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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최성호(Choi, Sungho)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8 철학사상 Vol.70 No.-

        근대 이후 과학의 눈부신 성공은 그 성공의 원천에 대한 철학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과학의 성공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방법론적 원칙을 확립하고, 그러한 방법론적 원칙으로부터 과학자들에게 성공의 지침을 제공하는 것은 그야말로 과학철학자들의 숙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 방법론에 대한 이러한 과학철학자들의 지대한 관심은 지난 세기 이래 그에 대한 기나긴 논쟁을 촉발했는데, 필자는 그 논쟁에서 과학의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이 간과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과학철학자들의 탐구 대상은 인격적 존재인 인간이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실천하는 과학이라는 사실이다. 철학자들이 탐구해야 할 과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에서 아무런 감정도 염원도 애착도 없는 존재들에 의해 실천되는 과학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동안 논리경험주의나 포퍼의 반증주의에 영향을 받은 다수의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과학적 활동에서 추방되어야 할, 그래서 과학에 대한 방법론적 탐구에서 무시할 수 있는 요소 정도로 간주해왔다. 그 결과 그들의 과학철학은 인간의 과학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이 과학철학자들의 실수였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판단 아래 본 논문은 먼저 해리 프랑크푸르트의 철학적 인간학을 통해 과학자들의 인간적 면모를 규정하고, 다음으로 토마스 쿤의 과학철학을 과학 속에 내재해 있는 과학자들의 인간적 면모를 포착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것이다. 그 결과 쿤의 정상과학이 지닌 독단적 · 교조적 특성은 과학자의 인간적 체취가 담길 수 있는 방법론적 여지를 마련했다는 의의를 지닌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The success of science have brought to philosophers` attention the question of what makes the success possible. Philosophers of science aspire to establish methodological principles that explain how scientific success has come about and that also provide a blueprint for scientists to ensure future success. This has sparked an ongoing philosophical controversy over the methodology of science that began in the last century. But I believe one important aspect of science has been overlooked in the course of this controversy, which is that the sciences whose methodological principles philosophers of science are supposed to inquire into should be sciences undertaken by scientists who are real human beings, bearing existence in everyday life. The sciences investigated by philosophers are not ones practiced by some surreal beings who have no emotions, no aspirations, no attachments. Many philosophers of science under the influence of logical empiricism or Popper’s falsificationism have long regarded this human aspect of scientists as something that should be expelled from scientific practices, and therefore ignored in an investigation into the methodology of science. As a result, their philosophy of science has moved away from sciences as practiced in real life. But I think this is a mistake. With this in view, I will first explicate the human aspect of scientists in terms of Harry Frankfurt`s theory, and then interpret Thomas Kuhn`s philosophy of science as an attempt to uncover this aspect from underneath science textbooks. The upshot is that the dogmatic nature of Kuhn`s normal science leaves methodological room for the human aspect of scientists such that it plays a crucial role in the advancement of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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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이란 무엇인가

        박신화(Park, Shin-Hwa)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5 철학사상 Vol.56 No.-

