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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戰前·戰中期 日本에서의 倭寇像 構築

          윤성익(Yoon Sung-Ik) 한일관계사학회 2008 한일관계사연구 Vol.31 No.-

          현재의 전제로서 과거가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異見을 보이고 있는 현재의 倭寇觀도 과거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현재와 과거의 倭寇가 그려지는 모습이 다르다면 그 차이는 어떤 이유에 의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현재와 과거를 규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서의 차이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倭寇에 관해 많은 연구 성과를 축적한 일본이지만 1945년 이전 일본에서의 倭寇에 대한 구체적 연구는 별로 없다. 이런 가운데 1945년 이전에 倭寇가 어떻게 이야기 되고 있었는지는 막연하게 인식되고 있을 뿐인데 이는 자칫 과거의 倭寇에 대해 오해와 오류를 범할 소지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도 이 시기에 倭寇가 어떻게 설명되었으며 변화했는가를 탐구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倭寇연구의 소재인 史料의 상황은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과거와 현재, 중국과 일본에서 사용되는 史料는 거의 동일하다. 연구환경에 변화가 있다면 史料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의 「태도」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後期倭寇의 구성원 가운데 中國人倭寇의 수적우위는 과거에도 익히 알려져 있었다.그러나 中國人의 존재는 ‘日本人海賊'으로서의 倭寇이미지를 크게 바꾸지는 못했다.中國人은 倭寇의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는 데 이용되었고 日本人은 소수였음에도 여전히 倭寇의 主體로 설명되었다. 軍國主義日本에서 倭寇는 과거 日本人의 海外活動혹은 大陸進出의 先驅로써 가치가 있었던 만큼 倭寇는 어디까지나 日本人의 활동이어야 했다. 倭寇는 또한 부정적인 이미지의 탈피와 함께 그 위상의 변화?상승이 이루어졌다. 이런 倭寇像의 변화는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倭寇는 부각되었고 때로는 과장?왜곡되기도 했다. 필요에 따른 선택은 특정 부분의 강조나 혹은 반대로 은폐를 가져왔고 모순된 견해나 주장을 낳기도 했다. 倭寇에는 폭력적인 모습만 존재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역시 이런 暴力性을 배제할 수도 없다. 商人的인 面을 중심으로 倭寇의 상업적 측면이나 交流者로서의 측면이 부각되는 현재 日本의 倭寇觀도 이런 점에서는 반성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日本에서 행해진 일이 현 시점에서 중국과 한국, 그리고 다시 일본에서 행해지지 않는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中國人倭寇에 대한 현재 中國의 태도는 戰前의 日本에서와 유사한 결과를 낳고 있다.韓國에서도 과거 日本에서 사용된 방식이 사용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 일본에 의해서 이루어진 ‘超歷史的存在로서의 倭寇'나 倭寇와 관련된 ‘새로운 기억'의 창출은 현재 韓國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日本의 침략'이라는 倭寇觀은 이 점에서 문제가 있다.또한 상업적인 면을 강조하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폭력적인 면만 부각되는 韓國에서의 倭寇觀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The present is the result of th epast. The different views of the Japanese pirates between Korea and Japan are associated with situations of the past. If the discrepancy between the Japanese pirates of the present and past is due to the specific reasons, they would be important clues that makea close investigation into the discrepancy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as well as Korea and Japan. In Japan, there are many research products of the Japanese pirates, but there is little research of that before 1945. The researches of the Japanese pirates before 1945 were understood ambiguously, so this situation aroused the misunderstanding about research of the past. In this sense, it is a meaningful study that in vestigates the change of the view of the Japanese pirates in prewar and mid-war in Japan. The records about the Japanese pirates were similar before and behind 1945, they were also similar in Japan and China. The difference of the researches is the attitude to using the historical material. It was well known that Chinese were much more than Japanese among the members of the Post Japanese pirates. But, the existence of Chinese raiders in the Japanese pirates could not have changed the understanding as the ‘Japanese' raiders. The Chinese raiders were used to dissolve the negative images of Japanese pirates, the Japanese raiders were understood core of the Japanese pirates despite of minor proportion. The Japanese pirates were the value of the ocean activity or the entry into the continent, so the Japanese pirates must be the activity of the Japanese in the age of militarism. The ymoved up the status due to break from the negative image. This change of the image had been a mirror of the times. The Japanese pirates wereemphasized or distorted according to the situation of the times. The selection of specific characters of the Japanese pirates brought on inconsistento pinions. There are not only violent aspects on the Japanese pirates, but their violence is the essential characteristic of Japanese pirates. It should be reflected on the view about the Japanese pirates in Japan that emphasized the traditional aspect of them. Now, the view about Chinese raiders in China is similar with that in prewar Japan and so do that in the historical academic world in Korea. It should be reflected on the view about the Japanese pirates in Korea as “the invasion of the Japanese pirates” that emphasized only the violent aspect of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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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地誌』의 왜구 관련 기사-그 사료적 가치와 활용에 대하여-

