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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후보

          한국체육사학회의 현실과 미래의 과제

          하남길 한국체육사학회 2007 체육사학회지 Vol.20 No.-

          한국 체육사학회는 2005년 창립 10주년을 맞았으며, 2007년 10월 제20호 학회지를 발간을 맞았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의 체육 및 스포츠에 관한 학문적 연구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큰 진전을 보았다. 그러나 체육과 스포츠 역사에 대한 연구 성과는 미흡한 편이었다. 미국에서는 1885년 ‘미국체육학회(AAHPERD)'의 모체가 된 ‘체육진흥협회 (AAAPE)'가 창립되었고, 1896년 『미국체육학회지(The Journal of Health, Physical Education and Recreation)』가 창간되어 체육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또한 1900년을 전후로 하트웰(Edward M. Hartwell, 1850-1922)이 체육사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이래 1973년 ‘북미체육사학회(the North American Society for Sport History)'가 결성되어 오하이오 주립대학(The Ohio State University)에서 창립 정기총회(first annual convention)를 개최했다. 이러한 역사에 비교하면 한국 체육사학회의 창립은 매우 늦은 것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국체육사학회는 창립 이후 12주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왔으며, 『한국체육사학회지』제 20호를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한국체육사학회지』 제20호 발간을 계기로 한국 체육사 연구의 현황과 실태를 한번 쯤 점검해보고 미래 학문적 진보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전체 논문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논문 목록을 한번 쯤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 KCI등재후보

          한국 엘리트스포츠의 요람 한국체육관

          곽성연,하웅용 한국체육사학회 2007 체육사학회지 Vol.19 No.-

          This study focuses on the influence of Korea(Chosun) Gymnasium on sports in Korea from 1946 to 1966. Korea Gymnasium, the first privately-invested gymnasium in Korea after the Korean Independence, played its role faithfully as a center to train elite athletes and leaders in sports as well as to nurture competitive games in Korea. Before the Taerung National Athletic Training Center for athletes was founded in 1966, the Gymnasium was practically the place to train national athletes as well. Korea Gymnasium made a remarkable contribution to sports in Korea and was a place of historic significance. The study findings are summarized into four areas. First, the Chosun Gymnasium as the one and only indoor gymnasium that was privately-held before the Korea war, laid the foundation for the growth of elite sports in Korea. In the Chosun Gymnasium, Hwang, Eul-su played a leading role in most of the activities in the gymnasium. Second, Korea Gymnasium was born as a result of the reconstruction of Chosun Gymnasium after the Korean War, enjoying its peak years and leading the Korean elite sports. Third, athletes in Korea Gymnasium were trained and educated to become influential and respectable leaders who played a pivotal role in the growth of sports in Korea. Fourth, Korea Gymnasium was a springboard for Korean sports to go global. After the Korean Liberation in 1945, athletes in Chosun Gymnasium were invited by Philippine. Later, wrestling players from Korea Gymnasium participated in the World Greco-roman Wrestling Championship held in Yokohama city in 1961. The participation was a signal that sports activities were started to get officially recognized at the government level. In addition, Korean athletes were able to get new experiences on the global stage, leading to their enhanced performance. 한국체육관이 국내 최초의 실내체육관은 아니다. 한국체육관이전에도 YMCA가 있어 근대체육 대중화의 장으로써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김재우, 2005: 4). 그러나 YMCA가 사회체육 진흥사업에 총력을 다 했다면, 1966년 태릉선수촌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한국 엘리트스포츠 산실은 한국체육관(조선체육관)이었다. 이 연구는 1946년 건립추진위원회의 조직부터 1966년 태릉선수촌이 설립될 때까지의 한국체육관이 체육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조사, 연구하였으며 결과를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체육관은 국내 유일의 사설 종합 실내체육관으로 한국전쟁 이전까지 엘리트스포츠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그 중심에는 황을수가 있었다. 황을수는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되기 전까지 조선체육관을 성실히 운영하여, 런던 올림픽에 역도와 복싱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데 기여했으며, 런던 올림픽 이후 한국체육(특히 격투기 종목)발전에 기여하였다. 더욱이 보다 체계적인 엘리트 선수육성을 위하여 체육대학설립을 목표로 두었다는 사실은 한국체육의 선구자로서의 자질과 현안을 알 수 있는 부분이라 사료된다. 둘째, 한국전쟁 이후 한국체육관으로 재건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며 주도적으로 엘리트스포츠를 이끌었다. 한국전쟁으로 황을수는 납북되고 조선체육관은 폐쇄되었으나, 전쟁 후 더욱 굳건한 모습으로 재건하여 한국 엘리트스포츠의 본거지로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한국체육관 출신들은 건국 후 네 번에 걸친 올림픽참가사를 볼 때, 총 한국선수단의 약 18%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복싱의 송순천은 멜버른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의 올림픽 은메달을 조국에 안겼고, 도쿄올림픽의 장창선도 레슬링에서 두 번째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한국 엘리트스포츠 발전의 선두에 있었다. 셋째, 한국체육관에서 배출된 선수들은 훌륭한 지도자로서 한국체육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한국체육관은 본격적으로 레슬링, 태권도, 복싱, 유도 등 종목별 지도자 강습회 및 심판강습회를 개최함으로서 한국체육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육성하였다. 한국체육관에서 지도자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 다수가 한국체육이 스포츠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주 원동력이 되었다. 넷째, 한국체육의 국제무대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한다. 한국체육관은 필리핀 체육회장의 초청을 받게 된다. 이러한 결과 국제무대의 경험이 부족한 국내 선수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였고, 런던 올림픽 이후 스포츠를 통한 세계제패를 목표로 하던 한국체육계에 신선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본다. 한국체육관은 광복 후 한국에 유일한 실내사설체육관으로 투기 종목의 보급과 엘리트 선수양성 및 지도자 양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였다. 또한 한국체육관은 1966년 태릉선수촌이 설립이전까지 실절적인 국가대표 훈련장소로서도 그 역사적 의의가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한국체육관은 무리한 사업 확장과 재정의 악화가 지속되면서 결국 1996년 최종 매각을 하였고 그 자취마저도 한국체육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본 연구는 한국체육관의 설립과 전성기로 사료되는 1966년까지의 체육사적 의의를 연구하였다. 그러나 한국체육관의 전체적인 체육사적 의의를 찾기 위해서는 1966년부터 최종 매각과정까지의 면밀한 연구가 필수적이라 사료되며, 후속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 KCI등재

