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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인식 정당성의 의무론적 이해에 대한 비판과 대안

        이해완(Lee, Hae-Wan)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3 철학사상 Vol.50 No.-

        이 글은 ‘인식 정당성’을 의무론적으로 이해하려는 이병덕과 임일환의 최근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잘 알려진 대로, 인식적 의무의 준수가 진리연관적이지 않다는 점과 믿음의 생성과 소멸을 의지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은 의무론적 이해에 대한 두 개의 주요한 반론이다. 이 글에서는 의무와 진리연관성을 직접 연결시키려는 듯 보이는 이병덕의 시도와 약한 인식적 의무를 주장하는 임일환의 입장이 모두 여전히 이 반론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이 논증될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인식 정당성에 관한 소위 ‘포기할 수 없는 직관’으로 알려진 것의 근원들을 재검토해 본다면, 지식의 규범성이 반드시 의무 개념과 연계되어 이해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출발하여 필자는 인식정당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한 방향을 제안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믿음은 그 생성의 국면과 유지의 국면을 구별할 수 있는데, 진리연관성의 확보와 우연성의 배제를 위해 이 두 국면이 모두 평가될 필요가 있고, 이 두 국면에서 모두 좋은 믿음이 되는 것이 지식을 위해 필요하다. 믿음의 생성 국면은 기존의 정당화에 대한 신빙성 이론의 제안과 유사하게 평가될 수 있으며 그 결과 진리연관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유지 국면의 적절성을 외재론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통해, 의무론적 이해의 옹호자들이 지식의 규범성과 관련하여 가지고 있는 통찰은 존중하되 그것이 ‘인식적 의무’와 같은 개념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설명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 작업이 외재론적 틀 내에서 내재론의 착안점을 수용할 수 있는 이론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시도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This paper critically reviews two recently proposed, duty-based understandings on epistemic justification, one by Beong-Deok Lee and the other by Il-Hwan Rim. Having difficulty in securing truthconduciveness has been the major weakness of such deontological conceptions of justification. The fact that beliefs are formed involuntarily also casts a serious doubt on the concepts of epistemic duty. I argue that, unfortunately, those two new suggestions by Lee and by Rim still cannot live up to their billings by being susceptible to these already known attacks. Lee’s attempt to directly connect duty to truth-conduciveness fails, and Rim’s dependence on the concept of weak epistemic duty cannot circumvent the criticism of involuntarism, as he has intended. On the basis of this review, I propose a new way to understand epistemic justification. It is my contention that the concept of epistemic justification may be so technical that it is not guided by the intuition of justification (as there is none) but rather constructed artificially in accordance with what we think is needed for a true belief to become knowledge. What we need is truth conduciveness and, if a true belief is acquired by chance and/or maintained by chance, ways to get rid of relevant accidentality are involved. Thus I think that a belief should be evaluated as being good in the phase of both its acquisition and its maintenance in order to see if it qualifies as knowledge. A good belief in its acquisition phase may well be a belief produced by a reliable beliefforming process so that we can secure the truth-conduciveness. I suggest that a good belief in the maintenance phase can also be evaluated in an externalist’s perspective so that we can eliminate the involvement of a kind of accidentality, which in turn is a way to capture what deontologists want to hold as being epistemically important. The difference is that my proposal does not rely on the problematic conceptof epistemic duty.

      • SCOPUSKCI등재
      • SCOPUSKCI등재

        CrO<sub>x</sub>/γ-alumina 촉매상에서 Vinyl Chloride의 산화반응 속도해석

        이해완,김영채,문세기,Lee, Hae-Wan,Kim, Young Chai,Moon, Sei-Ki 한국공업화학회 1999 공업화학 Vol.10 No.1

