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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정의이론의 동아시아 수용

            장동진(Dong-Jin Jang) 한국정치사상학회 2006 정치사상연구 Vol.12 No.2

            서양 정의이론의 동아시아 수용은 직접적 방식과 간접적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직접적 방식은 서양의 구체적인 정의이론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방식을 말한다. 간접적 방식은 서양의 제도 및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것들에 내재하는 정의관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직접적 방식은 주로 전문가들에 의존하며, 간접적 이해방식은 전문가, 정치실천가 및 일반인들의 전반적 인식과 이해를 통해 형성된다. 롤즈 정의이론의 한국적 이해는 주로 전문가들에 의존하는 직접적 이해 방식의 유형에 속한다. 롤즈 정의이론의 한국에의 도입은 롤즈의 주요 저서의 번역과 함께 시작된다. 현재 번역된 롤즈의 주요 저서는 『정의론』(A Theory of Justice, 1971, 1999), 『정치적 자유주의』(Political Liberalism, 1993), 『만민법』(Tbe Law of Peoples, 1999)이다. 이러한 번역과 함께 강의 및 학술회의를 통하여 진행된 롤즈 정의이론의 수용은 다음과 같은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우선, 초기 단계로 정확한 이해 노력의 단계가 시작된다. 『정의론』이 처음 번역된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설정해 본다. 이 단계에서는 롤즈 정의이론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에 주력한 시기이다. 두 번째 단계는 적극적 이해와 긍정적 반응의 단계이다. 대체적으로 90년대 전반을 통하여 이러한 과정이 진행된다. 롤즈의 정의이론에 대한 이해과정이 깊어지고 비교적 그 긍정성을 인정하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반성적 평형의 단계이다. 대체로 2000년대 이후로 설정한다. 롤즈 정의관을 한국 또는 동양의 전통적 도덕관 및 정의관에 비추어 비판을 시도하거나, 또는 롤즈 정의이론의 긍정성을 인정하고 롤즈 정의관과 전통적 한국의 정의관을 이론적으로 결합시키고자 하는 노력들이 나타난다. 이러한 과정의 진전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 및 중첩적으로 진행된다. 롤즈 정의이론의 한국적 이해에는 언어, 역사, 문화적 배경, 사유방식의 차이로 이해의 한계, 오차 및 변용이 불가피하게 나타난다. 전체적으로 롤즈 정의이론은 한국인들에게 긍정과 부정의 교착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인에게 부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의 자유주의적 정의관에서 나타나는 개인중심주의적 성격이다. 한편 한국인에게 선호될 수 있는 점은 롤즈 정의이론의 평등주의적 성격이다. 원초적 입장, 기본적 자유의 우선성 등은 그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롤즈 정의이론을 권리중심적인 정의관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차등원칙, 합당성과 공적 이성의 개념은 비교적 한국인들의 일반적 정의감인 평등주의와 어느 정도 부합된다. 한국인의 일상적 정의감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엇갈린 반응에도 불구하고, 롤즈 정의이론의 중심적 발상과 원칙들은 앞으로 한국 민주정치의 기본적 구조를 개선하는데 많은 응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공적 영역에서 제도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렇지만, 공적 설정은 한국의 비공식적 생활의 기반이 되고 있는 문회구조와 끊임없는 긴장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현재 롤즈 정의이론의 한국적 이해는 한국의 전통적 정의관을 서구의 정의관에 비추어보고, 또 서구적 정의관을 한국의 전통적 정의관에 비추어 보는 반성적 평형의 과정에 있다. 동아시아 개별 사회도 이와 유사한 과정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롤즈 정의이론이 동아시아 사회에 줄 수 있는 충격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권, 개인의 자율성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인식의 전파, 정치와 도덕의 구분, 계약론적-구성주의적 정의관, 국내 및 국제사회의 다원주의 등을 들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동아시아 개별 사회가 지니는 도덕관 및 정의관과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할 것인가는 개별 사회의 여건과 문화구조를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It is interesting to note how a certain society understands and incorporates theories or ideas of justice alien to it. It is usually said that western and East-asian societies have developed respectively different cultures, traditions, and even philosophies. An analysis of Korean understanding of Rawls's theory of justice may contribute to understanding what responses western conceptions of justice inspire among peoples of different cultures and philosophical traditions, or how East-asian societies would respond to western conceptions of justice. Generally speaking, I think that there exist two paths for East-asian societies to understand and accomodate western conceptions of justice. The one is a direct path that East-asian societies understand specific theories of justice and implement them to their own society. This path relies heavily upon specialists who are able to understand specific western theories of justice. The other is an indirect path that in the process of employing western institutions and cultures to Eat-asian societies, practitioners and common people including even specialists come to form an understanding of western conceptions of justice. Korean understanding of Rawls's theory of justice belongs to the direct path mainly mediated by specialists. An understanding of Rawls's theory of justice begins with translation of his major books as well as lectures in colleges or universities. At present, the major books that are translated into Korean are A Theory of Justice, Political Liberalism and The Law of Peoples. With lectures, seminars and translations, Korean understanding of Rawls's theory of jusrice have undergone three stages. The first stage shows that mainly specialists make great efforts to understand Rawls's theory of justice as deeply or rightly as possible. This stages ranges from 1970s to the beginning of 1990s. In this period we witness the early version of Korean translation of Rawls's Theory of Justice along with a few articles. The second stage is a period in which specialists come to understand Rawls's theory of justice and its implications to Korean society, thus invoking some positive responses. This stage covers all through 1990s. The third stage begins around 2000, which accompanies a critical evaluation of Rawls's theory of justice in relation with Korean cultures and traditions, or Korean people's senses of justice. I may call this period as the stage of reflective equilibrium. Specialists show attempt to examine Rawls's theory of justice in view of Korean or East-asian traditions of morality or sense of justice while they admit Rawls's positive implications to Korean society. It is understood that their efforts aim to establish a new conception of justice suitable for Korean society by successfully harmonizing western conceptions and Korean (or more broadly East-asian) conceptions of justice. The Korean understanding of Rawls's theory of justice shows inevitable limitations of understanding, some transformation and even some twists due to difference in culture, history, and language. On the whole, Rawls's theory of justice triggers mixed responses, positive and negative, among Korean people. It seems that Korean people would be reluctant to take the individualist or rights-centered aspect in Rawls's liberal conception of justice while they are ready to accept egalitarianism in Rawls. The ideas of original position and the priority of the right over the good, despite their positive implications, seem to lead Korean people to regard Rawls's theory as a rights-centered conception of justice. In contrast, the difference principle and the ideas of the reasonable and public reason seem to be more compatible with Korean people's general sense of egalitarian justice. I attempt to characterize Korean people's egalitarian conception of justice as stemming form reasonable mutual duties required in interdependent human relationships. With all mixed responses, major ideas and princi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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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민주화와 ‘정의' 담론

