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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문학어사에서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 시평 문체의 형성과 의의

        김용화 충북대학교 러시아연구소 2015 러시아학 Vol.- No.11

        Данная статья рассматривает формирование публицистического стиля во второй половине XIX - начале XX вв. и его значение в истории русского литературного языка(далее РЛЯ) в аспекте зависимости изменения нормы ЛЯ от социально-культу- рных условий и заключает следующие выводы: ① В рамках публицистического стиля объединяют свободно публицисты и лите- ратурные и народные разговорные речевые элементы с книжными для интимного изложения эмоционально-экспрессивного и интеллектуального содержания. ② Одна из главных тенденций развития РЛЯ в изучаемую эпоху - это взаимо- действие стилей, включая проникновение языковых средст, характерных для иных стилей, в публицистический, что повыщает полифункциональность РЛЯ. ③ Ключевая роль в изменении РЛЯ переводится от создателя текста РЛЯ к его пользователю в течении времени. ④ Показательно, что аналогичными оказываются роль публицистического стиля в изменении нормы РЛЯ в изучаемую эпоху и роль языка средств массовой инфо- рмации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우리에게는 근대러시아 문학어사가 없다”, “19세기 중반부터 오늘날까지 문학어 텍 스트의 언어 구조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지 식은 여전히 적다”(Чапаева 4 재인용). 이것은 20세기 말 러시아 언어학자들(Кутина, Сорокин, Горшков)의 말이다. 실제로 러시아 문학어사는 11 – 18세기 연구에 집중되어 있고, 현재는 20세기 중·후 반부터의 현대러시아 문학어 변화에 주목하고 있는 상황으로, 푸쉬킨 이후부터 10월 혁명 직후, 즉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것이 사실이다1). 그렇 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본고는 그것을 크게 다음 두 가지로 본다. 첫째, 이 시기는 언어상, 특히 형태적, 통사적 관점에서 큰 변화가 없었던 ‘안정된 시기’이었다. 둘째, 언 어 변화의 주요 동력으로 변이성 개념에 대한 언어학적 이해가 부족하였다. 우선 첫 번째 이유부터 간략히 서술해 본다. 피터 대제의 사회문화적 개혁, 1917년 10월 혁명, 그리고 1985년 페레스트로이카 이 후 시기와 비교하여, 19세기 중반 – 20 세기 초의 언어적 변화는 대단히 느리고 완만하게 진행되어, 일반 언중은 그 변화를 거 의 감지하지 못할 정도이었다. 그러나 언어는 자신의 내적, 그리고 외적 요인들과 상호 관계 속에서 반응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은 것으로, ‘언제나 움직이는 물체’이다. 따 라서 이 시기 러시아 문학어도 여전히 움직이며 변화하고 있었고, 이 시기 가장 중요한 변화는 문체 체계의 확립과 더불어 텍스트 구성 방식의 변화(Бельчиков 2012: 46-51, Грановская 2005: 71-106)이었다. 사회적 급변으로 인한 새 어휘의 대거 등 장과 같은 변화와 비교할 때, 이 변화는 느리게 진행되고 쉽게 감지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안정된 시기로 표현되었지만,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에도 문학어는 당연히 사회문화적 조건과 맞물려 변화하고 있었고, 또 다음 시기의 변화를 태동하고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현대언어학에서 언어 변화, 특히 문학어와 문 학어 규범 변화의 주요 동력으로 간주되는 변이성이 언어학적 개념으로 주목되기 시작 한 것은 20세기 후반 프라하학파의 문학어 이론에 의한 영향이다. 19세기 중반 - 20 세기 초 러시아 언어학계에서도 변이성 개념, 문학어의 규범 및 규범화, 그리고 언어와 말 문화에 관한 문제는 생소한 것이었고, 언어학적 연구 대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상 황이었다. 또한 19세기 말 - 20세기 초, 과학아카데미 러시아어문학부 수장으로, 이 시기 러시아어학의 대표적 학자였던 샤흐마토프를 비롯하여 일부 언어학자들이 문학어 의 규범화 가능성에 대하여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그 당시 이 문제가 연 구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한 원인이었다. 본고는 먼저 II장에서 두 번째 원인, 즉 문학어와 문학어 규범, 그리고 규범 변화의 원동력인 변이형에 대한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 러시아 언어학계의 시각을 소개한 다. III장에서는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 러시아어는 다른 시기와 비교하여 상대적으 로 안정된 시기이지만, 언어는 동적인 물체이고, 특히 문학어와 문학어 규범은 사회문 화적 조건과 맞물려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관점에서 사회문화적 조건과 문학어의 상관 성을 고찰한다. 이 시기의 사회문화적 조건에서 바로 시평 문체(Публицистический стиль) 가 형성되었으므로, IV장에서는 러시아 문학어사에서 시평 문체가 형성되는 사회문화적 조건과 러시아 문학어사에서 시평 문체의 의미를 논의할 것이다. V장 맺음말에서는 연 구 결과를 요약하고, 시평 문체의 형성과 관련하여 문학어의 사회적 기반(Семенюк 1970: 516) 시각에서 러시아 문학어 발전사의 특징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 KCI등재후보

