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펼치기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펼치기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부산 화교의 가족 분산과 국적의 함의

        안미정(An Mi-Jeong) 부산경남사학회 2011 역사와 경계 Vol.78 No.-

        이 글은 한국 부산에 거주하는 화교 여성의 생애사를 통해 20세기 동북아 국가 간 정치적 변동이 개인의 생애에 미친 영향과 그 양상의 문화적 함의를 밝혀 보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대다수의 한국화교들은 지역적으로는 중국 산동성 출신이거나 그 후손들이며, 이들의 국적은 대만(중화민국)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고향, 거주지, 귀속 국가가 서로 다른 복합성은 이들의 역사가 동북아의 20세기 역사와 깊은 관련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 화교이주사에서 나타나듯이 한반도를 오갔던 초기의 화교들은 경제적 활동을 목적으로 한 이동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부산의 화교들은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대규모의 집단적 거주지가 형성되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후 냉전 체체 하에서 한국화교 인구는 계속 감소해왔다. 이글에서 제시한 화교여성의 사례는 한국화교의 인구감소가 어떠한 맥락 속에서 전개되는 것인지 보여준다. 즉 부산에 거주하는 H씨와 R씨의 사례에서 이들의 가족은 부산에 거주하는 모친을 중심으로 대만에 사는 자식들과 하나의 생활세계를 형성해 간다. 가족 간에는 분산 양상이 나타나며 국적도 서로 다르다. 화교가족이 모두 함께 이주하는 것은 아니며, 모친은 현재의 거주지가 가족의 정주지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처럼 화교인구의 감소는 가족의 집단적 이동형태가 아니라 가족의 분산 이동형태라 하겠으며, 이것은 동북아의 식민주의, 전쟁, 냉전체제 등이 낳은 정치변동과 국가 간의 불연속적 관계에 따른 가족집단의 대응이 아닌지 고려된다. 또한 가족 성원끼리 국적에 의한 갈등과 긴장은 여전히 동북아 역사적 긴장이 개인의 삶에도 배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대부분의 출신국과 거주국, 귀속국이 서로 다른 한국화교의 크로스보더성은 동북아의 역사와 정치적 지형을 반영하며, 민족국가에 의해 구분되는 국민이 아니라 ‘현지’의 거주자로서 사회적 위치를 조명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History of the Overseas Chinese(Hwagyo) in Korea has deeply been related to history of North-East Asia and the Cold War in 20th century. This thesis addresses one's life history which was developed in political movement among Korea. China, Japan and Taiwan. Macroscopic social changes among those countries led dramatic changes of the Overseas Chinese population in Korea. This thesis examined microscopic aspects of the changes through the life history of the Overseas Chinese in Busan. Unlike the early stage, political aspect(Korean War) is the most influential factor on formation of group habitation in Busan which was evacuation during the Korean War. Busan was the biggest area for the Overseas Chinese however its population has been decreased since the Korean War. In case of Ms. H. Chinese Civil War and Korean War and Cold War have intervened to her family immigration. Although these political background has made her movement, she hopes to settle down in local society. The Overseas Chinese in Korea are regarded as different nationality or different ethnic group but it does not necessarily means that the Overseas Chinese are 'Chinese (or Taiwanese)'. Ms. R is Korean but has Taiwan nationality and a member of Overseas Chinese community. However social boundaries which divides by nationality has become main factor that foments internal conflicts and tension among families. Likewise, most Overseas Chinese people who happened to have Taiwan nationality through the Korean War have different one's native place, current residence and nationality. This cross-border reflects history and political landscape.

