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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龍洲 趙絅의 문학론

          송혁기 우리어문학회 2015 우리어문연구 Vol.51 No.-

          This review study is focused on the reinterpretation of Jo, Kyoung(趙絅, 1586-1669)'s philosophies and methodologies in his literature study in a broader way, by taking the recently reported Yong-ju-yu-go(龍洲遺稿), Yong-ju-chuck-tock(龍洲尺牘), Mun-gan-gong-gan-tock(文簡公簡牘), Yong-ju-il-ki(龍洲日記), Young-ju-cho-sun-seang-nyun-bo(龍洲趙先生年譜), and Un-hang-chong-rock(言行總錄). Jo, Kyoung advocated that writers should be trained with heavy reading and review of the masterpieces of the gurus in the Hna Dynasty era to develop writing skills. In addition, he made his efforts to learn the original forms of the public documents used at the age. Jo, Kyoung's favorite was Chuang-tzu(莊子) and he cited Chuang-tzu in many of his notes. Recently, it is generally accepted that Jo, Kyoung's philosophy and writing were largely influenced by Chuang-tzu. In a number of previous works, it was mentioned that Jo, Kyoung was recommended to learn Records of the historian(史記) by Youn, Kun-su. In this study, we demonstrate that it was not just a single event of studying Records of the historian, but Jo, Kyoung continued to investigate Records of the historian for his entire life. Jo, Kyoung highly estimated the value of Wang, Shi-zhen(王世貞)'s philosophy and articles, which was an extraordinary point of view to him at the age because Wang, Shi-zhen was criticized to copy phrases from other's articles to his publications and prefer Ko-hak(古學) than Jung-Ju-Hak(程朱學). Jo, Kyoung, however, strongly agreed to Wang, Shi-zhen's theories of literature study, loved to read his literatures, and recommended them to others. The impact of Jo, Kyoung's recognition and admiring to Wang, Shi-zhen was intensive enough to turn over the methodology of literature studies at the time: review and realizations of Ko-ki(古氣). The methodology Jo, Kyoung took for the investigation in Wang, Shi-zhen's publications was to read Ko-mun(古文) exhaustively until the readers can feel the thinkings and hearts of the author deeply. Jo, Kyoung worked this way in his entire life. It is quite surprising that Jo, Kyoung left no independent critic notes in his life because he did many of criticisms in wide range of Chinese literature. From Jo, Kyoung's criticisms, we can deduce not only what he took importantly in literatures but also how he tried to establish the methodology of ‘learning and creating' literatures, in detail. In this work, we review Jo, Kyoung's methodology and aims for studying paragon literatures and his realistic literature criticism. 본고는 龍洲 趙絅(1586-1669)의 문집 『龍洲遺稿』를 비롯하여 최근에 새로 소개된 『龍洲尺牘』, 『文簡公簡牘』, 『龍洲日記』, 『龍洲趙先生年譜』, 『言行總錄』 등의 자료를 검토하여 趙絅의 문학론을 총괄적으로 재구하고자 하였다. 趙絅은 『文選』, 『莊子』, 『史記』 등을 문학의 전범으로 강조하였다. 趙絅은 문학 수련의 과정에서 漢代 작가들의 賦를 읽어서 그 융성했던 文氣를 맛봄으로써 賦를 짓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하였으며, 『문선』에 실린 많은 공용문서들에서 관각문과 상소문의 원형을 찾아 배우고자 했다. 趙絅은 『莊子』를 평생 즐겨 읽었고 자주 用典의 출처로 삼았으며, 이는 그의 문풍에까지 영향을 끼쳐 후대에 장자를 본받았다는 평을 받았다. 趙絅이 윤근수에게 『史記』 공부를 권유받았다는 일화는 이미 선행 연구에서 거론되었는데, 본고에서는 이것이 젊은 날의 일화에 그치지 않고 평생 이어졌음을 확인했다. 趙絅은 『사기』를 반복하여 읽고 외우는 것을 통해 문장을 짓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역사서 서술의 문체를 다양한 산문 체식에 구현함으로써 생동감 있는 작품을 남겼다. 趙絅의 王世貞 추숭은 각별했는데, 이는 그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字句만 유사하게 모의했다는 비판과 함께, 程朱學을 무시하고 古學을 추구했다는 것으로 인해 조선에서의 평은 대체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趙絅은 왕세정의 문학론에 적극 찬동했을 뿐 아니라 그의 문학적 성취도 매우 높게 평가하였고 왕세정의 글을 즐겨 읽고 권장하였다. 이러한 전범 인식 및 왕세정 추숭은 ‘古氣의 체득과 구현'을 지향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趙絅은 제한된 범위의 고문을 반복적으로 읽고 외워서 체화시키는 것을 그 방법으로 제시했으며, 본인도 평생 이를 실천하였다. 趙絅은 단독의 비평 저서를 남기지는 않았으나 시, 문집 서문, 묘갈명 서, 편지 등의 다양한 형식을 통해 적지 않은 문학비평을 제출하였다. 개별 작가들에 대한 각각의 비평들을 통해서 趙絅이 문학에 있어서 무엇을 중시했으며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창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었다. 이상 본고는 전범 인식과 古氣 지향, 그리고 문학비평 실제를 중심으로 趙絅의 문학론을 살펴보았다.

