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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충훈부(忠勳府)의 공신적장(功臣嫡長) 구전(口傳)과 충의청(忠義廳)의 역할 - 충훈부 문서와 『충훈부등록(忠勳府謄錄)』을 중심으로 -

        김명화 ( Kim Myeonghwa ) 한국고문서학회 2019 古文書硏究 Vol.55 No.-

        충훈부는 정1품아문으로 공신과 공신자손으로 구성된 기관이다. 업무 또한 이들에 대한 전반적인 운영을 맡았다. 그중에서도 공신자손에 대해서는 공신 녹훈 이후 규정에 따라 그 현황을 파악·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충훈부의 공신적장 구전은 충훈부가 공신자손을 임명·예우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충훈부등록』과 각종 고문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 공신적장의 구전을 요청하는 ‘口傳單子’가 충훈부에 접수되면, 충훈부당상은 이를 시행하도록 題辭를 내린다. 두 번째 충훈부가 공신적장 구전을 요청하는 ‘啓目’을 국왕에게 올려 결재 받는다. 세 번째 국왕의 구전을 받은 충훈부는 공신적장에게 ‘嫡長忠義衛 口傳差帖’을 발급한다. 네 번째 더불어 공신적장을 忠佐衛 소속 遞兒職에 부록하였다. 공신적장 구전을 전후로 충의청의 면신·허참례가 있었는데 이때 발급된 문서가 ‘立案’이다. 이는 면신·허참례를 통과하였다는 증명서이다. 면신·허참례는 규정상 충훈부의 공신적장 구전 이후에 시행하도록 하였다. 충훈부 소속 기관인 충의청은 공신자손 그중에서도 공신적장으로 구성되었다. 공신자손의 구전·부록과 같은 각종 임명, 공신자손 내력 확인을 통한 충의위 削案과 復案 등 공신자손 관련 사안에 대해 관여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역할은 공신적장의 진위 여부를 조사하는 역할이었다. 조선 후기에 면역을 위해서 공신자손의 지위인 忠義衛에 冒錄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를 바로 잡는 역할을 충의청에서 담당하였다. Chunghunbu(Merit Awards Administration) was a first rank public office(guanbu, 官府) of gongsin(meritorious subjects). Its members included gongsin and their descendants. It was also responsible for the overall operations. Chunghunbu was responsible for identifying, appointing, honoring, and proving the status of the descendants of meritorious subjects according to the regulations for honoring(yewoo, 禮遇) the descendants of gongshin after gongsin nokhun(錄勳). The gongsin jeokjang gujeon of the Chunghunbu identifies, appoints, and honors the descendants of the meritorious subjects. This process can be examined through the “Chunghunbu Records” and various ancient documents(古文書). First, the “gujeondanja(口傳單子)” that requests the oral tradition of the gongsin jeokjang is received by the Chunghunbu, and the Chunghunbu dangsang(堂上) issues a jessa(題辭) to carry out this request. Second, the Chunghunbu sends the gyemok (啓目) that requests the gongsin jeokjang gujeon to the king to receive approval. Third, the Chunghunbu, which received the gujeon of the king, issues the “jeokjang chunguiwi(嫡長忠義衛) gujeon chacheob (口傳差帖)”. Fourth, the gongsinjeokjang is appended(付祿) to the chungjwawi(忠佐衛) cheajik(遞兒職). The myeonsin(免新) and heochamnye(許參禮) are held before and after the gongsin jeokjang gujeon; the document issued here is the “iban(立案)” This is a certificate of completion of the myeonsin and heochamnye. According to regulations, the myeonsin and heochamnye are performed after the gongsin jeokjang gujeon of the Chunghunbu. Chunguicheong, an affiliated agency of Chunghunbu, also consisted of gongsin jeokjang among the descendants of gongsin. This agency was involved in matters related to the descendants of gongsin, including various appointments, confirming their naeryeok(來歷), sakan(削案), and bokan (復案). Among these responsibilities, its primary duty was to investigate the authenticity of the gongsin jeokjang. In the late Joseon Dynasty, as fraudulent recordings(morok, 冒錄) became more frequent in chunguiwi(忠義衛), the rank of the descendants of gongsin, Chunguicheong served the role of identifying such cases.

