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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문학 : 고전문헌에 나타난 거문고의 명칭에 대한 연구

          정하운 ( Ha Un Jung ) 우리어문학회 2011 우리어문연구 Vol.40 No.-

          우리의 전통악기 중 하나인 <거문고>는 <백악지장(百樂之丈)>으로, 또는 현악기의 통칭으로 불리면서 고구려에서 제작, 통일신라의 <금도(琴道)>를 이루었고, 고려와 조선 선비들의 수양을 위한 필수품으로서 독창적인 이면(裏面)에 대해 찬사를 받아가며 오랜 세월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왔으나, 실용성의 여부와 연주방식의 어려움으로 그 위상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거문고(玄琴)>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악지」의 <현금(玄琴)>조에 있고, 『악학궤범』의 권지 칠에도 <현금(玄琴)>이라고 기록되어져 있다. 고전문헌 안에서 중국의 <금(琴)>에 대한 음악사상이 <거문고>의 음악사상을 대신하고 있는 걸로 보아 <거문고연주자>의 음악정신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 확인된다. <금>의 표기가 <재래현악기>와 <가야금>을 포함하고 있는 점과 <금>의 이칭이 <거문고>의 이름으로 사용된 점에서 <거문고>의 무형적 가치 중 상당한 부분이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칠현금>을 개조하여 만들었다고 했으나, 일본학자들은 <와공후>임을 주장하고 있으며, 중국 음악학계에서 밝혀진 <위진시대 와공후>가 <거문고>의 전신(前身)이라는 해석이 한·중·일 학자들 간에 논의되고 있다. <칠현금>의 전래 전에 유사한 악기로 추정되는 고분벽화의 <금>을 <현금>으로 보는 국내학자와 <와공후>로 보는 일본학자의 의견대립이 있고, <거문고>로 주장하는 국내학자들도 견해의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거문고(玄琴)>·<금(琴)>·<고토(こと: 琴)> 외에 성경(Bible)에서도<거문고>로 해석된 서양 현악기의 기록이 발견되고 있어, 이미 고대에서부터 구한말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체형이 비슷한 현악기는 <거문고>로 해석 또는 번역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금>의 이칭이나 특정 연주가와 관련되어있는 악기이름이 <금>의 사상과 함께 수입되어져 우리 고전문헌 안에서 <거문고>를 대신했으며, <금>의 연주에서 비롯된 미학적 요소와 사상들을 <거문고연주가>들은 답습하게 되었고, 우리의 선비들은 <금>·<슬(瑟)>·<거문고> 등을 통칭하는 의미로 <거문고>를 설정하여 중국의 음악사상과 함께 수용한 것으로 판단이 된다. <금>은 고려 예종 11년(1116)때 들어와 <문묘제례악>에 <슬>과 함께 쓰이다가 한말(韓末)에 주법(奏法)이 끊어졌다. <가야금>과 <슬>은 각각 오른손과 양손 손가락으로 뜯는 점, 줄(絃)의 수와 크기만 다를 뿐, 별 차이가 없는데, <금>과 <거문고>는 구조와 <탄주(彈奏)>형태에서 차이가 있다. 문헌의 내용에 <금>·<슬>·<거문고> 등의 재료나 부품은 오동나무·명주실과 <금>의 <휘(徽)>·<줄(絃)>, <슬>의 <주현(朱絃)>·<주(柱)> 등이 있으며, <거문고>의 부품명인 <안족(雁足)>·<괘(과)>·<술대(匙)>에 대한 표기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명금(名琴)들은 고사(故事)의 내용을 갖추고 있어, 제작자의 품격·재능, 당시대의 배경·사상 등을 이면(裏面)에 동반하여 고전문헌상의 내용을 상징과 은유로 견인하면서 <거문고>의 사상에 관여하고 있다. <금>의 명인들이 고전문헌에 남긴 체취는 우리 선비들의 <거문고사상>으로 재탄생하였다. 명금, 금의 명인, 명곡 등의 표면 또는 이면(裏面)으로부터 취한 음악적·문학적 사상과 그 외의 미의식을 내재한 어휘나 문구들은 우리의 고전문헌에 유입되어 물리적 또는 화학적으로 투영되어졌다. <거문고>를 예악과 수양의 도구로 생각했던 조선의 선비는 필수품으로 소장하였을 것이므로 많은 연주자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계자(勿稽子)와 백결선생(百結先生)이 연주한 악기는 활동 연대로 보아 <거문고>도 <가야금>도 아닌 <재래현악기>이었을 걸로 보인다. 또한 『삼국유사』에 기록된 <사금갑(射琴匣)>에 관한 일화의 <금> 역시 <거문고>나 <가야금>의 전래와 유포된 시기의 연대와 비교해볼 때 <거문고>가 아닌 <재래현악기>임이 분명하다. 이상에서 <금>과 <슬> 및 <거문고>의 음악사상을 동일선상에 올려놓음으로 인해 <금>과 <슬>, <거문고>의 정확한 명칭이 혼선을 빚게 되었으며, 현악기의 통칭으로 사용하는 경향에 따라 서양의 현악기도 <거문고>로 해석되어졌고, <거문고>·<가야금> 전래 이전의 <재래현악기>도 모두 <거문고>로 해석되고 있음이 파악되었다. "Geomungo", a Korean traditional musical instrument, was called baekakjijang (meaning the best musical instrument of all) or as the collective name for string instruments. It was produced in Goguryeo, and Geumdo, the theory and techniques of geomungo, was accomplished in Unified Silla. Classical scholars of Goryeo and Joseon praised its unique aspects as an essential instrument to cultivate their mind. It played various roles for a long time. However, due to its impracticality and difficult playing techniques, its status is falling. The record of geomungo is in Chapter Hyeongeum, ``Akji`` of Samguksagii, and volume 7 of Akhaguebeom has it recorded as Hyeongeumi. Chinese musical ideas about geum in classical literatures represent the musical ideas of geomungo. It tells that Chinese ideas influenced the musical ideas of geomungo players. Considering that the word geum include traditional string instruments and gayageum and that another name for geum was