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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황희 정승 납거미 유언’ 설화 고찰

        황인덕 ( In-deok Hwang )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8 인문학연구 Vol.57 No.1

        알려져 있듯 황희는 정승을 지낸 조선 초기 명인의 한 사람이다. 다수일반인들에게 그는 주로 ‘황희 황정승’으로 이름과 직위가 병칭되어 불리어오곤 했는데, 이는 그의 이름이 오래 전에 이미 애칭화되어 후대까지 널리 불려왔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역대 정승을 거친 수많은 훌륭한 인물가운데, 그 직위에 요구되는 역할을 가장 충실하게 실현함으로써 그 존재가 거의 ‘정승’의 대명사처럼 기억되어온 결과라 하겠다. 황정승이 조선조전 시대를 대표하는 명 정승으로 알려져온 것에 부합하여, 그에 대하여 구전되어온 설화 또한 그 폭과 깊이가 넓고 깊게 실현되고 있다. 한 인물이 남긴 설화가 대략 주인공이 지닌 인품, 생애, 시대, 업적 등의 조건에 비례한다면, 황정승이 남긴 설화의 다양성도 대략 그러한 조건들이 예사인물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위 인물에 대하여 <공작이도 납거미를 먹고 살랴>라는 하나의 유형을 집중적으로 고찰하였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위 설화의 유형은 크게는 하나, 작게는 세개의 유형으로 나뉘고 있다. 둘째, 위 설화가 형성된 화소의 원천은 ‘고려장 설화’와 ‘공작이도 납거미를 먹고 살랴’라는 전래 속담이며, 이 두 가지 요소가 하필 황정승을 대상 인물로 하여 새로운 설화를 이룬 것은 나말여초 중국과 조선의 국제관계와 그 속에서 황정승이 수행한 역할과 위상이 반영된 결과이다. 셋째, 설화를 통한 인물 형상의 특징은 청렴상을 통한 민담성의 강화에 있으며, 특히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청렴을 실천하는 인물상의 구현은 황정승의 투철한 애민정신을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넷째, 황정승 설화는 여말 선초를 지나 조선 초기 국운 상승기의 인물담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며, 그로 인하여 설화 속의 인물상이 한결같이 긍정적인 모습으로만 나타난다. As we all know, Hwang Hee was a renowned minister in the early period of Joseon dynasty. The fact that he has been mainly called both by name and position as ‘the minister Hwang’ means he was already given a nickname a long time ago. He has been remembered as a representative of ministers existed in the history as he carried out his duties the most faithfully among the numbers of past outstanding ministers in the country. In accordance with his reputation as a devoted minister throughout the whole dynasty of Joseon, his fictional image was embodied with great wide and depth. If the tales Hwang Hee left behind depended on the conditions such as his personality, his life, the period and his achievement, a variety of his tales would seem to approximately result from those different conditions from those of others. This paper concentrates on his tale < Apeacocklivesonflatspiders > only. The contents are as below. First, the above-mentioned tale might be broadly divided into a type, or into three types in detail. Second, a subject matter of this tale is derived from folk tales about ‘Goryeojang’ and ‘A peacock lives on flat spiders’. A new tale about Hwang Hee which has been invented reflects on the international relationship of Joseon with China, and the role and position he played in the late period of Goryeo dynasty and the early period of Joseon dynasty. Third, a characteristic of the hero in the tale depends on the strengthening his integrity, which displays Hwang Hee’s strong love for the people by showing his exceptional ability to perform for them. Fourth, the tale of Hwang Hee represents a tale of the great man in the history when the country was in the ascendant in the early period of Joseon from the late Goryeo and the early Joseon. Therefore, he was displayed as a positive character in the tales.

