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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박물관 법인화 운영 사례 조사 : 일본, 프랑스, 미국의 운영사례를 중심으로

        최환 국립중앙박물관·한국고고미술연구소 2010 동원학술논문집 Vol.11 No.-

        This paper explains the definition and types of corporation followed by the executive agency which applies to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It also examines incorporated museums of Korea as well as representative national museums of Japan, France and the United States and their operation methods. The paper analyzes the current state of the Cultural Foundation of National Museum of Korea and incorporated public museums and galleries in Korea. Based on the information above, this study presents the possible problems and requirements that Korean national museums may encounter and have to implement once they are incorporated. 박물관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박물관 분야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국공립박물관의 운영방식이 변해야한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시대를 열면서 박물관내의 문화 사업에 대한 업무를 총괄하는 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은 2001년부터 국립박물관들을 묶어 ‘독립행정법인’화 하여 운영하다가 2007년부터는 ‘독립행정법인-국립문화재기구’로 개편하여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민간기구와 정부기구의 중간 형태인 ‘공공기관 Etablissement Public: EP’라는 형태가 생겨났으며 루브르박물관 역시 EP의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스미스소니언의 경우에도 준공공기관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해마다 적정 부분 연방정부의 예산을 지원받으면서 동시에 자체 사업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이를 다시 박물관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한국 역시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하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박물관을 운영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으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법인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이 글은 국립박물관의 효율적 운영의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법인화와 관련하여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과 일본, 프랑스, 미국 국립박물관 운영 사례를 조사하고, 법인화 또는 법인과 유사한 형태로 운영 중인 해외 주요 박물관의 사례를 통해 장·단점을 파악, 향후 박물관의 운영 방향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되고자하는데 목적이 있다.

      • 어린이박물관 교육프로그램의 역할 :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을 중심으로

        박성혜 국립중앙박물관 2017 박물관 교육 Vol.1 No.-

        본 글에서는 국립박물관 어린이 교육프로그램의 변천사를 살펴보고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의 교육프로그램 개발 단계와 현재 운영 상황, 그리고 어린이 교육프로그램이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하였다. 초창기 국립박물관의 대표적 어린이교육프로그램은 1950년대 서울과 경주에서 진행한 어린이박물관학교, 1974년 어린이문화재미술실기대회, 1984년 국립중앙박물관과 소년동아일보사가 공동으로 실시한 ‘어린이박물관 현장학습’ 3가지였다. 이후 1990년대 후반기부터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박물관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국립박물관에서 어린이 대상 교육을 하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목적과 취지 중의 하나는 한국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린이 교육에서만은 이보다 더 중요한 문화재 본질에 접근하여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교육시키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앞으로 어린이 교육프로그램은 내용적인 면에서는 문화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각을 길러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형식적인 면에서는 온라인과 학교 공교육과 연계하여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양질의 박물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제공할 의무가 있다. 즉, 시대에 걸맞게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 개인과 공교육로 연계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 원하면 누구든지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향후 국립박물관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After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was relocated to Yongsan in 2005, the Children's Museum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was newly established as a separate entity. Since its inception on October 28, 2005, the Children's Museum has been a children-centered museum and cultural education institution, providing various leisure activities to families. The Children's Museum has operated not only exhibition galleries but also educational programs for families and children. The Museum has developed its own programs and shared them with its affiliated museums. This article goes over the Museum's representative educational programs for children, their development progress and current operation, and the future direction for children's education program. Considering the social change, children's educational program is required to find right methodology and direction with proper educational goals for the next generation. First, in terms of content, programs should lead children to recognize the importance of cultural heritage with love and understanding. Second, in terms of format, museum's educational programs should be linked with online platform and public education so that more people can gain access to the quality museum education. It is important that museum education provides the meaning and value of cultural heritage to children so that they realize the importance of cultural heritage. When educational programs are provided, they should be present both on-site and online in connection with individual and public education so that anyone can enjoy museum education. This is the mandate of national museum.

      • KCI등재

        조선말기 百扇圖의 새로운 제작경향 - 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소장 〈百扇圖〉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百扇圖 草本〉을 중심으로

