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펼치기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펼치기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백곡<SUP>栢谷</SUP> 정곤수<SUP>鄭崑壽</SUP>의 가족사랑과 가문의식 연구

        정우락(鄭羽洛) 한국국학진흥원 2018 국학연구 Vol.0 No.37

        본고는 백곡 정곤수에 관한 최초의 본격 연구로, 그의 가족사랑과 가문의식을 집중적으로 탐구한 것이다. 임란을 맞아 청병진주사請兵陳奏使로 활약한 나라사상도 그의 가족사랑과 가문의식의 확장이라는 입장이다. 정곤수는 전통적인 가국논리家國論理에 입각한 유가주의를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곤수의 선세先世는 고려왕조에 벼슬을 하면서 환력과 학문으로 명성이 있었데, 이색李穡의 ‘서원대성西原大姓’은 이를 두고 한 발언이다. 이러한 가계를 바탕으로 정곤수는 개국공신 정총鄭摠의 주손으로 본생가인 성주와 양가인 서울 사이를 오가며 생활하게 된다. 정곤수의 가족사랑은 양가와 본생가에 동시에 나타났고, 특히 본생가의 재종형 정괄鄭适과 재종제 정구鄭逑에 대한 사랑은 각별한 것이었다. 가문의식은 가승이나 『서원세고西原世稿』를 만들고, 가문 관련 글을 작성하거나 묘갈 등을 세우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여기에는 그의 가문이 동국명가라는 자부심이 게재되어 있었다. 특히 가문을 지탱하는 사상적 기반으로 ‘공경사상’을 들고, 이것이 진외증조부 김굉필을 거치면서 도학적 수양론으로 발전해가는 것을 보였다. 수제치평修齊治平의 유가적 논리에 따른 정곤수의 가족사랑과 가문의식은 애국의식으로 적극 표출되었다. 개국공신의 주손으로서의 자부심과 국가에 대한 헌신이 맞물리면서 나라사랑은 그에게 부여된 당연한 책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수신’이 ‘제가’로, ‘제가’가 다시 ‘치국’으로 확장되는 것과 함께, 역으로 ‘치국’이 ‘제가’로, ‘제가’가 다시 ‘수신’으로 수렴되는 순환구조를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순환구조는 결국 ‘수기치인’이라는 유가 논리에 근간을 두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 KCI등재
      • KCI등재후보
      • KCI등재
      • KCI등재
      • KCI등재
      • KCI등재

        경북 종가 제례의 양상과 문화적 의미 ― 불천위 제례를 중심으로 ―

        정우락 ( Jeong Woo-rak ) 온지학회 2018 溫知論叢 Vol.0 No.56

        본고는 경상북도 불천위 제례가 어떻게 시행되고 있으며, 이것이 지닌 문화적 의미는 또한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것이다. 불천위 제례를 특별히 주목한 이유는, 제례가 가문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강력한 의례이며, 전통의 계승과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새로운 가족공동체를 구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본 연구를 위하여 먼저 경상북도 종가 46개를 선정하였으며, 이를 통해 주자학이 한국에 들어와서 토착화하는 과정과 한국화하는 과정을 제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주자학적 구심력과 한국적 원심력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경상북도의 불천위 제례는 기본적으로 『주자가례』의 절차를 따르지만, 행례(行禮) 현장에서는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변화는 제례의 날짜, 시간, 장소, 절차, 진설(陳設)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며, 지역에서 시행하는 향사(享祀)와 밀접한 연관관계를 지니고 행례되기도 한다. 문화적 의미로는 성리학적 의례의 지역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점 이외에도, 부부공제(夫婦共祭)의 실현과 열린 가족공동체 문화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 관련된 감동적인 이야기가 다수 발견된다는 점 등 다양한 것을 들 수 있다. 심각한 저출산과 함께 가족의 해체를 우려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불천위 제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하겠다. This study set out to investigate the way that the Bulcheonwi ancestral ritual was performed in Gyeongsangbuk Province and its cultural meanings. The study focused on the Bulcheonwi ancestral ritual because ancestral rituals were the most powerful ceremony in the community culture around families, showed the transmission and changes of tradition best, and could help to design a new family community. The investigator selected 46 head families in the province and checked the process of Zhu Xi studies being introduced, naturalized, and Koreanized in Korea through ancestral rituals. That is, it shed light both on the centripetal force and Korean-style centrifugal force of Zhu Xi studies at the same time. The Bulcheonwi ancestral ritual of Gyeongsangbuk Province basically follows the procedure in Zhu Xi's Family Courtesy, but there were many changes in the field of Haengrye. These changes took place across various areas including the date, time, place, procedure, and food dish arrangement of the ancestral ritual. They were held in close connections with Hyangsa performed locally. It had various cultural meanings including the clear presentation of the locality of Neo-Confucian ceremonies, the realization of Bubugongje, the embodiment of the open family community culture, and the discovery of many related moving stories. In today's South Korean society with concerns for serious low birth rates and family deconstruction, the Bulcheonwi ancestral ritual has many implications for the people.

      • 寒居 崔后大의 文學世界, 그 日常의 形象에 관하여

        鄭羽洛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02 退溪學과 韓國文化 Vol.- No.31

        본고는 寒居 崔后大(1669-1745)의 문학을 통해 隱求型 士林의 문학세계, 그 일단을 밝히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은구형 사림은 官人型 및 方外型 사림과 달리 자연에 은거하면서 내면적 심성을 닦아 천리를 보존하고자 한 사람들로서 성리학적 측면에서 순수할 뿐만 아니라, 정치일선에 나아가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관인형이나 방외형 사림 등 여타의 사림과는 변별되는 특징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주자학에 그 사유의 근간을 두고 이론적 측면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도 하고, 그들 자신의 생활현장을 더욱 가치있는 것으로 보고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 나가기도 했다. 한거는 바로 후자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인식하면서 본고는 우선 한거 사유의 근원과 문학에 대한 인식을 고찰하였고, 나아가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일상에 대한 다면적 형상을 生活小事에 대한 관심, 자기 수양과 집안 다스리기, 국토유람과 동국문화에 대한 재인식 등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거 문학의 중요한 일면과 함께 은구형 사림의 상상력의 한 부면을 찾을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make clear, through Hangeo(寒居) Choi Hoo-dae(崔后大)'s literature, a part of the literature of Recluse Confucianists(隱求型 士林). Recluse Confucianists, different from Politician Confucianists(who were, or at least wanted to be, in politics) and from Outsider Confucianists(who ignored realities and absorbed in ideals), tried to preserve the laws of nature by cultivating their mind and retired to the hermitages in nature. It makes difference from other Confucianists that Recluse Confucianists, who were pure in the metaphysics aspect, did not go into politics as well. Some of Recluse Confucianists, rooting their thoughts in the doctrines of Chu-tzu, strengthened theoretical aspect; others created new culture putting much value on the site of their life. Hangeo belongs to the latter. On noticing this point, this study examines the origin of Hangeo's thoughts and his recognition of literature, and furthermore, studies the various pictures of daily life in his works: his interest in daily trivial matters, his self-discipline and home management, his pilgrimage of the country and new understanding of Korean culture. Through these efforts, we can find an aspect of recluse Confucianists' imaginative power along with an important part of Hangeo's literature.

      • KCI등재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