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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화가정 증가에 따른 한국 사회통합 정책 연구

        최현실(Choi Hyeon-Sil)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09 한국민족문화 Vol.35 No.-

        본 연구는 결혼이민자 가정의 증대에 따른 한국사회의 통합의 원리를 서구의 다문화주의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동안 다민족국가를 유지해왔던 중국과 싱가포르의 다민족 통합사례인 ‘상호성의 원리'를 찾아 적용하였다. 싱가포르와 중국의 다민족적 역사는 비록, 국가주의적 사회주의적 통합의 성격이 강하지만, 이들 양국의 소수민족정책을 면면히 살펴보면, 그 속엔 민족과 인종을 구분하지 않고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다문화적 사회통합이라 할 수 있는 ‘상호성의 원칙'이 나타나고 있다. 싱가포르는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와 기타 민족으로 구성된 다인종국가이지만 성공적인 사회통합을 이루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싱가포르 사회의 구성원이 사회적 성공을 향유하기 위한 조건으로 ‘민족에 상관없이 실력우선'을 취해 다인종적 위계질서를 지양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이중 언어와 종합교육정책을 통해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사회통합정책을 적극 실시하였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공공주택정책을 통해 국가의 경제성장에 따른 이익을 경제적 소외자와 각 민족에게 골고루 나누어 사회통합의 장애를 제거하였다는 점이다. 싱가포르의 민족과 인종, 종교를 구분하지 않는 동등대우 그리고 교육과 언어정책의 공평성, 경제적 형평성의 유지정책은 한국에 이주해온 외국인들과 그 자녀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향후 한국사회에 생산적 주체로 양성되는데 좋은 사례가 된다. 한편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로 당고조 2년(619년)에 만들어진 민족정책의 기본원칙조서와 追中前弊(추중전폐), 당태종의 夷夏一家(이하일가), 오늘날 중국정부의 當家作主(당가작주) 등에서 민족자치구역의 전통이 있어 오랜 역사동안 소수민족이 민족적 특수성을 유지한 채 중국 사회와 융화된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상호성의 원리'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역대 정책에 나타난 ‘상호성의 원리'를 한국사회의 통합정책에 적용한다면 한국어 교육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민 집단거주지에 다문화가정 자녀가 원한다면 부모나라의 문화와 모국어를 교육받을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한국의 교육기관에서도 한국인을 대상으로 초ㆍ중등 교과에 사회연구(Social Studies) 과목을 설치하는 등 다문화교육(Multi-cultural Education)을 강화하여 외국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등 상호간의 문화이해를 확대한다. 그 외에 제도적 장치 안에 결혼이민자들이 적극적으로 의사표명을 할 수 있는 공식 체널(예를 들어,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사회 내에 자조집단을 마련하고 지도자를 양성하여, 이들의 목소리를 국가 및 지방정부의 기관에 전달하는 채널)을 마련하는 것도 향후에 고려해 볼 다문화적 사회통합의 방안이 될 수 있다. This manuscript has finding principle of integrating society in Korea, instead of the multicultural society from multiculturalism of the Occident. I intend to find 'reciprocity principle' from the instance of China and Singapore. which have preserved the multiracial nation for a long history, and apply it to the integration of multicultural society of Korea. The 'reciprocity principle' does not make any excuse of differentiation due to the difference of confucian value's being connected with a value system, which conforms with the universal faith and emotion of the Oriental people. Instead, it actively admits the difference on an open position, and tries to accept it. The reciprocity principle also includes community position, which values much of members' mutual agreement on and observance of values and goals the society commonly seeks after. Although this kind of principle was derived from a position different from liberalistic position, it is considered to be on the same track with the Western multiculturalism. Multicultural history of Singapore and China mostly represents confucian, communal, nationalistic, and socialistic integration. It also shows the union and the assimilation at the same time. However, if you closely examine each nation's policy of minority race, you will discover the 'reciprocity principle,' which respects cultures and languages, regardless of the nation and race. Singapore is a multiracial country of people of Chinese, Malaysian, and Indian. However, it has succeeded in integrating the society as one. 'Singapore's only one policy' includes not only the national communalism, but also the 'reciprocity principle'. The first characteristic is that Singapore maintains the multicultural rank and order through 'the merit system regardless of the race' so that members of society can enjoy the social success. Even though people of Chinese descent account for the majority and hold the merit advantage, Singapore, through the bilingual education and the general educational policy, actively promoted the society-integrating policy where various races coexist with each other. Also, Singapore got rid of the obstacles to integrating the society by raising the rate of moving into public housing to 89%, and by distributing profits from the economic growth to each race and those economically estranged. The policy of Singapore is an essential element in cultivating those immigrated into Korea and their children to be the productive subject of the Korean society in the future. Also, it is a good example that implies a policy, which aims at equal treatment regardless of nation, race, and religion, fairness in education and linguistic policy, and maintenance of economical balance, is needed in integrating the Korean society. On the other hand, China consists of 56 races. And, 'reciprocity principle', in which minority races, for a long history, can maintain their racial peculiarity, and develop cultures in harmony with the Chinese society, is well described in the record of basic principles of racial policy written in the second year(619) of the Danggojo reign. It is also found in the principle of Chujungjeonpye(To make the people feel at ease by removing tributary states, being friendly with each other as a matter of course, and staying away from the troubles), Dangtaejong's Ihailga(To Make all the minority races a family by governing them with virtue), and the Chinese government of today's Danggajakju(Minority races act as the owner of the land they reside in, and govern their territories by themselves). The 'reciprocity principle' of China includes the idea of Hwaibudong(Get along well with others, but do not mix with people for no good reason) and the principle of Dobyeonghaengibulpae. Also, through coexisting mutually, respecting the harmony and differences, and opposing to the single homogeneity, it has served to let cultures of other races keep the peculiarity and develop for itself w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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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인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한국 문화 교육 방안 연구

