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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재동(史在東) 소장(所藏) 필사본(筆寫本) 한국고전소설(韓國古典小說)의 현황(現況)과 자료적(資料的) 가치(價値)

        사재동 ( Jae Dong Sa ) 택민국학연구원 2014 국학연구론총 Vol.0 No.14

        이 논문에서는 사재동 소장 필사본 소설의 전통적 지역성과 그 유통범위를 추적하였다. 경산문고의 필사본은 국문소설이 필사·유전된 이래, 면면한 전통을 이어 대전·충남 중심의 기호지방에서 생성·정착됨으로써, 그 시대를 통관하고 이 지역을 망라하여 각계 각층에 유통되었다. 따라서 경산문고 필사본의 유통범위가 그 분포도에 근거하고 입체적인 분포망을 따라서 확실하게 부각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경산문고의 이본적 현황과 자료적 가치를 검토하였다. 단독 이본은 400책의 22% 정도인데 그 중 「김용주전」이나 「갑진녹」·「왕조열전」·「쇼듕화역□셜」·「소강절실긔」·「셔부인젼」·「쳥암녹」·「쳥월당영화록」 등 10여개 작품들은 미발표 자료로 가치가 높다. 이들 필사본은 그 유통과정에서 강독과 강담, 강창과 가창의 방편을 타고 민간 대중에 연행되면서,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유통망을 형성하고 이끌어 옴으로써, 다른 장르와 관련하여 국문학유통사상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여 왔던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또한 경산문고의 문화사적 위상을 파악하였다. 먼저 경산문고의 필사본은 생성·유통의 역사적 도정에서 국문소설사 그 자체의 역할을 감당하여 왔다. 더구나 이 필사본의 여러 이본들이 위와 같은 유통의 방편으로 연행·교접하는 가운데 희곡장르나 시가장르 내지 평론장르를 생산함으로써, 당시의 국문희곡사나 국문시가사·국문평론사와 합류되었으니, 그 국문학사상의 위상이 높이 평가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경산문고의 필사본은 다양한 기술·표현 가운데 그 시대에 상응하는 문어체와 구어체의 음운·어휘·어법, 그리고 방언 등을 통하여 그 시대의 국어사를 정립·체계화할 수가 있고, 그 국자·국문장을 통하여 훈민정음 교습·보급의 교과서적 원전으로서 국자·국문보급사 내지 국문문장사를 계통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필수적 원전 자료가 되었다. 또한 경산문고는 그 시대의 민간·대중에 유전·보급된 국문문헌으로서 보편적인 전형성과 지역·계층적인 특이성을 다양하게 갖추었기에, 그 문헌사를 고찰·정리하는 데에 중요한 원전·자료가 된다. 겸하여 경산문고는 다양·다기한 국문필체를 구비하였기에, 그 시대 국문필체사를 체계화하는 데에더 직접적인 원전·자료가 된다. 이와 같이 경산문고는 고전소설·국문학의 연구 원전으로서 자료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국문소설유통사 내지 국문학유통사의 체계화에 필수되는 그 원전이라고 본다. 전국에 유전되는 모든 필사본의 이본을 총체적으로 집성해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값진 민족문화유산으로 높이 평가될 보전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유일본은 국가의 문화재로, 희귀본도 국가문화의 문화재로, 기타 필사본은 국민문화유산으로 영구 보존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 This paper examines five hundred fictional stories of hand-writing edition in the Sa Jae-dong collection of premodern fiction and provides an index to this collection. First of all, this study traces sources of fictional stories, which help us understand the reception and circulation of traditional fiction, and locates that most stories appearing in the collection are from Giho province. Second, this study addresses the significance of the collection as a precious cultural asset of Korean tradition. The stories have potentials to be made into various forms of media and art such as new story-telling, film, drama, animation, and also they can be used in visual media. Third, it is necessary to make this collection more available to the modern readers. Since most texts exist in a form of hand-written manuscripts, it is also important to translate these texts into modern Korean. In terms of preservation and circulation of premodern source, I suggest that we should discover and collect premodern fiction at a place and also secure a space for reading the collected works in order to make the stories readable and accessible not only for scholars but also for the younger generations.