      • KCI등재

        <화씨충효록>에 구현된 적장승계의 종법주의 이념-<창선감의록> 개작의 특징을 중심으로-

        조광국 한국고소설학회 2022 古小說 硏究 Vol.53 No.-

        The principle of clan rules which had been represented in <Changseongamuirok> was accepted and unfolded in detail in <Hwassichunghyorok>. The succession of the legitimate and eldest son was made for three generations of the family, and the adopted grandson has secured justification and loyalty. In particular, the focus was on the head family. In detail, it shows that it was not done by any one individual, but by all the family members. Those who pursue the succession of the legitimate and eldest son were represented as gentleman, while those who pursue only individual desires were set as bad man. The range of the interests of gentlemen was expanded to the preservation of other families and the establishment of family-lineage of other families. And the horizon of the concept of gentlemen was expanded to women. Based on this, the Whassi-family was embodied as a gentle family. And the rule of the succession of the legitimate and eldest son starts from the private sphere and enters the public sphere. In detail, as the amnesty of the legitimate and eldest son is dealt with in the public domain and accepted at the the King's meeting, it is revealed that the amnesty of the legitimate and eldest son carries the legitimate and eldest son's succession in the head hamily at the same time In short, it would be said that the principle of clan rules was represented in <Hwassichunghyorok> far more than in <Changseongamuirok>. <화씨충효록>은 적장승계 종법의 확립 과정이 서사의 중심에 놓인 작품인바, 그런 설정이 우리 소설사와 문예사에서 보기 드문 것이어서 주목할 만하다. 3대에 걸친 종장, 종자, 종손의 적장승계가 대종(大宗)으로 예각화되어, 종장 이후 종자와 종손의 와해와 복원 과정이 펼쳐지고 그 과정에서 입양종손의 명분과 의리가 확보된다. 세부적으로 적장승계의 종법은 어느 특정의 인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문 구성원 모두에 의해 이루어지는 특징적인 모습이 펼쳐진다. 한편 적장승계는 군자와 소인을 분별하는 인물 형상화의 요소로 설정된다. 적장승계를 향한 의지가 군자의 핵심 자질로 제시되고, 반면에 개인적 욕망을 추구하고 온전한 종통 확립에 무관심한 인물은 소인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군자의 관심 범위가 타인의 가문 보존과 가통 확립으로까지 넓혀졌을 뿐 아니라, 군자의 지평이 여성에까지 확대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대종가 화씨집안은 적장승계를 온전하게 실현한 군자가문으로 재현된다. 그와 맞물려 적장승계는 사적 영역에서 출발하여 공적 영역으로 확대된다. 세부적으로 화예의 사면이 공론으로 채택되고 조정 회의에서 수용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화예 사면에 드리워져 있는 적장승계가 공론화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요컨대 <화씨충효록>은 적장승계가 대종가의 종법으로 예각화되어, 가문 구성원 모두가 문제 많은 적장자를 가문의 종장으로 옹립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적장승계의 종법주의 이념이 치밀하게 구현된 작품이라 할 것이다.

