‘Collection of Royal Highness(御定命撰書)' as gumseogwan has close relation with their personal writings. Thus from this point of view, this paper closely investigated correlation between Lee's publication, Yuminyeoljeon(遺民列傳) in Songsajeon(宋史筌) and Noeroenangnakseo(磊磊落落書), and Sung's publication, Jonju-hwipyeon(尊周彙編) and Hwangmyeongyuminjeon(皇明遺民傳). Furthermore the research examined that experiences of official publication for Kyujanggak gumseogwans above their duties and tasks have affected their personal publication practices. Therefore it is clear that denotation of duties and tasks for Kyujanggak gumseogwans in Jeongjo period has developed more broad and more com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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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1: 백운 심대윤의 문학과 사상 : 심대윤(沈大允)의 남정록(南征錄) 연구(硏究)

          손혜리 ( Hye Ri Son ) 한국실학학회 2015 한국실학연구 Vol.0 No.30

          본고는 19세기의 사상가이자 문인 학자인 沈大允(1806∼1872)의 『南征錄』을면밀하게 검토하여 저술배경과 여정 및 내용상 특징과 의미를 중심으로 논의하였다.『남정록』의 가치와 의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정록』은 1755년을 해옥사에 연좌되어 유배지에서 죽은 심대윤의 증조모와 조부, 대고모 세 분의 유골을 선영으로 返葬하기 위해 6개월에 걸친 여정을 기록한 저술이다. 심대윤 가문의 처절한 비극이 오롯이 수록되어 소수자로서 고뇌의 독백이 잘 담겨 있다. 심대윤은 반장을 통해 가족사의 비극을 치유하고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하여 자손들에게 가문 재건에 대한 굳은 의지를 표출함으로써 소론명문가의 후예로서 자부심과 사명감을 심어주고자 한 것이다. 둘째, 짧은 편폭 안에 祭文, 遊記, 詩등 다양한 양식이 두루 수록되어 있고, 구성과 주제의식 및 형상화가 뛰어나 작품적 성취가 크다. 셋째, 심대윤의 초기작으로 문학과 사상의 전개양상과 전모를 파악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이다. 넷째, 반장의 여정과 절차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19세기 사회·제도사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This paper studies background in writing and characteristic and meaning in content based on the Sim Dae-yun(1806~1872)'s Namjongnok. Value and significance of Namjongnok is as follows. First, Namjongnok is the text which writes journey to panjang(返葬) for six long months. Sim Dae-yun wanted to overcome tragedy of the family through panjang, so he moved great-grandmother, grandfather and grandaunt's remains to the family burial ground. They died of involvement of Ulhae-oksa(乙亥獄事) in a place of exile in 1755. Namjongnok reveals monologue of anguish as a minority. Through detailed record, he wishes to give a sense of pride and duty as noble family of soron(少論) expressing a firm will of reconstruction of the family. The second, Namjongnok has a variety of styles in a short story and excels at composition and figuration. The third, Namjongnok is Sim Dae-yun's early work, so it is an import part of understanding of developmental aspects and whole story of literature and thought. Lastly, it is recorded journey and procedure of panjang in detail. so it will help to examine socio-cultural history in th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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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조선 지식인들의 明 遺民에 대한 기록과 편찬의식 -李德懋의 『磊磊落落書』와 成海應의 『皇明遺民傳』을 중심으로-