            문지영(Moon Jiyoung) 한국정치사상학회 2007 정치사상연구 Vol.13 No.2

            이 연구는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늠할 하나의 지표로서 정의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관한 논의의 터를 닦기 위한 시도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문제 영역에서 폭넓게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민주화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한국 정치사가 정의의 이념에 비추어 볼 때 어떻게 평가될수 있는지, 나아가 한국 정치사에서 정의는 어떻게 이해되어왔으며 무엇으로 규정될 수 있는지를 천착한 연구는 극히 드물다. 플라톤 이래 서양에서 ‘정의'가 중요한 정치철학적 주제였고 또한 정치의 최고 목적으로 지정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사에서의 ‘정의'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논의의 빈곤은 주목을 요하는 현상이라 하겠다. 이 연구에서 필자는 민주화 과정에서 제기된 ‘정의'에 대한 인식과 ‘정의'를 위한 문제제기의 다양한 양상을 살펴보고, 그것이 민주주의와 어떤 관련을 맺어왔는지 탐색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을 둔다. 이 연구에 따르면, 지배담론과 저항담론에서 정의는 당연한 정세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상이하게 규정되며, 역대 헌법의 정의 규정은 ‘균등'에 대한 전통적 가치와 함께 지배담론 대 저항담론의 역관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과정에서는 정의'가 대체로 ‘민주주의의 회복'과 동일시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한국의 현실은 민주주의와 정의의 개념적, 실천적 차이 혹은 구별을 목격하게 하고 있으며, 정의와 불의의 전선 역시 좀 더 복잡하게 형성되고 있다. 이로써 필지는 이 연구를 통해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끌 한국적 정의론의 필요성을 제시하고자 했다. This study tries to understand Korean democratization process in connection with the idea of justice. Up to now the studies of democratization and of the development of democracy thereafter have been widely performed in various areas. But we can hardly find the studies exploring the questions how Korean political history as a developmental process of democratization can be estimated in terms of the idea of justice, and how justice has been, and can be, understood in Korea. The poverty of academic discussions on justice in Korean society is very interesting and significant in comparison with the West in which since Plato justice has been one of the most important topics in political philosophy, being, at the same time, acknowledged as a primary political aim. In this article I consider various aspects of the conception of justice by concentrating upon discourses on justice, and further examine how justice has been related to democracy in Korean democratization process. This study reveals that the definition of justice in the dominant discourse was different from, and conflicting With, that in the resistant discourse, according as political situations. And the conceptions of justice embedded in successive Constitutions respect traditional value of 'equality', while reflecting dynamic relationship between the dominant and resistant discourses. But we can observe that justice has been largely identified with (the recovery of) democracy in the democratization process. In Korean society after democratization, however, justice seems to be conceptually and practically different from democracy, and the border-line between justice and injustice is likely to be drawn in a more complicated way than before. Therefore through this article I suggest that Korean society needs develop its own discourse on justice which can guide the development of Korean democracy.

