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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한국 선원과 해외 한인 사회 형성 : 스페인 라스팔마스 한인들의 구술사적 접근

          안미정(An, Mi-Jeong) 부산경남사학회 2021 역사와 경계 Vol.119 No.-

          인간의 어로활동은 바다를 토대로 한 생산 활동이며 어획을 목적으로 한 사람들의 이동은 새로운 정주 사회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한국의 원양어업은 국경 밖의 바다에서 생산한 어획물을 다른 국가로 수출함으로써 국가 경제성장에 이바지 해 왔다. 이 논문은 1970년대 이후 스페인 라스팔마스에 어업기지를 두고 어획활동에 종사하였던 한국 선원들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원양’의 어업은 한인들의 새로운 이주 사회를 형성시켰던 동인(動因)이었음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태평양과 인도양, 그리고 대서양으로 이어진 원양으로의 진출은 국가의 지원정책과 거대자본이 없이는 불가능하였고, 한국전쟁 후 분단과 경제적 열악성으로 말미암아 원양 어업은 그 출발에 있어서 정부의 정책과 긴밀성을 가지고 있었다. 스페인의 라스팔마스는 한국의 대표적 원양 어업‘기지’로 대서양 연안에 해외 한인 이주사회가 형성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산업적 ‘기지’가 형성됨에 따라 이주사회가 형성된다는 것은 19세기말부터 이어진 해외 한인 이주사 속에서 볼 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국제적 규범과 제도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정부정책은 이주사회의 쇠퇴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국가의 산업정책이 이주사회를 형성시킨 주요 요인이었으나 또한 이주사회의 지속성에 있어서도 미치는 영향은 컸다. 한국의 근대 산업의 확장과 더불어 형성된 원양의 해외 이주사회는 자국의 산업적 육성책만이 아니라 해양자원에 대한 글로벌 가치를 수용, 실행하는 변화 없이 지속가능한 사회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Human fishing activities are sea-based production activities and the movement of people for fishing creates a new settlement community. Korea"s overseas fisheries have contributed to the nation"s economic growth by exporting fish its produced in waters surrounding the overseas territories. This thesis tries to emphasize that maritime fishing was a major factor in the formation of a new Korean immigrant community through the lives of Korean seafarers who have been engaged in fishing activities with fishing bases in Las Palmas, Spain since the 1970s. After the Korean War, the Korean Peninsula was divided, and the overseas fisheries began with the government"s initiative. Las Palmas was one of Korea"s various fishing bases and created an opportunity for Koreans to migrate to the Atlantic coast. The formation of a immigrant community with the formation of an industrial "base" was a new phenomenon, unlike before, in the history of Korean migration that continued from the late 19th century. The Korean community of Las Palmas was created during the modernization of Korea and contributed to the national economy. However, changes in international norms and institutions have had a direct impact on the decline of Korean community since the late 1990s. And, it also shows that the Korean government"s industrial policy played a major role in the overseas migration community. Korea"s industrial policy was a major factor in forming a migrant community, but it also had a significant impact on sustainability. The case of the Korean immigrant community in Las Palmas shows that there is no sustainable community without protecting marine resources.

        • KCI등재

          한국의 다문화사회론과 정주자로서 화교

          안미정(An, Mi-Jeong),우양호(Woo, Yang-Ho)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2016 해항도시문화교섭학 Vol.0 No.15

