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펼치기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펼치기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전라남도 민요의 분포와 특징

        전지영(Jeon ji-young) 한국민요학회 2003 한국민요학 Vol.12 No.-

        The representative farming songs in South Korea are rice-planting songs and weeding songs(songs during weeding rice paddies).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distinctive features of farming songs at Jeon-nam province of Korea, by means of rice-planting songs and weeding songs in MBC Folk Song Collection (MBC 민요대전). In relation to weeding songs of Jeon-nam province, more than half of them are sung by Nambu-Gyeongtori, which literally means a music style of Gyeong-gi province shown at south of Gyeong-gi. However, rice-planting songs are mostly sung by Yukjabaegi-tori which is a typical music style at Jeolla province. As is generally known, weeding songs have a long tradition, when rice-planting songs have been sung after the spread of the rice transplanting technique in the 18th century. Thereby, it can be argued that Nambu-Gyeongtori is an indigenous music style of Jeon-nam province, and Yukjabaegi-tori is a new style, which was made refinedly by Nambu-Gyeongtori after the 18th century. These two representative music style of Jeon-nam province formed the basis of U-mode and Gyemyeon-mode of Pansori.

      • KCI등재후보

        동의보감(東醫寶鑑) 내상문(內傷門) 방제(方劑)에 배합(配合)된 풍약(風藥)의 활용(活用)에 대한 고찰(考察)

        전지영,문구,Jeon, Ji-Young,Moon, Goo 대한한의학방제학회 2009 大韓韓醫學方劑學會誌 Vol.17 No.2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how exterior-relieving herbs are blended by each prescription with emphasis on Internal disease range of Donguibogam by limiting Wind herbs in exterior-relieving herbs to apply exterior-relieving herbs to internal diseases. Prescriptions mixed with exterior-relieving herbs is a prescription adding Bojungikgitang, Yijintang, Yimyosan, Yukilsan and Gilgyeongjigaktang. The mixed exterior-relieving herbs were diversely operated according to each prescription or medicines. However, the mixed exterior relieving herbs were mixed for rising yang & tonifying qi(升陽益氣) for the most part. The exterior-relieving herbs mixed with prescriptions had the total 15 kinds, Bupleuri Radix, Cimicifugae Rhizoma among them were mixed with prescriptions for the most part. In addition, two-kind mixed exterior-relieving herbs were utilized in order of Bupleuri Radix Cimicifuga Rhizoma and Bupleuri Radix Cimicifugae Rhizoma Notopterygii Rhizoma Ledebouriellae Radix. Taken together, Wind herbs is applied several purpose, so that it can contribute to treatment and prevention of internal diseases in present-day.