        본 논문의 목표는 메를로-퐁티가 자신의 지각 철학 안에서 철학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밝히는 데 있다. 특히 본고의 주 텍스트는 그의 유고작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으로서 우리는 메를로-퐁티가 ‘최후로’ 도달한 철학 개념을 밝히려 했다. 메를로-퐁티에게 있어서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는 지각과 언어의 구분에서 비롯된다. 철학이 지각[경험]을 개념[언어]를 통해 사유하고 표현하는 것인 한, 철학이 무엇인가의 문제는 경험(자체)과 경험에 대한 언어적 표현의 관계는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다시 사유한다는 것의 의미, 말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그런데 메를로-퐁티는 자신의 초기 저작에서부터 이미 지각과 언어의 ‘동류성’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지각과 언어를 경험의 주관적 개별적 영역과 객관적 보편적 영역으로 구분하는 전통적 이해와는 달리 발생 중의 언어에 대한 분석을 통해 드러나는바 언어는 철저하게 지각(적 현상)이다. 그런데 언어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철학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기회를 제공할 뿐더러 나아가 메를로-퐁티 자신의 철학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의미심장한 함축을 지닌다. 후기 메를로-퐁티의살 철학의 성과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데, 사실 그의 살 철학의 성공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이 논란은 메를로-퐁티 자신이 살개념과 관련하여 모순되는 듯이 보이는 주장들을 편 데서 기인한 것이다. 우리는 논문에서 메를로-퐁티의 살 개념이 드러낸 이론적 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는 언급된 난점은 비단 메를로-퐁티의 살 철학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철학이 언어와 사유를 통해 진행하는 것인 한 철학 일반에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논문의 서두에서 ‘왜 메를로-퐁티는 새로운 존재론의 틀을 구상함에 있어 우선적으로 철학의 본성의 문제에 그토록 천착했을까’를 자문했고, 이 물음을 그가 마지막에 도달한 철학 개념을 통해 해명함으로써 그의 살 철학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시도했다. The aim of this essay is to consider what Merleau-Ponty thinks about the nature of philosophy. Especially, the main text of this essay is his posthumous work, 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with which I tried to clear up Merleau-Ponty’s “final” concept of philosophy. For Merleau-Ponty, the problem of the nature of philosophy comes from the separation between perception and language. Inasmuch as philosophy is interested in thinking about and expressing perceptions [experiences] through concepts [language], the problem of the nature of philosophy lies in the relation between experience itself and the linguistic expression of experience. And the latter problem returns to what thinking is and what saying is. In his earlier works, Merleau-Ponty paid attention to the “structural identity” of perception and language. According to him, language turns out to be perceptual, if we analyze it from the point of view of genesis. By the way, such a conception of language gives us a new understanding of the history of philosophy and an important insight concerning the philosophy of Merleau-Ponty itself as well. The problem of how to evaluate Merleau-Ponty’s philosophy of flesh, whether it is successful or not, has caused a lot of controversy among annotators. And Merleau-Ponty himself provides an explanation for this controversy; he makes an assertion that seems to contradict his concept of flesh. In this essay, I indicated what difficulty his concept of flesh involves. But, by extension, I argued that such a difficulty is not only applicable to Merleau-Ponty’s philosophy of flesh, but also to philosophy in general, inasmuch as philosophy proceeds through language and thought. I asked at the very beginning of this essay: Why does Merleau-Ponty consider the problem of the nature of philosophy so serious in the development of a new ontology? With regard to this question, I tried to reach a more profound understanding of his philosophy of flesh by studying his final conception of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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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조선 학자의 자연철학에 관하여

        김선희(Kim, Seon-Hee)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6 철학사상 Vol.60 No.-