          한국의 화교는 단일민족주의 담론 안에서 소외를 겪은 민족집단임이 조명되어 왔다. 이 글에서 필자들은 개인이나 민족집단 외에도 집단 내 여러 공동체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부산에 거주하는 화교의 면담을 통해 화교사회의 면모와 함께 민족과 국민(국적)의 기준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생활세계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정주함의 중요성을 주장하였다. 특히 ‘시민으로서 신분증이 없는 국민’이 된 일부 한국 화교들을 통해 시민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국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적 상황을 드러내었다. 국민과 민족에 의해 상상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생활을 공유해 온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정주성과 그에 따른 시민권의 논의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언어와 민족, 전통, 이념이 다른 민족집단이라 할지라도 한 공간을 공유하는 사회관계를 형성할 때 그들은 지역 공동체의 성원이 된다. 공간적 토대를 기초로 한 새로운 연대와 공동체 형성은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다. 다문화사회로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화교들의 여러 공동체들이 어떻게 존속할 것인가는 민족집단의 정체성 유지 전략의 차원과 더불어 한국의 다문화사회를 시험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Overseas Chinese in Korea(Hwagyeo) are perceived as an ethnic minority, and have been excluded during discussions. In this article, I will focus on the different communities within groups, individuals, and ethnic groups. Based on my personal conversation with a Overseas Chinese from Busan, I examine the importance of cohabitation that focuses on sharing lives as citizens, and not on ethnicity and nationality. In addition, this study focuses on the importance of appearance in Overseas Chinese" society. In particular, some Overseas Chinese in Korea are ‘a nation without proof of citizenship’, which is a paradoxical situation where individuals cannot prove their citizenship and must exist between countries. There is a need to expand the principles of citizenship to include residency for members of a community with shared living world, instead of being a community that is determined by the ethnicity of people. Although an ethnic group differs in its language, traditions, and thoughts, it is part of a local community when it forms social relationships in a common space. The development of new relationships and communities, with a spatial base, can overcome the boundaries between people of different ethnicities and from different nations. Korean society is evolving as a multicultural society. The presence of Overseas Chinese will be a testing ground to tell whether the current strategies are effective for retaining the identities of ethnic groups and maintaining the multicultural society of Korea.

        • KCI등재후보

          오사카 재일(在日)제주인 여성의 이주와 귀향

          안미정 ( Mi Jeong An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2008 탐라문화 Vol.0 No.32

          이 글은 오사카 이쿠노구(生野區)에 사는 재일(在日) 제주출신 여성들의 생애와 생활을 중심으로 하여 초기 이주와 정착, 그리고 귀향에 얽혀 있는 사회문화적 지형을 기술한 것이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참여관찰 및 심층인터뷰를 통해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하였다. 이주한 제주인들이 이쿠노구를 중심으로 밀집한 것을 이 지역의 조선시장과 관련하여 살펴보았다. 조선시장은 이주자들이 초기 정착과정에서 상호 거래를 하며 정주기반을 마련하였던 사회적 네트워크 공간이라 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무자본(無資本)의 상황에서 서로 모여 삶으로써 그들 사이에 형성된 네트워크가 정착의 자본 구실하였다고 본다. 초기 이주자들의 정착을 세 여성의 생애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그 가운데 제주여성의 `물질`은 열악한 상황에서 생계수단이 될 수 있었으며, 현재 재일 제주인 내의 사회적 관계를 잇는 기능을 하였다. 또한 여성들 사이의 계(契) 모임은 회원들의 생활상의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기여하였다. 고령이 된 여성들은 지속적으로 고향인 제주도와 네트워크를 가지려고 하며 그것은 일시적 고향방문이나 산소의 마련, 현금 기부와 같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후원은 친족의 도덕적 의무로서 간주되며, 고향에 부재(不在)함에 따르는 후원으로서 그들이 고향에 대해 일방적 후원자 위치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제적 후원의 의무, 그리고 국적에 따라 정체성의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 등 재일제주인들의 귀향은 단지 고향방문 이상의 복잡한 지형 안에 있음을 보게 된다. 이 연구는 미시적 접근에 의한 거시적 담론의 분석에는 한계가 있으나, 재일제주인 사회 연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제주)여성의 생활경험을 다루고, 일상생활, 고향(사람)에 대한 재일제주인의 시각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연구자는 재일제주인들이 일본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재일한인집단으로서 제주사회의 부속 집단이 아니며 그들의 민족 정체성을 민족=국가라는 도식으로 접근하는 한계를 지적하고자 하였다. This paper describes Jeju women`s social-cultural feature which is involved in from life and living to early emigration, settlement and homecoming. This is based on the materials by participant observation and life historical approaching from 2006 through 2007. This study inspects concentration of Jeju women that centers on Ikunoku(Osaka) in connection with its regional Chosun market. Chosun market is social networking area which emigrants have its roots by trade and the network provided capital. As this report puts emphasis on three women`s life course, especially their Muljil, underwater diving was essential means of living, which connected themselves with social network. In addition, Kye, a mutual loan club contributed financial succeed to its members. The aged women make an effort to be connected with their homeland, Jeju Island, that appeared to be variety of the forms such as temporarily visitation to hometown, making grave for parent and cash contribution. This contribution is regarded as moral obligation of kinship, shows their position of supporters one-sidedly caused by not being in homeland. As a consequence of obligation of financial support and changing of identity which caused by nationality, their homecoming means much more than home visiting. This research deals with Jeju women`s living experience and express their viewpoint which has excepted from a great discourses. The researcher assert that Jeju islander in Japan is not an attached group to Jeju society but the Korean group interacting with Japanese society. And it indicates the limit of the viewpoint which identifies the nation and the nation state.

