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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컬 문화지형과 지역학으로서 ‘영남학’의 위치

          박충환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20 嶺南學 Vol.0 No.73

          In the last couple of decades, there has been a boom of domestic area studies whose domain of analysis corresponds to various administrative units of Korean society. This article aims at critically examining Youngnamhak(Youngnam Studies) conducted by the Research Institute for Youngnam Culture(RIYC) in the context of the glocal cultural landscape of globalization and the theoretical, methodological, epistemological issues polemic in area studies in general. For this, it analyzes 78 volumes of book published by RIYC, major research projects conducted by RIYC, and 437 pieces of article published in Youngnamhak, the academic journal issued by RIYC. And then it illuminates the implications of the results of analysis in terms of spaciality, holism, and epistemology of area studies in general. The research findings are summarized into three points. Firstly, Yougnam area studies conducted by RIYC has more or less failed in properly representing the lives of people in Youngnam area due to its lack of theoretical and methodological concerns on the changing spatiality of area studies in the age of globalization. Secondly, Youngnam area studies conducted by RIYC have represented only a few facets of Youngnam culture in academically biased ways because it has not actually practiced the interdisciplinary and holistic approaches that RIYC proclaimed at the time of its establishment twenty years ago. Finally, due to its lack of concerns on the epistemological issues of knowledge production in area studies and its rather exclusive emphasis on insiders’ point of view, RIYC’s Youngnam area studies have been intellectually very parochial, seriously isolated from the global academic and practical issues. Based on this critical review, this article tries to offer an intellectual jumping board for a new momentum for the development of RIYC soon celebrating its 20th aniversary. 최근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수준의 행정단위를 공간적 매개로 하는 ‘자문화연구’ 지역학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연구의 목적은 국내 지역학 열풍의 시기에 수많은 자문화연구 지역학 분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해온 영남문화연구원의 영남학을 지구화시대의 글로컬 문화지형과 지역학의 이론적·방법론적·인식론적 쟁점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조명해보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영남문화연구원 설립 후 약 20년 동안 간행된 78편의 저역서, 연구원이 수행해온 연구 프로젝트, 그리고 연구원의 학술지인 영남학 70호까지 게재된 논문 437편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 분석결과를 지역학 일반의 공간성, 총체성, 인식론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한다. 이 연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영남문화연구원의 영남학은 지역학의 공간성과 그것을 둘러싼 이론적·방법론적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의 결여로 인해, 지구화시대를 살아가는 영남인들의 글로컬한 삶을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데 전반적인 한계를 보여준다. 둘째, 연구원의 개원 당시 지향점으로 삼았던 학제적·총체적 접근을 실제 연구활동을 통해 구현하지 못함으로써 영남문화를 매우 파편적이고 편향적으로 재현하는 경향성이 두드러진다. 셋째, 지역학적 지식생산이 수반하는 인식론적 문제에 대한 고민의 부재로 영남문화를 지나치게 내부자적인 관점에서 재현해왔고, 그 결과 글로벌 수준의 학문적·실천적 쟁점과 연결되지 못한 채 매우 국지적이고 고립된 문제의식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이러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영남문화연구원의 지역학적 지식생산 이면에 숨겨져 있는 잘못된 이론적 가정과 방법론적·인식론적 관행들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개원 20주년을 앞두고 있는 영남문화연구원이 지역학 연구소로서 새로운 정체성과 학문적·실천적 비전을 구축하고 제2의 도약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지적 발판을 제공하고자 한다.

        • KCI등재

          영남문학 연구의 현황과 과제 -영남문화연구원을 중심으로-

          이상원 ( Sang Won Lee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6 嶺南學 Vol.0 No.29

