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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산서원과 여주이씨

          이수환 ( Lee Soo-hwan ) 한국계보연구회 2014 한국계보연구 Vol.5 No.-

          본고는 조선시대 영남의 대표적인 서원인 옥산서원과 그 제향자인 이언적 가문에 대해 검토하였다. 경주의 驪州(驪江)李氏는 본래 경기도 驪州牧 土姓으로 고려후기까지 여주의 戶長職을 세습하다가, 고려 말에 본관을 떠나 영남으로 내려온 것 같다. 영남에 정착한 초기에는 迎日에 살다가 이언적의 조부 李壽會가 경주인 生員 李點의 사위가 되어 경주로 온 것이다. 이 가문이 경주 지방에서 확고한 재지적 기반을 갖게 된 계기는 이수회의 아들 李蕃이 손소의 사위가 되면서부터이며, 이로 인해 그의 처가 소재지인 양좌동은 마침내 손·이 양 성의 세거촌이 되었다. 경주 여강이씨 가문은 17세기 이후 급격히 족세가 번창하면서 경주권의 어느 가문보다 대·소과 합격자를 많이 배출하여 대표적인 명문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名祖 이언적이 사후에 ‘宗廟配享'[明宗]과 ‘文廟從祀'라는 人臣으로서 또는 학자로서 최고의 영예를 향유한 데서 이후 이 가문은 영남의 대표적인 명문으로 자리 잡았다. 옥산서원은 이언적 사후 경주 지역 사림들이 이언적의 학통을 계승하기 위해 1572년(선조 5)에 건립하였다. 옥산서원은 당시 慶州府尹 李齊閔이 權德麟(이언적 門人) 등 鄕中士林 13명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를 監司에게 보고하자, 감사 任說이 禮曹에 狀請하여 창건하였다. 옥산서원은 설립 후 당시 조선왕조의 서원진흥책에 힘입어 급속한 발전을 보게 되었으며, 특히 제향자인 이언적이 1610년(광해군 2)에 ‘동방 5현'의 한 분으로 文廟에 종사되자 그 영향력은 더욱 크게 증대되었다. 이후 옥산서원은 막대한 경제적 기반을 토대로 경주부의 유림사회를 실질적으로 대표하면서 지역 유림들의 교육 및 정치·사회적 활동의 중심지로 역할하였으며, 나아가 당시 중앙 정계의 치열한 정쟁 속에 도산서원과 함께 영남 남인의 대표적인 서원으로서 남인의 정치적 명분 제공과 이들의 상호결집을 위한 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편 옥산서원은 인조반정·갑술환국 등 중앙 정계의 정쟁에서 남인 세력이 점차 실세함에 따라 院勢가 상당히 위축되었지만, 영·정조 대에 와서 다시 중앙 정계로부터 주목받았다. 영·정조 두 왕은 『대학』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이때 주자의 『大學章句』의 결유된 부분을 보완하여 『大學章句補遺』를 다시 편한 이언적의 학문이 주목되면서 그를 봉양하는 옥산서원도 중앙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옥산서원은 경주권을 넘어 영남의 대표적인 서원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으며, 대원군의 전면적인 원사훼철 때에도 文廟從祀諸賢의 서원으로서 남게 되었다. This study is to examine Oksanseowon, a representative academy in Youngnam region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the Lee clan who were responsible for Confucian ritual at the academy. The Yeoju Lee clan in Gyeongju came from Yeoju-mok, Gyeonggi-do where their ancestors lived until the late Goryeo dynasty, some of them served as Hojang in Yeoju. The clan is believed to have left Yeoju and moved to the Youngnam region around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Early in their settlement in the Youngnam region, they lived in Youngil until Lee Su Hee, grandfather of Lee Eon Jeok married to a daughter of Lee Jeom, a saengwon in Gyeongju and the entire clan moved to Gyeongju. The clan came to power in academic aspects in Gyeongju when Lee Beon, a son of Lee Su Hee, became a son-in-law of Son Soh. Finally, Yangja-dong, home to his wife's household, became a village of residence for generations of both Son and Lee clans. The Yeogang Lee clan in Gyeongju enjoyed prosperity all of sudden since the 17th century, produced more successful examinees in national civil service exams than any other clan in the Gyeongju area, making the clan establish itself as a representative noble family. In particular, after his death during the reign of Myeongjo, Lee Eon Jeok enjoyed the highest honor as a subject to the king and as a scholar such as Jongmyobaehyang [Myeongjong] and Munmyojongsa, which was a key influence to make this clan a leading noble family in the region. Oksanseowon was built in the 5th year of King Seonjo in 1572 by Confucian scholars in the area after his death with the aim of inheriting academic tradition of Lee Eon Jeok. The academy was established as the then Gyeongju mayor Lee Jae Min accepted a suggestion of 13 Confucian scholars in the village including Gwon Deok Lin, a pupil of Lee Eon Jeok and reported it to Governor Im Seol E, who recommended to the Ministry of Rites. Since its foundation, Oksanseowon witnessed a rapid growth with the help of academy promotion policy of the then king of the Joseon dynasty, and especially, when its former ritual manager Lee Eon Jeok was enshrined as one of the five sages in the Orient in the 2nd year of King Gwanghae in 1610, its influence grew stronger than ever before. Afterwards, with enormous economic resources, Oksanseowon became a symbol of Confucianism in Gyeongju, playing a center of education, politics and social activities of the local Confucian scholars. Beyond that, as a representative academy of the Namin camp in the Youngnam region together with Dosanseowon, Oksanseowon played a role in providing a political cause for the entire Namin camp and uniting them amid fierce political struggles in the then central government. While the academy's influence considerably decreased, as the Namin camp began to lose power in political struggles in the central government such as Injobanjeong and Gapsulwhanguk, it drew attention again of the central government during the reign of Youngjo and Jeongjo. The two kings had special interest in Daehak. Accordingly, while the two kings ruled, much attention was paid to the academic achievements of Lee Eon Jeok who supplemented missing parts of Daehakjanggu of Chu Hsi and re-complied Daehakjangguboyou, and therefore, the academy which enshrined him was treated specially from the central government. In this situation, the academy established its firm status as a representative academy in Gyeonggju and Youngnam region and survived Daewongun's full-scale destruction of academies and temples as an academy of sage enshrined in a Confucian sh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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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彦迪 문학의 창작현장과 遺蹟