        • KCI등재후보

          해양의 위험담론과 생활방식의 권리

          안미정(Mi Jeong An) 제주학회 2011 濟州島硏究 Vol.36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글은 해양의 위험담론을 넘어서 어로 사회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하였다. 해양문화에서 어로의 위험성은 어민 사회의 다양한 행위와 동기를 설명하는 준거로서 기능해 왔으나 어민들은 위험을 통제하기 위한 전략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규칙과 권리들을 그들의 어로조직과 문화적 장치들을 통해 실현하고 있다. 제주도의 잠수(潛嫂)들은 시장경제에 조직적으로 대응할 수 없으나 자율적 자원 관리를 통해 지속적 자원의 재생산 및 지속적 어로를 꾀하고 있으며, 토우시(答志)의 어부들은 어로조직을 다양화함으로써 도 시화에 따른 젊은 노동력의 유출을 방지하고 또 다양한 어업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잠수들은 의례를 통하여 그들은 자신을 해신의 자손으로 추상화 하여 어업의 지속적 권리를 상징화 하고, 또 씨앗을 뿌림으로써 풍요에 대한 실천적 행위를 연행한다. 그리고 토우시의 어부들은 네야코(寢室子)라는 관습을 통해 마을 청년들을 돌보는 문화를 창조해 왔다. 이러한 어민사회의 문화는 가족과 친족 제도에 바탕하고 있는 문화적 논리를 보여주고 있다. 문화적 전통이 외부 변화에 의해 기존 방식이 바뀌거나 강제되었을 때 이를 거부하거나 새롭게 변화시켜 가는 것은 주민들의 문화적 권리이다. 다양한 문화적 전통들은 문화적 자산으로서만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생활세계를 창조해 가는 생활방식의 권리로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This article is focused on the maritime society by different aspect from the risk discourse. The risks of fishing is functioned to describe a variety of behaviors and motivation in the maritime society. However the fisherman carry out social rules and the rights by implementing various activities and social organization and social equipments as well as risk control strategies. In the case of Jeju woman divers(Jamsu), although they are not capable to respond to the world market economy systematically, they have been managed the resources and continued sustainable reproduction As an example, Tousizima fishemen in Japan have been generating stable income and maintain young workers by diversification of fishing organizations in urbanization flow. Jeju woman divers symbolize sustainable fishing right through the ritual as a descendant of maritime god, and sowing activities meant for the richness. Tousizima fisherman have been creating culture of young people care through the customs(Neyako). This fishing community culture shows the cultural relationship that is based on family and kinship. When the cultural tradition has been forced by an external change, it is people s right to refuse or adapt the changes. Not only diverse fishing community culture is a traditional property but also it is a right of way of life for a creating their life-world by themselves.

        • KCI등재

          연구보고 : 바다밭(海田)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전통의 정치: 제주도 잠수마을의 나잠(裸潛)과 의례

