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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統一新羅時代 災異와 政治·社會 變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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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4055843

      • 저자
      • 발행사항

        대전: 忠南大學校 大學院, 2016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忠南大學校 大學院 , 국사학과 한국사 전공 , 2016. 2

      • 발행연도

        2016

      • 작성언어

        한국어

      • DDC

        951.9 판사항(22)

      • 발행국(도시)

        대전

      • 기타서명

        Natural Disasters and Extraordinary Disasters and Political and Social Changes in the Unified Silla Period

      • 형태사항

        189 p.; 26 cm.

      • 일반주기명

        충남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 김수태
        참고문헌: p. 174-183

      • 소장기관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우편복사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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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정치ㆍ사회적 변동을 재이(災異)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2장에서는 중대(中代)의 재이 정국변동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먼저 이 시기의 재이발생은 그 이전과 달리 거대화되고, 인간에 피해를 끼친 재해가 자주 발생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재이에 대한 인식을 유교적 재이론과 불교적 재이론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중대의 재이론(災異論)은 정치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에 관심을 두었다. 이에 문무왕대(文武王代) 나타난 재이에 대한 인식과 활용이 신문왕대(神文王代)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나타났다고 보았다.
      중대에는 재이에 대한 대응이 대체적으로 보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진급, 사신파견, 관직 설치, 기우제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진급은 기근이 발생한 모든 왕대에서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그 양상은 왕대별로 달랐다. 경덕왕 재위후반기부터는 진급이 병행되지 않은 대응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시기 재이와 관련된 정치적 변화는 모반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중대에서 모반은 12차례 발생하였는데, 이 중 재이발생을 전후하여 모반이 일어난 경우는 8차례나 되었다. 특히 이변발생과 모반과의 연관성이 뚜렷하였다. 중대 재이의 사회적 의미로는 먼저 민의 안정을 위한 사면정책에 주목된다. 이러한 사면에는 경제적 혜택이 포함되었는데, 그 정도는 재해와 이변에 따라 일정한 차이가 있었다. 재해로 인해 사면이 이루어졌을 때에는 이변의 경우에 비해 경제적인 측면이 강조되던 것이다. 한편, 중대에서는 는 민의 안정을 위한 노력으로 정전을 지급하였다.
      3장에서는 하대 전반기의 재이에 대해서 검토하였다. 하대 전반기에도 중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재해로 인한 피해가 컸다. 이 시기에는 중대에 비해 다양한 방법으로 대응을 하였지만, 그 내용은 중대와 큰 차이가 있었다. 재해 피해에 대한 실제적인 대책의 수립에는 미흡한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이는 진급의 대상이나 지역 등에서 중대와 달리 왕경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이러한 까닭에 도적이 발생하였으며, 김헌창의 반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하대 전반기에도 중대와 마찬가지로 모반과 시중의 교체가 재이와 연관된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러나 모반은 실제 재해피해와 연관되어 이루어진 사례가 많았으며, 재이를 빌미로 한 시중의 교체는 이후의 정치적 변화와 연관되기도 하였다는 점에서 중대와는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 변화 양상 역시 재이에 대한 대응과 관련되었다.
      4장에서는 하대 후반기의 재이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시기에는 재이가 자주 발생하진 않았지만, 특정 왕대에 빈도가 높은 특징이 있었다. 여기에서는 먼저 진성여왕대의 왕거인(王巨仁)사건과 농민반란을 중심으로 재이의 성격을 살펴보았다. 진성여왕 2년에 발생한 왕거인 사건은 당시 정국운영과 관련되어 있으며, 지배층의 분열을 보여주는 것이라 파악하였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왕거인 사건을 전후로 한 재이발생에 대한 분석을 통해 왕거인 사건이 재이발생과 관련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한편, 진성여왕 3년의 농민반란은 국가의 지방과의 분열뿐만 아니라 지방과 지방사이의 분열을 보여준다. 또한 농민반란은 그 동안 누적된 재이에 대한 대응의 미비가 주요한 원인이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신라 하대말 새로운 왕계인 박씨왕대의 정국운영과 재이와 관련한 당대인의 신라의 멸망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먼저 효공왕대의 재이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경문왕계기의 정치적 한계가 박씨왕대의 등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효공왕대는 경문왕계기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박씨왕대의 재이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재이가 박씨왕대의 정국운영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었다.『삼국사기』에서는 신라 하대 최초의 박씨왕인 신덕왕대에 거의 매년 재이가 발생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신덕왕대에 재이가 자주 발생한 것은 새로운 왕계의 등장과 국왕의 박씨왕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노력에 대한 정치적 반발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점에서 신덕왕대에는 정치적 갈등이 재위기간 내내 이어졌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경명왕대의 경우 재해발생에 대한 국가의 미온적인 대응이 신라 세력의 본격적인 이탈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신라 중대에서 하대로 접어들면서 재이에 대한 변화가 보인다. 신라 중대에서 재이가 정치적 활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과 달리 하대에는 정치적 변화 뿐 아니라 사회적 변화에도 재이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신라 중대에는 재이가 지배층에 의한 중요하게 인식되고 정치적인 활용이 많았던 것과 달리 하대에는 재이가 지방세력의 호족화와 민의 이탈이 가속화되는 등 사회적 변화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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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정치ㆍ사회적 변동을 재이(災異)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2장에서는 중대(中代)의 재이 정국변동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먼저 이 시기의 재...