      • KCI등재후보

        예술민주주의와 전통예술교육의 새로운 좌표

        전지영(Jeon, Ji-young) 한국국악교육학회 2015 국악교육 Vol.40 No.40

        이 글에서는 문화민주주의 논의와 같은 맥락에서 예술민주주의를 설정하고, 전통예술교육의 차원에서 그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예술민주주의의 실천적 당위는 이 시대 예술적 정의(正義)와 맞닿아있으며, 이 관점에서는 예술에 있어 작품중심주의가 배격되어야 한다. 그리고 예술은 타자의 작품 감상활동이 아니라 삶의 욕망의 실천적 구현이어야 하며, 그것은 일상 속에서 실천과 참여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발견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예술민주주의 담론에서 사고할 때 전통예술 또한 창조와 능동성을 쟁취하기 위한 운동에 대한 요구는 필연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소위 ‘발명품’적 전통을 벗어나 새로운 공존의 기획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전통이 발명되었다고 할 때, 그 발명은 식민지배와 서구근대의 거울로서 발명됨을 의미한다. 전통과 근대는 상호 구성적 관계이며, 전통과 관련된 맥락으로서 근대성과 식민성은 어쩔 수 없는 동전의 앞뒷면이다. 근대성의 논리적 생산을 위해서는 식민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근대성은 식민성을 극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전통은 탈식민화를 지향할 때 시대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근본적 의미에서 탈식민은 윤리적 해방 지향이자 인간 회복의 당위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전통의 탈식민적 접근에는 예술 민주주의적 시각이 불가피하다. 전문가 양성교육과 학교 예술교육의 양 측면에서 예술민주주의적 참여와 실천의 가능성은 진지하게 논구(論究)되어야 한다. 전문가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위대한 작품’을 구현하는 ‘탁월한 수월성’을 가진 전문가 양성이라는 표면적 지향보다도 ‘어떤 전문가’를 양성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상품화된 작품을 잘 생산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공동체 삶 속에서 구성원들과 욕망을 공유하고자 하는 예술가, 이기적 작품활동을 통해 타자배제와 자기과시를 하는 권위자가 아니라 사회의 그늘진 곳을 외면하지 않고 시민의 의미를 실은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예술가가 진정으로 대학에서 길러내야 할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학교 전통예술교육 차원에서는 음악의 개념규정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전통예술은 ‘작품’이 아니라 ‘언어’로 이해되어야 한다. 언어가 작품감상이 아니라 생존과 삶의 의미 구현을 위해 필요한 것인 것처럼, 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참여와 실천의 예술민주주의적 고뇌에서 볼 때 전통예술교육은 ‘작품중심주의’의 탈피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그를 위해서는 전통음악이 작품중심구조의 서양음악과 함께 배치되어 있는 체제를 벗어나서 독자적 교과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아울러 다양한 교과목과 결합된 “통문화적 교육시스템”의 구축을 가능하게 하는 융통성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전통예술교육의 새로운 접근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미디어정책이 동반될 필요도 있다. The idea of art democracy can be established on the same context of cultural democracy, upon which the new direction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education(gugak education) can be argued. In the discourse of art democracy, what is important is participation and practice of art rather than work appreciation. Emerging from ‘tradition as an invention’ and planning for coexistence would be necessary for this idea. So-called ‘emerging from tradition as an invention’ does not mean modernity, in that coloniality and modernity are ‘heads and tails’, and so modernity cannot overcome coloniality. It should be accentuate that the sincerity of tradition is strongly related to art democracy and decolonization. For the participation and practice in terms of art democracy, some access routes in relation to traditional performing arts education can be argued as follows. First, ‘artist with awareness of human community’ should be emphasized rather than ‘specialist with supremacy in artistic skill’. Second, the notion of traditional art should be changed from ‘work of art’ to ‘human language’ in regular school art education. The work-centered viewpoint should be wept out from school art education. Third, the integrated study module should be requested for this art democracy education.

