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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이산가족 영화에서 드러나는 가족주의 양상

          김승경 ( Seung Kyung Kim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2013 동아시아 문화연구 Vol.55 No.-

          한국전쟁으로 인해 한국사회는 이전 어느 시대에도 겪지 못했던 변화를 겪었다. 한마을이 갈라지고, 형제가 갈라졌으며,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생겨났다. 수많은 외국군대가 전쟁에 개입했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과는 우방이 되고, 같은 민족은 적군이 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해방이 되고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 속에서 총부리를 겨누면서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많은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중에 하나인 이산가족의 문제도 수면으로 드러나지 못하다가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통해 TV는 가족들의 상봉장면을 감정적으로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나라는 눈물바다를 이루었으며, 전쟁의 상처는 완벽하게 봉합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시기에 이산가족 ``찾기``이면에 있는 30여 년 동안 서로 떨어져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그저 ``혈연적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났을 때, ``찾기``가 현실이 되었을 때 ``살기``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몇 편의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 영화들은 전쟁의 종식이 아닌 멈춤이라는 불안정한 휴전의 상황이 지속되면서 전쟁으로 생겨난 문제들을 해결하고 못하고 한 세대가 흘러버린 80년대 중반 현재의 시점에서 가족과 민족, 국가의 개념의 변화에 대해 직접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 One of the problems caused by the Korean war that still persists today is the problem of separated families. It was not mentioned in the movies until KBS started airing programs that sought out separated family members, as only after the broadcasts did the topic appear in fiction and movies. However, it was not mentioned along the war which has long become history, instead focusing on the ``family`` that were separated during the war and have already lived over three decades in entirely different environments. It broke the illusion created by the emphasis on ``finding`` separated family members, but relating the stories of ``living`` as separated families. These four movies are about the restoration of families that were physically separated because of the war and have lived in separation due to the armistice. <The Winter That Year Was Warm> and <Kilsodeum> show how strong patriarchal families collapse and fathers lose their patriarchate. They also show that the traditional families, based on kinship, have taken on another meaning coming from social status, slowly transforming from the absolute to the more relative social entities. Although families in terms of kinship, if they have drifted apart and became different through separation, they can only become a true family after acknowledging each other and calling each other family. These two movies also show the darker side of capitalism and the changing society of Korea, namely the increasing gap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 during the high-growth industrialization period from 1960 to 1970. At the same time, the movies also point out the unsolved problems brought by the pause of -not the end of- the Korean War and the changing concepts of family, ethnicity and nation in the mid 1980s when a generation has passed already.