      • KCI등재후보

        ‘신틀(털)-’류 지명의 배경적 고찰

        황인덕(Hwang, In-deok) 한국지명학회 2013 지명학 Vol.19 No.-

        인류 문화의 오랜 증거 자료의 하나인 지명은 언어의 화석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그것은 역사, 문화적으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중층적이고 다면적인 배경을 함의하고 있다. 때문에 그에 대한 이해도 여러관점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이 글은 되도록 넓은 관점에서 지명을 이해하자는 취지의 일단으로 필자대로 관심을 기울여본 것이다. 본고에서의 이러한 관점은 기본적으로는 지명의 문화적 이해와 크게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더 넓게 볼 때 문화는 그것을 낳은 자연 배경을 선행 조건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지명의 역사성이나 문화적 특성의 이해는 더 근원적으로 이러한 자연적 배경까지를 주목하여 접근함으로써 기대될 수 있다. 우리는 지명 연구에서 이러한 관찰 노력을 더 심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컨대 버드내를 ‘버들 +내’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표피적인 해석이라면, ‘벌+들+내’로 해석하는 것은 이 지명을 낳은 배경상의 독자성을 더 깊이 유의한 해석이 되는 것이며, 그만큼 그것은 지명의 민족적 고유성에 좀더 충실한 해석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명에는 하나의 지명어를 중심으로 하여 그와 관련된 자연배경이 있고, 사물배경도 있으며 문학적 측면으로는 유래설이나 유래담이라는 상상적 배경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지명을 낳고 확산시키는 데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으며, 또한 파생지명ㆍ중복지명을 낳기도 하면서 상호 부단히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지명은 생명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여러 요인들을 지명의 ‘배경’이라는 말로 압축하여 ‘신틀(털)-’류 지명을 대상으로 하여 살펴본 것이다. 현지조사를 통하여 기존의 개별 지명 항목에 대한 사실정보를 보완한 뒤, 항목을 유형으로 나누고, 그것들을 주로 배경이라는 각도에서 여러 측면에서 살피고자 했다. 그러한 분석을 통하여 되도록 위 지명을 가능케 한 한국의 자연적ㆍ문화적 고유성을 부각하는 데에 유의하고자 했다. Place names are long standing evidences of human culture, the equivalent of fossil records for languages. They contain a wide array of diverse and layered meanings both historically and culturally. As such, an understanding of these place names can occur from many different perspectives. This study is therefore conducted with an interest in understanding place names from a broader perspective. This study compresses such diverse factors under the umbrella term background and examines the place names that include Shin-teul(teol), The existing texts are sourced and separated according to category, and these are examined from different angles in their background. Special care will be placed on emphasizing Korea’s regional connections and cultural uniqueness that led to such place names. The place names that include Shin-teul(teol) are separated into seven types. Such places are located throughout South Korea with the exception of Jeju Island. Overall Shin-teul is more common than Shin-teol. This means that these place names are more often derived from the stone from which the name Shin-teol comes from. The reason why this place name is common is because of the complex influence of numerous factors including the subject and form of straw shoes, the climate, geological and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of Korea, and the fact that shin-teul, the wooden frame of Korean shoes, were widely used. This is, in short, the uniqueness and characteristic seen through the perspective of a Korean context. These place names are unique in that they are not found in Jeju Island. This notable in that this is the result of Jeju Island’s unique characteristics. This is the influence of Jeju Island’s characteristics including geological factors such as the fact that the island is covered in basalt, agricultural livelihoods that revolve around fields rather than paddies, and a rocky environment.

      • 충청 일부지역 유소녀 윷놀이 방식 소고

        황인덕(Hwang, In Deok)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20 충청문화연구 Vol.24 No.-

