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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컬 문화지형과 지역학으로서 ‘영남학’의 위치

        박충환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20 嶺南學 Vol.0 No.73

        In the last couple of decades, there has been a boom of domestic area studies whose domain of analysis corresponds to various administrative units of Korean society. This article aims at critically examining Youngnamhak(Youngnam Studies) conducted by the Research Institute for Youngnam Culture(RIYC) in the context of the glocal cultural landscape of globalization and the theoretical, methodological, epistemological issues polemic in area studies in general. For this, it analyzes 78 volumes of book published by RIYC, major research projects conducted by RIYC, and 437 pieces of article published in Youngnamhak, the academic journal issued by RIYC. And then it illuminates the implications of the results of analysis in terms of spaciality, holism, and epistemology of area studies in general. The research findings are summarized into three points. Firstly, Yougnam area studies conducted by RIYC has more or less failed in properly representing the lives of people in Youngnam area due to its lack of theoretical and methodological concerns on the changing spatiality of area studies in the age of globalization. Secondly, Youngnam area studies conducted by RIYC have represented only a few facets of Youngnam culture in academically biased ways because it has not actually practiced the interdisciplinary and holistic approaches that RIYC proclaimed at the time of its establishment twenty years ago. Finally, due to its lack of concerns on the epistemological issues of knowledge production in area studies and its rather exclusive emphasis on insiders’ point of view, RIYC’s Youngnam area studies have been intellectually very parochial, seriously isolated from the global academic and practical issues. Based on this critical review, this article tries to offer an intellectual jumping board for a new momentum for the development of RIYC soon celebrating its 20th aniversary. 최근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수준의 행정단위를 공간적 매개로 하는 ‘자문화연구’ 지역학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연구의 목적은 국내 지역학 열풍의 시기에 수많은 자문화연구 지역학 분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해온 영남문화연구원의 영남학을 지구화시대의 글로컬 문화지형과 지역학의 이론적·방법론적·인식론적 쟁점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조명해보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영남문화연구원 설립 후 약 20년 동안 간행된 78편의 저역서, 연구원이 수행해온 연구 프로젝트, 그리고 연구원의 학술지인 『영남학』 70호까지 게재된 논문 437편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 분석결과를 지역학 일반의 공간성, 총체성, 인식론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한다. 이 연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영남문화연구원의 영남학은 지역학의 공간성과 그것을 둘러싼 이론적·방법론적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의 결여로 인해, 지구화시대를 살아가는 영남인들의 글로컬한 삶을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데 전반적인 한계를 보여준다. 둘째, 연구원의 개원 당시 지향점으로 삼았던 학제적·총체적 접근을 실제 연구활동을 통해 구현하지 못함으로써 영남문화를 매우 파편적이고 편향적으로 재현하는 경향성이 두드러진다. 셋째, 지역학적 지식생산이 수반하는 인식론적 문제에 대한 고민의 부재로 영남문화를 지나치게 내부자적인 관점에서 재현해왔고, 그 결과 글로벌 수준의 학문적·실천적 쟁점과 연결되지 못한 채 매우 국지적이고 고립된 문제의식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이러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영남문화연구원의 지역학적 지식생산 이면에 숨겨져 있는 잘못된 이론적 가정과 방법론적·인식론적 관행들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개원 20주년을 앞두고 있는 영남문화연구원이 지역학 연구소로서 새로운 정체성과 학문적·실천적 비전을 구축하고 제2의 도약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지적 발판을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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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문학 연구의 현황과 과제 -영남문화연구원을 중심으로-

        이상원 ( Sang Won Lee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6 嶺南學 Vol.0 No.29