      • 충암의 불교생활과 문학세계

        사재동(Sa, Jae-Dong)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20 충청문화연구 Vol.23 No.-

        이 충암 김정은 일찍부터 법천사나 청량사를 비롯하여 한산사·청룡사·유점사·장안사·표훈사 등 여러 사찰을 찾아 유거하면서 공부·수행하기를 출가자처럼 거듭하였고, 인연 따라 지열상인을 비롯하여 성인·설청·자혜·행분·각해·진기·수간 등 40명을 헤아리는 많은 승려들과 교유하여 불법을 논의하고 시문을 주고 받는 법연이 돈독하였다. 그리하여 충암은 외유 내불의 천재적 지성으로서 그 화엄의 이치를 실증하고, 선정의 경지를 체달하며, 법연에 따라 교학·선지를 익히는 가운데, 하화중생의 불교적 염원을 실천하였던 것이다. 충암이 그만한 불교사상과 신앙·정서를 갖추었기에, 그 문학 작품, 시문의 상당 부분이 불교적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먼저 그 화엄 세계적 작품으로 〈題叢石亭〉과 〈釋守侃字葆和說〉·〈登高丘賦〉 등 10여편의 고원·미려한 명품이 있고, 그 선정 경지적 작품으로 〈次昌世蓮庵口號韻〉과 〈十一箴〉·〈忽忽〉 등 20여편 정도의 청정·진솔한 가작이 있다. 그리고 법연 공감적 작품으로 〈贈玉曦〉와 〈贈志悅上人序〉·〈贈寒山僧〉 등 35편의 명작이 있고, 교화 방편적 작품으로는 〈都近川水精寺重修記〉와 〈濟州風土錄〉 등의 고매·이념적 명문이 있었던 것이다. 이 충암의 문학작품 전체는 그 장르적 성향을 보였으니, 먼저 그 시가의 하위 장르로는 5·7언 절구에 〈鎭川道中〉과 〈懷古〉·〈感興〉 등 287수의 명편이 있고, 5·7언 율시에 〈牧丹〉과 〈次友人韻〉·〈秋涼〉 등 217수의 가집이 남았으며, 고시에 〈西瓜〉와 〈次友人韻〉·〈感懷〉 등 63수의 수작이 행세하였다. 그리고 사(詞)에 〈題高相荊山畵屛〉과 〈四時詞〉·〈鴛鴦詞〉 등 가작이 있고, 가(歌)에 〈賡南薰歌〉와 〈迎新使歌謠〉·〈三山歌〉 등 명편이 남았으며, 사(辭)에 〈浴沂辭〉와 〈臨絶辭〉 등 절품이 있는 데다, 부(賦)에 〈登高丘賦〉가 명품으로 유전하였다. 한편 산문, 수필 장르로는 교령에 〈諭慶尙道觀察使金安國敎〉가 응제되었고, 주의에 〈請復故妃愼氏疏〉와 〈辭成均館事及副提學疏〉·〈請歸養疏〉·〈獄中疏〉 등이 엄연하며, 논설에 〈女媧氏鍊石補天辨〉과 〈擬廉頗謝藺相如書〉·〈釋守侃字葆和說〉·〈濟州風土錄〉 등 명문이 남았다. 이어 잠명에 〈十一箴〉과 〈段秀實擊朱泚笏銘〉·〈無絃琴銘〉 등 명품이 있고, 서발에 〈贈玉曦序〉와 〈贈志悅上人序〉·〈十一箴序〉 등 14편의 가작이 남았으며, 비지에 〈順天府使金公鏵墓碣銘〉과 〈軍器寺判官兪公汝諧墓碣銘〉 등 명편이 행세하였다. 또한 애제에 〈製進獻陵親幸祭文〉와 〈祭延昌府院君金勘文〉·〈黃龍祈雨祭文〉 등 16편의 명품이 있고, 서간에 〈答對馬島主書契〉와 〈奉復安求禮書〉·〈奉復安順之處順書〉 등 6편의 명문이 전하며, 잡기에 〈叢石亭重修記〉와 〈都近川水精寺重修記〉 등 수작이 전래되었다. 이와 같이 당대 유불회통의 천재적 지성, 충암이 불교사상에 입각하여 상당한 시문을 제작하고, 시가와 수필, 각개 하위 장르를 통하여 풍성한 명품·가작을 산출한 것은 실로 값지고 높이 평가할 일이다. 일찍이 충암의 시문은 성당의 시격과 서한의 정심한 문체를 터득하였다고 정평이 났다. 그래서 허균은 그의 저술애서 ‘충암이 명나라 10대 문장가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고, 그 쟁쟁함이 천고에 빛났다.’고 평하였던 것이다.

