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교원선전수첩>에 나타난 북한의 심리학 특징 분석

      김경미 북한대학원대학교 심연북한연구소 2019 현대북한연구 Vol.22 No.1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psychology in North Korean education through analyzing the articles of “Kyowon Sonjon Suchop”. This study reveals North Korea’s psychological goal of “Revolutionary talent of knowledge economy possessing logical thinking ability and ability to work with people” and searched for North Korean psychology. Psychology emerged in 1953, abolished in 1954, and reopened in 2003 in accordance with the North Korean Education Act enactment and amendment. Since 2000, North Korea has emphasized globalization and scientific development and suggested the need for psychological education. As a result, the authorities in North Korea introduced psychology to the entire curriculum, attempted to establish a psychological system of ours, and revealed the will to build a tool for thought verification through psychological evaluation beyond understanding the mind of a person. In addition, we pursued logical thinking and education programs that strengthened the revolutionary worldview. 본 연구는 <교원선전수첩> 기사 분석을 통해 북한교육에 등장한 심리학특징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북한 당국의 심리학 목표인 “논리적사고력과 사람과의 사업 능력을 소유한 지식경제시대 혁명인재” 양성과정을 드러내고 북한심리학의 모습을 찾고자 한다. 심리학은 북한교육법 제정및 개정 변화에 따라 1953년 등장 및 1954년 폐지, 2003년 재등장하였다. 2000년 이후 북한은 세계화 및 과학화를 강조하며 심리학교육의 필요성을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은 심리학을 교육과정 전반에 도입하여우리식 심리학의 체계 확립을 시도하며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심리평가를 통하여 사상검증용 도구 제작 의지도 드러냈다. 더불어 논리적인 사고력 향상 도모 및 혁명적 세계관 강화 교육정책을 추구하였다. 이 연구에서 북한심리학은 주체형의 혁명가로서 “논리적인 사고력과 인간의 심리와 의식에 대한 심리학을 기반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사상이 건강하여 북한 당국의 요구와 방침을 수행할 수 있는 인재양성”을 지향하며교육하는 것으로 확인하였다. 이런 흐름은 북한 당국이 제시하는 지식경제시대 인재상의 교육이념과 원칙을 표현하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 [연구소 소식] 북한연구소 창립 45주년 기념식

      편집부 북한연구소 2016 북한 Vol.- No.540

      1971년 11월 4일 ‘통일의 지혜, 통일문화의 창조’를 기치로 창립된 (사)북한연구소가 올해로 45주년을 맞았다. 이에 지난 11월 3일 연구소 창립 기념식이 연구소 임직원을 비롯해 북한학 원로, ‘월간 북한’ 필진 등 내외 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오찬과 함께 진행되었다. 박봉식 이사장은 기념사를 통해 지난 1971년 연구소 창립 당시를 회고하고, 북한연구소가 4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임직원들 뿐 아니라 굳건했던 주변의 지지와 성원 덕분이라면서 앞으로도 연구소와 북한학의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아낌없는 조언을 당부했다.

    • KCI등재

      북한 여성의 삶을 역사화하기: 북한 여성사 연구의 동향과 과제

      송현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심연북한연구소 2023 현대북한연구 Vol.26 No.2

      이 글은 그동안 국내 학계에서 이루어진 북한 여성사 연구 동향을 주제별로 살펴보고, 성과와 한계, 앞으로의 과제를 밝혔다. 북한 여성사 연구는한국전쟁과 여성 경험, 여성의 노동과 직업 생활, 국가와 모성·재생산, 여성의 섹슈얼리티, 시대별 여성의 삶, 여성 교육과 조직 생활, 여성 지도자와 인물, 남북한 여성사 비교 등의 주제로 이루어졌다. 연구 방법적으로는 여성의 구술사와 담론 분석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북한 학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학문의 장에서 북한 여성사 연구 성과물이 나오고 있는 점은성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여성사 연구가 전체적인 편수도 적고주제 또한 다양하지 못한 점, 북한 여성사 연구의 이론과 방법론이 빈약한점, 제약된 연구 자료를 가지고 북한 여성사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는 점, 여성주의 관점에 기초한 북한 여성사 연구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은 한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 여성사 연구는 연구주제를 보다 확대하고 이론과 연구 방법을 더욱 정교화해야 하며, 북한여성 연구에서 여성사 연구가 한 분과로 안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북한 여성사 연구의 성장을 위한 시론적 논의로, 앞으로 북한 여성사 연구의 방향을 모색하는 기초자료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 KCI등재후보

