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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위량의 2차 전도 여정과 순례길로서의 가치

        배재욱(Jae-Woog Bae) 영남신학대학교 2016 신학과 목회 Vol.45 No.-

        부산항을 통해 미지의 세계인 한국으로 와서 이 땅에서 선교하고자 노력했던 배위량(裵偉良/윌리엄 M. 베어드/ William M. Baird, 1862~1931)은 1893년 4월부터 5월까지 경상도 땅 일원을 탐방하여 선교지부를 개척하고자 경상도 지역 순회 전도여행을 떠나 1,240리나 여행하면서 순례했다. 배위량은 1894년 4월 22일 많은 위험과 고통을 감내하면서 모든 어려움을 모험과 인내와 열정으로 극복하고 대구에 도착했다. 그는 나중에 남성로에 있는 대구제일교회 옛 본당의 교회 부지를 구입하여 경상도 선교의 기틀을 닦았다. 그가 주님의 복음을 이 땅에 전하고자 다녔던 그 길을 다시 찾는다면 인생의 목적을 깨닫지 못하고 방황하는 우리 한국교회의 젊은이들과 한국교회에게 주는 좋은 선물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세속화의 물결 앞에서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지키고, 한국교회를 건강하고 새롭게 하는 길이 될 것이다. 배위량은 “믿음으로 호랑이 굴속에 뛰어든 선교사”처럼 위험과 고난을 감수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의 2차 전도여행은 동래 - 밀양 - 청도 - 대구 - 상주 - 안동 - 의성 - 신령 - 영천 - 경주 - 울산을 거쳐 동래에까지 이어졌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선교 터전인 부산 선교지부에 머물렀지만, 부산에서 대구로 이주하여 대구에 정착하는 것으로 제 2차 전도여행의 결실을 맺었다. 배위량의 길은 섬기는 마음으로 그리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Bae We Ryang (William M. Baird, 1862~1931) came to the unknown world of Korea through Busan Harbor for missionary work. He visited all of Gyeongsang Province from April to May in 1893, and made a pilgrimage, going on a 486.981818km evangelical journey to make a local branch of the mission. Although Bae We Ryang endured many hardships, he overcame his difficulties with his adventurous spirit and passion, and arrived in Daegu on April 22, 1894. He established the Gyeongsang Province ministry by buying the land, on which the old main hall of Daegu Jeil Church on Namsung Street is built, for his church site. Bae’s mission of spreading the Lord’s Gospel is an inspiration for the Korean Church and its youths. Looking to Bae’s example, the Korean Church can find its identity and stand strong against the waves of secularization. Bae We Ryang carried out his mission, enduring risk and hardship, like “a missionary who put his head into the lion’s mouth by faith.” After his second evangelical journey through Busan - Dongnae - Miryang - Cheongdo - Daegu - Sangju - Andong - Uiseong - ShinRyoung - Yeongcheon - Gyeongju - Ulsan - and Busan once more, he settled down in Daegu again. Bae We Ryang’s mission was to prepare a strong foundation and be an example for the Korean Church; following Bae, the Korean Church should also strive to serve and be an example for the Korean people with ded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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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위량의 순회전도가 영남지역의 3.1만세운동에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