        김형복(Kim, Hyoung-Bok), 이행선(Lee, Haeng-Sun)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7 한국민족문화 Vol.65 No.-

        본 논문에서는 몽골인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 한국 문화 교육 방안을, 몽골과 한국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설화를 활용하여 문화 비교 관점에서 모색하였다. 몽골은 전통적으로 유목 생활을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에 학습이 책보다는 구전에 의한 옛이야기에 의해 이루어져 그들에게 설화는 아주 친숙한 소재이다. 그래서 몽골인 학습자들의 한국 문화 학습에 설화를 활용하면, 흥미 유발과 배경지식 활성화에 유용하다. 그리고 몽골설화를 활용한 한국 문화 학습은 학습자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의 한국 문화 수업이나 문화 교재는 한국 문화에서 출발하여 한국 문화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모티브가 유사한 양국의 설화에서 나타나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학습자가 비교함으로써, 학습자 스스로 자연스럽게 자국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점을 배경으로, 본 논문에서는 다음의 사항을 살펴보았다. 먼저, 설화 비교를 통한 한국 문화 교육의 의의를 밝혔다. 결혼이주여성은 한국가정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한국 문화 수용만을 강조할 수 없다. 그러므로 결혼이주여성들의 모국 문화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 수반을 강조해야 한다. 양국의 설화비교는 그런 점에서 의의가 깊다. 둘째,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유의미한 몽골 설화로 〈팔 없는 여인〉, 그에 대응하는 한국 설화 〈손 없는 색시〉의 문화 교육적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두 설화는 주인공이 여성이며, 특히, 여성이 일생 동안 수행하게 되는 딸, 아내, 며느리,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고 ‘결혼'을 통해 결혼이주여성들이 직·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는 여러 문제들이 설화 속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교육적 의의가 있다. 셋째, 두 설화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설화 속에 공통으로 드러나는 문화 교육 요소를 선정하였다. 먼저 가족 관계에 초점을 두고 문화 교육요소를 추출하였으며, 설화의 주요 모티브인 ‘손'과 관련한 관용어를 언어 문화 교육 요소로 제시하였다. 넷째,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설화 비교를 통한 한국 문화 수업의 모형을, ‘설화 읽기 교수-학습'과 ‘문화 교수-학습'으로 나누고, 그 실제를 수업 활동을 예로 들어 제시하였다. In this paper, we searched for a method of Korean culture education for Mongolian marriage migrant women from the viewpoint of cultural comparison using folktales common to Mongolia and Korea. Since Mongolia is traditionally based on nomadic life, the learning is done by word of mouth rather than by books. As a result, storytelling is very familiar to Mongolian speaking learners. Therefore, using the folktales in the Korean culture education of Mongolian learners is very useful for stimulating interest and activating background knowledge. And Korean culture education using Mongolian folktales can be for the Learner-Centered Approach. Because, Korean culture classes have focusing on delivery Korean cultural knowledge culture in the textbooks so far. In addition, the learners can naturally perceive his own culture and Korean culture objectively by comparing the common points and differences between the two tales with similar motifs. We have discussed the following points. First, I explained the significance of cultural education through comparison of folktales. We can not force the marriage migrant women to accept Korean culture unilaterally because there are special circumstances in which they should live with Korean family.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emphasize the understanding of Korean culture while maintaining the foundation of their culture. Comparing the folktales of both countries is significant in that respect. Second, I mentioned the importance of the cultural education comparing folktales, between the Mongolian folktale 〈The woman without arms〉and the Korean folktale 〈The bride without hands〉. The hero of two stories are female. In particular, The hero of two stories play many roles as lifelong daughters, wives, daughters-in-law, and mothers. It is significant because there are many problems through "marriage" to marriage migrant women directly or indirectly. Third, we selected the elements of cultural education which are common in two stories by comparing and analyzing them. We extracted the elements of cultural education from the stories focusing on human relations, and idioms related to "hand". Fourth, based on these discussions, I suggested the model of the Korean culture class based on the comparison of the folktales. It is divided into "folktales reading teaching–learning' and "cultural teaching–learning". I presented the actual practice of the class as an exa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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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在日コリアン敎育と民族アイデンティティ