          한국의 체육사 연구의 동향 및 과제

          박귀순 ( Cindy Park ) 한국체육사학회 2014 체육사학회지 Vol.19 No.4

          본 연구에서는 한국의 체육사 연구 동향의 파악을 위해 3시기로 구분해서 각 시기별 연구 동향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서 향후 한국의 체육사 연구의 과제를 제시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제1기(1953년-1993년)에는 나현성을 필두로 한국의 체육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1953년 한국체육학회의 창립과 학회지의 창간 및 체육사 분과위의 설립 등으로 체육사 연구의 기반이 조성되었다. 제2기(1994년-2004년)에는 1994년 한국체육사학회의 창립과 학회지의 창간 및 다양한 국제 교류 세미나 등의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체육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제3기(2005년-현재)에는 한국체육사학회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면서, 체육사 연구는 비교적 안정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향후 한국의 체육사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기 위해서 첫째, 체육사 연구 주제의 다양화, 둘째, 체육사 연구방법의 체계화 및 확립, 셋째, 학회 회원의 관리 및 확보, 넷째, 다양한 관련 학계와의 교류 강화 내용의 당면 과제를 제시했다. The present study purposed to clarify of trend of the sport history research in Korea, it was divided into three period. and through it presented a assignment for future research of the sport history in Korea. The first period(1953-1993) was a research done in earnest, 1953 establishment of the KAHPERD of Korea, Journal has been founded etc. The second period(1994-2004), 1994 establishment of KSHPESD, Journal has been founded, through various international exchange activities and seminars, sport history research was a sudden increase. The third period(2005-present), the KSHPESD celebrated its 10th anniversary, sport history research has become to stable relatively. In order to explore a new paradigm for the future Korean sport history research presented the following assignments; diversification of sport history research topic, systematic methods of sport History research, management society members, strengthen academic exchanges with various related.

