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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能) 『恋重荷』와 『綾鼓』의 주인공상 비교

        김충영 한국일본학회 2019 日本學報 Vol.0 No.119

        According to the record of ‘Sando’(Zeami’s theoretical work on Noh), Zeami’s Noh called ‘Koinoomoni’ is not an original creation but a rewrite of another work, named 『Ayanotsuzumi』. The purpose of the current study was to examine the possibility of connection between the two pieces by comparing the heroes’style in the two pieces. Results showed that there are several differences between the two, in spite of the similarities in style between the two heroes in those two pieces. In this regard, it is worth-mentioning that if one wants to deduce whether 『Ayanotsuzumi』 is the original work of 『Koinoomoni』, it searching the differences rather than the similarities between the two would be more effective and reasonable. The ‘stern difference’ between the two pieces is the difference in style between the heroes which was seen in the last scene of the two works. The hero of ‘Ayanotsuzumi’disappeared with cherishing a grudge for the empress, whereas the hero of ‘Koinoomoni’disappeared without any of grudge for the empress. This difference was the result of Zeami’s work of rewrite in the ‘Kyakurai Spirit’ (one of Zen Spirit). This spirit showed the spirit of tolerance. Therefore, I think Zeami’changed the style of his hero in ‘Ayanotsuzumi’to that of ‘Koinoomoni’. 제아미의 노(能) 이론서 『산도(三道)』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작품 『고이노오모니(恋重荷)』는 완전한 창작이 아니라 이전의 다른 작품을 새로이 고쳐 지은 개작이라 한다. 그렇게 개작하기 이전의 작품으로는 『아야노쓰즈미(綾鼓)』라는 작품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데, 본 논고에서는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두 작품에 등장하는 主人公像을 비교하여 그 가능성을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두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상 사이에는 유사성도 어느 정도 있긴 했지만, 상호간의 엄연한 차이점 또한 적잖게 포착되었다. 『恋重荷』로 개작하기 전의 원작이 『綾鼓』라는 것을 추정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유사성보다는 차이점 쪽에서 그 단서를 찾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 보고, 그러한 엄연한 차이점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그 엄연한 차이점이란, 작품의 마지막에서 보이는 인물상의 차이였다. 『綾鼓』의 주인공의 경우 자신에게 고통을 안긴 女御에 대한 복수를 상당 수준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원한을 품은 채 사라져 간 반면, 『恋重荷』의 주인공은 회심하여 원한을 털고 용서의 道心을 발휘하여 성불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인물상에 보이는 이 같은 대조적 차이는 제아미가 만년에 심취했던 禪의 경지 중 「却来」의 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이 「却来」에는 그 어떤 하찮고 저열한 수준에 머문 자라도 포용하고 용서하는 인격적 정신도 포함된다. 『綾鼓』의 주인공을 처음 접한 제아미는 거기에 「却来」의 정신을 불어넣어, 용서를 통한 성불의 길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재창출하고 싶었던 것이라 보이며, 『恋重荷』는 이렇게 태어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 KCI등재

        노(能)에서의 요시쓰네상(義経像)

        김충영 한국일본학회 2009 日本學報 Vol.79 No.-

        源義経が登場するいくつかの能作品を対象にしてまずその人物像の推移を辿ってみた。分析の対象としたのは、『鞍馬天狗』『八島』『正尊』『船弁慶』『安宅』などである。これらの作品の順番は、義経の人生歴程における時間的な順序に拠った。その分析の結果明らかになったのは、これらの作品の中における義経像の人物像造形の推移にはある意図的な流れが読み取れるということである。それは義経の人物像を必要以上に矮小化しようとする方向性である。これはいわゆる「判官贔屓」の情緒にあわせた脚色方向というのは言うまでもなかろう。ただ、ここで見逃せないと思うのは、こうした人物像造形における方向性と合わせて、弁慶という人物の急浮上の痕跡である。これを私は当時の民衆の補償心理に合わせようとした結果に他ならないと思う。つまり、時の英雄たる義経という人物を失った民衆の喪失感を補ってあげようとした作者たちの意図の産物が他ならぬ弁慶という人物像で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

