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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자와 다산의 『논어』 禮개념 주석에 대한 일고찰

        임헌규 대한철학회 2019 哲學硏究 Vol.152 No.-

        This papers discusses Confucius's theory of Li(禮) in Confucian analects, and Chu-Hui &, Dasan's Commentary on Li(禮). The most critical question in classical Confucian ethics was what is Li(禮). Confucius considered human virtue and Li(禮)s essentially as tied together. Confucius established Gentleman(君子) as a new ideal image of human beings, and Ren(仁) and Li(禮) as central notions. Ren(仁) is the fundamental notion of moral contents, Li is the secondary notion of preforming moral contents. Chu-Hui attempted to metaphysically approach what Ren(仁) and Li(禮) are as central notions in Confucian analects based on the theory of Li-Ki(理氣論). He thought that Ren(仁) and Li(禮) is a relation of Heaven's principle(天理) and human being's desire(人欲). Dasan thought Ren(仁) and Li(禮) as a relation of the human mind(人心) and moral mind(道心), and these are made by Saint's a artificial institution emulated the laws of nature. 이 글은 주자의 『논어집주』와 다산 정약용의 『논어고금주』에 나타난 『논어』의 禮개념에 대한 정의와 주석의 일 단면을 살펴보고 그 특징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지하듯이 공자의 『논어』는 仁개념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禮개념 또한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많은 빈도수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공자는 이전의 『시』와 『서』에 비해 예의 주체(귀족에서 군자), 예의 본질과 내용(형식에서 내면), 문질의 관계(彬彬), 예와 다른 덕목과의 관계 등에 대해 한층 폭넓게 논의하면서, 행위의 표준으로 禮개념을 정립하여 후대 논의의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공자의 禮개념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 글은 이전의 연구 성과를 배경으로 하면서, 특히 주자와 다산이 『논어』의 禮개념 주석에서 획기적인 변혁을 가져온 것을 중심으로 그 특징을 서술했다. 먼저 2장에서는 주자의 禮에 대한 정의인 “천리의 절문이자 인사의 의칙”이란 말이 왜 나왔으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서술하고, 「극기복례장」 및 「회사후소장」에 대한 그의 해석이 그 이전의 해석을 어떻게 혁신하였는지에 대해 기술하였다. 그런 다음 다산 정약용이 주자의 禮개념을 어떻게 비정・재정립하였으며, 또한 그의 본말 및 문질에 대한 이론이 禮개념의 전개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창의적인 것인지에 대해 기술했다.

      • KCI등재

        신라 예부(禮部)의 성립과 운영

        한영화 ( Han Young Hwa ) 성균관대학교 인문학연구원(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0 人文科學 Vol.0 No.76