          • KCI등재

            존 포칵(J.G.A. Pocock)의 정치사상사 연구에 대한 비판적 논의(Ⅰ)

            유종선(Ryu Jong Sun) 한국정치사상학회 2005 정치사상연구 Vol.11 No.2

            본 연구는 정치사상사 기술방식과 연구의 목적에 관한 존 포칵의 주장과, 그의 주장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들을 논구한 것이다. 그는 정치사상시를 연구하고 기술하는데 있어 소위 랑케주의라고 하는 순수 역사주의적 태도와 방법을 지향한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스트라우스(Leo Strauss) 등이 주장하는 바 ‘정치사상사는 곧 정치철학'이라는 입장과 뚜렷이 구별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사상사 연구의 목적에 관해 스트라우스 등이 주장하는 ‘철학주의'를 먼저 논의하고, 이를 전체적 논의의 배경으로 삼고자 했다. 본론에서는 소위 랑케주의적 정치사상사 기술의 의미, 목적, 현재적 합의, 역사와 철학의 대립성 등의 주제들에 대해 포칵과 그의 비판자들의 의견을 비교 검토하였다. 특히 순수한 랑케주의적 정치사상사 연구가 정치사상사라는 학문의 본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사상의 역사적 의미를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배타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두 가지 비판적 질문들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포칵의 반론 및 이의 정당성을 검토하였다. 결론에서는 포칵의 역사철학이 정치사상사 연구 분야에 끼친 공헌과 한계, 그리고 한국에서의 정치사상사 연구에 주는 몇 가지 시사점들을 논의했다. This is a critical review on John Pocock's philosophy of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focusing on his discussion on the purposes of studying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Pocock insists upon a purely histocal - Rankean, as he calls it - attitude and methods of studying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His position sharply contrasts with that of . philosopher historians' like Leo Strauss. There are two critical questions involved: first, what is the point of studying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in terms purely Rankean, considering the dominantly practical aspects of the discipline?; secondly, could it be justified that Pocock defines the meaning of historicity in such a way as to exclude other historiographies as pseudo-historical? Pocock's response to these questions and his own answers will be critically reviewed. Lastly, the contribution of his philosophy to the academic field of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its limitations, and its implications for the Korean historians and philosophers of political thought will be discussed as concluding rema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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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준과 1960~70년대 민주화운동의 정치사상

            문지영 한국정치사상학회 2010 정치사상연구 Vol.16 No.2

            This article purports to analyze a feature of Korean political thought in 1960s~70s with a special focus on Kim Jaejoon and to produce some data for systematizing contemporary Korean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It is largely acknowledged that Christian Church played a crucial role in the process of the Korean democratization, and Kim Jaejoon is a symbolic figure of the Korean Christian democratization movement. He is worthy to be noted because he reveals very well a characteristic of political thinking deployed in modern Korean society which confronted with the task of democratic nation state building. As a theologist he had a strong tendency toward liberalism, and in this respect he kept his distance from contemporary nationalists. On the other hand, as a Christian leader who experienced communist government in North Korea he was a firmed anti-communist, and in this respect he showed a typical example of Korean conservatives. In this article I try to examine how in Kim Jaejoon's political thought liberalism, nationalism, conservatism and radicalism converge and/or diverge, and consequently what peculiarity was formed in his democratic thought. I hope that through this study we can see have a better understanding on contemporary Korean political thought. 이 연구는 김재준을 중심으로 1960~70년대 한국 정치사상의 한 단면을 분석하고, 이를 한국 현대정치사상사의 체계화 작업을 위한 토대 자료로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김재준은 한국 교회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며, 한국의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기독교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은 널리 인정된다. 특히 김재준은 민주주의 형성의 과제를 마주한 한국 사회에서 전개되는 정치적 사유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예컨대 신학자로서 그는 뚜렷한 자유주의적 지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또한 그런 맥락에서 동시대의 민족지상주의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동시에 공산당의 통치를 경험한 이북 출신의 기독교계 인사로서 그는 확고한 반공의식을 지녔으며, 이 점에서는 한국 사회 일반의 보수주의와 친화력을 가졌다. 이 연구에서 필자는 1960~70년대 민주화 운동의 한 중요한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김재준의 정치적 사유에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보수주의, 급진주의가 어떤 형태로 합종연횡을 이루며 특유의 민주주의 사상을 형성해갔는지,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 현대정치사상의 특성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 KCI등재