        대학 분과나 학문 제도에서 철학과 과학이 분리되기 이전, 자연학과 철학은 중층적 구조를 유지하며 혼종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러한 혼종성은 동양은 물론 19세기 중반 ‘과학자(scientist)’라는 개념의 뒤늦은 등장이 예시하듯, 전문가로서의 ‘과학자’가 전문적 ‘과학’ 연구를 전담한다는 인식 아래 제도적, 규범적 체계를 구축하기 전까지 서양에서도 나타나는 동일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서구의 스펙트럼과 세계관에 따라 학문과 지적 제도를 재편성해야 했던 동양에 있어 이 혼종성에 대한 평가가 더욱 두드러지며, ‘과학’과 ‘동아시아’ 사이의 거리를 벌려놓은 일종의 낙인처럼 작용한다. 이 논문은 하나의 시론적 시도로서, 현재의 시선에는 혼종적이지만 당대에는 매우 정합적이었던 기학적 자연철학의 관점에서 최한기라는 19세기 조선 유학자의 자연철학적 기획을 살펴보고자 한다. 최한기가 구상한 일종의 중력 이론 ‘기륜설(氣輪說)’이 그의 사유 실험을 살펴볼 창이 되어 줄 것이다. 기계론적 세계관 속에서 천체운동 등의 자연 현상을 수학적 체계를 통해 설명하고자 했던 데카르트와 뉴턴의 중력 이론은 서구 과학사의 관점에서 하나의 진보로 평가될 수 있지만 최한기의 기학의 체계에서는 물질을 불활성에 가두며 자연계 운동의 원인을 신에 돌리는 불완전한 체계였다. 그럼에도 최한기는 서학서로부터 실험과 수학적 증명을 통해 기의 형질과 운동을 실증할 수 있음을 인식하여 이를 기학의 방법론으로 정립하고자 했다. 이처럼 최한기가 유학의 이념과 서양 과학의 지식들을 결합해 구축한 ‘기학(氣學)’은 과학과 비과학을 결정하는 현대 과학의 지적 권위가 작동하기 전, 마지막 비결정의 시대에 조선의 지식인이 꿈꿀 수 있었던 자연철학의 가능성과 확장성을 보여 줄 것이다. This paper aims to examine Choe Hangi’s(崔漢騎 , 1803- 1877) theory of the qi’s globe, a sort of gravitational theory, which appears to have hybrid characteristics from a modern perspective but which was understood as a coherent theory in Choe Hangi’s time due to the natural philosophical view based on the study of qi. The gravitational theories of Descartes and Newton, which attempted to explain natural phenomena using a mathematical system from a mechanistic worldview, could be evaluated as progress in the history of Western science, but in terms of the study of qi, these were thought to be incomplete systems, seeing all materials as inert ‘stuff’ and attributing the primary cause of all motions in the nature to God. Nevertheless, Choe Hangi attempted to adopt the Western scientific approach as his methodology, as he recognized after encountering Western learning that the characteristics and motions of qi could be proved by experiments and mathematical proofs. Choe Hangi’s study of qi, which involved combining Confucian ideologies and Western scientific knowledge, could demonstrate the possibility and expandability of natural philosophy, of which Joseon intellectuals had dreamed, and which had formed before the establishment of the intellectual authority of modern science, which draws the boundary between science and non-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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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일본의 유학 전유와 중국철학사 서술의 방향 -다카세 다케지로를 중심으로-

        이혜경(Yi, Hyegyung)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9 철학사상 Vol.74 No.-

        이 논문은 동양철학 학제를 세우고 동양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유학을 일본적으로 전유하는 역할을 했던 이노우에 데츠지로의 구도 하에서, 중국철학 전문가로 활동한 다카세 다케지로의 중국철학 연구를 검토했다. 다카세는 양묵비판의 형식을 빌어 당시 윤리적 적대자인 가토 히로유키와 기독교를 비판할 정도로 유학자로서의 자의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중국철학사는 성선설을 핵심으로 공자에서 왕양명으로 이어지는 유학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그러나 그 ‘선한 본성’은 ‘충군애국’으로 규정되어, 그의 중국철학사 서술은 기본적으로 이노우에의 국가주의적 지도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유학자를 자처했던 다카세는 공자에서부터 이어오는 유학의 도통에 스스로를 앉히고자 했으며, 그 점에서 그에게 중국은 문화의 보고로서 과거의 나라가 아니라, 도를 보존하고 전해준 선배의 나라였다. 유학을 민족적으로 전유하면서 동시에 그 정통의 계승자를 자처했다는 점에서 다카세의 유학이해는 중층의 왜곡을 보여준다. This study reviewed the works of Takase Takejiro. He was a scholar of Chinese philosophy who was active after Inoue Tetsujiro established the discipline of Oriental Philosophy and appropriated Confucianism into Japan’s culture. Takase was a self-conscious Confucianist who denounced his ethical rival Hiroyuki Kato and Christianity by adopting the form of heresy criticism proposed by Mencius. His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surveys the lineage of Confucianism from Confucius to Wang Yangming, while focusing on the theory that human nature is good. Yet, Takase defines “good nature” as “loyalty and patriotism,” and therefore, his narration of the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works within the nationalist framework of Inoue. Nevertheless, as a self-proclaimed Confucianist, Takase aspired to be next in line in the genealogy of orthodox Confucianism and, therefore, considered China not as a cultural treasure trove of ancient knowledge but as a bestower of moral authority. By appropriating Confucianism through a nationalistic framework but still claiming to be heir to orthodoxy, Takase’s interpretation of Confucianism has multiple layers of distor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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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한기를 읽기 위한 제언

