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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특집 : 한,미,일 북한인권법 비교분석

          김동한 ( Dong Han Kim )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구 동국대학교 안보연구소) 2008 북한학연구 Vol.4 No.2

          2000년대 들어와 미국이 보인 대북메세지의 주제어는 ``핵``과 ``인권``이었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제안과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리하여 나타난 현상이 핵에 관하여서는 ``6자회담``이고, ``인권``에 관하여서는 ``북한인권법``이다. 미국이 제일 먼저 대북압박수단으로 ``북한자유법안``을 의회에 상정한 것이 2003년이다. 이 법안은 법으로서 제정되지 못하고 이 내용을 상당부분 계승한 그리고 더 구체화한 ``북한인권법``을 2004년에 제정하였다. 이 법은 2008년까지 한시법으로 제정되었는데 2012년까지 연장하는 ``2008 북한인권 재승인법``안이 통과되어 앞으로 4년 더 수명이 연장되었다. 일본은 2006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하였다. 미국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일본의 북한인권법의 핵심은 일본인 납치문제이다. 한국도 2005년부터 북한인권법안 발의(2005.8.11)를 시작으로 2008년에도 국회에 상정되어 있다(2008.12.26). 여기서는 미국의 북한인권법을 우선 살펴보고, 일본의 법과 한국의 법안을 차례대로 살펴본 다음 한·미·일의 북한인권법을 비교분석하였다. In the beginning of 2000, the main issue The United States showed in the message sent to the North Korea is ``nuclear`` and ``human rights``. Toward this suggestion and policy of The United States both of Korea and Japan showed an active and cooperative attitude. As its result, each phenomena of ``Six-Party Talks`` for nuclear and ``North Korean Human Rights Act`` has occurred. It was 2003 that The United States first layed the ``North Korean Freedom Act,`` as a means of oppressing North Korea, under the National Assembly. Though this bill was not established by law, more detailed bill of ``North Korean Human Rights Act`` containing many contents of 2003`s bill was enacted by law in the following year. This law was supposed to be effective until 2008 as a temporary law. The bill of ``Reapproval for North Korean Human Rights Act`` in 2008, requiring another four years extension up to 2012, however, has been passed. Japan established law on North Korea` human right in 2006 which contained similar contents to that of The United States. What is distinctive in Japan`s law on North Korean Human Rights is that it is focused on the problem of the kidnapped Japanese. Korea also proposed the bill of law on North Korean Human Rights in 2005(2005.8.11), which is being layed in 2008 under the National Assembly. This research is going to analyze first The United States` law on North Korean Human Rights of 2004, 2008, then those of Japan and Korea respectively and finally compare those three laws.

        • KCI등재

          특집논문 : 구술자료를 활용한 북한 도시연구 이론적 자원과 방법

          조정아 ( Jeong Ah Cho )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구 동국대학교 안보연구소) 2012 북한학연구 Vol.8 No.2