        러시아 문학어사에서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 서평 문체의 형성과 의의

        김용화 충북대학교 러시아 • 알타이지역 연구소 2015 러시아학 Vol.- No.1

        러시아 문학어사에서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는 언어변화 관점에서, 특히 형태적, 통사적 측면에서 큰 변화가 없었던 ‘안정된 시기’로 규정된다. 그러나 본고는 언어는 동적인 물체이고, 특히 문학어와 문학어 규범은 사회문화적 조건과 맞물려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입장이다. 본고의 연구대상인 시평문체가 형성된 시기도 바로 이 시기에 해당한다. 시평문체가 다른 시기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안정된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 에 형성된 배경과 러시아 문학어사에서 그것의 의의를 고찰하는 것이 본고의 목표이다. 시평의 고유한 문체는 당시 사회문화적 이슈에 대하여 작가가 자신의 관점과 이념을 가능한 한 더 많은 독자에게 더 효율적으로 어필하기 위한 텍스트를 구성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시평 작가는 독자와의 직접적 소통, 짙은 호소력, 넓은 독자층과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식자층의 문어적 구어, 민중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일반 구어, 그리고 속어와 은어까지도 문어적 어휘와 자유롭게 혼합시켰고, 또한 다른 문체들과의 상호 영향을 통해 문체상 중립 지역을 확장시키며 문학어의 다기능성도 향상시켰다. 시평문체는 문학어 텍스트 산출자와 문학어 텍스트의 대상자가 분리되어 있다. 전자는 지식인 계층과 문학 (특히, 사실주의) 작가이고, 후자는 산출자 자신은 제외된 지식인 계층과 일부 일반 민중인데,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대상자가 산출자의 언어적 특성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텍스트 산출자는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과 그 글을 읽을 독자를 염두에 두고 어휘와 어결합, 그리고 통사적 구조 등을 선택한다. 18세기 말 – 19세기 초반 로마노소프, 카람진, 그리보예도바, 푸쉬킨의 등 문학어적 활동 역시 시평과 마찬가지로 산출자와 대상자가 분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텍스트는 문학어에 대한 산출자 개인의 문학어에 대한 관점이나 시도가 반영되었을 뿐, 대상자가 직접 텍스트의 언어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시평과 다른 점이다. 본고의 연구 결과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생각해보고 싶은 점은 다음과 같다.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 러시아 문학어의 변화에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시평 문체이고, 그 변화는 문어와 구어의 자연스러운 접촉과 융합이라는 점, 그리고 20세기 후반 – 21세기 초 대중 매체어의 영향으로 일상적 구어체가 문학어로 대거 유입된 것이 현대러시아 문학어 변화의 특징이라는 점은 литературный язык-публицистика-разговорная речь의 상관적 구도가 문학어 변화의 중요한 축으로, 앞으로 러시아 문학어 변화에 적용되는 일반적 법칙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 KCI등재

        “명확성의 원리”로서의 문학어 - 문학의 언어를 둘러싼 임화의 비평적 사유 -

        강계숙 ( Kang Gye-sook )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20 인문학연구 Vol.0 No.59

