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 좁혀본 항목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 작성언어
          • 저자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특집] 유엔 북한인권결의와 국제사회의 노력

          김수암 북한연구소 2017 北韓 Vol.- No.542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결의 채택의 의의 2016년 11월 15일 유엔 총회 3위원회, 2016년 12월 19일 유엔 총회 본회의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투표 없이(without a vote) 컨센서스로 통과되었다. 2005년 최초로 북한인권결의가 채택된 이후 유엔 총회에서 12년째 연속으로 채택되고 있다. 그렇다면 유엔 총회는 2005년부터 어떠한 배경에서 결의라는 형태로 북한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는가? 주지하듯이 유엔 인권위원회(후신 인권이사회)는 2003년부터 북한인권결의를 채택하여 왔다. 그런데 유엔 인권위원회 북한인권결의에 대해 북한당국이 정치적 음모로 규정하고 비협조적 자세로 일관하면서 유엔에서는 보다 강력한 대응조치를 강구하게 되었다. 2005년 3월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에는 북한당국이 북한인권 특별보고관과 협력하지 않고 북한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전향적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면 총회를 포함한 다른 유엔기구가 북한인권문제를 다루도록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는 북한인권결의가 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의 존재를 부인하는 등 북한당국이 비협조적 자세를 견지하자 2005년 유엔 총회 차원에서 최초로 북한인권결의를 채택하게 되었다

        • KCI등재

          일반논문 : 북한 외래관광 조직의 구조와 특성에 관한 연구 경제구조 변화의 반영을 중심으로

          김한규 ( Han Gyu Kim )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2015 북한학연구 Vol.11 No.2

          본 연구는 북한 외래관광의 흐름과 전체 틀을 담당조직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조직구조 운영의 특성을 북한 경제구조와의 비교를 통해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북한 외래관광 실무담당조직은 상부 컨트롤타워인 국가관광총국과 하부조직인 여행사로 대별된다. 1986년 탄생한 총국 조직은 90년대 초 실질적으로 노동당 38호실 관할로 바뀌게 된다. 이 총국 조직은 액상지표(관광수입)는 당 38호실의 통제를 받고 물적지표(관광객수)는 외무성과 보위부의 통제를 받는 이중통제구조 하에 놓여 있다. 외래관광 여행사 조직은 조선국제여행사와 청소년여행사, 체육여행사 등 3대여행사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데 각각 별도의 상부기관 통제를 받는다. 3대 여행사들은 경쟁관계에 놓여 있는데 가격경쟁까지 하고 있다. 이밖에 관광을 통한 외화수입이 가능해지자 다양한 기관과 지역에서 산하 여행사를 신설하게 되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중앙에서도 신규 여행사가 새로이 등장했다. 한편 북한 경제구조와의 비교를 통해 외래관광 조직구조의 특성을 살펴보면 보편성과 특수성 양 측면이 모두 존재한다. 외래관광은 경제부문의 운영원리와 방식을 반영하고 있지만 구체 내용에서는 일부 차이를 보인다. 특히 액상지표 비중 증대 및 조직간 경쟁양상은 다소 지연되어 나타난 특징이 있다. 이러한 보편성과 특수성을 감안해 본다면 북한 외래관광 조직의 변화는 북한 경제구조와 경제관리 등의 변화를, 나아가 북한 체제변화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부분적인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aims at analyzing the flow and the frame of the North Korean inbound tourism through the focus on responsible organization and also examining its characteristics in comparison with the country's economic structure. The responsible organizations refer DPRK National Tourism Administration(NTA) as the superior office and travel agencies as the subordinate structure. The NTA has been in control under the Workers‘ Party of the North Korea since early 90's. While the Worker's Party administers the tourism revenue, the Ministry of the Foreign Affairs and State Security Department limits the number of tourists. Korea International Travel Company, Korean International Youth Travel Company and Korean International Sports Travel Company are three major organizations in the industry and they are respectively controlled by each superior authority. They compete intensely with each other not only in price, trying to establish their own foreign networking. North Korea's organizational structure of the inbound tourism hasuniversality and uniqueness. Inbound tourism reflects the operational principles of the country's economy. However, it shows difference in the dual control system and late manifestation of the tourism income and fierce competition. In this perspective, change of the North Korea's inbound tourism organization could be used in estimating transition of the country's economic structure and management, furthermore the regime change.

