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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29.5 GHz 6비트 스위치 필터형 위상천이기
송재혁,임정택,이재은,손정택,김준형,백민석,이은규,최선규,김철영 한국전자파학회 2023 한국전자파학회논문지 Vol.34 No.3
본 논문은 150-nm GaN HEMT 공정으로 설계 및 제작된 6비트의 위상천이기에 관한 내용이다. 5G NR 표준 중n257(26.5∼29.5 GHz) 대역에서 동작하는 스위치 필터형 위상천이기를 설계하였다. 설계된 위상 천이기는 360°의 위상을5.625°씩 변화시키기 위해 180°부터 5.625°까지의 6개 단일 위상천이기를 사용하였으며, 지연 경로를 구성하는 필터의구성 소자 크기를 줄이기 위해 LCL의 저역 통과 T형 필터를 사용하였다. 180° 위상천이기는 저역과 고역 통과 T형 필터를 혼합하였다. 제작된 위상천이기는 26.5∼29.5 GHz에서 평균 삽입손실은 8.45 dB이며, RMS 위상오류는 4.54° 이하이다. 본 논문의 위상천이기는 낮은 비트당 삽입손실과 적은 RMS 위상오류를 갖는다.
송재혁 한국고전번역학회 2020 고전번역연구 Vol.11 No.-
In 1397 Jeong Do-jeon(鄭道傳, 1342-1398) wrote Kyŏngjemun'gambyŏl chip (經濟文鑑別集, KMB), a summary of past kings' political achievement from the ancient kingdom of Tang(唐), Wu(虞) to Yuan(元) and Koryŏ (高麗). Shiqishigujintongyao (十七史纂古今通要, SSGT) by Hu Yijia(胡一桂), a Chinese neo-Confucian scholar, is the primary textual source of Jeong's work. This paper aims to provide detailed description of Jeong's reference to SSGT. While the existing version of SSGT only deals with the history of seventeen dynasties from ancient Tang to Five Dynasties and Ten Kingdoms period, it is likely that Jeong has access to Gujingtongrao (古今通要) which includes historical records of Song dyansty. In Jun Dao chapter, Jeong quotes sentences not only from Gujintongrao but from Lidaitonglue (歷代通略) wrote by Jin Li (陳櫟) mainly because the Song part in Gujintongrao is simple and brief. Against this context, we can assume that Jeong might be under the academic influence of those who were later named the XinAn (新安) school. 鄭道傳은 1397년(태조 6) 군주론을 다룬 『經濟文鑑別集』을 편찬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胡一桂의 『十七史纂古今通要(史纂通要)』를 가장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였다. 이 글은 정도전의 자료 인용 방식을 검토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본문은 그가 『경제문감별집』에서 『십칠사찬고금통요』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하였는지 분석하였고, 부차적인 다른 인용자료들의 활용 양상도 함께 다루었다. 사고전서에 실린 『십칠사찬고금통요』는 당우시대부터 오대시대까지 17사에 대한 부분만을 싣고 있다. 그러나 정도전 당시에는 여기에 송나라 시기에 대한 기록이 추가된 『古今通要』라는 판본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경제문감별집』 군도 편의 송나라 부분까지를 주로 이 책을 활용하여 기술하였다. 다만 송나라 부분에 대한 호일계의 기록이 소략했기 때문에, 정도전은 陳櫟의 『歷代通略』을 추가로 활용하였다. 이러한 분석의 결과는 정도전이 후대에 ‘新安學派’로 불리는 일단의 학자들이 元 대에 이뤄낸 학문적 성과를 수용한 사실을 보여준다.
헌장(憲章)의 수호자: 세종시대 황희(黃喜)의 정치적 역할
송재혁 한국정치사상학회 2019 정치사상연구 Vol.25 No.2
Hwang Hee(黃喜, 1363-1452) served King Sejong(世宗, 1397-1450), the 4th king of Joseon Dynasty as a top ranked official for nearly two decades until his retirement at the age of eighty-seven. He, on the other hand, was implicated in quite a few charges, including corruption and bribery. In addition, Hwang Hee was already in his 60s when Sejong came to throne. In this light, it is more likely that Hwang Hee is far from a favorable candidate for Sejong. Then, why did Sejong appoint Hwang Hee? This paper argues that Hwang Hee as the “Guardian of the Principles (憲章)” is irreplacable. From Sejong’s perspective, the Principles (憲章) refers to political legacy of his forefathers, namely Taejo and Taejong. Fully understanding the meaning and practices of the Principles, Hwang Hee was assigned to preserve the tradition and to prevent ill-considered reforms. In the 18th year of his reign, Sejong implimented Euijeongbu Seosa System. For the most of the time when the system was working, Hwang Hee served as Yeonguijeong, a prime minister and maintained a critical view toward various political changes. This paper will examine Hwang Hee’s role under the Euijeongbu Seosa System and Sejong’s recognition of Hwang Hee by reviewing three historical cases of Nothern policy, tax reform, and surrogate governing. 황희(黃喜, 1363-1452)는 87세의 나이로 관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최고위 재상으로서 조선의 제4대 국왕 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 1450)을 보좌했다. 그러나 그는 양녕대군에 대한 후원이라는 전력, 고령의 나이, 비리와 부패 등의 약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세종은 황희를 중용했을까. 이 글은 그 이유를 ‘헌장(憲章)의 수호자’라는 관점에서 탐색하고자 한다. ‘헌장(憲章)’이란 세종에게 있어 선대의 국왕인 태조와 태종이 이뤄놓은 정치적 유산이다. 세종은 황희를 “헌장(憲章)에 밝다(『세종실록』 14/04/20).”고 평가했다. 황희의 졸기는 황희의 정치적 기여에 대해 “조종(祖宗)의 예전 제도를 경솔하게 변경할 수 없다(『문종실록』 02/02/08).”는 입장을 견지하고 무분별한 제도 개혁을 막은 점을 제시하고 있다. 세종은 재위 18년(1436) 4월, 육조직계제에서 의정부서사제로 통치체제를 전환했다. 황희는 세종이 의정부서사제를 채택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영의정으로 재직하며, 정책 사안들의 변화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이 글은 의정부서사제 하에서 황희의 역할, 세종의 황희에 대한 인식, 그리고 사례 논증으로서 북방의 경략, 공법의 개혁, 세자의 대리청정 세 가지 정책 사안에서 황희의 구체적인 역할을 순서대로 검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