        • KCI등재

          기획논문 : 자본의 다양화와 투자사의 영역 확장 -새로운 자본의 유입과 역할을 중심으로-

          김승경 ( Seung Kyung Kim ) 한양대학교 현대영화연구소 2014 현대영화연구 Vol.10 No.3

          1984년 말 미국이 한국영화시장 개방을 본격적으로 요구하면서 정부주도라는 영화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1988년 외국영화직배가 허용되면서 이러한 한국영화시장의 변화는 외국영화들에 대한 관객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효과를 주어 한국영화시장 자체를 활성화시키는 것에는 도움을 주었으나, 흥행 수익이 제작투자로 이어질 수 없게 되어 한국영화의 질적 수준은 점점 퇴보하게 된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크게 성장한 비디오 산업은 자연스럽게 삼성, LG, 대우 같은 전자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제조업 기반의 대기업들이 비디오플레이어 보급을 목적으로 영화산업에 진출하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진출 초반 제작은 전문영화사나 프로덕션에게 맡기고 기업은 제작비 조달과 배급에만 관여해오던 기존의 분업구조의 틀을 깨고 1990년대 중반부터 기업이 직접 영화사를 차리고 제작에 직접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까지 영화투자로 수익을 올린 회사는 없었다. 더군다나 IMF로 인하여 모기업이 위기에 처하면서 전자제품 기반의 대기업들은 영화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대신 창업투자사와 식음료 중심의 대기업인 CJ를 중심으로 영화에 대한 투자 심리가 일어나게 되었다. 투자주체의 변화에 따라 2000년대 이후 투자방식의 변화는 투자주체들을 크게 세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전략적투자자, 재무적투자자, 공적투자자가 그것인데, 2005년을 전후하여 충무로 토착자본인 시네마서비스가 CJ와 손을 잡고, 중소규모의 투자배급사들이 인수와 합병을 통해 변화를 꾀하면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투자주체의 성격이 분명해졌다. 2005년 이후에는 SKT, KT 등의 이동통신사업자들의 진출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즈음하여 영화제작편수와 점유율 등이 증가하면서 <괴물>등의 천만 흥행 영화가 등장하면서 한국영화 시장의 활황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활황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이 시기의 영화계를 전형적인 거품성장으로 바라보면서 정부의 무분별한 지원정책과 카드사나 통신사와 연계된 극장 입장료 할인 정책 등을 원인으로 지적하였다. 최고의 한국영화 투자수익율을 기록한 2013년에도 여전히 대기업 투자사와 중소투자사 간, 투자사와 제작사간, 배급사와 극장 간의 불공정 문제는 제기되고 있다. 대기업 진출 초기인 1990년대 초반에 비해 제작비는 크게 상승하였고, 사실상 대기업의 투자없이는 한국영화의 제작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시점에 와 있다. 대기업이 영화산업에 진출하고 난 이후의 행보를 살펴보면 독과점 등을 통한 불공정한 거래 행위들이 있어왔지만 한국영화산업에 기여한 바도 크다. 영화산업 내의 각 분야는 서로에게 책임을 미룰 것이 아니라 상생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The government-led paradigm of Korean film industry began to change when the US had asked the full-fledged movie market opening in the end of 1984. In 1988, the direct distribution of foreign film was allowed, and despite this change in the market led to the activation of the market itself by increasing the accessibility of audiences to foreign films, the quality of Korean films was degenerating because the reinvestment of box-office profits was not possible any longer. In the meantime, a robust increase in the video industry provided a groundwork for entering the film industry of manufacturing-based big enterprises which mainly had produced electronic products such as Samsung, LG, Daewoo, for the purpose of dissemination video player. In the beginning, these enterprises were involved only in financing and distribution, however, since the mid-1990s, they began to participate directly in making films by establishing their own film production companies. Unfortunately, no company could earn a profit by a movie investment until the mid-1990s. In addition, due to the IMF crisis, electronics-based enterprises were to withdraw from the film industry. On the other hand, venture capital firms and CJ which was a food and drink company took an interest in film investment. After 2000, there emerged three different types of investors depending on their investment approaches: Strategic investors, financial investors and public investors. Around 2005, when Cinema Service, aboriginal capital of Chungmuro, collaborated with CJ and other small and medium-sized investment companies were on the mergers and acquisitions, the differences of types of investment became apparent depending on their subject of interest. And then, the mobile carriers such as SK telecom and KT began to enter the industry. The period of buoyancy of Korean film market followed the appearance of mega hit films with 10 million-viewers like <the Host>. However, not every view was positive on this buoyancy: it was the bubble to burst. Some pointed out problems in the imprudent government policies and the ticket discount marketing strategy associated with the mobile carriers or credit-card companies. Even in 2013 recorded the highest return on investment in Korean films, the issues such as unfair contractual practices in the market were still raised. Now, it is hard to cover the film production costs without the investment of big enterprises. But there were pros and cons to the role of the big enterprises in Korean film industry. Each field in the film industry must find ways of ‘win- win', rather than shift the responsibility to others.