geumungo, it was deducted that significant parts of intangible values of geomungo were introduced from China. In Samguksagi, it was explained to have been created by remodeling chilhyeongeum, but Japanese scholars argue that it originated from wagonghu. Also, scholars of Korea, China and Japan are discussing that wagonghu of Wei and Qin era found in Chinese musical academic circles is the origin of geomungo. Korean scholars consider geum in ancient tomb murals which is assumed to be a similar instrument before the introduction of chilhyeongeum as hyeongeum, but Jananese scholars are disagreeing because they consider it as wagonghu. Even some Korean scholars believe that is is geomungo. Beside geomungo, geum and goto, the Bible has a record of a western string instrument that is interpreted as geomungo. It tells that similar looking string instruments were interpreted or translated as geomungo from the ancient times until the latter era of the Joseon Dynasty, the Japanese Rule Era. Another name for geum or names of musical instruments related with certain players were introdueced with the ideas of geum to replace geomungo in Korean classical literatures. Aesthetic elements and ideas of playing geum were succeeded by geomungo players. It seems that Korean classical scholars selected ``geomungo`` as a collective name for geum, seul, geomungo and other similar instruments and adopted the concept with Chinese musical ideas. Geum was introduced in the 11th year of King Yejong, Goryeo (1116) and was used with seul in music for Confucian ceremonies, and its techniques were stopped at the end of Korean Empire Period. Gayageum and seul are similar in that the right hand and the both hands fingers except that they have different numbers and sizes of strings. However, geum and geomungo have different structures and techniques. Literatures include sentences explaining that materials and parts of geum, seul, geomungo and such are royal foxglove tree and silk strings, of geum are hui and jul and of seul are juhyeon and ju. However, it is hard to find uses of anjok, gwae and suldae which are names of parts of geomungo. Famous geums have contexts of history. Along with dignity and talents of producers and backgrounds and ideas of the period, they symbolizes or metaphorizes contexts of classical literatures to be involved with the ideas of geomungo. Traces of famous geum players left in classical literatures were reborn as geomungo ideas of Korean classical scholars. Musical and literary ideas from surfaces or belows of masters and famous songs of famous geums and words and phrases showing other aesthetic senses were used in Korean classical literature physically or chemically. Joseon scholars considered geomungo as the tool of manners and cultures. Therefore, it can be deducted that they would have possessed one essentially and that there would have been many players. The instruments played by Mulgyeja and Master Baekgyeol seemed to be a traditional string instrument not geomungo or gayageum considering their living periods. Also, geum in the story about Sameumgap recoreded in Samgukyusa is sure a traditional string instrument not geomungo considering the times of introductions of geomungo and gayageum. Because musical ideas of geum, seul and geomungo were mixedly used in such literatures, accurate names of geum, seul and geomungo became confused. Also, because geomungo was used as the collective name for string instruments, western string instruments were interpreted as geomungo, and even traditional string instruments before introductions of geomungo and gayageum are all interpreted as geomungo.