          이 글은 영남문화연구원의 영남문학 연구 현황을 점검하고 향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본 것이다. 이를 위해 학계의 영남문학 연구 현황과 대비 고찰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먼저 학계의 영남문학 연구 현황을 구비문학, 고전시가 및 고전소설, 한문학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구비문학 분야에서는 인물전설, 서사민요, 동해안무가, 탈놀이 등이 주목되었다. 고전시가에서는 조선전기 사대부 시가와 조선후기 규방가사가, 그리고 고전소설에서는 작가와 작품배경 및 유통양상등에 연구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한문학의 경우 퇴계학, 남명학, 강안학, 산수문학 등이 특히 주목을 받은 분야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학계의 영남문학 연구 현황을 영남문화연구원의 영남문학 연구 현황과 견주어 보았다. 그 결과 영남문화연구원의 영남문학 연구 현황은 학계의 영남문학 연구 성과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향후 큰 분발이 요청된다 하겠는데, 이를 위해 집중해야 할 방향으로 구비문학 분야에서는 서사민요, 고전시가 및 고전소설 분야에서는 규방가사와 소설 유통, 한문학 분야에서는 강안학과 산수문학이 적합할 것으로 제시해 보았다. The purposes of this study were to check the current research state of Yeongnam literature at the Youngnam Culture Institute and propose its future directions by comparing it with that of academic circles. The study first categorized the current research state of Yeongnam literature in the academia into oral literature, classical poems and novels, and Chinese literature. In the area of oral literature, the focus was on legends of figures, narrative folksongs, shamanistic songs of East Coast, and mask play. In the area of classical poems, the focus was on the poems of noblemen in the former half of Joseon and the Gyubanggasa in the latter half of Joseon. In the area of classical novels, the research focus was on the writers, backgrounds of works, and patterns of distributions. Finally in the area of Chinese literature, the focus was especially on Toigye studies, Nammyeong studies, Gangan studies, and landscape literature. The study then compared the current research state of Yeongnam literature in the academic circles with that of Youngnam Culture Institute and found that the latter lagged far behind the former in research achievements. The institute is thus required to make more strenuous efforts in the future, and the study proposed its directions of focus in such efforts including narrative folksongs in oral literature, Gyubanggasa in classical poems, distribution of novels in classical novels, and Gangan studies and landscape literature in Chinese literature.

        • KCI등재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의 학술지에 대한 정량적 분석 - 창간호부터 제59호까지를 대상으로 -

          임종진 ( Lim Jong-jin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7 嶺南學 Vol.0 No.60

          2017년 3월은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의 학술지 발행 역사에서 새로운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왜냐하면 퇴계연구소는 그 동안 『한국의 철학』(창간호-제30호), 『퇴계학과 한국문화』(제31호-제47호), 『퇴계학과 유교문화』(제48호-제59호)로 이어지던 독자적인 학술지 발행을 중지하고,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하는 학술지인 『영남학』과 통합 발행하기로 하였는데, 최초의 통합 발행 학술지가 이때 발행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합발행을 통해서 한편으로는 경북대학교의 한국학 관련 연구역량을 결집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퇴계연구소가 학술지 단독 발행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나는 대신 학술대회나 단행본 및 총서 간행 등을 통해서 연구 활동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이제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여 이때까지 퇴계연구소에서 발행한 학술지에 대하여 정량적인 방식에 따라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것도 일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무엇보다도 퇴계연구소가 학술지를 통해 이룩한 업적과 성과를 재조명해 볼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그 한계점에 대해서도 반성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March 2017 will be recorded as a turning point for the publication history of the academic magazine of Toegye Institute of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Toegye Institute has stopped the publication of its independent journal that had been continued from PHILOSOPHY OF KOREA(Numbers 1 to 30), Toegye Studies and Korean Culture(Numbers 31 to 47), and Toegye Studies and Confucian Culture(Numbers 48 to 59), and decided to make joint publication with Youngnam Studies that had been issued by Youngnam Culture Institute. This joint publication has resulted the first emergence of joint academic journal, the result of which will provide a chance to concentrate diverse research abilities of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in regard to Korean studies. Also, it will reduce Toegye Institute from the burden of single-handed journal publication, and give chance to search new ways out for better research activities such as promotion of academic seminars, publication of single book or collected books. Thus, it will be meaningful to make diversified quantitative analysis of the hitherto published journals by Toegye Institute. Through this analysis, we can reexamine the achievement and fruits made by Toegye Institute`s publication of journal, and reflect on its limite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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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문화 연구에 대한 반성적 전망 -영남문화연구원의 연구를 중심으로-

          황위주 ( Wee Zoo Hwang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6 嶺南學 Vol.0 No.29

