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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일 격투무예의 어원 및 기원에 관한 연구(2): 고대 중국의 원시시대부터 진한삼국시대를 중심으로

          송일훈 ( Il Hun Song ), 김산 ( San Kim )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구 한국스포츠개발원) 2008 체육과학연구 Vol.19 No.4

          이 연구에서는 고대 중국의 원시시대부터 진한삼국시대에 분포한 격투무예(手搏·相搏·相撲·角抵)(Combat)의 어원·기원 분석을 통해 한·중·일 전통성 및 연결성에 대한 경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관한 결론 도출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대 중국의 고사에 치우(蚩尤) 라는 인물이 격투무술에 능하였다는 것이 고증문헌에 보인다. 둘째, 하상서주시대에는 격투무예에 대한 기록은 우선 갑골문자중 `투(鬪)`는 두 사람이 싸우는 형상을 묘사하고 있었다. 셋째, 춘추전국시대에는 `박(搏)`이라는 명칭의 격투무예는 `상박(相搏·相撲)`으로 표기하였다. 넷째, 진한삼국시대에는 권법과 무기술들을 중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저(角抵)는 "상저촉(相抵觸)," "각력(角力)," "각기예(角技藝)"라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다섯째, 고대 중국의 격투무예들이 한국과 일본의 고분벽화 및 여러 그림에 보이는 역사(力士)들의 신체제례의식의 동작 및 상대와 대결하는 신체동작들이 매우 유사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This study could confirm the connection, traditionality and route of Korea, China, and Japan through analysis the derivation and the origin of Combat distributed from primitive age of ancient China in Jin Han three countries age. First, It was seen that Chiwoo(蚩尤), who was recored in ancient chinese history, was good at fight in historical literatures. Second, In the records of Combat in Ha Sang Seo Ju period, To(鬪) in inscriptions on bones and tortoise carapaces described the two people fight. Third, Combat named as Bak(搏) in the age of civil war was inscripted as Bak(搏) or Sangbak(相搏). Fourth, `boxing technique(拳法)` and `arms technique(武器術)` was regarded as important in Jinhan three countries age and Gakjeo(角抵) and Gakryuk(角力) was called as Sangjeochok(相抵觸) and Gakkiye(角技藝). Fifth, It was evident that ancient Chinese Combat martial arts resemble the movements in religious ceremonies and the fighting motions of robust men found in ancient tomb mural and many pictures of Kore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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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일 격투무예(수박(手搏),상박(相搏),상박(相撲))의 어원 및 기원에 관한 연구: 고대 일본 스모 (상박(相撲))에 보이는 격투술을 중심으로

          송일훈 ( Il Hun Song ), 남댁현 ( Duk Hyung Nam ), 이재학 ( Jae Hac Lee ), 이동현 ( Dong Heon Lee )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구 한국스포츠개발원) 2007 체육과학연구 Vol.18 No.3