        • KCI등재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나타난 작가의 일상·의식·욕망

          김성렬 우리어문학회 2010 우리어문연구 Vol.38 No.-

          Choi In-Hoon is very unique writer having much parody novels in his all works on 1960's. A Day of Writer Goobo is his grand finale of his parody novels and also has meaning of mid account on 1960's creative works. This work opens a beginning as relating continuous complex of marginal intellectual to the west accomplished modernization earlier than the east. This work has such a last work certifying the value of Buddism and getting a peace of mind. The mid parts of this work is filled with fierce meditation for giving modernization to korean literature, arts and society in historical roughness like division. We find this work is a product of elaborate plan and composition mind not but endumerations of simple ideas because this work shows trace of so many days over toiling and laboring for getting modernization of korean literature, arts and society. When we consider these points, we can find his vigrous drama creating on 1970's is caused by this work accounting and recertifying on his 1960's writing novels. We also find His pioneering researcher's eye on literary history is caused from his academic talent and pioneering medation not having any other writers. 최인훈은 패러디 소설이 1960년대에 활발하였던 그의 창작의 절반에 가까운 독특한 작가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그의 패러디 소설의 대미이면서 1960년대의 소설 창작을 중간 결산하는 의미를 가진다. 근대를 일찍 연 서구를 끊임없이 대타적으로 의식하는 주변부 지식인의 열패감을 술회함으로써 시작하는 이 연작은 불교의 고유한 가치를 확인하고 마음의 평정을 얻는 구보의 관념의 여정으로 끝난다. 이러한 시작과 끝 사이의 중간 부분은 분단 상황이라는 시대적 험난함 속에서 우리 문학과 예술, 사회에 자율성과 주체성 ― 근대성을 부여하려는 치열한 사유들로 채워진다. 우리는 이로써 산만한 관념의 나열인 듯 보이는 이 소설이 실상은 우리 사회와 문화의 근대성 획득을 위하여 광장과 밀실을 부단히 오가며 고심한 수많은 날의 궤적을 마치 하루처럼 보여주는 치밀한 기획과 구성의식의 산물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찰을 참조하면 1960년대의 창작을 결산하고 재점검하는 이 작품이 있었음으로 하여 1970년대의 왕성했던 최인훈의 희곡창작이 가능했음 또한 알 수 있게 된다. 우리 문학의 근대성 획득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타 학자보다 앞선 문학사가적 안목을 우리는 이 작품에서 짚어볼 수 있는데 이는 책 속으로 망명한 그의 학구적 기질과 진취적 사고의 소산이었다. 이 글은 이러한 이면에 숨은 그의 보수적 측면도 동시에 밝혀보았다.

        • KCI등재

          대학 교양 과정에서의 시 교육 연구 -영화 <패터슨>의 활용 방안을 중심으로

          송현지 우리어문학회 2020 우리어문연구 Vol.68 No.-

          This study is the attempt to propose poetry education measures which can be applied to university liberal arts curriculum by using the movie <Paterson>. This not only enables poetry education as liberal arts curriculum to have the same goal and direction as poetry education as a major study but also is based on the problem consciousness that the issue on “How poetry should be taught in liberal arts curriculum?” has not been amply discussed despite meticulous approach in comparison with literary education of other genres has been necessary. As a result of looking into and analyzing liberal arts course-takers in multilateral aspects, most of them were perceiving poetry as an unfamiliar and abstruse genre since they were non-literary majors. In this regard, this study asserted that poetry education in liberal arts curriculum should seek the measures through which learners can make easy and familiar approach to poetry and aimed to use <Paterson> for that purpose. <Paterson>-the movie asking fundamental questions toward poets and poetry- is not only useful for overcoming prejudice toward poetry but also makes viewers think about value of poetry in daily life. The movie intentionally exaggerates the point that the life and the temperament of the main character Paterson, a bus driver and poet, is nothing unique in the process of dealing with his repetitive daily life and naturally draws attention to the issue of poetry and the essence of poets by showing trivial events in daily life and the poem-writing style by Paterson based on recording his emotions. In addition, the movie is noteworthy in the sense that it shows the value of enjoying poetry in daily life. Paterson was able to prevent weariness by writing poems in the vicious cycle of boring life, expresses his inner side and interacts with the world through poetry. This makes viewers realize that understanding and enjoying poetry is not distant from our daily life but can have direct influence. In other words, the movie helps inspire non-literary majors' will to learn by showing the fact that living the life of artist and contemporary person is possible without having to major in poetry and the value of living a life of enjoying poetry. In that sense, this study proposed detailed teaching-learning measures using <Paterson> and used cases that actually applied it in curriculum. This attempt newly considered the value of poetry education as university liberal arts curriculum. 본 논문은 영화 <패터슨>을 활용하여 실제 대학 교양 교육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시 교육 방안을 제안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교양으로서의 시 교육이 전공으로서의 시 교육과 상이한 목표와 방향성을 가짐은 물론, 다른 장르의 문학 교육에 비해 세심한 접근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간 교양 과정에서 시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였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교양 교과 학습자들을 다방면으로 조사하고 분석한 결과 그들 대부분이 비문학 전공 학습자로서 시를 낯설고 난해한 장르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에 본 논문은 교양 과정의 시 교육은 학습자들로 하여금 시에 보다 쉽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영화 <패터슨>을 이에 활용해 보고자 하였다. <패터슨>은 시와 시인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는 영화로서 시라는 장르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데 유용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시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일반인인 패터슨이 시를 쓰며 일상을 견디고 세상과 소통한다는 점은 시를 이해하고 향유하는 일이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비문학 전공 학습자들에게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점에서 본 논문은 영화 <패터슨>을 활용한 구체적인 교수 학습 방안을 제안하고, 이를 실제로 수업에 적용한 사례를 다루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대학 교양으로서의 시 교육의 가치 역시 새로이 고찰해보았다.