      • KCI등재

        국경이 놓인 오사카 재일한인 여성의 가족과 친족

        안미정(An Mi-Jeong) 역사문화학회 2010 지방사와 지방문화 Vol.13 No.1

        이 글은 재일한인 세 여성의 생애사를 바탕으로 가족 · 친족 사이의 다양한 경계와 이산에 대해 기술한 것이다. 주요 내용은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한인 1세 세 여성의 고향과 가족 · 친족에 관한 것으로서, 가족과 친척 사이에서 형성되어 온 다양한 사회적 경계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국적이 다르게 된 역사적 배경, 그리고 정치경제적 상황이 달라지고, 거주하는 공간이 달라짐에 따라 이주한 자들은 자신의 고향 · 가족 · 친족 사이에서 상호 역할의 조정과 교환관계를 이뤄가고 있음을 보았다. 경제적 후원과 친족의 다양한 도덕적 의무를 실행하는 것으로써 지속적 관계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더욱 해체의 위기에 놓여 있는 가족의 경우 부계친족 원리를 중심으로 하면서 동시에 가족의 영속성을 지탱하려는 문화적 실천을 볼 수 있었다. This article aims to describe the varying borders and dispersions of family and kinship exploring the life stories of three Korean women in Japan. Each of these aged women have played a role as mediator between the family and kinship in homeland and those in Japan. In their lifetimes, the impossibility to go freely to their mother country and homeland can be separate apart from the fact that it has been not easy for these families/relatives to meet each other. Because the complicate and multifold International politics from the colonial period to the Cold War system has affected the relations of family and kinship with diverse borders. Between the family and kindred which left home and those which were left home, the coordination of roles and the connection of exchanges has been made up reciprocally. It can be said that the patrilineality that appears in the course of pedigree successions reflects the values of continuity that playa part in preserving the networks of dispersed families, even though it has reinforced somewhat the traditional patriarchy.

      • KCI등재후보

        해방 전후 제주 잠수(해녀)들의 부산 정착의 사회사적 고찰: 지역 간 경계를 넘은 이동과 갈등을 중심으로

        안미정 ( Mi Jeong An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2010 탐라문화 Vol.0 No.37

        식민지시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제주도 마을의 여성들은 무리지어 섬 밖으로 나가 해산물을 채취한 후 목돈을 마련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반복적 이동을 행해왔다. 이 글은 이러한 여성들의 이동을 사회적 변동 속에서 그 이동의 성격을 조명해보고자 하였다. 이동이 식민지 시대에 집단적 양상을 띠며 촉발되었다는 점과 특히 잠수들의 이동에 있어서 부산이 거점이 되고 있었던 점, 그리고 해방 후 현지에서 일어난 분쟁에 초점을 두어 살펴보았다. 잠수들의 이동은 식민지 시대에 촉발되고 가속화된 것으로 이는 식민지 수산물 상품경제 하에서 이루어진 체계적 이동이었다. 개항 이후 부산을 거점으로 형성되어 온 객주들은 해산물이 수요를 가진 일본 해조상인들의 자금을 대부받고 제주도의 잠수들을 모집하여 여러 어장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일본의 군수산업 및 산업발전에 따른 해초의 수요가 유통상인 집단으로서 객주를 매개로 하여 채취자 잠수들의 이동을 촉진시켰던 것이다. 즉 해산물을 둘러싼 제 관계에 있어서 잠수들은 채취자(생산자)로서 가장 하부단위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차별적 분배의 구조적 고리 안에 놓여 있었다. 활발하였던 잠수들의 타지 이동은 수산 상품(자원)을 쫓아 자원획득을 도모하였던 식민지 수산경제체제 하에서 이루어진 `자유입어` 활동이었다. 즉 지역주민의 자원권보다 자원의 상품적 필요성이 타지 이동의 자유를 암묵적으로 용인한 식민지수산경제 속에서 전개된 것이다. 해방 후, 정주(定住)를 기본으로 한 수산업법의 제도화 과정에서 식민지시기의 관행은 지역 간 갈등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를 연구자는 식민지 시기 이동채취의 자유와 해방 후 정주자의 채취권 간의 갈등임을 지적하고, 지역 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원을 채취할 수 있었던 이동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자원획득의 목적을 둔 식민지 상품경제 하에서 용인되었던 자유임을 지적하였다. Women of Jeju island had moved periodically getting off island in groups to scrap together some money by collecting seafood and coming back to home from the colonial era to 1970`s. This article aims to illuminate the characteristic of these women`s movements in context of the social changes. To this purpose, it points to the facts that the movements had been provoked in the form of collective behavior since the colonial era and Jamsu(women-divers) made Busan as a foothold in the course of the movements, and the conflicts occurred in Busan after 1945. Jamsu` movements were organized ones under the colonial commodity monetary economy of seafood which had been set off and accelerated in the colonial era. Gaeck-ju(mediate merchant) who flourished in Busan after the opening of port would recruit Jamsu of Jeju island and send to other fishing grounds borrowing the money of Japanese seafood traders. In other words, The growing demands of seafood owing to the development of Japanese military and other industries provoked the movements of Jamsu who collected seafood under the sea through the intermediary of Gaeck-ju, the circulation merchant group. Therefore, Jamsu as the collectors of seafood located in the lowest place at the relationship formed around the seafood and linked systemically to the network of the discriminative distribution. Jamsu` active movements to other places were the fishing activities carrying out without licenses of authorities under the colonial marine economy system which sought to gain the commercial fishery resources. Consequently, they had developed in the colonial marine economy that tolerated the movements to other places for the necessity of commercial resources, not for the resource rights of local people. After 1945, this colonial practice caused many conflicts between the locals in the course of enactment of laws relating to fishing industry on the base of settlement conception. These conflicts illustrated the contradiction between the unconditional movement and collection in the colonial era and the collection right of the settlers after 1945. After all, the unconditional movements being enable to collect resources across the local borders in the colonial era were to be tolerated under the colonial commodity economy which sought to gain easily the commercial resources.