        이 글은 영남문화연구원의 영남문학 연구 현황을 점검하고 향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본 것이다. 이를 위해 학계의 영남문학 연구 현황과 대비 고찰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먼저 학계의 영남문학 연구 현황을 구비문학, 고전시가 및 고전소설, 한문학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구비문학 분야에서는 인물전설, 서사민요, 동해안무가, 탈놀이 등이 주목되었다. 고전시가에서는 조선전기 사대부 시가와 조선후기 규방가사가, 그리고 고전소설에서는 작가와 작품배경 및 유통양상등에 연구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한문학의 경우 퇴계학, 남명학, 강안학, 산수문학 등이 특히 주목을 받은 분야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학계의 영남문학 연구 현황을 영남문화연구원의 영남문학 연구 현황과 견주어 보았다. 그 결과 영남문화연구원의 영남문학 연구 현황은 학계의 영남문학 연구 성과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향후 큰 분발이 요청된다 하겠는데, 이를 위해 집중해야 할 방향으로 구비문학 분야에서는 서사민요, 고전시가 및 고전소설 분야에서는 규방가사와 소설 유통, 한문학 분야에서는 강안학과 산수문학이 적합할 것으로 제시해 보았다. The purposes of this study were to check the current research state of Yeongnam literature at the Youngnam Culture Institute and propose its future directions by comparing it with that of academic circles. The study first categorized the current research state of Yeongnam literature in the academia into oral literature, classical poems and novels, and Chinese literature. In the area of oral literature, the focus was on legends of figures, narrative folksongs, shamanistic songs of East Coast, and mask play. In the area of classical poems, the focus was on the poems of noblemen in the former half of Joseon and the Gyubanggasa in the latter half of Joseon. In the area of classical novels, the research focus was on the writers, backgrounds of works, and patterns of distributions. Finally in the area of Chinese literature, the focus was especially on Toigye studies, Nammyeong studies, Gangan studies, and landscape literature. The study then compared the current research state of Yeongnam literature in the academic circles with that of Youngnam Culture Institute and found that the latter lagged far behind the former in research achievements. The institute is thus required to make more strenuous efforts in the future, and the study proposed its directions of focus in such efforts including narrative folksongs in oral literature, Gyubanggasa in classical poems, distribution of novels in classical novels, and Gangan studies and landscape literature in Chinese literature.

      • KCI등재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의 학술지에 대한 정량적 분석 - 창간호부터 제59호까지를 대상으로 -

        임종진 ( Lim Jong-jin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7 嶺南學 Vol.0 No.60

        2017년 3월은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의 학술지 발행 역사에서 새로운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왜냐하면 퇴계연구소는 그 동안 『한국의 철학』(창간호-제30호), 『퇴계학과 한국문화』(제31호-제47호), 『퇴계학과 유교문화』(제48호-제59호)로 이어지던 독자적인 학술지 발행을 중지하고,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하는 학술지인 『영남학』과 통합 발행하기로 하였는데, 최초의 통합 발행 학술지가 이때 발행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합발행을 통해서 한편으로는 경북대학교의 한국학 관련 연구역량을 결집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퇴계연구소가 학술지 단독 발행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나는 대신 학술대회나 단행본 및 총서 간행 등을 통해서 연구 활동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이제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여 이때까지 퇴계연구소에서 발행한 학술지에 대하여 정량적인 방식에 따라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것도 일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무엇보다도 퇴계연구소가 학술지를 통해 이룩한 업적과 성과를 재조명해 볼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그 한계점에 대해서도 반성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March 2017 will be recorded as a turning point for the publication history of the academic magazine of Toegye Institute of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Toegye Institute has stopped the publication of its independent journal that had been continued from PHILOSOPHY OF KOREA(Numbers 1 to 30), Toegye Studies and Korean Culture(Numbers 31 to 47), and Toegye Studies and Confucian Culture(Numbers 48 to 59), and decided to make joint publication with Youngnam Studies that had been issued by Youngnam Culture Institute. This joint publication has resulted the first emergence of joint academic journal, the result of which will provide a chance to concentrate diverse research abilities of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in regard to Korean studies. Also, it will reduce Toegye Institute from the burden of single-handed journal publication, and give chance to search new ways out for better research activities such as promotion of academic seminars, publication of single book or collected books. Thus, it will be meaningful to make diversified quantitative analysis of the hitherto published journals by Toegye Institute. Through this analysis, we can reexamine the achievement and fruits made by Toegye Institute`s publication of journal, and reflect on its limite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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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문화 연구에 대한 반성적 전망 -영남문화연구원의 연구를 중심으로-

        황위주 ( Wee Zoo Hwang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6 嶺南學 Vol.0 No.29