      • KCI등재

        요곡(謠曲)『 이사(姨捨)』 의 이중구조

        김충영 한국일어일문학회 1999 日語日文學硏究 Vol.35 No.1

        本考察で明らかにされたことは, 『名月賞美の歌』と「姨捨傳說の歌」という二つの方向から詠者の心情を解釋することを許す謠曲 『姨捨』の素材歌 『わが心』歌が, 謠曲『姨捨』に來ては, 「美への妄念」と「淨化への祈り」といった二つの相反する心として汲み取られ, その間で引き裂かれる主人公(老女)の心を映發するかたちで內面化され, 作品の中に織り입ま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 この二つの心理のはざまで『姨捨』の主人公たる老女の心は屈折し, 二つの方向へ引き裂かれている. ところで, 本曲の典據世界を貫いてうかがえるものは, 人の心にはたらきかける月のもつ靈的な力であった. そうした月の作用力は, 老女の心に救濟への願望を抱かせる原動力となっており, さらには瞬時ながらも淨土幻想を通した至福の境地にまで彼女を引き上げてくれる「無邊光」という無限の力にまて發展している. こうした典據世界をふまえた脚色には, 月の淨化力をめぐる文學的傳統を繼承しようとする作者の意圖がはたらいていると筆者は思う. 言い換えれば, 『姨捨』主人公の二重的心理は, 作品の素材歌「わが心」歌に讀める二つの詠者の心情をふまえたものであり, そこに月の淨化力をめぐる文學的傳統を繼承しようとする作者の意圖までが加わって作り上げられたものと考えられる.

      • 李舜臣 將軍의 戰略에 관한 硏究分析

        金忠英 國防大學校 2000 敎授論叢 Vol.20 No.-

        오늘날 우리는 이순신 장군을 성웅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임진왜란사를 통하여 이순신 장군이 여러 해전에서 왜군을 여지없이 무찌른 사실을 알고 있으나 이순신 장군의 전략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순신 장군은 자기가 평소 실천했던 전략을 수없이 조정에 장계(狀啓)를 올려 보고 했으나 조정 대신들은 장군의 전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장군이 싸울 때마다 이기는 것을 보고 조선 수군을 과신했으며 급기야 원균의 저돌적인 주장에 고무되어 이순신 장군을 하옥하고 뒤이어 백의종군케 했다. 본 연구서는 이순신 장군의 전략이 싸워 쉽게 이길 수 있는 전투를 하여 승리하는 勝易勝者 戰略(쉽게 이길 수 있을 때 전쟁을 하는 전략)임을 밝힌다. 이 전략은 거제도 이서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왜수군이 이 지역에 침범해 오지 못하게 하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호남지역을 온전히 하여 서울에 물자 수송을 보장했다. 그러나 조정 대신들은 이 전략의 이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원균의 적극전략을 취하다가 조선 수군은 와해되고 조선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조정에서 이순신 장군을 재등용하자 곧 수군을 급히 복구하고 좁은 명량해협을 지켜 적은 수군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왜 수군을 물리쳤다. 그리고 왜 수군이 더 이상 서해로 진입하지 못하게 하여 왜 수군이 한강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게 했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왜 수군의 약점을 꿰뚫어 보고 이 약점을 쳐서 열세한 수군을 이끌고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하 장군들이 왜 수군의 기세에 드려워 물러날 때 장군 혼자 외롭게 적진에 뛰어 들었고 예하 장군을 독려하며 싸우는 이중고를 치렀다. 그래서 명량전투는 死地則戰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전투 종료후 天幸! 天幸! 이라고 난중일기에 기록했다. 이 명량해전에서 어떻게 13척의 전선으로 330척의 왜 수군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가를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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