          안미정 ( Mi Jeong An ) 한국문화인류학회 2006 韓國文化人類學 Vol.39 No.2

          This paper explains social conflict among seashore village jamsus (plain women divers) over the right to use maritime gardens on the sea bottom. The conflict is presented in the sociopolitical context of ritual in Jeju Island, from the viewpoint of the seashore villagers. Their maritime garden is a kind of social space with dual meanings, as a living space reflecting historical experience of the villagers, and as a fishing space legally governed by the nation. The place is a public area, but the villagers conceive of it as "their-own-sea." It is also a living space under the water, invisible from the land. The territory under the sea is a `maritime-garden` where the woman divers hunt and gather seafood. Only coastal resident women have rights to the maritime resources and they composes a Jamsu-hoe (jamsu association). The jamsus recognize the problem of sea pollution as not only a biological danger to the human body but also as a crisis of the house-a sociocultural danger. The Jamsu-hoe is a moral as well as an economic community. The maritime resources must be shared with its members because the maritime-garden is a common property. This principle of distribution is justified by the relationship of ancestors and descendants revealed in the shamanist ritual (Jamsu-Kut). Outsiders` development of the coastal area has caused social conflicts within the jamsu association. The conflict shows that the competing values among its members are more important than external factors. The fission of the Jamsu-hoe into two separate groups is not destruction or disorganization of the group, but a moral and political selection of one set of values over the other. Jamsu-Kut is a collective ritual of the jamsu annually observed. It is a space for the integration of the members since it symbolizes the relationship between an ancestor and his descendants, predicated upon mythological kinship between the sea god and the jamsu. In addition, it is a symbolic political space where the divers strengthen their identity and their rights to maritime resources, asserting themselves against non-divers such as other villagers, fisheries administration, and the nation. The maritime-farming ritual includes prayers for the prosperity of the resources, symbolized by the scattering of seeds in the coastal area. The practical action of seeding demonstrates that the resources of the maritime gardens belong to the women of the jamsu. The idea that their ancestor (dragon grandmother) exists under the water reflects ecological conceptions of environmental resources. Furthermore, it indicates that her descendants are only those jamsus who have a skill of catching resources under the water. The plain diving and the `traditional` ritual are not simple repetitions of the past, but cultural strategies borrowed from authoritative traditions. Traditional authority invested in their unchanged behavior patterns has become a new cultural resource which will enable the jamsu to cope with changes of the society. The jamsu do not depend on their mythical ancestor`s power on the contrary, they live giving their force to the ancestor.

        • KCI등재

          부산 화교의 가족 분산과 국적의 함의

          안미정(An Mi-Jeong) 부산경남사학회 2011 역사와 경계 Vol.78 No.-

          이 글은 한국 부산에 거주하는 화교 여성의 생애사를 통해 20세기 동북아 국가 간 정치적 변동이 개인의 생애에 미친 영향과 그 양상의 문화적 함의를 밝혀 보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대다수의 한국화교들은 지역적으로는 중국 산동성 출신이거나 그 후손들이며, 이들의 국적은 대만(중화민국)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고향, 거주지, 귀속 국가가 서로 다른 복합성은 이들의 역사가 동북아의 20세기 역사와 깊은 관련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 화교이주사에서 나타나듯이 한반도를 오갔던 초기의 화교들은 경제적 활동을 목적으로 한 이동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부산의 화교들은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대규모의 집단적 거주지가 형성되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후 냉전 체체 하에서 한국화교 인구는 계속 감소해왔다. 이글에서 제시한 화교여성의 사례는 한국화교의 인구감소가 어떠한 맥락 속에서 전개되는 것인지 보여준다. 즉 부산에 거주하는 H씨와 R씨의 사례에서 이들의 가족은 부산에 거주하는 모친을 중심으로 대만에 사는 자식들과 하나의 생활세계를 형성해 간다. 가족 간에는 분산 양상이 나타나며 국적도 서로 다르다. 화교가족이 모두 함께 이주하는 것은 아니며, 모친은 현재의 거주지가 가족의 정주지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처럼 화교인구의 감소는 가족의 집단적 이동형태가 아니라 가족의 분산 이동형태라 하겠으며, 이것은 동북아의 식민주의, 전쟁, 냉전체제 등이 낳은 정치변동과 국가 간의 불연속적 관계에 따른 가족집단의 대응이 아닌지 고려된다. 또한 가족 성원끼리 국적에 의한 갈등과 긴장은 여전히 동북아 역사적 긴장이 개인의 삶에도 배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대부분의 출신국과 거주국, 귀속국이 서로 다른 한국화교의 크로스보더성은 동북아의 역사와 정치적 지형을 반영하며, 민족국가에 의해 구분되는 국민이 아니라 ‘현지’의 거주자로서 사회적 위치를 조명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History of the Overseas Chinese(Hwagyo) in Korea has deeply been related to history of North-East Asia and the Cold War in 20th century. This thesis addresses one's life history which was developed in political movement among Korea. China, Japan and Taiwan. Macroscopic social changes among those countries led dramatic changes of the Overseas Chinese population in Korea. This thesis examined microscopic aspects of the changes through the life history of the Overseas Chinese in Busan. Unlike the early stage, political aspect(Korean War) is the most influential factor on formation of group habitation in Busan which was evacuation during the Korean War. Busan was the biggest area for the Overseas Chinese however its population has been decreased since the Korean War. In case of Ms. H. Chinese Civil War and Korean War and Cold War have intervened to her family immigration. Although these political background has made her movement, she hopes to settle down in local society. The Overseas Chinese in Korea are regarded as different nationality or different ethnic group but it does not necessarily means that the Overseas Chinese are 'Chinese (or Taiwanese)'. Ms. R is Korean but has Taiwan nationality and a member of Overseas Chinese community. However social boundaries which divides by nationality has become main factor that foments internal conflicts and tension among families. Likewise, most Overseas Chinese people who happened to have Taiwan nationality through the Korean War have different one's native place, current residence and nationality. This cross-border reflects history and political landscape.