        • KCI등재

          학제간 학문으로서의 여성학

          김승경(Seung-kyung Kim), 이나영(Na Young Lee) 한국여성학회 2006 한국여성학 Vol.22 No.1

          1982년 이화여자 대학교에 석사과정이 개설된 이래 한국의 여성학은 대학의 안과 밖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듭하였다. 2005년 현재, 12개의 대학원에 여성학 석사과정이, 4개 대학에 박사과정이 개설되어 있으며, 전국 대부분의 대학에 교양과목이 개설되어 있을 정도로 제도적 정착에 ‘성공'하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는 학문적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친 가부장적 헤게모니에 도전하고 이를 변화시키고자 하였던 여성주의자들의 치열한 문제의식과 도전 및 실천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서양의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30여년의 역사를 지닌 여성학이 분과학문으로서 한국 사회에 굳건히 뿌리 내는데 성공했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인가? 여성학(과)이 직면하고 있는 외부적 도전과 내부적 문제는 무엇이며, 여성주의자들은 여성학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짓고 옹호할 것인가? 본 논문은 위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 미국 여성학과의 현황 및 간학문성 (interdisciplinarity)에 대한 논쟁을 살펴 본 후, 한국 여성학의 현황과 도전들을 분석하면서 여성학(과)의 존재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결론적으로 학제간 연구를 하는 분과학문(interdisciplinary discipline)으로서 여성학의 제도화는 그 동안 여성주의의 발전을 방해해 왔던 정치적, 구조적, 인식론적 요인들을 분석하면서 당면한 도전을 극복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여성주의(feminism)라는 간학문적 사명을 실현시킬 수 있는 필요조건임을 역설하고자 한다. Following the first offering of graduate courses at Ewha Womans University in 1982, Women's Studies in Korea has made tremendous progress both within and outside of academy. Nationwide, as of 2005, there are 13 M.A. granting programs and 4 Ph.D. granting programs; and furthermore, most colleges and universities offer the introductory course in Women's Studies as an elective. This successful institutionalization demonstrates the rapid spread of “feminism” within Korean society as a whole. In this paper, we ask the following questions: first, has Women's Studies been a success within the academy?; second, what is the identity of Women's Studies and what are some of the current issues and challenges facing Women's Studies?; and third, what will be the future direction of interdisciplinary discipline of Women's Studies in Korea? In answering these questions, first, we provide a survey of the current situation in Women's Studies and the debates about the issue of interdisciplinarity in the U. S.; second, we suggest a rationale for the existence of Women's Studies after analyzing present conditions and challenges to Korean Women's Studies. In conclusion, we argue that the institutionalization of Women's Studies as an interdisciplinary discipline is an essential pre-requisite for realizing feminism.

        • KCI등재

          비판적 지역학으로서의 북미 한국학 ―사회과학의 사례를 중심으로

          김승경(Seung-kyung Kim) 역사비평사 2021 역사비평 Vol.0 No.134

          The question of “how to define Korean Studies as an academic field” brings up both epistemological and methodological issues, and has been contentious among scholars in Korea. This article on Korean Studies in North America engages with this ongoing discussion about where Korean Studies belongs within the academy, and how it connects to the overarching disciplines of humanities, social science and area studies. In North America, most humanities scholars in fields such as literature, history, and philosophy teach in departments related to East Asia if that is their regional focus. This regionalization makes sense given the centrality of the sophisticated language skills that these fields require. Social science scholars, however, tend to be housed in disciplinary departments, such as anthropology, economics, political science or sociology. So while area studies departments are interdisciplinary and defined by their focus on “particularity”, social science departments work within disciplinary boundaries and strive for “universality.” In considering how North American Korean Studies scholars in social science fields have fared over the past decade, this article advocates “Critical Area Studies” as an alternative to reestablish Korean Studies in North America as a discipline committed to particular-empirical knowledge production as well as to universal-theoretical intervention.

        • KCI등재

          문화연구를 통해 본 90년대 한국영화의 이데올로기와 정체성 -<결혼이야기>와 <서편제>,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를 중심으로-

