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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경재(硏經齋) 성해응(成海應)의 인물기사 연구 : 충렬'의 드러냄과 그 의미 ADVOCATING LOYALTIES OF MEN AND FIDELITY OF WOMEN AND ITS MEANING

          손혜리 민족문학사학회 2004 민족문학사연구 Vol.24 No.-

          본 논문은 연경재 성해응의 기사문을 주목하였다. 그가 남긴 기사는 대부분 인물을 소재로 한 기사로, 특히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활약한 인물군과 하층민으로서 직분에 충실한 인물군, 여성 특히 열녀의 정절을 형상화한 작품군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인물군은 모두 충렬을 실천하여 고취시켰다는 점에서 상동성을 지닌다. 연경재는 특히 충렬을 곧추세운 인물에 관심이 많았거니와, 이는 연경재 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대국가적인 차윈에서 해석해야 할 듯하다. 요컨대 그의 기사는 한 개인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했지만, 그 주제는 그 개인의 개성적 품성인 '충렬'로만 포장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사회 내지 국가적인 '충렬'로 확장되어 있는 것이다. 거기에 연경재의 현실인식의 공과가 놓여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This paper is on the writings of real event-recording by Sung Hae Eung known as a pseudonym, Yun Kyung Jae, especially on the records of person of character. In his writings of real event-recording which of them most of all consist of records dealing with person of character, three categories of writings are noteworthy : a group of people fighting against enemics in Chinese invasion in the year of 1636, people of the lower classes doing their best within their social positions and women of fidelity characterized as keeping their lives immaculate. These groups of people have a similarity in the point of emerging and advocating the integrity, viz fidelity to immaculateness and loyalties to the country and king. In particular, Yun Kyung Jae took great notice of loyal men and chaste women, but it seems to me that writer's concern has to be interpreted from the aspect of the state level as well as writer's opinion : in brief, his writings started from individual interests on certain persons, but, from thematic viewpoint, loyalties of men and fidelity of women could not stand still within the limits of individual qualities, and the moral rectitude naturally could not help growing and expanding to society, even statewide. Here spreading place is the right point where writer's excellence and inferiority of grasping realities are lay.

        • KCI등재

          일반논문 :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조선 지식인들의 明 遺民에 대한 기록과 편찬의식 -李德懋의 『磊磊落落書』와 成海應의 『皇明遺民傳』을 중심으로-

          손혜리 ( Hye Ri Son ) 한국실학학회 2014 한국실학연구 Vol.0 No.28

          李德懋(1741-1793)와 成海應(1760-1839)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개인의 사상적 배경이 부합되면서 방대한 분량의 『磊磊落落書』와 『皇明遺民傳』을 저술하였다. 이덕무는 연행시 오랑캐가 되어버린 중국을 보고 충격 받아 명말 유민에 관한 자료를 대거 취재하여 『뇌뢰낙락서』를 편찬하였으며, 성해응은 『뇌뢰낙락서』를 바탕으로 범례를 정하고 번잡한 내용을 산삭하여 『황명유민전』을 저술하였다. 『뇌뢰낙락서』의 문제점으로 제기된 번잡함은 오히려 중요한 특장이 된다. 교정과 편집 과정을 거치지 않아 번잡하고 거칠긴 하지만 이덕무의 폭넓은 독서체험과 범위, 지적 탐구와 관심의 향방을 생동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황명유민전』은 완성도가 높은 데다 『뇌뢰낙락서』와의 비교 고찰을 통해 명 유민에 대한 기록이 편찬되는 과정의 추이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이처럼 『뇌뢰낙락서』와 『황명유민전』은 18~19세기 지식인들의 사상적 배경과 기록 태도, 편찬 의식 등을 규명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큰 저술이다. Lee Deok-mu(李德懋, 1741-1793)`s writing of NoeLoeNakRakSeo(『磊磊落落書』) and Seong Hae-eung(成海應, 1760-1839)`s writing of Hwang MyeongYuMinJeon (『皇明遺民傳』) coincides with an atmosphere of times and personal ideological background. Lee Deok-mu visited China in 1778 and was shocked to see China turned into a barbarian state. So he gathered related vagrant people in the Ming dynasty to document and compiled NoeLoeNakRakSeo. Seong Hae-eung`s compilation of HwangMyeongYuMinJeon fixes a legend and focuses on the undecided constitution of NoeLoeNakRakSeo. These books have massive amounts of material and it is an event unprecedented in history, not only for Joseon but also for China as well. Lee Deok-mu and Seong Hae-eung have attitude of learning of erudition and historical research. In reality, NoeLoeNakRakSeo and HwangMyeong YuMinJeon revealed their attitudes of learning. But one problem is that NoeLoeNakRakSeo does not fix one of it`s legend and it is a noticeable feature in his book. Even though it`s complicated and rough because of the lack of editing, we can identify not only his experience in nature and his extent of reading, but also his intellectual pursuit and interest. Also HwangMyeongYuMinJeon fixes and edits legend of NoeLoeNakRakSeo, so it is high quality book which refers to the latest books. It is interesting that we peep process of compilation of vagrant people in the Ming dynasty comparing with NoeLoeNakRakSeo. Therefore NoeLoeNakRakSeo and HwangMyeongYuMinJeon are valuable textbooks which reveal ideological backgrounds, attitudes of records, and consciousness of compiling in the 18th century to the 19th century.