          이수환(Lee Soo-Hwan) 대동한문학회 2008 大東漢文學 Vol.29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고는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며 이 시기의 詩문학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晦齋 李彦迪의 문학창작 현장과 그 유적에 대한 연구이다. 이언적의 시가 창작된 현장은 그의 생애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일생 동안 몇 번의 외직을 제외하면 고향인 良佐洞과 인근의 玉山別業 그리고 오랜 관료생활을 한 서울과 말년의 귀향지인 강계에서 보냈다. 이 중 서울 생활은 관료생활의 어려움을 고려하면 詩 창작이 많지 않았다고 보여지고, 귀향지인 강계는 그 현장을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본고에서는 옥산별업(獨樂堂, 定惠寺)과 양좌동을 중심으로 그 현장과 역사적 유적에 대해 검토하였다. 특히 옥산별업은 이언적의 젊은 시절 독서처였고, 또한 그의 대표적인 道學詩나 自然詩가 이곳에서 창작되거나 또는 이곳을 대상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다만 이 두 곳은 이언적 생시에는 새롭게 조성되고 있었던 마을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유적이 많지 않았고, 그의 사후에 조성된 유적이 많다는 점에서 본고에서는 이중에서 특히 이언적의 학문을 현향, 계승하기 위해 세워진 玉山書院을 포함하여 검토하였다. 또한 옥산별업은 이언적의 독서처였고 또한 자연 승경이 좋아, 조선중기 이후 많은 학자들이 래왕하면서 玉山九曲을 설정하는 등 많은 詩歌를 읊었는데, 본고에서는 이 내용도 포함하여 검토하였다. This paper examined literature creation sites and remains of Lee Eon-jeok(李彦迪) (pen name: Hoijae(晦齋)) who was a representative Sung Confucianism scholar to be important at poetry literature history at that time. The places where Lee Eon-jeok's poetry was created could be identified through Lee's career. Lee Eon-jeok mostly spent his life time at hometown of Yangjwadong(良佐洞), neighboring place of Oksanbyeoleob(玉山別業), Seoul where he lived government official life for a long time, and Ganggye where he returned to hometown to live life in last phase of his life, except for working for some of local government posts in his lifetime. And, Lee's living life at Seoul seemed not to have a lot of poetry creation considering his difficulties of government official, and Ganggye where Lee returned to hometown could not identify its place at the moment. Considering such a fact, the paper investigated sites as well as historical remains based on Oksanbyeoleob (Dokakdang(獨樂堂), Jeonghyesa(定惠寺)) as well as Yangjwadong. In particular, Oksanbyeoleob was place where Lee Eon-jeok read books in his young days to write not only poetry of study of human nature but also poetry of the nature and to select the place as an object. Both places, however, villages that were newly constructed when Lee Eon-jeok was alive had not many historical remains but remains being constructed after his death: This paper examined Oksanseowon(玉山書院) and others that were erected to make Lee's science widely known and to inherit it. And, Oksanbyeoleob was place where Lee Eon-jeok read books and a lot of scholars visited since the middle of Chosun Dynasty to write Oksankukok 玉山九曲) and a lot of other poems: This paper examined contents of those oems.

