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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천의 누정(樓亭) 제영시고(題詠詩攷)

          이동재 ( Dong Jae Lee ) 근역한문학회 2014 漢文學論集 Vol.38 No.-

          본고는 서천군 누정의 현황을 살펴보고, 이곳에서 지어진 누정 제영시에 대해 개관해 보았으며, 이어 망해정과 동백정에서 지어진 제영시의 내용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서천군의 누정은 白沙亭, 望海亭, 龜葉亭, 龍鶴亭, 翠□亭, 天然亭, 耀德樓, 受降樓, 百乘樓, 戌鼓亭, 冬柏亭, 觀海亭, 栽松亭, 등이 있었으나, 현재까지 남아있는 누정은 동백정이 유일하다. 또한 대부분의 누정은 관아의 부속 건물로서 지방 官長의 휴식과 유흥, 그리고 접빈의 공간이었으며, 동백정처럼 바닷가에 조성된 누정은 주로 관광과 遊息의 공간이었다. 서천의 누정 제영시는 망해정과 동백정, 그리고 관해정의 제영시만 남아있다. 작자들은 지방의在地 양반들이 아닌 중앙의 유력한 문관으로서 이곳을 巡幸하거나 遊息을 위해 찾아온 문인들이었다. 현재까지 地誌와 개인문집에 전하는 제영시는 망해정 18수, 동백정 13수 등이 전하며, 지지에 전하는 관해정시는 제영과 관련이 없는 비인현의 정치상황과 풍토를 읊은 시이다. 서천의 누정 제영시가 30여 편에 불과한 것은 이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누정이 적었고, 또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어 유지된 누정이 없었던 것에서 기인한다. 망해정 제영시는 망해정이 순전히 관아의 公□였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주로 충청도관찰사나 이웃 고을의 지방 관장들이 찾아와서 李穡의 原詩에 차운하여 공무에 지친 관원이 일탈적 기분을 드러내거나, 이곳의 승경에 대한 찬사로서 신선의 세계를 차용하여 묘사하였다. 그리고 동백정 제영시는 동백정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승경의 공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가 지어지지는 않았으며, 지어진 시의 대부분이 탈속적 내용보다는 동백정의 뛰어난 승경을 칭찬하였다. 지역사회 누정의 문화사적 의미와 특징을 이해하는 것은 지역민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연대감을 형성하는데 기여할 것이며, 나아가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는 관광객의 유치에 따른 지역경제 발전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This paper takes a look at the conditions of pavilions in Seocheon-gun and aspects of their changes, outlines Jeyeong poems created there and the writers, and examines the contents and characteristics of the Jeyong poems created at the pavilions, Manghaejeong and Dongbaekjeong.Though in the past there were Baeksajeong, Manghaejeong, Guiyeopjeong, Yonghakjeong, Chieupjeong, Cheonyeonjeong, Uryeonjeong, Yodeokru, Suhangru, Baekseungru, Sugojeong, Dongbaekjeong, Gwanhaejeong, Jaesongjeong, etc in Seocheon-gun. the only pavilion surviving so far is Dongbaekjeong in Biin. Also, most pavilions were annexes to government offices, spaces where guests were entertained and county governors took a rest and enjoyed entertainment, and pavilions built on beaches like Dongbaekjeong were spaces for tourism and leisure.As for Jeyeong poetry in Seocheon, there are only Jeyeong poems for Manghaejeong, Dongbaekjeong, and Gwanhaejeong left. Most of the writers of the poems were not the nobility residing in the county, but men of letters who were central power men with the status of governor making a tour in the county or visiting there for tourism and leisure. So far, 18 poems for Manghaejeong and 13 for Dongbaekjeong in have been descended in geographic documents and personal literary collections. The Gwanhaejeong poems descended in geographic documents are those that sing the political situations and atmosphere of Biin-hyeon, in no relation with Gwanhaejeong Jeyeong.The reason why we have only about 30 Jeyeong poems for pavilions in Seocheon is that there have been fewer pavilions in this area than in other areas, and there have not been pavilions that have been maintained for long. In Manghaejeong Jeyeong poems, mainly Chungceong-do governors or heads of neighboring towns visited here and adapted Saek Lee’s original poems to reveal their deviant feelings as tired of official jobs or employed the Taoist world to pay their tribute of praise to the view of this place because Manghaeheong was not a pavilion built by a home-returned figure due to his political failure or frustration but a place exclusively for government offices. As for Jeyeong poems for Dongbaekjeong, not many poems were wrote despite the fact that its view was brilliant due to its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and most of the created poems praised its outstanding view rather than addressing unworldly contents. Understanding of cultural historical meanings and characteristics of local pavilions will not only bring about local people’s pride but also make a contribution to forming their consolidations, and furthermore, making our cultural heritage tourist resources will be helpful for the development of local economy owing to attraction of tour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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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 : 문학과 일상, 혹은 비일상 ;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를 통해 본 17세기 초 영남 사족의 일상 속의 문화생활