          본고는 영남문화연구원에서 지난 15년 동안 수행한 연구의 현황을 검토한 다음, 향후의 연구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 것이다. 영남문화연구원에서 그동안 수행한 연구 가운데 가장 주목할 성과는 ‘낙동강유역의 인간과 문화’‘고문서를 활용한 영남지역 생활문화 연구’ ‘영남지역 고문서 아카이브 구축과 계층별 생활사 연구’ ‘권역별 거점연구소 협동번역사업’ ‘경북 주요종가 소개책자 및 영상물 제작’ 등 5종이었고, 기타 ‘문헌·서지’ ‘인물’ ‘유물·유적’등에 관한 연구가 비교적 활발하였다. 그러나 이런 연구의 이면에는 장기지속적인 과제의 부족, 외부 의뢰에 편승한 수동적인 연구 편중, 연구대상 선택의 엄정성 부족 등과 같은 문제가 있었다. 향후에는 우선 이와 같은 기존연구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론을 가다듬는데서 시작해야 할 터인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콜로키엄의 활성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구체적 연구에 있어서는 현재 진행 중인 연구를 보완하고 확대하는 차원의 연구, 예컨대 ‘주요 문헌의 역주’ ‘종가 연구의 이론 보완과 아젠다화’ ‘인물 연구의 체계화’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겠고, 지금까지 유의하지 못한 대상, 예컨대 ‘정체성과 관련한 상주지역’ ‘대구 경북에서 주목받고 있는 세계문화유산’ ‘기존 연구에서의 소외지역’ 등의 연구에 특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모든 연구는 결국 인재 확보와 제도 정비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향후에는 이런 문제 해결에 연구 못지않게 유의해야 할 것이다. This paper examines Youngnam Culture Institute``s 15 years of research results, and presents the future research direction. The most noteworthy research achievements of Youngnam Culture Institute include the following five areas: Humans and Cultures in the Nakdonggang River Basin; Research on Yeongnam Region``s Lifestyle Culture Using Historical Documents; Construction of Archives of Yeongnam Region``s Ancient Historical Documents and Research on History of Lifestyles by Class of People; Joint Translation Project between Regional Hub Research Centers; and Production of Major Gyeongbuk Head Families Handbooks and Videos. Studies on other literature and biographies, historical figures, historical relics and remains have also been actively conducted. But, behind these studies were a lack of long-time projects, passive research activities based on external requests, and a lack of appropriate selection of targets of research. Future research should begin by improving the methodologies designed to overcome these research problems, and towards that end, first, colloquium should be activated. Also, withregard to specific research, there is a need to complement and expand ongoing studies, such as annotation of major literature, theoretical complementation for research on head families and putting them into /agenda, and systemization of research on historical figures. Further, there is a need to pay special attention to targets receiving little attention, such as Sangju related to stagnant development, World``s cultural heritages receiving attention in Daegu and Gyeongbuk, regions excluded from existing research. However, all studies should boil down to the securing of talented researchers and improvement of relevant systems. Thus, these problems should be tackled as hard as the research 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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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영남 ‘반역향(叛逆鄕)’담론의 실상과 허상

          김백철 ( Kim¸ Paek-chol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21 嶺南學 Vol.0 No.76