        • KCI등재

          16세기전반 영남사림파의 동향과 동방오현 문묘종사

          이수환(Lee Soo-hwan)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11 한국학논집 Vol.0 No.45

          본고는 16세기 전반 사화기 영남사림파의 정치적 동향과 '東方五賢'의 문묘종사 과정을 검토하였다. 이 시기 사림파의 형성과 확산에는 영남출신의 金宗直과 그의 2대제자인 金宏弼·鄭汝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시기 사림파의 구성을 보면 김종직의 문인이 주축이 되고, 김굉필·정여창의 사우·문인이 첨가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영남사림파의 학문적 기반은 이후 중종조 金安國을 거쳐 李彦迪·李滉·曹植 등 영남학파로 계승되었다. 이 시기 사림파의 학문·정치·사회적 활동의 중심에 영남사림파와 영남학파가 있었고, 그 대표자인 김굉필·정여창·이언적·이황은 趙光祖과 함께 선조즉위 후 士林政治 시대의 개막과 함께 이른바 '東方5현'으로 추존되면서 조선성리학의 적통을 계승한 분으로 확정 되었다. 사림파는 신왕조의 건국을 내심으로 반대하였던 국초의 재야세력과 15세기 중엽 세조의 등극을 내심 불의로 간주하였던 절의파의 계통을 계승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훈구파와는 다른 '정몽주-길재-김종직-김굉필-정여창'으로 이어지는 학문적인 계보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후 인종조에는 조광조를 김굉필에 연결시키고, 명종말 퇴계에 의해 이언적이 추숭되면서 東方四賢(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의 승무운동과 함께 道統이 확정되었다. 이후 사림파들은 그들의 도통을 확정짓기 위해, 퇴계를 포함하여 동방오현의 문묘 종사를 추진하였다. 동방오현 문묘종사는 선조 1년부터 광해 2년 9월까지 43회에 걸친 상소와 집중적인 논의를 거치면서 하나의 국론으로 통일되다시피 하여 성사되었다. This study reviews the political trend of Youngnam Sarim school in the early 16th century and the process of enrichment of scholars in Confucius by Dongbang 5 Wise men. In organization and expansion of Sarim school in this era, Kim Jongjik and his disciples, Kim Goingphil and Jung Yoechang played a decisive role. Looking into the structure of Sarim school in this era, friends and disciples of Kim Goingphil and Jung Yoechang were added to Kim Jongjik and his people. Such academic background of Youngnam Sarim School formed through such process later succeeded to Lee Unjeok, Lee Hwang and Joek Sik after Kim Ankuk in Jungjong's Era. In the center of academic, political and social activities of Sarim school in the era, there were Youngnam Sarim school and Youngnam school. The representatives such as Kim Goingphil, Jung Yeochang, Lee Unjeok and Lee Hwang together with Jo Gwangjo, were honored as 'Dongbang 5 Wise Men' after opening of Sarim Politics with Seonjo's accede to the throne and was recognized as the people who succeeded the man line of descendent of Joseon's Neo-Confucianism. Sarim school has a different academic genealogy succeeding to Mongju Jung-Kil Jae-Kim Jongjik-Kim Goingphil and Jung Yeochang from Hoongu school in that they are succeeding Jeolui school who did not agree to the found of Lee Dynasty and Sejo's accedes to the throne in the 15th century. As Jo Gwangjo was introduced Kim Goingphil during Injong's era, and as Lee Unjeok was introduced by Lee Hwang in the end of Myungjong's era, Dotong was established with the Seungmu movement by Dongbang 4 Wise Men (Kim Goingphil, Jung Yeochang, Jo Gwangjo and Lee Unjeok). Later the people of Sarim school, to establish Dotong, promoted the enrichment of scholars in Confucius of Dongbang 5 Wise Men including Lee Hwang. The enrichment of scholars in Confucius of Dongbang 5 Wise Men was completed by a public opinion through intensive discussion and 43 times of appeals to the King from the 1st year of Seonjo to the 2nd year and 9th month of Gwang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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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 지역 고문헌의 수집과 활용