          윤성훈 ( Sung Hoon Yoon ) 근역한문학회 2012 漢文學論集 Vol.35 No.-

          『조성당일기』는 김택룡(金澤龍, 1547~1627)이 쓴 일기로서 총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권은 1612년(광해군 4년, 김택룡 66세), 제2권은 1616년, 제3권은 1617년에 쓰여 졌다. 김택룡은 매일의 일상을 자세하게 기록하였고,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을 남기기 위해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따라서 현재 전래되는 일기는 전체 일기 중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택룡은 퇴계 이황의 제자인 월천 조목의 수제자였으며,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에서 관직도 지냈다. 그의 집안은 조상 대대로 경상도 예안(禮安) 한곡(寒谷)에 거주했는데, 그는 한곡 이외에도 영주(榮州) 순흥 부근에 세 군데의 집이 더 있었다. 이곳은 사망한 전처 및 소실의 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곡 본가와 이 집들 주변에는 경작지가 산재되어 있어 이곳에서 산출되는 농작물이 그의 주된 소득이었다. 그 밖에도 경상도 북부 이곳저곳에 시집간 딸들과 출계한 아들이 살고 있어 이들과 자주 왕래했다. 친족 이외에도 그는 지역 사람들과 폭넓은 만남을 자주 가져서, 도산서원 및 역동(易東)서원 관계자, 가르침을 구하러오는 유생, 지역의 명사들, 지역의 지방관 등과 끊임없이 교류했다. 그의 일상은 만남과 교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김택룡의 말년에 쓰인 이 일기는 한 개인의 일기를 넘어 당시 지역에서 사회적으로 매우 높은 지위에 있던 사족(士族)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표본이 된다. 『조성당일기』에는 김택룡이 일상속에서 향유했던 문화생활의 모습들도 다수 담겨 있다. 우선 그가 읽은 서적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성리학이나 도학 관련 서적은 거의 보이지 않고 주로 문장 학습과 관련된 책이 많다. 그의 문학적 관심은 주로 ``시``에 있었고, 산문은 사장(詞章) 혹은 역사에 관한 것이 많았다. 그에게는 가르침을 구하러 오는 유생들도 많았는데, 교육은 주로 과거 시험 준비를 위한 역사 고사와 문장 교육에 치중되었다. 김택룡의 문집인 『조성당집』에는 이백 여수의 시가 실려 있는데, 일기에도 종종 시가 등장하고 있어 그의 시에 대한 높은 관심을 잘 알 수 있다. 『조성당일기』에는 자연을 완상한 기록도 자주 등장한다. 소백산과 같은 지역의 명승지를 유람하기도 했지만, 그는 주로 집 주위의 대(臺)나 시내를 소요하며 소박한 자연미를 즐겼다. 『조성당일기』 전체에서 문화생활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당시 지역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상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어 그 자료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A Diary of Choseongdang(操省堂日記) was written by Choseongdang Kim Taekryong(金澤龍, 1547 ~ 1627). It consists of three volumes. The first volume was written in 1612, and the second and the third in 1616 and 1617. He kept a diary everyday and tried to put on a detailed record. The existing diary is estimated a part of the whole. Kim was the pupil of Wolcheon(月川) Cho Mok (趙穆) who was also the student of Toegyeo(退溪) Yi Hwang(李滉).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and entered government service. His family had lived for generations and owned a house in Hangok(寒谷) of Yean(禮安) of Kyeongsang province, and he also three more houses in Sunheung(順興) area of Yeongju(榮 州). These houses were originally owned by his dead wife and two concubines. Around his houses were scatterd farms of his own that was his economical base. His married daughters and a son who was adopted by another family lived in northen area of Kyeongsang province. He met his family members of this area very frequently. He also kept a frequent meeting with the local people such as the personnel of Dosan(陶山) lecture hall and Yeokdong (易東) lecture hall, the students who came for his lesson, social celebrities, governers of his area, and so on. Meeting wa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his daily life. This diary contains a detailed record of these meetings. Kim Taekryong was a opinion leader and the one of the most influential people, and therefore this diary shows how the noblemen of Kyeongsang area lived a daily life. A Diary of Choseongdang contains the cultural life of Kim Taekryong. It shows what kind of books he read. The books in the diary were mainly literary and historical ones. The neo-confucianism books were scarcely seen in the dairy. There were many student who came for his lesson. His literary lesson was mainly focused on historical events and the art of writing for the state examination. Kim`s selection of literary works contains over two hundred poems, and this diary also contains several ones. This shows that his main interest in literature was a poetry. The diary also recorded his appreciation of nature. He went sightseeing for the area of scenic beauty such as Sobaeksan(小白山), but he mainly appreciated natural beauty in the vicinity of his house. He enjoyed to take a stroll in streams or hills around his house. A culture was a small component in his daily life, but considering his high cultural position in that time cases of cultural life in this diary can be estimated good examples for the study of the noblemen`s culture in 17th century`s Kyeongsang prov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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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선서(善書)의 간행 유통과 삽화의 활용