        金泰泳(김태영)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06 한국민족문화 Vol.27 No.-

        재일한인의 교육애 관한 연구는, 일본의 학교제도 속에서 어떠한 위치에 놓여져 왔으며, 현재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 하는 제도적(濟度的)인 측면과, 민족교육의 세계에 반영되는 민족관(에스니티시視)의 문제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이 논문에서는 재일한인 교육의 역사와 그 현황을 살펴보고, 『삼천리(三千里)』, 『청구(靑丘)』에 나타난 재일한인 교육에 관련된 기사를 통해 재일한인의 교육에 반영된 민족적 아이덴티티관의 형성 및 그 과제를 고찰해 보았다. 제도적 측면을 살펴보면, 일본정부는 외국인 자녀를 위한 학교를 아직 법률상의 정규학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민족학급이나 민족어린이회 등의 교육의 장(場)도 민족적 소수자의 기본적 인권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희박하다 이러한 현실을 생각할 때 일본의 교육제도는 다문화적(Multicultural)이라기보다 문화다원주의(Cultural Plurali-sm)의 전단계로, 동화주의적(Assimirational)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후쿠오카(福岡) 인근도시애서 실시한 외국인의 생활의식실태조사에 의하면,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최대한의 권리가 「일본인과 동등한 권리」라는 한계가 드러났다, 재일한인이 일본사회의 주민으로서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납세의 의무 등을 지고 있지만, 그들에게 주어지는 권리는 일본인과 같은 종류의 것으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일본인과 같은 권리가 주어진다 해도 그것이 외국인의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 경우도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외국인에게는 외국인을 위한 독자적인 주민 서비스가 필요한 것이다. 일본사회에서는 다원적(多元的)인 권리에 대한 요구를 권리기 많은가 적은 가라는 양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교육권(敎育權)의 문제 역시 그러하다. 기관적인 학력에 각자의 민족성, 그러고 처해 있는 입장에 따라 요구되는 학습권(學習權)의 내용, 즉 학습권의 질은 다원적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재일한인은 현대사회에서 생활해 가기위해 필요불가결한 지식이나 기능을 교육받을 권리가 있으며, 동시에 재일한인이라는 독자성 때문에 배워 두어야 하는 여러 가지 사항이 있다. 이것이 바로 다문화적인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정부는 외국인자녀를 위한 교육의 장(場)에 세금으로 공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이진에 발표된 재일한인의 교육에 대한 연구의 대부분은 이러한 제도적인 측면에 접근한 것으로, 재일한인의 교육내용이나 거기에 반영되어 있는 민족관(民族觀), 그리고 그러한 민족관이 아이들의 아이덴티티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에 관해서는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교육내용이나 교육장면에서 언급되고 있는 언설(言說)이 교육을 실천하는 재일한인지도자의 성역으로 터부시되어 있어 침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상황은 현재에 또 기본적으로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재일한인과 일본사회의 "공범관계"가 재일한인의 민족교육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잡지 『삼천리(三千里)』, 『청구(靑丘)』에 나타난 재일한인의 교육에 관한 언설을 살펴보면 지금까지의 재일한인의 교육은 일본사회의 「동화(同化)」압력에 대치하는 「투쟁의 역사」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재일한인의 민족교육이 재일한인이라는 집단적 아이덴티티를 중요시하게 되고, 집단내부의 다양성이 억압되기도 했다. 민족문화를 습득하여 문화적 수탈과 부정적인 지기의식을 극복하고자 하는 교육의도를 가지고, 공통의 역사체험과 역사적 기억, 민족의 전통 등이 주로 강조되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수단과 기술의 습득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제일한인을 둘러싼 환경이 개선된다 해도 그것을 활용할 지식과 기능을 갖추지 못한다. 민족교육의 장(場)에서 지도자로 활동한 바 있는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민족교육의 세계에서는 바람직한 민족상(民族像)을 승인하지 않는 존재에 대해 배외적(排外的)인 경향이 있다. 즉, 재일한인이 사회에서 받아온 배제의 논리가 재일한인내부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기모순의 논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외부의 공격」을 방패삼아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재일한인의 민족교육계의 내부에 존재하는 이러한 「배타성」은 향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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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의 국제화 · 세계화와 대중 민족주의