      • KCI등재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創制),실용(實用)의 불교문화학적(佛敎文化學的) 고찰(考察)

        사재동 ( Jae Dong Sa ) 택민국학연구원 2010 국학연구론총 Vol.0 No.5

        그동안 이 훈민정음은 세종의 친제에다 집현전 학사 정인지·최항·신숙주·성삼문·이개 등의 협조로 완성되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이 훈민정음은 그 당시 조정·유교계가 중국과 제휴하여 건국의 이념과 국시의 차원에서 극구 반대·부인하던 문자였으니, 그 유신 정예학자인 집현전 학사들이 이 훈민정음의 창제에 적극 협력했다는 것은 불합리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기실 그유신 학사들은 문자로서의 ‘훈민정음’ 창제에 직접 참여한 것이 아니라, 어명에 의하여 훈민정음해례본 그 책자로서의 ‘訓民正音’을 저술하고 나아가 <용비어천가>나 <동국정운> 등을 역해하는 데에 주력했을 뿐이었다. 따라서 이 문자로서의 훈민정음은 세종이 친제하였으되, 오직천재적 군왕으로서 신화적으로 창제한 것이 아니고, 적어도 국자의 어제에 따른 정식 절차를 밟았다는 것이다. 즉위 20년을 넘어서면서 숭불주가 된 세종이 당시 건국 이념·국시에 반해서 새로운 문자로 불경·불서를 간행·홍포하여 불교중흥과 함께 불교왕국의 재건을 갈망·고대하던 불교계에 명하여 그 훈민정음을 제진케 한 것이었다. 이에 세종은 그 창제의 총체적 책임자로서 승왕의 대망을 품었던 수양대군을 그 총괄적 주관자로, 당대 불교계를 대표하는 학승 신미·수미·설준·홍준·효운·지해·해초·사지·학열·학조·김수온 등을 전문적 실무자로 위촉하여 극비리에 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실험·확정·공표했던 것이다. 이어 조정·유신과 중국측의 반대·위협에 직면한 세종은 한자음 개신과 운서 간행이나 <용비어천가> 제작 등의 명분으로 이를 극복하고 왕권으로 조정·유교계와 왕실·불교계에 그 활용을 적극 권장·강요하게 되었다. 이에 왕실·불교계에서는 그 창제 즉시로부터 훈민정음을 불교문자로 수용하여 15세기 말까지 <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월인석보>는 물론, 간경도감의 수많은 불경언해를 간행하였지만, 조정·유교계에서는 훈민정음을 냉대·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유경언해나 삼강행실도언해·두시언해, 실용서언해 등을 강력히 하명 받고도 15세기 말까지는 온갖 핑게로 유보·연기했던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 훈민정음은 그 창제·실용과정에서 적어도 15세기 말까지 조정·유교계의 장벽과 박해 아래, 불교중흥과 불교문화 발전을 위하여 크게 기여하여 왔다고 보아진다. King Sejong nominated Prince SooYang in director in charge of the invention of Korean alphabet (hunmin chongum) and also appointed Sinmi, Sumi, Soljun, Hongjun, Hyoun, Jihae, Haech’o, Saji, Hagyol, Hakcho, Kim Suon as the chief executors to invent and promulgate the Korean alphabet. Although the invention of the Korean alphabet faced oppositions by court officials and the Chinese, King Sejong, while composing Yongbi och``onga (Songs of Flying Dragon), strongly encouraged the spread of the Korean alphabet. The royal families and the Korean Buddhist society played a major role in adopting this writing system. Until the end of 15th century, a number of Buddhist scriptures had been translated into vernacular Korean, including Worin ch’ongang chigok (Songsof the Moon``s Reflection on a Thousand Rivers) Sokpo sangjol (A Detailed Biography of the Buddha Sakyamuni), Worin sokpo (The combined edition of Worinch’ongang chigok and Sokpo sangjol) from Kangyong togam (Publishing Bureau of Buddhist texts). However, the court officials and Confucian literati continued to disregard the legitimacy of the Korean alphabet, even though they participated in publishing many works in Korean such as Samgang haengsilto onhae (Korean translation of The Three Principles of. Basic Human Relationships) Tusi onhae (Korean translation of Du Fu’s poems), Silyongso onhae (Korean translation of practical books), and etc. Despite the hostile criticism from the court and Confucian scholars, Korean alphabet had been widespread and acknowledged as effective writing system. By late 15th century, those who most benefited from the invention of Korean alphabet were the Buddhist community who actively employed the Korean alphabet system to spread Buddhist scriptures and achieved the restoration of Buddhist culture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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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포 가야산 불교문화의 위상