        • KCI등재후보
        • KCI등재

          조선후기 지식인의 생업에 대한 인식과 현실적 대응

          손혜리(Son Hye ri) 한국고전연구학회 2014 한국고전연구 Vol.0 No.30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고는 白雲 沈大允(1806∼1872)을 중심으로 조선후기 지식인이 학문과 도덕의 수양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마련하지 못한 경우 상공업에 종사하여 생계를 유지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심대윤이 노모와 어린 두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목반을 만들고 약을 판 행적을 기록한 글은 매우 중요하다. 비록 몰락한 처지이긴 하지만 명문 사대부가 출신으로 생계를 위해 직접 상공업에 종사한 데다 이를 기록으로 자세하게 남긴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는 땀 흘려 일한 대가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한 것에 대한 기쁨을 표출하고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재발견하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士의 정체성 상실로 인한 내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變通'의 논리를 제시하여 논리적 대응을 모색하였다. 이 글은 조선후기 한 몰락 지식인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이며 적극적 대응과 그로 인한 고뇌와 갈등을 통해 인간적 초상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This paper examines intelligentsia in the late Choseon dynasty who were not financially independent by studying and cultivating morals engaged in commercial and industrial circles focused on Baek-Woon(白雲) Shim Dae-Yoon(沈大允, 1806∼1872). It is a very important document that Shim Dae-Yoon engaged in commercial and industrial circles such as making wood block and selling medicine to maintain his aged mother and two younger brothers. Because it rarely remains document which is related to working commerce and industry as a noble family, even though they fall in their circumstances. Shim Dae-Yoon expressed of joy on supporting his family and rediscovered value of working for his hard work he did. But, he experienced an inner conflict because of cold eyes and lost of identity as classical scholar. To overcome, he insisted on a logical argument called Byeontong(變通). It is meaningful that this paper reveals intelligentsia in the late Choseon dynasty who had practical actions and inner conflict to earn a scant l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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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전반 成祐曾과 淸 문사들의 교유 양상과 의미

          손혜리(Son Hye ri) 한국고전연구학회 2016 한국고전연구 Vol.0 No.34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고는 成祐曾(1783~1864)이 1818년 무인연행 시 淸의 문사들과 교유한 양상과 의미에 대해서 논의한 글이다. 그는 청의 문사들과 주고받은 시와 편지를 󰡔茗山集󰡕에 수록하였는데, 이는 1818년에 있었던 3차례의 연행 중 유일하게 전하는 기록으로 자료적 가치가 크다. 성우증의 연행 기록은 무인연행의 제 양상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817년에서 1821년까지 비교적 간극이 길었던 연행록 연구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 성우증은 연행을 통해 청 문사들과의 학문적 교유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실제 이를 성취하였다. 그가 교유한 청의 문사들은 陶澍와 陳用光을 중심으로 翰林院에 재직하며 혈연과 관직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과 창수한 시는 대부분 상대방의 인품과 詩才를 칭찬한 뒤 이별의 아쉬움과 그리움의 정서를 표출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의례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진정성이 오롯이 표출되어 우정이 빛을 발한 경우가 더 많다. 성우증에게 있어 이들과의 교유는 神交이자 得意處라 하기에 충분하다. This paper studies aspect and meanings of companionship between Sŏng, U-chŭng and scholars in Qing dynasty during diplomatic mission in the year of Muin(1818). He made an exchange with scholars in Qing dynasty about poems and letters, and included them in Myŏngsanjip. It is a valuable material which is the only record of diplomatic mission in the year of Muin. It is a very important document that verifies aspect of diplomatic mission in the year of Muin and fills a gap in Yŏnhaengnok studies from 1817 to 1821. Sŏng, U-chŭng thinks companionship is the most important thing during diplomatic mission. He met Do Ju(陶澍) and Jin, Yong-gwang(陳用光) who were well-known in Qing dynasty, and they built human networks. They exchanged poems which were related to compliments of personality and poetic talent, and expressed wishfulness and longing for saying goodbye. They are not always ceremonial, they are much more sincere and truthful. So, it is enough to say that their companionship is tŭkŭich'ŏ(得意處) and sinkyo(神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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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호(成仁鎬)의 1869년 연행 체험과 청(淸) 문사와의 천리심교(千里心交)

          손혜리 ( Son Hye-ri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7 大東文化硏究 Vol.0 No.98