        배재욱 ( Bae Jae Woog ) 한세대학교 영산신학연구소 2020 영산신학저널 Vol.0 No.51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3.1운동은 민족사적으로 중요하고 획기적인 일이다. 이 사건으로부터 파생된 민족정신은 구국운동으로 번져갔다. 한국교회는 3.1운동의 준비단계에서 거사 실행단계에 이르기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배위량의 열정적인 복음 전도 활동이 영남지역의 3.1만 세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에 대하여 탐구했다. 배위량은 1891년 1월 29일에 부산항에 도착함으로 한국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던 인물이다. 그는 부산에서 선교 지부를 개척할 땅을 사기 위하여 1891년 2월 25일에 부산으로 내려왔다. 배위량은 영남지역의 3.1만세운동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영남지역에서 행한 그의 선교 사역이 영남지역의 3.1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가 3.1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이 점에 주목하여 배위량과 영남지역의 3.1운동의 관련성을 찾고자 한다. 그는 부산에 터전을 마련하고 1891년 9월 24일부터 부산 선교 지부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1892년 6월에 완공했다. 배위량은 처음에는 부산을 중심으로 하여 1) 순회전도, 2) 사랑방 전도, 3) 수세자들과 초량교회 설립, 4) 한문학교 설립 등을 통하여 한국 선교의 기틀을 놓았다. 배위량은 부산과 대구를 근거지로 하여 원대한 선교 계획으로 일했다. 배위량은 1896년 4월에 평생 살 생각으로 대구로 이사하여 대구를 근거지로 영남지역을 선교하고자 했다. 하지만 미북장로교 선교부는 그의 임지를 서울로 옮기도록 하였다. 그래서 배위량은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를 가야 했다. 그의 후임인 안의와(安義窩=아담스, James Edward Adams, 1867∼1929), 장인차(張仁車=존슨, Dr. Woodbridge O. Johnson, 1869∼1951) 그리고 부해리(傅海利=브루엔, Henry Munro Bruen, 1874∼1959)는 배위량의 선교 정신을 이어 받아 영남지역 선교를 위하여 많은 역할을 감당했다. 영남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은 대구와 부산 등 도시에서 먼저 시작되어 농촌으로 확대되어 전국에서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운동이 되었다. 그런데 영남지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선도했던 그룹은 기독교 인사들과 학생들이었다. 대구 3.8운동은 대구 교계 지도자들에 의하여 계획되고 시작되었다. 배위량의 제2차 순회전도 여행길은 영남 북부지역을 복음화시키는 단초가 되었다. 영남지역의 3.1운동은 기독교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했다는 데서 다른 지역과 다른 특색을 가진다. 배위량은 영남지역 전 지역을 대상으로 다니면서 순회전도를 감행했다. 이 점에서 영남지역의 교회 탄생은 배위량과 깊이 연관되고 영남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은 순회전도 여행을 다닌 지역과 관련된다. 그래서 영남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에 대한 연구에서 배위량과 관련된 개연성을 찾는 것이 영남지역의 3.1운동의 특색을 찾는 데 중요한 길이 될 것이다. The centenary of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falls in the year of 2019. The March First Movement is an important and epoch-making event in the history of Korea. The national spirit derived from this incident spread to a save-the-nation movement. The Korean Church took a leading role from the preparation stage of the uprising to the execution stage. In this paper, the author explores how the passionate evangelical activities of Bae We Ryang affected the March First Manse (“hurrah”) Movement in the Gyeongsang (or Youngnam) region. Bae We Ryang was the first person to make a connection with Korea by arriving at Busan port on January 29, 1891. He came down to Busan on February 25, 1891 to buy land for a missionary branch in Busan. Although Bae’s misssionary work may not be directly related to the March First Manse Movement in the Gyeongsang region, his import- ance should not be overlooked in focusing on how the results of his missionary work affected the March First Movement in the region. The author attempts to seek relevance between his role and the March First Movement in Gyeongsang region. After he set up a base in Busan, he began building the structure of the Busan Mission Branch on September 24, 1891 and completed it in June of 1892. Bae We Ryang first established the foundation of the mission in Korea by conducting missionary work mainly in Busan through 1) Itinerating travel; 2) conducting guests to a reception room in a house; 3) establishing Choryang Church with all the baptized persons; 4) establishing a Chinese literary school. He did missionary work with Busan and Daegu as centers having a far-reaching plan in mind. Bae We Ryang moved to Daegu in April 1896, hoping to preach the gospel there all his life, but before long the Board of Foreign Missions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PCUSA) made him move to Seoul and Pyongyang. His successors, James Edward Adams (1867∼ 1929), Dr. Woodbridge O. Johnson (1869∼1951) and Henry Munro Bruen (1874∼1959) were given many missionary roles to evangelize people in the Youngnam region. In the Youngnam region, the March First Movement starting first in cities such as Daegu and Busan expanded to rural areas and then became the most powerful movement in the country. The demonstrations in the Gyeongsang region were led by Christian leaders and students. Daegu’s March Eighth Movement (대구 3.8운동) was planned and started by Daegu’s Christian religious leaders. Bae’s second missionary journey has been viewed as a major source of evangelization for the northern part of Youngnam areas. During the March First Movement in the Gyeongsang region, Christian leaders and believers played pivotal roles. Bae preached the gospel throughout the entire Youngnam region and the birth of churches there could all be deeply related to him. The March First Movement in Youngnam is connected with the regions where he made his rounds for the gospel. Therefore, it remains an important source for research in relating Bae We Ryang with studies on the March First Movement in the Youngnam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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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의 그리스도론과 대승불교의 불타론