        사재동(Sa, Jae dong)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9 충청학과 충청문화 Vol.26 No.1

        가야산 불교권은 산문 성지로서 그것이 바로 금강산문이나 대전 계족산문 양산 영축산문이나 합천 가야산문과 함께 불사천지 불교적 이상세계를 이루어 왔다. 그리고 이 가야산문의 사찰들이 활발한 문화활동을 통하여 보원사를 중심으로 수승한 불교문화권을 형성하여 왔다. 따라서 보원사는 그 가운데, 천연의 길지요 숙연의 불지 위에 장엄·광활한 보궁으로 우뚝하여, 역대의 수많은 승려들과 신도·대중이 여법한 불교생활에 매진하는 과정에서, 찬연한 불교문화를 조성·발전·전승시켰다. 그 중요하고 값진 불교문화는 먼저 불교미술 분야가 불교건축과 불교회화 불교조각과 불교공예 등으로 조성·전래되었고, 다음 불교어문 분야가 불교문헌과 불교언어, 불교문학과 불교출판 등으로 형성·유전되었다. 이어 불교활동 분야가 불교의례·재의와 불교윤리 그리고 불교법회 등으로 대두·전승되었고, 불교연행 분야가 불교음악과 불교무용, 그리고 불교연극 등으로 등장·유통되었다. 끝으로 불교풍속 분야가 불교의식주와 불교의약 불교통과의례와 불교월령 등으로 나타나 행세하였다. 이처럼 찬란하고 보배로운 이 사찰문화, 불교문화는 그 불교사와 운명을 같이하면서 이 지방 정신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보원사 중심의 가야산 산문, 그 불교문화가 백제권 내포지방의 불교 문화사상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파악하였다. 이 보원사의 불교문화사는 찬연하고 보배롭게 전개되었다. 이 사찰의 불교문화가 중심·주축이 되어 가야산문 성지의 불교문화가 하나의 원만한 문화권을 조성하여 권능을 발휘하는 가운데 내포지방의 불교문화가 발전 · 융성승벽 자연적인 문화세계, 행복한 정신세계를 이룩하였다. 그리하여 내포지방 정신문화의 중심·주축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백제권 중요지역의 불교문화와 호응하고 거국적 불교문화와 대등하게 합류하였다. 나아가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의 불교문화와 교류·상장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했던 것이다. 이러한 불교문화는 백제시대와 신라통일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불교사와 운명을 같이하여 형성·발전·난숙·성행의 도정을 겪고는 마침내 조선 후기에 이르러 실세· 쇠망하여 땅에 떨어져 지금의 사지·문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 佛敎齋儀軌範의 公演樣相과 文學的 展開

        史在東(Sa, jae-dong)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15 충청문화연구 Vol.15 No.-

        Throughout the paper, I have discussed about the performing processes and literature developments of Buddhist Ritual Dance patterns from the perspective of theater theory, play theory. The followings are summarized. The first, I reviewed the details of Buddist ritual dance patterns and their distributions. They were performed in Buddhist temples by words of mouths and books the day or later nationally. The second, I reviewed the types of Buddist ritual dance patterns. Their types are scripts of ritual performing having the literary values and the play values. The third I traced the play developments. Their procedures are "Beginning-Predicted describing-Event-Increasing- Peak- Decreasing- End" The beginning is a prelude, the describing and event is Act1, the increasing is Act2, the peak is Act3, the decreasing is Act4, the end is Act5, those procedures are correspond to the play. The forth, Buddhist ritual dance patterns are studied literature facts and genre developments. These works meet the demand of literature genre system. The fifth, the statues of Buddhist culture are checked. The patterns of them had been displayed for the propagating and the revival of Buddhism. Specially, they stood high in Ghoseon Dynasty Buddhism A hitherto, I have discussed about the performing processes and literature developments of Buddhist Ritual Dance patterns but still the lack for the values themselves. In fact, these patterns the treasures in performings, plays, and literatures.