        • KCI등재

          북한의 경제 변화와 북한 핵실험이 북·중경제 관계에 미친 영향

          張慧智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2006 북한학연구 Vol.2 No.2

          2002년 7월1일 북한의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실행한 이후 북한경제에 비교적 큰 변화가 나타났다. 대내적으로는 경제 각 부문에서 경제적 실리를 중시하는 효율적인 원칙을 실시하고, 노동자의 생산성을 제고했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무상원조, 무역 및 투자는 북한경제발전의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 개혁·개방모델의 성공은 북한에게 귀감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북한·한국 3국의 지역협력은 곧 동북아 전력을 진흥시키는데 이익이 되고, 한국의 북·중 경제협력에 대한 우려와 경쟁심을 없애줄 수 있으며 더욱이 북한 경제개방을 촉진하고, 북한의 체제안전에 대한 우려를 약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점진적으로 북한을 동북아 지역 경제 협력으로 유도할 수 있다. 북한 핵실험은 북·중 양국관계를 심각하게 악화시켰다. 중국이 비록 유엔 결의안에 근거하여 북한에 대한 제재를 실시한다고 해도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중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 민간기업의 북한에 대한 무역은 투기와 도박의 성격이 있으므로 단기적으로 민간무역거래가 영향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북한의 무역관계는 변함없이 발전적 방향으로 유지될 것이다. This study intends to examines the North Korea-China's economic relationships after North Korean nuclear issue, and explaining characters and contents through the considerations for the economic reform, that is the adoption of economic reform on July 1, 2002 in North Korea. The relationship of between North Korea and China is being changed from the past ideological blood pledge. Both countries are seeking for the strategy and practical relationship.

        • KCI등재

          특집 : 한반도 통일을 위한 중국의 경제적 역할 -한반도 통일: 중국의 경제 작용-

          박영애 ( Ying Ai Piao )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구 동국대학교 안보연구소) 2010 북한학연구 Vol.6 No.1

          현재, 중국은 북한에 일정한 무상 경제 원조를 제공하고, 중국 기업이 적극적으로 북한에 투자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앞으로 북한 나진항을 빌려 출항하는 협력 활동이 진전됨에 따라, 중국은 나진, 선봉지역의 도로, 항만, 도시 행정 건설 등의 사회 인프라 건설과 서비스업의 투자를 지속적으로 증가시켜, 나진 선봉지역의 경제 발전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무상원조, 무역, 투자 등 다원화 방식을 이용하여 북한에 경제 원조를 제공하였고, 북한 경제가 ``자생`` 능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자신의 역량으로 경제 발전을 추진하는 동력을 제공하였다. 중국은 북한 최대의 자원, 원자재. 그리고 생산 자원 공급국, 최대의 투자 자원국이되어, 북한이 산업 생산을 회복하고, 산업 기술을 제고하며, 취업을 확대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특히, 중국·북한·한국 3국의 협력은 동북지역 진흥 전략을 실시하는데 유리하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한국이 중국과 북한 경제 협력에 대한 걱정과 경쟁 심리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과 북한 경제 개방을 촉진할 수 있는 정책 그리고 북한의 체제 안정에 대한 우려를 감소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Factor mobility and technological change are of critical importance. If factor markets do not integrate, the macroeconomic impact on South Korea of economic integration is relatively small, while the effects on North Korea are large. With factor market integration, there is a significant impact on the South Korean income and wealth distribution. Viewed from China, a united Korea, especially one that played host to U.S. military and naval forces, could cast a long shadow over China`s seaborne commerce, the wellspring of economic vitality for northern China. In recent years it has become abundantly clear that China will play a crucial role in the future of Korea. Despite the intellectual and policy attention accorded China`s role on the peninsula, one factor remains woefully unexplored: the influence of geopolitics on Chinese strategic thought.

        • KCI등재

          일반논문 : 북한 언론과 대외정책 6자회담 보도를 통해서 본 북한 엘리트의 프로파간다 전략

          선상신 ( Sang Shin Sun ), 김성해 ( Sung Hae Kim )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구 동국대학교 안보연구소) 2011 북한학연구 Vol.7 No.1