        박해남(Park, Hae-Nam)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20 한국민족문화 Vol.77 No.-

        이 글은 1990년대 들어 ‘대중 민족주의'라 불릴 만한 새로운 민족주의가 등장했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1980년대 말 한국 사회의 내 · 외적 변화 속에서 가시화된 대중들의 민족주의 담론 소비양상을 분석하여, 1990년대 대중 민족주의의 성격 및 변화의 양상을 드러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한국의 민족주의 담론은 구성원의 습속 개조를 통해 낮은 지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발전주의적 민족주의와, 외세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해결책으로 내세우고 종족적 민족을 강조했던 저항적 민족주의로 대별될 수 있다. 1990년대 초반의 대중 민족주의는 저항적 종족적 민족주의를 전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의 국제화 및 경제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지닌 중산층의 등장을 배경으로 형성된 1990년대 초반의 대중 민족주의는, 미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을 타자화하는 동시에 종족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그 출발점은 자신감과 경쟁의식이라는 점에서 저항적 민족주의와 차이가 존재한다. 1990년대 후반의 대중 민족주의는 발전주의 세력의 민족주의를 소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경제 성장의 종언과 발전주의 세력의 세계화 담론 생산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 대중 민족주의는 자기계발이라는 습속개조의 실천과 결부 되었고, 미국과 일본의 위치는 한국에 대한 평가자로 재구성되었다. This study examines how ‘popular nationalism' was formed and changed in Korean society during the 1990s. In order that, this study analyzes how the ordinary people in Korean society consumed the nationalism discourse produced by the two elite groups: developmental state and resistant civil society. While the two groups shared the view that Korea was in a low position in the international society, they have different perspectives about the cause and solution of the problem. The views on the other countries - US and Japan - were also poles apart. Popular nationalism in the early 1990s was related to the resistant nationalism. So it features interest in ethnicity and otherization of the United States and Japan. However, the motive was differ from the idea of the resistant civil society, for popular nationalism was based on confidence in economic growth and a sense of rivalry. Popular nationalism in the late 1990s was formed amid the consumption of developmentalistic nationalism. This was the result of the oridinary people"s anxiety about their status and the spread of globalization discourse by the developmental alliance. In the new popular nationalism, the positions of the U.S. and Japan were reconstructed as evaluators to the Korea, and nationalism was combined with the discourse of self-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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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층적·역동적 시공간을 통한 한국화교 이해

        박규택(Park, Kyu-Taeg)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7 한국민족문화 Vol.63 No.-