        본고는 임화의 언어론 중 문학어와 관련된 내용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그의 언어론은 복합적인 형성 배경을 바탕에 두고 있다. 첫째 마르크스주의 언어학인 마르주의의 수용, 둘째 형상 개념의 이론적 정립 및 비평적 전유, 셋째 복고주의와 기교주의 문학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 넷째 ‘문학어로서의 조선어의 완미한 개화’에의 요구, 다섯째 기교주의 논쟁의 영향 및 카프시에 대한 자기반성이 그것이다. 임화는 ‘형상의 구체성’을 문학의 예술적 특수성으로 인식하였는바 ‘문학어=형상적 언어’로 정의한다. ‘형상적 언어’는 구체적인 의미전달에 충실한 언어로서 일상생활에서의 인간적인 느낌, 감정, 의식 등을 직접 이야기하는 형식의 언어를 가리킨다. 그는 이러한 언어는 ‘생생한 생활의 말’을 통해 구현된다고 보았다. 그가 일상어를 문학어의 좋은 소재(素材/所在)로 지목한 까닭은 복고주의 문학의 언어적 퇴행 현상을 조선어의 발전에 큰 장애요인으로 보고 이를 ‘조선어의 완미한 문학적 개화’를 통해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기교주의 논쟁을 거치며 임화는 문학어를 대상의 형상화에 정합적으로 일치하는 언어로 재정리하고 이를 ‘명확한 언어’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학어는 ‘언어의 명확성의 원리’에 따라 실현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원리가 일상어를 통해서만 실현 된다고 전제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일상어의 합리적 기능과 실행을 가리켜 ‘완전한 현실성의 표상’이라 표현하며, 이를 언어의 기본성질이자 언어의 소박한 상태로 꼽고, 이러한 언어가 바로 예술의 소재가 되는 언어라고 부연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일상어의 문학적 가치를 중시한 것과는 별개로 문학어와 일상어를 엄밀히 구별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문학어란 일상어가 예술적 구축에 요구되는 ‘선택과 정련의 과정’을 거쳐 미적으로 재탄생한 언어이며, 이는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문학어에 해당하는 것으로 문학어는 그 외형에서만 일상어와 유사할 뿐 실은 별개의 언어임을 분명히 한다. 요컨대 문학어는 예술적 선택과 정련의 과정을 통과한 ‘일상어의 현실성의 에센스’인 것이다. 임화는 이러한 문학어의 특징이 가장 현저하게 구현되는 영역으로 시를 꼽았고, 훌륭한 시적 언어는 시의 고유한 창조 가운데 일상어를 내용상 형태상 재구성하여 전혀 다른 언어로 만들고, 그 과정에서 언어적 미감과 사실적 내용은 잊히지 않는 아름다움이 되어 강한 정신적 충동을 남긴다고 설명한다. This study intensively analyzes the content of a literary language among lm-Hwa's linguistic theories. His linguistic theory was shaped by complex backgrounds. His linguistic theory was influenced by the linguistics of Marxism, closely related to the theory of shape, contained criticism of retroism and mannerism, and called for the completion of the Korean language as a literary language. lm-Hwa defines literary language as 'the shaping language' because he recognizes 'concrete shape' as a speciality of literature. 'The shaping language' is a language that conveys meaning specifically and expresses human feelings, emotions and consciousness directly. He thinks that everyday language performs these verbal functions. The reason why he thinks everyday language is a good source of literature comes from his negative assessment of the literary language of retroism. Meanwhile, lm-Hwa's perception of the language of literature gradually deepens as he goes through mannerism argument. He redefines literary language as 'clear language' and explains that everyday language becomes literary language by 'principle of clarity', which means that language is written entirely to suit the literary expression of the subject. He refers to this basic quality of everyday language as an "expression of complete realism." He regards this as the basic nature of language and explains that a language with these characteristics can become a language of literature. What should be noted is that despite his emphasis on the literary value of everyday language, lm-Hwa has made a strict distinction between literary language and everyday language. The language of literature is a language in which everyday language has been reborn through a special artistic process, namely 'a process of choice and chastity'. The former and the latter are distinct from each other, with only the appearance being similar. In short, literary language is the essence of everyday language that has been honed artistically. He says poetry is the most pronounced area of literary language. A good poetic language reconstructs the everyday language in the unique creative process of poetry and makes it a completely different language. Through the amazing changes of language, the beauty of the literary language and its realistic contents become leaving a strong mental impression.

      • KCI등재

        모국어의 심급들, 토대로서의 번역 - 유종호의 ‘토착어’와 백낙청의 ‘토속어’

