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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또는 난백분말로 만든 젖산균발효식품을 동결건조한 제품의 저장성
강정화 덕성여자대학교 대학원 1999 덕성여자대학교 대학원 논문집 Vol.1 No.-
Freeze dried products of lactic acid bacteria fermented food prepared from milk or egg white powder(EWP) were stored at 28℃, 5℃ and -18℃ for 20 weeks. Properties of stored, freeze dried product and viable cell count, pH and organoleptic properties of stored, reconstituted product were investigated. (1) The viable cell count of reconstituted milk or EWP product stored at 5℃ or -18℃ was not changed markedly. However, the viable cell count of milk or EWP product stored at 28℃ was reduced during storage and it was changed substantially between 4 weeks and 5 weeks. However, pH of all samples stored at three different temperature was not changed. (2) Color of freeze dried product prepared from EWP became clearly brown at 16 weeks. (3) Appearance of reconstituted milk product stored at 5℃ or -18℃ for 20 weeks was not changed. However, homogeneity and solubility of reconstituted milk product stored at 28℃ for 20 weeks were reduced. Taste, odor and texture of reconstituted milk product stored at 28℃ for 20 weeks were markedly changed. (4) Viscosity of reconstituted EWP product stored for 20 weeks was slightly reduced. Solubility of reconstituted EWP product stored at 28℃ for 20 weeks was reduced and its taste and odor were markedly changed. Texture of reconstituted EWP product stored at 28℃ became rough.
강정화 경상국립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2008 남명학연구 Vol.26 No.-
이 글은 논자가 앞으로 10여 년간 중점적으로 탐구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인 지리산 유산기 연구의 試論이다. 논자가 진행해야 할 연구는 지리산권역을 중심으로 한 조선조 지식인의 문학이다. 특히 조선조 지식인의 지리산 관련 遊山文學과 영남・호남 지식인의 樓亭文學 작품을 주요 논의대상으로 삼아 그들의 山水美學과 그 속에 융화된 자연관을 집중 탐구하고, 이의 전반적 이해를 통해 조선조 지식인의 자연에 대한 이해,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모색하던 태도를 밝혀내게 될 것이다. 본고는 그 첫 시도로써, 조선조 지식인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남긴 유산 작품을 대상으로 삼아 그 동안 발굴된 자료를 개괄하고, 작품 속에 내재된 그들의 산수인식을 고찰함을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조선초기 李陸의 「智異山記」에서 시작된 지리산 유산기는 20세기까지 약 90여 편이 발굴되었다. 이를 시대별로 분류하면 15세기 6편, 16세기 5편, 17세기 전반과 후반에 각 6편과 7편, 18세기 20편, 19세기 27편, 20세기는 21편인데, 후대로 갈수록 작품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작품 수의 차이는 조선시대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그에 따른 지식인들의 浮沈에 그 원인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리산 유산기에 보이는 산수인식은 4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먼저 유산기 담당층이 조선조 유학자인 만큼 다양한 儒家的 志趣를 先賢尊崇으로 압축하여 살펴보았고, 다음으로 지리산 산수자연 가운데 佛家的・巫俗的 유적지를 통해 異端을 배척하는 지식인의 의식을 살펴보았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오는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仙境을 찾는 그들의 遊仙 의식을 살필 수 있었다. 특히 그들은 지리산의 절경 속에서 道家的 志趣를 갈망하면서도 유학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유람을 통해 뛰어난 文學的 志趣를 표출해 내었는데, 이는 우리 국토에 대한 예찬으로 일관되었음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