            ‘제국' 개념과 근대 한국: 개념의 역수입, 활용, 해체, 그리고 포섭과 저항

            이삼성 한국정치사상학회 2011 정치사상연구 Vol.17 No.1

            We have a few ancient documents that show the initial introduction by ancient Koreans of the word “empire” into the conceptual world of East Asia. The concept, however, kept silence in Korea for about nine centuries. The Koreans faced again the concept as a modern translation by the Japanese of the Western terminology in 1876, when they were confronted with a Japanese battleship whose captain proclaimed it belonged to the “Japanese Empire.” We may call it a reimportation of the old concept with some added new meanings. The moment by which the concept emerged as one of the key political words in modern Korea came when the Chosun government decided to take the honorable title of Emperor for the king. The rulers of Korea had to agonize, however, over the question of whether they are, in the new international order, allowed to adopt the title of Empire for their state. The majority appears to have supported the new imperial title, while some dismissed it as a misrepresentation in both priniciple and reality. The late Chosun took the concept of Empire as a conceptual means to represent the new identity of the Korean state as an independent and respectable country, just as the Japanese rulers of the 1850s adopted and relied on the concept of Empire to project the image of independence for their nation struggling with the pressure from the Western imperial powers, in particular. Most discourses in Korea on Empire, both for and against the adoption of the Imperial title, were based on traditional moralistic ideas associated strongly with Confucianism and deeply rooted in the China-centered world view. Since then on, the concept of Empire is mobilized as a conceptual tool of justifying the right of the Korean state to self-determination as well as the absolutist rule by the Emperor, while, in Japan, the same concept experiences semantic expansion, embracing genuine imperialist rise of the nation. The concept of Empire in Korea was driven into the fore by the state power just like it was the case in Japan. With the integration of Korea into the orbit of the Japanese imperial control in 1905, however, the concept in Korea faces a crisis of disintegration. The concept, a reimportation from Japan, is now retrieved by Japan, and the conceptual borderline begins to be erased between the phrase of the ‘Japanese Empire' as a particular noun and the word of ‘Empire' as an universal name. It meant the political space of the Korean peninsula, which had once been a part of the Chinese world order, was now being incorporated into a new Japan-centerd regional order. From then on, the Korean discourse on Empire walks two different paths. On the one hand, it is subsumed into the Japanese concept of the “Great Empire,” in which the Korean identity should be suspended only to re-emerge as a part of a greater empire. On the other, some Korean intellectuals invoke the history of empire from the remote past, in their attempt to resist the real empire of the present. 고대의 한국인들이 6세기와 9세기에 ‘제국'의 개념을 동양의 정치적 개념 세계에 처음 끌어들였음을 보이는 기록들이 있다. 이후 9백 년간 한국에서도 제국 개념은 침묵을 지킨다. 한국인들은 1876년 일본 군함과의 조우를 통해서 근대적 번역어로서의 ‘제국' 개념을 마주하게 된다. 제국 개념의 역수입이었다. 근대 한국에서 ‘제국'이 중요한 정치 개념으로 등장하는 계기는 1897년 ‘대한제국' 선포였다. 당시 지배자들은 한국이 과연 ‘제국'을 칭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씨름했다. ‘제국'을 어떻게 개념 정의하느냐가 중요했다. 그러한 개념적 문제는 탈속방 국면의 조선이 처한 ‘비자립적 자주국'으로서의 고뇌였으며, 구체적으로는 ‘건원'과 ‘칭제' 사이의 거리라는 문제로 연결되었다. 칭제를 정당화하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그에 대립하는 논리도 제기되었다. 1850년대 중엽 일본의 막부정권이 외세의 압박에 직면하여 ‘자주독립한 국가 정체성'의 표지로 ‘일본제국'의 개념을 채택한 것처럼, 19세기 말 격심한 외세 압박을 경험한 한국의 국가 역시 ‘자주권'을 명분으로 칭제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했던 것이다. 칭제를 옹호하는 담론도 비판하는 담론도 전통적인 유교적 명분론에 바탕을 두었다. 이 무렵을 기점으로 일본에서의 제국 개념은 광역적 지배국가의 의미로 개념 확장이 전개되지만, 한국에서의 제국 개념은 ‘황제의 나라'로서의 자주권을 주장하고 또한 황제의 전제권을 개념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머물러 있게 된다. 한국에서 ‘제국' 개념은 근대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국가권력의 주도하에 전개되었으나, 1905년 제국-보호령 체제에 한국이 편입되면서, 한국에서의 제국 개념도 해체 위기에 직면한다. 이제 ‘제국'은 점차 ‘일본'을 가리키는 것으로 된다. 한국이 역수입했던 제국 개념은 일본에 회수되고, 한국이라는 정치 공간 안에서도 ‘일본제국'이라는 고유명사와 ‘제국'이라는 보통명사 사이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중국에 속했던 한반도의 정치 공간이 일본 중심의 지역 질서 속에 편입되고 있었음을 뜻했다. 이후 한국의 ‘제국' 담론은 두 가지 흐름으로 분열된다. 한편으로는 일본의 ‘대제국'론에 포섭된 ‘하나의 큰 제국'론이 등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현실의 제국 권력에 저항하는 수단으로서의 역사 속의 ‘제국'을 불러내는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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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정치사상에서의 진보