          북한 권력층의 언론을 통한 프로파간다 전략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있을까? 이 연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2003년 시작되어 2008년 이후 중단되고 있는 북핵관련 6자회담을 분석사례로 선정했다. 프로파간다의 효과를 위해서는 목표공략 층에 따라 차별화된 전략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해 분석 대상으로 ``조선중앙통신``, ``조선신보``와 ``노동신문``을 선택했고, 북한 엘리트가 판단하는 국내 정세와 대외 정세의 변화가 관련보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6자회담과 관련해 모두 235개의 기사를 분석했으며, 담론 전략을 파악하기 위해 정보원 활용, 6자회담의 성공조건, 미국에 대한 묘사, 핵 개발에 대한 인식틀, 회담 전망 등을 분석항목으로 설정했다. 분석결과, 북한의 프로파간다 전략은 수용자는 물론 대외적 자신감 등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용인 노동신문에서는 ``외부적 위협``을 강조함으로써 ``내부적 단결``이 강조되었다.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신보에서는 논리적인 근거를 동원해 북한의 입장을 전달하고, 대화의 가능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였다. 그러나 6자회담 보도에 있어서 대내 상황의 변화는 정보원에서 북한 당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핵 개발 프레임의 다양성 측면에서만 제한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담론 전략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북한의 핵실험 성공과 이에 따른 자신감 회복인 것으로 드러났다. 즉 북한 당국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보다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고, 미국을 중립적으로 묘사하며, 6자회담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등의 변화를 보였다. 이 연구를 계기로 향후 북한의 프로파간다에 대한 대항 담론을 형성하고, 북한 엘리트의 상황과 인식을 유추해 협상 전략에 참고하며, 북한의 프로파간다 전략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There is consistent curiosity about North Korea`s media propaganda. Accordingly, this study attempted to understand possible strategies by analyzing news coverage over the Six-party talks happened from 2003 to 2008. Given the assumption that propaganda strategies would be flexible in accordance with target audience, such media as Chosun Joongang Tongshin, Chosun Sinbo and Rhodong Sinmun have been selected. For this purpose, the total number of 235 news articles have been analyzed in such terms as cue-givers, description of the United States, frame about development of nuclear program and prospect of the Six-party talks. Research results showed solid evidence of North Korean power elite`s capability of adapting not only to environmental changes but targeted audience. The authors hope this study would contribute to inviting additional attention to North Korea`s propaganda as well as to generate alternative discourses in way of winning international hearts and minds.

        • KCI등재

          일반논문 : 북한의 선군경제노선과 7,1조치의 상관관계 분석

          안희창 ( Hee Chang Ahn )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구 동국대학교 안보연구소) 2011 북한학연구 Vol.7 No.2

          2000년대 북한의 경제정책을 조망해보면 한편으로는 계획경제를 고수하려는 흐름이, 다른 한편으로는 계획경제에서 벗어나려는 ``개혁``의 흐름이 병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1998년 9월 17일 기존의 혁명적 경제전략을 폐기하고 중공업 위주의 자립적 민족경제로 돌아선 북한은 2001년 이른바 김정일의 ``10·3지시``를 통해 계획의 분권화·사회주의물자교류시장 개설·가격과 임금의 제정기준 변경 등 ``경제개혁``으로 비쳐지는 일련의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단행하였다. 2002년 7월에는 가격과 생활비를 인상하는 ``7·1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다 9개월 뒤인 2003년 4월 북한이 2002년 9월에 국방공업을 최우선시하는 ``선군경제노선``을 채택한 것이 국내에 알려졌다. 이 같은 북한의 경제정책 변경에 대해 기존 국내 연구는 이들 정책을 개별적으로 분석하는데 그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북한이 ``10·3지시``와 ``7·1조치``를 통해 ``경제개혁``의 움직임의 기미를 보이면 북한이 전면적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취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심지어 중국식 개혁개방을 채택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다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킨다는 ``선군경제노선``이 나오니까 이제는 북한이 보수로 회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본 논문은 이런 단선적인 분석으로는 북한경제정책의 실상을 제대로 포착하기 어렵다는 시각에서 ``7·1조치``와 ``선군경제노선``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두 정책에는 각기 ``개혁적 요인``과 ``보수적 요인``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선군경제건설``이라는 북한의 경제노선을 이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7·1조치``가 구상된 것으로 이 두 가지를 분리해서 분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본문의 요점이다. From the view of the economic policy of North Korea in the 2000`s, it could be seen a coexistence of the effort to maintain the planned economy and to scape from the planned-economy. North Korea, which waived the existing ``revolutionary economic strategy`` on Sept., 17, 1998 and selected ``an independent national economy``, based on heavy industry, took the series of ``economic management improvement measures`` considered as ``economic reform`` such as decentralization of plans, opening of ``socialistic goods exchange markets`` and the change of the establishment criteria of price and wage through the so called ``Order on Oct. 3`` of Kim Jeong il, 2001. In July 2002, North Korea took ``Economic Reform Measures in July 1`` to increase price and wage. In addition, Apr. 2003, after 9 months from that time we found that North Korea selected ``Army-First Economic polcy`` to consider the military industry most important in Sept., 2002. The existing researches regarding the change of North Korea`s economic policy have been limited to analyze those policies independedntly. For example, the researches predicted that North Korea would take a stance of economic reform and opening fully only when North Korea showed a hint of movement of ``economic reform`` through ``Order on Oct. 3`` and ``Economic Reform Measures in July 1``. There were also predictions that North Korea would adopt a Chinese-type economic reform and opening. In the mean time as ``Army-First Economic polcy`` emerged, an analysis for North Korea to go back to the conservative policy was derived. This study is purposed to analyze the relationship between ``Economic Reform Measures in July 1`` and ``Army-First Economic policy`` in respect that it is difficult to properly grasp the realities of the North Korea`s economic policy with a simple analysis method. These two polices have ``reformatory factor`` and ``conservative factor`` respectively. And the key point of this study is that separately analyzing both is irrational since ``Economic Reform Measures in July 1`` were taken as means to perform the North Korea`s economic policy called as ``Army-First Economic polcy``.