        배재욱(Bae, Jae Woog) 한국신약학회 2016 신약논단 Vol.23 No.1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근본적인 차이는 믿음의 속성과 그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과 연결된다. 정류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이해하면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가장 위대하고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계시이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하나님의 계시”를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서 찾으며, “계시라는 개념은 오직 복수의 실재들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인격자, 즉 계시자이다”란 말로 계시를 이해한다. 이러한 이해로 정류는 인간의 유일한 구원자를 예수 그리스도임을 인식했다. 정류에 따르면 불교에서는 “어떤 인격적 대상도 영원히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기 때문에 불교에서의 계시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해는 자연과 인간을 동일한 범주 안에서 보는 데서 이해 가능하다.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하여 인간 안에서 자연의 혼을 본다. 정류는 현직 목회자로서 미국 유학을 하게 되면서 목회자적인 안목으로 한국 교회 현실이 불교를 모르고서는 힘들다는 인식을 했고, 그래서 그는 불교에 대한 연구를 자신의 과제로 삼아 불교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어릴 적에 가졌던 삶에 대한 편력을 불교 연구를 통하여 찾고자 한 듯하 다. 이러한 이유로 정류는 그리스도와 부다의 사상을 비교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성경을 사랑했던 목회자요 성경학자였던 정류가 연구한 이러한 논지를 이 시대의 학자들도 시대의 어려움을 인식하면서 함께 동참하는 것이 마땅한 자세일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대한 이해와 연구 없이는 그 환경에서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류가 활동한 초창기 한국교회 시절의 두 종교에 대한 정류의 이해를 통하여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타 종교를 대하는 마땅한 자세가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를 이루게 된다면 정류가 자신의 연구를 통해 알고자했고 기여하고자 한 바를 바르게 이해하게 되고 지금의 한국 교회를 더욱 활기 있게 만드는 계기가 되리라고 본다. Jung-Ryu argues that the incarnation of Christ is the greatest and the most obvious revelation of God, understanding Jesus Christ as God’s self-revelation. He seeks God’s revelation into the personality and ministry of Christ. The concept of revelation can be understood only in the midst of multiple realities. He understands the word of revelation as personality. According to Jung-Ryu, Buddhism can not establish revelation because any personal object is not an eternal reality in Buddhism. This understanding can be understood in viewing nature and human in the same category. Identifying nature with human, Buddhism looks the soul of nature inside human being. The fundamental difference between Christianity and Buddhism is connected with the property of faith and the question who the object of faith is. With this understanding, Jung-Ryu says about the only Saviour, Jesus Christ as following: Faith should have a true object in order to be a true destination. These theological statements and efforts of Jung-Ryu had helped him to study in the United States as a pastor. Also from these it is inferred that he had studied Buddhism and compared it with Christianity, recognizing that the reality of Korean mission will be difficult without knowing Buddhism. It is not easy for everyone to work in the environments which he/she is faced without understanding and studying his/her situations. As a biblical scholar, Jung-Ryu loved the Bible. Therefore, it is worthy attitude for the contemporary scholars to recognize the difficulties of these times and join together in the argument of Jung-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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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류(靜流) 이상근 박사의 신약성경 주석의 원리

        배재욱(Jae Woog Bae)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선교연구원 2018 선교와 신학 Vol.45 No.-