          이 연구에서는 한·중·일에 분포한 수박(手搏)·상박(相搏·相撲) 비교·분석을 통해 격투무예(Combat) (手搏·相搏·相撲)의 어원·기원에 관한 연결성 및 전통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격투무예(手搏·相搏·相撲)의 발생 근원지가 한·중·일 삼국에서 행하여 졌던 실전 싸움 격투술이라는 뒷받침 해줄만한 신빙성 있는 고대 고증문헌의 자료들이 존재한다. 둘째, 고구려 고분벽화의 각저도(角抵圖)와 중국 진대(秦代)의 묘안에서의 나무빗 그림 및 후한시대 한묘(漢墓)의 고분벽화에 보이는 shoubo(手搏), 그리고 일본 헤이만(平安)시대의 토우 유물에서도 격투무예(手搏·相搏·相撲)로 추정되는 유술기법들이 보인다. 셋째, 한·중·일 고증문헌 및 유물을 통해 격투무예(手搏·相搏·相撲)의 발생 근원지의 경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넷째, 일본의 스모(相撲)는 고대 고분벽화 및 토우 형태에 보이는 신체복장의 모습이 매우 유사하였다. 다섯째, 일본 스모(相撲)의 고증 그림을 살펴보면, 고대 고분벽화에 보이는 역사(力土)들의 신체제례의식 동작들을 엿볼 수 있었다. 이상의 연구결과를 종합해 볼 때, 한·중·일에 분포한 격투무예(手搏·相搏·相撲)에 관한 연관성을 인정해야 한다. 더 나아가 수박(手搏) ·상박(相搏·相撲)은 어느 특정한 무술의 의미가 아니라 일반명사의 총체적인 의미로 쓰인 것으로 사료된다. This research proves the tradition and the relationship about the beginning and the etymology of ``Combat`` through the comparison and the analysis of ``Subak(手搏)`` and ``Sangbak(相搏·相撲)`` distributed throughout Korea, China and Japan. First of all, the dependable data of ancient historical documents prove actual martial arts which was conducted in Korea, China and Japan as the origination place of ``Combat``. Secondly, the techniques of ``Combat`` are shown at the ancient wall painting such as Goguryeo`s Gakjeodo(角抵圖), Chinese painting of a wooden comb, shoubo(手搏) and Japanese remains(earthenware), earthenware. Thirdly, through these historical records and remains, it is clear that the trace of the original place of ``Combat`` is in Korea, China and Japan. Fourthly, the sumo(相撲) of Japan is very similar to clothes that are shown at the ancient wall painting. The fifth, as the historically proved painting of Japanese sumo(相撲), the body ceremony of history is shown at that painting. After taking the above into consideration, implications of the techniques of ``Combat`` distributed among Korea, China and Japan must be confirmed. Furthermore, ``Subak(手搏)`` and ``Sangbak(相搏·相撲)`` does not mean specific military arts, but general te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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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도학의 학문후속세대양성에 관한 정체성 탐구

          송일훈(Song Il-Hun) 용인대학교 무도연구소 2011 武道硏究所誌 Vol.22 No.2

          Today, as for successive generation's martial art science nurture in the field of human and society, the entity on traditional martial art history education has to be presented. Successive generation's martial art science nurture support project, in the field of human and society, First, as for successive generation's martial art science nurture support project, the establishment of professional systematic major subjects on the traditional martial art through nurturing talented human resources for lecturing and studying in full offers new academic knowledge system. Second, as for successive generation's martial art science nurture support project, academic research professors can transfer what is the role, value, and meaning of traditional martial art history education and what is train-systemic educational philosophy and aim of traditional martial arts established in the past through research and publication business project classified with years. Third, as for successive generation's martial art science nurture support project, the postdoctorial research course is a way to nurture essential talented human resources in the successive academic generation for today, there are not so many graduate school students and doctorial scholars in the field of martial arts. On the purpose of solving the problems, successive generation's martial art science nurture in the field of human and society will lead to the ways to subject recognition on many problems followed by specialization proceed project in many aspects. 오늘날 무도학 인문사회분야의 학문후속세대양성에 있어서 전통무도역사교육에 대한 정체성 제시가 되어야 한다. 이는 한국 연구재단 인문사회분야의 학문후속세대양성지원사업은 전통무도역사교육의 학문지식체계에 있어서 기초학문의 초석이 될 수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학문후속세대양성 지원사업에 있어서 강의전담 연구로 하는 인재양성을 통한 전통무도의 전문적이면서도 체계적인 전공과목개설은 전공학생들에게 새로운 학문지식체계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학문후속세대 양성지원사업에 있어서 학술연구교수는 각 연도별 연구편찬사업 프로젝트를 통해 전통무도역사교육의 역할과 가치 및 의의는 무엇이며 또 과거 당시에 형성된 전통무도의 수련체계적 교육이념 및 목적이 무엇인지를 전해줄 수 있는 것이다. 셋째, 학문 후속세대양성지원사업에 있어서 박사후 연구과정은 무도학계의 대학원생이나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자가 그리 많지 않은 현 상황에서 꼭 필요한 학문후속세대의 인재양성인 것이다. 이상과 같이 종합해 볼 때 전통무도역사교육에 대한 정체성 제시가 되어야 한다. 그 이유로는 대표적 문제인 무도신체학문적·무도신체실제적 등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가 산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도학 인문사회분야의 학문후속세대양성은 특성화 추진계획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의 주제의식에 대한 다양한 측면에서의 방안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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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김춘추의 통일사상과 남북 안보적 통일정책 연구