      • KCI등재

        양자제도를 통해 본 조선후기 가족구조와 가계계승: 의성김씨 호구단자 분석을 중심으로

        박수미,Park, Soo-Mi 한국인구학회 2007 한국인구학 Vol.30 No.2

        이 글은 조선후기 호적자료외 양자계승기록을 단서로 조선후기 양반가족의 가계계승 원리와 가족유형을 규명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의 분석자료는 1669년에서 1913년까지 의성김씨 호구단자이다. 분석 결과 조선후기의 가족형태와 조선전기나 조선중기의 가족형태 사이에 많은 차이가 발견되었는데, 그 변화의 방향은 부계계승원리의 강화이며 그 한가운데 양자제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분석자료의 전체 호구 평균가구원수는 5.66명으로 17세기 초에 비해 가족규모가 매우 커졌으며 가족구성원의 친족 범위도 매우 넓어져, 17세기 초 양반가의 가족원이 되는 근친자 종류가 6종의 자였던 데 비해 의성김씨 호구단자에 나타난 그것은 무려 70종이었다. 조선전기 양반가 분석결과와 달리 의성김씨 집안의 가족형태는 직계가족, 방계가족의 비율이 45%를 넘을 뿐 아니라 18세기, 19세기 모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족형태는 확대가족이고 부부가족의 비중은 1/3 수준으로 약화되는 등, 가구구성의 친족범위가 더욱 확장되었다. 의성김씨 호구단자에서 입양을 통해 가계를 계승한 사례는 전체 호구 가운데 무려 33.8%에 이른다. 적장자가 호주자리를 승계할 때까지 살아 있을 확률이 낮았던 당시의 인구학적 환경 속에서 적장자가계계승 원리를 확고하게 지키는 방법으로 활용된 것이 양자제도였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후기 종족집단은 자신의 직계혈통에게 가계를 계승하는 것보다도 입양을 통해서라도 '적장자 자리'라는 명분을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던 사회이고 이런 양반가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적임자를 찾을 때까지 호주대리인을 내세우는 등 양자제도를 보편화시켰던 것이다. 또한 제작된 믹서는 외부의 IF 발룬을 필요하지 않아 소형화가 가능하다. 본 논문에서 설계 및 제작된 94 GHz MIMIC single balanced cascode믹서는 기존의 balanced 믹서와 비교하여 높은 격리 특성을 나타내었다.L 및 FPGA를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구현 검증되었다. 0.25um CMOS 표준 셀 라이브러리를 이용하여 합성하였을 때, 총 게이트 수는 37K개였으며 7.5개의 라인 메모리가 사용되었다. 추적관찰이 필요하겠다.다.참굴 D상 유생을 대상으로 먹이효과를 조사한 결과 실험구와 대조구간 유생의 성장 및 생존율에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C$에서 73.3%, $10^{\circ}C$에서 63.3% 및 $5^{\circ}C$에서 56.7%로 수온이 $30^{\circ}C$ 이내에서는 높을수록 높은 경향을 보였다. 염분에 따른 잠입 실험 결과는 실험 개시 300분 경과 후 염분 30 psu에서 93.3%로 가장 높았고, 35 psu에서 90.0%, 25 psu에서 83.3%, 20 psu에서 60.0%, 15 psu 이하에서는 거의 잠입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 따라서, 적정 살포를 위한 잠입률은 치패의 크기와 상관없이 저질종류는 모래 (75%) + 뻘 (25%), 입자크기는 1 mm 모래에서 높게 나타났다. 공기 중 노출시간은 짧을수록, 수온은 $30^{\circ}C$ 이내에서 높을수록, 염분은 20-35 psu 이내에서 높을수록 잠입률이 높은 경향을 나타내었다. 교수학습모형에 관련된 지식을 묻는 내용으로 주로 출제되었다. This paper attempts to identify the principle of family succession and family patterns of yangban in the late Chosun period through an analysis of male adaptation cases found in family registration records. The primary source of analysis is the family registration documents of Uiseong Kim's from the late 17th century to the early 20th century. As a result, it is found that there is a substantial change in the patterns of family from the early and mid Chosun period to the late Chosun period. The change is the strengthening of the principle of patriarchy succession through male adoption. Looking at the data as a whole, the average number of household members is increased and the membership of kinship also expanded. In contrast to the family patterns of the early Chosun period, not only the patterns of Uiseong Kim's family are predominately immediate family or collateral family but also the majority is extended family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The male adoption cases recorded in Uiseong Kim's family registration documents take up 33.8% of the male adoption cases in the entire family registration documents. This goes to show that the strengthening of the principle of primogeniture succession at a time when child mortality rate is very high resulted in the increase of male adoption. In conclusion, the late Chosun society was a society where the seat of primogeniture was much more important than immediate hereditary members in the family succession.