          김승경 ( Seung Kyung Kim ) 한양대학교 현대영화연구소 2008 현대영화연구 Vol.4 No.2

          The definition of culture changed over time due to new meanings being added to it in each era. In the modern era, culture is defined rather broadly, as a spiritual, intellectual product created by men who have a civilization that has escaped primitivity. This vague definition of culture makes defining Cultural Studies difficult. Thus instead of looking at cultural studies as a new or independent field of study, it is considered as an interdisciplinary field including various academic interests and research methods. As with other modern theories, cultural study has its roots in the established grand discussion, being affected by it and criticizing it. Cultural materialism, an offspring of Marxism, criticizes the relationship between structure and superstructure, claiming that they exercise overdeterminative regulation over each other. L. Althusser said that the mechanism created through overdetermining is ideology, and that the ceaseless struggle of ideology forms the core. Structuralism analyzed texts and tried to find a universal, specific principle that created meanings within the text. A. Gramsci stated that ideology constantly changes and continues to struggle in order to obtain hegemony by getting the general public`s consent. Culturalists also focus on the culture of the governed, who were left out of the established studies, changing the focus of cultural studies to mass culture. Cultural studies began as a result of such traditional, established studies with Stuart Hall in the center. After analyzing media, he stated that media simultaneously reflects and creates ideology. Thus the recipient uses dominant-hegemonic position, negotiated codes, and oppositional codes to decipher ideology shown by the media. Also within the massive trend of globalization in the modern world, a fusion of global and local cultures took place, and Hall said people today are experiencing a new diaspora. The methods used in the cultural study of ideology, identity and diaspora can also be applied to Korean film. The Korean films analyzed through cultural studies in this paper show the unstable identity of the 1990s. The current society is a post-modern one where the subject is lost, fragmented and actuality coincides chaotically with virtuality. Media is most influential to the general public and reflects their intentions best. Thus cultural studies that focus on media must grow further.