      북한의 디지털 인권 통제 메커니즘

      문희영 북한연구소 2022 북한학보 Vol.47 No.1

      현실공간에서보다 가상공간에서의 활동이 노동과 일상생활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기본적인 자유권 실현의상당 부분이 정보기술에 영향을 받고 있다. 디지털 인권은 정보통신기술을 사용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인권 세부 분야를 지칭한다. 북한에서 인터넷 접속 제한으로 인해 가장 많은 제약을 받는 인권은 노동권이다. 가상세계에서의 경제활동이 창출하는 부의 가치가 실물경제를 능가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중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오늘날은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지 않은 전통적인 경제활동으로는 규모있는 부를 만들어낼 수 없고 이러한 물질적 성과 없이국가는 경제발전을 할 수 없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체제위기에 직면하게 되면서 국가배급체계를 유지할 수 없었고 이에 따라 북중 밀수를 통해 생존을 모색한 주민들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국경이 개방되기시작했다. 중국으로부터 식량과 생필품뿐만 아니라 조선족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한국 노래와 드라마도 북한으로 유입되었다. 북한 주민들은 1990년대에는 카세트·비디오 플레이어나 재생기와 화면이 부착되어 있는 형태의 노트텔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시청하였고 중국에서휴대전화가 대중화되면서부터는 중국 대방과의 연락을 위해 보유하게된 중국 휴대전화로도 미디어 파일을 열람했다. 이를 통제해야 하는 국가기관원들은 단속 무마를 빌미로 뇌물을 수수하며 주민들에 의존해생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저장매체의 소형화가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북한으로 유입되는 한류의 규모와 다양성이급격하게 증가했다. 비공식적인 외부정보 유입이 진행되는 가운데 1998년에는 북한 정부의 주도 아래 태국의 이동통신사인 록슬리퍼시픽社를 통해 최초로이동통신망이 구축되었다. 이 상업용 이동통신망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휴대전화 구입비와 통신망 가입비로 각각 750달러를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일반 주민들은 접근할 수 없었다. 2008년 북한 정부가 이집트의 통신회사인 오라스콤을 통해 도입한 고려링크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되었다. 2011년 평양의 휴대전화 기기 가격은 최대250달러였고 3,000원(미화 40센트)의 기본요금을 지불하면 매월 200 분의 통화와 20개의 단문 문자를 충전받았다. 북한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비공식환율로 계산하면 미화 50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3,000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공식적인 경제능력으로는 휴대전화를 보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북한에서 휴대전화는 위안화대 북한 내화 환율과 가격변동파악 등 비공식 경제활동의 필수품이었기 때문에 휴대전화 가입자는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일부 언론은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 수를7백만명으로 예상하고 있다. 북한에서 휴대전화는 혁신적인 통신기기로서 사적인 관계 형성이 어려웠던 기존 사회 구조를 변화시켰을 뿐만아니라 일상적으로는 엔터테인먼트 기기로서 한국이나 중국 노래·드라마를 재생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에 대해 북한 당국은 외부정보가 북한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과 지금까지 북한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제공해준다며 체제 위협 요인으로 인식했다. 북한 당국은 정보보안기술을 활용하여 외부정보 확산을제한하기 위해 2013년경 출시한 ‘붉은 별’ 운영체제에 전자서명체계를도입했 ...