        • KCI등재

          고전으로 정의 말하기-한문 고전 활용 신문 칼럼을 대상으로-

          송혁기 한국한문학회 2018 韓國漢文學硏究 Vol.0 No.72

          This thesis analyzes newspaper columns that quote Classics in Classical- Chinese when dealing with the theme of justice (正義), to overview the discourse regarding the Classics and search for the possibilities of adapting the Classics in the contemporary world. By selecting 180 articles about justice among those 1,275 columns mentioning East Asian Classics in the daily papers with top 5 circulation, I could categorize subjects of the columns in 4 groups. First, ‘shame' as the ethical basis and the minimal standard of life of Confucianism. Second, a righteous attitude with strong beliefs and morals that is unwavering with private interests. Third, a sense of fairness in various fields including selection of fit persons, equality in law, consideration of the weak, and usage of language. Fourth, resistance and judgment against injustice political power. In today's world, a criterion of what is right becomes more and more ambiguous, and justice is regarded as the object of negotiation among interests groups rather than universal virtue. Even though the sum of information is rapidly increasing, the tendency of confirmation bias of persons is intensifying. We can use the Classics written in classical Chinese as wide source of non-factional argument and its basis. I suggest five ways to adapting the Classics for the better usage for today's writers. First, we should admit the relativity of the old writings and maintain critical distance. Second, it would be better to quote the old wisdom in the purpose of adding new approach to solve today's problem, not to repeat common sense. Third, be careful in directly connecting the Classics and current events, because sometimes the gap between now and then casts new visions. Fourth, quote not only well-known Classics but also relatively unfamiliar old writings. Fifth, maintain the accuracy of the reference but try to explain it simply to help today's readers understand it easily. 이 연구는 한문 고전을 인용하여 작성한 신문 칼럼 중에서 ‘正義'의 문제와 관련되는 글들을 대상으로 삼아서, 한문 고전 활용의 양상과 가능성, 의의를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발행 부수 상위 5개 종합 일간지에 최근 3년 간 실린 칼럼 가운데 한문 고전을 활용한 칼럼 1,275편을 추리고, 다시 주제가 정의와 관련된 칼럼 180편을 선정하여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세부 주제를 유별하면 다음의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유가적 의리의 출발점이자 최소한의 요구 조건인 ‘부끄러움', 둘째 사적 이익에 좌우되지 않고 진실과 원칙을 지키는 의로운 삶의 태도, 셋째 인재 등용과 법 적용, 약자 배려 등의 분야에서 구현되어야 할 공정성의 문제, 넷째 불의한 정치 권력에 대한 역사와 민심의 심판 등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옳고 그름의 구분이 더 모호해지고 있으며, 정의 역시 보편적인 덕목이 아니라 각기 다른 입장에서 이익을 조율하는 협상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문 고전은 비교적 당파성에서 벗어난 지점에서 주장과 논거를 가져올 만한 풍부한 자료로서 여전히 활용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 가능성을 높이는 길로 다섯 가지를 제안하였다. 첫째 한문 고전이 지니는 상대성을 인정하고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활용하는 길이다. 둘째 자명한 주장을 위해 호명하기보다는 문제 해결에 새로운 시각을 줄 수 있는 단서로서 활용하는 길이다. 셋째 한문 고전과 시사를 일대일로 연결하는 데에 신중하고 그 차이의 여백을 남긴 채 활용하는 길이다. 넷째 잘 알려진 고전과 그렇지 않은 고전을 적절히 안배하여 활용하는 길이다. 다섯째 고전 인용의 정확성은 견지하되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풀이해서 제시하는 길이다.