          이수환(Lee soo hwan) 동아인문학회 2016 동아인문학 Vol.0 No.36

          본고는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고문헌의 수집과 조사현황 및 이에 대한 활용방안을 간략히 제언한 것이다. 영남 지역 고문헌의 수집・조사는 1980년대 지방 대학 부설 연구기관이 주축이 되어, 고문서를 중심으로 영남 지역 고문헌에 대한 수집・조사・간행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는 고문헌의 역사적 가치와 보존관리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었고, 이는 곧 중앙 연구기관의 활발한 고문헌 수집・조사를 견인할 수 있는 역할을 하였다. 이에 본고에서는 중앙의 국사편찬위원회・한국학중앙연구원・규장각 한국학연구원・문화재청과 지방의 대학 및 연구기관별로 영남 지역 고문헌, 그 가운데 조선시대 고문서 및 향촌사회사 자료를 중심으로 그 수집 및 조사 현황을 검토하였다. 이렇게 수집・조사된 고문헌은 현재 이들 기관들이 구축한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상호 연계하고, 이를 활용한 콘텐츠개발에 힘쓰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콘텐츠개발에는 연구자들이 고문헌을 단순히 연구나 보존의 대상에서 벗어나, 이를 지식정보와 기반으로 접근하는 인식의 전환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This articles aims at reviewing the current status of collecting and researching old documents focused on Youngnam region and making simple suggestions about how to utilize them. Collecting and researching old documents in Youngnam region started since 1980"s with efforts led by research institutes in local universities to collect, research, and publish them. It provoked recognition for historical values of the old documents and their preservation, playing a role to lead active collecting and research activities by the central research institutes. Accordingly, this article reviews the current status of collecting and researching old documents in Youngnam region, in particular those from the Joseon era and local social historical sources by central research institutes such as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Academy of Korean Studies, Kujanggak Institute of Korean Studies,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and local universities and research institutes. These collected and researched old documents are now being used for linking database systems built by the institutes and developing the contents by utilizing them. For development of these contents, first of all, researchers should convert their own perception to approach to old documents as the bases for knowledge and information, not just as objects for studies and preservation.