        유승환 상허학회 2016 상허학보 Vol.47 No.-

        이 논문은 1960년대 후반 이후 이루어진 모국어의 재편을 위한 의식적인 실천 및 그와 관련하여 나타난 모국어를 호명하는 개념들의 발생 조건을 한국(남한) 사회가 접속하고 있는 문화권의 변화 및 그로 인한 번역 상황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검토하려고 한다. 1960년대는 모국어에 익숙한 소위 ‘한글 세대’에 의해 한국어에 기초한 새로운 감수성이 나타난 시기였다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문학사적 평가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모국어 문학어의 선험적인 존재를 자명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신화이다. 모국어라는 개념은 다른 외국어로의 번역을 염두에 둘 때에만 상상될 수 있는 유동적 개념이며, 또한 끊임없이 완성을 향한 도정에 있는 미완태로서만 상상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따라서 모국어 문학어 또한 끊임없이 상상되고, 창안되고, 재편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이 논문은 ‘토착어’, ‘토속어’와 같은 모국어 문학어의 존재 및 그 재편의 방향성을 동시에 지시함으로써 모국어 문학어의 심급을 지시하는 개념들의 발생과 분화가 해방 이후 변화된 번역 상황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대응 전략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유종호와 백낙청의 비평을 통해 확인하려 한다. ‘토착어론’을 중심으로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모국어에 대한 유종호 비평의 궤적은 모국어 개념이 재확립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토착어에 대한 유종호의 비평은 초기의 양가적 입장에서, 토착어가 한자어보다 효과적인 사유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돌아선다. 이러한 선회의 배후에는 번역의 원어가 일본어(한자어)에서 영어 등의 서구어로 교체되어 상상되는 상황, 즉 문화권의 이동에 따른 번역 상황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놓여 있다. 이 점에서 유종호의 토착어론은 번역 상황의 변화가 모국어의 재인식 및 재편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한편 ‘토속어’에 대한 백낙청의 사유는 변화된 번역 상황에 대한 대응 전략의 차이가 모국어 문학어의 재편을 위한 모국어의 심급들을 지시하는 용어의 분화에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어-한자어의 매개를 거치지 않고, 일종의 ‘보편어’로서의 서구어 원어에 직접 소급하려는 새로운 번역의 감각은 보편어와 민족어로서의 모국어 사이의 번역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창출했으며, 서구과학의 보편어와의 관계에서 모국어를 통한 번역 가능성 혹은 불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은 근대한국사회와 그 문학의 성격을 가늠하는 중요한 방식이었다. 백낙청은 이러한 작업을 가장 성실히 수행한 비평가였으며, 동시에 ‘토속어’는, 보편어로의 환원 (불)가능성을 지닌 채 각각의 원어에 대응하는 대상의 실재성을 보증하는 장치로서 이러한 작업에 있어 본질적인 중요성을 지닌 개념으로 자리매김된다. 이처럼 모국어의 심급들, 모국어 문학어의 존재와 가능성을 지시하는 개념들은 해방 이후 장기적으로 이루어진 번역 상황의 변화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여 발생하고 또한 동일한 상황에 대한 대응 전략의 차이에 의해 분화된다. 모국어에 대한 유종호와 백낙청의 비평은 실제로 1960년대 후반 이후 모국어와 모국어 문학어의 재편으로 이어진다. 이때 이러한 모국어 문학어의 재편은 방언, 속어, 은어, 고어 등 모국어의 특정 심급들에 대한 의식적 수집과 활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의 의식적인... This study aims to study conscious practices to reorganize mother tongue and occurence of notions to call mother tongue in the late 1960s. This study suggests that change of cultural area to which Korea was connecting and change of translation-situation was a major condition of this phenomenon. It is a familliar appraisal that new sensibilities based on Korean was formed in the late 1960s by ‘Hangul generation’ who were used to mother tongue. However, this appraisal is a kind of myth, because it supposes transcendental being of the mother tongue. A concept of ‘mother tongue’ could only be imagined in relation with translation to other languages. And it was always imagined as an incomplete and a fluid concept. Thus, literary language based on mother tongue was also formed in the process of imaging, creating, reorganizing language. This study pay attention to a few concepts such as Yu Jong-ho’s ‘aboriginal language’ and Paik Nak-chung’s ‘local language’ which implied the degrees of mother tongue in the late 1960s. These concepts suggested the being of ‘pure’ mother tongue and directions of reorganizing mother tongue at once. And the occurence and differentiation of these concepts were based on consciosness about altered translation-situation after the liberation and counterstrategy of this situation. Yu Jong-ho’s criticism on aboriginal language started in the late 1950s. The transition of his perspective about aboriginal language showed re-establishing the concept of mother tongue. He had ambivalent viewpoint on aboriginal language in the initial stages. However, he changed his mind hencefoward and suggested aboriginal language could be more effective language of the reason than Sino-Korean words. Awareness of translation-situation which changed because of change of cultural area to which Korea was connecting placed behind this transition. In other words, he could assert superiority of aboriginal language because he thought not Japanese but English as an orginal language in changed translation-situation. Yu Jong-ho’s criticism on aboriginal language showed that the altered translation-situation was an important condition of reorganizing of mother tongue. Paik Nak-chung’s criticism on local language showed counterstrategy against altered translation-situation was an important element of differentiation of the concepts which called degrees of mother tongue. New sense of translation which discarded mediation of Japanese and Sino-Korean words and reach western Europe language as an original language created new perspective on possibilities of translation. Examination of possibilities of translation between mother tongue and universal language of modern science was an important way to estimate characteristics of modern Korean society and its literature. Paik accomplished these works sincerely. ‘Local language’ was magnified as an essential concept in this process, because it was imagined as a concept which has (im)possibility of translation to universal language and guarantees substantiality of equivalents to each original language. Thus, concepts which called degrees of mother tongue and literary language based on it altered translation-situation and were diffentiated by counterstrategy to this situation. Yu and Paik’s critism on mother tongue led to actual reorganzing of literary language based on mother tongue in the late 1960s. Intentional collection and utilization of specific sections in mother tongue such as dialect, slang, argot, archaic words were important methods to reorganize mother tongue in late 1960s. However these practices did not intend to restore existence which these languages instruct, but intended to reconsturuct equivalents to universal concepts which modern west European science suggested in new translation-situation. Thus, ‘archiving of languages’ is a useful concept to explain reorganization of literary language in the late 1960s.