        김선희(Kim, Seon Hee)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4 철학사상 Vol.52 No.-

        동아시아에서 서양을 통해 촉발된 근대 지식은 독립적이고 일관된 형태로 이식될 수 없다. 서양의 학술은 고유한 체계와 가치와 이념이 이미 작동하고 있던 지식장에 들어온 외래 사유였고, 따라서 본래의 맥락에서 분리되어 고유의 담론 체계 안에서 다른 생명력과 가치를 얻을 수밖에 없다. 서학(Western Learning) 특히 서양 과학에 대한 최한기의 접근과 수용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이 논문은 최한기 연구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평가들을 하나의 표제어로 삼아 최한기 철학에 접근하는 방식을 재검토하고 서학과 관련된 최한기의 사상적 구상을 재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최한기는 총론차원에서는 동서양을 회통시키며 시대를 앞서 나간 선구적인 사상가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각론 차원에서는 서양 과학의 맥락과 발전상을 이해할 지적(知的) 자원이나 훈련 없이 단발적이고 개별적인 정보 나열에 그친 실패한 사상가로 평가받기도 한다. 총론과 각론의 극단 사이에서 최한기는 ‘근대 우주관을 수용한 과학사상가’나 ‘철두철미한 경험주의자’ 또는 ‘이형접합의 키메라’로 인식된다. 그러나 조선 유학의 토대에서 성장한 최한기는 자신이 수용한 학적 체계가 서양의 ‘근대 과학’이라는 것도, 그 사상적 자원의 내적 발전이 ‘근대성’의 차원에서 평가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또한 그가 강조한 ‘경험’이라는 관념 안에는 경험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실재에 대한 이념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근대 세계에 대한 의식적 지향이 없었던 최한기에게 ‘근대성’의 표지를 붙여 평가하거나, 서양 과학의 완전한 이해와 수용을 목표로 하지 않았던 최한기에 대해 서양 과학의 이해 수준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방식은 최한기의 전략과 목표, 구상과 기획을 현대적 관점에서 예단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한기의 철학적 구상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는 왜 그가 서양과학을 도입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다양한 서양 과학을 수용하고자 했던 최한기의 시도는 ‘기학(氣學)’이라는 보편학에 대한 그의 구상과 지향을 통해 평가할 수 있다. 그는 기학을 통해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고자 했고 이 세계관의 하위에 체계적 학문의 분과를 구성하고자 했다. 그는 기학이라는 보편학의 실질적 세부를 만들기 위해 서양 과학 이론을 비롯한 자기 시대의 모든 사상적 자원을 활용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각론에 대한 평가는 그가 목표로 했던 체계와 그 체계의 세부를 구성하는 사상적 자원들 사이의 연동과 논리 안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Modern knowledge in East Asia, triggered through the Western world, could not be transplanted in an independent and coherent form. Western scholarship, separated from its original context, could only gain new values in the new sphere of scholarship of East Asia with its own values and philosophies. The study of Choi Han-Ki’s reception of Western learning, especially of Western science, should be approached in this context. This paper proposes a way to understand and estimate Choi Han-Ki’s philosophy and ideology in relation to Western learning. Within the pre-existing approaches of his philosophy, he has been generally recognized as a pioneering philosopher for his time for introducing and connecting Western ideologies to those of the East. However, on a more precise level of evaluation level, he has been regarded as rather an unsuccessful philosopher who merely introduced isolated information without being equipped with proper intellectual resources and sufficient training to understand Western science. He was called either as a ‘scientific philosopher who accepted the modern view of the universe,’ or ‘a through and through empiricist,’ or even ‘a heteromorphic camera.’ Yet, Choi Han-Ki as a person grew up during the Confucian Chosen was not able to understand that the scholarship he accepted was ‘modern science’ and its ideological resources had been evaluated at the level of modernity in the West. Moreover, in the concept of ‘experience’ that he emphasized, the idea of a metaphysical entity that cannot be experienced was also included. Therefore, an evaluation of Choi Han-Ki, who did not have a conscious aspiration for modern science and did not aim to understand and introduce Western modern science itself into the East, may involve labeling him with ‘modernity’ or with an evaluation method that uses the understanding level of Western science as its standard, would only lead to forejudge his strategy and goal from the contemporary point of view. In this context, one proper way to understand his philosophical configuration is to start with the question of why he wanted to introduce Western science. His attempt to import various Western science might be best evaluated in the light of his configuration for a universal science, ‘Ghi-Hak.’ He attempted in Ghi-Hak to build up one complete view on the world with its systematic subdivisions, utilizing all the ideological resources he could during his time, including Western sciences. Therefore, the evaluation of his philosophical details should be done within the system he aimed to build up as well as the inner connection logic between ideological resources that form the details of the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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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카르트의 『제일철학에 대한 성찰』에서 초월론적 타자이론