        • KCI등재

          특집: 다문화선교 : 다문화 이주민을 위한 선교적 목회의 역할

          이수환 ( Soo Hwan Lee ) 한국복음주의선교신학회 2015 복음과 선교 Vol.30 No.-

          Korean society now has entered a multicultural society rather than single cultural society in the midst of the localizing world. In 2015, the number of multicultural immigrants increased to 1,569,470 and due to this, in Korean society, lots of social and religious conflicts are occurring through multicultural immigrants. Accordingly, not only Korean society but also Korean church will have increasing tension and discord between religions if they fail to cope appropriately with multicultural immigrants` situations and problems, so it is very important to understand diverse religions of the individuals and groups. Particularly, multicultural immigrants` problems such as self-esteem, stress, culture shock still remain a difficult task. Since these problems will appear in diverse forms, the missionary task of Korean church becomes clear, and through case study and research, the role of missionary ministry should be carried out. This research examined the role of Christian missionary ministry for multicultural immigrants in Korea. Accordingly, this research referred to the necessity of Korean church`s missionary ministry and case study through multicultural immigrants` types and conflict phenomena, and through this, discussed the role of missionary ministry through systematic multicultural Korean language education, missionary ministry through multicultural education of the Bible, missionary ministry through the role of the multicultural counselor, and missionary ministry through social welfare. The most urgent task of Korean church`s missionary ministry in accordance with Korean society`s unchanging interest in multicultural immigrants is to develop receptive, considerate, and specialized multicultural ministers with open mind and unsparing love working together with church members for multicultural immigrants.

        • 공중사상측면의 승강장 안전시스템의 검지기술연구

          이수환(Lee Soo-Hwan), 김유호(Kim You-Ho), 편선호(Pyeon Seon-Ho), 김진철(Kim Jin-Cheol), 조현정(Jo Hyeon-Jeong) 대한전기학회 2009 대한전기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Vol.2009 No.4

          Came to make a many development from the domestic railroad operation. The light rail transit enterprise is constructed plentifully. Consequently, the passenger safety importantly this, is recognized. The safety device which is applied in train control technique of the new railroad enterprise is important. Respects the updated technology development and an introduction of train control the safeguards is applied. Consequently, From the present paper researched the t ype and a technical development present condition of perception technique from platform safety device.

        • KCI등재

          Cyclooxygenase 억제제 검색을 통한 항염증제 개발 연구

          이수환 ( Lee Soo Hwan ), 정성원 ( Jung Sung Won ), 이우영 ( Lee Woo Young ) 대한화장품학회 1994 대한화장품학회지 Vol.20 No.1

          Gram 음성균의 세포벽 성분인 lipopolysaccharide는 각종 세포에서의 prostaglandin 합성을 증진 시키며 이는 cyclooxygenase-2의 선택적 발현에 기인한다는 사실이 이미 보고된 바 있다. 본 연구에서는 mouse peritoneal marophage를 대상으로 하여 LPS의 prostaglandin 합성 증진 작용에 대한 특성으로 검토함으로써, COX-2에 대한 선택적 저해제 검색에 이용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확인코자 하였다. LPS는 peritoneal macrophage에 처리시 약 8시간 정도의 lag time을 보인 후 prostaglandin 합성을 현저히 증진 시켰으며, 이는 주로 COX 활성의 증가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한 LPS의 작용은 항염증제인 dexamethasone에 의해서 강하게 억제 되었으며 metabolic labeling 결과 이는 COX-2의 생합성을 억제하는데 기인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mouse peritoneal macrophage에서의 LPS에 의한 prostaglandin 합성 증진 작용은 rat alveolar macrophage와 정성적으로 동일함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본 실험 조건은 COX-2에 대한 선택적 저해제 검색에 응용될 수 있음을 확인 하였다. 본 실험 조건하에서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제인 ketoprofen의 작용을 검토한 결과 ketoprofen은 COX-1에 비교적 선택적인 저해 작용을 보이는 것으로 추정 되었다. It is weal known that bacterial lipopolysaccharide (LPS) stimulates prostaglandin synthesis in various experimental system via enhancing the expression of cylooxygenase-2 (COX-2). This study was designed to characterize U)5-induced prostaglandin synthesis in mouse peritoneal macrophages LPS-stimulated prostaglandin synthesis in macrophages with short term exposure was not so much prominent, but there was a burst in prostaglandin synthesis 8 hours after the LPS treatment and this u·as accompanied with the increase of cyclooxygenase activity, Dexamethasone markedly inhibited prostaglandin synthesis in this system. Metabolic label ins data supported above observations and thus, it could be concluded that LPS induces the do novo synthesis of COX-2 by which it stimulates the prostaglandin synthesis in mouse peritoneal macrophages, These data suggested that this experimental model system could be used for the screening procedure of COX-2 selective inhibitors. Ketoprofen, a non steroidal anti inflammatory agent, appeared to inhibit COX-1 relatively more selectively than CO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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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minal Remnants from Object-verb Idioms in Korean