        이 글은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놀이 가운데 하나인 윷놀이를 다룬 것이다. 한국에는 29점으로 된 점수판 위에서 점수를 따지며 노는 윷놀이가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것이 남녀 누구나 노는 가장 보편적인 윷놀이다. 그런데 이와는 다르게 어린 소녀나 처녀들이 주로 하는 윷놀이도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윷놀이보다 간략하고 단순한 방식으로 놀아진다. 이 글은 이 놀이에 대하여 일부 충청지역을 조사 대상으로 하여 놀이의 방식과 특징을 살펴본 것이다. 이 놀이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위 놀이의 방식은 ‘겨루기성 놀이’에다 ‘손재간으로 묘기를 부리는 놀이’가 더해진, 두 가지가 복합된 성격을 띠고 있다. 둘째, 위 놀이는 앞 부분과 뒷 부분으로 이루어져,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이 앞부분은 "진행"의 의미를 띠며, 뒷부분은 그것에 더해져 "완성"의 뜻을 띤다. 이 둘의 조합으로 위 윷놀이 각각의 과정은 완성이 된다. 셋째, 이들 두 구성 부분 가운데 "완성" 부분이 더 본질적이고 "지속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 넷째, 그러므로 이 지속성이 더 강한 본질적인 구성 부분이, 지속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앞 부분의 기반이 되고 있고, 더 넓게 감싸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위 놀이의 후반부에서 두 요소의 결합은 느슨하게 실현되고 있다. 다섯째, 이 때문에 위 윷놀이 방식은 여러 지역에 따라 다른 방식을 보여줄 가능성이 늘 열려 있다. This article is about a Yutnori game, one of the most popular traditional games in Korea. In Korea, people all over the country play Yutnori on a scoreboard with 29 points. This is the most common way both men and women play. Meanwhile, there is another Yutnori, where young girls and virgins play in a different way. This is a simpler than a normal Yutnori. This article examines the style and characteristics of Yutnori played by young girls and virgins in some parts of Chungcheong provinces. The main features of this game are as follows. First, this is a game of competition and hand skills. Second, the game is made up of the front and back parts to pair up with each other. The front part means "progress" and the back part means "completion". The combination of these two completes each process of the game. Third, between the two compositions, "completion" is more essential and persistent. Fourth, therefore, this more essential and persistent component becomes the basis for the relatively weak front part and is in a position to wrap it more widely. And for this reason, the combination of the two elements is loosely realized in the latter part of the game. Fifth, for this reason, this game is always open to the possibility of showing different ways in different regions.

      • KCI등재

        전설로 구현된 송구봉의 인물상과 그 의의

        황인덕 ( In Deok Hwang )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5 인문학연구 Vol.54 No.4

        이 글은 조선 중기 도학자였던 구봉(龜峰) 송익필(宋翼弼)에 대한 전설을 연구한 것이다. 본고에서 주로 다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이제까지 구봉에 대한 설화 연구가 가해지지 않았음을 유의하여 관련된 전설 각편(version)을 두루 모으고, 이들 자료를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2) 구봉 전설의 부류별 양상을 볼 때, 대략 구봉의 인물됨이나 행적가운데 사실성이 강한 일화 중심의 부류, 이와는 반대되는 허구적 표현이 두드러진 부류,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역사적 위인으로 형상화된 전설 부류, 그리고 시와 관련된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3) ‘일화류’ 전설에서 부각된 송구봉 인물상은 크게 사실성이 중심을 이룬 것과 허구적 표현이 실현된 것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사실성이 중심을 이룬 것은 구전자료와 문헌자료에 두루 나타나며, 허구적 표현이 강한 것은 구전자료에서 주로 나타난다. (4) 구봉 전설에서 허구적이고 과장된 표현의 절정은 현실문제와 관련하여, 더 구체적으로는 임진왜란이라는 전쟁과 관련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유형군의 성립과 전승은 구봉전설이 일반 상민층으로 점점 확대되어 나간 것과 궤적을 함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5) ‘허구적 구봉 전설’의 특징은 구봉이 임란 이후 구전 설화로써 형성된 여러 영웅적 인물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형상화되고 있는 점이다. 임진란에 참여한 바도 없는 그가 이처럼 무비의 영웅으로 표현되고 있음은 그의 타고난 장재(將才)를 바탕으로 하여, 여기에 임진란을 경험한 당시 상민들의 인물을 갈망하는 절박한 소망이 깊이 반영된 결과이다. 이점이 전체 구봉전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자 역사적 의의이다. This study is a review of the legend of Kubong Song Ikpil(宋翼弼), a Confucius scholar of the 16th-century Joseon Dynasty. The main poin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1) Even with little previous research into the legend of Kubong, relevant versions of the legend were collected and classified into several types. (2) These versions can be classified roughly as follows: ones containing episodes featuring a heightened sense of reality, ones enriched with fictional elements, regional ones in which Kubong is depicted as a historical figure, and ones interspersed with poetry. (3) In the ``episode-type`` versions, Song Kubong is portrayed in two different ways: as a real person and as a fictional character. Reality-oriented versions are found across both oral and written literature, while fictional versions are found only in oral literature. (4) The peaks of the fictional and exaggerated narration of the Kubong legend are closely related to harsh realities, specifically, to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e formation and transmission of such a version occurred in parallel with the spread of the Kubong legend among the common people. (5) The ‘fictional`` versions of the Kubong legend feature the depiction of Kubong as an epic hero. This is a reflection of the consciousness and desperate desires of the common people who experienced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is is the most remarkable aspect and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Kubong legend.

