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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연구를 위한 한국종교민속론의 시각

            편무영 동아시아고대학회 2014 동아시아고대학 Vol.0 No.35

            동아시아의 범주에 관한 학제적 논의가 충분하지 않은 가운데 한국의 종교민속학에서는 이미 시급한 문제로 다가 왔다. 불교민속론의 발전적 모색을 위해서는 동북아시아의 불교민속에 국한된 연구를 지양하고 동남아시아나 서남 아시아의 불교민속을 포함한 총체적 국면을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종교민속론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라는 종 교민속연구회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여기서는 동아시아고대학회 제현의 고견에 귀 기울이기로 하였다. 종교민속연구가 결코 한국에 국한된 종교민속만을 다루는 것이 아닌 것처럼 동아시아고대학회 역시 동아시아를 논 의의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는 또 다른 언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아시아라는 광역의 문화 영역과 어떤 종교민속이 각각 날실과 씨실이 되어 만나는 접점을 연구의 시발점 으로 삼아야 함을 전제로 내세웠다. 지금까지의 비교 연구가 개별적인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나 이제부 터는 가령 문양이나 세시풍속에서 발견되는 종교민속을 통해 동아시아 전체를 조망하는 문화횡단에 도전해야 한다 . 그러기 위해 주목해야 하는 것이 종교민속학적 관점인데 이것은 종교민속 현상과 동아시아가 함께 만든 자수의 감상법과도 같은 것이다. 한편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의 다른 영역들처럼, 문화관련 영역에서도 동아시아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일단 아무도 의문부호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인문과학이 생각하는 동아시아의 범주는 사회과학과 일치하지 않을 뿐더러 인문과학 내부에서조차 미묘한 차이가 있다. 편의적이고 통상적이라는 판단 기준은 학술적으로는 무책임하 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민속학의 특징에 비추어 볼 때, 한자와 중화를 축으로 생각하던 과거의 발상이 과연 지 금과 앞으로의 글로벌 시대에 부응하는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고려해야할 점은 또 있는데, 그것은 문화과학의 이론으로 중심과 주변의 주종관계가 아닌 전체와 부분의 유기적 관 계로 봐야한다는 점이다. 역사 과학에서는 토인비가 “유기적인 전체”라 표현하였다. 전체와 부분에 의한 문화구조 는 그 어느 것도 중심일 수 없고 늘 주변일 수도 없다. 인도의 범아일여(梵我一如, Brahman-Atman-Aikya) 사상 에 수렴되는 이론이라 할 수도 있겠고, 현상학에서도 관련된 논저는 연구사의 중요한 줄기를 이룰 정도이다. 그와 같은 사상적 맥락에 입각했을 때 중국은 불교의 경유지이면서 재활성 지역이고 고구려 역시 경유지이자 재활성 지 역이라는 관계성에는 차이가 없다. 마찬가지로 인도는 불교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지만 엄격히 말하면 리그베다 사 상이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타교가 재활성된 지역이므로 같은 흐름의 관계성은 연속해서 꼬리를 무는 식이다. 한 마디로 전체가 유기체적 관계라는 인식이 중요한데 그렇게 본다면 불교는 무에서 유로 창출되었다기 보다 불교이 전부터 거듭된 재활성의 도달점이자 새로운 시작이었다. 무도 없고 유도 없다는 고대 인도의 원초적 사상 역시 그 렇게 사유되지 않았을까. 이와 같이 본다면 한자에 대한 확고부동한 가치 부여와 문화권 설정은 재고되어야 한다. 그래서 종교민속학에서는 동아시아를 아시아의 동부 지역이라는 본의로 되돌려놓고 종교민속 전반을 고찰하고자 한다. 거기서부터 종교와 어떤 민속과의 관계를 검증해야 하며, 불교는 물론이려니와 유교나 도교 가톨릭 개신교 공히 이러한 입장과 관점은 공유되어야 한다. 이상은 동아시아와 종교민속의 관계에 국한된 논술이지만 역사학이나 문학 또는 고고학이나 지리학 해양학 등 다 양한 연구 분야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동아시아고대학회는 각 분야가 생각하는 동아시아의 범주가 무엇 인지 살펴본 연후에 학회로서의 총체적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While the existing research of topics associated with East Asiais not adequate, clarifying Korean folklore of religion has become an urgent task. For more understanding Buddhist folklore, we must examine Northeast Asia along with Southeast and West Asia. Similar to how research on religious folklore is not limited to Korea, the Association of East Asia Ancient Studies has conducted research in the field of East Asia. Conventional East Asian studies still retain the model of seperate fields of study with respect to East Asia. Now, we must cross-culturally conduct research on one specific cultural phenomenon. For this reason, this paper discusses the necessity to investigate some folkloristic phenomena employing the perspective of East Asia. On the other hand, there is no doubt that cultural studies must consider East Asia Studies, similar to the social science and humanities disciplines. The range of perspective used in East Asian Studies. however, is not integrated with the social sciences. Subtle variations can be found even within humanities. Criteria of judgment, that are convenient and ordinary, continue to be used without significant academic responsibility. Under these circumstances, the question arises whether previously effective Sino-centered thought continues to be relevant in the global era. Another aspect needs to be considered. Cultural structures must be perceived as an organic relation between the whole and the parts, and not as examples of master-servant relations between the center and the periphery. Arnold J. Toynbee also described it as an organic whole. Nothing can be a center or a periphery in the cultural studies, as they are composed of wholes and their parts. This theory converges with the Indian philosophy of Brahman-Atman-Aikya. Phenomenological arguments also account for an important part of the theory. In this intellectual context, China can be perceived as a stopover and a revitalizing region, and Koguryo as well. Likewise, though India is known as the birthplace of Buddhism, India also revitalized the Rigveda and Zoroastrianism of Persia. These relationships are impermanent. In other words, it is important to see the whole as an organic link. Buddhism emerges from a combination of the constant revitalizations that occured before its arrival and its own new beginings, instead of simply emerging out of nothingness. I think the ancient Indian philosophy stating that there is no nothingness or being was also conceived in a similar manner. Therefore, we must reconsider Sino-centric thinking. It is necessary to redefine East Asia as the eastern part of Asia and take religious folklore into consideration. From that point of view, we must verify a relation between religion and folklore. Additionally, this viewpoint has to be shared with not only Buddhism, but also Confucianism, Daoism, and Christianity. These are the feature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East Asia and religious folklore. However, it is necessary to consider diverse fields such as history, literature, archaeology, geography, oceanography, and so on. For these reasons, the Association of East Asia Ancient Studies should declare a perspective as an academic conference, after reviewing a range of East Asian Studies in other areas of research.