        고정층 촉매 반응기를 이용하여 ${\gamma}$-알루미나에 담지한 크롬산화물 촉매상에서 vinyl chloride의 완전산화잔응을 $240{\sim}300^{\circ}C$의 온도와 600~3,500 ppm의 농도범위에서 조사하였다. 반응은 vinyl chloride의 농도에 대하여 비선형적으로 변하였으며, 산소의 농도에 대하여는 0차 거동을 보였다. 또한 반응 생성물인 $H_2O$와 HCl를 반응물에 첨가하였을 때 vinyl chloride의 전환율에 영향이 거의 없었다. Vinyl chloride의 산화반응에 대한 몇 가지 반응모델을 가정하고 실험결과와 상관시켜 가장 잘 일치하는 모델을 도출하였다. 속도식의 해석결과 vinyl chloride의 산화반응은 산소로 피복된 촉매표면에 vinyl chloride가 흡착한 후 산화분해되며, vinyl chloride가 촉매표면에 흡착하여 반응을 방해한다는 가정하에서 도출된 반응속도 모델이 실험결과를 가장 잘 표현하였다. 실험치와 예측치간의 표준편차 백분율은 약 5.2% 정도였으며 활성화에너지는 18.9 kcal/mol으로 계산되었다. The complete catalytic oxidation of vinyl chloride was investigated over chromium oxide supported ${\gamma}$-alumina using a fixed bed micro-reactor at temperature between 240 and $300^{\circ}C$ and concentration between 600 and 3500 ppm. The oxidation of vinyl chloride was nonlinear in the concentration of vinyl chloride and zeroth order in the concentration of oxygen. The addition of HCl and $H_2O$ as products to the feed stream didn't influence the conversion of vinyl chloride. Several kinetic rate model were tested to describe the data over the range of condition investigated, and developed a model which provide the best correlation of experimental data. The resulting model of kinetic rate was derived by assuming that the reacting occurred via adsorption and subsequent decomposition of the vinyl chloride onto the oxygen covered chromium oxide surface, with the reaction being inhibited by the adsorption of vinyl chloride. The percent standard deviation between the predicted and experimental was about 5.2%, and the activation energy was 18.9 kcal/mol.

