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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소라이학(徂徠学)의 맥락으로 읽는 도쿠가와 후기 사상사의 논점: 메이지 유학자들의 사상적 토대

        이새봄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2018 일본비평 Vol.- No.19

        Confucian intellectuals in early Meiji Japan spent their younger days in late Tokugawa period. Naturally, their thoughts were established within the context of Tokugawa intellectual history. Therefore, to understand the thoughts of Meiji Confucian intellectuals, one should not overlook the significance of their connection with the discourse of previous period. It is widely known that the popularity of the Soraism had reached its peak and declined in the middle of eighteenth century. Although the Sorai School lost its popularity, its teachings left great influence on Japanese intellectual history. In this paper, I would like to examine the process of history followed by the decline of Soraism and call it the context of ‘Post-Soraism’. I argue that there are three major points in the context of Post-Soraism. Firstly, the methodology of Soraism called the Ancient Rhetoric (kobunji), led to the unfolding of competitive market for letters in the late Tokugawa Japan. Second, Sorai’s emphasis on the actual political system led to the theory as Mito school’s ideas of kokutai. Third, the Kansei Edict can be construed as a result of anti-Soraism movement.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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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천애인설」에 나타난 나카무라 마사나오의 사상적 전환

        이새봄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2017 일본비평 Vol.- No.16

        이 글은 일본의 메이지(明治) 초기를 대표하는 지식인의 한 사람인 나카무라 마사나오(中村正 直, 1832~1891)의 메이지 유신을 전후로 한 문제의식의 전환에 대한 고찰이다. 소위 메이지 일본을 대표하는 계몽사상가로 꼽히는 나카무라에 대해 기존의 연구들이 주목한 부분은 영국 유학(1866~1867) 이후의 그가 전개한 본격적인 서양 이해의 논의들이었다. 그러나 나카무라는 영국 유학 이전에 이미 창평횡(昌平黌)의 최고 유학자로 확고한 사상적 기반 위에서 다양한 글을 남긴 바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전체 사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영국 유학 이전 시기인 창평횡에서의 나카무라의 논의에서부터 출발해 메이지 이후로 연결되는 맥락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글은 나카무라의 글 중 「경천애인설」(敬天愛人說)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경천애인설」은 1868년에 집필된 글로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쓴 글로 추정된다. 이 글에 는그의 유학적 세계관이 서양을 직접 경험하면서 겪은 사상적 변화가 드러나 있다는 의미에서 중요한텍스트다. 그러나 기존 연구들은 이 글을 전면적으로 분석한 적이 없었다. 이 글은 먼저 「경천애인설」 에 나타난 나카무라의 사상이 놓여 있는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 메이지 이전 시기의 그가 어떠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경천애인설」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통해 그특징을 알아봄으로써 이전 시기와의 차이점을 확인하고 그의 사상적 변화를 분명히 밝혔다. 마지막으로 「경천애인설」상의 ‘하늘’[天] 개념을 선행연구들의 관점과 같이 기독교적 신(神)으로 봐야 할 것인지를 고찰함으로써 그의 종교 이해의 논리를 분석했다.