          송일훈(Song Il Hun), 최홍만(Choi Hong Man) 대구과학대학교 국방안보연구소 2019 사회융합연구 Vol.3 No.2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연구는 통일신라의 김춘추 통일 구도를 통한 현시대의 남북문제점의 정체성과 방향성 등 비교·분석을 통해, 이에 관한 연관성 및 남북 안보적 통일 정책적 제안을 밝혀내는 데에 그 초점을 맞추어 이를 진행하였다. 우리나라의 통일정책의 경우 달리 독일은 지속적인 통일정책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역대 직권정부에 따라 통일정책이 이루어졌다. 이는 주변국의 눈치 보는 통일정책을 전개해 나갔던 것이 주지의 사실이었다. 한반도 상황변화에 치밀한 통일정책의 네트워크의 매뉴얼 단계별 정책이 없었다. 이로 인해 지금의 남북통일 정책의 정체성을 만들어 주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래지향적인 남북통일정책의 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발전 방안이 있어야 한다. 즉 통일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통해 여러 가지 산재 되어 있는 남북의 갈등문제를 화평주체사상으로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이는 다양한 시각으로 관점을 바라보고 또 이에 맞는 민족주체사상을 정립할 작업이 필요하다. 주체로서의 남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안보적 통일정책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This study focused on identifying the relationship and the policy proposals for unification of the two Koreas through comparing and analyzing the identity and direction of the North - South problems of the present era through the unification plan of Unification Silla. Germany s unification policy and case were consistent with the unification policy. But we have unification policy according to the previous government. It was a well-known fact that the neighboring countries noticed unification policy. There was no manual step-by-step policy of network of dense unification policy on the situation change on the Korean peninsula. This has created the identity of the current unification policy. In order to solve this problem, a future-oriented plan for unification of North and South Korea should be established and a plan for development should be established. In other words, through the problems of unification policy, it is necessary to solve the problem of conflict between North and South which is scattered by the idea of peaceful Juche idea. It is necessary to look at the viewpoint from various perspectives and to establish the ideology of the national Juche. Unification policy measures should be proposed to solve the problem of North and South as a 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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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유술의 기원과 조선군사무예로서 무형유산으로서 가치