          정우봉 ( Woo Bong Chung ) 근역한문학회 2015 漢文學論集 Vol.42 No.-

          19세기 善書 제작과 간행 보급에 있어 조선의 편찬자들은 대중들에게 널리 읽히게 하기 위해 諺解本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삽화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초월적 존재를 경배하는 차원에서 聖像으로서 활용하기도 하며, 선악 행위와 그에 따른 인과응보를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의 일화로 기록하는 한편, 그 일화들을 한 장면 속에 묘사한 삽화를 적절하게 활용하였던 것이다. 19세기 중후반에 활발하게 제작 보급되었던 善書들에는 각종 삽화들을 풍부하게 수록해 놓음으로써 그 사상적 내용들을 보다 다양한 계층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였다. 善書의 간행 보급에 있어 삽화의 활용은 서지학, 도상서사학, 출판문화 등의 관점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19세기 선서에 수록된 삽화는 인물도상, 서사도상, 문양도상, 기타도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삼강행실도류의 삽화들이 일화 중심의 서사도상에 치중되었던 반면에, 善書 수록 삽화는 경배 대상으로서의 신적 존재를 초상화의 형태로 활용하기도 하고, 민간신앙의 기복적 성향을 반영한 부적 등의 문양을 활용하기도 하였으며, 그밖에 사당 건물, 대나무, 도장 등 다채롭게 도상을 활용하였다. 또한 중국 서적에 수록된 삽화를 복각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조선에서 자체적으로 판각한 삽화들을 다수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삽화들은 문자 텍스트와 결합하여 조선의 토착화된 선서 제작 및 보급 유통을 더욱 촉진시켰다고 생각된다. 고종 연간 無相壇 소속 구성원들에 의해 편찬된 신형 善書는 그 제작 과정의 신이함을 여러 삽화를 통해 드러내 보임으로써, 조선에서 자체 제작한 경전으로서의 권위와 신성성을 확보하는 한편 종교적 신비 체험의 진실성을 보강해 주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many application methods of illustrations was appeared in goodness book(善書) in the 19th century. Goodness book focused on encouraging to do good. These books actively utilized the illustrations. I investigated goodness books which was included illustrations in late Joseon dynasty. And I had studied application method of illustrations. Application method of illustrations fall into four categories. Four categories is character, narration, pattern and etc. Until the 19th century narration illustration was usually used. But new illustrations of character and pattern was used in various ways. Some publishers of goodness book made the best use of illustrations to adore God and to pay their respects. And they utilized talisman illustrations from a religious point of view. Especially they made goodness book and illustration native to Joseon instead of reprinting Chinese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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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투고논문 : 『초간독(草簡牘)』 연구(硏究) -구성(構成)과 형식(形式)를 중심(中心)으로-