      • KCI등재

        사투리는 어떻게 문학어가 되는가? - 언어의 아카이빙과 한국어 문학어의 재편: 이문구 소설에 나타난 ‘방언’의 문제

        유승환 구보학회 2018 구보학보 Vol.0 No.18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aspects and ways in which dialect is realized in literary language in Lee Moon-Gu's Gwanchon Essay and Our Town. Using this analysis, this paper understands the use of dialect of Lee Moon - gu not as natural revelation of his mother tongue, but as creation of artificial literary language that realizes dialect at different levels. In addition, this paper understands this as a typical model of the linguistic practice of Korean literature in the 1970s. In Gwanchon Essay, dialects are realized literally at different levels through at least five different transcription methods under the linguistic duality based on the separation of the description and the dialogue. Linguistic hybridity caused by indirect speech and use of annotation and amplification are notable. On the other hand, the linguistic distance between description and dialogue is narrowed as dialects infiltrate the narrator's language indiscriminately. From this, it can be seen that the language of Gwanchon Essay is a constructive language that constitutes a new Korean literary language that embraces dialects under the meticulous control of the narrator, and that the language of Our Town is deconstructive language that deconstruct fictionality of modern written language exposing the linguistic confusion caused by linguistic hybridity. The way in which dialect is realized in these two works correspond to the intention and limitations of 'archiving of language' as a collective linguistic practice of Korean literature in the 1970s. 이 글은 이문구의 『관촌수필』과 『우리 동네』에서 방언을 문학어로 실현되는 양상 및 방법을 분석함으로써, 이문구의 사투리 활용을 작가의 모어의 자연스런 발현이 아니라 사투리를 서로 다른 수준에서 문학어로 실현하는 인공적인 문학어의 창출로 파악하는 동시에, 이를 1970년대에 이루어진 한국문학의 언어적 실천의 한 전형으로 파악하려 한다. 『관촌수필』에서 방언은 지문과 대화의 분리에 기초한 언어적 이원성 속에서, 최소한 다섯 가지의 서로 다른 표기 방법을 통해 서로 다른 수준에서 문학어로서 실현된다. 간접화법을 통한 언어적 혼성과 주석 및 부연의 활용 등은 이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이와 달리 『우리 동네』는 방언이 서술자의 언어에 무차별적으로 틈입하면서 지문과 대화의 언어적 거리가 상당히 좁혀진다. 이로부터 『관촌수필』의 언어는 서술자의 세심한 통제 아래에서 방언을 포섭하는 새로운 한국어 문학어를 구성하려는 구성적 성격을 가진 언어이며, 『우리 동네』의 언어는 이질적인 언어의 혼성으로 생기는 언어적 혼란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이를 통해 근대 문어 및 근대 문어가 산출한 허위적인 개념을 비판적으로 해체하는 해체적 성격을 가진 언어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관촌수필』과 『우리 동네』에서 방언이 실현되는 이러한 방식 및 그 차이는 1970년대 한국문학의 집단적인 언어적 실천으로서의 ‘언어의 아카이빙’의 의도와 한계에 그대로 대응된다.