          송일훈(Song, Il Hun), 최홍만(Choi, Hong Man) 대구과학대학교 국방안보연구소 2020 사회융합연구 Vol.4 No.2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연구는 조선유술의 기원과 군사무예로서 무형유산으로서 가치에 대하여 거시적 관점으로 살펴보았다. 이는 다음과 같이 결론 도출을 얻었다. 첫째, 조선군사는 일본 왜적과 7년 전쟁을 하면서 갑주를 착용하고 칼과 조총을 가지고 있는 왜적에게 대처하는 백병전 살수로서, 반드시 먼저 유도를 사용하여 상대를 제압하고(柔道制之使) ‘부드러운 것이 강한 자를 승리할 수 있다(柔能勝强者)'고 《조선왕조선조실록》에서 “유도” 어원과 신체기법이 묘사되었다. 둘째, 임진왜란 39년 이후 일본으로 유도가 전래되었다는 것은 1637년 진신류 유도가 탄생되어 무술계는 새로운 전쟁 신체기법들이 성립되었다. 셋째, 대한제국 황립 무관학교는 1895년(고종 32) 4월 신식 군대인 훈련대가 편성되면서, 5월 이들을 훈련시키고 지휘할 초급 무관을 양성하기 위한 훈련대 사관 양성소가 설치되었다. 특히 일본 외무성 기록에는 1905년 김좌진 장군 조선육군무관학교 시절 주특기는 유도이며 조선무관들은 무술학에서 조선유술를 구국일환으로서 하였다. 넷째, 조선유술부의 시작은 상무적 기풍인 구국의 일환으로 고종황제와 월남 이상재선생 100명 장사(무사) 그리고 고종황제무관학교 출신인 류근수와 나수영에 의해서 조선유술부가 시작되었다. 특히 나수영의 조선유술인 천풍해세류이었으며 YMCA 유술부에서 최초의 유단자 김홍식이다. 즉 일본 강도관의 유도가 조선에 도입되기 이전에 조선유술이었을 뿐만 아니라 1914년도 체육부 보고서에서의 유술이라는 명칭이 존재하였다. 이상과 같이 종합해 볼 때, 조선유술을 통한 선조들의 숭고한 상무정신이었으며 우리는 이러한 상무정신과 무형의 문화유산 보존하고 계승 발전 시켜야 할 것이다. This study examined the origin of Joseon Yusool and its value as an intangible heritage as a military martial arts from a macro perspective, and the conclusion was drawn as follows.,First, the Joseon military is a white soldier who copes with the dwarf who wears a gun and has a knife and a gun during the Seven Years War with Japanese dwarfs. It is necessary to use Yudo first to overcome the opponent and to win the strong one.,Second, since the Japanese invasion of Japan in the 19th year of the Japanese invasion of Japan, Yudo was born in 1637, and a new war physical techniques were established in the martial arts world.,Third, the Imperial Imperial School of the Korean Empire was established in April 1895 (Kojong 32) with the training camp, which was established in May to train and command the beginners.,In particular, the Japanese Foreign Ministry record was Yudo, the main feature of the Chosun Military Academy in 1905, and the Chosun Military Officers made Yusool as a part of the country in martial arts.,Fourth, the beginning of the Joseon Yusoolbu was started by Emperor Gojong, 100 masters of Sangjae in Vietnam (Musa) and Ryu Keun-soo and Na Su-young, who were from the Gojong Imperial Academy.,In particular, it was the first Yusool of Nasu Young, the Joseon Yusool, and the first Yudan Kim Hong-sik of YMCA Yusool.,In other words, before the introduction of Yudo of the Japanese robber to Chosun, it was also called Yusool in the 1914 Ministry of Physical Education report.,In conclusion, it was the noble business spirit of the ancestors through the Joseon Yusool, and we should preserve and develop these business spirit and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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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보이는 정조대왕(正祖大王)의 <궁술(弓術)> 「무(武)」의 신체지(身體知)

          송일훈(Il Hun Song), 진윤수(Yoon Soo Jin), 안진규(Jin Kyu An) 한국사회체육학회 2007 한국사회체육학회지 Vol.0 No.30

          In this paper, the tacit knowledge of military arts in Lord King Jeongjo(正祖)`s archery(弓術) has been studied. The following facts could be summarized. first, Lord King Jeongjo(正祖) compiled "Mu Ye Do Bo Tong-Ji(《武藝圖譜通志》)" - which is the one of his great achievement in Korean history - through the tacit knowledge of military arts in archery(弓術). second, he taught principles and thoughts of the tacit knowledge to his "Mun Mu Beak Gung(文武百官)" through the military affairs of archery(弓術). third, he forth, Not his moral characters in the tacit knowledge of military arts in archery(弓術) to civil ministers and developed martial spirit to his military officials. fourth, Not only he was a master of archery(弓術) but also put on the best record among the kings of many generations in Cho Sun(朝鮮). fifth, when he shot 50 arrows, he purposely shot one arrow into the sky in order to teach "Mun Mu Beak Gung(文武百官)" about the man of honor. However, the other 49 shots hit very center of the target. These facts explain how valuable the tacit knowledge of military art was in Korean history. We need to realize how important and valuable our inheritance is and find out what the meaning of Korean martial art in the past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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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유도 발달양상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함의 -대한유도학교 창립 배경을 중심으로-

