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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試論"對于小說與戱曲兩種文體槪念的認識過程"

        李騰淵(이등) 중국어문논역학회 2005 中國語文論譯叢刊 Vol.16 No.-

        전통시기 소설이론 가운데 소설 장르의 본질적 특징에 대한 분석은 명ㆍ청 시기까지의 소설론에서는 주로 소설과 사서(史書)를 병렬ㆍ비교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는데, 만청 시기에 와서는 이른바 ‘신소설’과 이에 대응되는 구소설의 비교, 새롭게 번역 소개된 외국소설과 자국소설의 비교가 다양하게 제시되었고, 이런 과정에서 간혹 같은 서사문학에 속하는 고전희곡이 ‘언급’되기도 했다. 본고는 만청 시기와 이 시기 전후의 논자들이 특히 같은 서사 문학 갈래에 속하는 희곡과 소설의 범주 개념을 어떻게 혼용하거나 변별했는가에 중점을 두고 통시적 고찰을 진행해, 두서사 양식에 대한 변별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파악하고자 했다.<br/> 만청 소설이론에서 소설과 희곡의 관계에 대한 관점을 귀결해 볼 때, 일부 논자들은 양자를 구별해 다루면서, 그 이동(異同)에 주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논자들은 ‘소설’이란 용어로 소설과 희곡을 아예 함께 다루거나, 희곡을 소설의 한 ‘지류’로 여기고 있다. 이 경우, 그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처럼 대부분 논자들이 소설과 희곡을 함께 다루었던 원인은, 우선 원명(元明 ) 이래 많은 희곡 작품들이 고사 줄거리를 소설에서 가져온 탓에 양자를 아예 동일한 장르로 간주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만청 시기에 유행한 ‘唱書’ 방식의 희곡 지류는 대부분 ‘공연’의 성격을 벗어난 채 ‘說書’에 가까웠기 때문에 소설에 포함시켜 다루려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br/> 이와 같이 만청 시기에 희곡을 소설에 포함시켜 다루는 경향은 5ㆍ4 신문학 운동의 전개 과정과 그 이후의 논저에서 어떻게 계승되거나 극복되는가를 검토했을 때, 신문학 논의와 더불어 마련된 새로운 ‘문학’ 범주개념과 더불어 두 갈래를 혼용하는 시각은 대부분 극복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양자 혼용의 관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 《中?小?史大?》(1920), 范烟? 《中?小?史》(1927), 胡?琛 《中?小??究》(1929), ??工 《中?小?史十?》(1930年前後), ?祖怡 《小?纂要》(1948), 孟? 《中?小?史》(1965) 등 소설사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다르지만 소설과 희곡의 장르적 특징을 변별하지 않고 함께 다루는 이전 시각이 드러나고 있음을 살필 수 있어, 양자혼효 현상의 자장(磁場)은 매우 길게 이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KCI등재