        • KCI등재

          부산 미군 하야리아부대의 공간적 변용과 의미

          안미정(An, Mi-jeong) 역사문화학회 2013 지방사와 지방문화 Vol.16 No.1

          이 논문은 도심 속에 있는 전(前) 미군 하야리아부대의 공간적 변용과 그 의미를 개인의 생애를 통해 살펴본 것이다. 하야리아부대는 부산 대도심 속에 위치하며, 일제시기 경마장을 거쳐 해방 후 줄곧 미군부대였으나 2006년 8월을 기점으로 폐쇄되어 현재 시민공원으로 조성 중에 있다. 시민공원화 되는 이 사업은 ‘100년만의 재회’로 평가되고 있다. 특정의 의미를 기념하는 공간은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집단의 정체와 무관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내면화하고 강화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본 전 미군 하야리아부대 공간적 변천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경마장과 군기지 간의 긴밀한 상호관련성에서 찾을 수 있는데, 즉 경마장 조성 후 군기지가 확대되는 패턴을 볼 수 있었다. 공간의 변화에는 형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의미의 지층들이 내포되어 있다. 이를 본문에 소개한 정씨(전 하야리아부대 목수)와 박씨(카투사)의 부대 생활경험을 통해 밝혀보고자 하였다. 경마장과 미군부대로의 연속적 공간적 변용은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정씨의 경험과 구조적으로 연결되며, 미군 보급품의 수송역할을 맡은 박씨는 도시 속 미군부대가 미국상품의 유통거점이 되는 경제적 측면을 보여준다. 미군기지의 확대과정은 개인소유의 토지가 국가에 의해 공공화 되는 과정이었으며, 그 역으로 토지에서 이탈된 주민들이 군기지 주변으로 귀속되는 생활세계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처럼 다양한 공간적 의미들은 하야리아부대가 도심 속에 위치하여 교통과 사회적 연결망의 중심에 있었으며, 미군부대의 보급품을 다룬 경제적 측면 및 그 물자의 수송이 이뤄진 부산항이라는 주변의 물리적 여건들이 만들어낸 중층성 속에서 나타난 결과이다. 한 공간을 표상화하고 상징화하는 작업은 그 다양한 의미의 지층들을 어떻게 복원 및 살려내는가의 문제를 안고 있다. 시민공원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공간의 ‘재탄생’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것은 또 다른 공간의 변용이기도 하다. 1세기 가까이 식민과 냉전의 영향이 각인된 이 도심 공간이 어떠한 의미의 사회적 관계를 탄생시킬지 주목된다.

        • KCI등재후보

          해방 전후 제주 잠수(해녀)들의 부산 정착의 사회사적 고찰: 지역 간 경계를 넘은 이동과 갈등을 중심으로

          안미정 ( Mi Jeong An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2010 탐라문화 Vol.0 No.37