        한국 가톨릭은 새로운 중흥을 맞고 있지만 한국 개신교는 더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성경 해석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되었다. 정류의 주석서는 당시의 목회자들을 위한 학문적인 길잡이였다. 그의 주석은 전시대(前時代) 한국교회를 지탱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정류에게서 찾을 수 있는 신학사상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논한 후 정류의 신약성경 주석이 가진 교회사적인 의미와 가치를 탐구해야 한다. 정류가 활동했던 시대는 복음에 대한 열성으로 복음이 주는 감격과 은혜로 목회하고 선교하는 데 최선의 삶을 경주한 시대였다. 마태복음 16장 15~20절에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나타난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베드로 수위권과 로마 교회의 수위권을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마태복음 16장 15~20절에서 베드로에게 부여된 pe,troj와 pe,tra란 이름 속에서 베드로가 초기 교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정류는 신학자의 눈으로 성서를 주석했다. 칼빈의 논지를 따라 정류도 베드로가 차지한 위치에 대해서 인정하지만 베드로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로마 교회의 주장을 배격한다. 현대 신약학자들은 evkklhsi,a란 말을 초기 교회의 작품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evkklhsi,a를 역사적인 예수에 기원을 두는 것이 맞다고 본다. 마태복음 16장 15~20절에서 정류는 sa.rx kai. ai-ma에 대한 해석에서 칼빈 사상을 따른다. 침체기에 처해 있는 한국교의 회복과 갱신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정류의 주석은 현대 한국 교회를 위해서도 요긴한 지침이 된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뜻을 살펴 옛것을 거울삼아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가야 할 것이다. The Korean Catholic Church is in a new phase of revival, but the Korean Protestant Church is in a more difficult phase. In the face of this reality, the problem of interpreting the Bible is be important. The commentary of commutation was an academic guideline for pastors at that time. His comment played an important role in supporting the Korean Church in the previous era. After discussing what theological thought can be found in commutation, we should explore the meaning and value of the church history of the New Testament commentary on commutation. The era when rectification was active was the era in which the gospel was enthusiastic about the gospel and raced for the best life in ministry and mission with the emotion and grace of the gospel. In the name of pe,troj and pe,tra granted to Peter in Matthew 16:15-20, which is used as a basis for claiming the dominion of the Roman Church, the Roman Catholic Church has a meaning in the early church Can be seen. According to Calvin’s argument, rectification acknowledges the position of Peter, but rejects the claim of the Church of Rome that a church was built on Peter. Although evkklhsi,a is considered to be the work of the early church, evkklhsi,a seems to be the origin of the historical Jesus. The rectification in Matthew 16:15-20 follows Calvin’s thought in the interpretation of sa.rx kai ai-ma. Rectification commented on the Bible with the eyes of the theologian. The restoration and renewal of the Korean church in the downturn is in returning to the Bible. The commentary of commutation is also a good guide for the modern Korean church. I will try to open up a new future by using the old thing as a mirror to see the meaning of Ongoijishin(溫故而知新, the review the old and learn the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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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평화’와 ‘그리스도의 평화’

        배재욱(Jae Woog Bae)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선교연구원 2017 선교와 신학 Vol.43 No.-

        이 논문에서 필자는 그리스도의 평화와 세상의 평화가 가지는 연속성을 찾고자 한다. 그 후 그리스도의 평화가 세상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평화의 출발점임을 밝히고자 한다. 진정한 평화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성취된 평화이다. 예수는 세상의 평화를 파괴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하나님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세상의 평화와 그리스도의 평화는 서로 깊은 관련 속에 있다. 피조물의 신음이 그치고, 고통당하는 자, 억눌린 자가 자유를 되찾을 때 그리스도의 ‘평화’가 강물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평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신자의 총체적인 삶’ 속에서 누리는 평화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세상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을 따라 사는 데 있다. 그것은 하나님은 온 우주의 왕이시므로 평화 회복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평화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動的)인 뒷받침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런 구조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평화는 세상의 평화를 선도하면서 세상의 평화를 지키고 보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평화를 지키고 가꾸는 데서 인간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부정적인 모습을 벗어날 수 있고, 내적인 평화를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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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의 어린양 상징 언어 속에 나타난 생명 사상

        배재욱(Jae Woog Bae) 한국신약학회 2012 신약논단 Vol.19 No.1

        요한계시록에서 생명 사상의 중심축에 그리스도론적인 진술이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그리스도 이해를 위해 여러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 ??(‘어린양’) 상징 언어는 그리스도론적인 생명 진술을 위한 중요한 터전이 된다. 이러한 ??이란 신적인 칭호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모습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그리스도 이해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고양된 그리스도론적인 표현으로 이해된다. 요한계시록에서 그리스도론적인 표현 중에서 ‘어린양’은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중심적인 용어이다. 계 22:1에서는 ‘어린양’이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모습을 통하여 어린양의 신성이 드러난다. 여기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발원하여 흘러가는 물이 생명을 살린다는 이미지와 물이란 상징어를 통하여 생명 창조와 보존,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종말론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생명 사상을 그리스도론적으로 진술함으로써 그리스도론의 발전된 모습을 담고 있다. 이런 성경의 진술을 통하여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에 초기 교회는 이미 발전된 그리스도론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와 ‘하나님’으로 고백했음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그리스도 인식에서 볼 때 초기 교회는 그리스도를 생명 사상의 정점(頂點)에서 이해하고 있다.