          박상수 ( Sang Soo Park ) 근역한문학회 2012 漢文學論集 Vol.35 No.-

          20세기 초중반 베스트셀러였던 초서서식집인 『草簡牘』은 당시 사람들에 의해 일상의 글쓰기에 가장 유용하게 활용되었던 방각본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방각본은 당시 갑오경장을 거치면서 느슨해진 신분사회와 급증되는 도시화 속에서 내면의 眞性을 전달할 필요성에 의해 출간되었다. 이러한 문화적 분위기와 시대적 요구에 의해 출판되었던 방각본 간찰 서식집들은 皮封과 內紙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양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폭넓고도 다양한 서식을 정리한 것이 바로 『寒暄箚錄』이다. 『한훤차록』은 총 5권 3책으로 구성되었으며 피봉의 형식과 종류 등 다양한 격식에 어울리는 양식을 담고 있다. 『초간독』을 『한훤차록』과 비교한다면 그 양적인 면에서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편지쓰기의 서체인 草書로 구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間字, 擡頭, 改行 등 실제의 간찰에 1:1 대응이 가능한 양식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활용되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징을 담고 있는 『초간독』의 간행배경과 목적을 살펴보고 『한훤차록』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서식과 비교하여 『초간독』에서 다루고 있는 양식을 살펴보았다. The Choseo(書式) format collection 『Chogandok(草簡牘)』, which had been the best-seller in the early and middle stage of the 20th century, is one of Banggakbon(傍刻本), which had been applied most usefully to daily writing by people in those days. This Banggakbon(傍刻本:writing-letter guide books) was published by necessity of delivering true character of the inside amid the social-standing society, which got loosened while passing through Gapogyeongjang(甲午更張), and amid the urbanization, which is growing rapidly. The Banggakbon(傍刻本) Ganchal(簡札) format collections, which were published by this cultural atmosphere and historical demand, are arranging Pibong(皮封) and Naeji(內紙) with diverse forms available for properly coping with a situation. What arranged the most extensive and diverse formats even amid it is just 『Hanhwoncharok(寒暄箚錄)』. Hanhwoncharok(寒暄箚錄) was composed of totally 5 volumes and 3 books, and is containing a form suitable for diverse formalities such as a form and a kind of Pibong(皮封). Comparing Chogandok (草簡牘) with Hanhwoncharok(寒暄箚錄), it is a little dropped in its quantitative aspect, but can be said to be characterized by containing a form available for 1:1 coping with real Ganchal(簡札) such as Ganja(間字), Daedu(擡頭), and Gaehaeng(開行), as well as being formed with Choseo(草書), which is a general letter-writing style. This is also a reason that had been widely utilized by many people. It examined the background and the objective of publishing 『Chogandok(草 簡牘)』, which contains this characteristic, and inquired into a form, which is being addressed in 『Chogandok(草簡牘)』, in comparison with diverse formats that are being addressed in 『Hanhwoncharok(寒暄箚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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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의 심리 변화에 대한 조선 문인의 인식