          손혜리 ( Hye Ri Son ) 한국실학학회 2014 한국실학연구 Vol.0 No.28

          李德懋(1741-1793)와 成海應(1760-1839)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개인의 사상적 배경이 부합되면서 방대한 분량의 『磊磊落落書』와 『皇明遺民傳』을 저술하였다. 이덕무는 연행시 오랑캐가 되어버린 중국을 보고 충격 받아 명말 유민에 관한 자료를 대거 취재하여 『뇌뢰낙락서』를 편찬하였으며, 성해응은 『뇌뢰낙락서』를 바탕으로 범례를 정하고 번잡한 내용을 산삭하여 『황명유민전』을 저술하였다. 『뇌뢰낙락서』의 문제점으로 제기된 번잡함은 오히려 중요한 특장이 된다. 교정과 편집 과정을 거치지 않아 번잡하고 거칠긴 하지만 이덕무의 폭넓은 독서체험과 범위, 지적 탐구와 관심의 향방을 생동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황명유민전』은 완성도가 높은 데다 『뇌뢰낙락서』와의 비교 고찰을 통해 명 유민에 대한 기록이 편찬되는 과정의 추이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이처럼 『뇌뢰낙락서』와 『황명유민전』은 18~19세기 지식인들의 사상적 배경과 기록 태도, 편찬 의식 등을 규명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큰 저술이다. Lee Deok-mu(李德懋, 1741-1793)`s writing of NoeLoeNakRakSeo(『磊磊落落書』) and Seong Hae-eung(成海應, 1760-1839)`s writing of Hwang MyeongYuMinJeon (『皇明遺民傳』) coincides with an atmosphere of times and personal ideological background. Lee Deok-mu visited China in 1778 and was shocked to see China turned into a barbarian state. So he gathered related vagrant people in the Ming dynasty to document and compiled NoeLoeNakRakSeo. Seong Hae-eung`s compilation of HwangMyeongYuMinJeon fixes a legend and focuses on the undecided constitution of NoeLoeNakRakSeo. These books have massive amounts of material and it is an event unprecedented in history, not only for Joseon but also for China as well. Lee Deok-mu and Seong Hae-eung have attitude of learning of erudition and historical research. In reality, NoeLoeNakRakSeo and HwangMyeong YuMinJeon revealed their attitudes of learning. But one problem is that NoeLoeNakRakSeo does not fix one of it`s legend and it is a noticeable feature in his book. Even though it`s complicated and rough because of the lack of editing, we can identify not only his experience in nature and his extent of reading, but also his intellectual pursuit and interest. Also HwangMyeongYuMinJeon fixes and edits legend of NoeLoeNakRakSeo, so it is high quality book which refers to the latest books. It is interesting that we peep process of compilation of vagrant people in the Ming dynasty comparing with NoeLoeNakRakSeo. Therefore NoeLoeNakRakSeo and HwangMyeongYuMinJeon are valuable textbooks which reveal ideological backgrounds, attitudes of records, and consciousness of compiling in the 18th century to th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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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成大中의 『仙槎漫浪集』 硏究

          孫惠莉(Son Hye-ri) 대동한문학회 2010 大東漢文學 Vol.33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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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靑城 成大中(1732∼1809)이 울진현령 시절(1767∼1770)에 저술한 『仙槎漫浪集』2책을 소개하고 내용적 특징을 규명하였다. 仙槎는 경상북도 울진의 古號로, 불영계곡.성류굴.망양정 등 뛰어난 승경지가 많은 지역이다. 성대중은 울진 현령으로 재임하면서 주변의 승경지를 두루 유람하고 그 흥취를 시로 묘사하였다. 또 공무로 原州 감영을 자주 왕래하였는데, 이 곳에는 성대중의 스승인 金焌이 거처하고 있었다. 김준을 통해 蟾洲에서 閔百順.林配垕.安錫儆 등의 선배학자를 만나 주역을 강론하고 근처의 汶田巖과 翠屛山 등을 유람하며 백여 수의 시문을 창수하였는데, 이는 『선사만랑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성대중은 癸未사행을 다녀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울진현령으로 부임한만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사행의 임무를 수행했던 趙曮.元重擧에 대한 시를 많이 저술하였다. 조엄.원중거와는 사행을 계기로 만난 이후 평생동안 남다른 친분을 유지하고 世交를 맺었던 바, 이들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을 유감없이 시 속에 표출하였다. 성대중의 울진현령 시절은 문과에 급제한 뒤 사행을 다녀온 이후이며 순정한 학식과 고문으로 정조에게 인정받고 널리 명성을 떨치기 이전 시기이다. 즉 성대중의 청장년 시절로 학문에 대한 드높은 열정을 지니고 고귀한 정신세계를 추구하던 즈음인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선사만랑집』에 여실히 표출된 만큼, 『선사만랑집』은 성대중의 청장년 시절 학문적 성향과 시작 경향 및 교유관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 李德懋와 宋載道가 『선사만랑집』에 評語를 더하고 높이 평가했던 만큼, 『선사만랑집』의 문학적 가치 또한 주목할 만하다. This article introduced the two volumes of 『Seonsamanrangjip(仙槎漫浪集)』, a collection of poems written by Cheongseong(靑城) Seong Dae-jung(成大中, 1732∼1809) during his term of office as Uljin county governor(1767∼1770), and examined the characteristics of their contents. Seonsa(仙槎) is the old name of Uljin. As Uljin has many excellent natural scenes such as Bulyeong valley, Seongryu cave and Mangyang bower, Seong had visited them and described their charms in poems. He also had often called at on business the local government office of Wonju where his master Kim Jun(金焌) had stayed. Seong met Min Baek-sun(閔百順), Im Bae-hu(林配垕) and An Seok-gyeong(安錫儆) at Seomju(蟾洲) on the introduction of Kim Jun to discuss on the Book of Changes. Seong and three men had wrote one hundred or more poems during their sight-seeings to nearby Munjeon temple(汶田巖) and Chuibyeong mountain(翠屛山), which poems account for the major portion of 『Seonsamanrangjip』. As Seong proceeded his office in Uljin not long after accompanying Gyemi year delegation to Japan, 『Seonsamanrangjip』 uniquely contains the poems that he wrote with Jo Eom(趙曮), the official envoy, and Won Jung-geo(元重擧) the secretary who shared the good times and the bad times with him for 11 months. Because Jo Eom and Won Jung-geo had become his life long acquaintances and companions after forming ties for the first time at the delegation, Seong fully expressed the memories and yearnings for them in his works. Seong's Uljin office term, being followed by his pass of ranking officials exam and Gyemi year delegation accompanying, was the time he won recognition from King Jeongjo as well as reputation from many people for his genuine learning and archaic texts. In other words, it was the period in which he had ardent passion for learning and had pursued sublime mental world. As such basis was well expressed in 『Seonsamanrangjip』, it must be a very important and helpful material to find out his academic inclination, mental world and companionship in his manh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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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본 성해응의 복수론