      • KCI등재

        韓国語の文脈指示に関する一考察

        森本勝彦(모리모토 가츠히코) 동아시아일본학회 2012 일본문화연구 Vol.44 No.-

        본고에서는 한국어의 문맥지시에 관해 대조 분석을 하였다. 논의의 구성으로는 단독적 장면과 상관적 장면으로 나누었으며,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단독적 장면에서 쓰이는 문맥지시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았다. 한국어의 경우 선행지시로는 ‘이-계열’과 ‘그-계열’이 쓰였다. 후행지시로는 기본적으로 ‘이-계열’이 쓰이고, 예외적으로 ‘그-계열’이 쓰였다. 일본어의 경우 선행지시로는 ‘ko-계열’과 ‘so-계열’이 쓰이고, 후행지시로는 ‘ko-계열’만이 쓰였다. 이처럼, 한국어는 발화 내용이 정리되어 있지 않거나 말하기 어려울 때 후행지시로 ‘그-계열’이 쓰인다는 특징을 보였다. 둘째, 상관적 장면에서 쓰이는 문맥지시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았다. 한국어의 경우 상대방 발화에 대한 선행지시로는 기본적으로 ‘그-계열’이 쓰이고, 예외적으로 ‘이-계열’이 쓰였다. 일본어의 경우 상대방 발화에 대한 선행지시로는 ‘so-계열’만이 쓰였다. 이처럼, 한국어는 상대방 발화에 대한 선행지시로 ‘이-계열’도 쓰인다는 특징을 보였다. 화자 자신의 발화에 대한 선행지시, 후행지시로는 한?일 양국어에서 단독적 장면과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또한, 한국어에는 ‘그-계열’과 ‘이-계열’이 인용동사로도 쓰인다는 특징이 있었다. 셋째, 지시어가 지닌 대용 기능에 관해서도 살펴봤다. 한국어에서는 ‘그-계열’만이 대용으로 쓰이고, 일본어에서는 ‘so-계열’만이 대용으로 쓰였다. 이처럼 한?일 양국어에는 ‘그/so-계열’ 이외에 다른 계열이 쓰이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 KCI등재