      • KCI등재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의 훈민정음 활용과 연행적(演行的) 유통 양상

        사재동, 사진실(Jin-shil, Sa) 어문연구학회 2012 어문연구 Vol.74 No.-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최초의 국문 불경으로 정음(正音) 문화는 물론 불교 문화와 국문 문학을 포함한 한국 문화 전반에서 뛰어난 가치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작품의 유통과 연행이라는 측면에서 『월인천강지곡』의 의의와 가치를 탐구하였다. 『월인천강지곡』은 훈민정음을 충실하게 실용하여 새로운 문자 생활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특히 국문을 앞세우고 한문을 보조적으로 기록하는 국문 전용 방식을 실현하여 후대 한글 전용의 전형을 마련하였다. 국문전용의 전통은 성종 이후 불교세가 약화되면서 유교계와 한문층의 득세로 다시 한문 중심의 표기 체계로 역전되었다.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한글학자들과 한글학회의 노력이 더해져 국문 전용 표기 체계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국문전용은 이미 『월인천강지곡』에서 전형을 이루어 그 면면한 전통이 현대에 이르러 새롭게 되살아났다고 할 수 있다. 『월인천강지곡』은 국어학의 전형을 마련하였다는 데 의미를 지닌다. 훈민정음의 창제와 그 해례가 국어학의 시발이라면 문장례로 제작된 『월인천강지곡』은 국어학을 정립하여 계승시킨 전범이라 하겠다. 이 작품에 구비된 국어학의 이론 체계와 그 실례는 성음학,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문체론 등을 완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어학의 이론과 실제는 『석보상절』와 『월인석보』 등에 그대로 적용되었으며 근세국어와 현대국어의 다양한 문헌에도 적용되어 전개되었다고 보아진다. 『월인천강지곡』은 『용비어천가』와 마찬가지로 악(樂) 갈래의 연행을 목적으로 제작된 악장이며 서사와 서정의 병행을 통하여 사건을 전개하고 인물 성격을 구현하고 있다. 이들 악장을 토대로 연행된 공연텍스트는 일정한 시공간의 재현과 극중인물의 형상화를 통해 연극적인 면모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악장은 희곡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최초의 국문희곡으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한편 이 작품은 독립적인 단편서사들이 장편서사를 구축하는 체계를 보인다. 독립단편들은 그에 해당하는 상절부와 결합되어 서사와 서정이 결합된 강창 단위를 이루고 있다. 이 강창 단위는 단형ㆍ중형ㆍ장형에 따라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입체적인 공연텍스트로 전환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강창에 춤이나 연기 동작이 결부되는 경우 가무극이나 대화극 등 다양한 연극 양식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훈민정음의 표기체계를 만방에 보급하기 위하여 해례의 완성 단계인 문장례를 장편서사로 담아 꾸려내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의 유통과 전파를 극대화하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이야기가 종교적인 신화성과 인간적인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석가모니의 일대기였다는 사실은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널리 민간의 문화로 자리잡은 불교의 파급력을 인정했다는 증거이며 불교와의 상생을 통해 민간의 백성들을 끌어안으려는 의도였다고 할 수 있다. Weorin cheon-gang-ji-gok(月印千江之曲, Songs of the Moon's Reflection on Thousand Rivers) is an epic that tells the story of Buddha from his previous life, birth, royal life, entering the priesthood, ascetic practice, attaining Buddhahood, distributing the law of Buddhism, and finally to Nirvana. It has been written to facilitate the usage and supply of Korean writing system after the creation of Hunmin jeongeum(訓民正音, Correct Sounds to Instruct the People), the Korean alphabet. This paper searches for the meaning and value of this work in linguistics and literature. From a linguistic perspective, Weorin cheon-gang-ji-gok set the precedent for the usage of the newly created writing system of Hunmin jeongeum. Especially, by prioritizing the Korean alphabet in writing and using Chinese characters only as assistance, this work has proposed a method Korean alphabet-centered writing system. Based on this tradition, the efforts of many scholars in the modern ages have completed the writing system comprised solely of the Korean script. Moreover, Weorin cheon-gang-ji-gok is also meaningful in that it has formed the model of Korean linguistic studies. While The creation and explanation of Hunmin jeongeum opened the gate of linguistic studies, Weorin cheon-gang-ji-gok has founded and carried on the studies. This is so because the theoretical and practical usage of Korean contained in this work is complete with phonology, mor-phology, stylistics and so forth. From a literary perspective, Weorin cheon-gang-ji-gok has been created as ‘Akjang(樂章, musical text)’ which is lyrics to the ‘Ak(樂)' used in royal ceremonies and banquets. Ak(樂) is a form of musical performance for royal ceremony, that incorporates poetry, music, and dancing. Weorin cheon-gang-ji-gok differs from past works of Akjang that performed only lyrics, by using both epic and lyrics together, achieving a holistic structure in itself. The whole body of Weorin cheon-gang-ji-gok seems impossible to perform as a single performance since it is a long work of art that deals with the entire life of Buddha. It can be assumed that it was performed in units of epic and lyrics that constitute a single story. In fact, this work is comprised of a number of short stories that are structurally molded together to form a larger whole. There is no existing records of actual performances or musical score. This is different from Yongbi eocheonga(龍飛御天歌), of which there is a comprehensive record preserved. The latter was a central repertoire in the royal ceremonies and banquets in the Chosun Dynasty because it demonstrated the legitimacy of the creation of the dynasty. On the other hand, the former contained contents related to Buddhist scriptures, which the Chosun Dynasty shunned. Thus, it can be said that this work was difficult to perform publicly or to be handed down. As a result, it is projected that Weorin cheon-gang-ji-gok was preserved as a very minimized music version and/or absorbed into the Buddhist ceremonies.