      • KCI등재후보

        일제강점기 관립음악학교 설치 및 조선 아악의 교수(敎授)에 관한 논의 고찰

        전지영(Jeon, Ji-young) 한국국악교육학회 2014 국악교육 Vol.37 No.37

        이 글은 일제강점기 관립음악학교 설립 논의가 어떤 배경에서 펼쳐졌고, 그 과정에 조선 아악의 교수(敎授)에 관한 논의가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세 차례 관립음악학교 설립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1921년과 1937~1938년, 그리고 1941년 무렵에 논의가 있었는데, 1921년은 본격적인 일제의 문화통치체제가 모색되던 때였고, 1937~1938년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시기이며, 1941년은 2차 세계대전이 격화되던 시기임을 고려하면, 음악학교 설립 논의는 일제의 정치적 계산과 궤를 같이 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일제 교육정책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관립음악학교 설립 논의가 유독 이시기에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것은 음악학교 설립 필요성이 음악 자체의 순수한 발전보다는 음악을 식민체제 공고화와 전시동원 필요성의 관점에서 제기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음악교육을 통한 황민화 강화의 추구를 의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관립음악학교 설립 필요성을 역설한 이들 대부분은 일본 국민정신 강화나 아국체본의와 같은 군국주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 음악학교에서 담당할 음악교육은 겉으로는 정서교육임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종속물로서 국민교육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일제강점기 관립음악학교 설립 논의는 신문·잡지기사만 보면 당시 한반도의 뜻있는 음악가들이 자신들의 희망을 담아서 표출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조선총독부의 의중이 내재해있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논의들에도 불구하고 예산상의 문제 때문에 관립음악학교 설립은 해방이 될 때까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식민지 지배체제를 위해 의도된 관립음악학교 설립 논의에서 조선 아악의 정규 학과설립 혹은 조선 아악 교수(敎授)의 주장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점은 얼핏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 조선 아악은 일제에 의해 내선일체론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었고, 조선 아악의 역사를 삼국시대까지 의도적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일본 아악과 같은 뿌리임이 선전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식민체제를 위한 음악학교 논의에서 조선 아악 교육 필요성의 제기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There were three times of discussions about the establishment of the government music school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 rule ; 1921, 1937-1938, and 1941. Each of these periods was related to Japanese political schedules and educational policies ; groping for cultural ruling to Korea in 1921, the Sino-Japanese War in 1937, and Japanese new structure for the victory of war in 1941. The discussions about the establishment of the government music school in each period were raised not for the pure development of music but for the reinforcement of colonial rule and wartime mobilization system by means of music. The arguments for the establishment of music school were mainly related to the upsurging of national spirit or loyalty to Japanese militarism. The so-called emotional education through music was the national education for Japanese colonial control in reality. The superficial arguers of the discussions were the Korean musicians, but the principal agent was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In spite of the discussions, the government music school was not established due to the lack of budget. There had been suggestions for the education of Korean a’ak in relation to the discussions of the government music school. The Japanese government regarded Korean a’ak as a good logical basis for the Naeseon Ilche(‘Korea and Japan are One’ policy). The Japanese government propagated that the Korean a’ak and Japanese gagaku had the same origin. The Korean a’ak was useful to the Japanese colonial rulers for this reason.

      • KCI등재후보

        시조의 음악적 변천

        전지영 ( Ji Young Jeon )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2007 이화음악논집 Vol.11 No.2

        시조를 담고 있는 고악보는 『구라철사금자보』, 『삼죽금보』, 『아양금보』, 『서금보』, 『방산한씨금보』등이다. 이들 악보는 거문고보와 양금보들인데 평시조와 지름시조 계통의 음악들이 실려 있다. 이들 시조관련 곡들을 역보하여 분석한 결과, 몇가지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고악보의 「평시조」는 현행 「평시조」와 달리 「중거시조」에 더 가깝다. 「평시조」에 이어서 「지름시조」, 「엮음지름시조」의 순으로 변화된 곡들이 등장했으며, 엮음의 경우 중장 두 장단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현행 시조에서는 양금이나 거문고 반주를 하지 않기 때문에 현행의 노래선율로 비교를 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지만, 무엇보다『구라철사금자보』의 시조가 현행 「평시조」와 같다는 주장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There are some old music books comprising shijo, such as Guracheolsageumjabo(『구라 철사금자보』), Samjuk geumbo(『삼죽금보』), Ayang geumbo(『아양금보』), Seogeumbo (『서금보』), Bangsanhanssi geumbo(『방산한씨금보』), which have pyeongshijo and jireumshijo. According to decoding of these old music books, the musical transitions about shijo are as follows. Pyeongshijoof these sheets are more similar to contemporary jung`geo shijo than contemporary pyeongshijo. After pyeongshijo, jireumshijo, and yeok`eum jireumshijo were emerged sequently. Among them, the style of yeok`eum was a 6 times` varation of a melodic pattern in the middle verses. So far the earliest shijo in Guracheolsageumjabo(『구라철사금자보』) has been regarded as pyeongshijo, but this should be reconsidered.