        玉所 權燮과 18세기 가족문화

        박영민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22 嶺南學 Vol.- No.80

        This study examined aspects of patriarchy and family culture in the Joseon Dynasty from the mid-17th century to the mid-18th century through the family of the Oakso(玉所) Gwon-Seop(權燮). Currently, academia says that from the mid-17th century to the mid-18th century, when Oakso survived, the patriarchal system was harden into the legitimate child(嫡長子). However, if you look at the Oakso family, it is questionable whether the patriarchal system of Joseon society during this period was a one-sided the legitimate child(嫡長子). Oakso had the seats of his wife in the place where he would be buried after his death, but did not have the seats of concubine. It also emphasized the responsibility to raise a family to the legitimate child. However, the direction of dealing with the concubine and child of a concubine of the Oakso family clearly discriminated against the legitimate child, but it was not driven out of the boundaries of the family. Rather, he was very active in leading the family. Therefore, in order for us to properly approach the reality of patriarchy and family culture in Joseon society from the mid-17th century to the mid-18th century, we must be able to capture and explain various cultures within each family in detail. This study attempted to open an opportunity to note that various family cultures existed at the base of the patriarchal system of the Joseon Dynasty after the mid-17th century through the family relations of the Oakso family. 본 연구는 玉所 權燮(1671-1759)의 가문을 통해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 중엽까지의 조선시대의 가부장제와 가족문화의 한 양상을 고찰하였다. 현재 학계에서는 옥소가 생존하였던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 중엽에 가부장제가 嫡長子中心으로 硬化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옥소 가문을 살펴보면, 과연 이 시기 조선사회의 가부장제가 적장자중심 일변도였던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옥소는 자신이 사후에 묻힐 자리에 초취부인과 재취부인의 자리는 두었으나 소실의 자리는 두지 않았다. 또 적자의 자손에게 가문을 일으킬 책임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옥소 집안에서 소실과 소실 소생들을 대하는 방향은 적장자와 분명한 차별을 두면서도 가부장제의 경계 밖으로 몰아내는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적극적으로 가문의 일원으로 이끌었다. 옥소는 소실 이씨와 60여 년을 함께 하였고 재취부인 조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약 30여 년을 소실 이씨와 함께 하였다. 또 옥소는 노년에 서자인 善性과 서손인 信應에 의지하는 바가 매우 컸다. 그래서 분재를 할 때에도 선성과 신응에게 그들의 효도와 재능을 인정하며 서책, 예술품, 전답을 나누어주었다. 따라서 우리가 17세기 중엽 이후 18세기 중엽까지의 조선사회의 가부장제, 가족문화의 실상에 제대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각 가문 내부의 다양한 문화를 세밀하게 포착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본 연구는 옥소 가문의 가족 관계를 통해 17세기 중엽 이후 조선시대의 가부장제의 저변에 다양한 가족문화가 존재하였음을 주목하는 계기를 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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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사 연구를 통한 지적장애학생 가족의 삶: 어머니 면담을 중심으로

        정혜윤,강영심 대구대학교 특수교육재활과학연구소 2018 특수교육재활과학연구 Vol.57 No.1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life of family of students with intellectual disabilities through life history research. Episodic interview method was used for data collection. The collected data were recorded with the consent of the research participants and then the text did. The analysis was carried out according to the procedural structure analysis method of Schütze 's life history. The main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the life history of students with intellectual disabilities is divided into early childhood, early childhood, childhood, and adolescence from prenatal to current period of intellectual disability students to explore positive and negative experiences that have affected family life. Second, the structure of life history of students with intellectual disabilities was analyzed by four types of structures: institutionalized expectation style, internal pain path, life historical events model, and identity change. The results of this study provide a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he life history of the students with intellectual disabilities and the process structure of their life histories and provide implications for various ways to support students with intellectual disabilities 본 연구는 지적장애학생 가족의 삶을 탐색하기 위해 4인 이상의 지적장애학생 가족을 목적적으로 표집하여 어머니를 대상으로 면담을 실시하였다. 본 연구 목적에 따른 연구방법은 생애사 연구방법으로 자료 수집은 일화 인터뷰(episodic interview) 방법을 이용하였고, 수집된 자료는 연구 참여자의 동의를 얻어 녹음한 뒤 전사과정을 거쳐 텍스트화 하였다. 자료 변환을 거친 이후, Schütze의 생애이력의 과정적 구조분석 방법에 따라 분석하였다. 주요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적장애학생 가족의 생애이력을 지적장애학생의 출생 전부터 현재 시기까지 결혼초기,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로 나누어 가족의 삶에 영향을 끼친 긍정적・부정적인 경험을 탐색하여 현재까지의 생애 이력을 도식화하였다. 둘째, 지적장애학생의 생애이력의 구조를 제도화된 기대양식, 내적 아픔의 진행경로, 생애사적 행위 모델, 정체성 변화 등 4가지 구조로 분석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지적장애학생 가족의 생애이력과 생애이력의 과정적 구조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돕고, 지적장애학생 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에 관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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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간 자료로 본 백제의 籍帳 문서와 수취제도

        홍승우(Hong, suengwoo) 한국고대사학회 2015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80