          장유승 ( Yoo-seung Jang ) 근역한문학회 2016 漢文學論集 Vol.44 No.-

          이 논문은 신체적 노화에 따른 심리적 변화에 대한 조선시대 문인들의 인식을 고찰한 것이다. 성리학의 일원론적 심신관계론에 따르면 몸과 마음은 기(氣)의 서로 다른 측면이며, 신체적 노화는 심리적 변화를 동반한다. 노화는 혈기(血氣)의 쇠퇴를 초래하며, 혈기는 욕구의 원천이자 욕구를 억제하는 힘의 원천이므로 혈기가 쇠퇴하면 도덕적 의지와 실천력도 쇠퇴한다. 성리학에서는 신체적 노화와 무관한 마음의 본질인 ``지기(志氣)``를 상정하고 ``지기``의 확립을 통해 노화로 인한 도덕적 타락을 막도록 요구하였으나 이는 관념적 이상에 불과하였다. 노화는 도덕적 타락과 더불어 극심한 감정의 기복을 초래하기 쉽다. 예민한 감수성은 여러 문학적 전범에서 노년의 감정적 특징으로 지목되곤 하였다. 조선 문인들은 이러한 문학적 전범을 통해 노년의 예민한 감수성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다. 송시열은 이별을 맞이하거나 지인들의 죽음을 접하는 상황에서 노년의 예민한 감수성을 자주 언급하곤 하였는데, 이별과 죽음이 그의 감수성을 자극한 이유는 결국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음이 늙지 않고 오로지 성숙을 거듭한다는 믿음은 이분법적 심신관계론에 입각한 서구 철학의 산물이다. 노화가 마음에 미치는 부작용을 외면한 채, 오로지 긍정적인 측면만 바라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신체적 변화는 반드시 심리적 변화를 동반한다는 전제 하에서 노화에 따른 도덕적 타락과 극심한 감정 기복을 경계한 조선시대 문인들의 심신관계론은 이 점에서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This thesis examines the understanding of Cho son literati with respect to psychological changes by owing to physical aging. Based on the theory of mind-body relation of New-Confucianism, physical aging is accompanied by a psychological changes. According to this theory, aging triggers deteriorating vigor as well as deteriorating moral will and power of execution. In addition to moral depravity, what is mostly brought up an emotional property of advanced age is sensitivity. Through literature, Cho son literati were somewhat aware of sensitivity in old ages. Song Si yeol(宋時烈) frequently mentioned such sensitivity during events of farewells or death of friends. There a son parting and deaths stimulated his sensitivity is believed to be associated to his awareness of his death. The belief that mind is not aged but matured is a product of We stern philosophy founded on the dichotomous mind-body relation. Today, the mind-body relations put forth by Cho son literati is highly signific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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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 : 조선시대 필기,야담집 속 유구(琉球) 체험과 형상화