      • KCI등재

        임란기 전승업과 사우(師友)들의 피난지 모색활동과 학연성

        황인덕 ( Hwang In-deok )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6 인문학연구 Vol.55 No.3

        이 글은 충청지역학과 인문학의 연관성을 고려하면서 그것과 연관된 주제의 하나를 자세하게 다루어보자는 취지에서 시도된 논문이다. 충청 지역 가운데 특정 지역이 보여주는 지리적 공간의 특징이 문학으로 구현된 양상을 최종 목표로 삼아, 그러한 특징에 대한 예비적 이해를 추구해 보려는 것이다. 고찰 대상이 된 지리적 공간은 곧 선유동이라는 특정 공간이고 그 공간이 지니는 시대적 배경은 전쟁을 예상하면서 피난처를 예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본고는 이러한 상황에 주목하여 선유동이라는 지리적 공간을 주목하면서 그 공간이 특수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전환되고, 더 나아가 그것이 문학적 표현으로 접속되는 양상을 유기적으로 파악하려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선유동이 특수 공간으로 인식되기까지의 시대ㆍ사회적 배경을 자세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는데, 본고는 바로 그것을 위한 기반 다지기에 목적을 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옥천지역 선비의 한 사람이었던 전승업과 그를 중심으로 한 주위 사우들의 임란을 대비한 피난처 찾기와 정사 짓기 활동을 살폈다. 이어 그 당시 선유동을 포함한 피난 적합지로 꼽힌 지점들을 종합하여 단계별로 구분하였다. 또한 선유동이 유달리 중시된 양상을 살피고, 끝으로 이러한 활동에 동참한 인물들의 사우관계와 그들이 토정학연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고찰하였다. In this paper, I studied the activity of scholars who JeongSa (精舍) refuge when Imjin War The central figure was Jeon Seungeop, aboriginal Yangban scholar in Ockcheon. After examining the process of building ``In Bong Jung Sa`` (仁峰精舍) and of refuge, I attention to the reason why ``Seonyudong`` was assessed as the most important refuge among other refuges. Moreover, I studied the activity of Jeon Seungeop in school (學緣性). Japanese invasion of Korea, millions of people sought from the in several ways. The subject of analysis in this paper particularly that scholars who united in one area carried out refuge collectively. Also, it is important fact that group academic cliques with Tojeong (Lee Ji Ham). Many years before Japanese Invasion, group they refuge Furthermore, they considered suitability of refuge was different depending on the circumstances of war. However, they all preferred Seonyudong as general refuge suitable for scholars not because was place to and, but also had.