      • KCI등재후보

        전통예술정책과 전통예술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설정

        전지영(Jeon, Ji-young) 한국국악교육학회 2015 국악교육 Vol.39 No.39

        이 글은 전통예술정책과 전통예술교육이 공통적으로 보였던 철학적 빈곤함을 지적하고 바람직한 방향성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태까지 전통예술정책은 전통예술을 실질적으로 진흥하기보다는 전통을 수단화하는 정책이었다. 그것은 정책수립 단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정책철학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전통예술정책의 최종적 구현목적이 전통이 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전통이 수단화됨으로써 경제주의의 맥락에서 사고되어온 측면이 강했다. 수단과 목적의 혼동은 국악교육 혹은 전통예술교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악교육 혹은 전통예술교육이 궁극적으로 무엇이며, 무엇을 위한 교육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과정이 짜여졌고, 그로 인해 마치 국악교육(전통예술교육)의 목적이 국악발전이나 국악인재양성인 것으로 오해되어왔다. 따라서 정책과 교육 양 영역에서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정책현황이나 교육현황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철학의 빈곤함을 비판하고 그 위에서 정책과 교육의 방향을 새로 설정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전통예술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성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수단중심주의 탈피이다. 전통예술을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 설정하는 오류는 시정되어야 한다. 둘째, 엘리트중심주의와 작품중심주의의 탈피이다. 예술을 ‘작품’과 동일시하고 경쟁을 통한 ‘질적 검증’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예술을 풍성하게하기보다는 황폐화시킬 개연성이 크다. 셋째, 전통예술은 국가의 ‘지원’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국가의 의무라는 인식이다.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전통예술에 대해서 국가기관이 우월적 지위에서 현장의 전공자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구조는 시정되어야 한다. ‘의무’의 주체로 국가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정책철학이 다시금 필요한 것이다. 넷째, 보편주의 탈피이다. ‘세계적 보편성’이라는 구호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 보편성이 실은 서구중심주의의 산물이며, 전통예술은 그에 대항하는 가치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 네 가지 방향성은 결국 전통예술과 관련한 정책철학의 부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로 귀결되며, 수단과 목적의 혼동을 극복하는 과제로 연결된다. 한편 국악교육(전통예술교육)에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목표 재설정에 접근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학습에서 학문으로’의 변화이다.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 아닌 기능적 학습의 현장밖에 되지 않는 현실을 넘어서는 것이 절실하다. 국악교육은 국악발전이 아니라 인간적 존엄과 조화로운 사회적 삶을 위한 것이며, 이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당위적 훈련이 교육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다양성과 창의성이 존중되는 건강한 비판적 사유는 기능학습 차원이 아닌 학문의 차원에 해당한다. 둘째, ‘작품’과 ‘엘리트’ 중심에서 ‘예술’ 중심으로의 변화를 담아야 한다. 예술을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동일시하고, 소수 엘리트 양성을 위한 기능교육이 반복될 때, 그것은 창의적 예술교육이기 이전에 억압과 순응을 미덕으로 강요하는 시스템이 될 수밖에 없다. 작품중심의 ‘예능’교육을 벗어나 건강한 지성인으로서의 ‘예술’교육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전통예술교육은 ‘국민교육’이 아니라 ‘시민교육’이어야 한다. 무조건 국가에 순응하고 권위주의에 복종할 것을 강요하는 교육체제를 벗어나 건강한 시민들 사이의 풀뿌리 예술문화를 위한 교육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소수 엘리트의 생존을 위해 공동체가 희생하거나 기능적 훈련만하는 교육이 아니라 비판과 토론을 통한 담론들이 활성화되고 사고의 다양성과 예술적 도전정신이 존중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기능학습 중심의 예능교육이 지배하는 대학교육체제에서는 이런 시민교육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상의 교육적 방향성들은 기본적으로 교육철학의 문제라고 할 수 있으며, 역시 수단과 목적을 혼동해왔던 모습을 극복할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전통예술정책과 전통예술교육은 모두 철학부재에 따른 파행이라는 현실적 공통점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오해를 해왔고, 수단과 목적이 혼동되어왔던 것이다. 정책 측면에서 제기되었던 수단중심주의 탈피, 작품중심주의와 엘리트중심주의 탈피, 국가를 지원이 아니라 의무의 주체로 간주하는 문제, 보편주의 탈피 등의 관점, 교육 측면에서 제기되었던 학습보다 학문 중심, 작품과 엘리트보다 예술 중심, 국민교육보다 시민교육 방향성 등의 문제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들이다. 정책철학의 부재, 교육철학의 부재가 현재와 같은 전통예술정책의 다양한 문제와 전통예술교육의 내용적 빈곤함을 가져온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적 존엄과 조화로운 사회적 삶의 차원에서 전통예술을 사유하는 바탕 위에서 정책과 교육은 그 방향성이 새로 설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곧 문화민주주의, 교육민주주의의 구현이라는 틀에서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It can be argued that the scantiness of philosophy i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policy and education should be indicated in the present status. The existing policies of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have exposed the confusion between means and aim due to the absence of policy philosophy. This has been the same problem i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education. The normative line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policy can be argued as follows. The first one is the breakway from viewpoint regarding traditional arts as means for something like economic growth or national competitiveness. The second one is the breaking of elite-centered and work-centered viewpoint for the artists. The third one is the awareness that traditional performing arts is the object of duty for a nation, rather than that of aid. The forth one is the breakway from the universalism in arts. The normative line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education can be argued as follows. The first one is a change from technical training to scholarship, because the aim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education is not the development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but the dignity of man and harmonious social living. The second one is a change from elite-centered and work-centered viewpoint to ‘art in essential meaning’, because university education exists not for training the performers or entertainers but for educating conscientious intellectuals. The third one is a change from ‘national education’ to ‘citizenship education’, which means the emancipation from authoritarianism education system. In conclusion, the philosophical poorness is a common problem i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policy and education. The purpose and normative line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policy and education should be re-established in the aspect of the dignity of man and harmonious social living.