          윤성익(Yoon, Sung-Ik) 한일관계사학회 2021 한일관계사연구 Vol.71 No.-

          여말선초의 왜구에 대한 연구는 『고려사』・『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의 왜구 침구 기사가 가장 중요한 근거사료가 되어왔다. 그런데, 특히 고려 말 왜구의 경우, 그 기록은 왜구에 의한 피해나 이를 격퇴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록만으로는 왜구의 주체나 목적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 제주도는 지정학적으로 일본열도와 한반도, 중국대륙을 연결하는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왜구가 창궐했던 시기에 제 주도에도 왜구사건이 많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고려사』의 기록은 실질적으로 단 1번뿐이고 조선시대에도 다른 지역과 비교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17세기에 간행된 서적으로 李元鎭(1594~1665)의 『耽羅誌』(1653년 간행)나 金尙憲(1570~1652)의 南槎錄(1669년 간행)에는 『고려사』・『조선왕조실록』에는 없는 제주도로의 왜구 침구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충숙왕 후2와 후3년(1341・2), 충정왕 3년(1351), 공민왕 1년(1352)과 8년(1359), 우왕 2년(1376)의 6회, 조선시대는 태종시기의 5~6건, 문종 1년의 1건으로 총 12~3건의 기록이다. 이들 기록은 당시 제주도에 전해지고 있었다고 여겨지는 제주도의 지방기록인 『地誌』를 근거로 한 것이다. 『지지』의 기록은 간략하고 단순한 내용이지만, ‘정사'에는 없는 기록들이며, 왜구사건이 발생한 제주도의 구체적인 지역명이 나타나는 등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이들 기록을 통해 기존의 왜구에 대한 설명 및 주장을 재고할 필요성도 생긴다. 『고려사』의 기록만을 근거로 ‘제주도는 왜구가 목표로 했던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왜구가 제주도에 오지 않았던 것'이라는 방식의 기존 설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지』의 기록 중에는 충정왕 2년(1350) 추자도의 주민을 제주도로 이전시켰다는 내용도 있다. 이것은 고려 말에 시행된 空島 정책이 추자도에도 적용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지지』의 기록은 비록 한계성이 있지만, ‘정사'를 보완하는 자료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지방기록 혹은 개인문집에 실려 있는 왜구기록의 재발견은 아직도 많은 가능성이 남아있으며 이는 왜구의 기본 문제를 규명하는 데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The most important evidence for the study of Japanese pirates(Wako, 倭寇) in the late Goryeo(高麗) Dynasty and early Joseon(朝鮮) Dynasty Period has been the records of “Goryeosa(高麗史, History of Goryeo)”, “Goryeosa Jeolyo (高麗史節要, Essentials of Goryeo History” and “the Annals of Joseon Dynasty(朝鮮王朝實錄)”. Jeju(濟州) Island is geopolitically positioned to connect the Japanese archipelago with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Chinese continent. For this reason, it is easy to think that there were many cases of Japanese pirates in Jeju Island during the period when Japanese pirates were active in East Asia, but according to the records of “Goryeosa(高麗史)”, only once, and not as many times as in the Joseon Dynasty. Why are there so few? Was the Japanese pirates not interested in Jeju Island? Or is it just not recorded? “Tamraji(耽羅誌)” by Lee Wonjin(李元鎭) and “Namsarok(南槎錄)” by Kim Sangheon(金尙憲) were published in the 17th century, and these books recorded details about Jeju Island. By the way, these books contain records of Japanese pirates on Jeju Island, which were not recorded in “Goryeosa(高麗史)”. There were six in the Goryeo Dynasty(1341・1342・ 1351・1352・1359・1376) and six or seven in the Joseon Dynasty, with a total of 12 or 13 recorded. These records are based on the local records (地誌) of Jeju Island. These records is brief and simple, but compared to “Goryeosa(高麗史)”, it is much larger. And there contains the specific names of Jeju Island where the Japanese pirates occurred. So it has an important value. Although the local records(地誌) of Jeju Island are limited, they can be said to be of sufficient value as data to supplement official Records by the Central Gov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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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문 : 제국(帝國) 일본(日本)의 중국침략(中國侵略)과 왜구상(倭寇像)의 변용(變用)

          윤성익 ( Sung Ik Yoon )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5 인문학연구 Vol.0 No.29