        • KCI등재

          1. 기획논문: "한국영화 7선" 2015년 한국영화를 말하다 : 역사와 기억의 사이: 영화 < 암살 >

          김승경 ( Seung Kyung Kim ) 한양대학교 현대영화연구소 2016 현대영화연구 Vol.12 No.1

          한국에서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특별하다. 일제강점기는 시간적으로 지나간 역사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잔존하는 ‘과거가 되지 못한 역사'로 존재한다. 곧 한국인에게 그 시기는 해결되지 않은 과거이자 현재이다. 결국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문자화된 역사와 현재 한반도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근대의 공간을 통해 시각화된 기억이 공존하는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를 다룬 영화들은 대부분 ‘독립의 문제'라는 거대역사에 묶여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영화의 결말에서 주인공이 ‘사실은' 독립군이었다거나, ‘갑자기' 독립운동에 투신함으로써 설득력을 얻지 못하였다. < 암살 >은 이전 영화들과는 다른 전략을 구사한다. 오히려 ‘독립'의 문제를 전면에 내걸고, 역사 속에서 알려진 인물과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속에 가상의 인물을 배치시킨다. 또 알려진 사건과 가상의 사건을 교차시키면서 알레고리를 형성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제3자적 입장에서 변화하여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목격증인으로서 영화텍스트에 한걸음 다가간다. < 암살 >은 간도참변을 일으킨 주인공이자 1930년대 조선주둔군 사령관인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의 암살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김구의뜻에 따라 암살단으로 선발된 안옥윤과 최덕삼, 속사포는 상하이를 거쳐 경성에 도착한다. 암살 작전에는 성공하지만 일본의 밀정이었던 염석진의 밀고로 안옥윤을 제외한 암살사건 가담자들은 모두 죽게 된다. 시간이 흘러 1949년 염석진은 경찰고위직으로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반민특위 재판에 회부되었다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해방이 되었지만 친일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결국 독립군 안옥윤의 손으로 친일파 염석진을 죽이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는 1911년과 1933년, 1949년 세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주로 1933년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이 시대의 공간을 구성함에 있어서도 이전영화들과는 차이점을 보인다. 1930년대 모더니티로 가득 찬 경성의 모습을 매혹적으로 보여주며 판타지를 심어주는 대신, 만주-상하이-경성이라고 하는 세 개의 다른 공간을 활용하였다. 만주는 일본군과의 전면전도 가능한 무장독립군들의 근거지로, 상하이는 일본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해 잠시나마일상의 낭만이 실현될 수 있는 공간으로, 경성은 모더니티로 포장된 세상임을 보여준다. 경성의 민낯은 쉽게 저항할 수도 없는 강압적 지배의 상태이자조선인들이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일본에 의해 가족이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친일에 앞장 선 가족을 스스로 죽이기도 하고, 일본에 의해 자신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극한의 공포를 겪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로 인해 아픔을 겪었지만 그결과 독립군, 살인청부업자, 독립군을 가장한 밀정으로 각각 다른 길을 택하였다. 암살 사건을 통해 누군가는 아픔을 극복하고 성장하였고, 누군가는 자신의 과거를 합리화하기 위해 더 잔인해 졌다.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사건에 묻혀 버리지 않고, 성장하는 주체로서 영화를 이끌었다. 또한, 이 시대의 문제를 단순히 지배와 피지배, 일본인과 조선인이라는 이분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영화의 공간과 인물을 통해 일제강점기를 현재의 시점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더 나아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시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Japanese colonial occupation is not only a resolved past but a vivid present to Koreans. So the films dealing with this period are mostly tied to the gigantic history, so called'the issue of independence', not leading to free imaginations. However, at the end of the movies heroes are in fact resistants or commit themselves to independence movements, which makes it hard to convince the viewers. Assassination has a strategy different from those previous films. It, rather, emphasizes the problem of'independence', placing an imaginary person among other well-known and also unknown historic figures. In addition, mixing the known events and fictional events helps form an allegory. This changes the audience from multilateral third persons to witnesses of the Japanese occupation and helps approach one step closer to the movie texts. Even in the configuration of the space of this age, this movie shows a difference from the earlier films. Instead of instilling a fantasy by furnishing Kyungsung as a fascinating city full of modernity in the 1930s, the movie utilizes three different spaces, Manchuria Shanghai and Kyungsung. Manchuria works as a home to the armed independence forces ready for a full-scale war with the Japanese, Shanghai is a city where Japan's influence is relatively fragile so that everyday romance can be realized, and Kyungsung is a hard-packed world of modernity. The real unfurnished face of Kyungsung is the reality where Chosun people should survive the rigid and oppressive domination of the state not resistable to ordinary people. Assassination asks a question about how we will see the Japanese occupation through space and characters of the film. Furthermore, the audience can remember people who lived that era and be provided with the possibility of a new perspective to that era.

        • 해방 직후 제작된 북한영화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변화

          김승경 ( Seung Kyung Kim ) 한양대학교 대학원 논문집(영화학과) 2006 시네마 Vol.2 No.-

          Cinema in North Korea is in the core of political propaganda of the government, which is a representative character of socialist system that uses the genre for confirming public propaganda, ideology and the justification of the government. The labor party of North Korea has a direct control on the cinema as other socialist countries and as a result, movies are produced as a core of the politics. Thus, it is inevitable to have a close look at the process of North Korean society from the political aspect. As the liber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in 1945, the Soviet Union army stationed at the North Korea. Their objective was to expand socialist power in the peninsula at the same time with to prevent the establishment of anti-Soviet Union government. Movies made by the Soviet Union were shown in diverse areas and massive amount of resources were backed to support the development of cinema. Kim Il Sung, who was in close relationship with the Soviet Union, was put in front and victories earned by him against Japan, such as Bocheonbo combat, were strongly emphasized. The first North Korean government was established in 1948. Since then, the first movie `My Hometown` was produced in 1949. `My Hometown` was made with combined efforts of talented professionals ran from the South Korea and advanced equipments. It was the first North Korean cinema which combined socialism with nationalism. As the Korean War broke out, Kim Il Sung commanded the manufacture of artworks that can motivate the public to participate the war. More efforts were put on the manufacture of anti-American artworks that can revoke undisguised hates against Americans. As a result, North Korean cinemas of the time shared the same theme; the socialist patriotism and the public patriotism that makes hero of the sacrifice of their soldiers and motivates victory of the war. From its first artwork, North Korean cinema was originated with the limitation that it had to be the reflection of the government policy and the public propaganda. Though, initially, it was able to carry the delicacy of montage and variety of characters. However, more advancement of the genre was prevented as the Korean War forced it to focus only on political ideology with heroic and standardized characters.