        • KCI등재

          고전문헌에 나타난 거문고의 명칭에 대한 연구

          정하운 우리어문학회 2011 우리어문연구 Vol.40 No.-

          우리의 전통악기 중 하나인 <거문고>는 <백악지장(百樂之丈)>으로, 또는 현악기의 통칭으로 불리면서 고구려에서 제작, 통일신라의 <금도(琴道)>를 이루었고, 고려와 조선 선비들의 수양을 위한 필수품으로서 독창적인 이면(裏面)에 대해 찬사를 받아가며 오랜 세월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왔으나, 실용성의 여부와 연주방식의 어려움으로 그 위상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거문고(玄琴)>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악지」의 <현금(玄琴)>조에 있고, 『악학궤범』의 권지 칠에도 <현금(玄琴)>이라고 기록되어져 있다. 고전문헌 안에서 중국의 <금(琴)>에 대한 음악사상이 <거문고>의 음악사상을 대신하고 있는 걸로 보아 <거문고연주자>의 음악정신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 확인된다. <금>의 표기가 <재래현악기>와 <가야금>을 포함하고 있는 점과 <금>의 이칭이 <거문고>의 이름으로 사용된 점에서 <거문고>의 무형적 가치 중 상당한 부분이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칠현금>을 개조하여 만들었다고 했으나, 일본학자들은 <와공후>임을 주장하고 있으며, 중국 음악학계에서 밝혀진 <위진시대 와공후>가 <거문고>의 전신(前身)이라는 해석이 한·중·일 학자들 간에 논의되고 있다. <칠현금>의 전래 전에 유사한 악기로 추정되는 고분벽화의 <금>을 <현금>으로 보는 국내학자와 <와공후>로 보는 일본학자의 의견대립이 있고, <거문고>로 주장하는 국내학자들도 견해의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거문고(玄琴)>·<금(琴)>·<고토(こと: 琴)> 외에 성경(Bible)에서도<거문고>로 해석된 서양 현악기의 기록이 발견되고 있어, 이미 고대에서부터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체형이 비슷한 현악기는 <거문고>로 해석 또는 번역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금>의 이칭이나 특정 연주가와 관련되어있는 악기이름이 <금>의 사상과 함께 수입되어져 우리 고전문헌 안에서 <거문고>를 대신했으며, <금>의 연주에서 비롯된 미학적 요소와 사상들을 <거문고연주가>들은 답습하게 되었고, 우리의 선비들은 <금>·<슬(瑟)>·<거문고> 등을 통칭하는 의미로 <거문고>를 설정하여 중국의 음악사상과 함께 수용한 것으로 판단이 된다. <금>은 고려 예종 11년(1116)때 들어와 <문묘제례악>에 <슬>과 함께 쓰이다가 한말(韓末)에 주법(奏法)이 끊어졌다. <가야금>과 <슬>은 각각 오른손과 양손 손가락으로 뜯는 점, 줄(絃)의 수와 크기만 다를 뿐, 별 차이가 없는데, <금>과 <거문고>는 구조와 <탄주(彈奏)>형태에서 차이가 있다. 문헌의 내용에 <금>·<슬>·<거문고> 등의 재료나 부품은 오동나무·명주실과 <금>의 <휘(徽)>·<줄(絃)>, <슬>의 <주현(朱絃)>·<주(柱)> 등이 있으며, <거문고>의 부품명인 <안족(雁足)>·<괘(棵)>·<술대(匙)>에 대한 표기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명금(名琴)들은 고사(故事)의 내용을 갖추고 있어, 제작자의 품격·재능, 당시대의 배경·사상 등을 이면(裏面)에 동반하여 고전문헌상의 내용을 상징과 은유로 견인하면서 <거문고>의 사상에 관여하고 있다. <금>의 명인들이 고전문헌에 남긴 체취는 우리 선비들의 <거문고사상>으로 재탄생하였다. 명금, 금의 명인, 명곡 등의 표면 또는 이면(裏面)으로부터 취한 음악적·문학적 사상과 그 외의 미의식을 내재한 어휘나 문구들은 우리의 고전문헌에 유입되어 물리적 또는 화학적으로 투영되어졌다. <거문고>를 예악과 수양의 도구로 생각했던 ... “Geomungo”, a Korean traditional musical instrument, was called baekakjijang (meaning the best musical instrument of all) or as the collective name for string instruments. It was produced in Goguryeo, and Geumdo, the theory and techniques of geomungo, was accomplished in Unified Silla. Classical scholars of Goryeo and Joseon praised its unique aspects as an essential instrument to cultivate their mind. It played various roles for a long time. However, due to its impracticality and difficult playing techniques, its status is falling. The record of geomungo is in Chapter Hyeongeum, ‘Akji' of Samguksagii, and volume 7 of Akhaguebeom has it recorded as Hyeongeumi. Chinese musical ideas about geum in classical literatures represent the musical ideas of geomungo. It tells that Chinese ideas influenced the musical ideas of geomungo players. Considering that the word geum include traditional string instruments and gayageum and that another name for geum was geumungo, it was deducted that significant parts of intangible values of geomungo were introduced from China. In Samguksagi, it was explained to have been created by remodeling chilhyeongeum, but Japanese scholars argue that it originated from wagonghu. Also, scholars of Korea, China and Japan are discussing that wagonghu of Wei and Qin era found in Chinese musical academic circles is the origin of geomungo. Korean scholars consider geum in ancient tomb murals which is assumed to be a similar instrument before the introduction of chilhyeongeum as hyeongeum, but Jananese scholars are disagreeing because they consider it as wagonghu. Even some Korean scholars believe that is is geomungo. Beside geomungo, geum and goto, the Bible has a record of a western string instrument that is interpreted as geomungo. It tells that similar looking string instruments were interpreted or translated as geomungo from the ancient times until the latter era of the Joseon Dynasty, the Japanese Rule Era. Another name for geum or names of musical instruments related with certain players were introdueced with the ideas of geum to replace geomungo in Korean classical literatures. Aesthetic elements and ideas of playing geum were succeeded by geomungo players. It seems that Korean classical scholars selected ‘geomungo' as a collective name for geum, seul, geomungo and other similar instruments and adopted the concept with Chinese musical ideas. Geum was introduced in the 11th year of King Yejong, Goryeo (1116) and was used with seul in music for Confucian ceremonies, and its techniques were stopped at the end of Korean Empire Period. Gayageum and seul are similar in that the right hand and the both hands fingers except that they have different numbers and sizes of strings. However, geum and geomungo have different structures and techniques. Literatures include sentences explaining that materials and parts of geum, seul, geomungo and such are royal foxglove tree and silk strings, of geum are hui and jul and of seul are juhyeon and ju. However, it is hard to find uses of anjok, gwae and suldae which are names of parts of geomungo. Famous geums have contexts of history. Along with dignity and talents of producers and backgrounds and ideas of the period, they symbolizes or metaphorizes contexts of classical literatures to be involved with the ideas of geomungo. Traces of famous geum players left in classical literatures were reborn as geomungo ideas of Korean classical scholars. Musical and literary ideas from surfaces or belows of masters and famous songs of famous geums and words and phrases showing other aesthetic senses were used in Korean classical literature physically or chemically. Joseon scholars considered geomungo as the tool of manners and cultures. Therefore, it can be deducted that they would have possessed one essentially and that there would have been many players. The instruments played by Mulgyeja and Master Baekgyeol seemed to be a traditional string instrument not geomungo or g...