          경상도에서는 영남차별론이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숙종 20년(1694) 갑술환국, 영조 4년(1728) 무신란, 순조 원년(1801) 신유박해 등이 남인이 중앙정계에서 퇴출되는 계기로 제시되곤 한다. 그런데 경상도는 조선시대 500년간 과거급제자가 서울을 제외하면 부동의 1위이다. 또한 과거급제에 그치지 않고 출사로 이어진 비율도 높았으며 그중 고위직 비중도 적지 않았다. 남인이 때때로 탄압을 받은 적은 있으나 영남인이 그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영남 차별론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상대적인 기억의 왜곡 현상이다. 여러 정치사건에도 불구하고 실제 영남 출사자가 감소하거나 중단되지 않았다. 심지어 세도정치기나 고종연간조차 영남인의 출사는 증가하였다. 이는 차별론의 시선과 전혀 다른 현실이다. 둘째, 과거 급제자 숫자의 일시적 변동이다. 18세기 영남 급제자 일부가 단기간에 감소하였고, 18-19세기 충청도와 평안도 숫자가 일시적으로 경상도를 앞서는 시점이 도래했다. 하지만 이 역시 남인 등용책과 더불어 기호지방 출사가 늘어났기 때문이었고 서북인 등용확대는 영남인 우대조치와 연동되어 등장하였으므로 영남차별과는 무관하였다. 오히려 공평한 인사정책과 지역균형 정책이 역설적으로 영남인 진출자 감소를 가져왔다. 셋째, 현재적 관점에서 지역차별을 논하면서 과거 역사에 투영하는 방식이다. 주로 지방의 정치권에서 선거철과 관련하여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결과적으로 경상도가 지역차별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명현을 가장 많이 배출하였고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한 지역이었다. 단지 서울을 꿈꾸기 때문에 욕망에 비례하여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In Gyeongsang Province, the theory of discrimination in Yeongnam is being accepted as a historical fact. Several political events are often suggested as an opportunity for Southern party to be expelled from the political world of the capital. For instance, Gabsul Regime Change in 1694, Musin Rebellion in 1728, Sinyu Persecution of Catholics in 1801 etc. However, Gyeongsang Province has the largest number of successful applicants for the highest-level state examination to recruit ranking officials in the history of the Joseon Dynasty for 500 years excluding Seoul. What’s more, Those belonging to Southern party were sometimes suppressed, but those from Gyeongsang Province were not targeted. Then, why did the theory of the Yeongnam discrimination arise? First, it is a relative memory distortion phenomenon. Despite various political events, the number of successful applicants in Yeongnam did not actually decrease or stop. Even during the power politics and the reign of King Gojong, the number of Yeongnam people entering government posts increased. This is a completely different reality from the view of discrimination. Second, the number of Yeongnam people who passed temporarily fluctuated. In the 18th century, some of successful candidate for Yeongnam decreased briefly. And from the 18th to the 19th century, the number of successful candidate for Chungcheong and Pyeongan provinces temporarily surpassed that of Gyeongsang Province. But this was also due to increased travel to the region along with other people's regulations. However, this was also due to the increase in the number of government posts in Gyeonggi and Hoseo Province along with the use of Southern party. And the expansion of the use of Northwesterners was related to the preferential treatment of Yeongnam people, so it had nothing to do with the discrimination in Yeongnam. Rather, fair personnel policies and balanced regional policies have ironically reduced the number of Yeongnam people entering government posts. Third, it is a way of projecting the regional discrimination from a current perspective on past history. This is a frequent phenomenon in local political circles, mainly in relation to the election season. As a result, Gyeongsang Province has rarely suffered regional discrimination. Yeongnam produced the most famous talents and was a very economically wealthy area. Just because they dream of Seoul, they feel thirsty in proportion to their des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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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학의 비교문화론적 관점에서 본 장태문화(藏胎文化)

          박충환 ( Choong Hwan Park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5 嶺南學 Vol.0 No.28

          이 연구는 세계 장태문화에 대한 인류학의 비교문화론적 접근으로서 크게 두 가지 목적 하에서 수행되었다. 첫째, 지구상의 다양한 사회에서 발견되는 장태문화, 즉 태반(胎盤)의 처분과 관련된 광범위한 문화적 담론과 실천의 체계를 인류학의 비교문화론적 관점을 통해 조명한다. 둘째, 이를 토대로 조선왕조 태실이 인류문화의 보편적인 맥락에서 가질 수 있는 심층적이고 총체적인 함의를 파악함으로써 향후 보다 진일보한 연구를 위한 지적 발판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 공시적으로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호주, 아시아, 유럽등지에 분포하는 수많은 종류의 문화집단과, 통시적으로는 고대부터 당대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시대의 다양한 장태문화를 비교분석한다. 이러한 비교문화론적 분석을 통해 대부분의 인류사회에서 태반은 출산이 수반하는 단순한 생리적 부산물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삶과 사회관계 그리고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로 의미심장한 주술적 힘을 발휘하며, 인간과 자연 더 나아가 인간과 우주의 상징적 연결고리로서 중요한 사회문화적·정치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음을 밝힌다. 이에 입각해서 한국의 장태문화, 특히 조선왕실의 장태의례와 태실이 조선의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우주론적 질서와 복잡하게 맞물려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함으로써 향후보다 심도 있는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This article has two main purposes. Firstly, it examines from the comparative perspective of anthropology placenta cultures around the world, a wide range of cultural discourses and practices dealing with the human placenta. Secondly, based on this comparative analysis, it attempts to establish an intellectual jumping-board for further studies of the royal placenta rituals and placenta burial sites of the Joseon Dynasty by interpreting their deep and polysemic implications. To do this, this article analyzes a great variety of placenta dealing cultures around the world from the archaic time to the modern era. With this comparative analysis, it demonstrates that the human placenta is not a mere by-product of biological reproduction, but has multi-layered symbolic, social, politico-economic, and even cosmological significances. That is to say, the human placenta symbolically represents and reproduces the cultural value, social relation, and cosmology of a certain cultural group; exerts a significant magical power as an object of religious worship; and has complex sociocultural and political implications as a symbolic link between the human, the nature and the cosmos. As a conclusion, it suggests some possible research questions for deeper and more holistic approaches to the royal placenta rituals and placenta burial sites of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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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문화권의 성립과 그 의미