        이종주(Lee, Jong-Ju)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5 철학사상 Vol.56 No.-

        『제일철학에 대한 성찰』을 중심으로 이해되는 데카르트의 철학은 근대이후 주체철학의 출발로 여겨진다. 특히 칸트, 헤겔, 후설을 통해서 데카르트는 초월론적 주체철학의 전통의 출발로 해석되어 왔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데카르트 연구자인 장-뤽 마리옹의 경우에도 1991년 논문에서는 데카르트의 주체철학을 유아론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1996년 논문에서는 마리옹은 데카르트의 『제일철학에 대한 성찰』속에서 새로운 초월론적 타자철학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국내 근대철학 연구자인 진태원 교수는 마리옹의 논변을 반박하면서 그와 같은 해석은 오히려 『제일철학에 대한 성찰』속에서 드러나는 데카르트의 철학이 갖는 담론적 구조, 바로크 시대적 특성이라는 장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본 논문의 전반부에서는 데카르트의 코기토의 초월론적 타자성에 대한 마리옹의 입장을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 그의 논변을 다시 한번 재검토하고, 나아가 그의 논변 속에서 취약점, 즉 텍스트 해석의 문제, 경험적 증거해석의 결핍문제를 밝혀낸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텍스트 내재적 해석 차원에서 제1, 2성찰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 및 경험적 증거차원에서 20세기 후반 발달심리학의 사회적 인지발달이론의 연구성과에 대한 현상학적 재해석을 통해서 ??제일철학에 대한 성찰』속에서 초월론적 타자의 철학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해명하고자 한다. Descartes’ philosophy in Meditations on First Philosophy is believed to be the starting point of modern philosophy. Especially Kant, Hegel, Husserl and Heidegger interpreted Descartes’ philosophy as the origin of the tradition of transcendental philosophy. Jean-Luc Marion, as a representative scholar on Descartes, also interpreted Descartes’ subject-philosophy as a solipsism in his article “Does the Ego Alter the Other? The Solitude of the Cogito and the Absence of Alter Ego” (1991). But in his other article, “Original Otherness of Ego” (1996), he sought the possibility of the philosophy of the transcendental other. Professor Tae-won Jin criticized Marion by saying that in this article he had ignored the peculiar characteristics of Descartes’ philosophy, “the structure of discourse of the Meditations and its baroque characteristics.” In the first half of our article we agree with Marion’s thesis on the transcendental otherness of ego in Descartes’ philosophy in principle, but we also criticize Marion’s argument for its insufficient explanation of the two doubts: “Isn’t the omnipotent demon as a transcendental other only a hypothetical character?” and “Why does the demon enter the inner side of the ego as a soul?” In the last half of our article we support Marion’s thesis by interpreting evidences phenomenologically on the development of a baby’s social cognition which come from developmental psychology and are also reinterpretations of Descartes’ text, especially the first meditation and the second meditation. Through these somewhat rash endeavors, we aim to establish the possibility of transcendental otherness in Descartes’ Medit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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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실천의 위험성