      • KCI등재

        염상섭 문학어와 표준어 의식 연구 -한글맞춤법통일안(1933) 이전과 이후 ≪三代≫ 개작을 중심으로-

        이용규 ( Lee Yongkyu ) 한국방언학회 2021 방언학 Vol.- No.33

        염상섭은 서울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는 문인이다. 그의 문학어도 역시 서울 방언으로 파악되어 왔다. 그런데 서울 방언은 다른 방언들에 비해 표준어와 차이점이 부각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동일한 것, 혹은 유사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인지 염상섭의 문학어나 그의 표준어-방언 의식에 대한 평가도 양극단의 것이 모두 확인된다. 그러나 서울 방언과 표준어는 엄연히 다른 것으로, 본고에서는 염상섭의 문학어와 그의 작품에 반영된 표준어-방언 의식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구체적으로, 한글맞춤법통일안(1933)을 전후로 하여서 연재본과 단행본이 나오는 염상섭의 ≪三代≫를 대상으로 어떠한 개작이 이루어졌는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1931년 신문 연재본에서는 서울 방언의 특징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시기에 염상섭의 문학어를 서울 방언으로 파악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1947년 단행본을 살펴본 결과 개작의 양상이 회화와 지문에서 다르게 나타났다. 먼저 회화에서는 기존의 연재본에 나타났던 서울 방언이 그대로 반영되거나 서울 방언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개작되었다. 반면 지문에서는 서울 방언의 특징을 제거하고 표준어로 적으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본고에서는 동일한 지면에서 회화와 지문의 개작이 다르게 나타나는 점을 강조하여 염상섭이 표준어와 서울 방언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또한 염상섭의 문학어는 서울 방언을 반영하고 있고, 작가 스스로는 표준어 의식을 가지고 있던 작가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Yeom Sang-seop is known as a Seoul-born writer. His literary language has also been recognized as a Seoul dialect. However, the Seoul dialect has been naturally identified as the same or similar rather than the difference in standard language compared to other dialects. Perhaps that's why Yeom Sang-seop's evaluation of literature or his standard language and dialect consciousness can be confirmed as both extremes. However, Seoul dialect and standard language should be regarded as different, and so we found Yeom Sang-seop's literary language and the standard language-language consciousness reflected in his work. We looked at what kind of adaptation would have been made for Yeom Sang-seop's ≪Three Generations≫ with serial version and book editions. As a result, a series of 1931 newspapers showed many features of the Seoul dialect. In this regard, it was easy to understand Yeom Sang-seop's literary language in Seoul dialect at this time. However, after looking at the 1947 book, the changes were different from dialogues and stage directions. First of all, the dialogues reflected the Seoul dialect that appeared in the existing serial version or were adapted to emphasize the Seoul dialect. On the other hand, stage directions showed efforts to remove the characteristics of the Seoul dialect and write it in standard language. Emphasizing that dialogues and stage directions on the same page were different, Yeom Sang-seop recognized standard language and Seoul dialect differently. It was confirmed that Yeom Sang-seop's literary language reflected Seoul dialect and that he himself was a writer who pursued standard language id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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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어문 환경과 김유정 문학어의 이해 —어문규범 인식과 문학적 대응을 중심으로

        박보름 한국현대문학회 2023 한국현대문학연구 Vol.- No.71

        김유정 문학어에 대한 구체적 이해를 위해서는 김유정 문학을 배태하고, 김유정 문학이 유통되었던 1930년대 문단의 언어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30년대 민족어로서의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 <사정한 조선말 표준어 모음>(1936)이라는 조선어 어문 규범의 정립으로 수렴되었고, 문인들은 이러한 어문 규범 확산의 사도로 호명되었다. 1930년대 대다수의 작가들이 <통일안>(1933)을 자신의 소설쓰기에 적극적으로 준용하고자 했던 것과 달리 김유정은 이를 수의적으로 준용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유정 문학어의 이러한 탈규범적 특징은 천재적인 문재(文才) 또는 농촌 친화적 성향의 소산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김유정 문학어 형성의 배경에는 소설 집필 직전 2년 동안의 야학 활동이 놓여있다. 김유정의 야학 활동은 조선어학회의 이윤재가 집필하고 동아일보사에서 출간한 문자보급 교재를 통해 이루어진 국문 교육 활동이었다. 이러한 어문 교육의 경험이 어문 규범으로 통제되거나 재단될 수 없는 문학의 언어에 대한 감각을 형성시켰던 것이다. <통일안>(1933)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지문과 대화에 사투리가 빈번하게 사용된 김유정의 소설은 어문 규범의 준수를 중시하는 1930년대 문단에서는 환영받지 못했었는데 조선어학회와 함께 <통일안>(1933)과 <표준어>(1936) 확대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동아일보』, 『신동아』에 김유정의 소설이 단 한편도 실리지 못하고, 이 사실이 당시 김유정의 동료들에게도 문제시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이는 1930년대 어문 규범 운동의 도식성과 엘리트주의적 성격에 비판적 입장을 취한 홍기문이 편집국을 맡았던, 그리고 <통일안>(1933) 준용에 있어 가장 소극적이었던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김유정의 소설이 당선되고, 이후 『조선일보』와 『조광』에 소설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과 대비를 이룬다. 김유정의 등단 과정과 발표 지면의 분포는 김유정 문학어가 1930년대 매체 환경의 영향 속에서 수용되거나 배제되었던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렇듯 김유정의 문학어는 조선어 소설 쓰기의 하나의 준거로 여겨졌던 어문 규범에 대한 자각적인 의식과 선택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김유정 문학의 해석에서 중요하게 고려될 필요가 있다. For a concrete understanding of Kim’s literary language, it is necessary to pay attention to the linguistic reality of the 1930s literary circles, which gave birth to and circulated Kim Yoo-jung’s literature. In the 1930s, efforts to preserve the Korean language as a national language focalized with the establishment of Korean language norms in the form of the <Unified Korean Spelling System>(1933) and the <Standard Korean Language Regulation>(1936), and writers were hailed as apostles of the spread of these language norms. Unlike the majority of writers in the 1930s who actively sought to apply the <Unified Korean Spelling System>(1933) to their novels, Kim Yoo-jung seems to have sought to incorporate it on his own terms. These consistent non-normative features of Kim’s literary language are difficult to explain as a product of genius literary talent or rural-friendly tendencies. The formation of Kim’s literary language lies in his yahak activities during the two years immediately preceding the authorship of his novels. Kim’s yahak endeavors consisted of Korean language education conducted through the Korean language education textbook written by Lee Yoon-jae of the Korean Language Society and published by the Dong-A Ilbo. This experience of language education shaped his sense of the language of literature as something that could not be controlled or molded by linguistic and literary norms. Kim’s novels, which did not adhere to the <Unified Korean Spelling System> (1933) and frequently used dialect in narrative text and dialogue, were not welcomed by the contemporary trend that emphasized an adherence to language norms, as evidenced by the fact that Kim’s and his colleagues’ novels were not published in the Dong-A Ilbo and Shindonga, which were most active in expanding <Unified Korean Spelling System>(1933) and <Standard Korean Language Regulation>(1936) along with the Korean Language Society. This is in contrast to Kim’s novel being selected for the New Young Writers’ Prize at the Chosun Ilbo, which was the most passive newspaper in implementing the <Unified Korean Spelling System>(1933), and whose editorial board was headed by Hong Ki-moon, a critic of the formalism and elitism of the language norms movement in the 1930s. Kim’s novel was subsequently published in the Chosun Ilbo and Jogwang. The process of Kim’s debut and the distribution of his publications mirrors the ways in which his literary language was embraced or excluded by the media environment of the 1930s. As such, Kim’s literary language can be said to have been shaped by his conscious awareness and choice of the grammatical norms that were considered the norms for writing the Korean novel, and this fact needs to be taken into account in the interpretation of Kim’s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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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Изменение языка в диахроническом аспекте — на материале форм местоименных прилагательных в именительном и винительном падежах множестве