        신라에서는 법흥왕대 이래로 본격적으로 관직과 관사가 설치된다. 그 중에서 예부는 진평왕 8년(586)에 설치되었으며, 제의나 의례를 담당했다. 법흥왕대로 추정되는 <울주천전리각석> 을사년과 기미년 기록에서는 왕실의 행차에 수행했던 인물들이 제사의 준비, 실행을 담당하였다. 특히 태왕비, 왕비, 왕자의 행차를 기록한 기미년 기록에는 ‘禮臣’이 등장하여 구체적으로 일을 관리했던 인물이 등장한다. ‘예신’과 같이 예를 담당했던 직무가 진평왕대 예부의 창설로 이어졌던 것이다. 예부는 시간적 차이를 두면서 대도서, 음성서, 국학, 전사서, 사범서를 소속 관사로 편제하였다. 소속 관사의 편제 과정을 본다면, 예부의 직무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기존의 신앙으로부터 국가적 차원으로 편입 과정을 거치는 제의,(전사서, 음성서) 법흥왕대 이래로 공인된 불교,(대도서) 그리고 유교적 예제를 바탕으로 하는 의례(사범서, 국학, 음성서)를 담당하는 것이다. 예부의 5개의 관사가 소속 관사이지만 동일한 등급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대도서, 음성서, 국학은 卿을 최고의 관직으로 가진 상급 관사이며, 전사서는 監을, 사범서는 大舍를 최고의 관직으로 가진 하급 관사였다. 이러한 위상 차이는 오히려 예부의 가장 핵심적인 직무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부의 상급 관사보다는 하급 관사였던 전사서와 사범서가 예부에 대한 종속성이 컸던 것을 반영하는 것이며, 예부는 국가제사로서의 제의와 유교적 의례를 핵심적인 직무로 가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Silla had established official posts and offices in earnest since the reign of King Beopheung. Of them, Yebu (禮部) was established in the 8th year of King Jinpyeong (586) and was in charge of sacrificial rites and rituals. In the case of national ancestral rites of Silla, or the ancestral rituals of Sijomyo (始祖廟, Shrine of the Dynasty’s Founder), the king’s sister was in charge four times a year. The records of A.D. 525 and A.D. 539 of Cheonjeon-ri Gakseok of Ulju (蔚州川前里刻石), which is supposed to have been erected during the reign of King Beopheung, show that the figures who accompanied the honored parade of the royal family were in charge of preparing and performing ancestral rites. In particular, the records of A.D. 539, which include the honored parade of the Great Queen, the queen of King Galmun, and the prince, shows the figure “Yesin (禮臣)” who managed the duty specifically. Duties in charge of ye (禮) such as “Yesin” l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Yebu during the reign of King Jinpyeong. Yebu organized Daedoseo (大道署), Eumseongseo (音聲署), Gukhak (國學), Jeonsaseo (典祀署) and Sabeomseo (司範署) as its affiliated offices under its umbrella in turn. In terms of organization process, the duty of Yebu was developed in three directions; Sacrificial rites (Jeonsaseo, Eumseongseo), transferred from existing beliefs to national beliefs; Buddhism (Daedoseo), officially recognized since the reign of King Beopheung; rituals (Sabeomseo, Gukhak, Eumseongseo) based on the Confucian rites. There were five affiliated offices in Yebu, but not all had the same rank. Daedoseo, Eumseongseo, Gukhak were high-ranking offices with the highest post as Gyeong (卿), while Jeonsaseo and Sabeomseo were low-ranking offices with the highest posts as Gam (監) and Daesa (大舍) respectively. The difference in rank reveals the most essential duties of Yebu. In other words, it reflects the fact that Jeonsaseo and Sabeomseo which were low-ranking offices, were more dependent on Yebu than high-ranking offices. It is presumed that the core duty of Yebu was performing both sacrificial rituals as national rites and Confucian rites.