        • KCI등재

          구술사를 통해서 본 체육인의 삶

          박기동 ( Ki Dong Park ), 윤대중 ( Dae Jung Yun ) 한국체육사학회 2012 체육사학회지 Vol.17 No.3

          본 연구는 한국체육계에서 활동한 체육인의 삶을 통해 그들이 갖고 있는 스포츠문화와 선수의 지위에 대한 고충을 이해하고 한국체육계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첫째, 현재 그들은 비교적 안정적이며 즐겁게 살고 있고, 운동을 통해서 얻은 강인한 정신력이 삶의 원동력이었다. 둘째, 각각의 종목에서 고문으로 지도자 및 선수들과의 만남, 그리고 각종대회에 참석하여 후배들을 격려하며 한국체육계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셋째, 해방이후 혼란스러웠던 한국체육계에서 선수로 활동하면서 얻은 자긍심을 바탕으로 이후 지도자 생활에서 남다른 지도력을 발휘했다. 구술사를 통한 체육인의 삶을 체육사적 관점에서 조명하고자 한 본 연구는 참여자들의 각기 다른 활동공간과 해방,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아래 본인의 종목에서 과거와 현재에 최선을 다한 모습을 비춰볼 때 한국체육계의 밝을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The current study aimed to understand athletes` sports culture and their difficulties in relation to having the status of players through their lives of the athletes who were active in Korean athletic circles and to estimate the future of the world of sports in Korea, and the following results were obtained: First, currently they are living relatively stable and happy lives, and their strong willpower obtained through sports was the driving force of their lives. Second, as advisors in each event they are meeting with leaders and players, and participating in all kinds of games, they are contributing to the development of Korean athletic circles offering words of encouragement to their juniors. Third, they displayed the unusual leadership in their lives as leaders based on pride they came to have being active as players in the Korean athletic circles that were chaotic after liberation. This study intended to investigate the athletes` lives from the perspective of sports history through oral history and the bright future of the world of Korean sports can be projected in light of the fact that the participants have done their best in their events in the past and in the present under the conditions of the times, national liberation, the Korean War and their different activity space.

        • KCI등재

          민족의 제전, 전국체육대회 100년의 역사적 의미

          손환,하정희 한국체육사학회 2020 체육사학회지 Vol.25 No.2

          This Study studied the historical meaning of the 100-year history of the National Sports Festival(NSF), which is the nation's top sports festival, by its birth, resurrection, leap and soar. And the conclusions are as follows. The NSF is Korea's most prestigious and historical sports event and served it's role to raise awareness of the national consciousness by resisting against the Japanese occupation. After the independence, it served as a cradle for Korea's elite sports, such as finding and nurturing elite athletes internally through balanced development of sports between Seoul and dther countries and setting the stage for promoting national prestige and enhancing the status of the nation externally. Also, National Sports Event is very meaningful in that it gave people courage, hope, and self-esteem. From now on, the NSF will have to prepare for a new 100 years of Korean sports through the evaluation of its achievements and tasks so far, and make an opportunity for a national harmony and leap forward to become a sports advanced country. 본 연구는 우리나라 최고의 스포츠축제인 전국체육대회 100년의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 그 특징과 성격에 따라 탄생, 부활, 도약, 비상으로 나누어 그 역사적 의미를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전국체육대회는 명실 공히 한국 최고의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체육행사로서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저항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광복후에는 대내적으로는 지방과 서울의 균형 있는 체육발전을 통해 엘리트선수의 발굴과 육성의 무대로서, 대외적으로는 국위선양, 국가의 위상제고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등 한국엘리트체육의 요람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전국체육대회는 역사적으로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전국체육대회는 지금까지의 성과와 과제에 대한 평가를 통해 한국체육의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며 체육을 통한민족화합과 스포츠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 KCI등재

          광복이전 "인천체육협회"에 관한 연구

          조준호 ( Jun Ho Cho ) 한국체육사학회 2015 체육사학회지 Vol.20 No.3

          본 연구는 광복이전 인천체육협회에 대해 살펴보고 해당 단체가 인천의 근대체육발전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천체육협회는 1920년대 초부터 인천의 체육을 주도하였고 이를 기초로 1925년 12월 18일 인천산수정공회당에서 창립되었다. 둘째, 인천체육협회는 일본인의 체육단체로 회장이 인천부윤으로서 1925년부터 매년 ‘인천체육데이' 행사와 야구, 정구 등의 경기를 주도하였고 무도 수련관인 무덕관을 인천경찰서의 훈련장으로 제공하는 등 인천의 체육을 주도해나갔다. 셋째, 인천체육협회는 1936년 1월 창립된 인천체육회와 서로 경쟁하며 제1회 전조선탁구대회와 제1회 중부조선축구대회를 개최하는 등 의지를 보였으나 일제의 추락과 함께 쇠퇴한다. 인천체육협회는 일본인 체육단체였으나 광복이전 인천의 체육저변을 확대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1936년 조선인 체육단체인 인천체육회의 출범에도 일조하며 광복이전 인천의 근대체육발전에 기여하였다. This paper studies Incheon Athletic Association until the liberation from Japan and its contribution to the development of modern athletics in Incheon.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First, Incheon Athletic Association had led the athletics of Incheon in early 1920s. With the activities the association was established at Inchoen Sansoojung Public Hall on December 18, 1925. Second, Incheon Athletic Association had held “Incheon Athletic Day”and athletic competitions of baseball games and tennis games from 1925. It was a Japanese association. The president of the association was the mayor of Incheon city. Incheon Police Agency used “Mudeokgwan”, a martial art training center, as its training center. Third, Incheon Athletic Association competed with Incheon Sports Council that was established on January 1936. Incheon Athletic Association held the first Chosun Table tennis competition and the first Central Chosun Soccer Competition. But it has become weak with the collapse of Japanese Empire. Even if Incheon Athletic Association was a Japanese athletic association, it played a role to expand athletic foundation in Incheon before the liberation. It also helped to establish `Incheon Sports Council`` in 1936 which was a Korean athletic group contributing to the modernization of Incheon athletics before the liberation.