          본 논문은 북한 주민들의 구술자료, 특히 생애사 구술자료를 활용하여 어떻게 북한 도시를 연구할 것인가에 관한 글이다. 이 논문에서는 공간의 성격과 지역정체성의 개념, 도시에 관한 사회학적 이론을 검토하고, 이들 이론이 북한 도시공간 연구에 주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첫째, 북한의 도시공간을 탐구한다는 것은 북한의 도시공간 내의 행위자들의 행위와 상호작용에 의해 어떻게 특정한 사회적 공간이 생산되는가를 밝히는 작업이어야 한다. 둘째, 다양한 행위자들과 사회세력들 간에 일어나는 공간의 생산을 둘러싼 경합과 갈등, 권력관계에 착목할 필요가 있다. 셋째, 주체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공간이 생산될 뿐만 아니라 공간이 인간 행위를 규제하고 물질들의 공간적 배치가 인간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행위자들에 의한 공간의 소비와 체험, 공간에 대한 행위자들의 해석과 의미부여를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넷째, 공간을 통해 이루어지는 권력의 지배에 초점을 둘 것인가, 공간을 점유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저항과 갈등, 공간의 전유에 초점을 둘 것인가라는 쟁점이 존재한다. 또한 이 글에서는 북한 주민들의 구술생애사 자료가 북한 도시연구, 특히 북한 도시의 정체성을 탐색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음에 주목하고, 그 의의와 활용가능성을 살펴보았다. 북한 도시연구에서 탈북이주민의 생애사자료를 비롯한 구술자료는 ‘주관성’이라는 속성으로 인해 주체의 공간경험과 그를 통해 형성되는 지역정체성을 밝히는데 있어 적합한 자료가 된다. 개별적인 질적사례의 설명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구술자의 기억이 생산, 변형, 재현되는 사회적, 공간적 맥락을 고려하고, 사례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구술자의 경험을 맥락, 의도, 의미와 함께 서술하는 다양한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는 구술자료를 활용한 북한 도시연구의 주제 영역으로 일상적 공간을 통한 주체 형성과 주민들의 대응, 도시공간의 전유와 활용, 일상 공간의 변화와 지역정체성 변화를 제시하였다. This paper focuses on the North Korean urban studies by utilizing oral materials of North Korean refugees. The paper examines characteristic of space, concept of local identity, and sociological theories relevant to urban studies, and draws implications from these theories for further research as follows. First, studies into North Korean urban spaces should reveal how social space is produced by behavior and interaction of actors. Second, the study needs to focus on competitions, conflicts, and power relations in regard to the production of space between the various actors. Third, consumptions and the actors` experiences of the space, as well as their interpretations must be revealed because the social space is not only produces within interactions by agents, but it also regulates human behaviors. Fourth, there are relentless debates on whether focus should be placed on the domination of power through space, or on the resistance, conflict, and appropriation of space by various actors. This paper addresses the oral materials of North Korean refugees which can be utilized as valuable data for the North Korean urban studies, and the paper also examines the significance and possibility of application. In order to set aside the explanatory power of individual qualitative cases, social and spatial context should be considered where the interviewee`s memory is produced, transformed, and reproduced. And various strategies of interpretation should be utilized by narrating experience of interviewee`s experience as well as the context, intention, and meaning. Lastly, the subjects of North Korean urban studies based on the utilization of oral materials are identified in this paper as following: the formation of agents through the space of daily life and response of agents, the appropriation and utilization of urban space by agents, and the change of daily space and the change in local identity.

        • KCI등재

          1960년대 중반 북한 - 중국의 갈등과 북한의 자주노선

          이상숙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2007 북한학연구 Vol.3 No.2

          역사적으로 볼 때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1960년대 중소분쟁, 북한의 자주노선 선포, 중국의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가장 큰 부침을 겪었다. 본 연구는 1960년대 중반 북한과 중국의 갈등 원인을 검토해보고, 양국의 이러한 갈등이 북한 외교정책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50년대까지 중국과 소련의 대립에 대하여 북한은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1962년-1964년까지 실질적으로 중국 노선에 치우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은 남한과의 분단 상황 하에 반미 통일전선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을 ‘수정주의’로 비판하였고 친중 노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었다. 그러나 1965년을 기점으로 북한의 대중정책이 변화되었다. 이것은 중국의 베트남 지원에 대한 정책이 원인이 되었다. 당시 중국이 북 베트남 지원 문제에서 소련의 공동 협력 제의를 거부하고,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러한 중국의 정책은 기존 민족해방운동 지원을 주장한 것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이전까지 중국의 노선을 지지하던 북한은 이러한 중국의 태도를 ‘좌익기회주의’로 비판하였다. 외교적으로 독자 노선을 추구하기 시작한 북한은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베트남에 대한 파병을 감행함과 동시에 남한에 대한 무력 공세를 강화함으로써 베트남을 간접적으로 지원하였다. 이 시기에 북중갈등은 북한이 ‘친중노선’의 입장에서 벗어나 중국과 소련을 모두 비판하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게 하였다. 결국 베트남 지원에 대한 북한과 중국의 갈등은 북한의 ‘자주노선’ 선포에 영향을 주었다. The Vietnam War in 1960's influenced not only Indo-China but whole Asia about the topography of securit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wo things. Frist, it seeks to search for North Korean and Chinese reaction to the change of security environment. Second, it seeks to find out the reasons and the results of the troubles between North Korea and China. North Korea seemed to adhere to neutrality in the beginning of Sino-Soviet discord, but inclined toward China line actually as the divided country in Korean peninsula. She officially supported China from 1964. However, Chinese Government opinion of the Vietnam war changed North Korean perception of China. First, China rejected Soviet、s request of cooperation in supporting Northern Vietnam. Second, the chinese government tried to support northern vietnam unofficially for circumvention of collision with the U.S. North Korea insisted on positive cooperation between socialist states. The conflict of Sino-North Korea results in the neutrality of North Korean. Nevertheless opposition of China, they dispatched the troops in the Vietnam war and heightened tension in Korean peninsula. Finally, the conflict influenced North Korean neutral diplomatic policy and declared Self-reliant diplomacy line.