        김용화 한국러시아문학회 2008 러시아어문학 연구논집 Vol.28 No.-

        본고는 러시아어사에서 문어(книжный язык), 혹은 문학어(литературный язык)로 기능했던 ‘교회슬라브어(11-14세기)-혼합적 교회슬라브어(15-17세기)-단순 러시아어(뾰뜨르 시기)-새로운 유형의 근대 문학어(18세기 후반-20세기 초)’라는 선상에서, 대명사적 형용사(장어미 형용사) 복수 주-대격의 통시적 추이를 ‘ 공통슬라브어시기-고대러시아 전기, 고대러시아 후기-1917-1918년 언어개혁 전 시기’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명사적 형용사 복수 주-대격은 문자 시기 이전에 형성된 형태와 14세기 말-15세기 초에 고착된 통사적 기능을 큰 변화없이 17세기까지 유지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명사적 형용사는 문어와 비문어를 구분해주는 주요 언어요소에 속하지 않았으므로, 환산메커니즘이나 텍스트 준거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았고, 대신 원전의 형태가 자동적으로 복사됨으로, 전 시기의 언어적 관습이 그대로 계승되었다. 둘째, 시기의 언어변화는 주로 언어내적 요인으로, 시기는 근대 문학어 형성의 특징이었던, 규범화 및 성문화와 관련하여, 주로 언어외적 요인에 의해 유발되었다. 인지적 작용에 의한 문법화나 메타포화는 관찰되지 않았다. 이것은 어떤 언어요소의 발전사에서 변화를 유발하는 요인은 언어 발전단계에 따라, 그리고 시대적, 사회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그 강도에도 차이가 있음을 재차 확인해 주고 있다. 셋째, 문자시기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의 형태론화’는 복수 명사류의 전반적 경향이었던 ‘성의 탈형태론화’와 관련하여, 구어에서는 14세기말-15세기 초 이전에, 현대와 같은 -ые/-ие가 복수 주-대격의 유일한 어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고의 연구 대상어였던 문어에서는 1917-1918년 언어개혁 전까지 성 범주가 유지되었다. 이것은 대명사적 형용사 복수 주-대격의 발전사는 문어와 비문어의 상호영향 및 간섭보다는, 본고와 같이, 문어의 틀 안에서 이들의 동인을 해명하는 고찰방식이 타당함을 말해 준다. 넷째, 1917-1918년 언어개혁 전까지 러시아 문학어의 규범으로 기능했던, 1733년 과학아카데미 규칙(즉, 남성 어미 -ые/-ие, 여,중성 -ая/-яя)은 당시의 구어적 쓰임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언어정책 기관인 과학아카데미에 존재했던, 두 노선의 인위적이고 의식적인 타협이었다. 이 규칙은 18세기 후반부터 학교문법의 근간이 되며, 성문화를 통해 문학어의 규범으로 고착되었다. 구어와는 무관하게 철저히 인위적이고 의식적으로 형성된 규칙이 두 세기 동안 러시아 문학어의 규범으로 유지되며, 언중의 실제적 언어생활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현대 제언어의 표준어 규범과 그것의 형성 및 변화과정을 연구하는데도 고려할 중요한 사항이다. 이처럼 개별 언어요소(예컨대, 임퍼펙트/아오리스트, 쌍수형, 독립여격, 대명사적 형용사 복수 주-대격 등)마다 변화요인과 과정, 그리고 그 결과에 차이가 있으므로, 러시아어 발전사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찰되는 언어요소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고찰방식을 적용하여야 한다.