          Soo-Hwan Lee(이수환), Doo-Won Lee(이두원) 한국언어학회 2018 언어 Vol.43 No.2

          The fronting of a constituent within an idiom without recourse to any of the linguistic contexts eradicates its idiomatic interpretation. With contexts taken into consideration, however, interesting observations are made. When a relevant antecedent context is presented, an idiomatic (i.e., idiom-oriented) object within some verbal idioms consisting of an object and a verb may undergo movement to the sentence-initial position, preserving the idiomatic interpretation, regardless of whether it is caseless or case-marked. The presence or absence of the corresponding idiomatic correlate in the antecedent plays a crucial role in extracting an object out of its verbal idiom. From such view, the present work raises an objection to the in-situ approach to idiomatic fragments or idiomatic appendices in repetitive right dislocation constructions (RDCs), advocating the standard analysis for fragmentation along with Merchant's (2004) approach that the relevant remnants are derived via the move-and-delete process. The idiomatic appendix in repetitive RDCs may preserve its figurative reading, since its overt idiomatic correlate appears in the antecedent clause. The idiomatic appendix in a repetitive RDC must undergo focus movement while the rest of the clause can be elided under identity, which works out perfectly within the bi-clausal fragment approach. Neither of the pseudo-cleft analysis nor the copula structure analysis (i.e., limited ellipsis) can introduce an idiomatic interpretation for the caseless idiomatic fragments. The caseless idiomatic fragment can be used with the non-copula regular tag, while it is incompatible with the copula tag, regardless of whether it is context free or context dependent.

        • 점액낭염 치료에 관한 국내 임상한의학적 연구 동향

          이수환(Soo Hwan Lee) 대한스포츠한의학회 2019 대한스포츠한의학회지 Vol.19 No.1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Objectives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analyze domestic research tendency of clinical studies about treating bursitis in korean medicine. Based on these studies, we aim to carry out the comprehensive review and show objective result about treating bursitis. Methods We searched studies in Korean databases like Korean Traditional Knowledge Portal , Research Information Sharing Service, OASIS, National Digital Science Library, Korean Medical Database and categorized by various items. Results 13 theses were analyzed and they were published between 2003 till September, 2019. All the reported theses were case reports and were published in 9 journals such as the Journal of Korean Acupuncture & Moxibustion Society, Journal of Pharmacopuncture and Journal of Oriental Rehabilitation Medicine. The most applied bursa of human body was subdeltoid bursa and it took possession of near 50%. Herbal medication, acupuncture, moxibustion, cupping therapy, pharmacopuncture, physical treatment and other korean medical therapy were conducted to cure bursitis. 10 evaluating scale was used to decide the degree of improvement in bursitis and ROM was the most applied scale. Conclusions In this study, we seek the tendency of korean medicine therapy on bursitis. Reviewing the methods of treatment for bursitis in domestic articles we find lots of information applied to inflammation of bursa. However, the case number was too small and 11 of 13 thesis were not include IRB (Institutional review board)'s approval to use patient's clinical information. After supplementing these defects of studies, it can be a considerable evidence treating bursitis clinic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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