          • KCI등재

            九州 海岸島嶼와 東아시아의 戰爭 — 고대 韓․日지역세계의 대외적 교섭을 중심으로 —

            鄭孝雲 동아시아고대학회 2007 동아시아고대학 Vol.15 No.-

            본고는 3세기부터 7세기에 걸치고 대한해협을 사이에 둔 한반도의 남해 연안지역과 큐슈 북부의 해안 지역에서 전개된 전쟁 즉, 포상 8국의 전쟁, 고구려와 왜의 전쟁, 반정전쟁, 백촌강의 전투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포상 8국의 전쟁은 3세기 초 公孫씨의 帶方郡 설치로 인한 낙랑군과 구야국을 연결하는 해상 루트의 혼란과 한반도 남해안 연안 세력과 가야세력과의 해상 교역권의 질서 재편을 둘러싼 것이었다. 광개토왕릉비로 보이는 백제를 매개로 한 고구려와 왜의 전쟁은, 중국 대륙의 불안정한 정세에 연동된 4세기 초 고구려의 낙랑․대방군 지역에의 군사적인 병합에 의한 한․일 지역사회의 새로운 질서 재편에 의한 결과였다. 6세기반정의 전쟁은 일본 열도의 大和정권과 九州 북부 연안의 筑紫정권과의 싸움이었지만, 가야와 신라, 백제와 신라의 가야지역에의 세력 확장이란 정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7세기에 전개된 백강전투는 당시의 동아시아 제국 즉, 신라와 당의 세력과 백제부흥군과 왜, 고구려 세력이 참가한 국제전이었다. 전쟁의 배경에는 중국 대륙의 당제국의 출현과 각 지역 정치 세력의 권력 집중을 매개로 한 통일 국가로의 정치적인 의지가 있었다. 이상의 전쟁은 한반도의 남해 해안의 도서와 일본 구주 북부 연안의 도서를 포함한 두 지역이 공유하는 해양이라고 하는 지리적인 공간을 무대로 전개되었지만, 한․일 지역세계에만 한정한 것은 아니고, 동아시아 세계의 정치, 외교 정세와도 밀접한 연결을 가져 전개된 특징이 있었던 것이다. 또, 이들 전쟁은 발 생 시기와 각 지역의 고대국가에의 성장과 발전, 사회경제적인 변화에 따라 관여한 정치세력의 변화는 있었지만, 대마도를 중간 기착지로서 생활을 해 온 한반도의 남해안과 큐슈 북부 연안의 도서 즉, 고대 한․일 해역세계 도서의 해상민들이 직접 관여하고 있었다고 하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고대 한일지역 세계는 바다라고 하는 자연적, 지리적인 장벽에 의해서 단절되고 있던 것은 아니고, 오히려 해양을 매개로 한 도서라는 네트워크를 통해서 고대 한․일 지역세계 나아가서는 고대 동아시아 세계와 역사적, 전통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 KCI등재

