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신라 혜공왕대 만월부인의 섭정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0050071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글에서는 혜공왕대 만월부인의 섭정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새롭게 다루어보고자 한다.
      경덕왕이 765년 사망하자 혜공왕은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혜공왕은 즉위하자마자 친정을 한 것은 아니었다. 즉위할 때 8살의 나이였기 때문에 모후인 만월부인이 섭정을 하였다. 이때 섭정정치란 섭정이 혼자서 정치를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군신들과 함께 정치를 해나가겠다는 귀족연합정치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에 혜공왕대의 초기는 만월부인으로 상징되는 전제주의세력과 반전제주의 진골귀족세력이 권력을 분점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후 이들은 세로운 권력투쟁을 벌여나가야만 했다.
      만월부인의 섭정에 합의한 두 정치세력의 관계는 곧바로 어그러졌던 것으로 보인다, 만월부인이 섭정을 통하여 그가 보호하고 있는 혜공왕의 권력기반을 새롭게 강화하려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였던 것이다. 경덕왕 19년 이후 세력을 구축한 김옹과 김양상 등 반전제주의 귀족세력은 만월부인과 왕당파의 이러한 활동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섭정인 만월부인이 물러나고, 혜공왕이 친정을 하게 되었다. 그 시기는 대체적으로 혜공왕 7년 성덕대왕신종이 완성된 무렵이었다. 이것은 섭정인 만월부인과 정치적 대립 갈등을 벌이던 정치세력들의 승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혜공왕 친정기 만월부인의 동향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다. 그녀는 반전제주의 정치세력에 의해서 섭정에서 물러난 후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데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김옹 및 김양상 등 반전제주의 진골귀족세력이 더욱 강화된 혜공왕 10년 이후에 만월부인은 다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였다. 두 차례에 걸친 모반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혜공왕의 왕권강화를 추구한 만월부인의 노력은 실패로 그쳤다. 그리고 혜공왕이 시해됨으로써 만월부인의 정치적 노력은 더 이상 계속될 수 없었다. 그만큼 만월부인과 혜공왕은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하는 세력이었던 것이다.
      번역하기

      이 글에서는 혜공왕대 만월부인의 섭정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새롭게 다루어보고자 한다. 경덕왕이 765년 사망하자 혜공왕은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혜공왕은 즉위하자...

      이 글에서는 혜공왕대 만월부인의 섭정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새롭게 다루어보고자 한다.
      경덕왕이 765년 사망하자 혜공왕은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혜공왕은 즉위하자마자 친정을 한 것은 아니었다. 즉위할 때 8살의 나이였기 때문에 모후인 만월부인이 섭정을 하였다. 이때 섭정정치란 섭정이 혼자서 정치를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군신들과 함께 정치를 해나가겠다는 귀족연합정치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에 혜공왕대의 초기는 만월부인으로 상징되는 전제주의세력과 반전제주의 진골귀족세력이 권력을 분점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후 이들은 세로운 권력투쟁을 벌여나가야만 했다.
      만월부인의 섭정에 합의한 두 정치세력의 관계는 곧바로 어그러졌던 것으로 보인다, 만월부인이 섭정을 통하여 그가 보호하고 있는 혜공왕의 권력기반을 새롭게 강화하려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였던 것이다. 경덕왕 19년 이후 세력을 구축한 김옹과 김양상 등 반전제주의 귀족세력은 만월부인과 왕당파의 이러한 활동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섭정인 만월부인이 물러나고, 혜공왕이 친정을 하게 되었다. 그 시기는 대체적으로 혜공왕 7년 성덕대왕신종이 완성된 무렵이었다. 이것은 섭정인 만월부인과 정치적 대립 갈등을 벌이던 정치세력들의 승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혜공왕 친정기 만월부인의 동향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다. 그녀는 반전제주의 정치세력에 의해서 섭정에서 물러난 후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데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김옹 및 김양상 등 반전제주의 진골귀족세력이 더욱 강화된 혜공왕 10년 이후에 만월부인은 다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였다. 두 차례에 걸친 모반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혜공왕의 왕권강화를 추구한 만월부인의 노력은 실패로 그쳤다. 그리고 혜공왕이 시해됨으로써 만월부인의 정치적 노력은 더 이상 계속될 수 없었다. 그만큼 만월부인과 혜공왕은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하는 세력이었던 것이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이기백, "황룡사와 그 창건, In 신라사상사연구" 일조각 1986