      • KCI등재

        예술을 통한 명제적 지식의 획득 가능성에 대한 재고

        이해완 ( Hae Wan Lee ) 한국미학회 2016 美學 Vol.82 No.2

        문학 작품의 인지적 가치에 관한 인지주의와 반인지주의의 논쟁과 관련하여 이 글은 다음의 세 논점을 수립하고자 한다. 1) 이 문제에 대한 논의들이 명제적 지식의 후보로 전제하고 있는 것은 작품의 텍스트에 명시된 단언들, 혹은 작품의 해석에 의해 드러난 작품의 의미에 관한 명제들이다. 기존 논의는 이러한 명제들이 정당화된 참인 믿음일수 있는지를 따진다. 이러한 논의 방식 하에서라면 문학 작품을 위시한 예술이 명제적 지식을 준다는 결론을 유도하기는 어렵고 따라서 그럴수 있다는 논변들은 성공적이 못하다. 이것이 필자의 첫째 논점으로, 필자는 인지주의를 옹호하는 캐럴의 논변들을 비판하는 것으로 이를 보이고자 한다. 2) 명제적 지식을 포기한 인지주의자는 예술이 비명제적 지식 혹은 지식은 아니지만 보다 완화된 성격의 인지적 가치를 준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이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절충이라고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비록 심정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입장이라 하더라도, 이에 대한 불만족스러운 시각이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3) 마지막으로 필자는 지식의 후보가 되는 명제를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규정해 봄으로써 작품이 명제적 지식을 준다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해 본다. 지식이 될 수 있는 명제는 작품이 직접적으로 혹은 해석을 통해 진술하는 명제(예를 들어, “인간은 이기적이다(p)”)가 아니라 작품에 관한 타당한 해석적 진술로 이루어진 명제(“이 작품은 ``p``라고 진술한다”)라는 것이 필자의 제안이다. 필자는 이것이 작품으로부터 얻을 수있는 세계에 대한 명제적 지식이라는 점, 인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점, 인지주의의 난점인 명제적 지식과 예술적 가치와의 연관성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만일 우리가 작품으로부터 얻는 명제적 지식을 고려해야만 한다면, 이러한 명제를 믿는 것이 그 하나의 가능성이됨을 설명하고자 한다. I will try to establish the following three points concerning the issue of whether art is a proper source of knowledge. First, so long as discussion of this matter continues within the limitations of the traditional way, the conclusion that artworks (including literature) provide propositional knowledge is difficult to assert. By ``limitation of traditional way``, what I mean is the following: a) The explicitly stated content of a literary work and/or the meaning revealed through interpretation of that work are propositions asserted by the work, b) it is these propositions that may potentially constitute the propositional knowledge the work provides, and c) thus we must determine whether belief in these propositions amounts to having justified true beliefs. I argue against cognitivist``s argument, including Noel Carroll``s. If propositional knowledge should indeed be given up, some cognitivists instead suggest various kinds of non-propositional knowledge such as know-how or a certain kind of less rigorous cognitive value other than knowledge. This move is a reasonable compromise yet has some unsatisfactory aspects. My second point is to sketch these concerns. Finally, I will pursue the possibility of obtaining propositional knowledge from works of art by changing an element constituting the traditional way. My proposal is this: to get propositional knowledge from an artwork, what we should believe is not the proposition that the artwork is purported to assert, but rather a proposition constituted in such a way that the artwork and a true interpretative claim about it respectively occupy the role of subject and predicate in a sentence. For example, suppose there is an interpretive consensus concerning work W, that what W means (asserts, says) is that the loveless marriage is tragedy. Then the proposition that we are considering would not be that ``the loveless marriage is tragedy,`` but that ``W says that the loveless marriage is tragedy.`` This is a clear case of propositional knowledge because we can now explain why and how believing this proposition amounts to a justified true belief. It also explains why getting this type of knowledge is closely related with artistic value, while avoiding the difficulties that cognitivism currently faces.

      • KCI우수등재

        저작권집중관리에 있어서의 신탁 중심 체제의 문제점과 입법적 대안

        이해완 ( Hae Wan Lee ) 법조협회 2010 法曹 Vol.59 No.4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권위탁관리업이라는 이름으로 저작권집중관리 제도를 규정하면서 기본적으로 집중관리업자에 대한 관리위탁행위의 법적 성질에 따라 저작권신탁관리업과 저작권대리중개업으로 구분하여 규제를 달리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 하에 현재 12개의 저작권신탁관리단체와 약 400개 이상의 저작권대리중개업체가 활동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집중관리의 ``집중성``을 높여 거래비용 절감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허가제 하의 저작권신탁관리단체가 보다 대표성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정책적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들 단체가 그 이름처럼 ``신탁``이라는 법률행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권리자에 대한 관계에서조차 원칙적으로 ``배타성의 원칙``을 취하도록 하는 셈이 되어 현실적으로 권리자들의 위탁률을 떨어트리는 결과가 되고 있다. 이처럼 신탁 중심의 체제가 집중관리의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신탁과 대리 또는 간접대리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서의 ``위탁관리``를 기반으로 한 집중관리사업을 육성의 대상으로 하면서도 규제의 정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것을 피하기 위한 입법기술적 대안이 필요하다. 그러한 관점에 기하여 본고에서는 저작권집중관리의 개념에는 신탁만이 아니라 대리, 중개의 형식에 의한 관리위탁의 경우를 포함하되, 신탁이 아닌 대리, 중개의 법률행위에 기하여 종전과 같은 대리중개업을 하고자 하는 사업자는 여전히 신고제 하에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모델을 제안한다.