            재일지식인 김달수(金達寿)를 통한 ‘한․일 역사화해'의 모색

            송완범 동아시아고대학회 2019 동아시아고대학 Vol.0 No.53

            The works of Dalsu Kim can be characterized with three keywords: ‘the history of Korean Japanese life,' ‘the history of socialists' struggle' and ‘ancient history.' First of all, ‘the history of Korean Japanese life' is found in Kim Dalsu's early works; he wrote about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s well as Korean Japanese who worked hard for their life as they were discriminated in various forms in Japan. ‘The history of socialists' struggle' can be found in his full-length novels published after The City of Descendants(後裔の街). His works during this period were filled with overwhelming passion, enthusiasm and a sense of duty with the belief that ‘socialist reform' was the right path for Korean, showing the color of ‘engagement literature.' However, due to the constant conflicts with Jochongnyeon(朝鮮総連), the pro- Pyeongyang Federation of Korean Resident in Japan, he had not written books about ‘the history of socialists' struggle' at all since Taebaek sanmaek(太白山脈;The Taebaek Mountains) was published in 1969. His research on ancient history started in the 1970s with his book series, ‘Korean Culture in Japan(日本の中の朝鮮文化).' He worked hard on the 12-volume series, walking around every nook and cranny of Japan and writing down the journey, which was the lifework of Dalsu Kim himself. His research on ancient history seems to provide fertile ground for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Japanese Islands to seek reconciliation beyond his personal reconciliation. He had to ‘convert' from nationalism to socialism, and again to nihilism, and his two ‘conversions' were a symbol of sorrows, hardships and contradic tion that Korean residents in Japan faced. His life journey provides an opportunity for shedding new light on the meaning of Korean Japanese in the 70thyear of independence, which coincides with the effort to spread the project for ‘historical reconciliation between Korea and Japan.' 김달수의 작품세계는 ‘재일동포생활사' ‘사회주의자투쟁사' ‘고대사'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구분된다. 우선 ‘재일동포생활사'의 흐름은 김달수 초기의 작품으로 식민지시대를 포함하여 재일동포가 다양한 차별을 받으면서 자신의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시기이다. 다음의 ‘사회주의자투쟁사'의 흐름은 후예의 거리(後裔の街) 이후의 장편에서 넘치는 정열과 의욕 그리고 사명감을 가지고 조선민족의 바른 진로라고 믿은 ‘사회주의개혁'의 실현을 위해 ‘참여문학'이라는 색채를 띤 시기였다. 이후 일관되게 민족조직인 조선총련(朝鮮総連)과의 알력이 계속된 탓으로 1969년의 태백산맥(太白山脈) 이후에는 ‘사회주의자투쟁사'에 속하는 작품은 일체 쓰지 않게 된다. 김달수의 고대사연구는 1970년대부터 시작하는 ‘일본 속의 조선 문화(日本の中の朝鮮文化)' 시리즈인데 이는 일본전국을 방방곡곡까지 걸어 다니며 기록하는 정성스런 작업을 거쳐 12권의 책으로 집필한 김달수의 라이프워크였다. 김달수의 고대사연구는 김달수 개인의 화해를 넘어, 한반도와 일본열도 간의 화해를 모색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준 것은 아닐까. 민족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로 또 다시 허무주의자로 ‘전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김달수의 두 차례의 ‘전향'은 민족적 비애와 고난 그리고 모순의 상징이었다. 김달수의 인생 역정은 해방 70년의 재일의 의미를 다시금 재조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일 역사화해'의 모색에 부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KCI등재

            19世紀朝鮮「近代化」に伴う實學ㆍ氣學ㆍ東學の思想空間

            李東碩 동아시아고대학회 2006 동아시아고대학 Vol.14 No.-

            경제의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고, 「세계제국」의 도래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21세기의 현시점에서, 우리 동아시아인의 뇌리에, 2세기 전 「근대화」의 파고에 휩쓸려, 우리 동아시아인들끼리 「노동권」과 「환경권」을 서로 뺐고 빼앗겼던 비극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한편으로는 대량학살 전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던 바로 그19세기에 조선의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사상」이 움터서, 차츰 조선의 변혁사상으로 까지 발전했다는 사실도 이제 다시 새롭게 되살려 내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전쟁과 평화의 19세기야말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세계 「반평화」적인 상황을 종식시키고, 진정한 세계평화 구축를 향한 민초들의 「동아시아 역사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한 출발점이 됨은 물론이고, 미래의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이글은 1만년쯤 전의 농업혁명 이후 인류의 대립구도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를 밝히고, 글로벌 휴머니즘에 기초한 세계평화를 각 지역의 새로운 역사공동체 구축을 통하여 실현하려는 세계경제체제론 연구의 과제와 방법론에 입각해서 쓰여졌다. 이 세계경제체제론 어프로치에 따라, 19세기 조선사회에서 글로벌화하는 경제․정치․사상공간에서 지배자층과 피지배자층의 「이론과 실천」은 각각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또한 일본상인과 조선지배층에 의한 조선민중의 수탈이 점차 극에 달해갔던 19세기 말에 조선민중은 어떻게 해서 「평화사상」과 이를 기반으로 한 변혁사상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분석을 통해서, 19세기 조선경제의 글로벌화에 따라, 사상공간의 전개과정이 지배자층에 의한 근대화 이전의 존재론․인식론․실천론에서, 피지배자층에 의한 근대화 이후의 존재론․인식론․실천론으로 옮겨 간 과정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분석결과가, 존재론과 인식론 중심의 「통일과학」의 전개과정을 세로축으로, 실천론 중심의 「시민과학」의 전개과정을 가로축으로 해서, 성리학에서 기학으로의 「이론」의 전환과, 실학에서 동학으로의 「실천」의 전환과정으로서, 도표로 잘 정식화하고 있다 필자는 19세기 조선의 사상공간의 전개과정을 다음과 같이 3단계로 나누고 있다. ①먼저 19세기 전반부의 세계상업경제체제 하에서의 근대화 이전은, 각각 「통일과학」과 「시민과학」을 지향해 왔던 성리학과 실학이, 다같이 「형식화」․「공동화」 되어 갔던 단계다. 바로 이때에 사상의 「내면화」에 중점을 두었던 성리학이 이때에 와서는 지배자층의 이데올로기로서 「절대화」되었고, 사상의 「외연화」에 치중했던 실학도 점자 「보수화」로 기울어져 갔다고 파악하고 있다. 그 후 ②19세기 중반의 세계공업경제체제 하에서의 근대화로의 이행기는, 실학과 성리학의 한 학파가 18세기에 도달했던 「유심론적 기일원론」의 기철학을, 「유심론적 기일원론」의 기철학으로 전환시킨 혜강기학이 「통일과학」으로서 정립된 단계라고 보고 있다. ③그리고 19세기말의 세계공업경제체제 하에서의 근대기는, 「유심론적 기일원론」의 기철학을 토대로, 고대 동아시아의 신관(神觀)을 발전시킨 동학이, 원시유학의 상제(上帝)관을 중심으로 집대성됐던 다산(茶山)실학을 넘어서서, 지배자층이 아닌 피지배자층이 「실천」의 주체가 되는 「시민과학」을 확립한 단계라고 밝히고 있다. 필자는 위와 같은 변화과정을 통한19세기 조선 사상공간의 도달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①먼저 조선사회의 글로벌한 모순이 대다수의 가난한 민중들에게 집중되는 가운데, 지배자층에서 피지배자층으로 사상공간의 주체가 옮겨갔다는 점이다. ②그리고 이 「평화사상」에는 피지배자층이 고대로부터 생활양식 속에서 실천해 왔던 「천인사상」과 「도(道)의 사상」이 상호 융합돼 있다는 점, 즉 「유심론적기일원론」(「유(儒)의 사상」의 부정)에 기초한 「시천주」의 신관이 그 중심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상의 분석으로부터 필자는 진정한 세계평화와 동아시아 평화, 그리고 진정한 조선반도의 평화와 한국평화를 위한 21세기 「동아시아 역사 공동체」구축을 향해, 「평화 과학」의 과제를 세 가지로 제안하고 있다. ①우선 정보혁명에 따른 새로운 우주관과 생명관을 포함한 존재론과 인식론의 구축, 즉 21세기 「통일과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②그리고 21세기 동아시아에 있어서, 대다수 민중들의 「환경권」을 박탈하는 세계 「반평화」를 극복하고 동아시아인의 경제․환경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21세기의 천인운화(天人運化)의 승순(承順)을 방해하는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모순론으로서의 「환경과학」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③궁극적으로는 글로벌 캐피탈리즘에 대항할 수 있는 글로벌 휴머니즘에 기초한 21세기 동아시아 문화공동체를 구축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민초들이 초국적인으로서 새로운 역사공동체의 주체가 되는 21세기 「시민과학」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21세기 「동아시아 역사 공동체」구축을 향한 새로운 「통일과학」․「환경과학」․「시민과학」으로서의 「평화과학」이야말로, 21세기 세계사상공간에서 진정한 평화사상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으며, 21세기 「한국학」도 바로 이러한 「종합과학」으로서의 방법론적 연장선상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필자는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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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향가 연구 동향과 과제