        • KCI등재

          대북지원의 쟁점과 지원시스템의 정비 방안 : 정부 차원의 대북지원을 중심으로

          이종무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2007 북한학연구 Vol.3 No.1

          한반도의대북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국민들이 왜 이제 와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첫째로는 대북지원의 장기화로 인해 국민들이 대북지원에 대해 피로감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이야기도 자주 들으면 식상하다고 하는데, 하물며 어려우니까 도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10년이 넘게 들으면 관심도 떨어지고 감정도 무덤덤해지게 된다. 둘째로는 국민들이 북한 정권에 대해 매우 커다란 실망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많이 지원을 했으면 대남관계에서 보다 전향적이고 협력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북한은 오히려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하면서 한반도 및 동북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위험한 게임을 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러한 북한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대북지원에 대한 반감이 급속하게 커졌다. 셋째로는 국민들이 정부의 북한에 대한 식량 및 비료 지원을 북한 주민에 대한 지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북한 정권에 대한 지원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민간단체들의 지원 사업은 현장 방문과 사진 등으로 그 지원 내용이 생생하게 알려져 있는 반면에, 정부가 지원하는 식량 및 비료는 북한 주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그 효과는 무엇인지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대북지원의 중요한 논리 중 하나가 북한 정권과 주민을 구분해야 하고, 북한 정권이 싫다고 하더라도 북한 주민들을 돕는 것마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은 북한 주민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인지가 불분명한 것으로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들 중 첫째와 둘째는 쉽게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셋째의 것은 정부의 정책 전환과 노력 여하에 따라 변화가 가능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통해 국민들이 대북지원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게 된다면 대북지원에 대한 피로감도 완화될 것이다. 또한 대북지원의 효과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북한의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가 되기도 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are the general situation on humanitarian assistance to DPRK, the contents and characteristics of humanitarian projects, and the attitude of South Korea. Key players of humanitarian assistance to DPRK are classified as South Korean government and NGO's. The South Korean government's humanitarian assistance to DPRK began in 1990' and has become the long-term operations. In the process of humanitarian assistance to DPRK, contents of humanitarian operations have been diversified from simply emergency food relief in the beginning to food aid and development relief such as agricultural recovery, livestock raising support, medical assistance and environmental protection.

        • KCI등재후보

          북한의 한류 연구 동향과 과제

          임석준 ( Lim,Suk Jun ),강동완 ( Dong Wan Kang ),김현정 ( Hyun Jung Kim )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구 동국대학교 안보연구소) 2014 북한학연구 Vol.10 No.2

          한류의 북한 유입과 더불어 학계에서도 관련 현상을 둘러싼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들 연구는 북한에서의 한류 유통경로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하여 북한주민의 태도(attitude)에 대한 의식변화 연구, 그리고 "문화적 침투현상이 국정과제인 통일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라는 미래지향적 연구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하지만 ``북한의 한류``에 대한 관심은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 공고한 이론적 틀이 마련되지 않아 후속 연구를 위한 디딤돌 역할을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이것은 연구자들마다 상이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조사 대상인 탈북자들도 성별·연령·거주지·계층별로 각양각색인 것에 일차적인 이유가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의 한류 연구를 정리하여 유형화하거나 이론적 시각을 제시한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북한의 한류 연구는 주제의 참신성과 학문적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연구자 각자가주관적 경험을 일반화하는 결론이 도출되고 있다. 본 연구는 ``북한의 한류`` 연구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끌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하여 기존 연구들을 검토하고, 동향을 파악하여 유형화할 것이다. 즉, 북한의 한류 연구를 연구대상(탈북자 혹은 북한주민)과 이들이 접한 미디어의 성격(대북선전용 미디어 혹은 상업용 미디어)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각 유형의 특성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향후 ``북한의 한류``가 나아갈 수 있는 연구방향을 제시한다. As the Korean wave .the Hallyu.penetrates North Korea, the world`s most reclusive country, academic interest in this phenomenon has followed. Some researchers consider the Hallyu`s impact on citizen attitudes; others predict that the Hallyu will advance unification of the divided peninsula. The rise in academic publications is exciting, but the literature is directionless and unconnected. This paper organizes the literature into a two-by-two table based on the research subjects (North Korean refugees or North Korean residents) and the type of media (commercial media or propaganda media). With this new typology, we propose research directions that suggest promising results.