        19세기 말 이후 한반도에 정착한 화교는 식민지 체제 하에서 일본과 조선으로부터 이중의 지배를 받았고, 국가(한국)체제 하에서도 여전히 억압과 차별받는 외국인으로 살았다. 1990년대 이후 한중수교, 세계화, 신자유주의에 의한 변화된 환경 속에서 화교는 새로운 생존과 번영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본 연구는 기존의 화교연구와 관련하여 하나의 질문을 제기한다. 즉, 화교연구가 고찰한 다양한 주제를 시공간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이다. 본 연구가 제시한 탈근대적 시공간의 틀, 즉 로컬, 국가, 초국가(혹은 세계)의 시공간이 중첩되어 역동적으로 수행하는 관점이다. 그리고 이 틀은 20세기 화교에 시론적으로 적용해 보았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19세기 후반 이후 일제 식민지 시기까지 많은 중국인이 조선으로 이동해 옴에 따라 동아시아 시공간이 형성되었고, 또한 이들의 일부가 한반도의 로컬에 뿌리를 내려 생활하게 됨에 따라 로컬 시공간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두 시공간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중첩되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작동하였다. 둘째,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한반도가 일제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이후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 초반까지 식민지 시대에 형성된 동아시아 시공간이 미군정 하에서 일시적으로 지속되었다. 그러나 동아시아 시공간은 한국정부,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중화민국(대만) 정부의 수립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단절됨과 동시에 새로운 국가 시공간이 형성되었다. 셋째, 1940대 후반이후 냉전과 반공 체제 하에서 수립되어 1980년대 후반까지 지속된 국가(한국)의 시공간은 화교의 지위, 사회·경제 활동, 정체성, 재이주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화교는 자신들의 의사(意思)와는 무관하게 대만의 국적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취급받았다. 넷째, 1990년대 이후 한중국교의 수립(1992년), 세계화 전략, 신자유주의 정책, 다문화사회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시공간, 즉 세계, (초)국가, 로컬이 중첩된 다층적 시공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이는 화교 활동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다인종(민족)으로 구성된 다문화사회로 빠르게 진전되고, 중국은 동아시아와 세계에서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있다. 본 연구가 제시한 시공간의 개념적 틀은 화교를 넓고 깊게 이해하고, 나아가 미래 한국에서의 다문화사회를 전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Korean-Chinese settled in the Korean peninsula after the late 19<SUP>th</SUP> had been simultaneously repressed by Koreans and the Japan government under the colonial system, and they have continuously lived in a controlled and differentiated condition in Korea as a nation-state. After the 1990s, they look for new possibilities in a changing situation due to a normalization between Korea and China, globalization, neoliberalism and so on. This study asks one doubt on the previously research about Korean-Chinese. The question is how time-space can be understood in a situation related practices beyond cognition and language (or sign) to various subjects investigated in the previous studies on Korean-Chinese. The conceptual framework suggested in this study is a perspective of dynamically operating through a multilayered and interacted time-space of local, nation and globe, and it is generally applied to the society, economy and politics associated with Korean-Chinese during the 20<SUP>th</SUP> century. The study results are summarized as the followings. First, a transnational time-space based on East Asia had been made by many Chinese continuously moving among China, Chosen and Japan from the late 19<SUP>th</SUP> to the Japanese colonial time, and a local time-space had been also created by some Chinese settled at particular locals of a Korean peninsula such as Incheon, Busan, Pyongyang, Wonsan. Those time-space was not separated but layered, folded and interactively influenced. Second, the transnational time-space made in the previous time was temporally maintained from the liberation from the Japanese colonial rule to the end of the Korean war. But such a time-space was totally disrupted by the establishment of Korean, Taiwan and Chinese government and the Korea war, and a newly created national time-space began to strongly influence on the society, economy and everyday life of Korean-Chinese. Third, the national time-space absolutely controlled by the Korean government have much negatively influenced on the status, socio-economic activity and identity of Korean-Chinese from the late 1940s to the late 1980s. The Korean-Chinese had a Taiwanese nationality regardless of their intention in a nationally separated time-space, and they were classified and treated as a foreigner in the Korean national territory. Fourth, a new time-space in which global, (trans)national and local scales are folded and simultaneously operated begins to be created through a normalization between Korea and China in 1992, globalization and neoliberal policies, multicultural society and the rapid development of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after the 1990s. It is much strongly influencing on the organization, activity and everyday life of Korean-Chinese as compared with the operation of the time-space made in the previously times. The newly created time-space is, however, related to the time-space made in a past time. After the 1990s, Korea is being changed as a multicultural society, and China is rapidly becoming a superpower of influencing on the economy and politics of East Asia and world. A time-space as the conceptual framework suggested in this study can help the deep and wide understanding of Korean-Chinese society and also the future prospects of multicultural society of Korea. It is necessary to improve the time-space framework which will be applied to specific aspects of Korean - Chinese in the 20<SUP>th</SUP>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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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초탐(初探)