      • KCI등재

        농담, 유머, 웃음: "유머의 윤리" 를 중심으로

        이해완 ( Hae Wan Lee ) 한국미학회 2014 美學 Vol.77 No.-

        농담과 유머와 웃음에 관한 철학적, 미학적 논의는 유머의 본질, 미적 속성으로서의 유머, 그리고 소위 ``유머의 윤리``라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 글은 농담과 유머와 웃음에 관한 개념적 구분과 유머의 본질에 관한 이론으로서의 ``부조화`` 이론에 대한 고려를 다룬 후, 주로 유머의 윤리에 관해 논의한다. 유머의 윤리라는 문제는 (1) 농담의 도덕성에 대한 평가(어떤 것이 비도덕적 농담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와 그러한 평가와 농담의 반응 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 그리고 (2) 농담에 대한 반응의 도덕적 평가에 관한 문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윤리학과 미학이 교차하는 영역의 질문들이다. (1)과 관련하여 윤리주의를 지지하는 거트는 농담의 비도덕성은 언제나 농담의 미적인 결함이 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그의 논변이 성공적이지 않다고 논증한다. 첫째는 농담의 비도덕성의 결정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는 거트가 농담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두 종류의 규범성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결론이 곧 비도덕주의(농담의 비도덕성 때문에 농담이 우습다)를 옹호하는 것이 아님도 논의한다. (2)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미적 반응으로서의 유머는, 비록 그것이 비도덕적 농담에서 지각되더라도,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아님을 논의한다. 따라서 드 수사 류의 태도 승인 논변(비도덕적 농담에 대해 웃음으로 반응하는 것은 그 비도덕적 태도를 승인하는 것이다)은 타당하지 않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농담의 타입이 아니라 토큰이 문제되거나, 유머의 지각이 아닌 행위로서의 웃음이 문제가 될 때에는 농담이 언제나 도덕적 고려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는 점도 논의한다. Three major philosophical as well as aesthetic issues on joke, humor and laughter are (1) what humor is, (2) whether humor is considered as ‘the aesthetic’ and (3) questions related to the so-called ethic of humor. After discussing some conceptual distinctions related with joke, humor and laughter, followed by some discussions on the ‘incongruity theory’ of humor, this paper mainly deals with the ethic of humor. I found what makes up this issue are the following two questions: (1) how to evaluate the morality of a joke, and what is the relation between the morality of a joke and response to it, and (2) how to evaluate the response to the allegedly immoral joke. Concerning question (1), Gaut, who supports Ethicism, claims that immoral jokes are always aesthetically flawed. I critically reviewed Gaut`s arguments and concluded that they are not successful. The main reasons are first, that determining the morality of a joke is not always possible, and second, that Gaut fails to distinguish two kinds of normativity involved in judging the adequacy of a joke. However, this conclusion does not supports the truth of Immoralism. Concerning question (2), I claim that, in principle, as long as humor is considered as an aesthetic response, humor response or humor perception cannot be evaluated morally even though this response is coming from the immoral joke. Thus, I think de Sousa`s ‘attitude endorsement’ argument is not applicable here. However, following Smuts, I also think that, if we consider joke-token instead of joke-type, and if we consider the laughter (a behavior) instead of humor (a psychological response or perception), jokes are not free from moral eval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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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법상 ‘음반’ 및 ‘판매용 음반’의 개념에 관한 고찰