      • KCI등재

        ??현대시?? 동인 시의 서정성 연구

        이새봄 한국현대문학회 2007 한국현대문학연구 Vol.0 No.22

        Study on lyricism in <Modern Korean Poetry> coteries's poems 동양공업전문대학 강사攀攀419 이후 1960년대의 시단은 당시의 글들을 보면, 현실 참여시가 대폭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대시MODERN KOREAN POETRY 동인은 1962년 현대시 1집을 발행하고 1972년 26집을 마지막으로, 11년에 걸쳐 일년에 두 호 정도를 비정기적으로 발행하였다. 본고에서 다루는 현대시 동인은 동인지로서의 자각을 확립하며 새롭게 시작한 6집 이후 참여한 시인들이며, 대상 작품은 현대시 6집부터 26집까지이다.1960년대 전반적인 시 분위기였던 현실 참여적인 시를 발표한 신동문이나 그와 유사한 작품 세계를 지녔던 박봉우 등의 신춘시 동인들, 그리고 이와 정반대의 입장에서 언어의 실험적인 모색을 탐구했던 성찬경, 박희진 등의 시인들이 등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절필을 하거나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지 않게 된 것과 달리, 현대시 동인은 대부분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거나 이어가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에 주목하여 현대시 동인이 꾸준히, 그리고 비교적 성공적으로 작품 활동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지금까지 현대시 동인에 대한 연구는 모더니즘과의 상관성 아래에서 진행되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현대시 동인이 지닌 문학사적 의의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모더니즘 사조 안에서 현대시 동인이 차지하는 1960년대적 의미를 드러내는 성과를 지닌다. 본고는 이러한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모더니즘 사조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인들이 다수인 현대시 동인의 초기 작품들을 살펴봄으로써 그들이 공통적으로 인식했던 당대 시의 문제점과 지향했던 시세계를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대시 동인 역시 당대의 다른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419 이후 문학계 안팎에서 불거진 문학의 현실 참여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김규태나 박의상 등 대부분의 현대시 동인들은 현실 참여를 내세우는 시들이 이념으로 구호화되고 시의 언어가 일종의 수단이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자아의 탐구, 내면의 탐구를 목적으로 한 일반적 의미의 순수시를 지향하였다. 언어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여러 가지 방향으로 표출되는데, 현대시는 후기로 갈수록 한자가 노출되는 빈도가 주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으며, 이와 비례하여 언어의 다듬어진 정도 역시 뒤로 갈수록 더 좋아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언어에 대한 이러한 민감한 자각은 현대시 동인 대부분이 오랜 기간 비교적 성공적으로 시작을 하는 원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언어에 대한 자각과 더불어 현대시 동인이 의도적으로 지향한 것은 리리시즘, 즉 서정성이다. 이 때의 서정성이란 넓은 의미의 서정시가 내포하는 의미가 아니라 본래적 의미에 있어서 리리시즘(서정주의)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가리킨다. 이 때 추구되는 서정성은 필연적으로 문학의 자율성과 연결된다. 현대시 동인이 추구한 서정성 역시 신춘시를 비롯한 사회참여시에 대한 비판의 위치에서 문학의 자율성을 옹호하는 것과 관련된다고 여겨진다.이렇게 언어에 대한 자각과 서정주의로 복귀하고자 하는 경향은 실제 시작품에 있어서는 내면의 집중과 그 형상화로 나타난다. 이것은 세 가지 부류로 나눠볼 수 있는데 견자로서의 의식과 내면의 소환, 내면에서 일어나는 죽음과 부활, ‘능금’과 ‘여자’로 형상화된 야생성의 추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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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로쿠샤(明六社) 지식인의 religion 이해의 맥락-니시 아마네(西周)의 「교문론」 분석-

        이새봄 한국일본사상사학회 2017 일본사상 Vol.0 No.32

        One of the reasons that Japanese intellectuals in the late Tokugawa period paid much attention to Christianity was because they regarded it as the key factor contributing to the wealth and strength of the Western countries. The general understanding of religion held by most of the so-called Western learning intellectuals after the Meiji Revolution was somewhat similar. They believed that it was an essential condition for the realization of Civilization. Nishi Amane’s articles ‘On Religion’ were written in this historical context. This paper aims to elucidate Nishi’s understanding of religion and his thoughts on how Japan should deal with it by analyzing ‘On Religion’. Also, some articles written by other members of the Meirokusha relating to religion would also be examined. 도쿠가와 말기부터 일본의 지식인들은 서구의 기독교에 주목했다. 기독교가 서구 국가들의 부강을 설명하는 요인이라는 점에서였다. 이 연장선상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 본격적으로 기독교를 논의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서양 사회에서의 기독교가 religion이라는 범주 안에서 이해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기독교가 아닌 종교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서양 사회에서 종교란 무엇이며 어떠한 역할과 기능을 담당하는지, 또 그것을 일본에 적용할 경우 어디에 해당하는지 등등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분석을 시도했다. 이들의 관심은 학문적・정치적 논점으로서의 종교에 있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메이로쿠샤 회원들 간에 일어난 흥미로운 논의들 중 하나인 니시 아마네(西周, 1829-1897)의 「교문론(敎門論)」이 있다. 본 논문은 「교문론」에 나타난 니시의 종교 이해 논리와 그에 대한 기대란 무엇이었으며, 이것이 어떻게 다른 메이로쿠샤 회원들의 논의와 연관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메이지 초기의 religion 이해가 가진 특유의 성격을 해명하기 위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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