          식민지시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제주도 마을의 여성들은 무리지어 섬 밖으로 나가 해산물을 채취한 후 목돈을 마련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반복적 이동을 행해왔다. 이 글은 이러한 여성들의 이동을 사회적 변동 속에서 그 이동의 성격을 조명해보고자 하였다. 이동이 식민지 시대에 집단적 양상을 띠며 촉발되었다는 점과 특히 잠수들의 이동에 있어서 부산이 거점이 되고 있었던 점, 그리고 해방 후 현지에서 일어난 분쟁에 초점을 두어 살펴보았다. 잠수들의 이동은 식민지 시대에 촉발되고 가속화된 것으로 이는 식민지 수산물 상품경제 하에서 이루어진 체계적 이동이었다. 개항 이후 부산을 거점으로 형성되어 온 객주들은 해산물이 수요를 가진 일본 해조상인들의 자금을 대부받고 제주도의 잠수들을 모집하여 여러 어장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일본의 군수산업 및 산업발전에 따른 해초의 수요가 유통상인 집단으로서 객주를 매개로 하여 채취자 잠수들의 이동을 촉진시켰던 것이다. 즉 해산물을 둘러싼 제 관계에 있어서 잠수들은 채취자(생산자)로서 가장 하부단위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차별적 분배의 구조적 고리 안에 놓여 있었다. 활발하였던 잠수들의 타지 이동은 수산 상품(자원)을 쫓아 자원획득을 도모하였던 식민지 수산경제체제 하에서 이루어진 `자유입어` 활동이었다. 즉 지역주민의 자원권보다 자원의 상품적 필요성이 타지 이동의 자유를 암묵적으로 용인한 식민지수산경제 속에서 전개된 것이다. 해방 후, 정주(定住)를 기본으로 한 수산업법의 제도화 과정에서 식민지시기의 관행은 지역 간 갈등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를 연구자는 식민지 시기 이동채취의 자유와 해방 후 정주자의 채취권 간의 갈등임을 지적하고, 지역 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원을 채취할 수 있었던 이동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자원획득의 목적을 둔 식민지 상품경제 하에서 용인되었던 자유임을 지적하였다. Women of Jeju island had moved periodically getting off island in groups to scrap together some money by collecting seafood and coming back to home from the colonial era to 1970`s. This article aims to illuminate the characteristic of these women`s movements in context of the social changes. To this purpose, it points to the facts that the movements had been provoked in the form of collective behavior since the colonial era and Jamsu(women-divers) made Busan as a foothold in the course of the movements, and the conflicts occurred in Busan after 1945. Jamsu` movements were organized ones under the colonial commodity monetary economy of seafood which had been set off and accelerated in the colonial era. Gaeck-ju(mediate merchant) who flourished in Busan after the opening of port would recruit Jamsu of Jeju island and send to other fishing grounds borrowing the money of Japanese seafood traders. In other words, The growing demands of seafood owing to the development of Japanese military and other industries provoked the movements of Jamsu who collected seafood under the sea through the intermediary of Gaeck-ju, the circulation merchant group. Therefore, Jamsu as the collectors of seafood located in the lowest place at the relationship formed around the seafood and linked systemically to the network of the discriminative distribution. Jamsu` active movements to other places were the fishing activities carrying out without licenses of authorities under the colonial marine economy system which sought to gain the commercial fishery resources. Consequently, they had developed in the colonial marine economy that tolerated the movements to other places for the necessity of commercial resources, not for the resource rights of local people. After 1945, this colonial practice caused many conflicts between the locals in the course of enactment of laws relating to fishing industry on the base of settlement conception. These conflicts illustrated the contradiction between the unconditional movement and collection in the colonial era and the collection right of the settlers after 1945. After all, the unconditional movements being enable to collect resources across the local borders in the colonial era were to be tolerated under the colonial commodity economy which sought to gain easily the commercial resources.