            최정선 동아시아고대학회 2016 동아시아고대학 Vol.0 No.41

            본 논문에서는 1980년 이후 일본의 대표적인 향가 연구 결과를 정리하고 특징 을 살펴보았다. 연구의 목적은 일본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들을 일람함으로써 향가 의 동아시아적 위상을 파악하고 비교문학 연구의 필요성과 방향성을 정립하는 데 있다. 일본의 향가 연구는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뉜다. 향가와 일본 고대가요와의 관련성을 비교 연구하는 입장과 향가의 독자적 특질을 일본 연구자의 시각에서 분 석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궁극적으로 한자 문화권이라는 동아시아적 보 편적 배경 안에서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 양국 문학의 고유성을 밝혀내는 의미가 있다. 비교 문학 연구가 지향해야 하는 과제는 동아시아 문화 공동체 안에서 공유된 의식과 개별화된 특질을 비교 분석하는 일이다.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 내에서의 문화적 상관성과 문학적 관련성을 적극 규명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한국과 일 본 학자들의 상호 협력과 교류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양국의 고전 문헌들이 번역되어 원전 접근성이 높아져야 한다. 향가 연구의 지역성을 극복하고 시야를 확대하여 동아시아적 시점을 확보함으로써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해야 한다 The study on Hyangga, which was initiated from the Japanese scholars' study of translating words, has made a remarkable achievement-both in quality and in quantity-for nearly a century. The Japanese study on Hyangga has had two different groups of research. One group has focused on the relations between Hyangga and the Japanese classical poetry. This group includes researches on relations with the Japanese classical poetry by comparing classical poetry of the two countries, which have belonged to a cultural area of the ancient Chinese character but developed their own culture. In addition, they have intended to investigate the generality and originality of the East Asian literature by comparing Hyangga with the Japanese classical poetry, and furthermore, by comparing with the Chinese. The other group has focused on Hyangga itself. This group covers researches on investigating the charateristics of Hyangga through micro-studies on words translation, expression, rhetoric, structure and rules of versification. The Japanese researchers' works have shed new light on Hyangga from objective views of point of outsiders. Moreover, they have extended areas of study to show the methodological diversification, which explores the literary value of Hyangga from the East Asian poinf of view. More active study on investigating mutual literary connection in the East Asian Chinese character cultural area is needed but not sufficient at present. Therefore, mutual cooperative study and international exchange between the Korean and the Japanese scholars are urgently required. To this end, accessibility of the original text should be improved by translating more classical literature of the two countries. Furthermore, literay connection in the East Asian Chinese character cultural area should be activley investigated. We should establish the East Asian Perspective by overcoming regionality of study on Hyangga and expanding field of view.