      • KCI등재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의 불교문화학적(佛敎文化學的) 고찰(考察)

        사재동 ( Jae Dong Sa ) 택민국학연구원 2010 국학연구론총 Vol.0 No.6

        본론에서 논의한 것을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백제금동대항로의 조성 경위에 대해서 조성의 주체, 조성의 동기, 조성의 배경, 조성의 과정을 자세하게 밝혔다. 둘째, 백제금동대항로의 불교문화적 실상을 단신형 번용상, 중첩형 연화대상, 쌍대형 유은문상, 박산형 연화장세계상, 성조형 극락조상으로 나누어 용례를 들면서 자세하게 고찰하였다. 셋째, 백제금동대항로의 소재적 연원, 불교신앙사적 위치, 예술사적 위상으로 나누어 자세하게 고찰하였다. 따라서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불교문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가장 뛰어나다고 밝혔다. The substance of this study is splited into three. First, about the making of the Baekjaeguemdongdaehy -angro, this study gives a full detail of the subject and motive and background and process of maikng. Second, about the Buddhist cultural facts of the Baekjaeguemdongdaehyangro, this study gives a full detail of the dansinhyeong boenyoungsang, jungchoemtyeong yoenhw -adaesang, ssangdaehyeong yuuenmunsang, baksanhyeong yoe -nhwajangsegyesang, seongjohyeong gukrankjosang takes an example. Third, about the material origin and the Buddhist historical position and the art historical stature of the Baekjaeguemdongdaehyangro, this study gives a full detail. Therefore, this study illuminates that the position of Baekjaeguemdongdaehyangro is the best in the Buddhist culture.

      • KCI등재

        미륵사지(彌勒寺址) 문물(文物)의 예술사적(藝術史的) 고찰(考察)