        • KCI등재

          북한 통치담론의 재생과정에 관한 연구

          서유석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2008 북한학연구 Vol.4 No.1

          In North Korea, the Juche process was a discourse that emerged from the combination of communist objective ideals, action plans and the regime for implementing the objectives. The objective ideals that were constructed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the regime and the approach of explaining the ideals had already created an episteme by being fused with the historical structure. Kim Jong-il regime was launched amidst constant pressures to transform the existing discourse structure, including the fall of the Eastern Bloc, death of their leader and food shortage. The term 'Songun' emerged three years after the death of Kim Il-sung. North Korea established the concept of 'Songun Huro(army-first, labor-second)' in 1997, followed by 'Songun Politics' in 1998 and 'Songun' in 1999. The 'revitalization movement' was initiated through communication among internal and external environments based on the 'Songun' code. North Korea began declared 'Songun' for reinforcing the blood ties among the party, the military and the people and emphasizing that revolution and construction are to be completed by the military and the people being one in body and spirit as well as the unification of mind and behavior. As of 2008, it seems that the Songun discourse has passed the theoretical systemization process and the public movement stage based on the revitalization of the Juche discourse. It seems that the North Korean regime has opted for the military, a social group that regards 'order' and 'rules' as its lifeline, as a powerful capacity of revolution that can overcome current crises. North Korea is positioning the 'revolutionary army' as the furnace that transforms people into socialist citizens and attempting to convert the private sector and its chaotic disorder into a realm of cosmic 'order'. 북한에서 통치담론은 전통적인 공산주의이데올로기의 도식과 북한체제의 역사적 기억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북한체제가 주장하는 종국적 목적과 실천, 그리고 계획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한은 1970년대에 이러한 ‘주체사상’을 하나의 통치담론으로 적극적인 선전을 펼쳤고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론적 체계화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 말의 공산권의 붕괴, 소연방의 해체 등 일련의 대외적 악재와 내부적 예비의 고갈에서 이어진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은 새로운 통치담론인 ‘선군’을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은 ‘선군’을 1997년부터 제시하면서 과시적 군사활동과 과거의 경험을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현시대를 ‘선군’시대로 규정하기 시작하였다. 본 연구는 북한에서 주장하고 있는 이러한 ‘선군’화가 통치담론의 ‘재생화’라고 전제한다. ‘선군’이 내포하고 있는 ‘과거지향적 성격’의 맥락은 역사적 실천이었던 ‘주체화’의 과정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1997년부터 등장한 ‘선군’이 2000년을 넘어오면서 ‘주체’와의 관계설정 속에서 그 기원과 창시자에 대한 해석이 점차 김일성으로 확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의 창시와 기원이 김일성의 역사로 정의되면서 선군정치만 김정일의 성과로 주장되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재생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왈라스의 성찰을 빌어 설명하고자 한다. 왈라스는 이러한 재활운동의 과정을 안정의 단계(steady state), 개인적 압박의 증가시기(the period of increased individual stress), 문화적 왜곡의 시기(the period of cultural distortion), 재생의 시기(the period of revitalization), 새로운 안정화 단계(the new steady state)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북한에서 제시하는 통치담론의 ‘언술’ 내포적 의미는 모두 항일빨찌산시기에 생산된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북한 통치담론의 특성이자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은 ‘선군시대’에 ‘선군’을 실천하면서 첫째, 1998년 헌법개정을 통해 국가기구를 정비하였다. 이는 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체제의 재정비작업이었고 북한은 이를 선군정치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완비로 설명하고 있다. 둘째, 북한은 자신의 통치담론이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제3세계국가를 중심으로 주체사상이 호평받고 있는 것으로 선전해 왔다. ‘선군’ 역시 2000년을 넘어오면서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선군정치가 연구되고 있으며 관련단체가 설립되어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셋째, ‘선군’관련 대중운동과 신조어가 등장하고 있다. 북한은 이를 통해 ‘선군’을 새 시대의 코드로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북한은 강성대국론을 새로운 체제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미 군사 및 사상강국은 이루었기 때문에 경제대국만 이루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북한을 둘러싼 대내외의 상황과 경제강국을 이루고자 하는 북한체제욕망간의 간극은 점점 커지고 있다. 또한,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통치담론인 ‘선군’의 대중화운동이 2008년부터 더 이상 활발히 전개되지 않는 현상은 선군담론이 그 동의기제를 상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 KCI등재후보