          김정숙 ( Jeong Suk Kim ) 근역한문학회 2011 漢文學論集 Vol.32 No.-

          조선의 대외관계와 관련된 연구는 지나치게 중국과 일본에 치중되어 있다. 조선과 유구는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1389년부터 1868년까지 간접적이나마 교류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사신의 傳言이나 표류민의 체험을 통한 인접국에 대한 정보를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조선 문인들은 유구를 직접 체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로 중국의 문헌을 통해 유구를 선 이해하고 유구 사신과의 만남을 통해 지식을 재확인하는 방식을 취했다. 따라서 이들의 시선은 중국의 시각이 다분하여 유구를 폄하하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는 중국 사행시에 조선 사신들이 지녔던, 유구에 비해 조선이 우월하다는 소중화 의식과도 상통한다. 이들의 유구인식이 다분히 간접적, 추상적이었음에 비해 유구를 직접 체험한 표류민의 유구관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조선과 유구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활발했던 15세기 유구는 조선으로부터 많은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얻고 있었던 터라 조선의 표류민들이 유구에 도착했을 때 상당히 환대를 한다. 표류민들이 유구에서 경험했던 이와 같은 극진하고 친절한 대우는 유구를 하나의 이상적인 공간으로 인식하게 하여, 성품이 유순하고 황금이 넘치는 낙원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이는 이전에 중국 문헌에 입각한 유구관-好戰的이고 잔혹하며 食人의 풍속을 지닌 미개한 나라-과는 전혀 다른 인식이다. 하층민이 주를 이루는 표류민들의 실제 체험과 傳言을 통해 형성된 널리 유구관은 널리 유포되어 필기·야담집에 환상적이고 신비스러운 나라, 異人이나 眞人, 神仙界의 인물로 그려졌다. 특히 『동야휘집』의 「신희복」 이야기에서 묘사된 이상향으로서의 유구와 귀양온 선녀로 설정된 유구국 공주에서 당대인들의 유구관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표류민들의 歡待 경험이 축적되고 거기에 상상력이 더해져서 유구가 하나의 이상향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니, 실제와는 차이가 있더라도 이것이 당대 일반인들의 유구관이었다. The previous studies on Chosun`s diplomatic relationships have been severely focused on its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China and Japan. Although it is true that Chosun did not have active diplomatic relationships with Ryukyu, it maintained indirect exchange relationships with it from 1389 to 1868 and accepted information about its neighboring nations through the envoys` words and the castaways` experiences sensitively. Chosun`s literary figures did not have first-hand experiences with Ryukyu, thus resorting to the Chinese books and materials about it to understand it. They also reconfirmed their knowledge acquired through such a way by meeting with Ryukyu envoys. Therefore, their views of Ryukyu contained many elements of the Chinese views and thus contained words that devalued it, which is in line with the Chosun envoys` identification of themselves as people of Small China and belief that Chosun was superior to Ryukyu during their missions in China. While their perceptions of Ryukyu were very second-hand and abstract, the castaways that had first-hand experiences with Ryukyu were highly positive about it. In the 15th century when there were active exchanges between Chosun and Ryukyu, Ryukyu received lots of economic and political benefits from Chosun. Thus when Chosun castaways reached Ryukyu, they received a big welcome from the Ryukyu people, whose extreme and kind treatments, in turn, made the Chosun castaways regard Ryukyu as an ideal land. As a result, they started to describe it as a paradise full of gold and its people as gentle. They were completely different perceptions of Ryukyu from the ones based on the Chinese books and materials, which basically saw Ryukyu as a barbarian country whose people were warlike, cruel, and cannibal. Such views of Ryukyu as were formed through the actual experiences and words of the Chosun castaways who were in the lower social class were widely spread, and Ryukyu was described as a fantastic and mysterious land and the Ryukyu people as different or true people from a new world in Chosun Pilgii and Yadam. The contemporary Chosun people`s views of Ryukyu were clearly demonstrated in the Shinheebok Story of Dongyahuijip where Ryukyu was described as an ideal land and a Ryukyu princess as a fairy living in exile. As the hospitality the castaways experienced accumulated and imagination was added to it, Ryukyu became an ideal land. Those were the views of Ryukyu the contemporary Chosun people had even though they were different from real Ryu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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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투고논문 : 기암(畸庵) 정홍명(鄭弘溟)의 부(賦)와 산문(散文)에 대한 일고찰(一考察)

          김광년 ( Kwang Nyeon Kim ) 근역한문학회 2016 漢文學論集 Vol.43 No.-

          본고는 鄭弘溟의 부 및 산문의 성격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삼고, 그의 산문론과 작품세계를 구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산문 학습에 있어서 전범의 균형적 참조를 강조하였고, 실제 창작에서는 함축미를 갖춘 古體의 문장을 추구하였다. 정홍명은 辭賦에 특히 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본고에서는 사부의 대표작인 「瑞石山 賦」을 비롯하여 「續招」등의 작품을 통해 정홍명의 부가 보여주는 호방한 기상을 분석해보았으며, 그러한 기상을 드러내는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로 치밀한 묘사를 언급하였다. 정홍명의 산문은 주제 및 소재, 기법 등 다양한 측면에서 『莊子』의 영향이 짙게 보이고 있다. 『장자』의 활용은 단순히 표현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산문의 주제의식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진한고문과 당송고문을 균형적으로 학습했던 결과로 산문에서 다양한 고전 작품들을 다채롭게 인용하였다. 이점은 그의 산문관이 실제 창작에까지 이어진 사례로 볼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depict characteristics of Jeong Homgmyeong’s fu and prose. Jeong emphasizes the balanced reference to canons in prose learning, and seeks a sentence of Guti(古體) with the beauty of comprehension in the actual creation. He is considered particularly great at Cifu(辭賦). In this paper, I analyzed his masterpiece in Cifu work, Seoseoksan-Fu(瑞石山賦) and Sokcho(續招), and figured out that His Cifu works shows magnanimous sprits through the precise depiction. His prose was deeply affected by Zhuangzi(莊子) in various aspects such as themes, materials and technique. Use of Zhuangzi does not only stay at the level of representation but much influence on the subject of consciousness. He also colorfully cited a variety of classic works in his prose as a result of having learned in the period of Qinhan(秦漢) and Tangsong(唐宋). It can be seen as an example of realizing his perspective on prose in his acual creation of works.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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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 문학의 통속화, 통속의 문학화 : 삼괴당신종호한시(三魁堂申從濩漢詩)의 풍류적(風流的)면모 -염정시(艶情詩)를 중심으로-