          • KCI등재

            고대 한국인의 사생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정효운 동아시아고대학회 2019 동아시아고대학 Vol.0 No.55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find out how to change the perception of death of modern Koreans through the historical view of ancient Koreans in ancient Korean history books. Ancient history books for review are Samguk-Sagi(三國史記) and Samgug-Yusa(三國遺事). As a methodology, I examined ‘sasaeng(死生)', the use of ‘saengsa(生死)', the ideology of the soul and the afterlife to recognize the state after death and where the soul lives. As a result, the term ‘sasaeng' is used more frequently than ‘saengsa' in ancient Korean times and preceded the era. The idea of ​​the soul after death is divided into ‘yeong(靈)' and ‘hon(魂)', ‘gui(鬼)', ‘sin(神)' etc. In the case of the afterlife, the Confucian and Buddhist post-mortem worldview prevailed more than ideas such as shamanic otherworld and Taoist fairyland. In other words, Samguk-Sagi emphasized the temporal view of Confucian scholars, and Samgug-Yusa reflected Confucian view with the rebirth and paradise of Buddhism. Therefore, it can be seen that there are complex aspects of ancient Korean thinking that are stratified and stratified by the difference in the perception of the Confucianism and Buddhism. 본 연구는 고대 한국인의 사서에 나타난 고대 한국인의 死生觀 분석을 통해 현대인 한국인이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인식을 전환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찾고자 하였다. 고대 한국의 역사서인 이들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에 나타난 사생관을 비교 분석하고, 방법론으로는 삶과 죽음의 용어인 ‘생사'와 ‘사생'의 용례 비교, 죽은 후의 상태를 인식하는 영혼의 관념과 영혼이 거처하는 사후세계의 공간을 의미하는 他界觀이나 來世觀에 대해 검토하였다. 그 결과, 한국 고대에서는 ‘사생' 의 용어가 ‘생사' 보다 많이 사용되고, 시대적으로도 선행하였다. 사후 영혼의 관념도, ‘靈', ‘魂', ‘鬼', ‘神'으로 구분하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내세관의 경우, 무교의 저승이나 도교의 선계와 같은 관념보다 유교적, 불교적 사후세계관이 주류를 이루었다. 즉, 『삼국사기』는 유학자의 합리적 역사관이 반영되어 있기에 충효를 강요하는 현세적 사생관이 강조되었고, 『삼국유사』에는 불교사관의 영향으로 윤회와 극락이란 연기설 중심의 사생관과 더불어 유교적 사생관이 함께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고대한국인의 사생관과 타계관 혹은 내세관 역시 한국의 고대가 불교국가였다는 막연한 관념에 의해 접근하는 방식은 재고를 요한다고 본다. 유교를 숭상하는 지식계층이나 불교를 신앙하는 집단 등과 같이 영혼관과 사후세계관의 인식의 차이에 의해 계층화, 중층화 되는 복합적인 측면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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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고천문 유적의 지역적 분포와 특성에 대하여 -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 유적을 중심으로 -

            양홍진 동아시아고대학회 2013 동아시아고대학 Vol.0 No.32

            한국과 중국에는 오랜 천문 역사와 함께 많은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다. 한국은 삼국시대부터 체계적인 천문 기록이 남아 전해지고 있는데 이들 기록을 살펴보면 천문역법과 28수 별자리체계 그리고 성도 등 전통천문학 전반에 걸쳐 중국 천문학의 영향을 받아왔다. 그러나 한국의 고대 천문학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탓에 역사시 대 이전의 두 나라의 천문학 특징과 상호 교류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청동기 시대 고인돌 덮개 돌에 새겨진 별자리와 고구려 고분 벽화의 별자리 배치 체계 그리고 삼국사기에 기록된 독자적 천문 기록의 사실 검증에 대한 몇몇 연구를 통해서 역사시대로부터 이어진 우리의 고유한 천문 지식과 문화에 대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중국은 고고천문학 연구를 통해 중국 여러 지역에서 발굴된 역사시대 이전의 천문 유물과 유적에 대해 그 내용과 특징을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중국의 고고천문 자료들은 역사시대 이전 고대의 문화 지역 인 하모도문화(河姆渡文化), 앙소문화(仰韶文化),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 그리고 홍산문화(紅山文化)와 하가 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 지역을 중심으로 발견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들 문화지역에서 발견된 고고 천문 자료를 지역별로 분류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고 한반도와 인접한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의 고고천문 유적을 중심으로 중국 다른 지역의 고고천문 유적과 비교하였다. 하모도문화에서 발견된 고고천문 유물의 특징은 뼈나 도자기에 태양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린 것으로 당시 사 람들이 태양을 중시하거나 신성시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원 내륙에 위치한 앙소문화에서는 무덤에 북두 칠성과 사신체계를 표현한 천상도와 도기에 그려진 별이 발견되어 원시적인 별자리 체계가 형성되고 있는 모 습을 볼 수 있다. 산동반도에서 발견된 대문구문화의 대표적인 고고천문 유물은 도자기에 그려진 태양그림이 다. 산 위에 화염과 함께 그려진 태양그림은 단순히 상징적인 도안을 넘어 일출몰 전후에 산 위에 있는 태양을 관찰한 모습을 보여준다. 대문구문화에서는 태양 그림 외에도 태양조 토템을 상징한 그림이 도자기에서 발견 되었는데 모두 태양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다.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에서 발견된 고고천문 유적은 우 하량(牛河梁)과 동산취(東山嘴) 그리고 성자산(城子山)으로 이들 유적은 진남북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천 문 방위 측정에 사용된 곳으로 보이는 입간측영의 장소도 함께 발견되었다. 또한 유적의 모양이 고대의 우주 구조론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 고대 제천의식의 장소로 이해되고 있다. 하모도문화 대문구문화 그리고 앙소문화 지역의 고고천문 유적은 도자기나 무덤 등 개별적인 유물에 천문 기 록이 남아 있는 반면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의 특징은 개별적인 유물이나 무덤이 아닌 집단의 대표적인 장소에 천문학적 요소가 남아 있다.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의 이러한 고고천문 유적의 특징은 과거 이들 지역에서 천문이 지배 계급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활용되고 전승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제천 의식의 장소 가 모두 진남북 방향을 따라 배치되어 있다는 것은 당시 천문관측을 통해 방향을 측정하였음을 말해주며 남아 있는 입간측영의 장소는 당시의 천문관측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중국 고고천문 유물이 발견된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살펴보면 태양과 관련된 유적이 발견된 하모도문화와 대 문구문화 지역은 모두 중국 동쪽의 해안 근처에 위치하며 원시 별자리 자료가 남아 있는 앙소문화는 중국 내 륙 중심에 위치한다. 개별적인 천문 유물이 남아 있는 이들 세 지역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반 면, 제천의식과 관련된 제단 유적이 남아 있는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 유적지는 이들 세 지역과 멀리 떨 어진 중국 동북부 지역인 한반도 인접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역사시대 이전의 고대문화는 지리나 기후 등 여러 지역적 환경요소에 따라 그 특징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이 러한 사실은 중국 고고천문 유물의 지역적 분포 특성에서도 잘 나타난다. 고대로부터 천문학이 주변 문화와 교류하면서 발전해 왔다면 인접한 문화 지역의 천문학적 특징을 통해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앞으로 한반 도의 고고천문 유적을 찾아 한반도와 인접한 지역의 특성과 비교한다면 천문학 뿐 아니라 우리 고대 문화의 특징과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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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渤海 유역의 역사문화와 동아시아 세계의 이해 - ‘터(場, field)이론'의 적용을 통해서 -