          ‘倭寇'라는 동일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현재 韓·中·日 삼국이 갖고 있는 ‘倭寇 이미지'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같은 역사사실이 큰 차이로 다르게 인식되고 해석되는 것은 침략과 피침략,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각각의 입장 차이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단순히 과거 역사사실 자체 만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비교적 최근의 경험과 기억이 현재의 ‘倭寇 이미지' 형성에 강력하게 영향을 주었다. 과거 사실이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경우는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현재 동아시아 삼국에서의 倭寇像도 각각 여러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것이다. 왜 현재 이렇게 큰 차이가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연원을 찾기 위해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왜구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서는 그 위에 어떤 요소들이 더해졌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현재 倭寇像의 是非를 위해서도 현재 상황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고 그에 따라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알아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戰前 日本은 역사서술 및 역사교육에 國家의 의지가 크게 개입되었던 시기였다. 특정 목표를 위해 역사 해석이 크게 좌우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倭寇가 주목받았던 것은 당시 일본의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따라서 그 현실의 변화에 의해 倭寇에 대한 해석 역시 변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戰前의 일본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倭寇는 어떻게 서술되었고 또 그것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그 변화 속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었을까? 아울러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倭寇像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들 문제는 현재의 倭寇像이 형성된 과정과 그것이 내포하는 문제점을 밝히는데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하는 과제이다. 또한 倭寇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풀어야만 하는 전제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Japanese pirates(倭寇)``that was active on the stage of East Asia, it is treated as the common subject in the history of Korea, China, Japanese. However, there is considerable difference in the image about Japanese pirates written by the historical description of each country. The different views of the Japanese pirates between Japan and China are associated with situations of the past. If the discrepancy between the Japanese pirates of the present and past is due to the specific reasons, they would be important clues that make a close investigation into the discrepancy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as well as China and Japan. The current image of Japanese pirates was managed by accumulation and a change of the memory for a long time. Therefore, for the understanding of the current image, it is necessary to know what happened in the past. In Japan, there are many research products of the Japanese pirates, but there is little research of that before 1945. The researches of the Japanese pirates before 1945 were understood ambiguously, so this situation aroused the misunderstanding about research of the past. The reason why the Japanese pirates caught the interest in Prewar Japan had close relation to Japanese reality. So the analysis for the Japanese pirates was more likely to change by the situation. Prewar Japan encountered a sudden change for the inside and outside. In such a change, how was the explanation for the Japanese pirates changed? How was the Japanese pirates explained? And does it have what kind of relation to the Current image of Japanese pirates? In this sense, it is a meaningful study that investigates the change of the view of the Japanese pirates in Prewar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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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문(硏究論文) : 제국(帝國) 일본(日本)의 식민(植民)지배와 역사서술 속에서의 왜구(倭寇)

          윤성익 ( Sung-ik Yoon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2015 동국사학 Vol.59 No.-

          동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했던 倭寇는 현재의 한ㆍ중ㆍ일 삼국의 역사에서 공통의 주제로 다루어진다. 그러나 현재 각국의 역사서술에서 묘사되는 倭寇와 관련된 설명이나 그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이와 관련된 각국 학자간의 논쟁이나 공동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아직까지도 삼국의 입장을 통괄하는 倭寇觀이나 倭寇像의 정립은 소원해 보인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왜구에 대한 이미지는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기억의 축적과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倭寇像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여기에 어떤 요소들이 가감되었는지, 어떻게 변화했는지 등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다. 戰前 일본에서 倭寇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일본의 해외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때였다. 倭寇는 그런 활동의 선구자적 존재로 들어졌고 해외진출의 역사성을 설명하는 좋은 소재였다. 그런데, 倭寇에는 폭력행위를 자행하는 海賊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었다. 특히 사료에 기록된 약탈ㆍ살인과 같은 악행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런 부분은 倭寇를 전면에 내세워 선양할 때의 방해요소가 된다. 戰前 日本은 역사서술 및 역사교육에 國家主義가 크게 개입되었던 시기였다. 특정한 목표를 위해 역사 해석이 크게 좌우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시기에 倭寇가 주목받았던 것은 일본의 현실과 밀접히 관련 있었다. 따라서 그 현실에 따라 倭寇에 대한 해석은 변화할 가능성이 높았다. 戰前의 일본은 내외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이런 속에서 倭寇의 설명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倭寇는 어떤 모습으로 묘사되었을까? 또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倭寇像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들 의문은 현재의 倭寇像이 만들어진 과정과 이것이 내포하는 문제점을 생각해보는데 먼저 해결해야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아울러 歷史의 대상으로서 倭寇의 본질을 생각해보는 계기도 될 것이다. ‘Japanese pirates(倭寇)'that was active on the stage of East Asia, it is treated as the common subject in the history of Korea, China, Japanese. However, there is considerable difference in the image about Japanese pirates written by the the historical description of each country. The different views of the Japanese pirates between Korea and Japan and China are associated with situations of the past. If the discrepancy between the Japanese pirates of the present and past is due to the specific reasons, they would be important clues that make a close investigation into the discrepancy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as well as Korea and Japan. The current image of Japanese pirates was managed by accumulation and a change of the memory for a long time. Therefore, for the understanding of the current image, it is necessary to know what happened in the past. In Japan, there are many research products of the Japanese pirates, but there is little research of that before 1945. The researches of the Japanese pirates before 1945 were understood ambiguously, so this situation aroused the misunderstanding about research of the past. The reason why the Japanese pirates caught the interest in Prewar Japan had close relation to Japanese reality. So the analysis for the Japanese pirates was more likely to change by the situation. Prewar Japan encountered a sudden change for the inside and outside. In such a change, how was the explanation for the Japanese pirates changed? How was the Japanese pirates explained? And does it have what kind of relation to the image of Japanese pirates that we have? In this sense, it is a meaningful study that investigates the change of the view of the Japanese pirates in Prewar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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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성자 자기공명분광법을 이용한 우울증 동물모델에서의 항우울제 약물 효능 평가