      • KCI등재

        『예기(禮記)』의 상례(喪禮),제례(祭禮)에 나타난 죽음론의 교육적 의의

        이유정 ( Yu Jeong Lee ),강선보 ( Sun Bo Kang ) 한국교육철학학회 2015 교육철학연구 Vol.37 No.1

        본고는 『예기(禮記)』 독해와 분석을 통해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에 대한 선진유가의 죽음관을 도출하고, 상례와 제례의 교육적 기능 탐색을 통해 그 교육적 의의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예기』 상례·제례에 나타난 죽음론은 영혼관과 생사관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예기』의 영혼관은 혼백(魂魄)의 구별로 설명되며 이는 음양론과 연결된다. 생사관은 망자의 생명력이 산 자를 통해 담보된다는 생사의 연속성으로 정리된다. 그러한 측면에서 『예기』상례·제례의 교육적 기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례·제례는 산 자가 상실에 대한 비탄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되 그것을 적절하게 조절하도록 하였다. 둘째, 상례·제례는 그것에 참여한 사람의 도덕성을 진작시키는 기능을 하였다. 셋째, 상례·제례는 존비(尊卑)와 친소(親疎)를 엄격하게 구분함으로써 생물학적·사회적 분별 기능을 가졌다. 『예기』 상례·제례의 죽음론은 한국 죽음관의 원형을 제공함으로써 한국형 죽음교육론을 구상하는 데 시사점을 제공한다. 또한 『예기』에 보이는 비탄에 대한 조절은 비탄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탐구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예기』상례·제례의 죽음론은 죽음교육을 통해 도덕교육의 실천을 모색하게 한다는 의의가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veal the meaning of death in funeral rites(喪禮) and ancestral rites(祭禮) of Liji(禮記) and to contemplate its educational significance. In funeral rites and ancestral rites the meaning of death can be viewed from tow aspects; the concept of soul and the perspective of life-death. The concept of soul in Liji is explained by Hon-Bo(魂魄), which is related to Ying-Yang(陰陽). The perspective of life-death is represented by the continuity of life-death, which means that the vitality of the dead continues through the living. Meanwhile, followings are the educational functions of funeral rites and ancestral rites in Liji. First, funeral rites and ancestral rites make it possible for the living not only to express the grief of the loss naturally but also to control it properly. Second, funeral rites and ancestral rites play a role in cultivating morality of the participants. Third, funeral rites and ancestral rites have a feature of a biological and social classification by distinguishing the high from the low, the familiar from the distant. As funeral rites and ancestral rites provide the original form of Korean death idea, the thoughts of death appeared in Liji would have a lot of implications in establishing Korean death education. For instance the idea of controlling grief in Liji would be a new model for grief education and it carries great significance in that we can find ways of the practice for moral education through death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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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기(禮記)』 ‘의(義)’ 6편 기문(記文)의 특징에 관한 연구

        정병섭 ( Jung Byung-sub ) 한국유교학회 2020 유교사상문화연구 Vol.0 No.82

        본 논문의 목적은 『예기(禮記)』 ‘의(義)’ 6편인 「관의(冠義)」, 「혼의(昏義)」, 「향음주의(鄕飮酒義)」, 「사의(射義)」, 「연의(燕義)」, 「빙의(聘義)」편 기문(記文)의 특징을 연구하여 복잡한 구성체계를 가지고 있는 『예기』의 한 측면을 밝히는 것이다. 『예기』는 일반적으로 『의례(儀禮)』의 해설서로 작성된 전국시대의 『기(記)』 131편을 편집하여 49편의 체제로 편찬된 문헌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예기』에는 진대와 한대 때의 문헌인 「월령(月令)」과 「왕제(王制)」편이 포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의(義) 6편을 제외하면 『예기』에 수록된 대부분의 기록은 『의례』와 관련이 없는 내용들이다. 『예기』는 매우 복잡한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 편들을 제외하면, 『예기』 각 편의 문장들은 출처와 작성 시기가 제각각이다. 따라서 『예기』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각 문장들을 분리해서 시대별로 나열하여, 사상의 전개나 차이를 밝혀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예기』에 대한 충분한 연구 성과가 축적된 이후에나 가능한 작업이다. 다만 『예기』 후반부에 수록된 의(義) 6편의 기문들은 다른 편들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주제가 통일되어 있고 문장이 짜임새 있게 배열되어 있다. 이것은 다른 편들과 달리 특정 시기에 특정인에 작성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대 초기에 예와 관련된 기록은 고당생(高堂生)이 구두로 전수한 금문 『의례』 밖에 없었다. 이후 고문 『의례』가 등장하고, 같은 계열인 『기』와 『명당음양(明堂陰陽)』, 『왕사씨(王史氏)』와 같은 기록들이 나타난다. 이 기록들에는 금문 『의례』에는 수록되지 않은 사(士) 상위 계층의 예제(禮制)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또 금문 『의례』의 경사(經師)였던 후창(后倉)은 『의례』에 수록된 士계층의 예제를 기준으로 상위 계층의 예법을 창안하게 된다. 『예기』에 수록된 천자·제후·경·대부 등에 대한 예제는 바로 이러한 기록들이 유입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예기』에는 예제 외에도 그 의미를 풀이하는 글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 기록들의 출처를 파악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의(義) 6편이다. 후창 및 대덕(戴德)과 대성(戴聖)은 모두 오경박사(五經博士)가 되었는데, 이들은 제생들에게 『의례』를 강론 했으며, 후창의 경우에는 예를 설명한 글을 수만자나 남겼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이러한 경사들의 강론 자료들은 『예기』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 증거가 바로 의(義) 6편이다. 의 6편은 『의례』의 절차들을 풀이하고 그 의미를 설명해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 6편의 자료가 경사들의 기록들이었다는 것을 밝혀낸다면 『예기』가 단순히 전국시대 때의 기록만 수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대 때의 자료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고, 복잡한 『예기』 체제의 한 측면을 파악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haracterize the book of Rites' 'Yì' Six Chapter. The book of Rites' 'Yi' Six Chapters is Guānyì, Hūnyì, Xiāngyǐn Jiǔyì, Shèyì, Yànyì, Pìnyì, which is included in the latter half of Book of Rites. Books of Rites have generally been known as books of Etiquette and Cermonial interpretations. But most of the book of Rites is not related to the book of Etiquette and Cermonial. Only the 'Yi' Six Chapter is deeply related to books of Etiquette and Cermonial. These chapters have different features from other chapters in Book of Rites. The subject is unified, and the sentences are well-organized. This shows the possibility that it was written by a particular person at a certain time. In the early days of the Han Dynasty, there were only books of Etiquette and Cermonial written by gāo táng sh shng. However, the book only contains examples of Shi. Therefore, rituals for those higher classes are needed. In the process, the teachers of books of Etiquette and Cermonial will be active. They mainly taught books of Etiquette and Cermonial to students. They interpreted the contents of books of Etiquette and Cermonial, and based on that, they created rituals for the upper classes. The materials they taught in books of Etiquette and Cermonial were also published in books. The book of Rites' 'Yì' Six Chapters is likely to be what the teachers of books of Etiquette and Cermonial taught students. Therefore, this proves that some of the books of Rites are records of Han scholars. And this is the key to unlocking the complicated system of book of Rites. Therefore, research on this helps us understand the book of Rites'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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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荀子 禮論 硏究 : 天人觀에 비추어 본 禮의 敎育的 含意