            尹明喆 동아시아고대학회 2008 동아시아고대학 Vol.17 No.-

            동아시아의 역사공간의 네트워크는 전체이면서 부분인 터(field)와 또 부분이면서 전체이기도 한 3개의 中核과 주변의 몇몇 行星들, 그들을 싸고도는 衛星들이 있고(multi-core), 중첩적인 線(line)들로 이어졌다. 선이란 교통로를 말한다. 3핵은 첫째, 중국공간 혹은 中華文明이다. 둘째, 北方遊牧文明이다. 셋째는 한반도와 만주일대에서 성장한 東方文明이다. 행성들은 각 중핵지역의 주변에 위치한 지역들이다. 위성들은 각각의 행성 내부에 있는 소규모의 국가 내지 문화권이다. 線(line)은 핵들과 핵들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그 자체도 독립성을 지녔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역사공간에서 큰 역할을 담당한 부분이 해양이다. 필자는 이 공간을 東亞地中海라고 명명하면서 성격을 규명하고 각각 지역 종족 문명의 역할을 규명하였다. 동아지중해는 수천 년 동안 지정학적으로 협력과 경쟁, 갈등과 정복 등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의 역사활동권을 이루어왔다. 한편 농경의 定着性(stability) 문화와 유목 해양의 移動性(mobility) 문화가 만나 상호보완되면서 독특한 성격을 탄생시켰다. 특히 발해의 역사공간은 대륙과 해양을 공히 활용하며, 동아지중해의 中核(core)에 위치하고 있다. 몇몇 지역과 국가를 전체적으로 연결하는 海陸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발해유역의 자연환경은 바다와 대륙과 반도가 만나는 곳이다. 만주지역의 삼림문화 동몽골과 북방의 유목문화, 요동반도의 농경문화, 그리고 황해의 해양문화가 모이는 곳이었다. 이렇게 변화된 지리, 기후 등 자연환경 속에서 생태계와 문화의 형태도 다양하게 변화했다. 그와 함께 수십 혹은 수백 개에 달하는 다양한 종족과 언어권, 그에 상응하는 다양한 문화들이 생성되어 있었다. 발해유역은 하나의 지역 안에 색다른 자연환경, 이질적인 문화가 공존하면서 복합적인 역사공간으로 되었다. 발해는 6000년 전부터 ‘內海', ‘灣', ‘小地中海'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면적이 적당하고 해양교통에 편리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롭다. 고대사회에서는 문명이 발전하기에 적합한 크기이다. 8000년 전에 높은 수준의 신석기 문화가 태동했다. 5000년 전후해서는 紅山문화가 발전했다. 이어 夏家店下層문화, 뒤를 이은 夏家店上層문화가 발전했다. 요동반도의 동쪽에는 해양문화를 비롯하여 고인돌(dolmen) 문화가 발전했다. 고조선과 관계가 깊은 문화이다. 이렇게 발해유역은 東方문명, 北方문명, 中華문명이 교차하고 재생산하는 據點(i.c, heart)의 역할도 하였다. 중국은 발해유역의 문화를 ‘遼河文明論'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논리는 중국중심적이며, 육지중심적이다. 필자는 ‘渤海文明論'을 제창하고, 동아시아 문명의 성격을 규명하며, 아울러 우리문화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The network in the historical region of East Asia consists of three cores which can be either the whole or the field, few planets, and satellites that go around all of these. There are also reiteratedlines which indicate the routes. Such frames of analysis are ‘field and multi core theory'. Those three cores are the Chinese civilization, the north nomadic civilization, and the east civilization that grew from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Manchuria region. The planets refer to regions around these three nucleuses. The satellites refer to countries or cultural areas in each of these regions planets. The lines connect those cores together and also have their own independence. And the ocean takes the important part in East Asia's historical space. The author names the space as East Asian- Mediterranean-sea, and investigates the characteristics and roles of each regional culture. East Asian-Mediterranean-sea has made up a field of historical actions through interactions such as cooperation, competition, conflicts, conquests, and etc for thousands years. One hand, both stability of agriculture and mobility of nomadic culture met and completed a unique characteristic. Especially, Palhae-sea's historical space use the land and the sea practically and is located in the core of East Asian-Mediterranean-sea, where has an ability to connect the yellow sea. and that she has the ocean network, connecting the regions and the countries over all. Palhae-sea basin had a unique characteristic that formed articulated connections between the ocean, the peninsula, and the land with the core at the center. It was a concentrated area that the forest culture of Manchuri, the nomad culture of East-Mongolia and the north, the agri-culture of the Liaodung peninsula area, and the ocean culture from Yellow-sea. The movements of residents were frequent which caused serious conflicts and the economical formation were various because it was the area where meadow, forests, ocean, hill were intercepted. Various types of natural environment and culture importantly affected to changes of social system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gion. Palhae-sea period became the space of history that various natural environment and different cultures co-existed within the area of region. Palhae-sea from before 6000 have the character of `inland-sea' `gulf' ‘small -mediterranean sea'. The area is suitable and Is convenient to an oceanic traffic, is abundant economically. The New stonework culture of high phase advanced before 8000. The Hongsan culture developed before 5000. Continued and the Hagajum upper level culture advanced a Hagajum lower stratum culture and after next. To east of the Liao-river insurgent including an oceanic culture and the dolmen culture advanced. With proto-Chosun is a culture where the relationship is deep. The Palhae-sea basin the Chinese civilization, the north nomadic civilization, and the east civilization intersects like this, took charge of the strong hold role which reproduces. China as Liaohua-civilization theory calls the ‘a Palhae-civilization theory'. It China is central, is a logic in the land center. The author asserts ‘a Palhae-civilization theory', examines closely seeks character of East asia-civilization, the identity of our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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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渤海 유역의 역사문화와 동아시아 세계의 이해 -‘터(場, field)이론'의 적용을 통해서-