        • KCI등재

          백석의 만주 관련 시편 연구

          송종원 ( Song Jong-won ) 우리어문학회 2016 우리어문연구 Vol.56 No.-

          본고는 백석이 만주로 왜 떠났고 그 여정이 그의 시세계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를 살피려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주로 매개가 된 것은 백석의 만주 관련 시편들이다. 기존의 연구가 전기사적 사실이나 역사적 정황을 텍스트 해석의 최종심급으로 둔 오류를 범했거나, 역사성을 소홀히 여긴 내적 정서의 추적 방식을 따랐다면, 본고는 그런 방식의 해석적 입지들이 놓칠 수 있는 텍스트 내 미결정된 상태의 의미의 가능태들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였다. 백석의 시로부터 우리는 백석이 일제의 시선을 벗어난 지점에서 만주의 경험을 시화화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백석의 시는 만주가 다른 나라이고 타관임을 명백히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지만 타국과 타관에 관한 인식에서 비롯된 차이의 감각에 한정되지 않는 채 시를 구성하는 것이 또한 백석 시의 특징이다. 시인은 그 차이 속에서 같음을 발견하고 다시 그 같음의 감각을 고양시킴으로써 타국민, 타민족들과 유대감을 나눈다. 이 유대감은 존재들에게 지속적이고 안정감을 부여하는 양식의 부재를 대체하는 효과를 발생시킬 뿐 아니라, 시인에게 차이와 통합의 감각을 단련시키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백석의 시는 시 속에 발견된 일시적 통합기제를 또 다른 분열로 나아갈 계기적인 거점으로 활용하며 끊임없이 분열과 재통합의 운동을 지속한다. 백석의 시가 시인 자신의 고향을 그려내는 데에서 시작하여 민족의 옛 영토로까지 시적 지평을 넓힐 수 있었던 이유도 저 분열과 재통합의 역동적 운동성에 있다. 반복되는 분열과 재통합의 운동성은 자연스럽게 시 안에서 서사지향성의 성격을 내재하게 하는데, 백석 시의 이 운동성은 가끔 외재적 관념에 발목을 잡혀 설화지향성의 공간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만주 관련 시편들에 내재한 의미의 흐름이 결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분열과 재통합의 반복 속에 자율적 주체성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이 주체성은 자신이 역사로부터 소외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감내하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삶의 지평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감각을 밀고 들어가 관념이 아닌 현실에 뿌리를 내린 타자들과의 만남을 이루어낸다. The main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Baek-seok`s poetry which were connected with Manchuria. We find that Baek-seok wrote a poem out of the eyes of the Japanese Imperialism. He was clearly aware that Manchuria is other countries and outsiders. But the logis of sense finded Baek-seok`s poetry which were connected with Manchuria is very complicated. He found the same despite differences. In that sense, he shares in solidarity with the other peoples. The solidarity cause the effect to replace the absence of style that give a sense of security, and make a role that Baek-seok disciplines the sense of difference and integration. In other words, Baek-seok makes temporarily integration mechanisms found during writing poem to constant movement of division and reintegration. The reason that beginning to draw in his hometown of poet can broaden their horizons implied by the old territory of the nation is also the dynamic movement of that division and reintegration. That movement is inherent to the nature of the narrative-oriented tendency. The flow of meaning of Baek-seok`s poetry which were connected with Manchuria shows the process of realizing an autonomous identity in the repeat of the disruption and re-integration.