        이해완(Lee, Hae Wan) 성균관대학교 법학연구소 2014 성균관법학 Vol.26 No.4

        저작권법상 ‘음반’ 및 ‘판매용 음반’의 개념은 저작권실무와 관련하여 매우 큰 중요성을 띠고 있다. ‘음반’은 무엇보다 저작인접권의 하나인 음반제작자의 권리의 객체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판매용 음반’의 개념도 저작재산권자의 공연권 제한 사유를 규정한 제29조 제2항의 적용 여부, 제76조의 2 및 제83조의 2에 의한 저작인접권자의 보상청구권 행사 여부 등과 직결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법원은 현재까지 이 두 가지 개념에 대하여 일관성 있는 해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스타벅스’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제29조 제2항의 적용과 관련하여 음반을 유형물에 고정된 음원의 개념이 아니라 음이 고정된 CD 등 유형물을 뜻하는 것으로 본 반면, 비교적 최근에 선고된 ‘현대백화점’ 사건에 대한 서울고등법원의 2심 판결은 국내의 통설과 마찬가지로 제76조의2 및 제83조의2의 적용과 관련하여 음반을 ‘유형물에 고정된 음원’의 개념으로 보는 입장을 취하였다. 나아가 ’판매용 음반’의 개념에 대하여도 스타벅스 사건의 대법원 판결은 ‘시판용 음반’으로 좁게 해석하면서 음반의 개념을 유형물로 이해하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스타벅스 커피숍 매장에서 사용된 CD 속에 들어있는 음원이 상업용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그 CD가 매장 전용으로 제작된 것이고 시판용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판매용 음반’을 이용한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반면에, 현대백화점 사건의 항소심법원은 음원공급 회사로부터 디지털 음원을 전송받아 백화점 매장에 틀어서 공연한 백화점의 행위가 ‘판매용 음반’을 이용한 것으로서 저작권법 제76조의 2 및 제83조의 2에 의한 보상청구권의 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안에서 동 규정들과의 관계에서는 ‘판매용 음반’의 개념을‘시판용 음반’으로 한정하여 해석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음반의 성격을 가지는‘디지털 음원’이 판매목적으로 제공된 것인 한, 그것을 이용한 것이 ‘판매용 음반’의 이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처럼 ‘판매용 음반’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은 우리나라의 저작권실무에 큰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하에 본 연구는 위 두 가지의 중요한 개념을 어떤 의미로 이해할 것인지를 명료하게 해석함으로써 실무상의 혼란을 해소하고, 저작권법에 대한 통일성 있는 정합적 해석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내외의 학설, 국제조약의 규정과 그 해석, 국내의 개정입법의 경위, 외국의 입법례 등을 두루 종합하여, 본 연구는 저작권법상 음반의 개념은 ‘음이 고정된 유형물’이 아니라 ‘유형물에 고정된 음원’을 뜻하는 것으로 통일성 있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나아가 ‘판매용 음반’의 개념도 그러한 음반의 개념을 전제로 하여 최초로 음원(음반)이 유형물에 고정되어 공표될 때 상업적 목적에 기한 것을 뜻하는 것으로 통일성 있게 해석되어야 하며, 따라서 저작권법 제29조 제2항의 적용에 있어서나 제76조의 2 및 제83조의 2의 적용에 있어서나 동일하게, 판매 목적으로 공표된 ‘디지털 음원’을 이용한 것도 ‘판매용 음반’을 이용한 것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을 제시하였다. 그것이 디지털 환경하의 음원 이용상황에 비추어 현실적으로 타당할 뿐만 아니라 국제조약과의 정합성 등의 면에서도 필연적인 해석이라 생각한다. The concepts of 'phonogram' and 'commercial phonogram' provided in Korea Copyright Act('KCA') are very important to copyright practice. Above all, 'phonogram' is the subject matter of the right of phonogram producer. 'Commercial phonogram' is also a crucial concept that determines whether a user of a phonogram has to make compensation to performers or phonogram producers according to Article 76-2 and Article 83-2 of KCA as well as whether a user of phonogram for public performance is exempted from the liability of copyright infringement according to Article 29 (2) of KCA. But Korea's courts did not show a consistent interpretation about these concepts. While Korea Supreme Court made a decision seeming to be based on a view that sees 'phonogram' as a tangible matter such as CD in "Starbucks" case, a recent decision of Seoul High Court decided that 'phonogram' means sound recording(as intangible matter) fixed on a tangible matter in "Hyundai department store" case. Furthermore, in "Starbucks" case, Korea Supreme Court restrictively saw that a "commercial phonogram" in KCA means a tangible record(CD) made for mass market sale, while in "Hyundai department store" case, Seoul High Court saw that it includes commercial digital sound recording stored on computer DB system by making broader interpretation about the same concept. This situation causes a big confusion to copyright practice in Korea. This study aims to solve this problem by giving these concepts clear meanings relevant to digital environment of today. To sum up the explanations of main treatises in Korea and Japan, the related provisions of Rome Convention and WIPO Performances and Phonograms Treaty(WPPT), the history of revision of KCA and the main cases of other countries' legislation, this study concludes that we should consistently interpret the concept of 'phonogram' in KCA as meaning of sound recording (as intangible matter) fixed on a tangible matter such as CD, computer hard disc, etc. It is also this study's conclusion that the concept of 'commercial phonogram' has to be interpreted as meaning of sound recording produced for commercial purpose, including digital sound recording.