        역사와 허구의 교직 양상과 원인― 조선 망국에 대한 근대 중국소설의 인식

        이등 한국중국소설학회 2019 中國小說論叢 Vol.57 No.-

        This study purports to examine five Chinese modern novels, including Tears of Heroes (英雄淚), which depict the fall of the Chosŏn Dynasty in the early 20th century. Specifically, this study examines these novels tendency to combine historical facts and fictional imagination and the reasons of this phenomenon. Novels undoubtedly employ fictional material historical fact. However, if significant differences or even extortion exists, in-depth analysis is required. Generally, it is conjecturable that the motif of those novels originated from ‘sympathy’ for the tragedy of the neighboring country and it ultimately aimed to ‘awaken’ Chinese people who were in a similar political situation with the Chosŏn Dynasty. Since Chosŏn had been considered a tributary state to China, the fall of the Chosŏn Dynasty was especially astonishing to the Chinese and it led to a significant number of Sinocentric distortions of facts. Examples of these distortions can be found in the evaluation of historical events such as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and the murder of Empress Myeongseong and recognition of historical figures such as Heungseon Daewongun, King Kojong, and Ahn Jung-geun. The alteration and distortion can also be understood as consequences of insufficient information and an intentional apparatus for thematic development or amusement. As a matter of fact, Painful History of Korea (韓國痛史) by Park Eun Sik, which delineated detailed accounts of the fall of the Chosŏn Dynasty was translated into Chinese and published in 1915 in Shanghai. However, except Tears of Heroes (1910~1911), which was published thereafter, most novels examined in this study show significant errors and distortions of even obvious historical facts. Presumably, factuality of contents did not carry much importance since those novels aimed to raise awareness among Chinese people and cope with potential crisis through lessons from the tragic example of the Chosŏn Dynasty. Furthermore, some of the novels even display admiration toward the revolution and development of Japan, which became a gradually more ‘hostile state’ to China with colonial aspirations after the annexation of Chosŏn. For the same reason, Itou Hirobumi, the leader of revolutionary development and colonial exploitation, received praise in the novels as ‘another hero’ next to Ahn Jung-geun, who was considered a hero. 이 논문은 20세기 초 조선의 망국 과정을 제재로 삼은 《英雄淚》 등 중국 근대소설 5종을 검토 대상으로 삼아, 이들 작품에서 제시된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허구의 차이와 교직(交織) 양상, 그러한 차이가 나타나게 된 배경을 분석하였다. 원론적 측면에서는 허구문학으로서의 소설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완전하게 일치할 필요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그 차이나 왜곡이 매우 심각한 경우, 그 원인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들 작품들의 창작 동기는 이웃나라 조선의 비극에 대한 ‘동정’에서 출발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비슷한 상황에 처한 자기나라의 국민을 ‘각성’시키기 위한 목적이 더 강했다. 특히 오랫동안 중국의 ‘속국’으로 여겨온 조선의 망국은 충격적 사건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중화주의’의 입장에서 사실의 왜곡이 이루어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는 동학 혁명, 민왕후 시해 등 역사적 사건이나 대원군, 고종, 민왕후, 안중근 등 실제 인물의 사적이나 평가에서 두루 확인된다. 물론 또 다른 측면으로, 작품 창작 당시 작자가 확보할 수 있었던 정보 부족, 작품 주제나 통속문학적 재미를 강화하기 위한 의도적 설정이라는 점도 고려될 수 있다. 조선의 망국 과정을 한문(중국어)으로 자세히 밝혀 쓴 박은식의 《한국통사 韓國痛史》가 1915년 상하이에서 출간된 바 있다. 그렇지만 《영웅루》(1910~1911)를 제외한 여러 작품들은 대부분 그 이후에 나온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역사적 사실 부분에서조차 크고 작은 오류와 왜곡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작품은 조선 망국의 비극을 빌어 자국의 비슷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각성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내용의 사실성 여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선에 이어 자기 나라 중국까지 침략해오고 있는 일본은 ‘적국’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이 이룬 개혁과 발전에 대해 선망의 시선을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이러한 개혁 발전과 침략 야욕의 선봉자 이토 히로부미 역시 안중근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영웅’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것이다.

      • KCI등재

        臺刊中國文學史的體例與史觀之硏究

        이등 중국인문학회 2013 中國人文科學 Vol.0 No.55

        19세기말,서구와 일본 등 중국 이외의 국가에서 근대적 체제를 갖춘 중국문학사가 등장한 이후,黃人·林傳甲 등 중국학자가 쓴 중국문학사도 이어 출간되었다. 이후 20세기 백년을 거쳐 지금까지 通史를 비롯해 각종 단대사․장르사․비평사 등 다양한 문학사가 끊임없이 이어져 그 수가 1,000 여 종을 넘는 상황이다. 필자는 그동안 한국과 중국 대륙, 서양에서 출간된 통사체 문학사를 검토 대상으로 삼은 일련의 문학사 관련 논문을 통해 각 시기 또는 장르의 문학사 특징을 검토해왔고, 이 연구 역시 앞 논문들과 동일한 맥락에서 기획된 작업이다. 이 논문에서는 1950년대 이래 臺灣에서 출간된 주요 문학사 20여종을 검토 대상으로 삼아 그 편찬 체제와 서술 시각의 변천 과정과 특징을 분석해냈다. 주요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20세기 후반기 臺灣에서 출간된 주요 문학사들은 편찬자가 구체적으로 언급했는지 여부를 떠나 절대다수가 교재용 문학사다. 둘째, 서술 시기와 범주 면에서 이들 문학사들은 대부분 原始文學에서 淸末까지를 다루었고,劉必勁《中國文學史綱》, 蘇雪林《中國文學史》, 江增慶《中國文學史》등 일부 소수 문학사에서만 新文學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셋째, 20세기 초창기 문학사에서 논쟁이 되었던 ‘雅俗兼容’문제와 관련해 臺灣에서 출간된 문학통사들은 대부분 시, 산문, 소설, 희곡 등 각 장르의 변화과정을 함께 다루었지만, 여전히 예외도 있었다. 예컨대, 李鼎彝《中國文學史》에서는 詞와 戲曲 장르를 서술 범위에 넣지 않았다. 또한 최근 출간된 龔鵬程《中國文學史》에서는 소설과 희곡에 관한 내용이 詩文에 비해 훨씬 소략하여 비중의 차이가 드러난다. 姜渭水《中國文學史》는 ‘中國哲學大綱’·‘中國語言文字學大綱’·‘宋明理學大綱’ 등 章節을 포함시키면서 적지 않은 관련 도표를 제시하여 ‘文學’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넷째, 50년대 이래 臺灣에서 출간된 절대다수 문학사는 시대구분 면에서 기본적으로‘전통적’王朝分期法을 따르면서“一代有一代之文學”관점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다섯째, 1950년대 이래 중국 대륙과 臺灣은 정치상황이 크게 달랐기 때문에 두 지역에서 출간된 문학사의 史觀 또한 정치 체제의 이데올로기 영향이 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臺灣의 주요 중국문학사에서는 이러한 이데올로기 강조 측면이 대륙과 비교해볼 때 뚜렷한 편은 아니다. 일부 편찬자가 문학사 서문이나 관련 회의에서 唯物史觀에 반대하고 民生史觀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실제 문학사 서술에서 이러한 관점을 구체적으로 적용한 경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소극적’ 반발 형식 또한 주목해볼 현상이 아닐 수 없다.