        박상진(Park, Sang-Jin) 교육사학회 2012 교육사학연구 Vol.22 No.1

        본 논문은 荀子 禮論에 나타난 문제의식을 그의 天人觀에 비추어 조명하는 것으로 목적을 삼는다. 개인의 측면에서 禮는 修身의 기준으로서 욕구와 감정으로 인해 가려지지 않도록 해준다. 이와 같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과의 관련성에 관한 인식이 필요하다. 하늘은 性을 통하여 인간에 영향을 미치지만, 타고난 몸의 여러 본능 ? 情과 欲? 으로 인하여 올바로 드러나지 못한다. 荀子는 이 점에 주목하여 하늘과 인간을 소통시키고 욕구와 감정을 조절하고 만족시키는 방법으로 禮를 제시한다. 인간은 禮式의 참여가 가능한 숙련된 성원이 됨으로써 모든 것과 조화롭게 되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게 하고 참여자 각각에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체험이야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禮를 수행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荀子는 여기에 주목하여 禮를 敎育의 내용으로 제시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한다. 사회의 측면에서 禮는 관념의 형식으로서 사회의 질서를 확립할 삶의 표준이 된다. 이러한 政治를 가능하게 하려면 군왕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군왕은 禮의 근본으로서 인간의 욕구와 감정을 잘 조절하여 올바른 삶으로 인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군왕 스스로 禮를 깊이 이해하고 삶에서 수행하여 백성들에게 좋은 삶의 전범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敎化의 정치적 기능이다. 이를 통해 백성들은 禮에 따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그들도 禮를 받아들여 점차 숙련된 경지에 이르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점에서 禮治는 군왕의 숙련도에 따라 그 영향력의 크기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신하들 역시 禮의 숙련도를 높여 군왕처럼 백성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자 하게 된다. 이러한 政治는 물자를 아끼고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며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게 된다.