      • KCI등재

        작품의 의미와 의도주의-반의도주의 논쟁

        이해완 ( Hae Wan Lee ) 한국미학회 2014 美學 Vol.79 No.-

        필자는 이 논문에서 작가의 실제 의도가 작품의 의미를 결정한다는 의도주의에 비판적인 논의를 제공한다. 의미의 자의적 결정은 의도주의의 치명적 약점이다. 따라서 의도주의는 ‘온건한 실제의도주의’와 같은 절충적 이론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 추세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들 이론이 해석에서 실제 의도에 의존해야 할 결정적인 동기를 제시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이들이 내세우는 절충이 결국은 의도주의의 원칙에 대한 훼손을 함축하는 것이므로 이름에 걸맞지 않는 부정합적인 입장이라는 점도 보인다. 이어서 필자는 최근 대두된 현대 조형예술을 이용한 의도주의의 옹호 전략도 소개한 후 비판한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를 통해 드러나는 것 중 하나가 작품에 대한 일차적 혹은 범주적 의도와 의미론적 의도의 구분인데, 전자는 작품의 존재론적 성격과 관련된 것으로 반의도주의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대 예술 작품 중에 ‘작가의 의도를 고려해 해석되는 작품’이라는 범주적 의도를 가진 것이 있다면 예외적으로 이를 존중하는 것이 가능하다. 필자는 이것이 온건한 실제 의도주의가 목표로 하였으나 자신들의 이론 속에 정합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절충을 보다 적절하게 달성하는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고 본다. Dealing with the debate concerning the proper role of an author’s intention in the interpretation of her work, this paper goes against intentionalism, the position which maintains that intention is essential for determining the meaning of the work. Since it is well agreed upon that ‘Humpty-Dumpty-ism,’ which is a consequence of radical intentionalism, should be avoided, contemporary intentionalism has evolved into a ‘moderate actual intentionalism,’ a kind of compromised theory. However, even in this move, any particularly persuasive explanation of the motivation for why we should consider actual intention at all has not been given yet. Furthermore, I believe the compromise undermines the fundamental of intentionalism. What the moderate theory amounts to is not really a version of intentionalism. I also discuss a new argument for the actual intentionalism by Maes using the case in contemporary plastic art. I do not find anything favorable for intentionalism here either. On my way to argue this point, the distinction between the categorical intention and the semantic intention comes up. The categorical intention is the one that relates to the ontological status of the work, and for that reason, it is possible that even anti-intentionalists can accept the role of it without being incoherent. And in contemporary art, a certain work possibly has a categorical intention such that the intention of the author has to be considered. Such intention could be considered as constituting an ontological part of the work. So, if a work belongs to this particular category which requires the consideration of author’s intention as an essential point to start the semantic interpretation of the work, then even anti-intentionalists can be justified to consider the intention for determining a work’s meaning. This would be my suggestion for the proper compromise between the basic anti-intentionalistic principle and the so called intentionalistic intuition that is seemingly hard to ignore in some cases.