        권혜은 국립중앙박물관 2019 미술자료 Vol.- No.96

        본 논고는 19세기 이후 형성된 書畫의 유통과 확산의 양상을 당시 활발히 제작된 장식병풍 중 하 나인 <百扇圖>의 예를 통해 살펴본 글이다. 백선도는 화면에 다양한 형태의 부채를 겹쳐서 배치하고 각각의 扇面 안에 여러 종류의 畫題를 그린 것을 말한다. 부채와 扇面畫라는 소재는 이전부터 존재 하였지만 장식용 회화의 소재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이후로, 호사취미 경향을 반영하여 주로 屛風으 로 활발히 제작되었다. 지난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에서 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소장 <백선도>가 새로이 소개된 바 있다. 6폭으로 구성된 이 병풍에는 한 폭 당 5개 이상의 다양한 종류의 부채들이 등장하고 각 부채 면에는 단순히 채색한 것 뿐 아니라 다양한 畫目의 그림들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동일 한 草本이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전의 왕실이나 사대부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향유하였던 書畫는 민간 으로 확산되었고 시장을 통한 유통의 단계로 넓어졌다. 집안을 꾸미고 장식하는 풍조에 따라 화려 한 장식그림들이 선호되었고, 한 폭에 다양한 형태의 화면과 다채로운 畫目의 그림을 그려 완성하 는 백납도병풍 제작이 성행하였다.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한국 컬렉션의 상당수는 독일 주재 조선국 총영사이자 독일의 사업가였던 하인리히 콘스탄틴 에두아르 마이어(Heinrich Constantin Eduard Meyer, 1841~1926)의 수집품이다. 그는 1890년대 후반부터 1905년까지 조선과 독일을 오가며 다 양한 유물들을 수집하여 독일에 돌아가 1909년까지 순차적으로 수집품을 로텐바움박물관에 전달하 였으며, <백선도>도 그 중 하나이다. 새롭고 장식미가 돋보이는 <백선도>는 조선에 들어와 있던 외 국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백납도>는 제2폭의 뒷면에 “銅峴”이라는 지명이 적힌 종이조각이 거꾸로 붙어있어 흥미를 끈다. 동현은 지금의 서울 을지로 1가 와 을지로2가 사이에 위치했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圖畫署를 비롯한 惠民署·掌樂院 등의 관청과 市廛이 있어 가내수공업이 성하던 지역이었다. 실제로 1900년대 초 이곳에는 서화를 유통하는 상점 들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마이어가 수집했던 서화들의 구입처가 동현에 위치했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하겠다.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백선도>는 총 6폭의 병풍으로, 1980년대에 한국 서화 소장품들을 수리하 는 과정에서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선도 초본>은 1945년부터 1950년 사이 국립민족박물관에 입수된 작품이다. <백선도 초본>은 총 7점으로, 7점 중 6면 화면의 여백에 화면의 순서까지 정해져 있어 본래 총 8폭 병풍용 초본임을 알 수 있다. 한 화면에는 5개 이 상의 다양한 摺扇과 團扇들이 배열해있는데, 작은 장식에서부터 부챗살의 문양까지 초본부터 사실 적으로 묘사되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 ‘石間朱’, ‘紅’, ‘墨’, ‘靑’ 등과 같이 부채에 들어갈 색 대부분 을 지정하고, 빈 부채에는 ‘油’라고 적거나 비워두었으며 이 중 10개의 부채에는 花卉草蟲圖나 고사 인물도의 밑그림이 남아있다. 이를 실제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백선도>와 비교하면 화면의 크기와 비례까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어, 초본의 매뉴얼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펼쳐진 부채 면에는 산수, 고사인물, 화조, 영모, 초충, 어해 등 다양한 장르의 그림 이 그려져 있는데 花蝶圖나 魚蟹圖 등은 19세기 유행하였던 소재로 당시 화단의 경향을 잘 보여준 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金弘道의 전형적인 화풍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백선도나 백납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西園雅集圖는 상 대적으로 제한된 작은 화면에 그려야 하는 백납도나 백선도의 특성상 잘 다루지 않는 소재로,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김홍도의 <서원아집도>병풍과 화면의 구성이나 화풍 모두 매우 흡사하다. 더구나 <백선도>병풍의 몇몇 장면은 김홍도의 작품 중에서도 1796년작 《丙辰年畫帖》과 유사한 화면들을 다 수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롭다. <舍人巖>과 흡사한 山水圖를 비롯하여 <서원아집도>, <雙雉圖> 등에 서 김홍도 화풍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부채 속 그림을 그린 인물은 김홍도 화풍의 영향을 받은 직업화 가일 것으로 보이며, 작가는 《병진년화첩》을 직접 감상한 적이 있거나, 서화시장에 《병진년화첩》을 베껴 그린 副本이 유통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까지 알려진 병풍으로 된 백선도는 10점 내외인 것으로 파악되며, 이 작품들을 비교해보면 화면의 구성이 부채 1개 정도 차이가 있거나 비례와 좌우가 바뀌었을 뿐 화면구성이 매우 유사함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일정한 패턴의 화면구성은 같은 시기 민간에서 성행한 冊架圖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징으로, 19세기 서화의 수요층이 넓어짐에 따라 세밀한 표현과 화려한 장식성이 요구되는 회화들의 대량 제작을 위한 초본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도안이 복잡하여 범본이 필요한 곽분양행락도나 요지연도, 백동자도, 해학반도도 등의 규 모가 큰 장식병풍에서 적극 활용되었으며, 실제 남아있는 작품에서 몇 가지의 도상들이 반복하여 등 장하고 있어 초본을 참고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시장의 수요에 맞추어 대량 제작할 수 있는 초 본 활용이 성행했던 당시의 경향은 화면을 다채로운 부채들로 채우고 그 부채 면에 각기 다른 그림 을 그려야하는 백선도 제작에 있어서도, 초본을 요긴하게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테두리를 그 은 후 다양한 화목의 그림을 담는 백납도에 비해 백선도는 다양한 형태의 부채들을 먼저 그려야하는 공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대량 제작이 어렵고 그만큼 남아있는 작품이 상대적으로 적은 원인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백선도> 병풍과 국립중앙박물관 <백선도 초본>은 새로운 화풍이 수용되어 시도되었던 조선 말기 화단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다수의 백선도들이 박기준 의 작품과 유사한 화풍과 화면 구성 보이는 것에 비해, 김홍도의 영향이 분명히 드러나는 매우 이례 적인 예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더욱 심층적인 분석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This paper examines the circulation and dissemination of painting during and after the nineteenth century through a case study on the One Hundred Fans paintings produced as decorative folding screens at the time. One Hundred Fans paintings refer to depictions of layers of fans in various shapes on which pictures of diverse themes are drawn. Fans and paintings on fans were depicted on paintings before the nineteenth century. However, it was in the nineteenth century that they began to be applied as subject matter for decorative paintings. Reflecting the trend of enjoying extravagant hobbies, fans and paintings on fans were mainly produced as folding screens. The folding screen of One Hundred Fans from the collection of the Museum am Rothenbaum Kulturen und Künste der Welt (hereafter Rothenbaum Museum) in Germany was first introduced to Korean in the exhibition The City in Art, Art in the City held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n 2016. Each panel in this six-panel folding screen features more than five different fans painted with diverse topics. This folding screen is of particular significance since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holds the original drawings. In the nineteenth century, calligraphy and painting that had formerly been enjoyed by Joseon royal family members and the nobility in private spaces began to spread among common people and was distributed through markets. In accordance with the trend of adorning households, colorful decorative paintings were preferred, leading to the popularization of the production of One Hundred Fans folding screens with pictures in different shapes and themes. A majority of the Korean collection in the Rothenbaum Museum belonged to Heinrich Constantin Eduard Meyer(1841~1926), a German businessman who served as the Joseon consul general in Germany. From the late 1890s until 1905, Meyer traveled back and forth between Joseon and Germany and collected a wide range of Korean artifacts. After returning to Germany, he sequentially donated his collections, including One Hundred Fans, to the Rothenbaum Museum. Folding screens like One Hundred Fans with their fresh and decorative beauty may