        박병기(Park, Byeong-Kie)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0 철학사상 Vol.37 No.-

        이 글의 목적은 1980년대 이래 구미 각국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철학실천운동의 규범적 성격을 드러내고 그 난점과 해결해야 할 과제를 밝힘으로써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기초를 마련하는 데 있다. 철학실천은 상아탑 속에 잠들어 있는 철학을 깨워 우리 일상의 생활 속으로 내려오도록 하고 삶의 방식으로서의 철학을 복원하여 철학이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숨 쉬게 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철학의 도구화나 상업화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시장에 나온 철학상담은 소비대상 영역이 불분명하다는 난점이 있고 그 자체 철학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는 해결과제를 남기며, 소크라테스대화를 활용한 조직컨설팅은 철학의 제도화를 다시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러한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철학실천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상업부문의 철학실천을 극소화하고 비상업부문, 즉 공공부문의 철학실천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 방안의 하나로 필자가 잠정적으로 제안하는 것은 철학상담사나 소크라테스촉진사를 개인상담소나 컨설팅업체를 개설하여 영업활동의 일환으로 철학상담이나 컨설팅을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stablish a basic groundwork for averting a peril that Philosophical Practice might have by defining the normative nature of the Philosophical Practice Movement being actively developed in Europe and America since the 1980s, and for identifying and solving its problems and tasks. Philosophical Practice is highly significant in that it seeks to restore philosophy to its role as a way of life by bringing it down from its ivory tower to operate as a living force in daily life. But philosophical counseling which emerged as a crass instrumentalism or commercialization of philosophy is problematic due to the uncertainty of whom it targets as a consumer, and opens up the question of how to avoid the danger of distorting philosophy. Organized clinical consultations using Socratic dialogue contain the risk of bringing about yet another institutionalization of philosophy. To solve this problem, the desirable direction for Philosophical Practice is to greatly minimize its market sector, and maximize to every extent its non-market, or public, sector. The writer provisionally advocates that one way to achieve this is to forego the establishing of philosophical counseling companies and companies for the promotion of Socratic facilitator as counseling centers or consulting firms in order to use philosophical counseling and consulting as a part of business activities, but to receive support from the national or local government and employ it as a state-subsidized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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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일본에서 철학 비판의 윤리적 배경

        아사쿠라 토모미(朝創友海),이원석(번역자)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6 철학사상 Vol.62 No.-