    • KCI등재

      최근 북한 경제발전의 변화와 한중의 역할

      張寶仁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2007 북한학연구 Vol.3 No.1

      North Korea has increased the foreign trade dependence on China compared with other nations. It means that North Korea has become much closer with China in the area of economic and political relationship. Especially from 2000s, North Korea and China have been drawing closer and have expanded their relationship in all economic sectors such as trade, investment, and assistances. China becomes the first investor in North Korea from 2002. This report reviews between South Korea, China and North Korea relationship and North Korean economics as well. 2002년 7월 1일 북한이 경제 관리개선 조치를 실시한 이후 비록 경제 발전 정책과정에서 일부 조정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전체적 정책집행과정에서 그리 큰 변화가 발생하지 않았다. 경제 발전 방침에서“선군노선”을 계속해서 견지하면서 계획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자력갱생”이 북한식 강성대국 건설에 중요한 의의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신중하게 경제 정책상 조정을 시도하고, 경제의 회복과 발전을 위하여 새로운 활력을 주입하고, 조속히 직면한 식량부족 등의 경제난에서 빠져 나가려 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전체 하부구조, 특히 산업 기반이 약하고 자금과 기술이 부족하며, 게다가 대외 경제에서 큰 제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근본적으로 이런 피동적 경제 난국을 변화시키기 어렵다. 중국과 한국은 모두 북한의 가까운 이웃이며 그 중 중국은 계속해서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양국은 장기간 협력 기초를 가졌고 중국은 계속해서 북한경제 회복과 발전을 위해 지원했고 북한의 경제난 완화를 위해 노력했다. 남북한은 하나의 민족이고 양측 관계는 끊임없이 개선되고 있어 교류·․협력 영역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현재 한·중 양국은 이미 북한 대외 경제 협력의 중점 대상이 되었다. 관련 통계자료에 의하면, 2006년 중국과 한국은 각각 북한과의 무역액이 14.7억 달러와 9.2억 달러이며, 각각 북한 대외무역 총액 30.6억 달러 중 각각 48.0%와 30.3%를 차지한다. 북한의 대외무역 총액 중 중·한 양국과의 대외무역총액이 78.3%를 차지하는데 그 비중이 상당히 높다. 이외에도 북한의 외자기업도 주로 중국과 한국 양국의 기업 위주이며, 각각 외자 기업 총수와 총액에서 90%와 80%이상을 차지한다. 중국과 한국은 북한의 경제 및 무역관계가 비교적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양국에 대한 북한경제의 의존도가 비교적 (높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국과 한국 양국은 북한 경제의 회복과 발전에 대하여 중요한 영향을 낳고(미치고) 있다.

    • KCI등재후보

      수입품목 분석을 통해 본 북한경제변화 동향

      김양희 북한연구소 2018 북한학보 Vol.43 No.1

      Taking into account that trade is under state control in North Korea, the article focuses on import to monitor developments in the North Korean economy. Changes in import demand reflect changes in the North Korean economy, as the total count of imported items might be at least as large as the basic demand for major industries or commodities such as food, energy in order to sustain the North Korean economy. While acknowledging limitations of the method, this study analyzed North Korea's economic trends over the past decade by analyzing imports during the same period. This study finds imports rose in most of North Korea’s industries, including agriculture and fisheries; chemicals, plastic and rubber; textiles and leather; steel and metals; machinery and electrical electronics. Meanwhile, industrial goods imports became reorganized from low- to high-tech industries. Among consumer goods, the import of vehicles including passenger cars soared along with cellular phones and laptop computers. As for industrial intermediate goods, there was a sharp increase in the import of intermediate goods for clothing manufacturing, in connection with North Korea’s trade with China. The success of the inter-Korean summit meeting on April 27, 2018 has raised expectations for economic cooperation between Seoul and Pyongyang. However, the economic changes in North Korea indicates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may need to shift its focus from low- to mid-tech industry projects that seek labor force from the North. While low- to mid-level technologies still account for a large portion of the North Korean economy, for those who are preparing for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projects, it is telling that demand for products based on higher technology is on the rise in the North. Thus, it might be crucial to observe and assess North Korea's changing economy including major industrial shifts for not onl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but also civic groups. 북한에서 무역이 국가의 통제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 본고에서는 북한경제 변화 동향을 알아보기 위해 특히 북한의 수입품목에 주목했다. 북한의 수입품목수는 적어도 북한경제의 유지에 필요한 식량, 에너지, 산업 등의 최소한의 중요 물자의 수만큼은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수요의 변화는 북한 경제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이 연구는 일부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2007~16년까지 지난 10년간 북한의 수입품목 분석을 통해 북한경제동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농림수산, 화학·플라스틱·고무, 섬유·가죽, 철강·금속, 기계·전기전자 등 대부분의 북한의 산업에서 수입액이 증가했으며 공산품 수입은 중저위기술 업종 중심에서 고위기술이나 중고위기술 위주로 재편되고 있었다. 소비재 중에서는 운송수단과 관련 있는 승용차, 기타 수송기기 등과 휴대폰과 노트북 등의 수입이 급격하게 증가했으며 산업용 중간재는 북중교역과 관련한 의류 제조업의 중간재의 수입액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변화하는 북한경제동향은 최근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로 북한과의 경협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전 시기와 달리 단순 노동력 확보를 위한 중저위기술 차원의 사업 제시만으로는 개성공단의 재개 등 경협사업을 추진하기 쉽지 않을 것을 함의한다. 여전히 북한에서 중저위기술의 비중이 높긴 하지만 중고위기술 위주로의 수입품목 비중 확대는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국제사회나 우리 정부는 물론 민간단체들도 북한 관련 정책을 추진할 때에는 북한의 주력 산업변화 등 변화한 북한의 경제전반을 살펴보며 좀 더 다각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 KCI등재