            윤명철 동아시아고대학회 2008 동아시아고대학 Vol.0 No.17

            The network in the historical region of East Asia consists of three cores which can be either the whole or the field, few planets, and satellites that go around all of these. There are also reiteratedlines which indicate the routes. Such frames of analysis are ‘field and multi core theory'. Those three cores are the Chinese civilization, the north nomadic civilization, and the east civilization that grew from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Manchuria region. The planets refer to regions around these three nucleuses. The satellites refer to countries or cultural areas in each of these regions planets. The lines connect those cores together and also have their own independence. And the ocean takes the important part in East Asia's historical space. The author names the space as East Asian- Mediterranean-sea, and investigates the characteristics and roles of each regional culture. East Asian-Mediterranean-sea has made up a field of historical actions through interactions such as cooperation, competition, conflicts, conquests, and etc for thousands years. One hand, both stability of agriculture and mobility of nomadic culture met and completed a unique characteristic. Especially, Palhae-sea's historical space use the land and the sea practically and is located in the core of East Asian-Mediterranean- sea, where has an ability to connect the yellow sea. and that she has the ocean network, connecting the regions and the countries over all. Palhae-sea basin had a unique characteristic that formed articulated connections between the ocean, the peninsula, and the land with the core at the center. It was a concentrated area that the forest culture of Manchuri, the nomad culture of East-Mongolia and the north, the agri-culture of the Liaodung peninsula area, and the ocean culture from Yellow-sea. The movements of residents were frequent which caused serious conflicts and the economical formation were various because it was the area where meadow, forests, ocean, hill were intercepted. Various types of natural environment and culture importantly affected to changes of social system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gion. Palhae-sea period became the space of history that various natural environment and different cultures co-existed within the area of region. Palhae-sea from before 6000 have the character of `inland-sea' `gulf' ‘small -mediterranean sea'. The area is suitable and Is convenient to an oceanic traffic, is abundant economically. The New stonework culture of high phase advanced before 8000. The Hongsan culture developed before 5000. Continued and the Hagajum upper level culture advanced a Hagajum lower stratum culture and after next. To east of the Liao-river insurgent including an oceanic culture and the dolmen culture advanced. With proto-Chosun is a culture where the relationship is deep. The Palhae-sea basin the Chinese civilization, the north nomadic civilization, and the east civilization intersects like this, took charge of the strong hold role which reproduces. China as Liaohua-civilization theory calls the ‘a Palhae-civilization theory'. It China is central, is a logic in the land center. The author asserts ‘a Palhae-civilization theory', examines closely seeks character of East asia-civilization, the identity of our culture. 동아시아의 역사공간의 네트워크는 전체이면서 부분인 터(field)와 또 부분이면서 전체이기도 한 3개의 中核과 주변의 몇몇 行星들, 그들을 싸고도는 衛星들이 있고(multi-core), 중첩적인 線(line)들로 이어졌다. 선이란 교통로를 말한다. 3핵은 첫째, 중국공간 혹은 中華文明이다. 둘째, 北方遊牧文明이다. 셋째는 한반도와 만주일대에서 성장한 東方文明이다. 행성들은 각 중핵지역의 주변에 위치한 지역들이다. 위성들은 각각의 행성 내부에 있는 소규모의 국가 내지 문화권이다. 線(line)은 핵들과 핵들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그 자체도 독립성을 지녔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역사공간에서 큰 역할을 담당한 부분이 해양이다. 필자는 이 공간을 東亞地中海라고 명명하면서 성격을 규명하고 각각 지역 종족 문명의 역할을 규명하였다. 동아지중해는 수천 년 동안 지정학적으로 협력과 경쟁, 갈등과 정복 등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의 역사활동권을 이루어왔다. 한편 농경의 定着性(stability) 문화와 유목 해양의 移動性(mobility) 문화가 만나 상호보완되면서 독특한 성격을 탄생시켰다. 특히 발해의 역사공간은 대륙과 해양을 공히 활용하며, 동아지중해의 中核(core)에 위치하고 있다. 몇몇 지역과 국가를 전체적으로 연결하는 海陸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발해유역의 자연환경은 바다와 대륙과 반도가 만나는 곳이다. 만주지역의 삼림문화 동몽골과 북방의 유목문화, 요동반도의 농경문화, 그리고 황해의 해양문화가 모이는 곳이었다. 이렇게 변화된 지리, 기후 등 자연환경 속에서 생태계와 문화의 형태도 다양하게 변화했다. 그와 함께 수십 혹은 수백 개에 달하는 다양한 종족과 언어권, 그에 상응하는 다양한 문화들이 생성되어 있었다. 발해유역은 하나의 지역 안에 색다른 자연환경, 이질적인 문화가 공존하면서 복합적인 역사공간으로 되었다. 발해는 6000년 전부터 ‘內海', ‘灣', ‘小地中海'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면적이 적당하고 해양교통에 편리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롭다. 고대사회에서는 문명이 발전하기에 적합한 크기이다. 8000년 전에 높은 수준의 신석기 문화가 태동했다. 5000년 전후해서는 紅山문화가 발전했다. 이어 夏家店下層문화, 뒤를 이은 夏家店上層문화가 발전했다. 요동반도의 동쪽에는 해양문화를 비롯하여 고인돌(dolmen) 문화가 발전했다. 고조선과 관계가 깊은 문화이다. 이렇게 발해유역은 東方문명, 北方문명, 中華문명이 교차하고 재생산하는 據點(i.c, heart)의 역할도 하였다. 중국은 발해유역의 문화를 ‘遼河文明論'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논리는 중국중심적이며, 육지중심적이다. 필자는 ‘渤海文明論'을 제창하고, 동아시아 문명의 성격을 규명하며, 아울러 우리문화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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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漂流의 발생과 역할에 대한 탐구 -동아시아 해역을 배경으로-