      • KCI등재

        试论冯梦龙小说评语中的小说观念 -以戏曲小说文类分合为中心-

        이등 중국인문학회 2014 中國人文科學 Vol.0 No.58

        전통시기 소설이론 전개 과정에서 소설 장르의 본질적 특징을 논할 때 선진에서 명․청 시기까지는 주로 소설과 사서(史書)를 병렬․비교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만청 시기에 와서는 당시 서구 소설의 유입 영향을 받은 이른바 ‘신소설’의 특징에 주목하게 되면서 이와 대응되는 구소설과의 비교, 새롭게 번역 소개된 외국소설과 자국소설의 비교가 다양하게 제시되었고, 이런 과정에서 간혹 같은 서사문학에 속하는 고전희곡조차 소설 범주에 포함시켜 다루기 일쑤였다. 본고는 만청 시기와 이 시기 전후의 논자들이 특히 같은 서사 문학 갈래에 속하는 희곡과 소설의 범주 개념을 혼용했던 상황과 그 원인을 규명했던 선행 논문 ≪试论对于小说与戏曲两种文体概念的认识过程----以晩淸小说批评中的视角为基点≫에서 파악했던 연구결과를 토대로, 이 문제를 만명(晩明)의 대표적 통속문학가 풍몽룡 소설관의 특징과 대조해 논의를 진일보 심화시키고자 했다. 그 결과, 풍몽룡이 “삼언”의 서문에 쓴 내용과 문언소설집 ≪정사≫에 쓴 평어 내용을 종합해볼 때 그는 ‘소설’과 ‘희곡’을 분명하게 구분해 제시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확인 작업을 통해 만청 시기 이전 풍몽룡을 포함한 대부분의 통속문학가들은 양자를 결코 혼용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혼용은 만청 시기 특수한 환경 속에서 새롭게 제기된 현상이었음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 KCI등재