      • KCI등재

        ‘보학(譜學)담 이야기꾼’의 한 사례

        황인덕(Hwang, In-deok) 한국언어문학회 2015 한국언어문학 Vol.94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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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traditional storyteller in Korea has consistently interested me and this study, a case study, is a continuation of it. Roughly speaking, discipline of genealogy (譜學譚) can be defined as a story of genealogy. Also, storyteller of it is who has great interest in the story of genealogy and narrate at a professional level. ‘Genealogy’ can exist any place in the world; however, 'discipline of genealogy', a study of genealogy, exists only in Korea. Likewise, while the story of genealogy can exist any where in the world, the discipline of genealogy can be said to exist only in Korea. The story of genealogy is mostly limited to individual family's story of its ancestors. In contrast, the discipline of genealogy means a comprehensive knowledge of several families in Korea. As the term, genealogy, has come out of Korean culture, the term, storyteller of genealogy, has been derived from unique tradition of Korea, which might be possible due to tradition of Yangban culture for a long time. In specific, this study focuses on one case which can show the features of telling 'a discipline of genealogy' among other types of storytellers in Korea. Storyteller of this case study is Sangmuk Kim (1924~ ) whose uniqueness and aptitude were investigated on three perspectives. First, his family background and tradition-oriented background in his journey of life experience are discovered. Next, after considering his ability of telling as a storyteller and his way of making a discipline of genealogy telling a habit, the nature of topics and the way of telling are investigated. The last part of this study is devoted for the significance of Sangmuk Kim and his discipline of genealogy of the times. Regarding his family background and tradition-oriented background in his journey of life experience, three different perspectives are considered: formation of tradition-oriented consciousness and family background; his life course and confucian values-oriented view; and experiencing 'GuelSaRang Chamber' in his boyhood. In addition, regarding the nature of topics and the way of telling, two different views are used such as classification and types of topics; and features of telling topics. In conclusion, the culture of genealogy and storytellers of it turns to be possible only within Korean culture, whose tradition will not be likely to be continued and maintained anymore in the future.

      • KCI등재

        신용정보의 체계와 정책 이슈

        황인덕 ( In Deok Hwang ) 한국금융정보학회 2013 금융정보연구 Vol.2 No.2

        우리나라의 신용정보 이용 및 보호 체계는 1995년 1월 5일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법적 기반을 확보하였고, 그동안 신용정보업의 육성, 신용정보의 효율적 이용 및 체계적 관리, 신용정보 주체의 보호, 신용질서의 확립 등에 기여해 왔으나, 신용정보의 이용 및 제공 등에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어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공공정보 집중 관련 규정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이 공공정보의 제공에 소극적이며, 대부업 정보도 금융정보로서 금융시장의 효율성 관점에서 공유정보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할 것이나, 현재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신용평가모형의 정확도를 제고하고 금융소외자의 금융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공정보 및 대부업 정보의 실질적인 공유가 필요하다. 신용평가업이 신용정보법에서 자본시장법으로 이관되면서 현재 고유업무로 수행중인 신용공여 평가 등의 업무가 부수업무로 분류되는 등 규제상충 문제에 대한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 또한 신용평가 수익모델의 변경이나 복수평가의 폐지여부에 대해서는 이해상충의 회피를 통한 정확한 신용평가정보의 생산과 투자자 보호라는 관점에서 보다 충분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 기업신용정보 인프라는 재무정보의 양과 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상대적으로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으므로 향후 기업정보 유통 활성화를 통한 서비스 고도화와 이를 위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Systems on use and protection of credit information in Korea were introduced into legislation in January 5, 1995 in parallel with enactment of an act on use and protection of credit information. The systems have contributed to nurturing of credit information business, efficient use and systemic control of credit information, protection of the information owner, and enforcement of credit-related rules and regulations. However, issues have been raised to reform the systems as they apply very strict restrictions over use and provision of credit information. In addition, in spite of the regulation on concentration of public information, public agencies are passively providing public information. Moreover, even though it is plausible to share information about consumer loan finance companies as financial information from a perspective of an efficient financial market, it is not shared as of current. In order to enhance accuracy of credit rating model and improve access of those who are financially excluded to financial market, public information and information about consumer loan finance business shall be shared in practice. Additional legal supplementation is necessary in order to address the conflict of regulations as credit rating business is now regulated under the Financial Investment Services and Capital Markets Act instead of Use and Protection of Credit Information Act. For example, the assessment of credit exposure which is currently classified as core activity will be categorized as supplementary activity. In addition, change of credit rating business model or abolition of multiple rating system require thorough research and review for production of accurate credit rating information and protection of investors. Infrastructure regarding credit information of companies is relatively in its elementary stages since it lacks both quality and quantity of financial information. Against this backdrop, service must be advanced by facilitating distribution of information about companies, and aggressive investment is also necessary to this end.