          백승충 ( Seung Chung Baek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08 嶺南學 Vol.0 No.13

          가야’는 흔히 국명으로 칭해지고 있으나, 삼국과는 달리 영역적으로나 관념적으로 통일된 국가체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가야지역 내의 독자적인 제 ‘세력권’ 혹은 ‘문화권’의 총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가야의 특징은 인근의 신라?백제와는 구분되는 공통의 정치?문화 요소를 가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각 세력권별로 고유의 정치?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존재 시기나 양태에 있어 시?공간적인 편차는 있지만, 주요 정치?문화권으로는 2대 중심체로서 시간적으로 선후관계에 있는 김해 ‘가락국’과 고령 ‘가라국’을 비롯하여 함안 안라국과 산청?진주?고성의 고자국 등이 있다. ‘지역연맹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 가야의 제 정치?문화체는 가락국권?가라국권?안라국권?고자국권 등 네 권역으로 구분되는데, 정치적으로는 ‘연맹’ 혹은 ‘연합’의 성격을 띠고 있다. 4개의 권역 가운데 가락국권과 안라국권은 삼한 시기부터 두각을 나타내지만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도 권역이라든지 정치적 속성은 큰 변동 없고, 고자국권은 정치?문화적인 동질권으로 묶기에는 공간적 범위가 넓고 이질적 요소도 많다. 반면 가라국권은 정치?문화적 범주와 사회 발전 정도로 볼 때 가장 주목되는 권역인데, 비록 5세기 중반 이후 두각을 나타내지만 가야의 제 권역 가운데서는 고대국가의 요소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으로 대표되는 가라국권이 소국 단계를 지나 독자적인 정치?문화권인 ‘지역연맹체’로 발전하는 것은 5세기 중반~6세기 전반이다. 이것을 잘 보여 주는 것이 가라국 고유의 고총고분과 부장유물의 서열관계, 위신재의 사여, 초월적 왕호(=대왕)의 사용, 부(제)의 시행, 외교섭관계의 전개 등이다. 물론 삼국과 비교해 볼 때 이들 요소를 고대국가의 속성으로까지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라국권을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세력권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광역화된 동질적인 정치?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정치?외교?군사적으로 신라?백제와 대등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종래의 가야사 인식은 김해 가락국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러나 이제 가야지역에는 김해 가락국 이외에 고령 가라국은 물론 함안 안라국과 산청?진주?고성의 고자국도 당대 주요 정치?문화체로서 그 존재가 확인됨에 따라 가야사를 재구성함에 있어 비록 상대적 우열관계는 분명히 있지만 어느 한 정치?문화체를 중심으로 한 일방적인 서술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가야 전체사로 본다면 각각의 정치?문화권의 이질성 및 동질성을 밝혀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이를 통해 ‘가야지역사’ 혹은 ‘가야제국사’를 뛰어넘는 진정한 의미의 ‘가야사’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Gaya that didn't complete the unified State System territorially or presentationally differing from the Three Kingdom(삼국), strictly speaking, is the general term of the 'Culture Circle' or different independent 'Spheres of Power' to be discriminated against adjacent Silla and Backje. Namely, on the one hand Gaya regions had the common political and cultural features but on the other hand had the features of those peculiar to their own in each region of them. To put them concretely, there were 'Garak-guk(=Geumgwan Gaya)' in Gimhae, 'Gara-guk(=Daegaya)' in Goryeong as the two central kingdoms in the place though these both were being in the different time and place, and Anra-guk in Ham-an, Goja-guk in Sancheong·Jinju·Goseong. From the standpoint of the 'Essay on Regional League(지역연맹론)', these different polities and cultures in Gaya region can be classified into the four region circles such as Garak-guk Circle(가락국권), Gara-guk Circle(가라국권), Anra-guk Circle(안라국권), Goja-guk Circle(고자국권). Which in some cases politically made up the form 'League(연맹)‘ or 'Union(연합)'. Gara-guk Circle and Anra-guk Circle of them had stood out since the Period of the Three Han(삼한시대) but didn't change in the region circle and social characteristic to the Era of the Three Kingdom. Goja-guk circle can't be included by the same government and culture circle with these both that the spatial region was too large as well as the there were many heterogeneous things. Then Gara-guk Circle is the most remarkable place when it is considered the social development, political and cultural category. It was clearly showed the some factors to characterize the Ancient State out of the Gaya' Powers(가야세력권), even if it became distinguished since the middle of the 5th century. It was in the middle 5th and early 6th centuries that Gara-guk Circle(=Daegaya) to be represented by the Ancient Tombs of Jisan-dong(지산동 고분군) around Goryong(고령) advanced the 'Regional Leagues(지역연맹체)' based on the government and culture circle peculiar to their own over the phase of small country. To show well this is the Gochong Group(Ancient Tombs) peculiar Gara-guk's own, the rank relations among the buried relics, giving the prestige goods, using the transcendental King's name(the Great King), autonomously spreading out the diplomatic negotiations etc. But as compared with the Three Kingdom, it is difficult to say that these points are the characteristics of the Ancient States. Nevertheless, the main reason to pay attention to Gara-guk Circle is that it formed the same government and culture circle widen as no comparison with other Gaya' Powers. Moreover, though it was temporary, it carried out the negotiations as equals with Silla and Baekje in the Politics, Foreign and Military Policy. Up to now, it is generally known that the perception about the Gaya' History have been developed with Garak-guk in Gimhae as the center. But now, it is impossible to describe it one-sidedly with only any of a government and culture body as the center, according to verifying what have been Gara-guk of Goryeong, Anra-guk of Ham-an, Goja-guk of Sancheong·Jinju·Goseong as well as Garak-guk of Gimhae as the main the body politics in Gaya region those days though between them had unquestionably the relations of a comparative superiority and inferiority. Consequently, from the History about the whole of Gaya, I think that it is important to trace the heterogeneity and homogeneity about their respective government and culture circle to restore the History of Gaya in the true sense beyond the 'Regional History of Gaya(가야지역사)' or 'History about many Countries of Gaya(가야제국사).'