        본고는 영남문화연구원에서 지난 15년 동안 수행한 연구의 현황을 검토한 다음, 향후의 연구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 것이다. 영남문화연구원에서 그동안 수행한 연구 가운데 가장 주목할 성과는 ‘낙동강유역의 인간과 문화’‘고문서를 활용한 영남지역 생활문화 연구’ ‘영남지역 고문서 아카이브 구축과 계층별 생활사 연구’ ‘권역별 거점연구소 협동번역사업’ ‘경북 주요종가 소개책자 및 영상물 제작’ 등 5종이었고, 기타 ‘문헌·서지’ ‘인물’ ‘유물·유적’등에 관한 연구가 비교적 활발하였다. 그러나 이런 연구의 이면에는 장기지속적인 과제의 부족, 외부 의뢰에 편승한 수동적인 연구 편중, 연구대상 선택의 엄정성 부족 등과 같은 문제가 있었다. 향후에는 우선 이와 같은 기존연구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론을 가다듬는데서 시작해야 할 터인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콜로키엄의 활성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구체적 연구에 있어서는 현재 진행 중인 연구를 보완하고 확대하는 차원의 연구, 예컨대 ‘주요 문헌의 역주’ ‘종가 연구의 이론 보완과 아젠다화’ ‘인물 연구의 체계화’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겠고, 지금까지 유의하지 못한 대상, 예컨대 ‘정체성과 관련한 상주지역’ ‘대구 경북에서 주목받고 있는 세계문화유산’ ‘기존 연구에서의 소외지역’ 등의 연구에 특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모든 연구는 결국 인재 확보와 제도 정비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향후에는 이런 문제 해결에 연구 못지않게 유의해야 할 것이다. This paper examines Youngnam Culture Institute``s 15 years of research results, and presents the future research direction. The most noteworthy research achievements of Youngnam Culture Institute include the following five areas: Humans and Cultures in the Nakdonggang River Basin; Research on Yeongnam Region``s Lifestyle Culture Using Historical Documents; Construction of Archives of Yeongnam Region``s Ancient Historical Documents and Research on History of Lifestyles by Class of People; Joint Translation Project between Regional Hub Research Centers; and Production of Major Gyeongbuk Head Families Handbooks and Videos. Studies on other literature and biographies, historical figures, historical relics and remains have also been actively conducted. But, behind these studies were a lack of long-time projects, passive research activities based on external requests, and a lack of appropriate selection of targets of research. Future research should begin by improving the methodologies designed to overcome these research problems, and towards that end, first, colloquium should be activated. Also, withregard to specific research, there is a need to complement and expand ongoing studies, such as annotation of major literature, theoretical complementation for research on head families and putting them into /agenda, and systemization of research on historical figures. Further, there is a need to pay special attention to targets receiving little attention, such as Sangju related to stagnant development, World``s cultural heritages receiving attention in Daegu and Gyeongbuk, regions excluded from existing research. However, all studies should boil down to the securing of talented researchers and improvement of relevant systems. Thus, these problems should be tackled as hard as the research 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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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선비들의 구곡경영과 최남복의 백련서사

        이종호 ( Jong Ho Lee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0 嶺南學 Vol.0 No.18