            김정호(Kim Jung Ho) 한국정치사상학회 2009 정치사상연구 Vol.15 No.2

            이 글은 한국의 전통적 진보사상의 특성을 규명하려는 것이다. 필자는 논문에서 한국정치사상에서의 진보란 ‘정치사회적 차별에 대한 저항'과 ‘평등적 정치사회공동체의 지향'을 내용으로 한 것이었음을 밝혔다. 구체적으로 기존의 정치체제가 차별과 위계를 기반으로 하는 봉건적 특성을 지닌 것이었기에 정치 목표상 그것을 고수하려는 모든 사상적 시도를 ‘보수'라고 본다면 그와 반대되는 ‘반봉건적' 태도를 진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반봉건적'이라고 할 때 그것은 기존의 정치체제적 유형, 즉 군주제의 완전한 타파를 통한 새로운 정치체제의 창출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최소한 19세기 후반 이전까지 한국정치사상에서 새로운 정치체제는 구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지 존재하는 정치구조 내에서 동아시아 전통의 평등적 공동체 구현의 가치를 창출하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정치사상적 노력의 형태로서 존재했을 뿐이다. ‘평등적 공동체 관념의 정치적 현실화가 가능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지향해 왔던 것'이 한국의 진보적 정치사상의 중요한 보편적 특성이었다. 실학사상(實學思想)-동학사상(東學思想)-개화사상(開化思想)으로 이어지는 한국적 진보사상의 흐름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국의 진보적 정치이념은 비록 당시의 정치사회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지만 이후 서구 정치이념과의 만남을 통해 ‘봉건성'의 실질적 탈피를 가능케 하는 내적 요소로 작용했다. 거기에는 묵자와 노장사상과 같은 동아시아 전통의 진보사상, 서구 과학지식을 통한 인식의 확대, 근대 시민권 사상의 수용, 그리고 사상가들의 독창성이 토대가 되었다.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characteristics of the traditional progressive political thought in Korea. The term of 'progressive' in Korean political thought meant 'resistance to the existed socio-political discrimination' and ‘intention to construct an equal socio-political community.' If we think 'conservative' as 'feudal' in the modern period, it is right to say that an antifeudal attitude is progressive. However, the antifeudal attitude in Korean progressive political thought didn't direct to create a new political system through abolishing and replacing the existed monarchy. It was due to the fact that there had been no idea of a new political system till late 19th century in Korean political thought. There existed only thinkers' endeavor to create a equal and communal value and realize it against the exited huge and powerful discriminated system. It was an universal characteristic of the traditional progressive political thought in Korea. The characteristic was well shown from Silhak thought to Gaehwa thought via Donghak thought as Korean progressive thoughts. The Korean progressive thoughts acted as a main inner factor to break down the feudal monarchy after late 19th century although they couldn't have a power to fundamentally change the dominant conservative socio-political system at that time. And that was based on existence of the traditional East Asian progressive political thoughts such as Mohism and Taoism, enlargement of recognition through the Western knowledge, acceptance of the modern civil thoughts, and originality of the Korean progressive political thinkers.