      • KCI등재후보

        판소리 중고제의 제설(諸說)과 정의에 관한 재검토

        전지영 ( Ji Young Jeon )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2006 이화음악논집 Vol.10 No.2

        판소리 중고제는 그에 관한 다양한 설이 존재했다. 단순히 선율적인 특징이나 가창 기교로 여겨지기도 하고 지역적 유파의 개념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러가지 가설들을 제치고 중고제가 확고한 지역적 유파의 개념으로 자리 잡았고, 또한 중고제가 고제(古制) 판소리를 지칭한다는 시대적 개념까지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런 시대적 개념에는 판소리가 서울·경기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판소리의 대표적인 두 악조인 우조와 계면조 모두 호남지역의 토속어법인 점, 판소리가 서울·경기지역에서 발생했다는 논리는 잡가에서 판소리가 파생했다는 주장과 닿아있지만 잡가의 사설짜임은 판소리보다 잡가가 후대에 생긴 것임을 보여준다는 점, 중고제의 한자표기도 다양한 점, 뿌리와 계보에 민감한 명창들이 중고제에 대한 언급을 그다지 하지 않는 점, 음악적 단순함이 반드시 고제이기 때문은 아닌 점 등 여러 가지 점에서 중고제는 고제와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판소리 변방 지역의 소리를 묶어서 부르는 소리라고 이해된다. 판소리에서 경기·충청 지역 명창의 소리들이 단조롭고 전승계보가 불분명하고 우조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그것을 고제라고 여길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중고제가 지역 창제로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은 것은 명창들의 자연스러운 전승의 결과가 아니라 학자들의 편의상 구분에 의한 영향이 크다고 보며, 더구나 그것이 고제로 이해되는 것은 판소리사에 대한 오해와 호고적(好古的) 욕망의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There have been many assumptions about pansori jung`goje. It has been considered as a kind of melodic characteristics, a singing skill, or a pansori school having specific reginal characteristics. Recently, it has been strongly considered as a pansori school of Seoul · Gyeon`gi province, and as an old school having former traces of pansori. There are some mistakes in these assumptions in that ujo and gyemyeonjo which are two main modes in pansori are all aboriginal in Honam province, jung`goje has various kinds of Chinese characters, masters of pansori did not have fluent sayings about that, monotonous melodies of jung`goje do not show that it is an old form, etc. It can be argued that jung`goje is, on the contrary, a concept of peripheral areas` pansori school such as Seoul ·Gyeon`gi province. It is true that pansori of Gyeon`gi ·Chungcheong province is monotonous in melody, obscure in genealogy, but these characteristics can not make jung`goje reagrded as an old version pansori. These misunderstandings of jung`goje should be caused by the desire for old ones and the misinterpretation about the history of pansori.