        주희의 무이구곡 경영과 「무이도가」가 조선에 소개된 이후 한국의 구곡문화가 전개되었다. 초기 구곡문화의 전개는 15세기 영남사림파의 형성과 연계되어 있다. 성리학적 세계관을 공유한 영남사림은 은둔과 소요의 공간으로 구곡원림을 기획했다. 아울러 문학이나 회화, 건축 등을 통하여 구곡경영의 의의를 부각시켰다. 조선의 구곡문화는 조선중기 퇴계 이황을 만나면서 몇 가지 주요한 특징을 드러낸다. 이황은 구곡을 이상과 현실의 조화에서 이해했다. 도가적 별유천을 부정하고 현세에서 이상향을 찾으려했다. 이황은 주희의 「무이도가」가 주로 경치를 노래한 것으로 보아 도학적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않았다. 이황은 「무이도가」를 차운하고 도산서당을 중심으로 원림을 경영하여 영남학파 구곡시가 창작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율곡 이이는 직접 석담에서 구곡원림을 경영하면서 「고산구곡가」를 지어 기호학파의 구곡문화인식에 전범으로 작용하였다. 이이의 「고산구곡가」는 주자학의 조선적 전개를 표지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뿐 아니라 이황이 미처 성취하지 못한구곡문화의 토착화를 웅변하고 있어 문화사적 의의가 크다. 기호 서인들은 보고 배울 모델이 있었기에 구곡경영에 적극적인 편이었다. 반면에 이황이 몸소 구곡경영을 시범하지 않았기에 18세기 후반까지 영남의 구곡경영은 좀처럼 시도되지 않았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오면 영남선비들의 구곡경영과 구곡시가 창작이 활기를 띠어간다. 그 가운데서 최남복(1759~1814)의 구곡경영은 주목할 만하다. 최남복은 울산 반구대 주변에 백련구곡을 지정하고 백련서사를 경영했다. 백련구곡은 주희 이래 틀이 잡힌 구곡문학의 18세기 말기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최남복은 여러 편의 한시와 산문을 통해 백련구곡의 의미와 이상을 밝혔다. 최남복의 연화동천 경영은 혼란한 현실 상황을 단순히 도피하여 은둔하는 것에 목표를 두지 않았다. 그는 서학이 유교전통의 예교질서를 흔들고 당쟁의 편파적인 의론이 사대부의 은둔을 촉진하는 현실을 성리학적 이념으로 무장하여 극복하고자 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안정을 통해 육신의 병고를 다스리고자 하는 목적도 한 몫 했다. 장수와 유식의 공간인 蓮華書社에서 최남복은 독서와 강학을 통해 虎溪三笑로 유명한 慧遠法師의 晉代風流를 재현하고자 했다. 또한 연화동천의 산수경치를 폭넓게 감수함으로써 보다 심화된 天人合一의 경계에 다가서려 했다. 최남복은 백련동천에서 온갖 시름과 번뇌가 소거된 淸虛한 경지를 보고 싶어 했다. 요컨대 최남복의 구곡경영은 난세에 明哲保身하는 한 가지 방편으로 추구된 측면이 강하다. 사대부가 뜻을 잃으면 산림 속으로 몸을 숨겼다. 당쟁이 살육과 복수로 점철되자 조선은 참으로 벼슬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 당쟁이 신선세계와 같았던 조선을 하루아침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최남복의 明哲保身이 주는 정치사적 의미이다. 최남복은 사적 욕망을 억제하여 명철보신의 생활철학으로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 한어디에도 파라다이스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조선후기 구곡경영의 이 상향이 드러내는 양면성이다. In late 18th century, Yongnam sunbi`s gugok management and gugok poetry writing showed signs of activity. Chae nam-bok(1759~1814)`s was considered the most noteworthy. He designated Backryen-gugok and managed Backryen-soesa near the Bangudae in Ulsan province. The Backryen-gugok was typically characteristic of late Chosun`s gugok culture which originated in the Chuxi of Namsong very well. Chae said so clearly his utopia through gugok poems and sansu proses in chinese characters. What is the goal of Chae`s management of Yeonhwa-dongchun? Simply escaping from a chaotic realities or renouncing the world was not his ultimate goal. He thought we should protect the traditional Confucian moral philosophy which was being destroyed due to a pollution by Western Learning, espec. Catholics. Besides he believed that the cruel strife between the parties stimulate Sadaebu, cultured noblemans secluding themselves in a mountain hermitage. Therefore Chae decided to overcome conflicts and troubles between realities and ideals by rearmament of Neo-confucian ideology. In the space of changsu and ganghak, Backryen-seosa, Choe would try to practice reading of classics and discussion about philosophical subjects, while he had a desire to reproduce Dongjin dynasty`s poongryu(wonderful moods) being famous by ``Hogaesamso`` episode came from Heawon who was a high buddhist monk of China at the same time. In short, he managed Backryen gugok to take care of his health and improve his mental state through enjoying beauties of nature. So he hoped to reach a unity between heaven and man by controling man`s endless human desire. That is a ideal utopia that he drea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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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하생(洛下生) 이학규(李學逵)의 『영남악부(嶺南樂府)』 재론(再論)

        손혜리 ( Hye Ri Son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3 嶺南學 Vol.0 No.24