      • KCI등재
      • KCI등재후보

        오사카 재일(在日)제주인 여성의 이주와 귀향

        안미정 ( Mi Jeong An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2008 탐라문화 Vol.0 No.32

        이 글은 오사카 이쿠노구(生野區)에 사는 재일(在日) 제주출신 여성들의 생애와 생활을 중심으로 하여 초기 이주와 정착, 그리고 귀향에 얽혀 있는 사회문화적 지형을 기술한 것이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참여관찰 및 심층인터뷰를 통해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하였다. 이주한 제주인들이 이쿠노구를 중심으로 밀집한 것을 이 지역의 조선시장과 관련하여 살펴보았다. 조선시장은 이주자들이 초기 정착과정에서 상호 거래를 하며 정주기반을 마련하였던 사회적 네트워크 공간이라 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무자본(無資本)의 상황에서 서로 모여 삶으로써 그들 사이에 형성된 네트워크가 정착의 자본 구실하였다고 본다. 초기 이주자들의 정착을 세 여성의 생애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그 가운데 제주여성의 `물질`은 열악한 상황에서 생계수단이 될 수 있었으며, 현재 재일 제주인 내의 사회적 관계를 잇는 기능을 하였다. 또한 여성들 사이의 계(契) 모임은 회원들의 생활상의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기여하였다. 고령이 된 여성들은 지속적으로 고향인 제주도와 네트워크를 가지려고 하며 그것은 일시적 고향방문이나 산소의 마련, 현금 기부와 같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후원은 친족의 도덕적 의무로서 간주되며, 고향에 부재(不在)함에 따르는 후원으로서 그들이 고향에 대해 일방적 후원자 위치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제적 후원의 의무, 그리고 국적에 따라 정체성의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 등 재일제주인들의 귀향은 단지 고향방문 이상의 복잡한 지형 안에 있음을 보게 된다. 이 연구는 미시적 접근에 의한 거시적 담론의 분석에는 한계가 있으나, 재일제주인 사회 연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제주)여성의 생활경험을 다루고, 일상생활, 고향(사람)에 대한 재일제주인의 시각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연구자는 재일제주인들이 일본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재일한인집단으로서 제주사회의 부속 집단이 아니며 그들의 민족 정체성을 민족=국가라는 도식으로 접근하는 한계를 지적하고자 하였다. This paper describes Jeju women`s social-cultural feature which is involved in from life and living to early emigration, settlement and homecoming. This is based on the materials by participant observation and life historical approaching from 2006 through 2007. This study inspects concentration of Jeju women that centers on Ikunoku(Osaka) in connection with its regional Chosun market. Chosun market is social networking area which emigrants have its roots by trade and the network provided capital. As this report puts emphasis on three women`s life course, especially their Muljil, underwater diving was essential means of living, which connected themselves with social network. In addition, Kye, a mutual loan club contributed financial succeed to its members. The aged women make an effort to be connected with their homeland, Jeju Island, that appeared to be variety of the forms such as temporarily visitation to hometown, making grave for parent and cash contribution. This contribution is regarded as moral obligation of kinship, shows their position of supporters one-sidedly caused by not being in homeland. As a consequence of obligation of financial support and changing of identity which caused by nationality, their homecoming means much more than home visiting. This research deals with Jeju women`s living experience and express their viewpoint which has excepted from a great discourses. The researcher assert that Jeju islander in Japan is not an attached group to Jeju society but the Korean group interacting with Japanese society. And it indicates the limit of the viewpoint which identifies the nation and the nation state.