      • KCI등재후보

        『禮記』의 번역과 그 방향

        정병섭 한국고전번역학회 2018 고전번역연구 Vol.9 No.-

        This paper analyzes the current status of the Korean translation of Liji. And this paper points out the problems of the existing translation and presents a new direction. Li is a term that encompasses the entire cultural, historical and philosophical aspects of the East. Therefore the study of Li is the work of understanding Eastern society as a whole. This book is especially important in that it preserves the ideas of ancient etiquette. It is an important literature in the study of the Confucian ideas of the Joseon Dynasty. But this book is very voluminous and difficult. So there are not many research results. So far, only part of the book has been translated. It was not until 2017 that all of them were translated. The problem with the existing translation is that it will only be translated according to Chen Hao's commentary. The book was translated according to Zheng Xuan's commentary until Yuan Dynasty of China. Therefore, to understand these things, you must understand Liji according to the Zheng Xuan's Interpretation. Also, Liji consists of 49 chapters in total. Each chapter has no unity of the subject. Nor is the style of sentences uniform. Therefore, to understand Liji anew, the boundaries of each chapter should not be set. Liji's sentences should be broken down by subject and newly arranged according to the subject. And when translating Liji, check the origin of each sentence. In addition, we should distinguish the period differences between the sentences. Only when these problems are improved can Liji be comprehensively identified. 본 논문은 국내 『禮記』 번역의 현황을 분석하고, 기존 『禮記』 번역의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번역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禮는 동양의 문화․역사․철학 전반을 포괄하는 용어이므로, 禮에 대한 연구는 동양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작업이다. 특히 三禮 중 『禮記』는 古禮의 사상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조선시대 禮訟을 비롯한 禮學의 중심은 『禮記』의 기록이었므로, 『禮記』의 번역서는 동양사회와 조선예학을 연구하는 초석이 된다. 그러나 『禮記』 자체의 방대함과 난해함으로 인해 전공자 및 관련 연구성과들이 다른 분야에 비해 현저히 적다. 그 결과 기존에는 『禮記』에 대한 經文만 완역된 상태였고, 2017년이 되어서야 주석까지 완역이 되었다. 그리고 기존 『禮記』의 번역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經文 해석이 陳澔의 『集說』 주에 따른 번역만 있다는 점이다. 漢代로부터 元代에 이르기까지 천여 년이 넘도록 중국 학자들의 禮說은 鄭玄의 注에 따른 經文 해석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言說과 議論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鄭玄의 注에 따라 『禮記』의 經文을 해석해야 한다. 또 『禮記』는 전체 49개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편들은 주제의 공통성이 없고, 문장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禮記』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편의 경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주제를 세분화하여 『禮記』 전체의 문장들을 자유롭게 배열하고 번역해야 한다. 아울러 『禮記』의 번역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각 문장들의 출처를 파악해야만 시대적 층위를 구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개선점들을 보완해야만 『禮記』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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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禮樂思想의 形成과 本質的 理念

        이상은 한국유교학회 2008 유교사상문화연구 Vol. No.