        본고는 洛下生 李學逵(1770~1835)의 『嶺南樂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지금까지 논의된 바 없지만 주제 의식과 형상화 측면에서 뛰어난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영남악부』 68편 중 한 번도 검토되지 않은 작품은 23편으로 이 중 「眞正言」·「龍齒湯」·「勿稽子」 등은 주제 의식과 형상화가 뛰어 나다. 또 「無信塔」·「鐵文魚」·「仇衡王」·「장夫人」·「孝不孝」·「兩釜屍」 등 6편은 이학규가 처음 발굴한 소재로 주제 의식을 주목할 만하다. 이학규는 순조 8(1808)년 유배지 김해에서 신라에서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 영남 지역의 인물과 사적, 민풍과 토속 및 전설 등을 적극적으로 취재하여 『영남악부』를 저술하였다. 그는 ‘사실의 전달’을 악부 저술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이를 위해 유배지라는 제한된 공간과 한정된 서적에서나마 역사서와 지리지 등 다양한 문헌을 인용하고 충실한 고증을 통해 사실적 기록을 지향하였다. 『영남악부』의 기록적 특징을 크게 주제와 제재, 서술 등으로 나누었다. 주제 의식으로는 ① 부패한 관리 비판, 현실주의적 의식 ② 불교에 대한 비판, 합리주의적 의식, 제재의 특징으로는 ① 영남 지역의 역사적 인물 포폄 ② 영남 지역의 문풍과 토속, 전설, 서술의 특징으로는 ① 충실한 문헌 고증을 통한 사실적 기록 ② 대화체를 활용한 주제 강조를 제시 하였다. 『영남악부』는 영남 지역에만 국한된 ‘지역의 악부’가 아니다. 신라부터 고려 때까지를 악부의 대상으로 정했던 만큼, 당시 경주는 국가의 수도였고 고려 때까지 遺風이 남아 있었다. 따라서 『영남악부』는 유배지 김해를 중심으로 한 영남 지역의 인물과 사적, 민풍 토속뿐만이 아닌 一國의 악부라고 해도 충분하다. This paper aimed to take an overall review on 『Yeongnamakbu』 of Nakhasaeng. Hakkyu Lee based on existing research performance and limitation. We can grasp the general picture of 『Yeongnamakbu』 by existing research, but among 68 pieces of work there are still 23 pieces which have never been reviewed and the work like 「Jinjungeun (眞正言)」·「Yongchitang(龍齒湯)」·「Mulgyeja(勿稽子)」·「Jangmiyeo(薔薇女)」 are outstanding regarding to the topic and imagery. The topic of other 6 pieces of work, like 「Muhsintop(無信塔)」·「Chulmuneo(鐵文魚」·「Guhyeongwang(仇衡王)」·「Jangbuin(장夫人)」·「Hyobulhyo(孝不孝)」·「Yangbusi(兩釜屍)」 are also quite remarkable which were first discovered by Hakkyu Lee. This paper tries to discuss 『Yeongnamakbu』 again by reviewing these works thoroughly. Since the year of Sunjo 8(1808), Hakkyu Lee started collecting figure, historical site, local custom from Silla to Late Koryo Dynasty in Gimhae where he was exile, and then wrote 『Yeongnamakbu』. He thought ‘fact delivering’ was most important in akbu`s writing, that`s why he aimed at realistic description by quoting from various historical or geographic text as well as thorough historical research even in the limited exiling space and using limited books. Next we will examine the feature of 『Yeongnamakbu』 by looking at subject, topic and narration. As a result, we captured several features as follows. ① criticism on corrupt government officials, recognition of realism; ② criticism on Buddhism, recognition of rationalism; ③ criticism on historical figure in Yeongnam area; ④ literary spirit and legend in Yeongnam area; ⑤ realistic description by historical research of text; ⑥ topic emphasis through dialogic style. 『Yeongnamakbu』 is not a ‘local akbu’ only limited in Yeongnam area. As akbu covered from Silla to Late Koryo Dynasty, capital Gyeongju preserved the tradition untill Koryo. So 『Yeongnamakbu』 more than an akbu covered the figure, historical site and local custom with Gyeongju as center, it can be also regarded as akbu in one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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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가 문화유산의 구심적 가치 보존과 원심적 활용 방안

        조정현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6 嶺南學 Vol.0 No.30

        A history, culture and life of Jong-ga(宗家) as tangible and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transferred down from the traditional local society, it should have been a exemplary model for beautiful and fine customs, but in reality, it shows the aspects of a community as leader group armed with confucianism spirit. Likewise, there is a need to mention that it is not easy to secure the value as a traditional culture that is alive merely by pushing towards one specific direction on the policy level without having secured the live passing down capability. A transmission of Jong-ga(宗家) culture has two methods of practical way. One is centripetal transmission, the other is centrifugal utilization. A centripetal transmission focus in traditional aspects and try to preserve the archi-type. While a centrifugal utilization focus in developmental aspects and try to recreate new version. The subjects of intangible cultural asset of Jong-ga(宗家) should focus and try to practice all ways. After all, Jong-ga(宗家) as each lineage groups include rural district can said to have the proper functions as a transmission group of community life and also the adverse effects as an exclusive politic group within the village. The aspects of a culture change of Jong-ga(宗家) are explicit mirrors of traditional culture reflecting the rapid changes in Korean society and the reality of its side effects. 경북지역을 비롯해서 각 마을의 종가에서 전승해오고 있는 유무형의 문화는 세계유산이라는 인류보편적 관점에서 재고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재탐색 작업은 기존 종가와 관련한 한국적 담론 속에서 주목하지 못한 다양한 측면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일 뿐만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한 새 시대의 종가문화 창조로 나아갈 수 있다. 즉 지역적(local) 시각에서 바라보면 자연스럽고 평범한 전통에 불과한 문화로 보일 수 있지만, 인류보편적 혹은 세계문화유산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훨씬 더 그 가치가 높은 한국적 문화 전통이자 현상이 바로 ‘살아있는 종가문화’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종가가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종가문화의 관광자원화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가장 큰 문제점은 종가문화체험을 고택에서의 숙박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지역 소재의 종가를 보존, 관리하는 지자체 역시 건축물로서의 종택이나 관련 유적 등 유형의 자산에만 주목할 뿐, 해당 종가가 보유하고 있는 무형의 콘텐츠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형유산의 가장 큰 장점은 살아있는 문화재로서 생생하게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종가문화의 전통은 종택이나 사당으로만 표상될 수 없는 ‘가통’ 등 문화적 전통을 포괄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종가의 유무형 유산은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개념이다. 따라서 무형유산의 가치와 활용을 논하기 위해서는 해당 공동체가 굳건하게 지속되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종가를 중심으로 한 문중과 당내, 마을공동체라는 버팀목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유지될 수 있어야만 종가문화가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종가의 유무형 문화유산은 끊임없이 해당 마을 및 지역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 이 연구에서는 종가 유산의 유무형적 전승양상을 살펴보고, 실제적인 보존 및 관리 실태를 검토하는 가운데, 종가 유산의 구심적 가치를 높이고 원심적 활용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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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가 문화의 세계유산적 전망