          • KCI등재

            ‘제국' 개념과 근대 한국

            이삼성(Samsung Lee) 한국정치사상학회 2011 정치사상연구 Vol.17 No.1

            고대의 한국인들이 6세기와 9세기에 ‘제국'의 개념을 동양의 정치적 개념 세계에 처음 끌어들였음을 보이는 기록들이 있다. 이후 9백 년간 한국에서도 제국 개념은 침묵을 지킨다. 한국인들은 1876년 일본 군함과의 조우를 통해서 근대적 번역어로서의 ‘제국' 개념을 마주하게 된다. 제국 개념의 역수입이었다. 근대 한국에서 ‘제국'이 중요한 정치 개념으로 등장하는 계기는 1897년 ‘대한제국' 선포였다. 당시 지배자들은 한국이 과연 ‘제국'을 칭할 수 있는 가라는 문제와 씨름했다. ‘제국'을 어떻게 개념 정의하느냐가 중요했다. 그러한 개념적 문제는 탈속방 국면의 조선이 처한 ‘비자립적 자주국'으로서의 고뇌였으며, 구체적으로는 ‘건원'과 ‘칭제' 사이의 거리라는 문제로 연결되었다. 칭제를 정당화하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그에 대립하는 논리도 제기되었다. 1850년대 중엽 일본의 막부정권이 외세의 압박에 직면하여 ‘자주독립한 국가 정체성'의 표지로 ‘일본제국'의 개념을 채택한 것처럼, 19세기 말 격심한 외세 압박을 경험한 한국의 국가 역시 ‘자주권'을 명분으로 칭제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했던 것이다. 칭제를 옹호하는 담론도 비판하는 담론도 전통적인 유교적 명분론에 바탕을 두었다. 이 무렵을 기점으로 일본에서의 제국 개념은 광역적 지배국가의 의미로 개념 확장이 전개되지만, 한국에서의 제국 개념은 ‘황제의 나라'로서의 자주권을 주장하고 또한 황제의 전제권을 개념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머물러 있게 된다. 한국에서 ‘제국' 개념은 근대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국가권력의 주도하에 전개되었으나, 1905년 제국-보호령 체제에 한국이 편입되면서, 한국에서의 제국 개념도 해체 위기에 직면한다. 이제 ‘제국'은 점차 ‘일본'을 가리키는 것으로 된다. 한국이 역수입했던 제국 개념은 일본에 회수되고, 한국이라는 정치 공간 안에서도 ‘일본제국'이라는 고유명사와 ‘제국'이라는 보통명사 사이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중국에 속했던 한반도의 정치 공간이 일본 중심의 지역 질서 속에 편입되고 있었음을 뜻했다. 이후 한국의 ‘제국' 담론은 두 가지 흐름으로 분열된다. 한편으로는 일본의 ‘대제국'론에 포섭된 ‘하나의 큰 제국'론이 등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현실의 제국 권력에 저항하는 수단으로서의 역사 속의 ‘제국'을 불러내는 작업이었다. We have a few ancient documents that show the initial introduction by ancient Koreans of the word “empire” into the conceptual world of East Asia. The concept, however, kept silence in Korea for about nine centuries. The Koreans faced again the concept as a modern translation by the Japanese of the Western terminology in 1876, when they were confronted with a Japanese battleship whose captain proclaimed it belonged to the “Japanese Empire.” We may call it a reimportation of the old concept with some added new meanings. The moment by which the concept emerged as one of the key political words in modern Korea came when the Chosun government decided to take the honorable title of Emperor for the king. The rulers of Korea had to agonize, however, over the question of whether they are, in the new international order, allowed to adopt the title of Empire for their state. The majority appears to have supported the new imperial title, while some dismissed it as a misrepresentation in both priniciple and reality. The late Chosun took the concept of Empire as a conceptual means to represent the new identity of the Korean state as an independent and respectable country, just as the Japanese rulers of the 1850s adopted and relied on the concept of Empire to project the image of independence for their nation struggling with the pressure from the Western imperial powers, in particular. Most discourses in Korea on Empire, both for and against the adoption of the Imperial title, were based on traditional moralistic ideas associated strongly with Confucianism and deeply rooted in the China-centered world view. Since then on, the concept of Empire is mobilized as a conceptual tool of justifying the right of the Korean state to self-determination as well as the absolutist rule by the Emperor, while, in Japan, the same concept experiences semantic expansion, embracing genuine imperialist rise of the nation. The concept of Empire in Korea was driven into the fore by the state power just like it was the case in Japan. With the integration of Korea into the orbit of the Japanese imperial control in 1905, however, the concept in Korea faces a crisis of disintegration. The concept, a reimportation from Japan, is now retrieved by Japan, and the conceptual borderline begins to be erased between the phrase of the ‘Japanese Empire' as a particular noun and the word of ‘Empire' as an universal name. It meant the political space of the Korean peninsula, which had once been a part of the Chinese world order, was now being incorporated into a new Japan-centerd regional order. From then on, the Korean discourse on Empire walks two different paths. On the one hand, it is subsumed into the Japanese concept of the “Great Empire,” in which the Korean identity should be suspended only to re-emerge as a part of a greater empire. On the other, some Korean intellectuals invoke the history of empire from the remote past, in their attempt to resist the real empire of the 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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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준과 1960~70년대 민주화운동의 정치사상