        • KCI등재

          연구논문 : 선군시대로의 이행과 후계구도

          이기동 ( Gee Dong Lee )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구 동국대학교 안보연구소) 2005 북한학연구 Vol.1 No.1

          북한의 후계구도(succession composition)에 관한 관심만큼이나 근거 없는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주장들이 論(theory)이 아니라 說(rumor)에 그치는 것은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폐쇄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북한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새 시대``(New era)를 주창하고 있다.``새 시대``란 선군시대(Songun era)를 의미한다. 새 시대를 맞은 북한은 몇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째, 북한은 선군사상 일색화운동(one-color movement of Songun Idea)을 강조하고 있다. 선군사상은 기존의 주체사상(Juche Idea)에 기초하고 있다고 하지만 당의 지도적 지침(leading guideline)으로 인정받는 등 실천적으로는 주체사상을 대체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둘째, 수령제(Suryong system)는 지속하지만 수령론(Suryong theory)은 퇴조하는 경향이다.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Ilsim solidarity)이 혁명의 수뇌부(top-level executives of revolution) 당· 군대· 인민의 선군단결(Songun solidarity)로 형식만 변했을 뿐 수령제의 기본 틀은 유지하고 있으며,``수령``이``령도자``(Ryongdoja) 또는``혁명의 수뇌부``로 대체하는 등 수령 담론에서의 괄목할만한 변화를 낳았다. 셋째, 지방당(local party)과 하급당(low level party)이 중앙당(central party)의 정책과 지침을 말단 세포조직에까지 전달하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후계방식(ssccession pattern)은 세습(heredity)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은 자신이 후르시초프(Khrushchev)와 린뱌오(Linbiao)로부터 각각 배신당한 스탈린(Stalin)과 마오(Mao)의 전철을 우려하고 있으므로 세습을 통한 안심전략(safety strategy)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백두혈통(Baekdu lineagr)과 혁명전통을 절대시 하는 북한에서 제3자에게로의 권력승계는 후계자에 대한 우상화에 큰 차질을 빚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세습을 배제할 경우 마땅한 인물의 부재다. 후계자는 김정일과 최소한 10년 이상의 연령차가 있어야 하며 북한 주민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어야 하는 데 그런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후계구도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충족될 때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치안정과 경제회생을 통해 김정일과 후계자가 권력을 분점할 수 있을 만큼의 체제유지에 대한 자신감이 확보되어야 하고, 후계자가 북한 사회주의체제가 지향하는 목표에 부합하는 업적과 성과를 축적해야 하며, 북한 주민들이 받아드릴 수 있을 정도의 후계체제 정당화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포스트 김정일 후계구도는 조기 가시화보다는 5년 이상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개혁· 개방과 핵 포기라는 체제생존에 영향을 주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김정일 정권에 도전하는 불안 요인들이 여전히 존속하고 있고, 강성대국(a great prosperous powerful nation) 건설 및 조국통일 실현이라는 체제 목표에 부합될 만큼의 조건이 성숙된 상태가 아니며, 후계자가 수령과 영도자의 리더쉽을 전수받거나 정치· 사상적 뿌리를 이어받았다고 단정하고 이를 주민들에게 선전하기에는 후계군의 정치· 사회적 경력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후계구도는 위의 조건들이 성숙되는 시점까지 지연될 것이며 그동안 김정일은 후계군 내부의 건설적 경쟁을 유도하여 후계자의 자질과 능력을 배양하는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김정일은 스스로 후계가도를 개척한 자신의 경험과 달리, 후계자에게 권력을 물려주기 전에 여러 걸림돌들을 제거해 주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후계시대가 원만하게 출범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As the post Kim Jeongil era in North Korea is one of the interesting matter of concerns in international politics, there are a lot of unreasonable arguments and unrealistic opinions on the perspective of the power succession due to the reflection of the closeness of North-Korean Style Socialism. Since Kim Jeongil does not want to repeat the same mistakes which Stalin and Mao made, betrayed by Khrushchev and Linbiao, it is very likely that Kim Jeongil may take safe heredity strategy by succeeding his power to his son. Moreover, when we do not think of the power transmission by heredity in North Korea, it is very difficult to find an appropriate person who is at least 10 years younger than Kim Jeongil, and popular among North Korean considering the social atmosphere heavily focusing on the lineage of Baekdu and revolutionary. Therefore, it may be possible that the power succession in North Korea will happen only when the following conditions will be met. First, Kim Jeongil should have strong confidence on the maintenance of his regime through the recovery of economy and the stability of his political support, enough to sharing his power with successor. Second, the successor of Kim Jeongil should have enough political performance confirming with the ideas and goals of North-Korean Style Socialism such as One-Color Movement of Songun Idea and Songun Solidarity. Finally, there should be social atmosphere and consensus among ordinary North Korean people overwhelmly accepting the power succession. Therefore the power transmission in North Korea may be delayed until the above conditions are fully ripened. Up to that point Kim Jeongil may do his best to upgrade the quality and ability of the group of promising successors by inducing constructive competition among them, to pave the road of smooth and peaceful power succession by getting rid of obstacles, and to make the foundation of good start by his successor.