        박성혜(Park, Sung-Hye)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4 로컬리티 인문학 Vol.0 No.12

        이 글은 유네스코에 선정된 중국의 무형문화유산 가운데 변방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민족의 것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에 대해 의문점을 갖고 출발한 초보적인 탐색이다. 이에 먼저 위구르족의 무캄에서부터 허저족의 이마칸에 이르는 14개 항목에 대해 개략적으로 소개하며 그 특징을 찾아본 결과, 크게 국내적으로는 지리적인 균등분배와 민족단결을, 국외적으로는 이웃나라들과의 경쟁에서 문화선점을 꾀한다는 사실로 정리할 수 있었다. 소수민족의 무형문화유산이야말로 중국 내 유네스코 신청을 담당하고 있는 ‘전문가 심의위원회'-사실상 중국정부-가 대내외적으로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유네스코 등재는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일 뿐만 아니라, 국가와 지역의 이미지 제고 및 ‘문화유산산업'이라고까지 불리는 경제적인 이해관계와도 관련이 있기에 전 세계적으로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중국은 ‘중화의 문화로 우뚝 서려는(文化興國)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변국과 문화갈등을 일으키며 선점하는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본래 명칭처럼 국가와 민족을 뛰어 넘어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보려는 큰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는 최근 일본과의 우열을 비교하며 ‘제주 해녀문화'를 유네스코에 등재시키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우리가 비춰봐야 할 거울이기도 하다. This study is the first step in inquiring into why those of minorities form a large part of the UNESCO world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in China. Fourteen items ranging from the Uighur Muqam to Nanai Imakan were outlined and characterized; then, it was found that they pursued geographically equal distribution and national solidarity at a domestic level and cultural preoccupancy in competition with neighboring countries at an international level.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of minorities definitely show what the Experts" Deliberation Committee―Chinese government in practice―in charge of application to UNESCO in China pursues both nationally and internationally. It is certain that the UNESCO registration is a matter of globally great concern since it is not only the national pride but also is associated with economic concern even called a cultural heritage industry. China should not be bent on preoccupancy while causing cultural conflicts with neighboring countries to achieve the goal of being first with Chinese culture but take a wider view by seeing them as common heritages for the human race beyond the scope of the nation and the people, as suggested by the title. South Korea needs to take this issue into account while trying hard to register the culture of Haenyeo in Jeju with UNESCO in competition with that of Japan.

      • KCI등재

        몽골인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한국 문화 교육 방안 연구 : - <팔 없는 여인>과 <손 없는 색시>의 비교를 통해

        김형복,,이행선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1992 한국민족문화 Vol.65 No.-