          이재숙 ( Jae Sook Lee ) 근역한문학회 2014 漢文學論集 Vol.39 No.-

          본고는 15세기 관료문인인 삼괴당 신종호의 염정시를 대상으로 작품 창작 동기를 살펴보고 관능적 여성의 형상화에 나타나는 통속성과 문예미를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정통 한시에서 빗겨있거나 가치 폄하된 통속적 염정시의 미적 특질과 한계성을 정리해보고자 하였다. 신종호의 염정시는 15세기 관료문인의 자유분방하고 탄력적인, 또 雅俗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성이 주목된다. 사대부들에게 있어 사랑의 감정과 여성 육체에 대한 탐닉, 性의 표현은 일반적으로 자유롭지 못했으나, 신종호의 문집에는 다수의 애정시가남아있다. 첫째, 신종호의 염정시는 함께 격의 없이 지냈던 벗들과 일탈적 유흥을 배경으로 장난기 가득한 戱作的경향이 두드러진다. 이에 연정의 풍류를 즐기며 아름다움을 찾는 면면의 애착이 염정시 창작으로 이어지고, 관인으로서의 형식적인 문학 활동과 구별되는 문예미를 추구한 흔적이 엿보인다. 둘째, 신종호의 염정시는 관능적 여성의 아름다움을 머리 모양과 머리 장식을 통해 섬세한 문예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들은 여성의 정조와 관련해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데, 이를 바라보는 남성 시인의 시선은 본능적 욕망과 함께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또한 사랑의 공간과 침실에 배치된 다양한 여성들의 소품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관능적 여성의 俗趣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염정시를 통해 표현된 화려하고 고운 것들에 대한 섬세한 문예미는 그와 반대되는 작자의 심경을 역설적으로 돌이 켜보게 한다. 일반적으로 염정시는 시어의 운용과 선택에 있어 규방의 소품과 여성의 장신구 등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전형적인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소재들은 기본적으로 남성이여성에 대한 속물적 연정과 탐닉의 俗性을 내포하고 있다. 염정시에 사용된 시어와故事는 정통 한시의 다양한 양상과 표현기법에 비해 상투적인 언어와 기법을 주축으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희성과 해학성에 의해 일상의 긴장과 엄정성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의 감정을 허심탄회하게 펼쳐 풍부한 美感을 함축하고 있다. 또 사대부로서 사랑의 감정과 여성에 대한 표현은 주로 ‘꽃’을 매개로 이중적 함의를 갖고 있다. 이러한 유희성과 이중적 함의가 가져다주는 모호성은 속물적 남성의 염정을 문학적으로, 심미적 시세계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This piece of writing looked into the motive of creative writing targeting Yeomjungsi (Love Poem) by Samgoedang Shin, Jong-ho who was an official-literary person in the 15th century, considered the popular nature and beauty of literary art that are exposed in the embodiment of a voluptuous woman. Through this, this writing is intending to organize aesthetic characteristics and limitations of a popular love poem which was deviant from a legitimate Chinese poem or whose value was denigrated. It has been brought to this author’s attention that the love poem written by Shin, Jong-ho represents the 15th century official-literary writers’ carefree, flexible traits and diversity which crossed the borderline between something lofty and something vulgar. To the Literati Society, a feeling of love, indulgence in a woman’s body and sex expression weren’t free in general, but there still remain a large number of love poems in Shin, Jong-ho’s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First, Shin, Jong-ho’s love poems stand out as writing-for-amusement-based tendency full of mischief against a backdrop of deviant amusement with his friends, to whom Shin, Jong-ho was free and open. Hereupon, every single aspect of attachment of seeking beauty while enjoying the taste for burning love was linked to creative work of love poems, and seen are the vestiges of pursuing the beauty of literary art distinct from formal literary activities as an official. Second, Shin, Jong-ho’s love poems connotes delicate beauty of literary art by describing a sensual woman’s beauty through hairstyle and tire. They have an important symbolic meaning in relation to a woman’s chastity, and a male poet’s eyes are expressed metaphorically together with his instinctual drive. In addition, Shin, Jong-ho renders a voluptuous woman’s vulgar taste connotatively by describing a women’s various small articles placed in the love space and bedroom. The subtle beauty of literary art of gorgeous and lovely things expressed through love poems makes us paradoxically look back on the writer’s feelings which are opposite to it. Generally, a love poem shows a typical aspect where small articles in women’s quarters and a woman’s accessories frequently