        • KCI등재

          신라 백제 · 문자문화와 일본 문자문화의 비교연구 -출토문자자료를 중심으로-

          방국화 ( Fang Guo-hua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21 嶺南學 Vol.- No.77

          본고는 목간을 비롯한 출토문자자료를 기초자료로 신라의 문자문화, 백제의 문자문화가 일본 문자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하여 고찰함으로써 신라와 백제의 한자문화의 특성에 대해 접근해 보고자 한 것이다. 신라, 백제, 그리고 고구려의 문자문화는 공통적인 부분도 있지만 제각기 자기 나라의 특성도 갖고 있다. 즉 한반도 고대 삼국의 한자 용법은 같다고만 볼 수 없고 각 나라에 특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본고에서는 신라, 백제의 문자자료를 일본의 문자자료와 비교함으로써 일본의 각 지역에 나타나는 문자문화의 차이를 문자문화의 전파측과 관련지어 검토하였다. 西海道 지역의 “□”의 사용 상황을 同訓異表記로 되는 “甕”과 비교함으로써 “□”은 백제계 도래인의 영향으로 일본 각지에서 사용하게 되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또한 “甕”(瓮) 사용은 신라의 영향으로 보았다. 그리고 若狹國의 하찰목간의 “伊”와 같이 글자 형태가 지역에 따라 다른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문자문화의 전파측, 즉 신라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This paper examines the influence of the literary culture of Silla and Baekje on the Japanese literary culture based on the excavated text materials. So, the characteristics of Chinese character culture of Silla and Baekje were discussed. The literary culture of Silla, Baekje, and Goguryeo has the same parts, but each has its own characteristics. In other words, the usage of Chinese characters in the ancient three kingdoms of the Korean Peninsula cannot be regarded as the same, but each country has its own characteristics. In this paper, by comparing the text materials of Silla and Baekje with those of Japan, the differences in text culture in each region of Japan were examined. By comparing the usage situation of “□” in the Saikaido(西海道) area with “甕”, it was concluded that “□” came to be used in various parts of Japan due to the influence of the Baekje people. Also, the use of “甕” (瓮) was considered to be influenced by Silla. Also, there are cases where the shape of the letters differs depending on the region, such as “伊” in the Wooden Documents of Wakasano-guni(若狹國), but this is also presumed to be related to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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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지역 민속연구의 현단계와 바람직한 미래 구상