have attracted the attention of foreigners living in Joseon. The One Hundred Fans at the Rothenbaum Museum is an intriguing work in that during its treatment, a piece of paper with the inscription of the place name “Donghyeon” was found pasted upside down on the back of the second panel. Donghyeon was situated in between Euljiro 1-ga and Euljiro 2-ga in present-day Seoul. During the Joseon Dynasty, a domestic handicraft industry boomed in the area based on licensed shops and government offices, including the Dohwaseo (Royal Bureau of Painting), Hyeminseo (Royal Bureau of Public Dispensary), and Jangagwon (Royal Bureau of Music). In fact, in the early 1900s, shops selling calligraphy and painting existed in Donghyeon. Thus, it is very likely that the shops where Meyer purchased his collection of calligraphy and painting were located in Donghyeon. The six-panel folding screen One Hundred Fans in the collection of the Rothenbaum Museum is thought to have acquired its present form during a process of restoring Korean artifacts works in the 1980s. The original drawings of One Hundred Fans currently housed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was acquired by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between 1945 and 1950. Among the seven drawings of the painting, six indicate the order of their panels in the margins, which relates that the painting was originally an eight-panel folding screen. Each drawing shows more than five different fans. The details of these fans, including small decorations and patterns on the ribs, are realistically depicted. The names of the colors to be applied, including ‘red ocher’, ‘red’, ‘ink’, and ‘blue’, are written on most of the fans, while some are left empty or ‘oil’ is indicated on them. Ten fans have sketches of flowers, plants, and insects or historical figures. A comparison between these drawings and the folding screen of One Hundred Fans at the Rothenbaum Museum has revealed that their size and proportion are identical. This shows that the Rothenbaum Museum painting follows the directions set forth in the original drawings. The fans on the folding screen of One Hundred Fans at the Rothenbaum Museum are painted with images on diverse themes, including landscapes, narrative figures, birds and flowers, birds and animals, plants and insects, and fish and crabs. In particular, flowers and butterflies and fish and crabs were popular themes favored by nineteenth century Joseon painters. It is noteworthy that the folding screen One Hundred Fans at the Rothenbaum Museum includes several scenes recalling the typical painting style of Kim Hong-do, unlike other folding screens of One Hundred Fans or Various Paintings and Calligraphy. As a case in point, the theme of “Elegant Gathering in the Western Garden” is depicted in the Rothenbaum folding screen even though it is not commonly included in folding screens of One Hundred Fans or One Hundred Paintings due to spatial limitations. The scene of “Elegant Gathering in the Western Garden” in the Rothenbaum folding screen bears a resemblance to Kim Hong-do’s folding screen of Elegant Gathering in the Western Garden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n terms of its composition and style. Moreover, a few scenes on the Rothenbaum folding screen are similar to examples in the Painting Album of Byeongjin Year produced by Kim Hong-do in 1796. The painter who drew the fan paintings on the Rothenbaum folding screen is presumed to have been influenced by Kim Hong-do since the fan paintings of a landscape similar to Sainsam Rock, an Elegant Gathering in the Western Garden, and a Pair of Pheasants are all reminiscent of Kim’s style. These paintings in the style of Kim Hong-do are reproduced on the fans left empty in the original drawings. The figure who produced both the original drawings and fan paintings appears to have been a professional painter influenced by Kim Hong-do. He might have appreciated Kim’s Painting Album of Byeongjin Year or created duplicates of Painting Album of Byeongjin Year for circulation in the art market. We have so far identified about ten folding screens remaining with the One Hundred Fans. The composition of these folding screens are similar each other except for a slight difference in the number and proportion of the fans or reversed left and right sides of the fans. Such uniform composition can be also found in the paintings of scholar’s accoutrements in the nineteenth century. This suggests that the increasing demand for calligraphy and painting in the nineteenth century led to the application of manuals for the mass production of decorative paintings. As the demand for colorful decorative folding screens with intricate designs increased from the nineteenth century, original drawings began to be used as models for producing various paintings. These were fully utilized when making large-scale folding screens with images such as Guo Ziyi’s Enjoyment-of-Life Banquet, Banquet of the Queen Mother of the West, One Hundred Children, and the Sun, Cranes and Heavenly Peaches, all of which entailed complicated patterns. In fact, several designs repeatedly emerge in the extant folding screens, suggesting the use of original drawings as models. A tendency toward using original drawings as models for producing folding screens in large quantities in accordance with market demand is reflected in the production of the folding screens of One Hundred Fans filled with fans in different shapes and fan paintings on diverse themes. In the case of the folding screens of One Hundred Paintings, bordering frames are drawn first and then various paintings are executed inside the frames. In folding screens of One Hundred Fans, however, 2019fans in diverse forms were drawn first. Accordingly, it must have been difficult to produce them in bulk. Existing examples are relatively fewer than other folding screens. As discussed above, the folding screen of One Hundred Fans at the Rothenbaum Museum and its original drawings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aptly demonstrate the late Joseon painting trend of embracing and employing new painting styles. Further in-depth research into the Rothenbaum painting is required in that it is a rare example exhibiting the influence of Kim Hong-do compared to other paintings on the theme of One Hundred Fans whose composition and painting style are more similar to those found in the work of Bak Gi-jun.