      북한의 개혁·개방과 한국의 역할

      전미영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2007 북한학연구 Vol.3 No.1

      북한은 현재, 사회주의강성대국 건설을 모토로 하여 경제분야에서의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정치분야에서의 체제단속을 더욱 강화하고자 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개혁․개방에 대한 북한당국의 이중전략은 김정일 지도부의 개혁․개방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의 자본주의로의 체제이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개혁․개방이 초래하게 될 체제붕괴의 가능성에 대해 극심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북한당국은 경제분야에서의 개혁․개방조치가 확대되는 데 비례하여 대주민 사상교양을 더욱 강화하는 등 정치적 통제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당국은 경제개혁 및 개방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체제불안정요인의 확산에 대한 우려로 인해 제한적 개방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즉 과거에 비해 개혁․개방의 폭이 확대되었다고는 하나 북한의 개혁․개방이 현재로써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개혁·개방정책에 대해 ‘숨은개혁’(hidden reform), '사이비개방‘(pseudo- opening) '제한된 개방’ 등 다양한 평가를 내려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선택하게 될 개혁․개방의 크기와 성격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들이 제기되고 있으나, 개혁․개방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게 된다면 그것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북한체제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This paper is mainly concerned with the discussion that North Korea is in urgent need of opening its door to the outer world, ?? 새 the fact that it impedes an urgent expansion of social overhead capital, thich is recovering a great deal of attention in North East Asia, especially for the building of a transcontinental railroad and the connection of gas and petroleum pipe lins. Since South Korea gives North Korea a lot of material aids, they both might exercise great influence on it. The reform and opening of North Korea's political and social systems are not merely a must for the survival of North Korea, but a way to reduce South Korea's economic burden. For this reason, South Korea should play an active role in getting North korea reformed and opened.

    • KCI등재

      1960년대 중반 북한 - 중국의 갈등과 북한의 자주노선

      이상숙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2007 북한학연구 Vol.3 No.2

      역사적으로 볼 때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1960년대 중소분쟁, 북한의 자주노선 선포, 중국의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가장 큰 부침을 겪었다. 본 연구는 1960년대 중반 북한과 중국의 갈등 원인을 검토해보고, 양국의 이러한 갈등이 북한 외교정책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50년대까지 중국과 소련의 대립에 대하여 북한은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1962년-1964년까지 실질적으로 중국 노선에 치우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은 남한과의 분단 상황 하에 반미 통일전선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을 ‘수정주의’로 비판하였고 친중 노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었다. 그러나 1965년을 기점으로 북한의 대중정책이 변화되었다. 이것은 중국의 베트남 지원에 대한 정책이 원인이 되었다. 당시 중국이 북 베트남 지원 문제에서 소련의 공동 협력 제의를 거부하고,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러한 중국의 정책은 기존 민족해방운동 지원을 주장한 것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이전까지 중국의 노선을 지지하던 북한은 이러한 중국의 태도를 ‘좌익기회주의’로 비판하였다. 외교적으로 독자 노선을 추구하기 시작한 북한은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베트남에 대한 파병을 감행함과 동시에 남한에 대한 무력 공세를 강화함으로써 베트남을 간접적으로 지원하였다. 이 시기에 북중갈등은 북한이 ‘친중노선’의 입장에서 벗어나 중국과 소련을 모두 비판하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게 하였다. 결국 베트남 지원에 대한 북한과 중국의 갈등은 북한의 ‘자주노선’ 선포에 영향을 주었다. The Vietnam War in 1960's influenced not only Indo-China but whole Asia about the topography of securit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wo things. Frist, it seeks to search for North Korean and Chinese reaction to the change of security environment. Second, it seeks to find out the reasons and the results of the troubles between North Korea and China. North Korea seemed to adhere to neutrality in the beginning of Sino-Soviet discord, but inclined toward China line actually as the divided country in Korean peninsula. She officially supported China from 1964. However, Chinese Government opinion of the Vietnam war changed North Korean perception of China. First, China rejected Soviet、s request of cooperation in supporting Northern Vietnam. Second, the chinese government tried to support northern vietnam unofficially for circumvention of collision with the U.S. North Korea insisted on positive cooperation between socialist states. The conflict of Sino-North Korea results in the neutrality of North Korean. Nevertheless opposition of China, they dispatched the troops in the Vietnam war and heightened tension in Korean peninsula. Finally, the conflict influenced North Korean neutral diplomatic policy and declared Self-reliant diplomacy line.