          임재해 ( Jae Hae Lim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6 嶺南學 Vol.0 No.29

          영남민속에 관한 민속학과, 영남학자가 연구한 민속학을 아울러야 영남민 속학이 한국학과 세계학으로 나아갈 수 있다. 두 문제를 함께 점검하여 영남민속학의 현단계를 포착하고 미래 학문을 구상하여 실천하는 것이 이 연구의 과제이다. 영남민속의 지역성과 영남학자의 연구역량이 만나 탁월한 성과를 낸 보기로 하회마을 민속연구를 들 수 있다. 하회마을과 하회탈, 하회탈춤을 연구한 성과에 따라 탈은 국보로, 탈춤은 중요무형문화재로, 마을은 민속마을로 지정되었고 마침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까지 하였다. 하회의 농촌별신굿과 함께 동해안의 어촌별신굿 연구도 영남민속학으로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별신굿 연구로 굿을 하는 주체로서 풍물패와 세습무를 새로 발견하고 시베리아 샤머니즘과 구별되는 한국 굿문화의 독자성을 포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금관의 시베리아 무관(巫冠)기원설을극복함으로써 한국문화의 시베리아 기원설을 비판하고 민족문화 자생설을수립하기에 이르렀다. 영남지역의 서사민요와 인물전설 등 민속문학 조사연구의 성과가 진전되어 전국적인 민속문학 조사사업이 진행되고 설화연구의 방법론과 문학이론이 수립되었다. 민속문학 조사가 확대되어 『한국구비문학대계』 사업을 장기지속적으로 펼치게 되었고, 설화연구의 현장론적 방법이 수립되어 민속학 이 론으로 확대되었으며, 생극론 철학으로 독자적인 한국문학사 서술에서 세계문학사 서술로 이어졌다. 지역의 민속문학 연구가 한국학을 넘어서 세계학의지평을 여는 데 이바지한 것이다. 지역민속학이 세계학으로 발전하려면 민속학자로서 자기 민속지가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자기의 연구방법과 자기 철학, 자기 학설을 수립하고 자기학파를 구성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러자면 단편적인 논문이 아니라 단행본 수준의 학술저서를 지속적으로 학계에 제출해야 할 뿐 아니라, 연구 성과로서 두 가지 유용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학문적 유용성으로는 연구의 질적 수준을 확보하여 인용지수 높은 민속학 논문으로 학계에 영향력을 미쳐야 하며, 사회적 유용성으로는 연구의 현실적 쓰임새를 확보하여 사회적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논문으로 민속학의 실용성을 높여야 한다. 더 중요한 미래 구상은 당위적 연구방향 제시가 아니라 지속적인 연구활동을 스스로 실천하는 일이다. Yeongnam folklore encompassing researches on folklore in Yeongnam region and researches on folklore by scholars from Yeongnam would be developed into Korean studies and global studies. This study is to get unerringly at the present status of researches on folklore in Yeongnam region and to frame and practice the future study by examining these two issues. Researches on folklore in Hahoe village may be taken for the instance of notable achievements resulting from regionality of Yeongnam folklore and research competence of scholars from Yeongnam region. Researches on Hahoe village, Hahoe mask, Hahoe mask dance have led Hahoe mask to be a national treasure, Hahoe mask dance to an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asset, Hahoe village to a Folk Village and finally to be registered as World Cultural Heritage. Researches on fishing village Byulshingut in East coast along with farming village Byulshingut in Hahoe have had a remarkable accomplishment as Yeongnam folklore. Researches on Byulshingut have shed new light on Pungmul group and hereditary Shaman as principal agent of Gut and have given the opportunity to recognize the originality of Gut-culture other than Siberian shamanism. Therefore, the theory that golden crown originated from Siberian shaman (巫冠)``s crown has been overcome and also theory that Korean culture originated from Siberia has been criticized, resulting in the establishment of ethnic culture of itself. Researches on the folk literature in Yeongnam region, including epic folk songs and character legends, have sparked up the researches onthe folk literature and the methodology of fable studies and their literary theories on a nationwide scale. While expanded researches on the folk literature have allowed 『An Outline of Korean Oral Literature』 to be continued for a long time, field research methodology of fable studies being established to grow into the theories of folklore and connecting the description of independent Korean literature history to that of the world literature with Saeng Kuk theory philosophy. It may be said that researches on folk literature in a certain region have contributed to open up new vistas of global studies beyond Korean studies. In order for the regional folk studies to be developed into global studies, a folklorist shall have his own ethnography, establish his own research methods, philosophy, and theories, finally forming his own school. For this, scholarly works published in book form rather than fragmentary treatises shall be continually submitted to the academic circles and two kinds of usefulness shall be ensured as research results. As for the academic usefulness, the high quality level of the researches shall be attained, having an effect upon the academic circle as frequently cited treatises regarding folklore, and for the social usefulness, the practicality of folklore shall be enhanced with the treaties which may be used in dealing with the social issues in the real world. More importantly, continual research activities shall be voluntarily carried out, not as guideline for the appropriate researches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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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지방사 연구의 현황과 전망