      • KCI등재

        인터넷송신의 법적 지위에 관한 저작권법 개정방향 연구

        이해완(Lee, Hae Wan) 성균관대학교 법학연구원 2021 성균관법학 Vol.33 No.3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 현상에 대한 대응으로 2006년 전부개정을 통해 한편으로 공중송신 이라는 일종의 우산 개념 을 도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우산 개념 아래에 있는 하위 개념들을 기존규정보다 세분화하여, 방송과 전송의 중간적 영역에 있는 디지털음성송신 개념을 새로 도입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오늘날 실시간 인터넷송신의 비중이 높아져, 이른바 디지털영상송신 의 비중도 상당히 커진 상황이 되다보니, 2006년 개정법에서 ‘디지털영상송신’은 빼고 ‘디지털음성송신’만 전송과 방송 사이의 중간영역으로 규정한 것의 부적절성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행 저작권법 규정을 어떻게 개정하는 것이 좋을 것인지에 대하여는 크게 보아 두 가지의 큰 방향성이 있다. 하나의 방향은 2006년 개정법에서 방송과 전송 사이의 중간영역으로 인정한 디지털음성송신 개념을 삭제하고 이 개념 및 그와 유사한 것을 모두 방송 개념에 편입시켜서 방송/전송의 2분할 체제 로 가는 것이고, 또 하나의 방향은 여전히 중간영역의 개념을 인정하되, 음만의 송신인지, 영상도 포함한 송신인지 묻지 않고 모두 중간영역의 개념인 디지털동시송신 의 개념에 포함하여 전송 및 방송과 구별하여 취급하는 3분할 체제 를 취하는 것이다. 이 논문이 가장 중점을 두고 살펴본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방향 중 어느 방향이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2분할 체제 가 아니라 3분할 체제 가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것이 국제조약과의 정합성, 국제적 동향 및 조류와 잘 부합되고, 저작권법의 목적에 따라 권리자를 충실하게 보호하면서 동시에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하는 면에서도 타당하다. 따라서 현행법에 대한 올바른 개정방향은 기본적으로 위와 같은 의미의 디지털동시송신 개념을 도입하고, 그것을 기초로 저작인접권 보호 등 관련 규정을 국제조약과 정합성을 가지는 방향으로 수정, 보완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다만, IPTV 방송은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디지털동시송신 과 같지만 사회적 · 경제적 실질의 면에서는 방송 과 동일하게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에서 예외적으로 방송 으로 취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저작권법 전부개정안은 기본적으로 그러한 방향을 취하고 있으므로 그 타당성이 인정된다. In response to the convergence phenomenon of broadcasting and telecommunication, Korea s Copyright Act introduced a kind of umbrella concept called public communication through its full revision in 2006. On the other hand, it took a position to newly introduce the concept of digital audio transmission , which is in the middle of broadcasting and making available under the umbrella concept, public communication . Today, as the proportion of real-time Internet transmission of audio-visual works has increased considerably, the inadequacy of the provisions which deal only with digital audio transmission without dealing with digital film transmission as an intermediate concept is becoming more and more evident. There are two major directions in regards to how to revise these provisions of current Korean Copyright Act. One direction is to delete the concept of digital audio transmission , which has been recognized as an intermediate area between broadcasting and making available since the 2006 revision, and incorporate them into the broadcasting concept to move to a two division system of broadcasting and making available . Another direction is to take a new three division system by introducing the concept of digital simultaneous transmission which includes both digital audio transmission and digital video transmission as a separate intermediate concept between broadcasting and making available . What this writing has focused on most is the question of which of these two directions is appropriate. In conclusion, a three division system rather than a two division system is the preferred direction. Three division system has consistency with international treaties and international trends, and it is reasonable in terms of ensuring fair use of works while faithfully protecting rights holders according to the purpose of copyright act. Therefore, the correct direction to amend the current law is to introduce the concept of digital simultaneous transmission with the same meaning as above, and based on it, modify and supplement related provisions, such as protection of neighboring rights, in a direction consistent with international treaties. However, IPTV broadcasting is the same as digital simultaneous transmission in terms of technology, but more similar to broadcasting in terms of social and economic substance. Therefore it is desirable to treat it as broadcasting as an exception. The full revision proposal of the Copyright Act currently under discussion at the National Assembly basically takes such a direction, so its validity is recogn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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