      • 박물관 교육을 통한 문화의 재창조 : 국립광주박물관 현대작가 연계 교육 개발 과정과 사례를 중심으로

        이영신 국립중앙박물관·한국고고미술연구소 2012 동원학술논문집 Vol.13 No.-

        박물관은 시대가 변하면서 박물관이라는 장소적 인식이 점차적으로 공공화되어 가고, 그 기능은 더욱 다양화되어 가고 있다. 박물관은 사회의 문화적인 거점으로써 사회문화를 재확립하는 문화시설이면서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육의 장소로 변화하고 있다. 즉, 단지 유물의 연구조사·보존·관리·전시 외에도 사회와 국가의 문화거점시설이고, 동시에 문화생활을 창조하기 위한 학습의 장이 된 것이다. 박물관은 박물관 특성 즉 박물관이 속한 지역, 박물관의 소장품 및 전시와 밀접하게 연계되고 이용자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다목적 다차원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박물관이 지역 문화예술 기반의 중심 역할을 하는데 일조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이 글에서는 박물관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과정을 총 8단계로 나누어 정리하였으며, 국립광주박물관 현대작가 연계 교육 개발 과정 사례를 소개하였다. The human desires for cultural recreation, as well as cultural enjoyment, are on the rise due to the increasing amount of free time. Under such a social background, museums are faced with the social need for them to concentrate more on playing new roles in educational activity and developing diverse programs on the basis of cultural learning opportunities, experiences, etc. It can be said that exhibition is a way of revealing the aesthetic senses of historical meanings of relics, while education is a process of providing explanations turning the historical contexts of the relics into today's implications. Inasmuch as such, future museum education should be expanded to functions which provide spaces for creation and presentations to users with cultural talents, at the same time developing education programs reflecting the features of the relics owned by each museum. In this regard, this study aimed at suggesting how to develop, reinvent, and utilize education programs tailored to Korea's traditional cultures in reference to the development cases of the education programs at Gwangju National Museum in conjunction with modern artists.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활자(活字) 조사 : 연자활자(連字活字)를 중심으로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한국고고미술연구소 2005 동원학술논문집 Vol.7 No.-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조선후기에 주조한 활자가 다량 소장되어 있다. 이 활자 중 일부는 전시되고 실체가 밝혀지기도 했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활자의 구체적인 상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본 조사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활자의 구체적인 성격 파악, 학술적 분류 및 정리를 위한 진행 방안을 모색하는 일환에서 이루어졌다. 이를 위해 먼저 이들 활자가 어떻게 국립중앙박물관에 수입되어졌는지 조사하고 아울러 소장 활자의 편년과 활판 제작방식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연자활자(連字活字)를 소개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지금까지 중앙박물관 소장 활자는 막연히 규장각에서 사용하던 것이었다고 생각해왔으나 연자활자의 조사를 통해 볼 때 중앙박물관 소장 활자는 무신자(戊申字)가 제작된 시기인 현종(顯宗) 9년(1688)년부터 대한제국시대(大韓帝國時代) 정부에서 사용하던 활자까지 폭넓게 분포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박물관 해설 현황 및 전문해설사 양성 교육에 대한 소고 :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해설을 중심으로