        부여 궁남지와 나주 복암리에서 호적을 근거로 작성된 백제의 문서 목간 3점이 출토되어, 백제 율령에 의한 지배체제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백제 적장 문서 목간의 기재 형식과 내용을 볼 때, 백제는 남녀 구분 없이 정에 해당하는 인적 자원에게 일정액의 조세와 역역을 부담시키고, 중구에게는 조세만을 부과하는 수취제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인적 자원과 호의 자산을 집계하여 호등을 산정하고 이를 수취에 활용하였던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사비 시기 백제의 적장 문서들에서 확인되는 서식은 비슷한 시기 중국 왕조들이 종이에 작성한 적장 문서들과 차이가 있으며, 오히려 진한대 목간에 작성된 적장 문서들과 형식적으로는 유사한 면이 많다. 이는 일차적으로 목간이라는 적장 문서의 재료 특성에 기인한 바로 보인다. 하지만 목간에 작성되었던 적장 문서의 형식이 일정했던 것을 보면, 백제 적장 문서 형식과 그것의 바탕이 된 백제 율령의 연원이 상당히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백제가 일찍부터 한반도 내에 존재했던 낙랑군과 같은 중군 군현을 통해 율령과 적장 문서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활용하여 율령과 적장 문서를 마련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적장 문서 목간에 기재된 연령 등급의 용어 등을 볼 때, 백제가 지속적으로 중국 왕조들과 교류하면서 율령과 적장 문서를 정비해갔음도 확인된다. 이러한 점은 백제 율령이 일시적이고 전면적으로 도입된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다양한 변형을 거치면서 자리잡아갔음을 보여준다. Three pieces of Baekje Dynasty’s household register related document written on wooden strip were found in Puyeo Gungnaji ruins and Naju Bokamri. We can find out Baekje Dynasty’s taxation system and get some information about Baekje’s YulRyeong which defines the taxation system through these wooden strips. The format of these documents is similar to Qin and Han Dynasty’s which written on wooden strips rather than those of the Chinese dynasties of the same period written on paper. It means that the origin of the format of the document and taxation system of Baekje can be up to Han Dynasty. Baekje Dynasty had relationship with Chinese commanderies especially NakrangGun. And through these experience, Baekje Dynasty’s ruling system based on YulRyeong such as household register and related documents form and taxation system were provided and established. And according to the terminologies written on the documents, Baekje had continuous relationship with the Chinese Dynasties of the same period and modified own YulRyeong by adopting their YulRyeong and ruling system.

      • 정신적장애인의 경제활동참여가 자기효능감과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 차별경험의 조절된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조재환 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학회 2020 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학회 학술발표논문집 Vol.2020 No.8

        본 연구의 목적은 정신적장애인의 경제활동참여가 자기 효능감과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력을 검증하고 자기효능감이 경제활동참여와 삶 의 만족도 사이를 매개하는 효과가 차별경험의 수준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지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조절효과분석과 매개효과분석 그리고 이들을 결합한 조절된 매개효과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대상은 장애인 고용패널조사 2차 웨이브 3차 조사(2018년) 자료 가운데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 562명이다. 주요 연구결과를 보면 첫째, 정신적장애인의 자기효능감은 경제활동참여가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을 부분적으로 매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차별경험은 경제활동참여와 자기효능감의 정적인 관계를 조절하는 효과를 보였다. 셋째, 정신적장애인의 차별경험은 경제활동참여가 자기효능감을 매개로 하여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에서 조절된 매개효과를 보였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정신적장애인의 자기효능감과 삶의 만족 도를 높이는데 있어서 차별경험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함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정신적장애인의 정신건강을 높이기 위한 실천적 방안을 모색하였다.