        • 고전으로 정의 말하기 : 한문 고전 활용 신문 칼럼을 대상으로

          송혁기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18 한국고전여성문학회 학술대회 발표문 Vol.57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 KCI등재

          上疏를 통해 본 조선후기 지식인의 재편 - 이경석 · 박세당 평가와 관련한 노론계의 상소를 중심으로

          송혁기 동양고전학회 2015 東洋古典硏究 Vol.0 No.59

          본고는 지식권력과 정치권력이 만나는 場의 하나인 상소를 대상으로 삼아서 특정 정파가 지식 논쟁을 주도하고 지식인 집단을 재편하는 과정을 살피고자 한다. 이를 위한 사례 연구의 대상으로 택한 사안은 이경석과 박세당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노론과 소론의 攻防이다. 이 사안의 발단은 이경석의 箚子에 반박하여 올린 송시열의 상소문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송시열에 대한 평가로 점차 논란이 확대되어 노론과 소론의 전면적인 대립으로 치달았고, 결국 박세당의 저술인 사변록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 검열로까지 이어졌다. 본고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노론계 인사들의 상소 행위이고, 그 중에서도 이 사안의 핵심에 놓이는 安東 金門의 역할이다. 소론 측의 계속되는 송시열 비판에도 불구하고, 안동 김문은 송시열에 대한 노론계의 요지부동한 지지를 대변하였다. 이 사안의 직접적 계기가 바로 김창흡의 서신이었고, 이후의 상소 과정에서 안동 김문과 그의 문도들이 막후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한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추적하였다. 이 사안을 중심으로 연이어 올라간 양측의 상소들은 대체로 특정 인물 및 저작에 대한 날선 논평들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이 상이한 내용의 상소들은 기존의 政派가 낳은 결과이기도 했지만 새롭게 진행된 지식인 再編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상소 행위 자체만이 아니라 상소에 동원된 표현과 논법들 역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노론계에서 올린 일련의 상소문들에서 구사한 표현과 논법들은 朱熹를 기준으로 삼아 당대의 인물과 저작들을 兩端間에 裁斷해 버리는 것이었다. 소론계 상소들의 다양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이 논법의 칼날은 강력한 정치적 힘을 가지고 당시 지식인들을 재편하였으며, 이로 인해 학술적 판도 역시 새롭게 만들어져 갔다. Memorials in Joseon Dynasty created a arena where the intellectual and political power met. This thesis traces the process of a certain political faction's rebuilding of the political structure of the elite groups by leading the intellectual controversies through memorials, especially those about the evaluations of Pak Setang(朴世堂) and I Gyeongseok(李景奭). This is what happened: Song Siyeol(宋時烈) submitted a memorial which disputed I Gyeongseok's petition, which provoked complete controversies around the memorials between Noron(老論) and Soron(少論). This led to the academic censorship against Sabyeonrok written by Pak Setang. The analysis of act of writing and submission of memorials by Noron and the role of the Kim Family of An-dong(安東 金門) specifically is the main topic here. The members of Soron ceaselessly criticized Song Siyeol, while the Kim Family strongly defended him. The trigger of the strife was a letter written by Kim Chang-Heup(金昌翕), a member of the Kim Family and the Kims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background during the process of political fights using memorials. The series of memorials criticized or supported certain political figure or his writings, but the opinions of Noron and Soron were directly opposite to each other. Even though the expressed difference was the result of the existing political factions, however, it also caused the new power structure of elite groups. The expressions and logics used in the arguments also have its significance. The Noron's memorials evaluated the contemporary people and their writings based on Chu-Hsi and Song Siyeol, who was regarded as a identical figure of Chu-Hsi. The arguments and writing strategies in this regard gained political strength enough to reorganize the intellectual society by changing alignment of political parties, and this led to the rebuilding of academic environment afterward.