        정우락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6 嶺南學 Vol.0 No.30

        Gyeongbuk is the region where "jongga," or head family, culture not only has developed the most but has also been preserved well in Korea. Especially, jongga culture needs to be newly understood as part of traditional living culture. This is even more so because living culture like jongga can go beyond scientific civilization in modern times, presenting a vision for the future. From this viewpoint, this study has been designed and written. Furthermore, the study also examined whether jongga culture is worth as a world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n order to preserve and restore global cultural assets which are in the danger of extinction, UNESCO has created a list of valuable and unique intangible heritages. Through this, UNESCO leads people in the world to have interest in cultural heritages and preserve them. It was examined whether jongga culture based on Gyeongbuk, Korea satisfies the criteria for inclusion into the 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The results found that the jongga culture satisfies the criteria. Therefore, based on this, it is needed to accelerate the practical efforts to make jongga culture included in the representative list of world heritage. 경북은 한국에서 종가문화가 가장 발달한 지역이며 동시에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다. 특히 전통적 생활문화의 일환으로 종가문화를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생활문화는 근대의 과학문명을 뛰어넘는 자리에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 글은 이런 시각에서 구상되고 작성된 것이며, 동시에 이것이 지닌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도 함께 타진해 본 것이다. 유네스코는 소멸 위기에 처해 있는 세계 문화유산의 보존과 재생을 위하여 가치 있고 독창적인 무형유산에 대한 목록을 선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세계인이 관심을 갖고 보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경북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종가 문화를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기준’에 적용시켜 본 결과, 여기에 만족시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종가문화의 세계유산 대표목록 등재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으로 본다.

      • KCI등재후보

        가야문화권의 성립과 그 의미

        백승충 ( Seung Chung Baek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08 嶺南學 Vol.0 No.13