        김희정 국립중앙박물관 2019 박물관 교육 Vol.3 No.-

        국립중앙박물관은 관람객에게 더 나은 편의를 제공하고자 2006년 고객지원팀을 발족하면서 문화 서비스 가운데 하나로 전시해설을 제공하고 있다. 중앙박물관의 전시해설은 전문해설사, 청년멘토, 성인 자원봉사자로 나뉘며 이 중 전문해설사는 오직 해설 업무를 위해 고용된 사람이므로 전문성은 기본이며, 본인의 활동에 대한 책임과 박물관 이미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고는 박물관 문화 서비스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해설’을 기본 개념에서부터 되짚어보고 선행 연구 자료 및 국립중앙박물관 전문해설 현황을 총정리하여 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실무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였다. The instruction programs for the exhibitions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hereinafter “the Museum”) are divided into two groups: professional docents and volunteers. Since the Museum first opened to the public in the Yongsan area, the professional docent programs have been operated without any substantial changes. However, the characteristics and purposes of the visits have changed to such an extent that IT or Al technology for docent programs have increasingly been developed. Thus, in what way should the “the docent programs of the Museum” be changed in the future? They shall not only provide a simple explanation of the exhibited object but also contain the historical backgrounds and values it holds in the contemporary period. Also, they shall include docent training programs that can deliver the goals of the exhibitions and create positive images thereof at the planning stage of the exhibitions. The well-delivered contents of the exhibitions can serve as the last piece of the puzzle to complete the exhibitions. However, the most serious problem is a lack of the mentoring program or system for docents even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As the first representative museum of Korea, it is necessary to suggest “a standard model” of the exhibition descriptions and establish “a professional docent training program.” In particular, as “empathy with the visitors” becomes an important element, empathy education with respect to “communication” is more strongly required. Lastly, the exhibition description of the Museum shall prepare for the method in which the digital guide and interactions can co-exist. This is because it is where the online and offline big data that can develop the existing artifacts and digital guides and the leadership of docents that can induce empathy from the visitors are integrated, and the exhibition description of the Museum that is capable of delivering the “warmth of the Museum” must be completed.

      • 신안전 교구재 공유 사례를 통한 중앙-소속박물관 협력 모델 모색

        김서영 국립중앙박물관 2017 박물관 교육 Vol.1 No.-

        박물관 교육이 국내에서 시작되고 대중화되며 현재에 이른 지금, 국립박물관의 교육적인 역할과 성격은 더욱 확장되고 다변화되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그동안 많은 성과와 자리매김을 이루어 낸 국립박물관 교육이 양적인 성과보다는 질적인 동반 성장의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이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국립중앙박물관-광주박물관 신안전 교구재 대여사례의 시사점을 분석함으로써 중앙박물관과 소속박물관 간의 교육 협력 체제 구축을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안하였다. 궁극적으로 신안전 교구재 공유 사례를 통하여 본 연구는 국내 박물관 교육의 발전에 있어 국립박물관이 지금까지 축적해 온 노하우와 유무형의 교육 자원, 풍부한 유물자원 및 인력자원을 바탕으로 향후 전문성이 강화된 질적 동반 성장으로 나아가야 함을 제시하였다. 이를 위하여 본고에서는 최근에 성공적으로 종료된 신안전 교구재 공유·활용 사례와 그 성과 및 시사점을 통하여 본 사례를 단순 물품의 공유 차원이 아니라 지식 접근을 통한 또 다른 지식의 내재화가 이루어졌다고 해석하고 “지식공유”의 차원에서 분석하고자 하였다. The study aims to realize the mutual growth of educational programs within national museums, to find a model for building a substantial cooperative system among personnel at this point when the role and function of museum have expanded and diversified and ultimately to propose the medium- and long-term direction for education in national museums who lead the nation's museum education. This paper introduces a special exhibition, The 40th Anniversary of the Shinan Shipwreck Excavation held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during July 26 - September 4. 2016 and its travelling exhibition at the Gwangju National Museum in October 25, 2016 - January 30, 2017 and the successful sharing of educational materials. In particular, the study intends to analyze the process and outcome of sharing materials not from the perspective of one-time exchange but from the perspective of knowledge sharing among museum educators and to suggest its implications. Based on the analysis, the study proposes three stages of building an education cooperative system betwee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and other national museums.