          孫惠莉(Son, Hye-ri) 진단학회 2012 진단학보 Vol.- No.115

          硏經齋 成海應(1760~1839)은 유교적 가치 이념을 충실히 수행한 하층민들을 포착하여 그들의 사적을 전과 기사 및 인물지 등의 서사양식에 담아내는데 있어 ‘復?'를 중요한 장치로 설정하였다. 충효열 등을 실천하기 위한 주체자의 복수 행위를 문학적으로 적극 형상함으로써, 그 사적과 주제의식을 보다 생동하고 효과적으로 부각시킨 것이다. 金銀愛와 江上孝女, 甲은 나이어린 연약한 여인들로써 정절과 효와 충의를 지키기 위해 직접 칼로 원수를 죽이거나 또는 무기는 아니지만 殺性을 지닌 역병으로 죽은 자의 四肢를 이용해 원수를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萬石은 직접 원수를 죽인 것은 아니지만 범상치 않은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법에 의거하여 주인의 원수를 갚았다. 즉 성해응은 나이어린 연약한 여인과 미천한 노복들이 충효열을 실천하기 위해 복수를 감행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여 문학작품으로 형상하였다. 충효열을 지키기 위해 원수를 직접 죽이는 등의 복수를 허용한 것이다. 그런데 성해응은 복수에 대한 의론을 본격적으로 펼친『復?議』에서 有司가 논의하여 임금이 사면을 판결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채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사면받은 崔玉函을 찔러 죽인 石致圭를 비판하였다. 법에 의거하지 않은 개인의 사적인 복수를 반대한 것이다. 따라서 억울한 일이 생겼을 경우 官에 고소하여 법에 의해 복수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김은애와 강상효녀, 갑의 경우처럼 법에 의해 복수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특히 나이 어린 연약한 여성들이-에는 개인의 사적인 복수를 한정적으로 허용하였다. Yeongyeongjae(硏經齋) Seong Hae-eung(成海應, 1760~1839) set up ‘revenge' as an important mechanism to write on the deeds of the lower class who performed well Confucian values and ideas into some descriptive modes such as life(傳), story(記事) and who's who(人物誌). By aggressively embodying the revenge acts done in order to practice loyalty, filial piety and chastity. Seong highlighted their deeds and thematic sense more lively and effectively. Kim Eun-ae(金銀愛), Gangsanghyonyeo(江上孝女) and Gap (甲), all being young and frail woman, stabbed enemies to death in person to preserve their chastities, filial piety and loyalty or made enemy die of a plague using the corpse died of a fatal plague. Manseok(萬石), though not killed the enemy in person, revenged his master through by legal procedure with remarkably independent and aggressive actions. Highly rating the revenges that frail women and humble servants conducted to fulfill Confucian virtue. Seong embodied them in his literary works. He accepted the revenge, like killing the enemy in person, if it were done to preserve chastities, filial piety or loyalty. In『Boksuui(復?議)』, his book that deals with revenge in earnest, he criticized Seok Chi-gyu who stabbed Choi Ok-ham to death to revenge his father though Choi Ok-ham was pardoned by king after the discussion with relevant authorities. Thus, Seong did oppose the private revenge without recourse to law. However, in case that there was no chance to revenge legitimately in accordance to law, like Kim Eun-ae, Gangsanghyonyeo and Gap, particularly weak women, Seong allowed private revenge by self-help to a limited ex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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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성(靑城) 성대중(成大中)의 사론(史論) 산문(散文) 연구(硏究) - 『청성잡기(靑城雜記)』 「췌언(췌言)」을 중심으로