    • KCI등재

      북한 통치담론의 재생과정에 관한 연구

      서유석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2008 북한학연구 Vol.4 No.1

      In North Korea, the Juche process was a discourse that emerged from the combination of communist objective ideals, action plans and the regime for implementing the objectives. The objective ideals that were constructed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the regime and the approach of explaining the ideals had already created an episteme by being fused with the historical structure. Kim Jong-il regime was launched amidst constant pressures to transform the existing discourse structure, including the fall of the Eastern Bloc, death of their leader and food shortage. The term 'Songun' emerged three years after the death of Kim Il-sung. North Korea established the concept of 'Songun Huro(army-first, labor-second)' in 1997, followed by 'Songun Politics' in 1998 and 'Songun' in 1999. The 'revitalization movement' was initiated through communication among internal and external environments based on the 'Songun' code. North Korea began declared 'Songun' for reinforcing the blood ties among the party, the military and the people and emphasizing that revolution and construction are to be completed by the military and the people being one in body and spirit as well as the unification of mind and behavior. As of 2008, it seems that the Songun discourse has passed the theoretical systemization process and the public movement stage based on the revitalization of the Juche discourse. It seems that the North Korean regime has opted for the military, a social group that regards 'order' and 'rules' as its lifeline, as a powerful capacity of revolution that can overcome current crises. North Korea is positioning the 'revolutionary army' as the furnace that transforms people into socialist citizens and attempting to convert the private sector and its chaotic disorder into a realm of cosmic 'order'. 북한에서 통치담론은 전통적인 공산주의이데올로기의 도식과 북한체제의 역사적 기억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북한체제가 주장하는 종국적 목적과 실천, 그리고 계획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한은 1970년대에 이러한 ‘주체사상’을 하나의 통치담론으로 적극적인 선전을 펼쳤고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론적 체계화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 말의 공산권의 붕괴, 소연방의 해체 등 일련의 대외적 악재와 내부적 예비의 고갈에서 이어진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은 새로운 통치담론인 ‘선군’을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은 ‘선군’을 1997년부터 제시하면서 과시적 군사활동과 과거의 경험을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현시대를 ‘선군’시대로 규정하기 시작하였다. 본 연구는 북한에서 주장하고 있는 이러한 ‘선군’화가 통치담론의 ‘재생화’라고 전제한다. ‘선군’이 내포하고 있는 ‘과거지향적 성격’의 맥락은 역사적 실천이었던 ‘주체화’의 과정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1997년부터 등장한 ‘선군’이 2000년을 넘어오면서 ‘주체’와의 관계설정 속에서 그 기원과 창시자에 대한 해석이 점차 김일성으로 확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의 창시와 기원이 김일성의 역사로 정의되면서 선군정치만 김정일의 성과로 주장되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재생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왈라스의 성찰을 빌어 설명하고자 한다. 왈라스는 이러한 재활운동의 과정을 안정의 단계(steady state), 개인적 압박의 증가시기(the period of increased individual stress), 문화적 왜곡의 시기(the period of cultural distortion), 재생의 시기(the period of revitalization), 새로운 안정화 단계(the new steady state)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북한에서 제시하는 통치담론의 ‘언술’ 내포적 의미는 모두 항일빨찌산시기에 생산된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북한 통치담론의 특성이자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은 ‘선군시대’에 ‘선군’을 실천하면서 첫째, 1998년 헌법개정을 통해 국가기구를 정비하였다. 이는 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체제의 재정비작업이었고 북한은 이를 선군정치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완비로 설명하고 있다. 둘째, 북한은 자신의 통치담론이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제3세계국가를 중심으로 주체사상이 호평받고 있는 것으로 선전해 왔다. ‘선군’ 역시 2000년을 넘어오면서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선군정치가 연구되고 있으며 관련단체가 설립되어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셋째, ‘선군’관련 대중운동과 신조어가 등장하고 있다. 북한은 이를 통해 ‘선군’을 새 시대의 코드로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북한은 강성대국론을 새로운 체제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미 군사 및 사상강국은 이루었기 때문에 경제대국만 이루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북한을 둘러싼 대내외의 상황과 경제강국을 이루고자 하는 북한체제욕망간의 간극은 점점 커지고 있다. 또한,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통치담론인 ‘선군’의 대중화운동이 2008년부터 더 이상 활발히 전개되지 않는 현상은 선군담론이 그 동의기제를 상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 북한의 GNI 분배구조와 주민의 소비생활수준