      • 국립중앙박물관 남산분관품(南山分館品)과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감식안(鑑識眼) :  

        김울림 국립중앙박물관·한국고고미술연구소 2005 동원학술논문집 Vol.7 No.-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남산분관품으로 분류되는 소장품이 4천1백여 점 소장되어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유물들은 근대 일본의 저명한 종교철학자이자 민예운동가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가 설립한 조선민족미술관의 수장품으로 출발하여, 한국민속학의 선구자인 석남(石南) 송석하(宋錫夏, 1905-1948)의 국립민족박물관을 거쳐 한국전쟁의 와중에 국립중앙박물관 남산분관품으로 접수이관된 것이다. 이 남산품은 크게 송석하의 문화민족주의를 실증하는 콜렉션으로, 일본에서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사상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증명하는 조선민족미술관 콜렉션으로 인식하는 두 가지 방향에서 학계에서 그 존재가 언급되어 왔다. 남산품은 그 현재적 의의와 민감성에도 불구하고 실제적 성격규명을 위한 노력이 적극적으로 경주되지 않았다. 이에 본고에서는 남산품의 성격규명을 위해 이관품 목록을 통해 밝혀진 현존유물뿐만 아니라 망실품 및 결번품 그리고 이관이전 타 박물관 대여품 등의 계량적 규모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물질 분류를 시도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남산품 전체에 대한 실체적 자료를 도출하며, 기존에 발표된 문헌자료들과의 대조를 통하여 원 콜렉터에 대한 추정과 이에 따른 성격분류를 수행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남산품이 전시 및 출판을 통해 어떠한 모습으로 공개되었으며 근현대 한국 및 일본의 미술운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들 유물의 역사적, 현재적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 KCI등재후보