        이 논문은 다음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상세히 고찰한 것이다. 예악전통은 어떠한 배경 하에서 형성된 것인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예악관념은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되었나? 또 어떠한 변화를 거쳐 예악사상으로 성립되었는가? 예악의 본질적 이념은 무엇인가? 그리고는 예악의 현대적 의의를 몇 가지로 제시하였다. 유가예악사상의 발전과 변천의 역사가 매우 오래고, 그 범위도 넓기 때문에 이 논문에서는 공자의 예악사상에 초점을 맞추어 논지를 전개하였다. 예악전통은 원시무속활동에서 기원하며, 이는 무관문화에서 사관문화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예악은 주대의 종법사회에서 철저한 등급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예악은 그 발생의의와 무관하게 인문정신의 발현을 촉발시켰으며, 인문정신의 발현은 인간주체의 자각을 앞당겼다. 춘추시대의 예악관념의 변화와 공자의 자각에 힘입어 예악사상은 확고한 입지를 건립했으며, 순자와 『악기』를 거쳐 집대성되었다. 전통사회에 있어서 예악은 예술과 도덕, 정치와 교육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문화개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있어서는 심신의 합일과 원만한 인격의 경지를 추구한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의 관계 가운데 조화와 평형을 중시하고 사회의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한다. 유가의 예악교화는 전통사회를 유지하는 두 가닥의 끈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예악을 그대로 현대사회에 적용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마땅히 예악을 개조해야 한다. 또한 예악의 형식 혹은 시대적 국한성을 탈피하여 예악의 본질과 보편의의를 찾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예악의 실천을 통하여 진선진미한 인격을 완성하고, 아름다운 문명사회를 건립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유가 예악의 본질적 이념이라고 할 것이다. 지금 여기서 예악을 논의하는 것은 결코 과거의 문화를 그대로 재현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악의 본질과 형식을 연구하는 것은 그 안에 녹아있는 정신을 배워서 현대인의 정서에 맞는 예악을 창조하고 발전시켜 나아가려는 것이다.

      • KCI등재

        儒學에 있어서 禮의 生産原則에 대한 연구

        이명한(李明漢) 한국양명학회 2004 陽明學 Vol.- No.12

        본문의 목적은 제례의 원칙 혹은 예의 생산원칙을 연구하는 것이다. 중국고대의 예는 매우 중요한 관념이며, 종교세계에서 인문세계로 전환되는데 있어서 관건의 하나이다. 공자가 인문세계를 개척할 때, 그는 예에 관계된 이론을 발전시켰다. 즉 예를 인에 귀속시켰고, 또한 예를 의에 귀속 시켰다. 이런 이론을 통하여 예 자체는 儀文과 다를 뿐만 아니라, 예의 기초 역시 천에 있지 않고, 인간의 도덕적 자각의식(仁) 혹은 가치의식에 있음을 설명하였다. 禮는 두개의 원칙에 의하여 성립한다. 즉 초월원칙과 내재원칙(생산원칙)이다. 예가 진실한 의의가 있으려면, 반드시 仁에 의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인이 예의 초월원칙을 의미하는 것이다. 義는 예를 구성하는 내재원칙이고, 이것이 바로 예의 생산원칙이다. 예의 생산원칙은 다섯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1) 정당성 원칙. 2) 존중성 원칙. 3) 배려성 원칙 4) 균등성 원칙 5) 보답성 원칙 등이다. 예는 이런 다섯 가지 원칙에 의해서 생산되고 또한 개혁되는 것이다.

      • KCI등재

        유가 예교의 우주적 이상(理想)과 그 교육적 함의

        장정호(張瀞互) 교육사학회 2011 교육사학연구 Vol.21 No.2

        본 논문은 예가 지니고 있는 우주적 차원의 의미와 그 교육적 함의를 고찰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유가는 일찍이 인간이 자신의 덕을 통하여 천에 합일할 수 있다는 천인합덕의 사상을 확립하였으며, 그 내용적 실질은 예를 통하여 천에 합일한다는 ‘이례합천’의 관념으로 요약된다. ‘이례합천’과의 관련 속에서 예는 천지만물을 포괄하는 우주적 질서와 통일성을 갖는 원리로서 고양되었으며, 예를 준수하는 인간으로 하여금 우주적 질서에 동참하도록 한다는 초월적 의미를 함축하게 되었다. 나아가 예로써 이상적 인격의 소유자인 성인을 형성할 수 있다는 ‘이례성성’의 관념을 형성하였다. 실지로, 유가의 여러 기록에서는 성인을 예를 통해 자신의 인격을 우주적 질서에 통합시킨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예의 우주적 차원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자아와 본체 사이의 관련 또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우주라는 드넓은 세계로 확장시키는 새로운 인식의 패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인간 존재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정신적, 교육적 유산이 된다고 할 수 있다.