        • KCI등재

          표준근로계약서 도입 후 영화제작 현장의 근로 환경 변화에 관한 연구

          김익상(KIM, Ik Sang), 김승경(KIM, Seung Kyung) 동국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2015 씨네포럼 Vol.0 No.21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가 ‘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한국영화의 성장과 변화를 위한 연구와 노력들이 계속되어 왔다. 1990년대 주로 성장을 위하여 현장 스태프를 양성하고, 배치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2000년대에는 오랫동안 이어오던 영화현장의 불합리와 스태프들의 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2000년대 중반 전 영화 스태프를 대상으로 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출범하면서 영화 스태프들의 근로환경과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들이 가시화되었고, 2011년 ‘영화산업 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 계약서가 도입된 지 2년여가 흐르도록 영화현장에 적용되지 못하다가 2014년<관능의 법칙>, <국제시장>에 이르러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표준계약서와 이전 계약서를 비교하여 스태프의 근로환경이 어떤 변화를 이루었는가를 정리하고, 두 편의 영화에 참여했던 감독, 제작자, 프로듀서, 스태프와의 심층 인터뷰를 통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검증하고, 개선방향을 논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전계약서와 비교하여 표준계약서만의 특징은 1) 구체적인 계약기간 명시 2) 월급제 방식으로 급여 지급 3) 시급을 계산하여 8시간 노동 이후 12시간까지 시급의 1.5배 지급, 이후에는 2배 지급을 명시하여 시간외 수당 지급 명문화 4) 휴식시간과 휴일 지정 5) 4대 보험가입 등이라고 볼 수 있다. 표준계약서를 통한 현장에서의 변화는 무엇보다 촬영시간이 곧, 제작비라는 개념이 확산되어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통해 완벽한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스태프들 개인은 현장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미리를 명확하게 알 수 있고, 준비할 수 있어 낭비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반면에 근로시간 준수에 쫓겨 현장에서 떠오른 새로운 시도 등을 어려울 수도 있는 단점이 있다. 또, 휴일 지정은 스태프들에게 휴식과 충전의 시간을 보장해 준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반면에 로케이션 현장상황등 돌발변수가 있는 제작상황에서 지정된 휴일을 변경할 경우 스태프 대표와 미리 서면 합의를 해야 하는 규정은 100%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4대 보험의 경우 영화 스태프들이 근로자로 인정받았다는 것의 상징적 조항이기도 하지만 4대 보험 가입으로 인한 제작비 상승에 대한 제작사의 부담, 특히 제작비 규모가 작은 영화일수록 그 부담은 가중된다. 또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스태프의 특성상 구직활동을 증명해야 하는 고용보험, 3-4개월 단위로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을 교체해야 불편함 등은 영화라는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일괄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표준계약서는 이전까지 노동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하급조수들의 보수 지급보장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있다. 하지만 그 실행에 있어서는 아직 미흡한 점들이 있으며, 영화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직급별, 부서별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약안, 일정 정도 이상의 제작비 규모를 가진 상업영화들의 표준계약서 도입 의무화, 실질적으로 표준계약서를 적용할 수 없는 작은 영화들을 위한 지원정책 등은 앞으로 더 노력해야할 과제이다. Since the 1990s when Korean films began to be recognized as “industry”. In the 1990s, the industry mainly focused on training and assigning professional film staffs for growth, whereas next decade was more about researches on improving employees" poor working conditions, which lasted for a long time. Such efforts were materialized in the mid-2000s by launching Federation of Korea Movie Worker"s Union, and finally ‘The standard employment contract for the film staffs' was introduced in 2011. However, this contract was not applied for more than 2 years until the production of 〈Venus Talk〉 and 〈Ode to My Father〉 in 2014. The differences between the standard contract and the previous one are as follows: 1) Specifying the contract period 2) Paying salaries on monthly basis 3) Stipulating the overtime wages : after 8 hours of working, paying one and half times of an hourly wage up to 12 hours, and double the wages after 12 hours 4) Specifying breaks and holidays 5) Offering national insurance and pension schemes. The most remarkable changes with the standard contract are the idea of ‘Shooting time equals the production cost' spreads out. On the other hand, keeping track of time possibly restricted emerging new creative ideas while shooting. Moreover, designating holidays means to guarantee vacation and refresh time to staffs. Nonetheless, the changes in break time and holidays should be agreed in writing between the representative of staffs and the company even when it is urgent, so it makes the changes difficult to apply. Offering national insurance and pension schemes is the symbolic term which recognizes the movie staffs as laborers. However, it adds a burden to the production companies, expecially in a low-budget film, due to a rise in production costs. Additionally, the insurance and pension schemes that are offered are not suitable for the staffs who repeat the situation being employed and unemployed every 3 or 4 months. The standard contract is significant that it guarantees the payment of junior assistants whose value of labor was not correctly recognized in the past. However, there are some challenges such as making individualized and detailed agreements for each department, requiring mandatory introduction of the standard contract to the commercial films, and supporting policies for the small film which is not able to apply the con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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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계약서로 본 불공정 사례 연구