      • 토정 이지함의 과욕(寡慾) 사상과 관련 전설 고찰

        황인덕(Hwang, In-deok)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13 충청문화연구 Vol.10 No.-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understand To-Jung Lee(李土亭), Ji-Hham’(之?)s spirit of desire-suppressing by connecting it with a variety of legends where the spirit was manifested. Including the spirit of desire-suppressing, he emphasized and also practiced several ideas and theories in his life. Among them, specially, he created a theory of desire-suppressing. Also, responding to the theory, unique legends have been left behind his theory, which allowed investigating the connection between them further in this study. To-Jung had been known for his desire-suppressing disposition since his early childhood. In specific, what he had practiced in his life was featured in many different areas such as suppressing his selfish interests and desires, devoting himself to charities, helping his disciples, and carrying out his duty as a governor. As this was admitted by his close friends, he was deeply respected by his disciples. In addition, the clue of a theory of desire-suppressing To-Jung held was basically based on Menciu(孟子)s’ one. To-Jung’s theory was, however, even more thorough than Mencius’ one as it was often called ‘a theory of no-selfish-interests-and-desire’. In fact, his theory emphasized faithfulness and infinity inside, while infinity of practice on the external surface, which made his theory very unique and special. The characters expressed in the legends were featured as two distinctive images. The first character was a governor lecturing his subordinates and the second was a person on whom one’s family background was reflected. In specific, the former was connected with specific geographical region, with more features which could be found in local legends, while the latter occurred from the reflection of To-Jung’s and A-Gye Lee(李鵝溪), San-Hae(山海)’s family background, with more features on the character and its family background. Regardless of the types of the two, either type focused on person or one focused on family, it was common that they were based on To-Jung’s specific behavior and his experience. Other than most of other legends about To-Jung’s spirit of desire-suppressing, there was a different version saying that he had one desire, whose figurational expression was able to be made because his desire was far from no-desire as a perfect altruism. For example, his filial behavior of building a tomb in a propitious site for his parents can be a reflection resulting from the general public’s point of view, regarding the behavior as far from perfect filing behavior without realizing it purposely.

      • 부여 ‘조룡대’ 전설의 형성과 전개

        황인덕(Hwang, in-deok)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18 충청문화연구 Vol.21 No.-