      • KCI등재

        개화기 강증산(姜甑山)전승에 나타난 예(禮)문화의 변혁과 그 실천 양상 - 조선말기 사회개혁의 한 방법론과 관련하여 -

        고남식 동아시아고대학회 2023 동아시아고대학 Vol.- No.72

        강증산의 천지공사는 강증산이 직접 진법주(眞法呪)를 통해 정립한 신도(神道) 라는 질서 하에 이루어지며 이는 철저히 예(禮)에 따라 격식을 갖춰 이루어진 의식 (儀式)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는 우주적 질서를 선천(先天)이라는 세계를 벗어 나 후천(後天)이라는 신(新)구조체계로 바꾸는 공동체적 예(禮)문화의 변환이며 일련의 의례와 의식을 통해 진행되고 확정된 것이다. 한 사례로 17세기 중엽에 예송 (禮訟)논쟁을 일으키기도 하며 조선 사회 오백년을 이끌어 온 하나의 지표인 예도 서구문화의 유입과 개화의 물결을 타고 조선말기 사회에 와서 새로운 양상으로 변 화하게 되었다. 개화기인 20세기 초 강증산 사상에서 예에 대한 정의는 수천 년간 지속되어온 맹자의 ‘사양지심(辭讓之心)’과는 다르게 ‘불수전강전편왈예(不受專强 專便曰禮)’라고 정의하였는데 이는 개인과 사회를 통제하는 강압적 의미이거나 편리함만을 위한 틀이 아닌 중용적 의미를 갖는 인간의 안심(安心)․안신(安身)적 행 동양식이다. 조선사회는 국가적으로나 사회생활의 측면상 여러 가지 체제에서 오백년 간의 유교적 예로 인해 구성원간의 원한의 문제가 축적되었고 이에 대한 해 결책으로 해원사상에 입각한 남녀평등의 신질서를 강증산은 강조하였다. 한 예로 망자(亡者)를 보내는 상례(喪禮)에 있어서 예에 따른 의식(儀式) 이전의 면으로 애 도하는 이의 슬픔과 함께 사자(死者)의 죽음의 본질을 말하였으며 이에 따라 예를 갖춰야함을 보였다. 특히 천지공사를 처결하며 강증산은 신명에 대한 예법을 토대 로 각종의 개혁을 예에 기반한 의식을 통해 수행하였으며, 모든 규범과 질서를 예 법을 토대로 하는 새로운 후천(後天)의 예문화를 구축해나갔다. In 1901, Kang Jeung-san, aged 31 years at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performed a 9-year ritual (1901–1909) to save the world due to a series of reasons and circumstances related to the three systems of heaven and Earth. Specifically, the ritual was a formality arising from the foundation stone and the basis of the Ritual Law, which Kang Jeung-san newly established in 1900, following an order from JinByubJu(眞法呪). Kang Jeung-san created a ceremonial framework derived from the newly opened Cheonji-dae-doh, and it has become an order governing human affairs, per the ritual(禮) performed under the law. This paper discusses examples and identifies two aspects. First, Kang Jeung-san differed from Mencius‘ “Mind of Sayang(辭 讓)” regarding the definition of ritual(禮). It is thousands of years old and has a moderate meaning rather than a coercive one that would control individuals and society or yield a framework for convenience alone. Second, he insisted on the importance of courtesy, clearly indicating the need for social reform. Joseon society emphasized the new order of gender equality based on the Haewon ideology as a solution to the accumulation of resentment among members due to 500 years of Confucian examples. For instance, in funeral rites(喪禮) for completeness, consider indicating where the dead are being sent, e.g., the afterlife, he emphasized the nature of death along with mourners’ sadness before the formality, in keeping with the example, and showed that the dead should be prepared accordingly. Additionally, he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the mental attitude of and essential preparations performed by the person preparing the rit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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