          우인수 ( In Soo Woo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6 嶺南學 Vol.0 No.29

          한국사에서 지방사라는 개념은 1980년대부터 학술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지방사는 자신의 고장 여부에 관계없이 애향적 감정에 바탕을 두지 않고 객관적으로 한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역사의 한 분야이다. 지방사는 국가 전체나 중앙과의 관계적 관점 속에서 지방공동체의 전체사 규명을 목표로 한다. 영남지방사는 한국사의 일부분으로서 한국사와의 관계 속에서 영남이라는 한 지방의 개별적 특수성을 드러내는 역사를 가리킨다. 영남지방사 연구는 영남지방의 체계적 이해에 일차적으로 기여할 수 있으며, 나아가 영남지방의 사례 연구와 새로운 자료의 제공으로 한국사의 체계화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지금까지 영남지방사를 위한 기초 자료의 집적과 그에 바탕한 전문적 연구, 그리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도서의 발행 등 양적으로는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부족하거나 아쉬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체계적이고도 조직적인 접근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다양한 관련 전공 학자들 간의 지속적인 학제간 연구가 한 방법이다. 다양한 전공 학자를 보유한 거점대학의 연구소는 학제간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는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바탕에서 지방사 연구를 위한 연구 방법론을 습득하고 개발하여 연구 역량을 심화시킨다면, 지방자치의 발전에 발맞추어 지방사 연구는 한 단계 더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It was in the 1980s that the concept of local history was first discussed academically in Korean history. Local history is an area of history that investigates the history and culture of a local area, which can be the investigator``s hometown or not, in an objective manner not based on his or her love for the hometown. Its goal is to shed light onto the entire history of the local community from the perspective of its relations with the whole nation or the central region. The local history of Youngnam(嶺南) is part of Korean history that reveals the individual uniqueness of the region called Youngnam in its relations with Korean history. Research on the local history of Youngnam can make primary contributions to the systematic understanding of the Youngnam region and further offer huge assistance to the systemization of Korean history by providing the case studies and new materials of the region, thus claiming their considerable significance. There have been noteworthy achievements in terms of quantity in the local history of Youngnam including the accumulation of basic data, specialized studies based on the data, and publication of cultural books for common people. There are, however, some aspects that are lacking or leave a lot to be desired in terms of quality, which raises a need for more systematic and organizational approaches. One of them is interdisciplinary research among scholars from various related fields. The research institute of a base university with scholars of various fields can serve as a pivot for the foundation of such interdisciplinary research. If they acquire and develop methodologies for local history research based on it and thus reinforce their research capabilities, the research of local history will make an advance to the next level, keeping up with the development of local aut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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