      홍성국(Hong Song-Kuk),윤홍석 북한연구소 2009 북한학보 Vol.34 No.1

      한국은행은 2007년 현재 북한의 1인당 GNI가 1,152달러로 추정하였다. 이러한 추정결과는 중국의 1/2 수준이며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77~78%에 이르는 규모이다. 그리고 베트남, 몽골, 예멘, 파키스탄 등에 비해서는 1.4~1.6배 정도에 이를 정도로 높은 규모이다. 이러한 단순비교를 통해 북한 GNI 추정결과는 북한의 어려운 경제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외부 경제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북한경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북한 GNI는 너무 높게 평가되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이나 비판은 북한의 왜곡된 분배 및 지출구조를 간과한데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북한의 국민소득은 군사비, 축적, 소비 등 크게 3개의 구성요소로 분배되고 지출된다. 이는 북한경제체제가 중앙집권적이면서 정치군사우선적인 속성이 강한 특이한 사회주의체제이기때문이다. 북한의 군사비는 GNI의 27~32% 수준이고 축적은 48~51% 수준이며 나머지 20~22% 만이 소비부문으로 분배·지출되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북한경제의 분배 및 지출은 투자부문 비중이 20~30%, 소비부문 비중이 60~80%를 차지하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분배구조와는 아주 대조적인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북한 GNI는 생산적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북한주민생활 수준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분배 및 지출 측면에서 GNI의 대부분은 군사비 및 축적으로 분배·지출되고 북한주민에게 돌아가는 몫은 GNI의 20~22%에 불과하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주민은 1인당 소비는 200달러(월 20달러 내외)의 아주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행이 추정한 북한 GNI는 주민이 한계적 상황에서 겨우겨우 생활을 영위해나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As of 2007, GNI per capita of North Korean economy is estimated at 1,152 dollars by the Bank of Korea. In comparison with the GNIs per capita of other countries, The estimation amounts to about 1/2 of China's, 77~78% of Indonesia's and the Philippines's in GNI per capita, but 1.4~1.6 times higher than that of Vietnam, Mongolia, Yemen, and Pakistan in Asia. Accordingly, it gives rise to critical opinions that the estimation may be overestimated because North Korea has been faced with economic difficulties and cannot help depending on foreign countries for the supply of foods. But these criticisms may be caused by overlooking the fact that North Korean economy is structurally distorted in the distribution composition of its national income. In terms of distribution of North Korea's national income, it is largely composed of three elements, military expenditure, accumulation, consumption, owing to its peculiar socialism system which takes precedence of politicalmilitary field. North Korea has annually distributed large military expenditure and accumulation(75~83% of GNI), and small consumption(only 20~22% of GNI). North Korea's distribution or expenditure is quite in contrast to the other capitalist countries in the world which roughly distribute and expend investment 20~30%, consumption 60~80% of their national incomes. In conclusion, North Korea's GNI by product approach cannot explain the level of people's consumption directly. But the GNI by distribution or expenditure approach, always occupies a high portion for large military expenditure and accumulation instead of only a small portion for people's consumption. North Korean consumption per capita lies low down about 200 dollars per year(20 dollars per month)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