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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내재주의-외재주의 논쟁과 펠드맨과 코니의 정신주의

          한상기 범한철학회 2014 汎韓哲學 Vol.74 No.3

          Internalism-Externalism debate has been of great interest to epistemologists. This internalism-externalism debate in epistemology is a debate about what sorts of things determine epistemic facts. Internalism about epistemiuc status holds that “inrternal” things determine epistemic facts. More concretely, internalists about epistemic justification hold that only what is “internal” to our minds can be the sort of thing that justifies our beliefs. By contrast, externalists reject this requirement. Externalists about epistemic justification hold that what is “external” to our minds determines epistemic justification. Recently, Richard Feldman and Earl Conee have defended internalism as the version of mentalism. They say that internalism in epistemology has been getting bad press lately, externalism is ascendant, but this trend is not right. According to them, this trend is, partly, due to fact that insurmountable problems for internalism are supposed to have been identified. In their view the purported problems of internalism pose no serious threat, and a convincing argument for internalism is untouched by the recent criticism. This paper introduces Feldman & Conee's mentalism, and examines the very nature and implications of internalism-externalism debate. To do so, I suggest that theories can be called "internalism" in epistemology are at least three forms, accessibilism, mentalism, and conception of deontological justification. And then, I introduce Feldman & Conee's mentalism, and presents examples, where one agent has a justified belief while the other does not or one agent's belief is better than the other's. I offer two types of objections to their mentalism, examine critically, with their responses to objections. Finally, I consider about implications of internalism-externalism debate in epistemology. 내재주의-외재주의 논쟁은 인식론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논쟁이다. 인식론에서 내재주의-외재주의 논쟁은 어떤 종류의 것들이 인식적 사실을 결정하거나 해결하는가에 관한 논쟁이다. 내재주의는 “내재적인”(internal, 내적인) 것들이 인식적 사실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내재주의자들은 우리의 정신에 내재적인 것들만이 우리의 믿음을 정당화하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외재주의는 이 요건을 거부한다. 외재주의는 “외재적인”(external, 외적인) 것들이 인식적 사실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내재주의 대 외재주의의 논쟁이 한 동안 인식론계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던 상태에서 펠드맨과 코니는 그들의 “정신주의”(mentalism)를 내세워 내재주의를 옹호하였다. 그들은 내재주의가 최근 혹평을 받았고 외재주의의 주가가 상승중이지만, 이러한 추세는 올바른 것이 못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이러한 추세는 부분적으로 내재주의가 극복불가능한 문제들을 지녔다는 가정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들에 따르면, 내재주의의 문제라고 지적되었던 것들은 내재주의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하지 않으며, 내재주의를 옹호하는 설득력 있는 논증은 외재주의자들의 최근 비판에 의해 손상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이 논문은 이러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 펠드맨과 코니의 정신주의를 소개하고, 그에 대한 반론과 응답을 살핌으로써 내재주의-외재주의 논쟁의 근본적 성격과 의의를 살피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인식론에서 “내재주의”라 불릴 수 있는 이론들이 적어도 세 가지 형태, 즉 접근가능주의, 정신주의, 의무론적 정당화 개념에 기초한 이론이 있음을 밝힌다. 그런 다음 펠드맨과 코니의 정신주의를 소개하고, 정신주의를 뒷받침하는 사례들을 제시하는데, 이 예들은 한 사람이 정당화된 믿음을 갖는 반면 다른 사람은 갖지 않거나, 한 사람의 믿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정당화되는 그런 예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정신주의에 대한 반론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제시한 다음, 펠드맨과 코니의 응답과 함께 이 반론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재주의-외재주의 논쟁이 인식론에서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 KCI등재