          본고는 竹澗 成仁鎬(1815~1887)의 연행 체험을 통한 ??에의 동경과 淸 문사와의 교유에 대해 밀착 취재하였다. 성인호는 조선 후기 서족 명문의 후손으로, 그의 집안은 3대에 걸쳐 제술관이나 서기로 일본 사행에 종사하였다. 19세기에 들어와, 부친과 숙부에 이어 성인호는 1869년 동지사행에 자제군관으로 참여하여 『遊燕錄』1책을 저술하였다. 이는 1869년 연행과 관련하여 전하는 유일한 단독저술인 만큼 자료적 가치가 있다. 따라서 최근 발굴된 문집 『竹澗集』 2책을 바탕으로 성인호의 생애와 저술을 소개하고 『유연록』을 함께 검토하여 관련 기록의 부재로 공백화된1869년 연행에 관한 제 양상을 구체적으로 논증하였다. 이를 통해 학계에 소개되지 않은 한 서족 문사의 생애와 저술, 연행 체험과 청 문사와의 교유 양상과 의미를 규명하여 이 시기 연행록 연구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연구사적 의의가 있다. This paper studies a longing for village through experience as a diplomatic envoy to China and the companionship of scholars in Qing Dynasty. Song, InHo`s family parti-cipated in diplomatic envoy to Japan as a recorder(Called Chesulkwan) for three generations. In the 19th century, Song, InHo went to China as a diplomat(Called Chache-kunkwan) in diplomatic mission of 1869, and wrote Yuyonlok(『遊燕錄』). It is a valuable material which is the only record of diplomatic mission in the year of 1869. So, this paper introduced Song, InHo` life and his book through Chukkanjip(『竹澗集』), and also demonstrated an aspect of diplomatic mission in 1869 through Yuyonlok. It is very meaningful to investigate a descendant from a concubine(Called Sochok)`s life, his writing, and aspect of friendship of scholars in Qing Dynasty, and set the fundament of yonhaenglok(『燕行錄』)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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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해응(成海應)의 송서(送序)를 통해 본 경세의식

          손혜리 ( Son Hye-ri ) 한국실학학회 2018 한국실학연구 Vol.0 No.36

          본고는 硏經齋成海應(1760∼1839)이 저술한 22편의 送序를 대상으로 전체작품의 개요를 파악한 뒤 내용을 분석하고 의미를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송서란 길 떠나는 이를 전송하며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글이다. 성해응의 송서 작품을 주목하는 이유는 조선 후기 사상 가장 많은 편수의 송서를 저술하였거니와 여기에는 사명을 받고 연행을 가거나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이를 전송하는, 즉 공적인 영역의 송서가 14편이나 실려 있기 때문이다. 성해응은 송서를 써 준 대상과 世交가 있는데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저술에 치력할 때 지은 작품이 대부분이다. 학문이 노성한 상태에서 본인의 의식이 잘 집적되어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해응은 청도군수로 부임하는 金箕書에게 改量의 중요성과 민생의 안정을 강조하였으며, 연행하는 조카 成佑曾과 趙萬永에게는 중국에 변고가 있을 경우 조선이 영향을 받아 위험해질 것을 경계하고 覘國을 통해 대비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 연장선에서 이천과 춘천 등 한때 고대 국가의 수도였던 동국의 경계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식견을 지니기도 하였다. 아울러 그의 송서 작품에는 조선후기 사회의 근간을 뒤흔든 체제 모순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이면서도 강도 높게 제기되어 있다. 특히 서북지역뿐만 아니라 삼남의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이에게 탐관오리와 간악한 吏胥, 倖民등으로 이루어진 구조적 병폐를 지적하고 올바른 인재를 등용할 것을 거듭 강조하였다. 송서에 표출된 성해응의 이러한 의식은 실학적 사고에 바탕을 둔 경세의식의 소산이라 평가할 수 있다. This paper aims to analyze content and deduce meaning with twenty-two songso(送序farewell document) which was written by Yon'gyongjae(硏經齋) Song Haeung(成海應, 1760∼1839). Songso is document that farewells and encourages departees. In this paper, the main reason I have noticed is that Song Haeung wrote songso in the majority, and fourteen songso are about the public realm. Furthermore, most of the works are related to a traditional friendship between families. He wrote them after resigning from office, so it is expressed in his awareness on the condition of ripeness level of study. Song Haeung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improvement(改量) and stabilization of public welfare to Kim Kiso(金箕書) who left for Cheongdo governor. And he made a request for spying for China(called 覘國) to Song Uchung(成佑曾) and Cho Manyong(趙萬永) who visited China as public duty. In this regard, he showed a special interest in frontier awareness of ancient countries’s capital such as Icheon and Chuncheon. In addition, songso contains criticism of contradiction in system significantly. Especially he pointed out to local government of northwestern province and the three southern provinces official structural problems, and attached importance to appoint competent people. Song Haeung’s consciousness that is expressed in his songso is based on thought of Silhak(實學), and can assess a result of economic consc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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