        • KCI등재

          일반논문 : 남한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의 상호인식 -한국사회정착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중심으로-

          신미녀 ( Mi Nyeo Shin )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구 동국대학교 안보연구소) 2009 북한학연구 Vol.5 No.2

          본 연구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의 한국사회 정착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한 남한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의 인식차를 밝혀냄으로써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과 사회통합에 도움을 주기 위한 1차 자료를 얻고자 했다. 연구수행을 위해 유사한 혹은 같은 주제에 대한 남한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의 상호인식 차이를 설문조사를 통해 살펴보았다. 연구에 따르면 남한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의 인식에서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남한주민은 동포라는 인식이, 북한이탈주민은 남한주민이 여전히 북한사람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이러한 인식차는 정부의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의 이유를 두고 동포이기에 지원한다는 남한주민의 인식과 향후 통일준비의 차원에서 한다는 북한이탈주민의 인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편견이 북한정권에 대한 혐오감 때문이라는 응답이 높게 나온 것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남한주민들 속에서 북한이탈주민과 북한정권을 동일시하는 인식도 엿볼 수 있다. 이밖에도 북한이탈주민들의 한국사회 부적응 원인과 채용을 꺼리는 이유를 비롯해 인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측면이 적지 않다. 남한주민과 북한이탈주민 사이의 상호인식의 차이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이해, 이를 통한 사회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있어 저해를 주는 요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남한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이 함께하는 통일예행 연습을 착실히 해나가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This paper is an attempt in the direction of developing the adaptation programs for the Displaced people from the North Korea. For this purpose, the survey takes a look at the situations and needs of them with the changes of times and analyze the welfare services by stages. After 1997, training for adaptation, institutional protection, local office system, supports from the various organization take a major roles in the support of them. Now social and economic support for them are available only for 3 years and it is insufficient for their adaptation. When the early supports come to an end, their satisfaction degree goes down lower. This fact suggests that our government must take a measure to develop the long-term service system. Actually the percentage of the social welfare beneficiaries among them in South Korea is larger than that of South Korean inhabitants. Though these programs are very helpful for them, it costs our government too much expenditure. In fact, there is no governmental policy for the long-term services for self- supporting of the disposed people.