      • KCI등재

        정신적장애인의 경제활동참여가 자기효능감과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 차별경험의 조절된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조재환(Cho, Jae-Hwan) 한국장애인복지학회 2020 한국장애인복지학 Vol.50 No.50

        본 연구의 목적은 정신적장애인의 경제활동참여가 자기효능감과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력을 검증하고 자기효능감이 경제활동참여와 삶의 만족도 사이를 매개하는 효과가 차별경험의 수준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지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조절효과분석과 매개효과분석 그리고 이들을 결합한 조절된 매개효과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대상은 장애인 고용패널조사 2차 웨이브 3차 조사(2018년) 자료 가운데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 562명이다. 주요 연구결과를 보면 첫째, 정신적장애인의 자기효능감은 경제활동참여가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을 부분적으로 매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차별경험은 경제활동참여와 자기효능감의 정적인 관계를 조절하는 효과를 보였다. 셋째, 정신적장애인의 차별경험은 경제활동참여가 자기효능감을 매개로 하여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에서 조절된 매개효과를 보였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정신적장애인의 자기효능감과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데 있어서 차별경험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함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정신적장애인의 정신건강을 높이기 위한 실천적 방안을 모색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verify the impact of participation in economic activities of mentally disabled people on their own self-effectiveness and satisfaction in life and to analyze whether the effect of the self-effectiveness mediating between participation in economic activities and satisfaction in life depends on the level of discrimination experience. For this purpose, a controlled effect analysis, a mediated effect analysis, and a combined Moderated mediating effect analysis were conducted. The analysis targets 562 people with mental disabilities out of the second wave of employment panel survey (2018). According to major research results, the self-efficacy of the mentally disabled has the effect of partially mediating the impact of participation in economic activities on life satisfaction. Second, the experience of discrimination showed the effect of controlling the static relationship between participation in economic activities and self-efficacy. Third, the experience of discrimination against the mentally handicapped showed a mediated effect on the impact of participation in economic activities on the satisfaction of life through self-efficacy. Based on these findings, it was confirmed that discrimination experience should be dealt with importantly in enhancing the self-efficacy and life satisfaction of the mentally disabled, and practical measures were sought to enhance the mental health of the mentally disabled.

      • KCI등재

        A New Age of Multilateralism in International Taxation?

        Jung-hong Kim(김정홍) 한국세법학회 2015 조세법연구 Vol.21 No.2

        OECD/G20의 BEPS작업으로 국제조세 환경은 지난 수십 년 간 경험하지 못한 도전과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이 글은 그동안 양자조약 중심으로 일부 다자조약을 병행하여 전개되어 온 국제조세 체제의 현황을 살펴보고, 최근 BEPS작업 동향과 그 일부인 다자간 법적장치를 중심으로 검토한 후, 태동단계에 있는 국제조세의 다자주의를 논의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조세조약에 관하여 양자주의가 꾸준히 전개되어 온 가운데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다자조약이 체결되어 왔는바, 양자조세조약의 노후화 현상, 발효절차의 지체 및 조약편승이라는 문제점에 대해 기존의 다자조세조약의 경험을 토대로 발전시킨다면 양자조세조약 체제에 대한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BEPS 논의가 유동적인 상태이나, BEPS의 논의 결과를 다자간 법적장치로 반영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실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우리나라의 경우 조세조약의 양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조약의 노후화 등에 따라 조세조약 체제의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한 상태이므로, BEPS 작업의 다자간 법적장치에 관한 협상은 기존 조세조약을 재검토하고 조세조약의 당사국들과 다자적 방법으로 필요한 개정에 합의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BEPS 논의를 넘어, 다자간 법적장치의 작업이 다자조세조약으로 귀결될 경우, 다자간 조세질서의 등장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이러한 다자간 조세질서의 가능성에 대해, 조세투명성에 관한 글로벌포럼의 성공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다자무역 체제의 부진 및 양자투자조약 체제라는 부정적 증거가 모두 존재한다. 또 하나 고려할 점은 이러한 다자적 조세질서를 관리할 적절한 포럼인데, OECD 조세위원회와 UN 조세위원회가 이를 두고 경쟁상태에 있으나, 양 기구 모두 정부 간 포럼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를 갖고 있다. 결국 본질적인 문제는 미국·EU·중국·인도 등 주요 국가들이 다자간 조세질서의 기관과 실체적 측면에 대해 어떻게 타협을 통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지로 귀결되며, 현재로서는 BEPS의 실체적 작업들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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