appear in the application and choice of poetic words. Basically, such materials connote a man’s snobbish affection and attribute of indulgence for a woman. The poetic words and ancient events used in love poems are formed around stereotyped languages and techniques in comparison with diverse aspects and expression techniques of orthodox Chinese poems. Nevertheless, they connote a rich aesthetic feeling by spreading out a free human’s feelings open-mindedly away from tension and exactness of a daily routine by virtue of pleasure and a vein of humor. In addition, the expression of romance and a woman as the gentry(Sadaebu) has the dual implication This piece of writing looked into the motive of creative writing targeting Yeomjungsi (Love Poem) by Samgoedang Shin, Jong-ho who was an official-literary person in the 15th century, considered the popular nature and beauty of literary art that are exposed in the embodiment of a voluptuous woman. Through this, this writing is intending to organize aesthetic characteristics and limitations of a popular love poem which was deviant from a legitimate Chinese poem or whose value was denigrated. It has been brought to this author’s attention that the love poem written by Shin, Jong-ho represents the 15th century official-literary writers’ carefree, flexible traits and diversity which crossed the borderline between something lofty and something vulgar. To the Literati Society, a feeling of love, indulgence in a woman’s body and sex expression weren’t free in general, but there still remain a large number of love poems in Shin, Jong-ho’s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First, Shin, Jong-ho’s love poems stand out as writing-for-amusement-based tendency full of mischief against a backdrop of deviant amusement with his friends, to whom Shin, Jong-ho was free and open. Hereupon, every single aspect of attachment of seeking beauty while enjoying the taste for burning love was linked to creative work of love poems, and seen are the vestiges of pursuing the beauty of literary art distinct from formal literary activities as an official. Second, Shin, Jong-ho’s love poems connotes delicate beauty of literary art by describing a sensual woman’s beauty through hairstyle and tire. They have an important symbolic meaning in relation to a woman’s chastity, and a male poet’s eyes are expressed metaphorically together with his instinctual drive. In addition, Shin, Jong-ho renders a voluptuous woman’s vulgar taste connotatively by describing a women’s various small articles placed in the love space and bedroom. The subtle beauty of literary art of gorgeous and lovely things expressed through love poems makes us paradoxically look back on the writer’s feelings which are opposite to it. Generally, a love poem shows a typical aspect where small articles in women’s quarters and a woman’s accessories frequently appear in the application and choice of poetic words. Basically, such materials connote a man’s snobbish affection and attribute of indulgence for a woman. The poetic words and ancient events used in love poems are formed around stereotyped languages and techniques in comparison with diverse aspects and expression techniques of orthodox Chinese poems. Nevertheless, they connote a rich aesthetic feeling by spreading out a free human’s feelings open-mindedly away from tension and exactness of a daily routine by virtue of pleasure and a vein of humor. In addition, the expression of romance and a woman as the gentry(Sadaebu) has the dual implication mostly by a medium of ‘flower.’ Ambiguity brought by such pleasure and dual implication could be judged as an important part that takes a snobbish man’s love to one step higher level of the aesthetic poetic world in a literary s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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