        본 논문에서는 몽골인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 한국 문화 교육 방안을, 몽골과 한국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설화를 활용하여 문화 비교 관점에서 모색하였다. 몽골은 전통적으로 유목 생활을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에 학습이 책보다는 구전에 의한 옛이야기에 의해 이루어져 그들에게 설화는 아주 친숙한 소재이다. 그래서 몽골인 학습자들의 한국 문화 학습에 설화를 활용하면, 흥미 유발과 배경지식 활성화에 유용하다. 그리고 몽골 설화를 활용한 한국 문화 학습은 학습자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의 한국 문화 수업이나 문화 교재는 한국 문화에서 출발하여 한국 문화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모티브가 유사한 양국의 설화에서 나타나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학습자가 비교함으로써, 학습자 스스로 자연스럽게 자국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점을 배경으로, 본 논문에서는 다음의 사항을 살펴보았다. 먼저, 설화 비교를 통한 한국 문화 교육의 의의를 밝혔다. 결혼이주여성은 한국 가정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한국 문화 수용만을 강조할 수 없다. 그러므로 결혼이주여성들의 모국 문화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 수반을 강조해야 한다. 양국의 설화 비교는 그런 점에서 의의가 깊다. 둘째,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유의미한 몽골 설화로 <팔 없는 여인>, 그에 대응하는 한국 설화 <손 없는 색시>의 문화 교육적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두 설화는 주인공이 여성이며, 특히, 여성이 일생 동안 수행하게 되는 딸, 아내, 며느리,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고 ‘결혼'을 통해 결혼이주여성들이 직․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는 여러 문제들이 설화 속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교육적 의의가 있다. 셋째, 두 설화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설화 속에 공통으로 드러나는 문화 교육 요소를 선정하였다. 먼저 가족 관계에 초점을 두고 문화 교육 요소를 추출하였으며, 설화의 주요 모티브인 ‘손'과 관련한 관용어를 언어 문화 교육 요소로 제시하였다. 넷째,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설화 비교를 통한 한국 문화 수업의 모형을, ‘설화 읽기 교수-학습'과 ‘문화 교수-학습'으로 나누고, 그 실제를 수업 활동을 예로 들어 제시하였다.

      • KCI등재

        일본의 요괴 설화와 한국의 도깨비 설화 비교를 통한 한국 문화 교육 방안 연구

        이행선(Lee, Haeng-Sun)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20 한국민족문화 Vol.77 No.-

        설화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모티브를 지니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승되는 과정에서 문화적 차이가 이야기 속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내재되어 있는 설화 비교를 통해 그 속에 들어 있는 문화적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내어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데 활용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한국어 교육에서 설화를 활용한 문화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일본인 한국어 학습자를 대상으로 한국의 도깨비 설화와 일본의 요괴 설화를 비교, 분석하여 한국 문화 교육에 활용하고자 한다. 일본인 학습자에게 도깨비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이해시키기 위해 먼저 학습자에게 친숙한 일본 설화를 선정하고, 이에 대응하는 한국 도깨비설화를 선정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설화 〈목수와 오니로쿠〉와 한국의 도깨비 설화 〈도깨비를 골탕 먹인 농부〉를 활용하여 실제 수업에 적용할 수 있는 교수 · 학습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일본인 학습자에게 익숙한 〈목수와 오니로쿠〉의 내용을 먼저 학습함으로써 일본의 오니와 유사한 한국의 도깨비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고, 요괴와 관련된 배경 지식을 갖춘 상태에서 도깨비 설화를 접하게 되면, 학습자 스스로가 이들 사이의 연관성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설화 속에 나타난 한국의 자연 환경 및 생활 방식, 도깨비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등이 일본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활동을 통해 한국 문화 교육을 꾀하였다. 뿐만 아니라 설화 텍스트에 제시된, 문화적 의미가 담겨 있는 한국어 표현도 같이 학습하기 때문에 언어 교육적 효과도 클 것이다. Folktales have a common motif around the world, and cultural differences are always reflected in the story and influenced by each other. It is worthwhile to understand Korean culture and find out cultural commonalities and differences through the comparison of stories. Therefore, this thesis focuses on Korean cultural education through Comparison of Japanese Oni Tales and Korean Dokkebi Tales, for Japanese learners. To help Japanese learners understand Koreans" perceptions of Dokkebi, I first selected Japanese Oni folktales that are familiar to learners. And I selected the Korean Dokkebi story that corresponds to this. And then, I focused on teaching-learning activities that can be applied to actual classes using the Japanese folktale 〈Carpenter and Oniroku〉 and the Korean folktale 〈The farmer who fed the dokkebi〉. Japanese learners have an interest in Korean dokkebi similar to Japanese oni by learning the familiar contents of 〈Carpenter and Oni Roku〉. If they come into contact with dokkebi story while they have background knowledge related to Oni, learners themselves will be able to fully grasp the connection between them. This thesis showed how Koreans" natural environment and lifestyle, and how Koreans think about dokkebi differs from Japan through a comparison of Korean and Japanese folktales. In addition, this thesis showed the possibility of language education effect because Japanese learners learn Korean expressions with cultural meanings as well.