        • KCI등재

          현대문학 : 황동규 초기 시에 나타나는 집 의 상상력

          심재휘 ( Jae Hui Shim ) 우리어문학회 2012 우리어문연구 Vol.42 No.-

          이 글은 황동규의 초기 시에 나타나는 집의 상상력을 통해 당대 그가 보여주었던 시 쓰기의 방법론을 해명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문학적 주제어로서 집 은 비호성(庇護性)의 행복한 공간이다. 대체로 집 은 가옥과 가족, 그리고 가정의 의미를 내포하는 공간으로서 우리 시문학사에서는 마음의 본향인 고향과 조국의 의미로 외연을 넓히기도 한다. 그러나 황동규의 시에 등장하는 집 은 화자가 거처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을뿐더러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구조물로 기능하지 않는다. 초기 시의 특징인 비극적 인간 혹은 쓰러지려는 의지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하는 도구로써 집은 상징화된다. 그러한 연유로 시에 등장하는 집은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고 나아가 집안과 집밖의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장치로 나타난다. 집안과 집밖의 통로인 문 이 대부분 닫혀 있어서 그러한 느낌은 더욱 강하다. 이와같은 현상은 첫 시집 『어떤 개인날』과 두 번째 시집 『비가』에 만연한 유폐적 상상력의 소산이다. 한편, 세 번째 시집 『태평가』와 네 번째 시집 『열하일기』에서는 집의 상상력이 변모한다. 젊은 시인의 열정이 생활인의 감각으로 바뀐 탓도 있지만 두번의 외국 생활에서 얻은 구체적 현실 경험이 변화를 이끈다.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이자 약소국가라는 뼈저린 체험은 그의 시적 인식을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영역으로 밀고 간다. 집안과 집밖을 소통하려고 하는 태도는 문엶의 의지로 연결된다. 집 밖의 엄혹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그려내는 경우가 늘어난다. 자신의 집안밖에 머물러 있던 화자의 시선은 곤궁한 타인들의 집으로 향한다. 황동규의 초기 시에 나타나는 집은 대체로 시적 화자의 내면을 상징한다. 앞 선 두 시집에서 황동규는 닫힌 문 안쪽의 상황, 그러니까 유폐된 자의식을 드러내는 데 주력하였다면 이후의 두 시집에서는 집안과 집밖의 소통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인 집의 소중함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표현을 할애한다. This study tries to look into the Hwang, Dongkyu`s early poetry. Especially, an imagination of a house is applied for the reading texts. As a literary motif, a house connotes a space of happiness and protection. In some cases, it means even a hometown or a motherland. But, Hwang didn`t make use of a house as a space of happiness and protection. An imagination of a house on Hwang`s early poetry was a just symbol for representing tragedy of life. And it was symbolized for showing despair of a person who face a tragic world. As a result of that, all doors and windoors were closed in a text. This appearance was closely connected with an imagination of incarceration. On the other hand, an imagination of a house got change into another one. Hwang was getting realize that his country was just a weak and small nation, just a divided country after his studying abroad. So, trying to open the door was expressed many times on the poetry. Moreover, he knew that watching the other`s house was more important than any other. The poet Hwang strived to reveal a significant of a community. He realized that a worry about a real world comes after every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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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문학 : 김훈 소설에서의 음식의 문제 -장편 역사소설을 대상으로

          김주언 ( Joo Eon Kim ) 우리어문학회 2012 우리어문연구 Vol.43 No.-

          이 연구는 김훈의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을 대상으로 이 소설들에 나타난 음식 담론을 고찰한다. 이 장편 역사소설들의 서사 전개에서 음식이 담론화되는 양상도 흥미롭지만, 일정한 변별적 자질로 지속적으로 출현하는 음식 문제는 탐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이 연구의 판단이다. 일단 김훈의 역사소설에서 음식은 우리의 이상주의적 열망과는 거리가 먼 ``낮은유물론'의 자리에 놓여 있다. 음식 같은 물적 조건이 전경화되면서 문명사의위엄을 떠받치는 이데올로기 따위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이것은 단지 피상적인 이데올로기 비판의 문제가 아니라 발본적인 부정의 문제이다. ‘낮은 물질'로서의 음식은 전쟁소설에서 욕구와 욕망의 다채로운 빛깔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일차적이고도 근원적인 몸의 욕구로서의 음식에도 모욕과 주이상스가 교차한다. 모욕의 음식은 차라리 환멸의 먹이에 가깝다고 할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되지 않는 주이상스의 음식은 세계 내용을 다름 아닌 먹거리의 내용으로 긍정하는 힘을 가진 것이다. 김훈 소설에서 음식의 운명은 주이상스의 확대가 아니라 분뇨의 문제로 완성된다. 음식과 분뇨라는이 낮은 물질들은 그 자체가 지닌 고유한 가치로 ‘높음'의 이데올로기를 모욕하고 전복시키고자 한다. This paper studies the food discourse, shown in these novels, regarding three historical novels “Song of the Sword”, “Song of Strings” and “Fortress on Mt. Namhan” by Kim Hoon. This study judges that it is worth to research the food appeared continuously even though the aspect of food discoursing in the development of narration. Kim Hoon`s novel tries to start something new story not only correct the ideology a little, accustomed to us, but break up with it completely. The food is an important axis of possibility of new story. The food is on, far away from our idealistic desire in the historical novel, but on the lower materialism. The food as the lower material has no various color of need and desire. However, it has mingled feelings of insult and jouissance in food as the primary and basic body`s need. The food of insult would rather close to the food of disillusion. Nevertheless, the food of jouissance, not corrupted, has the power to affirm the world to the contents of a meal. The destiny of the food is completed as night soil not extension of jouissance. The food and night soil has logical relationship as the input and output. This lower materials try to insult “the higher` ideology and overturn of its own intrinsic value. That`s all, however. The food and night soil are not made a mystery as the lower material. It only becomes part of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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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명근의 역사소설 「자결고(自決考)」 연구