        가야’는 흔히 국명으로 칭해지고 있으나, 삼국과는 달리 영역적으로나 관념적으로 통일된 국가체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가야지역 내의 독자적인 제 ‘세력권’ 혹은 ‘문화권’의 총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가야의 특징은 인근의 신라?백제와는 구분되는 공통의 정치?문화 요소를 가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각 세력권별로 고유의 정치?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존재 시기나 양태에 있어 시?공간적인 편차는 있지만, 주요 정치?문화권으로는 2대 중심체로서 시간적으로 선후관계에 있는 김해 ‘가락국’과 고령 ‘가라국’을 비롯하여 함안 안라국과 산청?진주?고성의 고자국 등이 있다. ‘지역연맹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 가야의 제 정치?문화체는 가락국권?가라국권?안라국권?고자국권 등 네 권역으로 구분되는데, 정치적으로는 ‘연맹’ 혹은 ‘연합’의 성격을 띠고 있다. 4개의 권역 가운데 가락국권과 안라국권은 삼한 시기부터 두각을 나타내지만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도 권역이라든지 정치적 속성은 큰 변동 없고, 고자국권은 정치?문화적인 동질권으로 묶기에는 공간적 범위가 넓고 이질적 요소도 많다. 반면 가라국권은 정치?문화적 범주와 사회 발전 정도로 볼 때 가장 주목되는 권역인데, 비록 5세기 중반 이후 두각을 나타내지만 가야의 제 권역 가운데서는 고대국가의 요소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으로 대표되는 가라국권이 소국 단계를 지나 독자적인 정치?문화권인 ‘지역연맹체’로 발전하는 것은 5세기 중반~6세기 전반이다. 이것을 잘 보여 주는 것이 가라국 고유의 고총고분과 부장유물의 서열관계, 위신재의 사여, 초월적 왕호(=대왕)의 사용, 부(제)의 시행, 외교섭관계의 전개 등이다. 물론 삼국과 비교해 볼 때 이들 요소를 고대국가의 속성으로까지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라국권을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세력권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광역화된 동질적인 정치?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정치?외교?군사적으로 신라?백제와 대등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종래의 가야사 인식은 김해 가락국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러나 이제 가야지역에는 김해 가락국 이외에 고령 가라국은 물론 함안 안라국과 산청?진주?고성의 고자국도 당대 주요 정치?문화체로서 그 존재가 확인됨에 따라 가야사를 재구성함에 있어 비록 상대적 우열관계는 분명히 있지만 어느 한 정치?문화체를 중심으로 한 일방적인 서술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가야 전체사로 본다면 각각의 정치?문화권의 이질성 및 동질성을 밝혀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이를 통해 ‘가야지역사’ 혹은 ‘가야제국사’를 뛰어넘는 진정한 의미의 ‘가야사’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Gaya that didn't complete the unified State System territorially or presentationally differing from the Three Kingdom(삼국), strictly speaking, is the general term of the 'Culture Circle' or different independent 'Spheres of Power' to be discriminated against adjacent Silla and Backje. Namely, on the one hand Gaya regions had the common political and cultural features but on the other hand had the features of those peculiar to their own in each region of them. To put them concretely, there were 'Garak-guk(=Geumgwan Gaya)' in Gimhae, 'Gara-guk(=Daegaya)' in Goryeong as the two central kingdoms in the place though these both were being in the different time and place, and Anra-guk in Ham-an, Goja-guk in Sancheong·Jinju·Goseong. From the standpoint of the 'Essay on Regional League(지역연맹론)', these different polities and cultures in Gaya region can be classified into the four region circles such as Garak-guk Circle(가락국권), Gara-guk Circle(가라국권), Anra-guk Circle(안라국권), Goja-guk Circle(고자국권). Which in some cases politically made up the form 'League(연맹)‘ or 'Union(연합)'. Gara-guk Circle and Anra-guk Circle of them had stood out since the Period of the Three Han(삼한시대) but didn't change in the region circle and social characteristic to the Era of the Three Kingdom. Goja-guk circle can't be included by the same government and culture circle with these both that the spatial region was too large as well as the there were many heterogeneous things. Then Gara-guk Circle is the most remarkable place when it is considered the social development, political and cultural category. It was clearly showed the some factors to characterize the Ancient State out of the Gaya' Powers(가야세력권), even if it became distinguished since the middle of the 5th century. It was in the middle 5th and early 6th centuries that Gara-guk Circle(=Daegaya) to be represented by the Ancient Tombs of Jisan-dong(지산동 고분군) around Goryong(고령) advanced the 'Regional Leagues(지역연맹체)' based on the government and culture circle peculiar to their own over the phase of small country. To show well this is the Gochong Group(Ancient Tombs) peculiar Gara-guk's own, the rank relations among the buried relics, giving the prestige goods, using the transcendental King's name(the Great King), autonomously spreading out the diplomatic negotiations etc. But as compared with the Three Kingdom, it is difficult to say that these points are the characteristics of the Ancient States. Nevertheless, the main reason to pay attention to Gara-guk Circle is that it formed the same government and culture circle widen as no comparison with other Gaya' Powers. Moreover, though it was temporary, it carried out the negotiations as equals with Silla and Baekje in the Politics, Foreign and Military Policy. Up to now, it is generally known that the perception about the Gaya' History have been developed with Garak-guk in Gimhae as the center. But now, it is impossible to describe it one-sidedly with only any of a government and culture body as the center, according to verifying what have been Gara-guk of Goryeong, Anra-guk of Ham-an, Goja-guk of Sancheong·Jinju·Goseong as well as Garak-guk of Gimhae as the main the body politics in Gaya region those days though between them had unquestionably the relations of a comparative superiority and inferiority. Consequently, from the History about the whole of Gaya, I think that it is important to trace the heterogeneity and homogeneity about their respective government and culture circle to restore the History of Gaya in the true sense beyond the 'Regional History of Gaya(가야지역사)' or 'History about many Countries of Gaya(가야제국사).'