      • 다문화담론과 로컬리티의 이원성

        김승환(Kim Seung-Hwan)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0 로컬리티 인문학 Vol.0 No.3

        세계화의 시대에 지역문화의 개념과 범주는 대략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세계적인 시각에서의 지역문화는 동아시아문화, 북아프리카문화, 라틴아메리카문화, 시베리아문화와 같은 지구적인 개념이고 둘째, 광의의 지역문화는 한국문화, 중국문화, 일본문화와 같이 국가적인 개념이며 셋째, 협의의 지역문화는 부산문화, 청주문화, 광주문화와 같은 지방적 개념이다. 지역문화의 특질이라는 의미에서의 로컬리티는 원래의 의미와 다르면서 지연되는 데리다적 차연(differance) 현상이 발생하는 장(field)이다. 이것은 사용 주체의 세계관, 사상, 의식 등을 반영하면서 자기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일종의 언어적 인정투쟁의 산물이다. 한국의 문화단일주의는 근대 초기에 저항주체들의 저항에서 강화되었다. 1900년대 초 최남선이나 신채호와 같은 민족주의자들은 단군신화를 신비화하면서 식민지/반식민지의 조선인들에게 민족적 일체감과 문화적 동일성을 심어주었고, 이것이 문화순혈주의라는 단문화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문화상대주의적 시각에서 문화적 다양성, 혼종성, 다원성, 복합성, 이질성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받아들인다는 피상적이고 표상적인 차원에서 다문화주의일 뿐, 실제로는 문화순혈주의의 인력 때문에 문화동화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또한 자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 또는 문화절대주의의 경향이 강하여 타자의 문화를 상대적으로 인식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한국문화는 지역적 특질 즉 로컬리티를 유지함으로써 민족문화로 존재할 수 있다. 세계적 지구문화(geoculture)의 환경에서는 역설적으로 단문화주의와 문화순혈주의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세계화의 시대에 요구되는 다문화주의와 문화다양성은 민족문화의 순혈주의적 인력(引力)에 가로막혀 있는 형국이다. 다시 말해서 다문화주의가 거꾸로 단문화주의를 용인하고 문화다양성이 거꾸로 문화단일성을 용인하는 모순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문화주의와 단문화주의의 길항(拮抗)이다. There are three kind of regional cultures. First, regional culture in the global perspective would be understood as East Asian Culture, North African Culture, East European Culture and so on. Second, broad regional culture would be Korean Culture, Japanese Culture, China Culture etc. Third, narrow regional culture as in Korea would be Busan Culture, Cheongju culture and Gwangju culture which are used in one nation state. In these perspectives, each category of the regional culture has its own local identity. I would use locality of the regional culture in the perspective of one nation state like Korean Cultural locality. But we call it not as jiyeokseong(地域性) but as locality because of several reasons. Korean Culture as a regional culture has distinctive cultural environment which organizes its own cultural ecosystem. Locality can be interpreted as local characteristics, but there is a subtle phenomenon of differance as said by Jacques Derrida. Korean monoculturalism has been enforced during the modernization for the resistance against the Japanese Imperialism. Nationalists in the beginning of the twentieth century mystified the Dangun Myth which resulted in the Korean cultural homogeneity. Moreover, mystification of the myth established the monoculturalism and Ideology of the Korean Pure Blood. As said by B. Anderson, Korean under the colonial rule might make an imagined community with the cultural homogeneity through language Chosunoe, language of Korean. This monocultural climate in Korea came across the multiculturalism and cultural diversity during the 1990s. Disposition of Korean's monocultural idea oppressed and gave symbolic violence toward the immigrants and other residents in South Korea. Multiculturalism in Korea has adjusted to Korean society according to the change of history textbooks around the year of 2004. Finally, Korean assimilated cultural diversity, heterogeneity, plurality, multiplicity as moving from nationalism to the open ideology. Unexpected problems has come to this issue. Korean culture could exist through its established regional culture in the global cultural ecosystem. If we have a geocultural perspective within this world cultural ecosystem, Korean culture must keep its monoculturalism and its Ideology of the Korean Pure Blood ironically. It is an ironical phenomenon of culture, because Korean culture is itself a regional culture and must keep its cultural identity. In this cultural circumstance, Korean monoculturalism is the global multiculturalism and cultural sameness is the global cultural diversity. It is the parallel antagonism of culture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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