        근대 일본에서는 “윤리”와 “철학” 사이에 일종의 상호적대 또는 충돌이 있었다. 전자는 근대 일본 지식인들에 의해 후자를 비판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곤 한 용어였다. 와츠지 데츠로(1889-1960)는 철학 대신 윤리학 이라는 이름 하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연구를 추구했다. 왜냐하면 “윤리”라는 말은 일본의 지적 전통, 특히 유학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어 “철학”이 지닌 부적절성은 마루야마 마사오(1914-1996)에 의해 비판받은 바 있는데, 그는 그 당대의 지적 환경이 지닌 구조적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바로 에도 시기 신유학의 발전에 대한 이해라고 보았다. 와츠지 데츠로와 마루아먀 마사오는 서양 철학에 일본이 동화되어 가는 것에 비판적 태도를 보이면서, 인간 조건을 분석하고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데에 유가적 사유와 윤리가 기본조건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와 반대로, 니시다 기타로(1870-1945)와 그 이후의 교토학파 철학자들은 “철학”을 도덕과 관련이 없는 것 또는 초도덕적인 것으로 보았다. 비록 전후 도덕 교육의 재건이 그들에 의해 가능했지만 말이다. 이 논문은 철학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윤리학과 초도덕적 · 종교적 철학 사이의 대비를 검토함으로써, 이러한 상호 적대가 유가와 불교 사이의 역사적 대립에 뿌리 내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There is a kind of antagonism or confrontation between “ethics” (rinri or rinrigaku) and “philosophy” (tetsugaku) in modern Japan. The former is the word that has often been used by modern Japanese intellectuals to criticize the latter: it is under the name of rinrigaku instead of tetsugaku that Watsuji Tetsurō (1889-1960) pursues the study of human existence because it has a certain connection to the Japanese intellectual tradition, especially to the Confucian one; the inappropriateness of Japanese tetsugaku is further denounced by Maruyama Masao (1914-1996), who finds the peculiar development of Neo-Confucianism in the Edo period as the key to understand the structural problems of the contemporary intellectual milieu. These thinkers are critical of the Japanese assimilation of Western philosophy, finding the Confucian thought or rinri as the basis to analyze the human condition and to comprehend human existence. In contrast, tetsugaku is defined as amoral or trans-moral by Nishida Kitarō (1870-1945) as well as by the subsequent Kyoto School philosophers- although the reconstruction of moral education in postwar Japan owes much to them. This paper shows, by examining the contrast between the rinrigaku as a critique of philosophy on the one hand and the trans-moral or religious tetsugaku on the other, how this apparent antagonism has roots in the historical confrontation between Confucianism and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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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홍 철학의 형성과정 연구

        고성애(Koh, Sung-Ae)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3 철학사상 Vol.48 No.-

        박종홍 철학에 대한 기존의 연구에서는 그의 철학사상에만 관심을 가졌지 그러한 철학사상의 형성과정과 배경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 본고에서는 박종홍 철학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서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형성된 어떤 문제의식이 그를 ‘철학함’으로 이끌어주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박종홍이 철학함의 출발점에서 고민하였던 문제는 “우리”와 “민족”이었고 고민을 해결하고자 읽었던 것이 최남선이 간행한 책이었다. 그는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우리 민족”의 특색을 밝혀보고자 시도하였고 다카야마 쵸규의 저작들을 읽으면서 조선 미술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결국 한계를 느끼고 중단되었지만 다시 니시다 기타로의 철학사상을 접하면서 박종홍은 생에 대한 고민과 미적 감정에 대하여 철학적인 고찰을 시도하게 되는데 그 결과 심미적 감정이 우위를 차지해야 된다고 한다. 또한 박종홍은 교직에 종사하면서 과도기의 혼돈을 겪고 있는 현실에 직면하여 전통적인 교육사상 중의 근본정신을 살리고자 고민하면서 퇴계의 경(敬) 사상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는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 유학에 대한 연구에서 자극을 받은 지식인들이 점차 학문적인 연구를 진행하였던 당시의 시대적ㆍ학문적 상황과 떨어져서는 논의할 수 없다. Previous research on the philosophy of Park Jong-hong has focused mainly on his thoughts as a whole, omitting the background and formation of his thoughts. ‘Before delving into the full-fledged philosophy of Park, this article examines the problematiks he had in mind before he entered Keijo Imperial University. Two starting points of Park’s philosophy are ‘us’ and ‘people of nation’; in searching for the answers he extensively read the books published by Choi Nam-sun. Park attempted to uncover the unique characteristics of ‘our people’ by reading Takayama Chogyu’s books on the history of Joseon art, with which Park faced limitations. As he turned his attention to the philosophy of Nishida Kitaro, which led him to new philosophical inquiries into life and aesthetic feelings, and eventually to conclude aesthetic feelings must take the pride of place in life. As Park was engaged in teaching, the chaotic reality in the turbulent period made him decide to revive the original spirit of traditional thoughts on education, leading him to Toegye’s philosophy of Gyong (敬, pious attention). It must be taken into account, however, that in Park’s time, elites stimulated Takahashi Toru’s work on Joseon Confucianism, and began serious academic research on national spir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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