          김상영,최치봉,이성호,우동철,윤성익,홍관수,이현승,정재준,지보근,홍승탁,김휘율,최보영,Kim,,Sang-Young,Choi,,Chi-Bong,Lee,,Sung-Ho,Woo,,Dong-Cheol,Yoon,,Seong-Ik,Hong,,Kwan-Soo,Lee,,Hyun-Sung,Cheong,,Chae-Joon,Jee,,Bo-Keun,Hong,,Sung-Tak,K 한국의학물리학회 2008 의학물리 Vol.19 No.2

          본 기초연구에서는 강제수영검사(forced swimming test, FST)에 의해 우울증이 유발된 쥐의 해마(hippocampus) 부위에서 뇌 대사물질(brain metabolites)중에 choline 신호의 변화를 관찰하였다. 본 연구의 목적은 우울증이 유발된 쥐에 항우울제인 desipramine-HCl을 투여하여 정상 쥐와 약물을 투여한 쥐 사이의 뇌 대사물질의 차이를 자기공명분광법(magnetic resonance spectroscopy: MRS)을 통하여 알아보는 것이다. 실험대상으로는 6주령의 SD rat을 사용하였으며 우울증을 유발시키고 항우울제의 약물평가를 위한 모델링 방법으로 강제수영검사를 시행하였다. 자기공명분광법을 시행하기 위한 localization 방법으로는 PRESS 펄스시퀀스를 사용하였다(TR: 2,500 ms, TE: 144 ms, averaging: 512, complex data point: 2048, scan time: 25 min). 정상 쥐 그룹과 우울증을 유발시킨 뒤 항우울제를 투여한 쥐 그룹 모두 양쪽 해마부위에서의 NAA/Cr, Cho/Cr 비율(ratio)은 차이가 나지 않았다. 또한 왼쪽 해마에서 정상 쥐와 항우울제를 투여한 쥐 사이에서 NAA/Cr, Cho/Cr 비율도 차이가 나지 않았고, 오른쪽 해마부위에서도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본 연구를 통하여 anti-immobility효과를 나타내는 항우울제를 투여함으로써 choline 신호가 정상 쥐와 비슷하게 회복되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는 앞으로의 항우울제 약물 평가에 있어 자기공명분광법을 도입함으로써 기존의 주관적인 판단을 배제할 수 없었던 행동변화분석만으로 항우울제의 효과를 평가하는 방법에 비해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분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유용한 방법이라 사료된다. In this study, we observed the alteration of choline signal intensity in hippocampus region of the depressive rat model induced by forced swimming test (FST).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valuate the antidepressant efficacy in the depressive animal model using MR spectroscopy. Fourteen experimentally naive male Sprague-Dawley rats weighting $160{\sim}180\;g$ were used as subjects. Drug injection group was exposed to the FST except for control group. The drugs were administered subcutaneously (SC) in a volume equivalent to 2ml/kg. And three injections were administered 23, 5, and 1h before beginning the given test. 1H MR spectra were obtained with use of a point resolved spectroscopy (PRESS) localization sequence performed according to the following parameters: repetition time, 2500 ms; echo time, 144 ms; 512 average; 2048 complex data points; voxel dimensions, $1.5{\times}2.5{\times}2.5\;mm^3$ ; acquisition time, 25min. There were no differences in NAA/Cr and Cho/Cr ratio between the right and the left hippocampus both normal control rats and antidepressant-injected rats. Also, no differences were observed in NAA/Cr and Cho/Cr ratio between the normal control rats and the antidepressant-injected rats both the right and the left hippocampus. In this study, we found the recovery of choline signals in the depressive animal model similar to normal control groups as injecting desipramine-HCl which was antidepressant causing anti-immobility effects. Thus, we demonstrated that MR spectroscopy was able to aid in evaluating the antidepressant effect of desipramine-H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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