      2 박해현, "혜공왕대 귀족세력과 중대왕권" 11 : 1997

      3 김수태, "통일신라기 전제왕권의 붕괴와 김옹" 99 : 1983

      4 곽승훈, "중대 말기 전제왕권의 동요와 불사활동, In 통일신라시대의 정치변동과 불교" 국학자료원 2002

      5 김인숙, "중국 전통시대 여주의 역사 -그 이미지와 실체-, In 동아시아의 지역과 인간" 2005

      6 박해현, "신라중대정치사연구" 국학자료원 2003

      7 이기백,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8 이기백, "신라 혜공왕대의 정치적 변혁" 2 : 1958

      9 이영호, "신라 혜공왕대 정변의 새로운 해석" 13 : 1990

      10 채미하, "신라 혜공왕대 오묘제의 개정, 오묘제왕 왕권, In 신라 국가제사와 왕권" 혜안 2008

      1 이기백, "황룡사와 그 창건, In 신라사상사연구" 일조각 1986

      2 박해현, "혜공왕대 귀족세력과 중대왕권" 11 : 1997

      3 김수태, "통일신라기 전제왕권의 붕괴와 김옹" 99 : 1983

      4 곽승훈, "중대 말기 전제왕권의 동요와 불사활동, In 통일신라시대의 정치변동과 불교" 국학자료원 2002

      5 김인숙, "중국 전통시대 여주의 역사 -그 이미지와 실체-, In 동아시아의 지역과 인간" 2005

      6 박해현, "신라중대정치사연구" 국학자료원 2003

      7 이기백,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8 이기백, "신라 혜공왕대의 정치적 변혁" 2 : 1958

      9 이영호, "신라 혜공왕대 정변의 새로운 해석" 13 : 1990

      10 채미하, "신라 혜공왕대 오묘제의 개정, 오묘제왕 왕권, In 신라 국가제사와 왕권" 혜안 2008

      11 이문기, "신라 혜공왕대 오묘제 개혁의 정치적 의미" 52 : 1999

      12 이영호, "신라 혜공왕 12년 관호복고의 의미" 39 : 1991

      13 신정훈, "신라 헤공왕대 정치적 추이와 천재지변의 성격" 11 : 2001

      14 이영호, "신라 중대의 정치와 권력구조" 경북대 1995

      15 전덕재, "신라 중대, In 한국 고대사연구의 새 동향" 2007

      16 전덕재, "신라 중대 대일외교의 추이와 진골귀족의 동향" 37 : 1997

      17 이지관, "신라 성덕대왕신종명, In 성덕대왕신종"

      18 김수태, "신라 선덕왕・원성왕의 왕위계승" 6 : 1985

      19 이호영, "신라 삼국통합과 여・제 패망원인연구" 서경문화사 1997

      20 채미하, "신라 국왕의 視學과 그 의미" 한국사상사학회 (32) : 121-158, 2009

      21 윤진석, "신라 至都盧葛文王의 ‘攝政’" 한국고대사학회 (55) : 71-107, 2009

      22 이호영, "성덕대왕신종명의 해석에 관한 몇 가지 문제" 125 : 1975

      23 이기동, "성덕대왕신종 조성의 역사적 배경, In 성덕대왕신종" 1999

      24 신정훈, "경덕왕대 왕권강화책의 성격, In 8세기 신라의 정치와 왕권" 한국학술정보 2010

      25 李泳鎬, "新羅의 王權과 貴族社會-중대 국왕의 혼인 문제를 중심으로" 신라문화연구소 (22) : 20-65, 2003

      26 김선민, "唐初 君主의 老子崇拜와 『老子』의 政治的 運用" 국학연구원 (115) : 161-214, 2002

      27 임혜련, "19세기 수렴청정연구" 숙명여대 2008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 0.5 0.4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1 0.58 0.981 0.08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