          김민수 우리어문학회 2019 우리어문연구 Vol.65 No.-

          Choi Myeong‐geun is one of the authors who have been little known to our novel history. This paper focuses on his history novel, “Jagyeolgo” that he submitted in his pen name, which depicts the historical character Yi Sun‐shin, and examines the historical significance in the literary history that Yi Sun‐shin's literary imagery of “Jagyeolgo” in the 1980s might have. For this purpose, this paper first analyzed the narrative features that constitute this novel. The novel unfolds from two perspectives that the two main characters have. One is the view of Keum‐yi yearning Yi Sun‐shin to desire life by being angry at the power oppression and dreaming of alternative world, and the other is Yi Sun‐shin's view of anguish and despair, leading to committing suicide. On the surface, these two views focus on the literary imagination rather than the historical aspect of history novel. Through this, Yi Sun‐shin is shaped as a person who undergoes complex emotional changes, which is projected by modern people living in the 1980s. As is commonly known, after the transition period to the modern times, it was after the 1990s that Yi Sun‐shin, who was used as a vessel in which to put the ideology of the time, began to dissolve the ‘heroic face' and turn to the ‘human side' lighting. This paper attempted to examine the intention of the author to call Yi Sun‐shin in the category of history novels in the 1980s. It can be seen that Choi Myeong‐geun's “Jagyeolgo” was trying to make a fictionalization attempt of Yi Sun‐shin with more humanistic at an earlier time. The author intended to draw a character with delicate emotions without recycling the existing hero image. These attempts tell us that Yi Sun‐shin, an object of literary figuration, has come to the present through constant reinterpretation since modern times. 최명근은 우리 소설사에서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작가이다. 이 논문은 그가 필명으로 투고했던 역사소설인 「자결고」가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다루고 있는 것에 집중하여 1980년대에 「자결고」라는 이순신의 문학적 형상화가 지니는 소설사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씌어졌다. 이러한 목적에서 먼저 이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서사적 특징에 대해 분석했다. 이 소설은 두 명의 주인공이 지닌 두 가지의 시각에서 전개된다. 하나는 권력 억압에 분노하여 대안세계를 꿈꾸며 이순신이 삶을 욕망하기를 염원하는 금이의 시각이며 다른 하나는 고뇌하고 절망하면서 끝내 자결에 이르는 이순신의 시각이다. 표면적으로 이 두 시각은 역사소설의 역사적 측면보다는 문학적 상상력에 집중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순신은 복잡한 감정변화를 겪는 인물로 형상화되고 이는 1980년대를 살아가는 근대인들에 의해 투영된다. 통상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근대전환기 이후 당대의 이데올로기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활용되었던 이순신이 ‘영웅적 면모'가 해체되기 시작하고 ‘인간적 측면'의 조명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던 시기는 1990년대 이후이다. 이 논문에서는 1980년대 당시 역사소설의 범주에서 작가가 이순신을 호출하고자 했던 의도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최명근의 「자결고」는 좀 더 앞선 시기에 인간적 면모를 지닌 이순신의 소설화 작업을 시도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기존의 영웅상을 재활용하지 않고 섬세한 감정을 지닌 인물로 그려내고자 하였다. 이러한 시도들은 문학적 형상화의 대상인 이순신이 근대 이후 끊임없는 재해석을 통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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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 소설에서의 음식의 문제 - 장편 역사소설을 대상으로