        • KCI등재

          사회문화적 변화에 따른 생활체육의 변천과정

          이현정 한국체육사학회 2020 체육사학회지 Vol.25 No.4

          This study identifies the change process of Korean Sport For All in accordance with the social and cultural changes with the results deriving from literature reviews and the methods are as follows: First, the enactment of National Sports Promotion Act, expansion of local communities and workplace sports, the rising GDP, the people's desire for leisure activities, and country's hosting of ‘88' Seoul Olympics has all contributed and set the foundation for the evolution of Korean sports. Second, improved quality of life through national and individual economic growth has led to the transition from social to Korean sports and the concept of Korean sports has realized through its expansion and settlement along with revitalization of national sports welfare. Third, the continued evolution of Korean government's policies to encourage Korean sports to the elderly and underpriviliged with constant improvements may one day provide benefits for all age groups and social classes in the future. 본 연구는 사회문화적 변화에 따른 생활체육의 변천과정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고찰하는 데 연구의 목적을 두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첫째, 우리나라 1960~1970년대 생활체육은 국민체육진흥법(1962)의 제정을 계기로 지역사회와 직장체육을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1980년대부터는 국민소득의 향상 및 여가활동에 대한 욕구 증대와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생활체육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이루며, 생활체육의 활성화를 위한 기반조성을 다졌다. 둘째, 생활체육 용어가 법령에 등장했던 1990년대부터는 국가의 경제적 규모와 개인의 소득수준 향상으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생활체육이 활성화 되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선진화된 체육환경조성을 통해 체육 복지를 실현함으로써 국민생활체육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셋째, 향후 생활체육은 국민들의 행복 추구를 위한 선진 체육복지를 지향해야 하며, 계층별, 생애주기별 콘텐츠및 플랫폼을 혁신적으로 개발해야 할 것이다.

        • KCI등재

          여운형의 체육활동과 사상

          손환,최성진 한국체육사학회 2011 체육사학회지 Vol.16 No.1

          Yuh, Woon Hyung was a politician and sport administrator who is believed to have tremendously contributed to the advancement of the modern sports in Korea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and after the restoration of independence. In order to learn about Yuh, data gathered from newspapers, magazines, photographs, and etc. were analyzed to examine Yuh's life, activities in sports, and the his thoughts on sports, which led to the following conclusions. First, he effort to work for the independence of the Korea through his activities in sports. Second, he laid the cornerstones for the modern sports in Korea, and worked hard to educate the world about the status of Korea as an independent nation. Third, He worked to healthy mind, strengthen the people through sports and by preaching scientific physical education theories, he tried to let the world know of Koreans' excellent through elite sports. 본 연구에서는 정치가이면서 체육행정가의 체육활동 중 일제 강점기와 광복 후 한국근대체육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 되는 여운형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회고록, 신문, 잡지 등의 자료를 사용해서 여운형의 생애와 체육활동, 체육사상을 고찰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여운형은 다양한 체육활동을 통해 조국 독립운동에 힘썼다. 둘째, 여운형은 한국 근대스포츠의 초석을 다졌으며 스포츠 외교를 통한 자주독립 국가로서의 위상을 위해 노력했다. 셋째 여운형은 스포츠를 통한 건전한 정신, 강인한 민족을 만들기 위해 애썼으며, 과학적인 체육이론을 역설하며 엘리트 체육을 통한 민족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려 노력하였다.