        • KCI등재

          일반논문 : 탈냉전시기 북한-대만관계의 복합구조 연구

          린치하오 ( Chih Hao Lin ), 유호열 ( Ho Yeol Yoo )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2015 북한학연구 Vol.11 No.2

          본 연구는 1992년부터 시작된 북한과 대만관계의 흐름을 살펴보는 것이다. 1990년 초 탈냉전 시기, 한중관계와 북중관계는 서로의 차이점이 발생하게 된다. 당시 한국과 중국은 경제관계를 주축으로 수교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북한과 중국은 지역전략과 전통적 혈맹관계에 기반을 두어 수교가 이루어지는 상황이었다. 한중수교 이후 북한과 대만은 동시에 외교적 충격을 받았다. 이 동병상련의 상황에서 북한과 대만 사이의 수면 아래 교류는 점차 부상되었다. 당시 중국국민당이 집권한 대만정부에서는 북한과 직접무역을 하기 위해 국민당의 기업(회사)을 통해 북한과 관물자원 등 무역거래를 했다. 그 이후 양측의 왕래무역은 점점 규모가 확장되었다. 1996~1997년 기간에는 대만정부가 북한의 요청을 받아서 2차례의 농업기술지원단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1998년 대만전력공사는 북한정부와 핵폐기물이전합의를 맺었다. 특히 이 핵폐기물이전합의는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국가의 우려 및 불신 등 원인으로 인해, 결국 북한-대만간 의 핵폐기물합의는 제대로 실행될 수 없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통해 동아시아에 있는 남북한 관계 및 양안관계의 교차관계를 구성함으로써 북한-대만 관계의 지위를 분석하려고 한다. This treatise will focus North Korea and Taiwan's relationship and relation process in the post-cold war, And it is not to figured out what different of North Korea and Taiwan's diplomatic strategy but also try to find out Taiwan's Korea peninsula strategy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during 1990s. After 1992, cross-strait relations and North-South Korea relations were changed to another system, China having successful in implementing its “One China Policy” and then Taiwan was tried to establish informal relations with North Korea, After Since the establishment of diplomatic between Korea and China, Taiwan changed its foreign policy to eliminate international isolation Almost at the same time, North Korea were also to tried new relationship with USA, Japan and the other country which without diplomatic relations. we can find that North Korea and Taiwan were in the same boat Until Kim Jung Il visited China in 2000. This treatise's references is according to the formal history data from Taiwan, Korea, North Korea. and also found by Taiwan newspaper “China Times”, North Korea newspaper “Rodong Sinmun” and memoir books wrote by Lin Qiu Shan who was a Taiwan government's negotiator with North Korea government. This treatise will review North Korea and Taiwan's relationships from the Taiwan's view position.

        • KCI등재후보

          북한의 한류 연구 동향과 과제

          임석준 ( Lim Suk Jun ), 강동완 ( Dong Wan Kang ), 김현정 ( Hyun Jung Kim )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구 동국대학교 안보연구소) 2014 북한학연구 Vol.10 No.2

          한류의 북한 유입과 더불어 학계에서도 관련 현상을 둘러싼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들 연구는 북한에서의 한류 유통경로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하여 북한주민의 태도(attitude)에 대한 의식변화 연구, 그리고 "문화적 침투현상이 국정과제인 통일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라는 미래지향적 연구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하지만 ``북한의 한류``에 대한 관심은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 공고한 이론적 틀이 마련되지 않아 후속 연구를 위한 디딤돌 역할을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이것은 연구자들마다 상이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조사 대상인 탈북자들도 성별·연령·거주지·계층별로 각양각색인 것에 일차적인 이유가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의 한류 연구를 정리하여 유형화하거나 이론적 시각을 제시한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북한의 한류 연구는 주제의 참신성과 학문적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연구자 각자가주관적 경험을 일반화하는 결론이 도출되고 있다. 본 연구는 ``북한의 한류`` 연구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끌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하여 기존 연구들을 검토하고, 동향을 파악하여 유형화할 것이다. 즉, 북한의 한류 연구를 연구대상(탈북자 혹은 북한주민)과 이들이 접한 미디어의 성격(대북선전용 미디어 혹은 상업용 미디어)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각 유형의 특성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향후 ``북한의 한류``가 나아갈 수 있는 연구방향을 제시한다. As the Korean wave .the Hallyu.penetrates North Korea, the world`s most reclusive country, academic interest in this phenomenon has followed. Some researchers consider the Hallyu`s impact on citizen attitudes; others predict that the Hallyu will advance unification of the divided peninsula. The rise in academic publications is exciting, but the literature is directionless and unconnected. This paper organizes the literature into a two-by-two table based on the research subjects (North Korean refugees or North Korean residents) and the type of media (commercial media or propaganda media). With this new typology, we propose research directions that suggest promising results.

        맨 위로 스크롤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