        國立中央博物館 所藏 通信使 受贈 日本 金屛風 考察

        정미연 국립중앙박물관 2017 미술자료 Vol.- No.91

        After the Imjin War, also known as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1592–1598), the Tokugawa shogunate presented to twelve missions of Tongsinsa (通信使, Joseon diplomatic delegation to Japan) gold-leafed folding screens, which were appended to the diplomatic letter. Japanese academia refers to these screens as "folding screens presented to the Joseon court as a gift" (贈朝鮮王室屛風) or zōchō byōbu (贈朝屛風) for short. The Joseon court received 20 pairs of folding screens upon each mission from the fourth through the eleventh, eventually totaling more than 200 works. However, only three works in the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have been identified as this particular type of folding screen–a pair of Folding Screen with Image of Wild Geese and Lotus (芙蓉雁圖屛風) and one Folding Screen of with Image of Peonies (牡丹圖屛風). This paper determines that the Japanese folding screens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collection– Tadanobu (忠信) and Warriormonks at Yoshino (吉野) and Kasuga Festival (春日祭) (Duk 2152), and Chinzei Hachirō (鎮西八郎) (Duk 2119)–are in fact among those presented to Joseon court by the Tokugawa shogunate. Tadanobu and Warriormonks at Yoshino and Kasuga Festival folding screens and the Chinzei Hachirō folding screen became part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collection early on in 1909 through the means of transfer and acquisition, respectively. Tadanobu and Kasuga were transferred from the Supplies Department (用度課), which was an organ likely affiliated with the Imperial Museum of the Korean Empire, the first modern museum in Korea. Tadanobu and Warriormonks at Yoshino and Kasuga Festival folding screens were gifted to Gapsin sahaeng, meaning the eleventh diplomatic mission dispatched in 1764. Tadanobu and Warriormonks at Yoshino folding screen painted by Kanō Tanrin (狩野探林, 1732–1777) depicts an episode from the life of the loyal subject Satō Tadanobu (佐藤忠信) as he risked his life to save his lord, Minamoto no Yoshitsune (源義經, 1159–1189), from a group of monk-soldiers at Yoshino (吉野). As emphasized in this screen, the theme of loyalty corresponded to a remark made by Arai Hakuseki (新井白石, 1657–1725) to the eighth diplomatic mission in 1711: "painting is the sole means to disprove that Japanese merely pursue a policy of militarism." In other words, the Tokugawa shogunate sought to convey particular intentions to Joseon by carefully choosing the motifs of the folding screens. Painted by Kanō Dōju (狩野洞壽, ?–1777), the Kasuga Festival folding screen portrays a parade (お渡り式, owatari shiki) during the festival of the Kasuga Ōmiya and Wakamiya Shrine (春日大宮若宮御祭禮, Kasuga Ōmiya Wakamiya gosairei) held at Kasuga Shrine and Kōfukuji (興福寺), a historic temple in Nara (奈良). During the owatari shiki parade, the arts of dengaku (田樂, ritual music and dancing performance) and isaseuma (將馬, pulling a horse offered by feudal noble family), both of which are dedicated to gods, are performed. Moreover, keiba (競馬, horse racing) and nodachi (野太刀, carrying a large sword) events intended to show off the bravery of warriors were included in the parade. Although the Joseon populace did not know about such traditional Japanese arts, the Tokugawa shogunate seems to have been attempting to boast of their deep-rooted ritual traditions and advanced level of culture through the Kasuga Festival folding screen. Tadanobu and Warriormonks at Yoshino and Kasuga Festival folding screens presented to the eleventh diplomatic mission in 1764 and the Folding Screen of with Image of Peonies owned by the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all bear a signature mark that contains the Chinese character "圖 (drawing)" and the pen name of the artist, as well as the artist’s name seal. Such features only appear in the folding screens given to the eleventh diplomatic mission in 1764, and these three screens carry signatures written in this manner reserved for the Tokugawa shogunate. Thus, it can be observed that the Tokugawa shogunate meticulously oversaw how to write the artist’s signature, how to place the backing paper, and even how to mount these paintings. Kanō Ryūsetsu (狩野柳雪, 1647–1712) painted the Chinzei Hachirō folding screen that the Tokugawa shogunate gifted to the Joseon court during Sinmyo gihaeng, the eighth diplomatic mission in 1711. This screen portrays an old fable in which Minamoto no Tametomo (源為朝, 1139–1170?), an uncle of Kamakura shogunate founder Minamoto no Yoritomo (源頼朝, 1147–1199), subjugated the Kyushu area to which he had been exiled and earned the nickname "Chinzei Hachirō (鎮西八郎, The Firstborn of the God of War in Kyushu)." The Chinzei Hachirō screen includes an explanatory note recounting the theme of the painting. Arai Hakuseki ordered the addition of this note in order to allow Joseon people to understand the story. Such an addition was made exclusively in the case of the eighth mission in 1711. The original explanatory note for the Chinzei Hachirō screen is now lost, and only a slight vestige of the note remains. Nonetheless, the Chinzei Hachirō screen is significant as the sole extant example demonstrating an attempt by the Tokugawa shogunate to assist Joseon viewers in understanding its motif. Japanese folding screens presented to the Joseon court provided a medium for transmitting the cultural and political policies of the Tokugawa shogunate to Joseon. By carefully choosing the motifs for the screens, the Tokugawa shogunate intended to demonstrate that, like Joseon, Japan could fully appreciate Confucian values and enjoyed a long history and sophisticated indigenous culture. The rediscovery of Tadanobu and Warriormonks at Yoshino, Kasuga Festival, and Chinzei Hachirō folding screens as gifts to the Joseon court will provide a new perspective for the study of the Joseon Tongsinsa, which has previously been focused on its political and social aspects. 임진왜란 이후 총 열두 차례에 걸쳐 파견된 朝鮮의 通信使는 에도 막부[江戶幕府, 1603~1868]로부터 國書에 대한 別幅 중 하나로 金屛風을 증정 받았다. 이 일군의 금병풍을 일본 학계에서는 ‘贈朝鮮王室屛風’, 줄여서 ‘贈朝屛風’이라 부른다. 통신사를 통해 조선국왕에게 증정된 금병풍은 그 전체 규모가 총 이백여 점에 달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확인된 작품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芙蓉雁圖屛風> 한 쌍과 <牡丹圖屛風> 한 점 등 총 세 점뿐이다. 본고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본병풍인 덕수2152 두 점과 덕수2119 한 점이 에도 막부가 증정한 금병풍이라는 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忠信吉野軍圖屛風>(덕수 2152-2)과 <春日祭圖屛風>(덕수 2152-1)은 제11차 갑신사행(1764) 때 조선왕실에 증정된 병풍이다. 가노 단린[狩野探林](1732~1777)이 그린 <忠信吉野軍圖屛風>은 주군 요시쓰네를 요시노의 승병 무리들로부터 구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한 충신 사토 다다노부의 일화를 그렸다. ‘忠’이라는 유교적 가치관을 강조하는 이 병풍의 화제는 제8차 신묘사행(1711) 당시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1657~1725)가 “일본인들이 武만 숭상하는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단은 회화밖에 없다.”라고 언급한 것에 부합한다. 가노 도주[狩野洞壽](?~1777)가 그린 <春日祭圖屛風>은 나라[奈良]의 유서 깊은 사찰인 고후쿠지[興福寺]와 가스가 신사[春日大社]에서 거행하는 ‘가스가 오미야 와카미야 제례[春日大宮若宮御祭禮]’의 ‘오와타리시키[お渡り式]’ 행사를 묘사했다. 이 행렬은 신에게 바치는 예능인 덴가쿠[田樂]와 이사세우마[將馬], 무사들의 용맹함을 과시하는 야부사메[流鏑馬], 게이바[競馬]와 노다치[野太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1차 갑신사행 때 조선왕실에 증정된 <忠信吉野軍圖屛風>과 <春日祭圖屛風>, 그리고 가노 바이쇼[狩野梅笑](?~1808)필 <牡丹圖屛風>(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은 화가의 號와 ‘圖’를 결합한 서명, 그리고 화가의 이름을 새긴 인장이 병풍 오른쪽 하단에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는 갑신사행 때 증정된 금병풍을 규정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鎮西八郎圖屛風>(덕수2119)은 제8차 신묘사행(1711) 당시 증정된 병풍으로 가노 류세쓰[狩野柳雪](1647~1712)가 그렸다. 이 병풍은 가마쿠라 막부를 개창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1147~1199)의 숙부인 미나모토노 다메토모[源為朝](1139~1170?)가 자신의 유배지였던 규슈를 평정하고 ‘진제이 하치로[鎮西八郎]’라는 별명을 얻은 고사를 그리고 있다. <鎮西八郎圖屛風>에는 화제의 내용을 해설한 설명문이 부착되었는데, 이는 일본의 고사를 모르는 조선인들을 위해 아라이 하쿠세키가 고안한 방법으로, 신묘사행 때만 취해진 특별한 조치였다. 비록 지금은 설명문의 흔적만이 남아있지만, <鎮西八郎圖屛風>은 일본의 고사에 익숙하지 않은 조선인의 이해를 돕고자 막부 차원에서 노력하였음을 보여주는 현존 유일의 작례이다. <忠信吉野軍圖屛風>과 <春日祭圖屛風>, 그리고 <鎮西八郎圖屛風>은 1909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각각 ‘引繼’와 ‘購入’이라는 형태로 박물관 소장품이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관리카드에는 <忠信吉野軍圖屛風>과 <春日祭圖屛風>이 1909년 ‘用度課’에서 인계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용도 과’는 근대적인 직제에 보이는 용어이다. 이 기록은 1909년 11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박물관인 대한제국 帝室博物館의 개관과 함께 근대적인 성격을 지닌 어떤 기관의 ‘용도과’부터 두 병풍이 ‘인계’ 되었음을 의미할 가능성이 있다. <忠信吉野軍圖屛風>의 화제에 담긴 ‘충’이라는 유교적 가치, <春日祭圖屛風>의 화제가 내포하는 일본 특유의 전통적인 사회의 모습, 그리고 미나모토노 다메토모라는 가마쿠라 막부 관련 인물의 일화를 통해 武士政權이라는 에도 막부의 태생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鎮西八郎圖屛風>은 막부가 조선에 증정한 금병풍에 위탁한 정치, 외교, 문화적 메시지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한국과 일본은 정치, 문화적으로 상호 막대한 영향을 주고받은 인접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회화사는 물론 일본회화사 연구에서도 지금까지 양국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을 균형 있게 고려한 미술사 연구는 부족한 상황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忠信吉野軍圖屛風>(덕수 2152-2)과 <春日祭圖屛風>(덕수 2152-1), 그리고 <鎮西八郎圖屛風>(덕수 2119)은 조선의 시각에서만 바라보았던 기존의 통신사와 한일회화교류사 연구에 일본 측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과 의도까지 시야에 넣은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연구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노년층 대상 교육의 변화를 통해 본 박물관의 역할 모색 : 국립중앙박물관 노년층 대상 교육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문정훈 국립중앙박물관 2018 박물관 교육 Vol.2 No.-