        • KCI등재

          다산(茶山)의 경세유표(經世遺表)에 나타난 체육사상(體育思想)

          이명한 ( Myeong Han Lee ), 진윤수 ( Yoon Soo Jin ), 박건수 ( Keon Su Park ) 한국체육사학회 2011 체육사학회지 Vol.16 No.1

          본 연구의 목적은 다산의 《경세유표》에 나타난 체육의 목적, 내용 그리고 체육진흥제도를 조사분석하여 다산의 체육 사상을 규명하는데 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다산의 체육의 목적은 진정한 무인의 모습을 통해 찾아 볼 수 있는데, 무인은 무예의 출중함을 기본으로 하면서 이보다 무인의 본성이 예를 갖추고 있는 성품이어야 하며 다양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무인이라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체(體), 지(知), 덕(德)을 골고루 갖춘 전인(全人) 즉, 심동적, 인지적, 정의적 영역에서 뛰어난 무인을 강조하는 것으로 결국 다산이 생각한 체육의 목적은 전인육성에 있다고 하겠다. 둘째, 체육 내용에는 활쏘기, 말타기, 총쏘기, 무술이 있었다. 셋째, 다산의 체육진흥제도는 1. 목어사(牧어司) 설치를 통한 사양(飼養)을 통한 말타기 활성화, 이용감(利用監) 설치를 통한 총쏘기 활성화, 무거원(武擧院) 설치를 통한 무사체육의 활성화를 주장하고 있으며, 2. 무인과 수령의 고적(考績)을 통한 다양한 체육내용(무술, 말타기, 활쏘기 ) 활성화, 3. 적정한 인재선발을 통한 무인의 위상 정립, 4. 양병(養兵)을 통한 다양한 무사체육 활성화를 들 수 있다. The present study purposed to analyze and find the 18-19c corea`s physical education thoughts from the Dasan`s physical education thoughts through 《GyeongSaeYuPyo》The Dasan`s physical education thoughts is like following. First, purpose of physical education is making the whole man who has reflective, intellectual and physical ability. Second, contents of physical education are archery, horseback riding, shooting, martial art. third, The promotion ways of physical education are organizing mok-a-sa for horseback riding, training warrior ,organizing I-young-gam for shooting, checking the public servants and warriors for rewards and punishments, picking out the talented person for warriors and moo-gue-won for military service.

        • KCI등재후보

          Physical Education and Moral Education: Plato's and Aristotle's Views

          박성주 한국체육사학회 2009 체육사학회지 Vol.14 No.1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 가고 있으며, 심지어 집착에 가까운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근래에 이르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잘 생기고 예쁜 얼굴과 함께 날씬하고 균형 잡힌 몸매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며 젊고 생기 있는 모습을 유지하고 건강히 장수하는 것을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게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와 체육활동의 가치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평가절하 되어있다. 여전히 문을 중시하고 무를 천시했던 동양의 유교적 풍조와 함께 정신은 육체보다 가치 있고 우위를 차지한다는 서양의 이원론적 사상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체육교육은 공교육에서 하나의 과목으로써 그 가치와 중요성이 늘 의심 받아 왔다. 그 예로, 교육과정 개편 시 체육 과목은 수업 시간이 축소되었으며 나아가 교육으로써 체육의 가치는 흔히 논쟁의 주요 대상이 되곤 한다. 전형적으로 학교 체육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신체적 건강을 성취하도록 도와주는 수단으로써 그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즉, 체육교육을 통해 단지 육체의 이득만을 얻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본 논문은 체육교육은 단지 육체의 교육뿐만 아니라 정신의 교육, 즉 도덕교육으로서 그 가치와 중요성을 가짐을 밝혀 보고자 한다. 스포츠 혹은 체육교육과 도덕교육 사이에 본질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주장은 항상 그 반대되는 주장에 부딪혀 왔다. 많은 철학자, 교육자, 현대 스포츠 비평가들은 스포츠나 체육교육이 좋은 가치를 증진시키기도 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잘못된 가치로 여기는 승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 그로 인한 비도덕적 행위 또한 가르친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체육교육은 도덕적 인격을 형성하는데 이바지한다”라는 주장은 수세기 동안 많은 철학자와 교육자들에 의해 끊이지 않고 논의되고 있으며, 그 유래는 아마도 서양철학의 근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에게 체육교육은 언제나 주요한 관심사였고, 플라톤과 그의 가장 뛰어난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체육교육과 정신의 교육(도덕교육)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체육교육이 어떻게 도덕교육에 공헌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철학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견해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아보는 일은 가치로운 연구일 것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체육교육에 관한 견해를 심도 있게 고찰해 봄으로써 체육교육이 가지는 도덕교육의 기능으로써 가치와 중요성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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