        • KCI등재후보

          18세기초 散文理論의 전개양상 一考 : 李宜顯,申維翰,趙龜命의 대비를 중심으로

          송혁기 한국한문학회 2003 韓國漢文學硏究 Vol.0 No.31

          본 연구는 18세기초에 제기된 散文理論상의 異論들을 추적하고 그 의미를 究明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明代 唐太宗의 영향 아래 當代 ‘主流'의 산문 인식을 대변하는 李宜顯(1669~1745), 秦漢古文에 경도된 입장을 보이면서 매우 독특한 산문 인식을 보이는 申維翰(1681~1752), 당대의 통념을 깨뜨리는 파격적인 논의를 제출함으로써 개성론적 문예론의 흐름을 예비하는 趙龜命(1693~1737)의 세 문인의 논의를 쟁점별로 대비시켜 검토하였다. 첫째, ‘道門一致' 관념이 여전히 주류의 논의로 이어지는 가운데, 이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 제기가 조귀명에 의해, 이와는 분명히 거리를 두는 인식의 표명이 신유한에 의해 이루어졌다. 道·文의 분리에 대한 인식이 논의선상에서 입장표명의 수위로 거론된 것은 이전 시기에는 찾을 수 있는 특징적 현상이다. 둘째, 산문의 문예적 향유 가능성이 강조되었다. 詩가 아닌 散文용 ‘향유'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시각이 비교적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는 17세기 이후로 산문의 창작·감상에 있어서 문예미를 추구하는 의식이 점차 제고된 결과로 보인다. 셋째, 산문이론에 있어서 ‘法度'의 문제가 강조·심화되는 흐름을 보이면서, 동시에 이를 지나치게 추구하는 경향에 대한 반대의 주장이 제출되기도 하였다. 이의현에게서 한문산문의 창작과 비평이 ‘法度'를 중심으로 더욱 이론적으로 심화되어가는 흐름을 볼 수 있고, 조귀명에게서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문제 제기를 읽을 수 있다. 넷째, 秦漢古文의 특징으로 주로 거론되는 ‘簡奧'의 추구가 여전히 문제시되었다. 신유한은 자구운용상의 ‘簡奧'가 가지는 압축미와 일종의 난해성을 추구할 가치로 여긴 반면, 이의현은 이러한 흐름을 비판하면서, 신유한으로서는 문학의 영역에 두기 힘들다고 느꼈던 ‘平暢' 역시 산문의 한 지향으로 강조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how the meaning of the variable opinions of prose theory which have been raised in the early 18th century. I have compared, according to a point at issue, the opinions of three critics, Lee, Uy-hyun(李宜顯:1669~1745) who was influenced by the school of Tang-song(唐宋) in the period of Ming(明) dynasty and stood for the contemporary main stream in the prose cognition, Shin, Yu-han(申維翰 : 1681~1752) who seemed to be biased to 'Classical prose in the period of Chin & Han dynasty (秦漢古文)‘ and have a unique prose cognition, and Cho, Kwi-myung(趙龜明:1693~1737) who prepared for the stream of individual literary art theory by advancing the theory breaking the contemporary common idea. First, while the theory, ‘Tao and Mun is united (言文一致)' was std the main opinion, Cho, Kwi-myung raised a complete question in argument about it and Shin, Yu-han expressed the cognition which was clearly different with it. It was a remarkable phenomenon which had never been found until then that the theory, 'Tao and Mun is separated (道門分離) was raised to a leading position among the arguments. Second, the possibility of literary enjoyment of prose was emphasized. The notion that not a poetry but a prose was recognized as an object of enjoyment was relatively prominent. It resulted from that the awareness to pursue 'beauty of literary art' in writing and appreciation of prose was raised gradually after 17th century. Third, the subject of 'Bup-do(法度) in the prose theory was emphasized and deepened but at the same time, the opposite opinion against the tendency to pursue it excessively was also presented. We can see the stream which the writing and criticism of the prase in Chinese classical character was theoretically deepened in the focus of 'Bupdo' from Lee, Uy-hyun and the possibility of new change from Cho, Kwi-myung. Fourth, the pursuit of 'Gan-o(簡奧)' which was called as the character of 'Classical prose in the Chin and Han dynasty' was still argued. Shin, Yu-han thought that the conciseness and abstruseness of 'Gan-o' in using of words and phrases was valuable to pursue. On the other hand, Lee, Uy-hyun criticized the trend and emphasized that 'Pyungchang(平暢)' was also one of the values to pursue in prose, which was suggested not to be involved to literature by Shin, Yu-han.