        조룡대 전설은 일찌기 부여의 4대 관광 유적의 하나로 꼽힌바 있듯, 부여 지방의 대표적인 역사전설이자 유적전설이다. 이 글은 위 설화에 대하여 시간축을 중심으로 하여 통시적으로 고찰한 것으로, 조룡대 전설의 형성 배경과 전승 과정상의 변이 양상을 주로 살펴보고자 했다. 조룡대 전설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 줄거리 그대로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최초 자연전설로서의 용 전설로 발생되었고, 백제가 부여로 천도한 뒤에는 수륙겸왕(水陸兼王) 전설로 변이되었다. 그리고 소정방의 침공을 받은 뒤 ‘조룡대’라는 지명이 발생하기 전에는 ‘용바위’라는 소박한 수준의 전설로 전해졌으며, 고려 말에 비로소 조룡대 전설로 그 이름과 내용이 한 단계 격상되었다. 그리고 고려말 조선초에 ‘백마강’이란 지명이 성립되면서 조룡대 전설로서의 유형성이 더욱 공고화되는 것과 함께 백마강 유래담의성격을공유하는전설로변화되었다. 이로써 위 전설은 지금과 같은 안정적이고 보편적인 전승 유형성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후대에 이르러 전승층이 넓어지면서 여성화자의 취향에 가까운 ‘민담성’의 표현을 띠기도 하고, 부여지역의 지명에 대한 자세한 이해 위에서 증거력이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표현의 실감성을 높이는 효과도 발휘했지만, 다른 면으로는 전설의 희화화를 낳기도 했다. 조룡대 전설이 이처럼 여러 번에 걸쳐 성격 변모를 보인 것은기본적으로 부여만의 자연지리와 역사적 배경의 독자성 때문이다. 위 전설은 도성(都城)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사비강의 어족(魚族), 반월수(半月水), 조룡대(釣龍臺) 및 범바위(虎巖)라는 자연물들 사이에 이루어진 상호 관계의 결과였다. 그런가 하면 여기에 명승지로서의 조건이 전설의 전승과 확산에 기여하였고, 나아가 부여 주변의 지명들도 전설의 확산에 유의미한 조건이 되어 주었다. 이처럼 여러 가지 면에서 조룡대 전설은 독자적인 유형성을 갖추어 나갈 수 있는 조건을 처음부터 지니고 있었다.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Buyeo Joryongdae Legend. Joryongdae legend is a representative historic legend and a relic legend of Buyeo. Because of such importance, this legend has been chosen as one of four tourist attractions early on. In this paper, I deal with this legend diachronically on the time axis. From that angle, I look at the background of the formation of legend and the variation patterns in the transmission process. Joryongdae legend was not created at once into what it is like today. It was originally made into a dragon legend, and after Baekje transferred its capital to Buyeo, it was changed into Sulyuggyeomwang. After the invasion of Su Dingfang, it was then passed down as a simple legend before the name of Joryongdae occurred. It was not until the late Goryeo that its name and content were elevated one step. In late Goryeo and early Choson, with the advent of the name, Baegmagang, and with the consolidation of corporeality as a legend, it changed into the legend that shares Baegmagang story of origin. With this, it came to be equipped with a stable and universal quality of transferable tangibility. In addition, as the number of layers that can be transferred to the next generation has widened, it has come to have expressions of folklore that approximate the taste of female speakers. Based on a detailed understanding of the geographical names in Buyeo, it strengthened its weight of evidence. This has helped to enhance the realism of expression, while also causing the legend to be comicized. It is primarily because of Buyeo"s natural geography and identity of historical background that Joryongdae legend had such multiple characteristic changes. The legend was the result of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capital city and the interaction between the fish of the Savi River, Banwolsu, Joryongdae and Beombawi. In addition to this, the condition as a scenic site contributed to its transmission and spread, and the place names around Buyeo also became a significant condition for the spread of the legend. Therefore, Joryongdae legend, while being made into a legend and repeating variations, had conditions from the outset that allowed itself to have its own tangible characteristics.

      • 아계(鵝溪) 사행몽교탄생(使行夢交誕生) 담 연구

        황인덕(Hwang In-deok)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10 충청문화연구 Vol.5 No.-

        Lee, San-hae [1538-1609} was the personality equipped with talented gifts, and he was a dignitary in charge of Yeonguijeong in th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There exist several legends of figures relevant to him which have been orally transmitted to these days. This writing is on the one of the legends. This story is about "Sahaengmonggyotansaeng" in which the father of Lee, San-hae was sent to China as an envoy, where he lay with his wife and begot a son in his dream. This story type has a lot more versions in comparison with other types related to Lee, San-hae. This explains why this legend has gained lots of attention from the public. The above mentioned legend dates back to Seong, Mong-jeong[1471-1517] ahead of Lee, San-hae. It could be the result of the figure story in the precedent period being pulled by a more famous figure in the following period. However, there exists a difference in these two stories. There still remains a vestige of mythical motif in Seongmongjeong story, which means that the Seongmongjeong story has been orally transmitted to this period while assuming strongly a meaning of "A Great Man who put his family in the map" in the socio-cultural background where the tradition of one's family was much valued. However, the Lee, San-hae Story has been able to be imagined and remembered easily to the general public by virtue of the level of awareness of a figure, and peculiarity of the figure's name-i.e. consistency of the name Lee, San-hae with the place name "Sanhae'gwan." By this, it could be concluded that Lee, Sanhae legend, though it is the same type story, has been orally transmitted to this period while taking on more intriguing quality and popularity. However, the more important difference lies in another. In short, in the legend by Lee, San-hae, there clearly appear the narrative elements such as 'Shadowlessness', 'Bonelessness' and 'Transformed into water as soon as he died.' This could be the result of the general public's consciousness of criticism against his political weakness being strongly reflected. His responsible role in history was big, so such criticism was strongly levelled at Lee, San-hae. This is a natural consequ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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