          송일훈 ( Il Hun Song ), 김필승 ( Phil Seung Kim ), 최종균 ( Jong Kyun Choi ) 대한무도학회 2014 대한무도학회지 Vol.16 No.3

          이 연구는 용인대학교 60년 사관과 한국유도 창립배경의 역사적 함의를 통해 한국유도의 정체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초창기 대한유도학교는 유도교육기관으로서 그 존재의 가치가 있다. 즉 민족적 상무정신을 함양하는 데 그 숨은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대한유도학교의 설립은 어느 한 개인에 의해 시도된 것이 아니라 ``대한유도회``라는 단체에 의해 시도되었다. 그만큼 대한유도회와 대한유도학교〔현 용인대학교〕는 매우 밀접한 관련성이 있었으며, 학교 발전은 1956년 4월에 2년제 초급대학 과정에서 4년제 각종학교로 승격되면서부터 더욱 발전하였다. ‘지·덕·체' 합일의 교육을 지상과제로 삼은 이제황, 석진경 등의 꿈은 유도 실기교육이었고, 전인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일반대학 수준의 체육대학 설립에 있었다. 많은 유도인들은 유도란 다른 운동과 달리 정신수양의 측면이 강한 무도스포츠이므로 무엇보다도 참된 인간이 되는 정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유도학교는 실기교육기관과 같은 강습회를 주관의 수준이 아닌 ‘지·덕·체' 합일의 전문 고등교육 기관이었던 것이다. 특히 이제황, 석진경 등은 당시 이범석 장관을 찾아가 대한유도학교 문제에 대해 의논을 하였다. 이는 유도인이 지닌 참뜻을 문교 당국자에게 설득시켜 달라는 것과 재정적 곤란에 대한 문제 해결이었다. 이범석은 이에 대해 국방부 정보국 책임자인 김근찬 국장에게 특별 지시하여 해결책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교육기관으로서 <대한유도학교>가 1953년 6월 15일 창립되었는데 명실공히 대학으로 그 존재 가치를 높이게 되었으며 대한유도학교는 유도인에 의한 유도인을 위한 유도인의 학교로 탄생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교부로부터 정식으로 인가받기까지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학교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재정의 확보는 당시의 상황에서는 큰 난제였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이러한 난제의 극복은 오직 학교를 설립해야겠다는 숭고한 이상 및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와 같이 <대한유도학교>의 설립은 한국유도발전에 있어서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설립이념에 따른 역사적 함의를 통해 무도교육 실제의 극치와 신체사상사의 이치를 궁구하는 무도전문교육기관이 설립되었음을 의미하였다. This study is to propose that identity through the historical implications of the Yongin University Korea 60 years view of history and Korean judo founding background. A summary of the detailed information on this results were as follows. For early Korean judo school is worth its existence as a judo training institutions. In other words, to cultivate the national spirit of Commerce had its hidden purpose. Founder of this Korean judo school [currently, Yongin University] was not a person but organization called ``Korea judo federation``. That much about Korea judo federation and Korean judo school are very closely related. This effort was further developed in various schools as promoted to a four-year, two-year entry-level college courses in April 1956. Merge into one ``intellectual·moral·physical education`` in the ground challenge now is Lee Je-hwang and Seok Jin-gyeong``s dream was practical training in judo. Not only were rounded education to the general college-level Physical Education established that can be done. Above all, many a leading member, had stressed the importance of the spirit of true education is a human being, so this aspect of induction is a strong mental discipline, unlike other martial arts sports movement at every opportunity. Therefore, the school is not the level of induction of the education agency that organized the workshop groups. It was merged into one ``intellectual·moral·physical education`` specialized higher education institution. Especially, Lee Je-hwang, Seok Jin-gyeong et al. discuss the problem of judo to visit the school at the time Minister Lee Beom-seok. This is like asking a person to convince with the true meaning of induction was trying to solve the problem of financial distress. Lee Beom-seok gave special instructions to help you find a solution to the Director of Defense Intelligence Agency Director Kim Geun-chan about it. <Korean judo school> is an institution founded in June 15, 1953 have improved the value of its existence as a bright room both universities, schools for induction would have been born as a school for the induction of the derivation by induction. But there was a difficulty in applying to receive an official from the Ministry of Education. As well as anything that was not enough and the money that can solve the financial problems for it was not anything that was this building. This is only possible because this was the sublime ideals and beliefs for the school established. Thus the sense of the great cultural heritage of the body Yongin University with 60 years of history through the historical implications of Korea judo and Educational Philosophy and Somatic with a variety of martial arts, Sports and actual bodily perfection and Thought will be able to pass on to our descend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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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권도 美와 예술의 美에 관해