        • KCI등재후보

          夢? 南克寬의 학문과 산문비평

          송혁기 우리한문학회 2006 漢文學報 Vol.14 No.-

          Nam Keuk-kwan(1689~1714) was a grandson of Nam Koo-man who played a pivotal role during the early days of So-ron(少論) group. Nam Keuk-kwan was a man of promise as a writer, yet died at an early age after struggling against a disease. He was absorbed in reading and meditation during his short span of life, then set forth his original views on learning and literature. His case should not be limited to himself. In comparison with No-ron(老論) group, we can find out distinctive features of So-ron in the field of the cultural climate. It is very characteristic that he was concerned about various province of learning and indifferent to the doctrines of Zhu-zi(朱子). We can check it up through his uranology, linguistics, graphonomy and so on. He regarded the 17th century as a full-blown period in prosaic history of Chosun Dynasty, and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Wang Shi-zhen(王世貞)'s role for that. It was a refutation against blind criticism on Wang Shi-zhen. He understood the literature of Song(宋) period as a bald style in a negative way, and strived for familiarizing unearthing writers. We can find out his literary inclination through his critique of Yoo Seong-ryong(柳成龍), Park Se-dang(朴世堂), Yoo Mong-in(柳夢寅), Heo Mok(許穆). 夢 南克寬(1689~1714)은 老少 分岐 초기 少論系의 중심인물이었던 남구만의 손자이다. 어려서부터 촉망 받던 뛰어난 才士였으나 신병으로 칩거하는 삶을 살다가 20대에 요절하였다. 그는 짧은 생을 독서와 사색으로 일관하였고, 신속한 도서 입수 및 폭 넓은 섭렵을 바탕으로 하여 학술과 문예의 측면에서 자못 개성적인 입론을 펼쳤다. 이는 비단 남극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당시 소론계의 지적문화적 풍토가 동시기 노론계 문사들과 대비할 때 어떤 특징을 지니는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연구대상이다. 그의 학문적 관심 영역은 매우 다양하였고, 心學化된 朱子學을 求心點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天文曆法과 言語文字觀 및 東史 인식 등의 영역에서 이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조선의 산문사가 17세기 몇몇 작가들에 와서야 비로소 體製와 文藝美를 갖춤으로써 본격적 수준으로 올랐다고 보고, 특히 이러한 산문사의 전변이 명대 왕세정의 영향 하에서 가능했음을 강조하였다. 이는 당대에 일반화된 왕세정에 대한 맹목적 비판 풍토를 문제 삼은 것이다. 구체적 산문 비평에 있어서, 노론계 주도의 기호문장학 흐름에서는 부각되지 않았던 작가들을 재평가하고자 하였다. 최립허목유몽인박세당유성룡 등에 대한 평에서 이러한 그의 산문비평 안목의 일단을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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