            윤명철 동아시아고대학회 2008 동아시아고대학 Vol.18 No.-

            東아시아 역사는 육지와 해양을 하나의 틀 속에서 유기적인 관계로 파악해야 한다. 즉 海陸史觀이란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는 선사시대부터 해양활동이 활발했으며, 그 능력에 따라 지역 또는 국가의 발전이 영향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표류현상이 발생했다. 표류란 바다와 강 등에서 특별한 이유로 배가 방향을 잃고 위험한 상태에서 움직이는 상황을 의미한다. 해양문화와 역사상을 이해하려면 농경민의 인식과 생활방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해류 조류 바람은 해양활동과 문화가 만들어지는 틀과 성격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특히 표류는 자연환경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해양교류는 육지교류에 규모가 작고 비조직적이다. 뿐만 아니라 不規則的이고 連續的이지 못하다. 특히 표류는 더욱 그러하다. 표류는 한국의 남해안인 대한해협, 동해, 황해 그리고 동중국해의 전 해역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항해조건이 나쁜 동해에서 많이 발생했다. 표류의 기능을 정치, 문화, 경제, 항로문제와 연관시켜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첫째, 표류는 航路의 발견과 계발을 촉진시킨다. 선사시대에는 주로 이러한 역할을 했다. 둘째, 표류는 漂着 해역 및 지역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는 계기가 됐다. 고대국가가 완성되면서 조직적으로 활용하였다. 셋째, 표류는 민간인의 移住(settlement)를 낳고 이어 植民活動(colony)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고대 한국지역에서 일본열도 진출할 때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다. 넷째, 표류와 표착은 진출과 정복이라는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계기로 활용됐다. 다섯째, 표류와 표착은 국제질서의 변화를 가져오는 변수의 역할도 하였다. 漂流는 정상적인 항해에 비해서 일상적이지 못했고, 역사와 문화현상에 대한 파급력도 약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 외에 역사적으로 긍정적인 역할도 했다. 때문에 시대에 따라서는 국가가 표류현상에 대하여 일정한 관리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표류의 현상과 기록은 전근대시대의 航路와 航海의 메카니즘을 파악하는 데 유효한 자료를 제공했다. The history of East Asia should be examined based on organic relationships in a single framework of the land and the seas. Namely, it is necessary to adopt the historical point of view based on the seas and land. East Asia has showed vital ocean activities since the prehistoric age and they have influenced regional or national development according to the capacity. During the process, the phenomenon of drift occurred. Drift means the situation that a ship on the sea or river was in danger, losing control caused by specific reasons. In order to understand ocean cultures and history, they should not be interpreted in the recognition and lifestyle of farmers. An ocean current, a tide, and wind have a strong effect on the framework and characteristics in which ocean activities and cultures develop. Especially, drift is directly influenced by natural environment. Ocean trades are relatively smaller and less unorganized than land trades. Furthermore, they are irregular and discontinuous. Especially, drift is much irregular and discontinuous. Drift occurred in South Coast of Korea includes the Straits of Korea, the East Sea, and the Yellow Sea and all ocean areas in East China Sea. Especially, it occurred frequently in the East Sea which had a horrible voyage condition. From the results of the analysis on the function of drift related with politics, cultures, economy, route issues, the roles of drift are shown bellow. Firstly, drift speeds up the discovery of new routes and development. That was a major role in the prehistoric age. Secondly, drift paved the way for obtaining the information about the discovery of drifting ashore and regions. It was applied systematically as ancient nations were established. Thirdly, drift allows people to build settlement and tends to develop to colony. Such phenomena occurred while advancing from ancient Korean regions into the Japanese Islands. Fourthly, drift and drifting ashore were applied as a moment to achieve political purposes such as advance and conquest. Lastly, drift and drifting ashore played a role of a variable to change an international order. Drift was less usual than ordinary voyage and had little influence on history and cultural phenomena. However, In spite of negative aspects, drift played positive roles. With regard to times, it can be observed that a nation manages the phenomena of drift. The phenomena and records of drift provided useful data to examine routes and voyage in the previous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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