      • KCI등재

        해항도시의 이주자

        안미정(An, Mi-Jeong) 부산경남사학회 2013 역사와 경계 Vol.89 No.-

        이 글의 초점은 부산시 해녀들이 구성하고 있는 연안 커뮤니티를 통해 해항도시의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데 있다. 대도시 속 해녀의 생활문화는 근대적 경험과 기억이 남아 있는 ‘다문화 공간’이자 역사적으로 이문화간 접촉이 전개되었던 ‘해항도시’라는 구체적 공간에서 일어난 문화접촉의 양상을 보여준다. 일제시대 부산의 바다는 일본인들에게 ‘황금어장’과 같은 식민지 바다였으며, 이들의 이동은 거시적으로 볼 때 제국주의가 확장하는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파생된 것이다. 즉 군수 산업원료를 채취하기 위한 노동력으로서의 이동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해녀의 커뮤니티는 부산의 대도시화 과정을 거치며 형성되어 도시 생활양식과 부응해 나가는 적응기제의 역할을 하였다. 또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 이 해안 공간들은 여성 이주자가 도시에서의 생활기회를 찾는 적극적 전략의 산물이며 생업을 바탕으로 창출된 생활공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커뮤니티의 성원들은 상호 공평해지도록 하는 자율적 규칙들을 만들어 운영하는데, 이것은 공유지의 사회적 성격을 성원들이 발현시키는 과정인 동시에 또 ‘공동체’로서의 집단의식과 생업을 지속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해온 생업을 도시에서 지속적으로 이어나감으로써 도시 속의 ‘농촌(어촌)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다의 생업 방식을 도시 상황에 접목시키고 변화시키는 현대적 의미로 볼 수 있다. 해녀의 어로법이 가진 전통적 색채에 따라서가 아니라 행위목적을 고려할 때 이들에 대한 타자화된 시선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문화간접촉 공간으로서 해항도시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경험적 교훈은 타자의 시선이 내재된 관용이나 환대가 아니라 서로의 인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This thesis focuses on women divers’ coastal communities in Busan in order to understand cultural features of seaport City. Women diver’s living culture is ‘multi cultural space’ where modern experiences and memories are left and also reveals cultural contact occurred in detailed place such as ‘Seaport City’.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the ocean in Busan was colonial sea like ‘a rich fishing ground’ and looking at the big picture, their migration is structurally derived during the imperialism expansion. In other words, that is the migration of labor to collect industrial materials. Today women diver’s communities in Busan has been processed urbanization and taking a role as the adjustment mechanism that is compliant with urban living culture. Also the coastal areas are as with communities are product of active strategy that women migrants who are seeking living opportunities and living space created on professions. Especially the member of the communities operate the communities by making autonomous rules for mutual fair. This is very important factor that makes group consciousness as ‘community’ and profession sustainable as well as revelation of social character of common land. By keeping their old profession after moving to city, this means they adjust coastal life style and change the city rather than ‘becoming rural’ among cities. Considering its goal women diver’s fishing even though it has traditional color, other’s view towards them can be changed.