        사재동 ( Jae Dong Sa ) 택민국학연구원 2009 국학연구론총 Vol.0 No.3

        첫째, 미륵사지 문물의 조성연대에 대하여 재검토하였다. 그동안의 무왕창건설을 극복하고 그 무령왕창건설을 재강조하되, 『삼국유사』 <무왕>조의 기사가 그 주기의 고본대로 무강왕 즉무령왕의 기사라는 것을 재확인하였다. 여기서 무령왕대의 국력이나 경제력, 그 당시 백제불교문화사의 흐름과 왕·왕후의 신심·원력, 미륵사지 문물의 시대적 특징, 최근에 발굴된 사리장엄구·사리봉안기의 내용, 그 왕의 국혼담과 즉위과정 등을 상고하여 그 왕은 무왕이기보다는 무령왕임을 보완·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그 사리봉안기에 보이는 ‘己亥年’이 바로 무령왕19년 519년임을 밝히면서 그 무령왕창건설을 재정립하였다. 둘째, 이 미륵사지 문물의 미술사적 위상을 거론하였다. 이문물의 건축·회화·조각·공예에 걸친 수많은 작품들은 각기그 양식과 가치의 실상이 무령왕대에 부합되고, 각기 백제사찰건축사·회화사·조각사·공예사를 이끌어서, 무령왕대로부터 조선전기 내지 현재까지 장구한 세월에 걸친 백제미술사와 한국미술사 상의 위상을 추적하였다. 셋째, 이 미륵사지 문물의 문학사적 위상을 고구하였다. 이문물에 얽힌 문학작품들이 시가·수필·소설·희곡 장르에 걸쳐 계통적으로 전개되고, 다시 백제문학사·신라통일기문학사·고려기문학사·조선전기문학사를 이룩하여, 그 사찰이 창건·유지되던 장구한 세월의 백제문학사 내지 한국문학사 상의 위상을 파악하였다. 넷째, 이 미륵사지 문물의 공연예술사적 위상을 고찰하였다. 이 문물을 통하여 연행된 공연예술이 음악·무용·연기의 요건을 갖추고, 그 공연현장이 제의공연과 경찬공연, 행사공연으로 나누어지면서, 그 장르가 가무극·가창극·강창극·대화극·잡합극으로 전개되어, 미륵사의 역사와 함께 한 백제공연예술사내지 한국공연예술사 상의 위상을 어림해 보았다. 이로써 미륵사지 문물은 생동하던 미륵사의 문물로 재구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륵사 문물의 예술사적 위상이 그 현장 터전 위에 복원·정립된 것이었다. 이 밖에도 미륵사의 문물은 백제불교언어사·문헌사·신앙사·의례사·사상사·교육사·종통사·의약사·생활사·민속사 등 백제불교문화사를 재구해 내는 기반·전거가 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미륵사지 문물은 그 사리봉안기의 증언에 따라 무왕대보다 120년을 소급하여 백제문화사·한국문화사를 새롭게 써야 할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 이 미륵사가 창건되어 유지된 기간이 무려 1000여 년이요, 폐사된 지도 500여 년이나 되니, 그 기나긴 세월 백제·한국의 불교문화사와 한국문화사를 지켜 온 그 문물이 너무도 거룩하고 영광스럽기만 하다. 지금은 비록 폐사의 운명으로 그 문물이 모두 파괴·유실되어 초라한 유물·유적으로 남았을 뿐이지만, 그 실물의 실상은 몰라도 그 문화사적 위상은 영원하고 찬연하게 빛날 것이다. 이 미륵사지 문물 내지 미륵사의 문물은 실로민족문화의 정화요 세계의 문화유산이다. 그 사지의 일체 문물은 모두가 너무도 값진 보물이니, 바야흐로 길이 보전하고 깊이 연구·선양할 때가 왔다. This paper examines the establishing period of artifacts and temple of Bodhisattva Maitreya(Miruksaji). It aims to avoid the conventional understanding of King Mu’s in relation to the temple and to emphasize that the artifacts of Maitreya shows a closer relationship with king Muryong, who must have made a contribution to founding the temple. This study reveals that the date of temple establishment, inscribed on a relic of the Buddha’s bone, indicates the 19th year of king Muryong’s reign in 519. First, I considered the architecture, paintings, sculpture, and craft works to reveal the artistic aspect of the temple and its significance in Korean art history. Second, this study explore how the Temple of Bodhisattva Maitreya occupies an important standing in Korean literary tradition in terms of lyrics, essays, fiction, and plays dealing with the temple. Third, I also examine the role of temple in respect with performing art by identifying the performance condition, performing site, and the genre. Conclusively, the artifacts and temple of Bodhisattva Maitreya not only manifest the spirit of Korean culture but also become world-class cultural asset. Further studies in the future and preservation of the temple are expected to fol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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