          반국가단체 북한의 국가 참칭의 내용적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

          권영태 북한연구소 2014 북한학보 Vol.39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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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는 것은 우리 헌법질서에 따른 확고한 규범적 요청이다. 그렇지만 반국가단체론에 대한 이론적 뒷받침은 거의 없고, 국가보안법과 그 근거가 되는 헌법의 영토조항은 강한 개폐압력에 처해 있다. 이 논문은 반국가단체 북한에 대한 이론적 탐구를 해보려고 하는 시도로서, 반국가단체 북한의 국가 참칭의 내용적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라고 명명하였다. 북한의 '헌법'과 주요 개별'법'을 통해 북한'법'에만 고유한 조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북한은 '국가'를 혁명하는 조직으로 상정하고 있다. 곧, 북한은 '법'을 통해 국가의 조직과 운영에 필요한 부분을 포함하여 국가를 참칭할 수 있는 외양을 갖추고 있으나, 본질적인 부분은 국가가 아닌 혁명조직임을 표방함으로써 스스로 반국가단체에 불과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 논문은 반국가단체 북한의 국가 참칭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시도하였다. 국가학에 비추어 북한 '국가'의 성격을 살피는 시도의 모순성을 지적하고, 범죄단체론 일반의 확대 적용을 통한 이론적 적용이 필요함을 제시하였다. 후속적으로 반국가단체 북한의 국제법적 외연에 대한 연구, 곧 북한이 국가가 아닌 국제법 주체로서 갖는 성격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이는 국내법적으로뿐만 아니라 국제법적으로도 반국가단체 북한의 국가 참칭의 내용적 메커니즘이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North Korea is an anti-government organization by the Constitution and the National Security Law. This paper is to study theoretical basis on North Korea as an anti-government organization. Outwardly North Korea is a nation but it is a group of revolutionaries in reality by North Korean laws. North Korea can be called a revolutionary nation as a crime group.

        • KCI등재

          일반논문 : 5,16군사정변 당시 북한의 인식 및 중국과의 의사소통 과정 연구 -중국 외교부 기밀 해제 문서를 중심으로

          학군환 ( Qun Huan Hao )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구 동국대학교 안보연구소) 2011 북한학연구 Vol.7 No.2