      • KCI등재

        해안마을 여성의 공동어로와 자원에 대한 권리

        안미정(An Mi-Jeong) 역사문화학회 2007 지방사와 지방문화 Vol.10 No.2

        이 글은 제주도 잠수[잠녀, 해녀]들이 어떻게 오랫동안 과거의 어로방식을 지속하고 있는 지를 여성들의 해양자원에 대한 권리라는 맥락에서 살펴 본 것이다. 잠수들이 기계적 장치 없이 “물질”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해양 자원의 남획, 고갈을 막으며, 새로운 어로자의 출현으로 인한 기존 잠수들의 퇴출과 자원에 대한 권리가 약화되고, 주민들의 사회적 관계가 변화하는 것을 지양하기 때문이다. 해초채취 과정에서 나타나는 공동체적 어로는 마을어장을 공유하고 있는 개별주체(각 가구)들이 그들의 자원에 대한 권리가 상호 질적으로 공평히 이루어지도록 하는 가운데 형성되고 있는 것임을 기술하였다. 마을어장에서 ‘공유지의 비극’ 이 쉽사리 초래되지 않는 것은 물질이라는 어로방식과 바다에 대한 종교적 세계관, 어장을 관리 감독하는 자율적 조직 활동 등이 있기 때문이다. 잠수들의 “물질”은 과거의 잔존물이 아니라 해양자원에 대한 권리를 지속시키려는 여성들의 적극적인 어로라고 말할 수 있다. This paper reports on a study of communal-fishing(gathering) and resources rights of women-divers("Jamsu") in Jeju island. Based on a year-long fieldwork within the Jamsu community of Gimnyeong village in northeast of Jeju, it investigates the women divers' daily activities in the coastal water, their norms about coastal resources and conception of this important ecological and social arena. The work of these women divers is called "Muljil" in Jeju, which refers to the plain-diving(breath-holding diving) activity to collect the shell-fish and seaweed from underneath the coastal water, which the divers think to be "Bedabat (maritime garden)". Mulgil is continued by women in the costal region over a long period of time. It is regarded as 'traditional' fishing method but connected international fishing market. This paper focused on that the Mulgil is sustainable work because of it's resources right. The women divers have dealt with preservation of ocean resources through informal association "Jamsu-Hoe". They solidify each other for a protection from unforeseeable accident in the sea. The colleagues are forming the multiple relation which gives a help to daily life. For this reason their fishing method(plain-diving) is protected from new technology: skin-scuba, diving apparatus etc. Mujil involves competition of gathering among them if not destruct resources right. Inhabitants(and Jamsu) are trying to find ways to share fair resources right. They have a rule of rotation of communal-gathering ground("maelojang") and additional efforts like giving food. Inhabitants look for equitable resources rights on the maelojang. And the right is accomplished take part in all together gathering work. So that they accomplish the "communal rights" which mean 'equivalent value qualitatively'. Not only has Jamsu the exclusive rights about some maritime resources but also symbiosis relationship. Consequently it is hard to find the tragedy of the Commons in Jamsu village because of symbiosis relationship. The divers work in the 'maritime garden' is mediated by the power of a sea goddess. The local actors conceptualize their relationship with the goddess in an idiom of descent and this conceptual kinship relation is demonstrated dramatically in the periodic rituals of Jamsukut, shamanic rituals for the divers. The rituals symbolize that they are the owner of maritime garden as descents.