      • KCI등재

        관매도 해안사구 식물상 및 식생 분포특성

        전지영 ( Ji Young Jeon ),명현호 ( Hyeon Ho Myeong ),이점숙 ( Jeom Sook Lee ) 한국도서(섬)학회 2012 韓國島嶼硏究 Vol.24 No.1

        We conducted a research concerning the vascular flora and vegetation distribution status of coastal sand dune in Ganmaedo from August to September 2011. As a result, flora was classified into 58 families, 124 species, 1 subspecies, 17 varieties, 1 forma, summing up to 143 taxa. Among these, the naturalized plant was distributed into families, 19 species, and the sand dune plant was distributed into 12 families, 21 species and 1 variety. The vegetation of Coastal dune was classified into 8 communities; Vitex rotundifol.a-lmperata cyperata var. koenigii community, Carex pumila community, Carex kobomugi community, Vitex rotundifolia community, Ischaemum anthephoroides community, Zoysia macrostachya community, lmperata cyperata var. koenigii community and Calystegia soldanella community. Vitex rotundifolia community and lmperata cyperata var. The koenigii community was wildly distributed among all communities, while the Pinus thunbergii community was concentrated mostly in hinterland. Based on the Urbanization index, human disturbances appeared to be 5.9%. In conclusion the study area will require management and monitoring of the naturalized plant since neutralized index occupied a considerable amount about above 3 degrees. In the case of islands, more over practical management will be needed to limit the expansion of naturalized plant.

      • KCI등재

        조선시대 금악(今樂)의 관념

        전지영 ( Jeon Ji-young ) 한국음악사학회 2018 韓國音樂史學報 Vol.60 No.-

        개념적으로 금악(今樂)은 고악(古樂)에 대비되는 음악이다. 조선시대 유자(儒者)들에게 금악은 모순적 존재였다. 금악이란 조선의 당대라고 하는 시공간을 응축하는 것이며, 이는 곧 중국이 아닌 조선에서 살고 있는 유자들 스스로 갖게 되는 모순이기도 하다. 그들은 예악론(禮樂論)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조선 금악에 대해 맹목적 비판을 하기도 하고 ‘금악과 고악이 다르지 않다’는 가르침에 의거한 신축적 자세로 그 가치를 인정하기도 했다. 대략 17세기 이후 금악은 조선사회에서 사회적 인정을 획득했으며, 그 결과 오늘날 전통음악의 역사가 풍성하게 구축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적이고 음란한 음악에 대한 판단기준은 모호했으며, 18-19세기 주된 비판의 대상들은 훗날 ‘바른 음악’의 범주로 인정ㆍ통합되었다. 금악이 고악의 현현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갖출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치 기준으로서 마음은 개인의 영역이 아니라 타자의 영역에서 구축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조선시대 금악의 관념은 당대 비판과 당대 해석의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사회와 시대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Music of the time’(kumak 今樂 in Sino-Korean) is an idea contrasted with ‘music of the ancient’(koak 古樂). According to Confucianists in the Choson 朝鮮 Dynasty period, ‘music of the time’ had been regarded as depraved music of depraved current society. Many of them had shown blind criticism about ‘music of the time’, whereas some of them recognized its value, found upon the teaching of Mencius that “music of the time is not differ from music of the ancient.” The notions of ‘music of the time’ had been inevitably contradictory in that sense. After 17<sup>th</sup> century, ‘music of the time’ could acquire social recognition in Choson society, thereby the abundant history of Korean traditional music could be constructed afterward. ‘Right mind’ is the premise for the teaching of Mencius, which means the valuation standard of ‘music the time’ should be ‘mind’ rather than music style. However, the definitive ‘subject’ for the value judgment of music may appertain not to an individual scale but to the social dimension. In conclusion, the notions of ‘music of the time’ in the Choson Dynasty period show that ‘the subject’ of evaluation in the judgment of ‘arts of the day’ is not individual but society.

      • KCI등재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