        본 연구의 목적은 노년층 대상 교육의 변화를 통해 박물관의 역할을 모색해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노인 혹은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흐름과 현황을 확인하고 참여자의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박물관이 긍정적인 노년기를 위해 중요한 매개체로서 사회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949년 교사 대상 교육, 1970년대 관원을 위한 강좌, 1987년 일반인을 위한 프로그램은 노인 강좌로 시작하는데 이는 ‘노인’을 교육 대상으로 분리·인식하였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노인 강좌의 개설 후 꾸준히 노년층을 대상으로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강좌와 노인과 건강, 전통문화 이론, 문화영화 관람, 고적답사 등 60세 이상의 참가자들은 다른 기관의 노인대학과는 차별화된 과정과 운영에 만족하였다. 2013년부터는 ‘박물관역사문화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이전의 노년층 프로그램이 일방적 전달식의 강의 중심이었다면 현재의 프로그램은 참여자 중심의 다양한 교육 방식에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과 노인에 의한, 노인에 관한 프로그램 등 참여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관점과 접근은 앞으로 변화하는 노년층에 대비한 박물관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현대의학의 발달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 사회의 노인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현대의 노인들은 보다 건강한 노년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박물관·미술관은 사회교육과 평생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통해 노인계층에게 자존감 회복과 가족관계 개선 등 삶의 질을 향상 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물관 교육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징과 노년층과의 접점, 유관기관과의 차별성, 새로운 노년층의 진입경로 개척, 운영 방식의 변화 등의 문제가 있기에 체계적인 준비과정을 거쳐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operates a lecture program every Wednesday that is open to anyone interested in the humanities. This program developed out of the lectures for adults and senior citizens (e.g., Eunha Culture School) which began before the museum relocated to its present site in Yongsan. After a process of evolution over the years, it has been held under the name “History and Culture Lectures” since 2013. It attracts the largest number of attendees per session among all learning programs under the Department of Education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The History and Culture Lectures are particularly popular among senior citizens, who make up about 76 percent of total attendees. Roughly 68 percent of the senior participants have attended the lecture program for at least two years, including the lectures held prior to the relocation to Yongsan, and about 99 percent of them report an intention to continue attending the program. These survey results indicate that active participation by senior citizens should continue in the future. In that case, what roles should a museum play for these regular audiences? How should museums view senior visitors? How can museums cope with changes in society? All of these questions require research and new approaches from diverse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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