      • KCI등재

        선유(船遊)를 통해 본 낙강(洛江) 연안지역 선비들의 집단의식-17세기 한려학인(寒旅學人)을 중심으로-

        김학수 ( Hak Su Kim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0 嶺南學 Vol.0 No.18

        洛江은 영남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자 학술과 문화, 정보가 유통되는 거대한 소통의 장이었다. 특히, 16세기 이후 사림파의 성장과 더불어 낙강은 이른바 강거문화와 접목되어 누정들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누정들은 영남 선비들의 학술문화 공간으로 기능했다. 교유 또는 종유로 불리는 사귐의 문화를 중시했던 사림들은 詩會, 遊山, 船遊, 講會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친분과 정리를 다졌고, 학문을 주고 받았다. 강회가 선비로 행세하기 위한 학문적 일상이었다면 시회, 유산, 선유는 학문적 원기를 재충전하는 휴식의 과정이자 서로간의 연대와 결속을 강화하는 단합의 자리였다. 낙강에는 저 아득한 옛날부터 배가 다녔고, 또 배를 매개로 한 놀이문화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 경관 및 누정으로 대표되는 학술문화공간과 접목된 ``뱃놀이문화``가 활성화 된 것은 조선시대였다. 선유문화는 학파의 형성기라 할 수 있는 16세기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학파의 발전기인 17세기부터 더욱 보편화 되었다. 1,000리를 상회하는 낙강의 유역중에서도 선유문화가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운 곳은 상주·인동·성주·칠곡·대구·고령·영산·창녕·함안에 이르는 낙강 중류지역이었고, 이런 문화를 양성한인적 집단은 鄭逑·張顯光이 중심이 된 寒旅學人들이었다. 이 글은 17세기 낙강의 선유문화를 만개시켰던 한려학인들의 선유 양상을 집단의식과 결부시켜 검토한 것이다. 17세기 낙강 연안지역 선비, 즉 한려학인들에 있어 선유는 일견 평범한 일상의 하나로 비쳐질 수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치밀한 기획과 의도가 깔려 있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날자 하나도 그들은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꼼꼼이 택일한것이었고, 배 안에 오른 사람도 일정한 자격과 조건을 갖춘 선택된 사람들이었으며, 또 그들이 경유하거나 정박·유숙했던 누정 또한 단순히 하루를 쉬어가는 여관이 아니었다. 한려학인에 있어 선유는 학문적 집단의식의 확인 또는 강화의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사건화시켜 미담 또는 고사로 전승되게 했고, 또 이들이 경유했던 누정은 집단의식의 매개체인 학문적벨트와도 같았다. 정구의 한강학파(문인: 342명), 장현광의 여헌학파(문인: 355명)가 17세기 초반 영남학파의 실체였음을 고려할 때 본고에서 살펴본 선유는 한려학파 형성과 발전의 과정을 설명하는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Nakdong River has been one of the center of life, learning, culture and communication among Neo-Confucian literati of Yeongnam area. In particular, after 16th century when the group of literati from private schools Sarim appeared pavilion buildings also came up along the river which became very important local communication center. Sarim who had been interested in good companionship with other literati with virtue and learning were very eager to make advance their learning and enjoyed meeting for making poems, sightseeing of mountains and boating, which contributed to their refreshment and strengthening their bond as colleagues as well. It was Joseon dynasty when the entertainment of boating became part of literati`s life associated with meeting at the pavilions along the river. When private schools established and became active the companionship between students who learned under same teacher also visualized with form of ``enjoying boating culture`` which culminated in 17th century. Among the villages along the river Indong, Sangju, Chilgok, Taegu, Goryeong, Yeongsan, Changnyeong, and Haman were frequently gathered with literati and the main group of people who occupied the places were the followers of Jeonggu (鄭逑) and Jang Hyeongwang (張顯光). The writer of this paper tried to have a look at the world spirit of the literati who fostered and flourished the enjoying boating culture in the 17th century. Their boating was not just entertainment but it was a deliberately projected event only qualified literati could get on the board. Even choosing a date for boating was to match their own celebration. It was a kind of promotion for the group consciousness; they dramatized part of their daily learning process and let it spread. Considering two schools were the substantial literati group in Yeongnam we could find a hint of the beginning and developing of the schools by looking into their peculiar culture of boa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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