          송일훈(Song Il-Hun), 김창우(Kim Chang-Wo), 이재학(Lee Jae-Hak), 조충현(Jo Chong-Hyun), 이동헌(Lee Dong-Heon) 한국체육과학회 2008 한국체육과학회지 Vol.17 No.3

          Art is the direct expression which contains human nature, whereas a science is the preparation for deviating deliberately from human nature. On the basis of this logic, Taekwondo is referred to as the composite art of martial arts. Then, according to the detailed investigation, analysis, and discussion of this study, this study could confirm the following implications. That is, the beauty is aloof from the fictitious world which is not related to life, and is not an absolute being. Because the beauty is always related to life, such beauty can be formed. In other words, from the standpoint of art for art's sake, the beauty is weak. That is, as this study mentioned earlier, Taekwondo, as the aesthetics of martial arts, is an excellent movement art. However, Taekwondo, as the aesthetics of martial arts, should be mentioned in category of value, and so is never the problem of truth. Therefore, Taekwondo can be recognized aesthetically from the viewpoint of value theory. Considering the beauty of Taekwondo is not that real beings exist through the physical acts of Taekwondo and so the feature, the beauty of physical acts, is extracted, and then movements are analyzed. As the beauty was mentioned not to be only an objective attribute but to be generated in subjectivity, the beauty is formed by the attitude of subjects in the physical acts of Taekwondo. Therefore, we are not to carve the thought of human problem as subjects. As this study implied to a certain extent with the term of personality beauty up to now, the beauty should be accepted as a value, that is, the aesthetic value. As we examined roughly up to now the history on the classification of arts which ranged from ancient Greece through the Middle Ages, the Renaissance, and the Age of Enlightenment to today, antient times did not considered the possibility that pure arts could form their independent artistry. In such antient times, the art, which is recognized today, were only a part of techne (practice). Such thinking was transmitted to the Middle Ages and the Renaissance as it was. Especially, even though the philosophers of the Renaissance had their own understanding of pure arts, they drew no conclusion in the end. However, the pure art, which had declined during the times of 2000 years, came to reach today by Charles Batteux's effort in mid-eighteenth century. Thus, if Taekwondo is defined as the artistry of martial arts, first, such artistry of martial arts is the accuracy which Taekwondo, as martial arts, has. Second, such artistry of martial arts is the artistry which the beauty has. Third, such artistry of martial arts is Taekwondo as the beauty of artistry and arts. Therefore, such beauty should be recognized as the value of one. Further, Taekwondo as martial arts will be able to be spread widely as the worldwide artistic physical 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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