      본 연구는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정치ㆍ사회적 변동을 재이(災異)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2장에서는 중대(中代)의 재이 정국변동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먼저 이 시기의 재이발생은 그 이전과 달리 거대화되고, 인간에 피해를 끼친 재해가 자주 발생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재이에 대한 인식을 유교적 재이론과 불교적 재이론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중대의 재이론(災異論)은 정치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에 관심을 두었다. 이에 문무왕대(文武王代) 나타난 재이에 대한 인식과 활용이 신문왕대(神文王代)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나타났다고 보았다.
      중대에는 재이에 대한 대응이 대체적으로 보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진급, 사신파견, 관직 설치, 기우제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진급은 기근이 발생한 모든 왕대에서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그 양상은 왕대별로 달랐다. 경덕왕 재위후반기부터는 진급이 병행되지 않은 대응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시기 재이와 관련된 정치적 변화는 모반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중대에서 모반은 12차례 발생하였는데, 이 중 재이발생을 전후하여 모반이 일어난 경우는 8차례나 되었다. 특히 이변발생과 모반과의 연관성이 뚜렷하였다. 중대 재이의 사회적 의미로는 먼저 민의 안정을 위한 사면정책에 주목된다. 이러한 사면에는 경제적 혜택이 포함되었는데, 그 정도는 재해와 이변에 따라 일정한 차이가 있었다. 재해로 인해 사면이 이루어졌을 때에는 이변의 경우에 비해 경제적인 측면이 강조되던 것이다. 한편, 중대에서는 는 민의 안정을 위한 노력으로 정전을 지급하였다.
      3장에서는 하대 전반기의 재이에 대해서 검토하였다. 하대 전반기에도 중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재해로 인한 피해가 컸다. 이 시기에는 중대에 비해 다양한 방법으로 대응을 하였지만, 그 내용은 중대와 큰 차이가 있었다. 재해 피해에 대한 실제적인 대책의 수립에는 미흡한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이는 진급의 대상이나 지역 등에서 중대와 달리 왕경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이러한 까닭에 도적이 발생하였으며, 김헌창의 반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하대 전반기에도 중대와 마찬가지로 모반과 시중의 교체가 재이와 연관된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러나 모반은 실제 재해피해와 연관되어 이루어진 사례가 많았으며, 재이를 빌미로 한 시중의 교체는 이후의 정치적 변화와 연관되기도 하였다는 점에서 중대와는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 변화 양상 역시 재이에 대한 대응과 관련되었다.
      4장에서는 하대 후반기의 재이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시기에는 재이가 자주 발생하진 않았지만, 특정 왕대에 빈도가 높은 특징이 있었다. 여기에서는 먼저 진성여왕대의 왕거인(王巨仁)사건과 농민반란을 중심으로 재이의 성격을 살펴보았다. 진성여왕 2년에 발생한 왕거인 사건은 당시 정국운영과 관련되어 있으며, 지배층의 분열을 보여주는 것이라 파악하였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왕거인 사건을 전후로 한 재이발생에 대한 분석을 통해 왕거인 사건이 재이발생과 관련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한편, 진성여왕 3년의 농민반란은 국가의 지방과의 분열뿐만 아니라 지방과 지방사이의 분열을 보여준다. 또한 농민반란은 그 동안 누적된 재이에 대한 대응의 미비가 주요한 원인이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신라 하대말 새로운 왕계인 박씨왕대의 정국운영과 재이와 관련한 당대인의 신라의 멸망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먼저 효공왕대의 재이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경문왕계기의 정치적 한계가 박씨왕대의 등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효공왕대는 경문왕계기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박씨왕대의 재이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재이가 박씨왕대의 정국운영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었다.『삼국사기』에서는 신라 하대 최초의 박씨왕인 신덕왕대에 거의 매년 재이가 발생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신덕왕대에 재이가 자주 발생한 것은 새로운 왕계의 등장과 국왕의 박씨왕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노력에 대한 정치적 반발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점에서 신덕왕대에는 정치적 갈등이 재위기간 내내 이어졌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경명왕대의 경우 재해발생에 대한 국가의 미온적인 대응이 신라 세력의 본격적인 이탈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신라 중대에서 하대로 접어들면서 재이에 대한 변화가 보인다. 신라 중대에서 재이가 정치적 활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과 달리 하대에는 정치적 변화 뿐 아니라 사회적 변화에도 재이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신라 중대에는 재이가 지배층에 의한 중요하게 인식되고 정치적인 활용이 많았던 것과 달리 하대에는 재이가 지방세력의 호족화와 민의 이탈이 가속화되는 등 사회적 변화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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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1장 서론 1
      • 1절 연구목적 1
      • 2절 연구사 4
      • 3절 연구내용 9
      • 2장 중대의 재이와 정국변동 12
      • 1장 서론 1
      • 1절 연구목적 1
      • 2절 연구사 4
      • 3절 연구내용 9
      • 2장 중대의 재이와 정국변동 12
      • 1절 재이발생의 추이 12
      • 2절 재이론의 강화와 정부의 재이정책 28
      • 1. 재이론의 강화 28
      • 2. 정부의 재이정책 37
      • 3절 재이의 정치ㆍ사회적 영향과 그 의미 61
      • 1. 정치적 영향과 그 의미 61
      • 2. 사회적 영향 69
      • 3장 하대 전반기의 재이와 정치ㆍ사회적 동요 76
      • 1절 재이발생의 추이 76
      • 2절 중앙정부의 대응과 양상 변화 92
      • 1. 정부의 재이정책 92
      • 2. 대응양상의 변화 106
      • 3절 재이의 정치ㆍ사회적 영향 112
      • 1. 정치적 영향 112
      • 2. 사회적 영향 125
      • 4장 하대 후반기의 재이와 신라의 멸망 132
      • 1절 재이발생과 농민반란 132
      • 2절 신라의 멸망과 재이 146
      • 5장 결론 170
      • 참고문헌 174
      • ABSTRACT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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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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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한국과학사상사, 박성래, 책과함께, 책과함께, , 2012