          손혜리 ( Hye Ri Son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2 大東文化硏究 Vol.0 No.80

          본고는 『청성잡기(靑城雜記)』 「췌언(췌言)」에 수록된 성대중(成大中)의 사론(史論) 산문(散文)을 대상으로 주제의식 과 형상화 양상 등 문예미에 대해 논의한 글이다. 성대중의 사론 산문은 이덕무의 평비가 편마다 부기되어 있어 성대중의 저술의도와 문학적 역량을 파악하는 데 도 움을 준다. 그의 사론 산문은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진한인폭(秦漢仁暴)>와 <상주(商周)>에서는 유구한 세월동안 절대적 권위를 차지했던 역사적 인물과 사적에 대하여 기왕의 평 가에 견인되지 않고 역사 현실과 그 이면에 대한 냉철한 통찰과 분석을 바탕으로 새 로운 해석과 평가를 시도한 결과 논리적 설득력을 확보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의론을 펼쳐내었다. 성대중 사론 산문의 특장이 잘 드러난 수작(秀作)들이다. 둘째 <한신(韓信)>·<전횡(田橫)>·<리좌거(李左車)>·<전연년(田延年)>에서는 이들의 성패(成敗)를 통해 정명(正名)과 시의적절(時宜適切)한 진퇴(進退)를 강조하여 후세 신하된 자들의 처세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를 위해 다양한 논 거를 들고 대비(對比)와 유비(類比)의 기법을 적극 활용하여 의론을 논리적으로 설파하였다. 이 중 <한신>·<전횡>·<전연년>은 『청성집』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사론 산문 중에서 도 의론이 엄정하고 문체가 아순한 글들이 『청성집』에 수록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 다. 셋째 <초한성패(楚漢成敗)>와 <동공(董公)>에서는 인재의 등용과 활용을 통한 군주의 이상적인 治世에 대해 논의한 뒤 한 국가의 성패는 훌륭한 인재의 등용여부에 달려있음을 주장하였다. 넷째 <평발(平勃)>과 <진초보부(秦楚報復)>에서는 ``보복``과 ``보복이 순환``하는 속성을 포착하고 다양한 예를 제시하여 권선징악이라는 역사적 이상을 강조함으로써 군주의 치세와 신하의 처세에 보다 신중할 것을 권계하였다. This article examined the literary beauty of Seong Dae-jung`s 11 historical essays contained in the 「Chwe·oen(췌언) (췌言)」 of 『Cheong·seong·jap·gi(청성잡기) (靑城雜記)』, focusing on theme sense and imagery aspects. The reviews of Yi Deok-mu that were accompanied on each essay made it easy to understand the purposes of writing and literary capability of writer. Seong`s historical essays can be classified into four groups. The first group includes <Jin·han·in·pok(진한인폭) (秦漢仁暴)> and <Sang·ju(상주) (商周)>. In the two essays, Seong tried to newly interpret and assess historical figures and scenes that had great authorities in the long time, not constrained by former assessments but based on sober insight and analysis on historical realities and their hidden sides. In consequence, he secured logical persuasions and put forth successful discussions. They are masterworks that show well the strong points of Seong`s historical essays. The second group includes <Han·sin(韓信)>, <Jeon·hoing(전횡) (田橫)>, <Yi·ja·geo(리좌거) (李左車)> and <Jeon·yeon·nyeon(전연년) (田延年)>. In these essays, Seong highlighted the correct justification and timely moving-forward or back decisions of vassals from their successes and failures, giving many suggestions for future generations to get along in the public office world. He argued logically by presenting various grounds and using comparison and exemplification method actively. <Han·sin>, <Jeon·hoing> and <Jeon·yeon·nyeon> are contained in 『Cheong·seong·jip(청성집) (靑城集)』. Articles of strict argument and dignified style among Seong`s historical essays were found in that book. The third group consists of <Cho·han·seong·pae(초한성패) (楚漢成敗)> and <Dong·gong (동공) (董公)>. Seong discussed in these essays how kings could develop ideal ruling through the selection and use of the talented people, and argued the success of a nation are up to the appointment of the talented people. The fourth are <Pyeong·bal(평발) (平勃)> and <Jin·cho·bo·bok(진초보부) (秦楚報復)>. He pointed out the attribute of revenge and revenge`s vicious circle, and emphasized the good triumphing over the evil, that is, his historical ideal, with many examples. Through it, he recommended that kings should be more careful in ruling while vassals in getting along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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