          믿음의 윤리에 관한 J. 메일랜드의 자유주의적 견해

          한상기 범한철학회 2012 汎韓哲學 Vol.67 No.4

          There are three sorts of duties we may be said to have regarding belief acquisition. First, there are epistemic duties, duties to believe according to the evidence or duties to inculcate the sort of belief-forming mechanisms that will ensure justified beliefs. There is something morally wrong about violating an epistemic duty to believe according to the evidence. In other words, violating an epistemic duty cannot be identical with violating an moral duty. Second, there is the view that holds that we have moral duties to believe according to the available evidence. Therefore, it is morally wrong to believe anything upon insufficient evidence. Third, there are pragmatic or prudential duties, duties to believe propositions insofar as they lead to the best outcomes. In 19th Century, W. K. Clifford sets forth a classic version of evidentialism, arguing that there is an ethics to believing that makes all believing without sufficient evidence immoral. According to Clifford, it is wrong always, everwhere, and for anyone, to believe anything upon insufficient evidence. So, according to Clifford, we may be said to have moral duties to believe according to the evidence. On the other hand, J. Meiland have maintained that the only "ought" regarding belief acquisition is a prudential ought. According to Meiland, a person is free to seek whatever goals he or she desires: happiness, salvation, convenience, aesthetic pleasure, and so forth. We may call this the Libertarian view of the ethics of belief. So, Meiland argues that not only is it sometimes morally permissible to believe against the evidence but that it is sometimes morally obligatory to do so. This paper discuss J. Meiland's libertarian view that holds that we have pragmatic duties to believe propositions insofar as they lead to the best outcomes. First, this paper aims to understand the background of the so called the ethics of belief, offering Clifford's classic evidentialism regarding belief acquisition. Then, I offer Meiland's arguments against rigid evidentialism. Finally, I discuss his view regarding belief acquisition critically. 믿음 획득과 관련하여 우리가 지닐 수 있는 의무로는 보통 세 가지 의무가 거론된다. 첫째는 인식적 의무인데, 우리에게는 증거에 따라 믿어야 할 의무나, 정당화된 믿음을 확보할 종류의 믿음 형성 메커니즘에 처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때 증거에 따라 믿어야 할 인식적 의무를 위반하는 일과 관련하여 도덕적으로 그릇된 것은 없다. 다시 말해서 인식적 의무를 위반했다고 해도 그것이 곧 도덕적 의무를 위반한 것은 아닐 수 있다. 둘째는 도덕적 의무로 우리가 이용가능한 증거에 따라 믿어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충분한 증거에 기초하여 어떤 것을 믿는 것은 도덕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 된다. 셋째는 실용적 또는 타산적 의무(pragmatic or prudential duty)인데, 이 의무는 어떤 명제를 믿는 일이 최선의 결과로 이끄는 한 그 명제를 믿어야 할 의무이다. 19세기에 클리포드(W. K. Clifford)는 근대 이후 전통적 견해로 수용되어온 견해들을 대변하여 충분한 증거 없이 믿는 일을 부도덕한 것으로 만드는, 믿음의 윤리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고전적 형태의 증거론을 제시하였다. 그래서 클리포드에 따르면, “불충분한 증거에 기초하여 어떤 것을 믿는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그릇되다.” 클리포드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명제를 믿을 때 증거에 따라 믿어야 할 도덕적 의무를 지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메일랜드(J. Meiland)는 믿음 획득과 관련하여 유일한 “해야 한다”는 타산적 “해야 한다”이며, 사람은 무엇이 됐건 그가 욕구하는 목표, 즉 행복, 구원, 편의, 미적 쾌락 등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다고 논함으로써 믿음의 윤리와 관련하여 자유주의적 견해를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증거에 반하여 믿는 것이 도덕적으로 허용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때로 도덕적 의무라고까지 주장한다. 이 논문은 믿음 획득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증거에 따라 믿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것을 거부하고, 실용적 또는 타산적 의무가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J. 메일랜드의 견해를 다룬다. 필자는 먼저 고전적 증거론을 제시하는 클리포드의 논증을 제시함으로써 믿음의 윤리가 제시되는 배경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런 다음 엄격한 고전적 증거론에 반대하는 메일랜드의 논증을 제시한 후에 그의 견해에서 잘못된 점을 지적함으로써 비판할 것이다.

        • KCI등재후보

          자연화된 인식론과 인식론의 자율성

          한상기 범한철학회 2004 汎韓哲學 Vol.35 No.4

          이 논문의 주된 목적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는 자연화된 인식론들 사이에서 전통적 인식론에 대한 자연화된 인식론자들의 태도를 근거로 최소한의 공통 특징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전통적 인식론의 특징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 기본주장으로 간추릴 수 있다. 첫째, 인식론은 선천적 성격을 띤다. 둘째, 인식론은 규범적 성격을 띤다. 셋째, 인식론은 자율적 학문이다. 자연화된 인식론은 이 세 특징에 대한 태도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으며, 그래서 자연화된 인식론은 대략적으로 전통적 인식론의 이러한 특징들 중 적어도 하나 또는 그 이상을 거부하는 인식론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세 특징들 중 어떤 특징들을 거부하는가에 따라 자연화된 인식론자들은 저마다 다른 입장을 취한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궁극적으로 자연화된 인식론자들이 첫 번째 기본주장과 두 번째 기본주장에 대해서는 저마다 다른 태도를 취할 수 있지만, 세 번째의 인식론의 자율성 주장에 대해서만큼은 공통으로 반대 입장을 취한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Perhaps unfortunately, naturalized epistemology has a number of variations. This paper aims to seek the common features of various views of naturalized epistemology. We can find three distinctive aspects or features of traditional epistemology: (1) the autonomy of epistemology, (2) the normative character of epistemology, and (3) the a priori character of epistemological claims. Naturalized epistemology might be characterized by its typical rejection of one or more of these features. This paper aims to show that naturalized epistemologists might take different attitudes toward (2) and (3), but enter into a closely alliance with the rejection of (1).

        • KCI등재

          비판적 사고와 논술

          한상기 범한철학회 2007 汎韓哲學 Vol.46 No.3

          To write argumentatively is to critically read a given material, to set up a problem, to propose a creative solution to it, and to write logically. So argumentative writing is composed of three stages: critical reading, setting up a problem and proposing a creative solution to it, and logical writing. Critical thinking plays the key role in all the three stages. This paper introduces the movement of critical thinking, the foundation for argumentative writing. It also investigates the history and the definition of critical thinking. In doing these, it focuses on the movement of critical thinking, the first-wave that began in the early 1970s, and the second-wave that began in the mid 1980s. The two waves will be seen to have certain good results but limitations as well. There is a growing demand that we should take the strengths of the two waves and make up for the weaknesses. So I present reasons for the need of the third-wave, introduce R. Paul's work as an example of the third wave, and examines how his theory can be applied to the foundation for argumentative writing. 논술이란 주어진 자료나 글을 비판적으로 읽고 문제를 설정한 다음 그 문제에 대한 창의적 해결책을 끌어내어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논술은 비판적 읽기, 문제 설정과 창의적 해결, 논리적 서술의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논술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비판적 사고다. 이 글은 논술의 토대로 인정되는 비판적 사고 운동을 소개하고, 그 동안의 비판적 사고의 역사와 정의 등을 살핀다. 이 과정에서 최근의 비판적 사고 운동에 초점을 모으고, 70년대 초반 무렵부터 시작된 제1물결, 80년대 중반 무렵부터 시작된 제2물결을 소개할 것이다. 두 물결은 일정한 성과도 있었으나 나름대로 한계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두 물결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려는 제3물결 운동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제3물결 운동이 필요한 이유를 밝히고, 제3물결의 한 견본 사례로 폴(R. Paul)의 이론을 소개하고, 그의 이론이 논술의 토대로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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