      5. 「백제의 점복」, 송화섭, 『백제의 제의와 종교』, 충청남대역사문화연구원, , 2007

      6. 「신라의 진휼책」, 김정곤, 진주교육대학교, 『전주교대논문집』 15-1, , 1977

      7. 고대중국의 점성학, 이성규, 한국과학사학회, 『한국과학사학회지』6-1, , 1984

      8. 신라의 오례와 왕권, 채미하, 혜안, 혜안, , 2015

      9. 『신라사상사연구』, 이기백, 일조각, 일조각, , 1986

      10. 『통일신라사연구』, 신형식, 한국학술정보, 한국학술정보, , 2004

      1. 「문무왕」, 김수태, 일조각, 『한국사시민강좌』13, , 1993

      2. 「상대등고」, 이기백, 역사학회, 『역사학보』19,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 1962

      3. 삼국사기연구, 신형식, 일조각, 일조각, , 1981

      4. 한국과학사상사, 박성래, 책과함께, 책과함께, , 2012

      5. 「백제의 점복」, 송화섭, 『백제의 제의와 종교』, 충청남대역사문화연구원, , 2007

      6. 「신라의 진휼책」, 김정곤, 진주교육대학교, 『전주교대논문집』 15-1, , 1977

      7. 고대중국의 점성학, 이성규, 한국과학사학회, 『한국과학사학회지』6-1, , 1984

      8. 신라의 오례와 왕권, 채미하, 혜안, 혜안, , 2015

      9. 『신라사상사연구』, 이기백, 일조각, 일조각, , 1986

      10. 『통일신라사연구』, 신형식, 한국학술정보, 한국학술정보,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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