      • 사회적 공간으로서 해양세계의 문화적 의의와 특성

        안미정(An, Mi-Jeong)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2010 해양도시문화교섭학 Vol.- No.3

        This article aims to speculate the socio-cultural features of maritime not as a ecological space but as a social one in the perspective of cultural changes. In my opinion, the maritime has been rather a base where various peoples has met, related to each other, and created culture than a complement to the land. The socio-cultural features drawn out of the life world of the maritime people has been linked to the history of seaport cities, when they are defined as a category of the maritime world. The seaport cities has involved not only common cultural strata with other cities" history and culture, but also the distinctive cultural ones. These strata must be illuminated in more extensive context of maritime and relating to the social relations of peoples living in maritime, as such the tribe of maritime people and boat-dwelling mariners. Their reciprocal exchange-relations, cross-bordering and plural networks, and connectedness as a cultural-economic unit contribute largely to the global networks of seaport cities. As time goes, the reciprocal networks on the basis of various socio-cultural bonds will get more and more important. It is this reciprocal relations that will establish the base of social relations in which virous regions and cultures would can coexist with each other.

      • KCI등재

        한국화교로 본 한국의 다문화주의 성찰

        안미정(An, Mi-Jeong),우양호(Woo, Yang-Ho)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5 한국민족문화 Vol.56 No.-

        서구의 다문화주의 이론이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비판적 고찰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이 글은 한국의 오랜 이주집단인 화교를 통해 한국의 다문화주의를 성찰해 보고자 한 것이다. 그동안 한국화교는 한국의 소수민족 집단, 디아스포라 혹은 ‘이방인’ 등 단일민족 담론 속에서 차별을 받아 온 오래된 이주집단으로 지적되어 왔다. 세계 여러지역의 화인들과 달리 한국화교들은 대부분 출신지가 중국의 산동성이며, 거주국이 아닌 대만의 국적을 가지고 있다.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한국화교의 특징을 이 글에서는 한국사회와의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예를 들어, 한국화교들의 재이주하는 현상은 한국사회의 이념적 편향성, 민족국가 담론, 경제활동영역의 축소와 같은 내부적 압력으로 인해 그 출구를 외부세계에서 찾은 결과이다. 한국의 역사적 변동에 따른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산물인 것이다. 이들의 재이주는 단지 차별받은 이들의 이주인 것만이 아니라, 한국사회로서는 일찍이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었던 기회를 상실해버린 것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또 한국화교의 대만 국적 선택은 흔히 해방 후 한반도의 냉전체제 산물로 귀결되곤 하지만, 식민지시대로부터의 연장선상에서 개입된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영향임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즉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 형성되어 있던 식민주의와 반공주의의 두 개의 이념이 공진(共振)하는 속에 이뤄진 것이다. 이처럼 한국화교가 세계의 화교화인들과 다른 특징은 그 집단의 본질적 특징이 아니라 한국사회와 함께 변동해 온 결과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문화란 민족과 국가를 중심으로 ‘타문화’로 지칭되고 있지만, 한국화교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타문화는 자문화와 별개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상호관계 속에서 서로 형성되어 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문화주의가 한국사회에 요청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부분일 것이다. This paper is to reflect on multiculturalism in Korea, Western theories of multiculturalism is seen through the ethnic immigration group of overseas chinese(Korea-Hwagyo) in Korea. Korea-Hwagyo is an old immigrant group in Korea. They are minority groups, diaspora or "stranger" and has been discriminated against in a Korean ethnic discourse. The Korea-Hwagyo hometown, unlike in many regions, most of Shandong Province(山東省) of China, Taiwan is their nationality. This is not the nationality of the country of residence. Overseas Chinese Korea has a number of features across the nation and the country. I looked at this in terms of interaction with the Korea Society. Many Korea-Hwagyo are re-immigration to other area that it can be seen as early as the Korea Society ditches to lose the opportunity to experience cultural diversity. In addition, they choose their nationality in Taiwan is not the only effect of the Cold War. East Asian international relations of South Korea"s colonial indicator is also a result of the intervention. Korea-Hwagyo had to choose their nationality in the two ideologies that are in colonialism and anti-communism. These points are another feature of the Korea-Hwagyo and Overseas Chinese in the world. It is the result of a variation of the Korea society together. It is called "cross-culture" in Korea and refers to the "Other culture" based on ethnicity, nation and race. However, as Korea-Hwagyo is showing us that culture should be recognized in correlation to each other. It is requested that multiculturalism in Korea will be because to say that multiculturalism must recognize these inter-relationships.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