      • 에베소서 4장 25-32절에 나타나는 영성이해

        배재욱(Jae Woog Bae) 영남신학대학교 2010 신학과 목회 Vol.33 No.-

        To live as a christian in this world means to live divinely as an individual and to live in the church community built on the world. To live as a member of the church community is to keep his own position in the various risks and sufferings of the life on the world. Ephesians4:17-32 says an inevitable demand which should be kept in the life as a member of community while a christian is alive in the world. This demand turns up as a moral order. It's not simple for the man who got the salvation by grace of Christ’s renewal in the devastation death dominates to live in the hostile world. The path of spirituality starts from put off an old self (cf. Eph 4:22), and it is to live as a new creation (cf. 2Cor 5:17) by the Spirit of Christ everyday. The spirituality seen from Paul is to put off an old self and put on a new self.(cf. Eph 4:22-24) Also, the path of genuine spirituality in this text doesn’t end up in living divinely as an individual. It shows up the real meaning is to live as a baptized christian with other members of faith community although this world is hostile. Paul tells spirituality by three steps in Ephesians 4:22 1) to Put off an old self following old traditions 2) to be made new in the attitude of one's mind 3) to put on the new self, created to be like God in true righteousness and holiness Paul tells about the old self and the new self in Ephesians 4:22-32. And the actual order for a moral demand to recover to the new self appears. It should be formed a concept about understandable spirituality from Paul with recognizing that understanding various human individual oppressive factors and getting out from them is the fist step of christian’s spirituality recovery. The moral demand asked to christians appears in Ephesians 4:1-24 and Ephesians 4:25-32 is a description about how to achieve a spiritual life and simultaneously shows a moral demand. Ephesians 4:24 “to put on the new self” is the most appeared thing of the demand It can be found the necessity that human should live as a new creation which got freedom from forces death dominates in the new relationship with God. Here is the path of spirituality Paul had inten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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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소서 4장 25-32절에 나타난 분노로 부터의 자유

        배재욱(Jae-Woog Bae)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연합신학대학원) 2010 신학논단 Vol.61 No.-

        ??In our society the present time, there are lot of people anxious and angry. Scarred humanity by the wrath enters the wrath destroy you, your family and neighborhood and lead to despair. Everything when angry is destroyed, and the devil. Ephesians 4:25-32 lets us know the passive and aggressive way which going to free from anger. It is passive way concerning the freedom to get through abstinence of language. The language is wealth of human and important tool to make the life better. The language of humanity is the best implement as transmission system of culture. Thus the words he says are connected with identification he has. It is very hard to endure when we get fury. While thinking about the character of God slow to anger, endure and be patient. Lord is patient of wrath for a long time. If the anger is necessity to given to human for missing of humanity, it is also necessity to entertain the desire of new life through atonement grace of Jesus Christ. Ephesians 4:25-32 appears the christian takes ethical request necessarily as new existence of Christ. Christians are living in front of this inevitability which relieves anger on their own and let themselves be free in Jesus, overcoming many illogicalities that comes from their own life. Ephesians Chapter4 25-32 describes getting over anger coming from the site of human life and recovering free life through an inevitable demand which has to be kept. Freedom from anger has two fields; something happens in humanity and a realm that the God's Spirit is acting, God's field. In the God's Spirit, Freedom means the necessary restoration made by the God. The christians who have necessity as the new one in Jesus must be called by the Gospels. Furthermore, christians live in front of the inevitable demand who are called by the God. This demand appears as an ethical order. The sentence which shows it most clearly is in Chapter 4, 24, 'Put on the new self.' You can find out the reason that we have to live in the new relationship with the God as who got freedom from the power of death. It means you, as a christian, approve and keep your value in a lot of threats and trouble you meet. To pursue and observe the value, you have to 'put on the new self, created to be like God in true righteousness and holiness.' in Jesus's arm. ??In our society the present time, there are lot of people anxious and angry. Scarred humanity by the wrath enters the wrath destroy you, your family and neighborhood and lead to despair. Everything when angry is destroyed, and the devil. Ephesians 4:25-32 lets us know the passive and aggressive way which going to free from anger. It is passive way concerning the freedom to get through abstinence of language. The language is wealth of human and important tool to make the life better. The language of humanity is the best implement as transmission system of culture. Thus the words he says are connected with identification he has. It is very hard to endure when we get fury. While thinking about the character of God slow to anger, endure and be patient. Lord is patient of wrath for a long time. If the anger is necessity to given to human for missing of humanity, it is also necessity to entertain the desire of new life through atonement grace of Jesus Christ. Ephesians 4:25-32 appears the christian takes ethical request necessarily as new existence of Christ. Christians are living in front of this inevitability which relieves anger on their own and let themselves be free in Jesus, overcoming many illogicalities that comes from their own life. Ephesians Chapter4 25-32 describes getting over anger coming from the site of human life and recovering free life through an inevitable demand which has to be kept. Freedom from anger has two fields; something happens in humanity and a realm that the God's Spirit is acting, God's field. In the God's Spirit, Freedom means the necessary restoration made by the God. The christians who have necessity as the new one in Jesus must be called by the Gospels. Furthermore, christians live in front of the inevitable demand who are called by the God. This demand appears as an ethical order. The sentence which shows it most clearly is in Chapter 4, 24, 'Put on the new self.' You can find out the reason that we have to live in the new relationship with the God as who got freedom from the power of death. It means you, as a christian, approve and keep your value in a lot of threats and trouble you meet. To pursue and observe the value, you have to 'put on the new self, created to be like God in true righteousness and holiness.' in Jesus's 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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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의 화해와 생명 사상 - 고린도후서 5장 17-21절을 중심으로 -