            문지영(Jiyoung Moon) 한국정치사상학회 2010 정치사상연구 Vol.16 No.2

            이 연구는 김재준을 중심으로 1960~70년대 한국 정치사상의 한 단면을 분석하고, 이를 한국 현대정치사상사의 체계화 작업을 위한 토대 자료로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김재준은 한국 교회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며, 한국의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기독교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은 널리 인정된다. 특히 김재준은 민주주의 형성의 과제를 마주한 한국 사회에서 전개되는 정치적 사유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예컨대 신학자로서 그는 뚜렷한 자유주의적 지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또한 그런 맥락에서 동시대의 민족지상주의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동시에 공산당의 통치를 경험한 이북 출신의 기독교계 인사로서 그는 확고한 반공의식을 지녔으며, 이 점에서는 한국 사회 일반의 보수주의와 친화력을 가졌다. 이 연구에서 필자는 1960~70년대 민주화운동의 한 중요한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김재준의 정치적 사유에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보수주의, 급진주의가 어떤 형태로 합종연횡을 이루며 특유의 민주주의 사상을 형성해갔는지,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 현대정치사상의 특성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This article purports to analyze a feature of Korean political thought in 1960s~70s with a special focus on Kim Jaejoon and to produce some data for systematizing contemporary Korean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It is largely acknowledged that Christian Church played a crucial role in the process of the Korean democratization, and Kim Jaejoon is a symbolic figure of the Korean Christian democratization movement. He is worthy to be noted because he reveals very well a characteristic of political thinking deployed in modern Korean society which confronted with the task of democratic nation state building. As a theologist he had a strong tendency toward liberalism, and in this respect he kept his distance from contemporary nationalists. On the other hand, as a Christian leader who experienced communist government in North Korea he was a firmed anti-communist, and in this respect he showed a typical example of Korean conservatives. In this article I try to examine how in Kim Jaejoon's political thought liberalism, nationalism, conservatism and radicalism converge and/or diverge, and consequently what peculiarity was formed in his democratic thought. I hope that through this study we can have a better understanding on contemporary Korean political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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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헌정이념사 연구서설

            양승태 한국정치사상학회 2008 정치사상연구 Vol.14 No.2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wofold. It is first to demonstrate that in order to get at the root of the present constitutional issues in Korea the study of history of the idea of constitutionalism in Korea is needed, and then to provide a basic research orientation for the study. For this purpose a conceptual analysis of the very notion of supreme law is attempted. The results of the analysis are: that the form and contents of supreme law may take infinite variety according to the historical situation and the ideational tradition into which a country finds itself; and that the basic character of modern constitution lies not in such forms as documentation or codification nor in such ideas as human rights or separation of powers but in the reorientation of thinking that a political system as represented by constitution is not something divinely imposed on men but men's creature. Korean constitutional history is briefly surveyed from this perspective. Chung Dojon's 'Administrative Code of Choson(Chosonkyunggukjon)' is thus interpreted as a germ of modern constitutionalism in that there appeared in it an explicit idea of building a new political system on the basis of the neo-confucian ideology. But the germ of the modern constitutionalism dwindled away as Grand Code of Managing the Nation(Kyunggukdaejon) had returned to the traditional idea of the divinity of kingship. Such a state of constitutionalism had continued to exist until the appearance of Constitution of the Korean Empire(Daehangukgukje) wherein emperor sovereignty was first established and modern international law system in place of the traditional Sino-centric order was first proclaimed. The ideational issues residing in the continuity and discontinuity of such Korean constitutional history are objects of the study. The study should also aim at explication of the ideational issues associated with the fact that the constitution makings by many provisional Korean governments during the period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and along with the fact that even the constitution making by the Constituent Assembly was undertaken barely without in-depth examinations of neo-confucian ideology, of the idea of emperor sovereignty, of those modern ideas of liberty, equality, property etc. 이 논문의 목적은 현재 한국 헌정주의의 문제를 그 근원에서 해명하기 해서는 한국 헌정이념의 역사적 기원 및 변화·발전 과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설명과 아울러 그러한 연구의 기본 방향 및 개요를 제시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먼저 헌법의 근본 성격으로 간주되는 기본법의 본질에 대한 해명이 바로 기본법 개념 자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시도된다. 기본법의 형식이나 내용은 각 국가가 처한 역사적 상황이나 정신사적 전통의 성격에 따라 무한한 변용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근대 헌법의 핵심은 조문화나 성문화라는 특정한 형식의 존재 또는 인권이나 권력분립 등 특정한 이념이나 제도의 존재가 아니라 헌법으로 표상되는 국가체제는 신이 아닌 인간의 피조물이라는 사고방식의 전환에 있다는 것, 이 두 가지가 그 해명의 핵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헌정이념사에 대한 개관이 이루어진다. 이에 따라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은 성리학적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국가를 새롭게 건설한다는 관념이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으므로 한국헌정사에서 근대 헌법의 맹아로 해석된다. 그런데 <조선경국전>에 내포된 근대 헌법의 맹아는 <경국대전>에서 다시 전통주의적 왕권이념으로 회귀함에 따라 사라진다. 그러한 헌정사적 상황은 황제주권 형태로 최초의 주권 개념이 도입되고 전통적인 화이질서를 벗어나 근대 국제법 질서로의 편입이 명시된 <대한국 국제>의 선포 이전까지 이어진다. 그와 같은 헌정사적 연속과 단절의 바탕에 있는 이념적 문제는 정치사상사 및 정치철학적 연구 대상이다. 아울러 임시정부 헌법의 제정이나 제헌헌법의 제정이 <경국대전> 체제의 근간인 성리학 이념이나 <대한국 국제>의 황제 주권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작업이나 자유권, 평등권, 소유권 등의 이념들에 대한 깊은 천착 없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등에 내포된 정치사상사 및 정치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해명 또한 한국헌정사 연구가 새롭게 수행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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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똘레랑스, 차이성과 정체성, 민족 정체성, 그리고 21세기 한국의 민족주의