          1961년 5월 16일 한국에서 발생한 박정희 군사정변은 사태의 돌발성으로 인하여 당시로서는 그 누구도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남한에서 발생한 "군사정변"의 성격과 발생한 원인 및 배경을 두고 중국과 북한에서는 신속한 정보·의사 교환을 진행하였다. 중국이나 북한은 모두 "주도면밀한 준비과정을 거친 반동적인 파쇼 군사정변"이라는 견해에는 일치했으나 보다 구체적인 정변발생 원인과 배경에 대한 분석에 있어서는 견해를 달리했다. 본고에서는 중국 외교부에서 최근 해제한 기밀문서를 중심으로 중국과 북한이 정변 성격과 이유에 대한 분석과정과 정보·의사 교환과정을 정리하여 보았다. 북한의 경우, 최초에는 「혁명 공약」의 내용을 근거로 정변을 미국의 음모라고 보았으나, 뒤이어 박정희의 남노당 내력 등 신상 정보와 미국의 정변 반대 입장을 근거로 진보세력에 의한 혁명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지지성명 발표를 준비한다. 그러나 사태가 진전됨에 따라 작전 지휘권이 있는 미국의 동의 없이 정변은 불가능하였다고 보며 최종적으로 남한 내 진보 세력이 부패한 장면 정권을 무너뜨리기 전에 미국이 선 조치를 통하여 새로운 지배세력을 교체하였다며 미국의 책동으로 그 성격을 규명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 중국은 시종일관 북한 당국의 입장을 존중했으며, 자국의 견해를 보류한 채 인내력 있게 사태를 지켜보았고 여론으로 북한을 대폭 지지해 나선다. 중국의 경우, 최종적으로 5·16군사정변은 한국 내 반공 군사세력이 주도하였으며, 정변 발생 후 미국의 지지가 있었을 거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는 미국의 책동이라는 북한 당국의 견해와는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본고에서는 북한이 사건 당시에 인식과 판단에 있어 번복을 거듭하였던 내적 원인을 정보의 부족으로 인한 판단 오류와 4·19혁명 이래 남한의 진보세력에 대한 기대가 판단과정에 끼친 심리적 영향, 이데올로기 원칙성이 최종 판단에 미친 결정적인 역할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또한 중국의 경우에는, 그 이해관계에 있어서 북한보다 남한의 사태에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점, 보다 다양한 루트를 통해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정보를 입수 분석할 수 있었던 점에서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던 내적 원인을 밝혀 보았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대외 선전에 있어서 북한과 일치한 입장을 표명할 수 있었던 원인은 한국전쟁을 통한 북한과의 혈맹 관계와 냉전 체제 내에서의 이데올로기 원칙성을 우선적으로 내세웠던 데에서 찾아보고자 하였다. On May 16, 1961, Park Chung-hee led a military coup in South Korea which was so sudden and unexpected that it was difficult for anyone at the time to grasp the situation. China and North Korea proceeded swiftly to exchange information and ideas on the nature of the "sudden change in situation" in South Korea as well as its causes and background. Although China and North Korea viewed the event as "a thoroughly prepared reactionary fascist coup", their analyses on the specific causes and background of the military coup differed. Using recently declassified documents of the Chinese Foreign Affairs Ministry, this article covers the Chinese and North Korean analytical processes and the exchange of information and ideas regarding the nature and reasons for the military coup. Although North Korea initially saw the military coup as a plot by the United States based on Park Chung-hee`s "Revolution Pledge," they later believed a revolution by progressive forces in South Korea was highly possible based on intelligence that revealed that Park Chung-hee`s was a former member of South Korea`s Labor Party as well as United States opposition to the coup d`etat. As a result, they prepared an announcement to support it. However as the situation progressed, North Korea came to the conclusion that the coup could not have succeeded without prior backing from the United States which meant, in the North Korean view, that the US preemptively installed a new ruling force before the progressive forces within South Korea could overturn Chang Myon`s corrupt government. In other words, they saw the coup as a plot by the United States. Throughout this process, China respected the position of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from beginning to end while keeping their own opinions to themselves and patiently observing the situation. Popular sentiment was sharply in support of North Korea. From China`s point of view, the 5·16military coup was ultimately led by anti-communist military forces within South Korea with the United States deciding to support it after the fact. The difference in opinion between China and North Korea can be readily seen. This article divides and examines the internal reasons why North Korea repeatedly shifted its understanding and judgment at the time of the military coup as follows: 1) miscalculations due to lack of information, 2) psychological influence on the decision-making process due to overestimation of the progressive forces in South Korea since the 4·19 Revolution, and 3) the decisive role of ideological principles when making final judgments. In addition, China was internally able to be more objective because it was able to distance itself geopolitically from the situation in South Korea more than the North. In addition, China had more diverse routes and time to obtain and analyze information. While this may be the case, it can be argued that the reason why China, in terms of its foreign policy position, was able to express solidarity with North Korea`s position was because of the blood alliance they formed during the Korean War and the primacy of ideology within a Cold War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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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북한주민의 남한 미디어 수용과 인권의식 변화

          박정란 ( Jung Ran Park ),강동완 ( Dong Wan Kang )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2013 북한학연구 Vol.9 No.2