          김익상(KIM, Ik Sang), 김승경(KIM, Seung Kyung) 동국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2014 씨네포럼 Vol.0 No.19

          최근 몇 년간 한국영화의 양성 성장세는 뚜렷하였다. 그러나 양적인 성장이 질적인 성장을 이끌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그 중에서 많은 비판은 시장의 불공정 사례에 모아지고 있으며 스크린 독과점, 예매 불공정, 교차상영, 제작사에 대한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남용 등이 대표적 불공정 사례로 지목되어 왔다. 앞으로도 당분간 한국영화 시장의 성장세가 예측되며, 그에 따라 분배의 문제는 더욱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영화산업에 대한 영화인들의 공정성 인식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투자배급사(제공사)-제작사', ‘제작사-스태프', ‘배급사-상영관' 사이의 불공정 의심 사례들이 지속되면서 서로에 대한 불신이 생겨났다. 이는 신뢰가 중요한 영화산업 현장에서 영화의 질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영화산업은 자원을 투입하여 제품을 완성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산업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감독의 창의성, 스태프의 숙련도, 연기자의 연기력 등 인적요소(Human Factor)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영화제작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 영화제작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계약은 제작투자계약이다. 제작사와 제공사 사이에 맺어지는 이 계약에서 과거에는 동등한 협업 파트너로서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상호간의 동의가 전제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을 넘어오면서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제공사의 ‘최종승인'으로 조항이 변경되었다. 이는 제작사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불공정의 여지가 있다. 또한, 예산편성에 있어서도 제작사는 순제작비의 변경과 초과분에 대하여 제공사에게 승인을 받아야하고, 예비비를 초과할 경우 모두 제작사에서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배급을 담당하는 제공사의 경우 마케팅비의 예산 설정 및 집행은 제작사의 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집행 가능하다. 제작사와 스태프 간의 계약은 최근 근로표준계약서 개발되면서 불공정한 관행들이 개선될 것이라 전망한다. 하지만 아직 현장에서의 적용 비율은 13.1%에 불과하여 앞으로 부족한 점들을 개선하여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계약서의 문제 보다 계약내용을 지키지 않는 예, 특히 임금체불 등은 앞으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스태프의 귀책사유로 인한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 모든 책임을 제작사에서 지는 것으로 되어 있는 현행의 규정은 보완할 필요가 있다. 영화의 불공정 문제는 역학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측이 지위를 남용해서 통상적 관행을 넘는 무리한 요구를 상대방에게 강제하고, 다른 대안이 없는 측이 이를 받아들이는 모든 상황에 공통적으로 해당된다. 따라서 한국영화의 불공정 문제는 이해당사자들이 가능한 균형 잡힌 거래를 하도록 거래관행을 일신하는 자세의 변화와 이를 객관적으로 감시할 있는 영화적 공정거래기구를 상설하여 꾸준히 모니터링하면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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