        배재욱(BAE Jae-Woog)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사상과 문화연구원 2020 장신논단 Vol.52 No.1

        화해를 통하여 이루어진 생명 신학의 문제는 인간 상호 간의 화해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고린도후서 5장 17-21절에 나타나는 화해를 생명과 관련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그래서 화해와 생명이 이 단락에서 어떻게 연관되는지 탐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에게 나타나는 적개심은 화해를 담보하지 않는다. 화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 갱신의 매체이다. 인간 각자는 말씀선포에 의해 새롭게 되었다.(참조. 벧전 1:24-25) 화해는 생명 사상에서 중요한 매개이고 중요한 요소이다. 구약성경에서 כפר는 속죄(하는 행위)를 나타낸다. 이사야 53장 7절에 나타나는 ‘여호와의 종’은 속죄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견하고 있다.(참조. 행 2:36) 바울에게서 화해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 화해’란 관점으로 나타난다. 화해는 예수의 속죄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데,(참조. 롬 5:10) 화목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와 화해하셨다. 고린도후서 5장 18-19절에서 ‘화해’는 하나님의 구원 사건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화해가 하나님의 구원과 어떻게 관련되나?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20절에서 하나님과 화해할 것을 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에서 화해 행위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화해를 성취하신다. 그리스도의 속죄 죽음을 통해 하나님이 화해를 완성하셨기 때문에(참조. 고후 5:18a) 화해 사건은 그리스도의 속죄 죽음에 근거를 가진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바울의 화해와 생명 사상: 고린도후서 5장 17-21절을 중심으로”를 연구하면서 먼저 “고린도후서 5장 17-21절과 화해”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1. 갱신과 화해(17절), 2.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화해(18-19절), 3. 화해의 전달자(20절), 4. ‘하나님의 의’를 위한 화해(21절)를 다룬 후 “화해 사건과 그리스도의 속죄 죽음과 생명” 문제를 다루었다. 화해는 그리스도의 속죄 죽음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선물이고 화해에 이를 때 생명의 환희와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다. In this paper, I would like to study the reconciliation in 2 Corinthians 5:17-21 in relation to the issue of life. So it is necessary to explore how reconciliation and life are related to each other. Hostility in human beings does not guarantee reconciliation. Reconciliation is exclusively by the grace of God. Each human being is renewed by the proclamation of the Word (1 Peter 1: 24-25). Reconciliation is essential to life. In the Old Testament rpk refers to the acts of atonement. ‘Jehovah’s dependence’ in Isaiah 53:7 foreshadows the image of Jesus Christ as a sin offering (Acts 2:36). The reconciliation from Paul appears as a view of God’s reconciliation in Christ. The reconciliation takes place through Jesus’ atonement death (Romans 5:10). Through Christ, the fellowship offering, God reconciled us. In 2 Corinthians 5:18-19, ‘reconciliation’ appears as the salvation of God. Because God’s salvation is accomplished in Christ, we can experience God’s work in Christ. In 2 Corinthians 5:18, the subject of reconciliation is ‘God’ and reconciliation takes place through Christ. Through the atoning death of Christ, God completed the reconciliation (2 Corinthians 5:18a). The reconciliation event is based on Christ’s atonement death. Hence, I will discuss the life through reconciliation of life – to be more specific, renewal and reconciliation (v. 17), Christ as a symbol of reconciliation (v. 19), The messenger of reconciliation (v. 20)” and the reconciliation for the righteousness of God (v. 21). For reconciliation is meaningful only when it achieves God’s righteousness, and humans can find the reason to live joyfully only when one attains reconcil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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