            양승태(Seung-Tae Yang) 한국정치사상학회 2007 정치사상연구 Vol.13 No.1

            이 논문은 한국에서 최근의 똘레랑스 운동 혹은 다문화주의 운동이 제기하는 민족주의의 부정 논리에 대한 정치철학적 비판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이 논문의 본론 부분은 다음의 명제들에 대한 논증을 위해 서술되어 있다. 첫째, 차이성(difference)의 존재 자체는 정체성(identity)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정체성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면서 단순히 모든 차이들의 공존을 주장하는 똘레랑스 이념이란 성립할 수 없다. 둘째, 현재의 똘레랑스 운동은 실제적으로 민족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표방하는 다문화주의 자체가 각 문화의 정체성을 전제로 하고, 민족이란 궁극적으로 집단적 정체성의 개념이므로, 민족은 단순히 환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사회 및 문화적 실체이다. 셋째,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관용은 민족 정체성 유지를 목표로 하는 이념인 민족주의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논증을 기초로 이 논문은 다음을 결론으로 제시한다. 똘레랑스라는 이념으로 옹호 또는 추구되는 개개인의 무절제한 감각적 욕망충족 행위, 외래문화의 무분별한 유입, 외국 노동인력의 무차별적 수입 등은 국가정체성의 유지라는 근본적인 목적을 위해서나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합리적인 국가운영을 위해서 적절히 국가적으로 통제되어야 하며, 그러한 국가 통제의 이념적인 근거로서 한국민족주의의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내용이 적극적으로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This paper is intended to be a politico-philosophical critique of the logic of negation against the idea of nationalism propounded by the recent tolerance or multi-culturalism movements in Korea. For this purpose its main part is devoted to demonstration of the following three theses. 1) Since difference presupposes identity there can be no such an idea of tolerance as Simply maintains the coexistence of all the differences while negating the existence of the identity of each different individual. 2) The present tolerance movements actually denies the existence of national identity. But such a multi-cultural ism as espoused by it presupposes the identity of each different culture and nation is a concept representing the identity of a group of people. Nation is thus not an illusive notion but an authentic politico-social and cultural reality. 3) It thus follows that the genuine idea of tolerance can not be truly practicable in separation from nationalism, i.e. the idea that purports to uphold the identity of a nation. On the basis of the demonstration of these theses this paper suggests the following conclusion. Such things as individual acts of intemperate pursuit of sensual desires, indiscreet influxes of foreign cultures, indiscriminate importation of foreign labour powers, which have been defended in the name of tolerance, should be properly controlled and, if necessary, strictly curtailed by the state policies not only in view of preserving the national identity but for the purpose of rational management of state affairs in long-term perspective as well. And more concrete and more systematic contents must be actively built up for the idea of Korean nationalism to lay down the national foundation of such state polic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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