          김주언 우리어문학회 2012 우리어문연구 Vol.43 No.-

          This paper studies the food discourse, shown in these novels, regarding three historical novels “Song of the Sword”, “Song of Strings” and “Fortress on Mt. Namhan” by Kim Hoon. This study judges that it is worth to research the food appeared continuously even though the aspect of food discoursing in the development of narration. Kim Hoon's novel tries to start something new story not only correct the ideology a little, accustomed to us, but break up with it completely. The food is an important axis of possibility of new story. The food is on, far away from our idealistic desire in the historical novel, but on the lower materialism. The food as the lower material has no various color of need and desire. However, it has mingled feelings of insult and jouissance in food as the primary and basic body's need. The food of insult would rather close to the food of disillusion. Nevertheless, the food of jouissance, not corrupted, has the power to affirm the world to the contents of a meal. The destiny of the food is completed as night soil not extension of jouissance. The food and night soil has logical relationship as the input and output. This lower materials try to insult “the higher' ideology and overturn of its own intrinsic value. That's all, however. The food and night soil are not made a mystery as the lower material. It only becomes part of nature. 이 연구는 김훈의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을 대상으로 이 소설들에 나타난 음식 담론을 고찰한다. 이 장편 역사소설들의 서사 전개에서 음식이 담론화되는 양상도 흥미롭지만, 일정한 변별적 자질로 지속적으로 출현하는 음식 문제는 탐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이 연구의 판단이다. 일단 김훈의 역사소설에서 음식은 우리의 이상주의적 열망과는 거리가 먼 ‘낮은 유물론'의 자리에 놓여 있다. 음식 같은 물적 조건이 전경화되면서 문명사의 위엄을 떠받치는 이데올로기 따위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이것은 단지 피상적인 이데올로기 비판의 문제가 아니라 발본적인 부정의 문제이다. ‘낮은 물질'로서의 음식은 전쟁소설에서 욕구와 욕망의 다채로운 빛깔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일차적이고도 근원적인 몸의 욕구로서의 음식에도 모욕과 주이상스가 교차한다. 모욕의 음식은 차라리 환멸의 먹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되지 않는 주이상스의 음식은 세계 내용을 다름 아닌 먹거리의 내용으로 긍정하는 힘을 가진 것이다. 김훈 소설에서 음식의 운명은 주이상스의 확대가 아니라 분뇨의 문제로 완성된다. 음식과 분뇨라는 이 낮은 물질들은 그 자체가 지닌 고유한 가치로 ‘높음'의 이데올로기를 모욕하고 전복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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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공간의 이론과 『서유기』 해석

          정영훈 우리어문학회 2011 우리어문연구 Vol.40 No.-

          It is not easy to understand Choi Inhun's novels. It is why his novels are totally different from usual realistic novels. This thesis aims at showing the intellectual foundation of Seoyugi assuming that his unique literary forms are derived from his unique knowledge. Seoyugi is known as the most difficult one of Choi Inhun's novels. Seoyugi is related with the knowledge of neurology. Such sentence is in the prologue that Seoyugi is the interpretation of the cerebral cortex. It is almost certain that Choi Inhun was interested in the neurology considering he had been interested in the biology deeply. In connection with this idea I took a special concern on the theory of the ‘inner space'(it is same as mind or heart) written on the note handed over to Dokgo Jun, the main Character. There are three main points in the theory. First, the world has two aspects, the inner space and the outer space and both are physical. Second, These two spaces are correspond each other. Third, ‘I' am different from the inner space. There is the third ‘I' beyond ‘me'. This ‘I' makes impossible that ‘I' am reduced to a material. We can also read Seoyugi in this way. Where Dokgo Jun goes through is the inner space, especially his own brain. His brain(inner space) features devastation and disorder as like Korean society(outer spcae) does. The trip of Dokgo Jun is to pursuit for ‘I'. 이 논문은 최인훈 소설의 난해한 형식이 그의 특별한 지적 배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판단 아래 『서유기』를 가능하게 한 방법적 근거를 확인해 보고자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할 것은 이른바 ‘내공간'에 대해 독고준이 쓴 글이다. 이 글을 내공간의 이론이라 부르려 하거니와, 여기에는 우리가 흔히 의식이라고 부르는 실체에 대한 최인훈의 독특한 생각이 담겨 있다. 내공간의 이론은 『서유기』를 이해하는 데 여러 모로 시사적이다. 이 논문은 이 글 가운데 특히 중요한 세 가지 명제를 매개로 서유기를 이해해 보고자 하였다. 이 논문에서 확인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서유기』는 내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내공간의 이론에 따르면 세계는 내적 외적 세계로 구분되는데 이 둘은 모두 물리적 속성을 지닌다. 최인훈은『서유기』를 쓰기 전부터 이미 정신을 물리적 실체로 보고 있었는데, 『서유기』의 경우 뇌를 정신활동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장소로 보고 있다. 둘째, 독고준의 의식은 황폐성과 무질서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황폐성과 무질서성은 한국사회의 전형적인 특징인바,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가 서로 조응한다는 내공간 이론의 규정을 염두에 두면 이는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셋째, 『서유기』는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그리고 있다. 내공간의 이론에 따르면 정신은 물체지만 ‘나'는 물체가 아니다. ‘나' 뒤에는 ‘또 다른 나'(=탄력점)가 있고 이 ‘또 다른 나'가 한편으로는 ‘나'를 규정할 수 없는 존재로, 다른 한편으로는 ‘나'에게 통일성과 함께 개성을 부여한다. 작품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은 여행 주체인 독고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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