        試論“孔子厄於陳蔡”故事的敍事轉變過程

        李騰淵 중국인문학회 2014 中國人文科學 Vol.0 No.56

        이 연구는 중국소설사의 전개 과정에서 본격적 소설의 선행 형태라 할 수 있는 우언‧제자산문‧역사산문 등 초기 서사가 후대 단편소설 및 장편소설에 과연 어떤 식으로 수용, 변화되면서 서사의 큰 흐름을 형성해나갔는가, 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를 위해 “孔子厄於陳蔡”라는 고사 모티프를 일례로 삼아 그 변화 과정을 분석했다. 이 모티프를 선택한 이유는 관련 내용이 『論語․衛靈公』편을 포함해 여러 선진‧양한 전적과 후대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었기에 서사의 전개, 변화 문제를 탐색하는 데 매우 유용한 텍스트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공자의 가르침과 사적을 가장 충실히 담았다고 할 수 있는 『논어』에 보이는 “孔子厄於陳蔡” 내용은 30여자 밖에 되지 않은 매우 간략한 모습이지만, 『논어』 전후 선진‧양한시기의 다른 전적 속에서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출현한다. 『莊子』나 『墨子』 등 유가와 대립적인 다른 학파에서는 자신들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이 고사를 변형시켜 서술했고, 이런 서사 내용은 다시 후대 다른 전적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운용되었다. 이처럼 도가와 묵가 쪽에서 유가를 비판하거나, 유가의 인물을 이용해 거꾸로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면 『荀子』 등 유가 자체에서도 자신들의 사상과 이념을 고수하거나 다른 학파의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이 고사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한대 司馬遷의 『史記‧孔子世家』에서도 관련 내용을 기록했는데, 이전의 여러 諸子書나 문헌을 종합적으로 참고하면서도 독특한 서사 효과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했기에 후대에 특히 자주 원용되었다. 한편, 이 “孔子厄於陳蔡” 고사는 ‘聖人의 극단적 곤궁’이라는 특별한 상황을 담은 흥미로운 모티프이기에 후대의 문언소설과 백화소설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주목할 점은 선진양한의 전적에서 “孔子厄於陳蔡”를 끌어올 때는 기본적으로 사상적 측면에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면, 초기소설 형태로서 『搜神記』와 같은 지괴소설에서는 이 소재를 더 이상 원래 상황을 반복 기술하거나 사상 논쟁 속에서 진행시키는 게 아니라 허구적 고사를 새롭게 가미, 부연하면서 인물의 선명한 대비를 통해 한층 흥미로운 이야기로 재창출했다는 것이다. 또한, 송대 이후 크게 흥성한 백화통속소설, 특히 역사소설에서 이 고사를 수용할 때는 대부분 『莊子』‧『孟子』‧『荀子』‧『韓詩外傳』‧『說苑』‧『史記』‧『說苑』‧『搜神記』 등 각종 諸子書와 史書, 소설 등 이전 전적에 실린 다양한 기록을 이리저리 원용하면서 작자가 자신의 문장을 첨가‧보충하는 식으로 재구성했다. 이 경우, 각 기록에 담긴 사상 경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모순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통속성과 재미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소설이기에 이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요컨대, 선진양한시기에 주로 사상 논쟁 과정에서 활용, 기록되었던 이 모티프는 전혀 다른 이야기 요소, 즉 허구로 재창조되거나 기존의 이질적 내용을 과감히 뒤섞는 방식으로 후대 소설에 수용되면서 새로운 서사 흐름의 자양분이 되었던 것이다.

      • KCI등재

        中國ㆍ日本의 주요 근대소설 이론의 특징 연구

        이등,김순전 한국중국소설학회 2003 中國小說論叢 Vol.18 No.-

        本文的主要論點在於: 通過分析20世紀前後處於歷史轉換期的中國和日本的主要小說論―梁啓超、 黃人、 坪內逍遙、 二葉亭四迷等四人理論的特徵, 來闡明繼承傳統和接受西歐理論上的矛盾、 選擇問題. 日本坪內逍遙、 二葉亭四迷兩人將“學問、 科學的眞理”擴展到文藝, 通過確立“藝術的眞理”這一槪念, 來提高文學藝術之地位; 此立論的結果將文學(小說)歸爲了獨立的範疇. 梁啓超作爲中國晩淸時期功利主義小說觀的代表, 從他的『變法通議ㆍ論幼學第五ㆍ說部書』、 「蒙學報·演義報合敍」、 「譯印政治小說序」、 「小說與群治之關係」諸文章中可見, 因戊戌變法失敗而東渡日本以後, 其論旨越來越强烈. 「小說與群治之關係」的論調與以前文章相比, 顯得相當地激進, 他主張: “欲新一國之民, 不可不先新一國之小說.”, “小說有不可思議之力支配人道故.”, “小說爲文學之最上乘也.” 黃人則雖亦注重小說與社會關係, 然而却是站在客觀的立場上, 指出“小說者, 文學之傾於美的方面之一種也”, 有一定的批評史性的意義. 在日本, 明治維新後, 經過飜譯文學興盛期, 至1882年政治小說論擡頭, 與此相對應出現了坪內逍遙的『小說神隨』、 二葉亭四迷的『小說總論』. 然而在此十年後, 梁啓超却從未言及此兩篇文章, 倒重視其以前之政治小說, 其原因則在於: 作爲政治思想家的梁啓超, 他論小說之根本需要是爲政治改良、 社會變革服務的, 故其不論及『小說神隨』和『小說總論』, 而重視其以前階段的政治小說論. 綜觀中日四位理論家之論議, 可見在繼承傳統、 接受新理論上之種種錯綜線路, 存在著互相批判、 補充的普遍現象, 這無疑是此歷史轉換期的局限及成果, 也是該時期的主要特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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