        • KCI등재

          문화의 세계화와 민족주의 담론: 제주해녀(잠녀)문화의 유네스코 등재 사례를 중심으로

          안미정(An, Mi-Jeong) 부산경남사학회 2020 역사와 경계 Vol.117 No.-

          1990년대 중반 한국 사회의 세계화 담론은 한국 문화의 세계화라는 화두를 제기하였다. 한국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규명과 더불어 과거의 역사적 경험이 재해석되면서 세계화 담론은 민족문화의 위기 담론과 함께 형성되어 왔다. 2016년 제주해녀문화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는 한국 사회에서 문화의 세계화가 어떻게 수용, 전개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제주해녀문화의 등재 과정에서 문화의 세계화 담론은 변화를 겪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제주해녀문화는 한일 양국에만 있다는 고유함과 사라질 수 있다는 문화 위기론으로 말미암아 양국이 공동 등재가 제기되었고 일본의 아마(해녀)들과의 국제교류도 이뤄졌다. 그러나 2010년을 전후하여 실질적인 등재 절차가 이뤄지면서 국가 간 경쟁구도의 양상으로 바뀌었다. 2013년 제주에서는 단독 등재 추진이 공식화 되고 국제교류는 중단되었으며, 문화유산의 선점적 경쟁 논리가 대두되고 민족주의 담론이 확산되었다. 등재과정에서 해녀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모색된 공동등재 방안은 민족문화를 보호하기 위한 한국의 단독등재로 전환되었고, 지역 전통문화가 민족문화로 담론이 바뀌어 갔다. 이것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한 ․ 일간의 역사문제가 양국의 갈등문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화의 국가적, 지역적 수용 양상은 유네스코의 문화 보호 정책이 지향하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함에 있어 해당 당사국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관계와 인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또한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의 문화의 세계화가 민족 문화의 위기담론으로 형성되었던 것처럼 제주해녀문화도 민족문화의 위기담론과 쉽게 결합되었다. 자칫 민족주의 담론은 자문화중심주의로 인해 그 문화의 세계성을 축소, 왜곡 시킬 수 있다는 것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양국 해녀들이 주도하는 국제적 교류가 전개되고 있지 못함은 아쉬운 일이다. 이 문화를 둘러싼 담론들은 생업종사자인 여성들이 국민국가 담론을 넘어 평화적 문화 연대로 나아갈 때 이들에 의한 새로운 담론이 등장하리라 본다. In the mid-1990s, the globalization discourse of Korea society raised the topic of globalization of Korean culture. Through the reinterpretation of the identity of Korean culture and the historical experience of the past, the globalization discourse formed a crisis discourse of national culture. The inspiration of Jeju women-divers (jamnyeo, or haenyeo)’s culture as a UNESCO’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ICH) is an example of the globalization of culture in Korea society. The discourse of the uniqueness that women’s diving culture can only be seen in Korea and Japan and this culture can disappear have been formed in Korean society since the 1990s. In the 2000s, Korea and Japan began to discuss UNESCO’s ICH inspiration and international event for women divers. However, as the inspiration process was carried out around 2010, it changed to a competition between Korea and Japan. In 2013, the Jeju provincial government officially announced the inspiration of Jeju haenyeo’s culture and the nationalism discourse expanded. In the process of inspiration the jointly inspiration, which was considered to protect women-diver’s culture, was converted to the inspiration of Korea national culture, also the discourse of the local traditional culture was changed to the national culture. This change was influenced by the history of Japanese colonial rule. Therefore, the historical relationship and recognition of countries are important when the state and local society accept the UNESCO’s cultural policies. In addition, Jeju haenyeo’s culture was easily combined with the crisis discourse of national culture, like this the 1990s globalization discourse of Korean culture has been formed as a crisis discourse of national culture. It should be noted that nationalism discourse can reduce or distort the globality of the culture due to ethnocentrism. Unfortunately, there has been no international exchange led by Japanese and Korean haenyeo yet. Beyond national discourse, the discourse surrounding this culture is expected to lead to new discourse by women-divers’s cultural solidarity.

        • KCI등재

          식민지시대 한ㆍ일해역의 자원과 해녀의 이동

          안미정(An, Mi-Jeong)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6 한국민족문화 Vol.58 No.-

          This study considers the social character and the social meaning of women divers in Korea and Japan who worked in the sea of Korea and of Japan through their migrational seafood gathering. Through their labor and their movement, this study focuses on the biological aspects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Korea instead of the traditional economical and individual evaluations. The Women diver’s movement has been considered mainly in terms of regional economic development and local history. This movement started under Japanese rule in Korea. Unlike, the traditional trade among the regimes in Korea and Japan that revolved around tribute to China, this period shows significant changes in resources and human movement. It is the sea of Korea and Japan that indicates specific examples. The point of this article is that Japanese demands for seafood caused the movement of the women divers in Korea and Japan. They gathered seafood for industrial and military supplies. Whereas it is profitable for the women divers, it is followed by extension and destruction of fishing ground. For example, In the colonial period (1910~1945) 1) the reproductive mechanism from maritime ecological perspective was not considered. 2) Socially, industrial value –specifically as military supplies took priority over day to day value. 3) Although Korean and Japanese women divers had opportunity of cash earnings, Jeju diver’s labour has been underestimated. 4) While Japanese diving boats intensively collected abalones, Korean and Japanese women divers were only able to work on gathering seaweed. 5) These diving boat skills used for collecting abalones indicate that Japanese adopted western techniques and its high yield throughout the Pacific coast. 6) Furthermore, productivity of the diving boats did not contribute to the local resident’s income. To be specific, the movement of Jeju divers reached the Korean peninsula, Japan, China and the Russian coast. A Network based on seafood collecting in the sea of Korea and Japan among male guides, local landlords enabled the movement. Thus, the movement of women divers was a special phenomenon that occurred during the expansion of Japanese imperialism based on marine resources. The movement of women divers expanded according to the expansion of Japanese imperialism, their seafood was taken as a raw material for Japanese industry. The majority of divers who moved between the Sea of Japan and Korea were the women divers of Jeju Island(Jam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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