          남한의 영화, 드라마 등을 비롯한 외부 정부가 북한 내에 유입되고 있다는 것 은 그 자체로도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중 예술을 향유할 권리이자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함께 누릴 권리의 한축을 이룬다. 또한 남한의 미디어를 통해 형성, 확산될 수 있는 북한주민의 인권의식은 북한 당국이 지향하는 지배적 이데올로 기와 배치된다는 점에서도 북한사회 변화의 향방을 예측함에 있어 중요한 연구 주제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한 사회 통합과 북한 경제개발과도 연 관지어 볼 수 있다. 즉, 북한주민들의 인권의식은 남북한 체제 통합 이후 정치시 민 의식의 성숙과정, 그리고 노동권을 비롯한 사회경제문화적 권리를 누릴 수 있 는 인식체계일 뿐 아니라 책임을 준수 해가는 통일한반도의 사회적 역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경제개발 과정에서의 개발역량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남한 미디어를 통해 북한주민들에게 형성되고 있는 인권의식의 내용, 그리고 수 용자 특성(범주) 파악은 북한사회 변화, 남북한 통합, 그리고 북한 경제사회 발전 차원 등 다차원적 접근에 있어 주요 기초자료로써 기능하리라 본다. 본 글에서는 북한에서 남한 미디어를 접했던 북한이탈주민들과의 심층면담 결과를 토대로 북 한에서 남한 미디어를 통해 수용하게 되는 인권의식의 내용, 그리고 수용자 범주 등을 분석하고 남한 미디어 수용의 한계와 과제 등을 제안한다. The influx of outside information including the movies and dramas of South Korea into North Korea itself makes an axis of right to enjoy art among the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and of right to enjoy scientific advancements and their benefits. The North Korean people’s perception of human rights that can be formed and spread through the South Korean media goes against the ruling ideology sought after by the North Korean regime, which makes it an important research topic for predicting the directions of changes in the North Korean society. It can also be connected to the integration of North and South Korean society and the economic development of North Korea in another aspect. That is, the human rights perception of North Korean people can be a perception system to enjoy social, economic and cultural rights including right to work as well as the maturing process of political citizenship after the integration of the North and South Korean regime, as well as the social capability of the unified Korean Peninsula to fulfill the responsibilities. It can also be interpreted as the development capability in the process of economic development in North Korea. The content of human rights perception being formed among North Korean people through the South Korean media and also the characteristics(categories) of audience can serve as major basic data for multi-dimensional approaches including changes to the North Korean society, integration of North and South Korea, and economic and social development of North Korea. Based on the in-depth interviews with North Korean defectors that were exposed to the South Korean media in North Korea, the present study analyzed the content of human rights perception they got to accept through the South Korean media in North Korea and the categories of audience and proposed the limitations and tasks of acceptance of South Korean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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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주민의 남한 미디어 수용과 인권의식 변화

          박정란,강동완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2013 북한학연구 Vol.9 No.2

          The influx of outside information including the movies and dramas of South Korea into North Korea itself makes an axis of right to enjoy art among the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and of right to enjoy scientific advancements and their benefits. The North Korean people’s perception of human rights that can be formed and spread through the South Korean media goes against the ruling ideology sought after by the North Korean regime, which makes it an important research topic for predicting the directions of changes in the North Korean society. It can also be connected to the integration of North and South Korean society and the economic development of North Korea in another aspect. That is, the human rights perception of North Korean people can be a perception system to enjoy social, economic and cultural rights including right to work as well as the maturing process of political citizenship after the integration of the North and South Korean regime, as well as the social capability of the unified Korean Peninsula to fulfill the responsibilities. It can also be interpreted as the development capability in the process of economic development in North Korea. The content of human rights perception being formed among North Korean people through the South Korean media and also the characteristics(categories) of audience can serve as major basic data for multi-dimensional approaches including changes to the North Korean society, integration of North and South Korea, and economic and social development of North Korea. Based on the in-depth interviews with North Korean defectors that were exposed to the South Korean media in North Korea, the present study analyzed the content of human rights perception they got to accept through the South Korean media in North Korea and the categories of audience and proposed the limitations and tasks of acceptance of South Korean media. 남한의 영화, 드라마 등을 비롯한 외부 정부가 북한 내에 유입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중 예술을 향유할 권리이자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함께 누릴 권리의 한축을 이룬다. 또한 남한의 미디어를 통해 형성, 확산될 수 있는 북한주민의 인권의식은 북한 당국이 지향하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배치된다는 점에서도 북한사회 변화의 향방을 예측함에 있어 중요한 연구주제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한 사회 통합과 북한 경제개발과도 연관지어 볼 수 있다. 즉, 북한주민들의 인권의식은 남북한 체제 통합 이후 정치시민 의식의 성숙과정, 그리고 노동권을 비롯한 사회경제문화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인식체계일 뿐 아니라 책임을 준수 해가는 통일한반도의 사회적 역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경제개발 과정에서의 개발역량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남한 미디어를 통해 북한주민들에게 형성되고 있는 인권의식의 내용, 그리고 수용자 특성(범주) 파악은 북한사회 변화, 남북한 통합, 그리고 북한 경제사회 발전차원 등 다차원적 접근에 있어 주요 기초자료로써 기능하리라 본다. 본 글에서는 북한에서 남한 미디어를 접했던 북한이탈주민들과의 심층면담 결과를 토대로 북한에서 남한 미디어를 통해 수용하게 되는 인권의식의 내용, 그리고 수용자 범주등을 분석하고 남한 미디어 수용의 한계와 과제 등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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