      • 러시아 문학어 발달에 관한 역사적 관점에서의 고찰

        김상현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8 人文科學硏究 Vol.32 No.-

        В настоящее исследовании рассматриваются основные этапы формирования русского литературного языка в XVIII -начале XIX вв. Принципиально важные тенденции в языковой практике, языковой политике, в движении языковой системы на различных ее уровнях отмечены в трудах В.В. Виноградова, Н.А. Мещерского, В.М. Живова и многих других авторов. В первой трети XVIII в. вопрос об отношении к церковнославянскому языку входит в комплекс религиозных, политических, историко-культурных и литературно-лингвистических воззрений, разделяющих две основные группировки этого времени. В 40-50-х годах XVIII века начинается усиленная реставрация литературных прав церковнославянского языка, возвращениек церковным истокам &laquo;славянщины&raquo;. Последняя треть XVIII века - век Екатерины II, называемый&laquo;золотым&raquo; веком &#8211; период наивысшего развития и расцвета экономики и культуры русского дворянства, его политического господства. Во второй половине XVIII века оказывается существенным в процессе европеизации русского литературного языка. Русский национальный язык формируется в течение нескольких столетий: к середине XVIII века сложилась его морфологическая система, к началу XIX века &#8211; синтаксическая система, В первой половине XIX века устанавливается современное соотношение различных лексических пластов в литературном языке и языке художественной литературы. В процессе сближения литературного языка с живой народной речью, в образовании норм литературной речи, в формировании специфических языковых особенностей художественной литературы особая роль принадлежит А.С. Пушкину, основоположнику современного русского литературного язык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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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초 쉬쉬코프와 카람진의 언어 논쟁에서 나타난 순수주의 경향

        남혜현(Nam Hye Hyun) 한국노어노문학회 2018 노어노문학 Vol.30 No.3

        러시아의 중요한 역사적 변곡점에서는 여러 차례 ‘오래된 언어’와 ‘새로운 언어’간의 갈등과 언어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는데, 이는 언어가 소통의 도구외에도 정체성의 상징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어에 대한 끊임없는 담론 가운데에서도 19세기 초 카람진(Н.М. Карамзин)과 쉬쉬코프(А.С. Шишков)의 언어 논쟁은 이후 러시아 문학어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쉬쉬코프는 전통적인 문어인 교회슬라브어의 역할, 문학어의 불변성, 그리고 언어와 민족정체성의 관계를 강조하며, 당시 상류사회에서 유행하던 프랑스어의 사용을 반대했다. 반면, 카람진은 언어 진화의 필연성을 강조하며, 러시아 문학어를 교회슬라브어에서 벗어나 상류사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쓸 것을 요구했다. 본 연구는 이들의 언어 논쟁을 언어순수주의의 관점에서 고찰한다. 이 시기의 언어 논쟁을 다루는 대부분의 연구는 교회슬라브어를 토대로 러시아어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차용어를 반대했던 쉬쉬코프 진영만을 순수주의와 관련지었다. 그러나 본 연구는 순수주의가 당시 러시아어에 대한 메타담론의 전반적인 특성이었으며, 카람진과 쉬쉬코프의 주장 모두에는 언어순수주의 경향이 나타난다고 본다. 그 둘은 모두 모국어인 러시아어의 아름다움을 찬양했지만, 이 언어가 규범을 갖춘 문학어가 되기 위해서는 정제와 가공을 거쳐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그 둘은 이질적인 요소로부터 러시아어를 정화할 것을 주장하며, 나아가 언어 사용문제를 조국애와 연결지으며 언어와 정체성, 윤리와의 관계를 강조했다. During the transition periods in Russia there were conflicts between "old" and the "new" languages, since language serves not only as a means of communication, but also as a symbol of identity. In particular, the debate between Karamzin and Shishkov at the beginning of the 19th century had a significant impact on the development of Russian literary language. It is well known that Shishkov emphasized the role of the Church Slavic language, its invariability and the connection between language and national identity, therefore he was categorically opposed to the use of French, which was the language of communication among the Russian nobility. On the other hand, Karamzin was convinced of the need for evolution of language, so he believed that the Russian language should come out of the old traditions, and he also positively assessed the use of gallicism. So, most of the works devoted to this debate linked only Shishkov"s idea with purism. However, this work is based on that purism was the main feature of the metadiscourse on the Russian language at that time, and examines the purism in Shishkov and Karamzin`s views about language. Both of them praised the beauty of their native language, but believed that in order for the Russian language to become a standardized literary language, it must be purified from alien elements. In addition, they associated the language usage with ethics and love for the Fath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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